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101 - Chapter 110

175 Chapters

제101화

이훈이 이렇게 말하며 안다혜의 뺨을 잽싸게 내리쳤다. 여자라고 전혀 봐주는 법이 없이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말이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임유정은 너무 통쾌했다.안다혜는 입가에 피가 새어 나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예쁜 눈으로 이훈을 노려봤다. 이훈은 그 눈빛을 보고 마음이 불안해졌지만 그래도 꾹 참고 입을 놀렸다.“왜?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다?”이훈이 이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안다혜의 뺨을 다시 내리치려는데 누군가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잡으며 홱 당기더니 힘껏 걷어차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죽고 싶어 환장했어?”안다혜는 익숙한 목소리에 눈을 뜨고 그쪽을 바라봤다. 역광이라 겨우 눈꺼풀을 드는데 남자의 걱정 어린 까만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고 순간 안다혜는 안심했다.윤해준은 옷이 헝클어지고 입가에 피가 새어 나온 안다혜와 그 옆으로 늘어선 남자들을 보자마자 무슨 상황인지 알아채고 눈동자가 빨개졌지만 일단 그녀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남자들부터 처리했다. 데려온 졸병들이 하나둘 쓰러지자 대장으로 보이는 양아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이 새끼 뭐야. 졸지 마. 고작 한 명인데 쪽수로 봐도 우리가 이겨.”이 말에 윤해준이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아무 표정 없이 그쪽으로 다가가 하반신을 공격했다. 입만 놀리던 남자가 황급히 몸을 돌린 덕분에 급소를 피할 수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졸병들도 윤해준의 광기 어린 눈빛에 놀라 손댈 엄두를 내지 못했다.“너 누구야. 여긴 무슨 일로 왔어.”이훈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이 여자 내가 점찍어둔 여자야. 내 관할 구역에서 간도 크다?”이훈이 윽박질러도 윤해준은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아까 때렸던 곳을 또 때렸다. 이번엔 절대 이훈을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다.다른 두 졸병이 윤해준의 전투력을 보고 엉금엉금 뒤로 물러서는데 윤해준이 쏘아보자 얼른 아무것도 모른다는 의미로 손사래를 쳤다.“우린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라 아무것도 몰라. 알려주고 싶어도 아는 게 없다니까.”“맞아. 이 아가씨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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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경찰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온 오정우는 마침 윤해준이 안다혜를 안고 나오는 걸 보았다. 여자의 몸에는 남자의 슈트가 덮여 있었다. 오정우마저도 작고 가녀린 안다혜가 윤해준의 품에 안겨 있으니 참 잘 어울린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대표... 아니. 제가 경찰을 데려왔습니다.오정우는 윤해준의 품에 안겨있는 안다혜를 보고 대표님이라고 부르다가 말았다. 아니나 다를까 윤해준이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보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안에 있는 사람 한 사람도 놓치면 안 돼.”윤해준은 이 말만 남기고 안다혜와 자리를 떠났다. 안다혜의 옷은 이제 입을 수 없을 정도였고 그는 그녀가 이곳을 당장이라도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머리를 그의 어깨에 푹 파묻었다. 따귀를 맞은 건 정말 너무 치욕스러웠다.“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아. 다정아. 이제 무서워할 거 없어. 푹 쉬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남자의 부드러우면서도 나지막한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안다혜가 아직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온몸에 힘이 들어간 걸 보고 위로를 건넨 것이다. 안다혜는 그의 섬세함에 다시 한번 속으로 감탄하며 가볍게 대답하고는 품에 안겨 자리를 떠났다.이훈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경찰서였고 임유정도 예외는 없었다. 하지만 심문하면서 임유정은 상황을 뻔히 알면서도 알리지 않은 죄만 물어 고작 열흘 조금 넘게 구치소에 갇혀 있었다. 그렇게 이훈과 임유정은 법의 재판을 받은 것이다.집에서 이 소식을 접해 들은 서진우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테이블에 던졌다.“쓰레기 같은 것들.”도착한 심서아가 씩씩거리는 서진우를 보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이내 앞으로 다가가 가슴을 쓸어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렇게 물었다.“왜 그래? 무슨 일로 화가 난 거야?”서진우는 심서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기분이 조금 풀렸다.“괜찮아. 사업에 문제가 조금 생겼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서진우가 이렇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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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한편, 안다혜를 부드럽게 조수석에 앉힌 윤해준은 운전석에 올라탔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꿀이 뚝뚝 떨어질 정도였지만 그 속에서 걱정이 돋보였다.두 사람의 거리가 가깝기도 했고 남자가 워낙 요물처럼 잘 생겨 안다혜의 얼굴에 홍조가 올라왔다.“저리 가요.”하지만 윤해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이라도 안다혜를 덮칠 것처럼 몸을 최대한 기울였다.“미안해. 다정아. 나 때문에 이런 수모까지 당하고.”이 말에서 깊은 죄책감이 느껴졌다. 안다혜가 이번에 다친 건 다 그의 불찰이었다.안으로 들어간 순간 안다혜를 둘러싼 남자와 그녀의 입가에 새어 나온 피를 본 순간 정말 당장이라도 그들의 가죽을 발라버리고 싶었다. 천만다행으로 그녀는 그가 올 때까지 꿋꿋이 버텼지만 그래도 그는 용서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더 빨리 갔다면 입가에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따귀를 맞을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동안 안다혜가 어떻게 버텼을지 생각하면 눈앞이 깜깜했다.“나 괜찮아요. 봐봐요. 아무 일 없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자책하지 마요. 나는 오빠 탓한 적 없어요.”윤해준은 머리 위로 올려진 부드러운 손길에 안다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 고개를 들었다가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저 있을 땐 아무 일도 모르고 윤해준을 위로했지만 막상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난감해지기 시작해 마른기침하며 손을 도로 집어넣으려는데 그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더니 얇은 입술을 갖다 댔다.윤해준이 오늘 선보인 키스는 여느 때와 달리 부드러웠고 안다혜의 입술에 입술을 꼭 맞추고 겉만 맴돌면서 요새는 공략하지 않았다. 부러운 공세에 점점 빠져든 안다혜가 자기도 모르게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열었다.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윤해준이 그대로 안으로 진격했고 그녀의 손 대신 가녀린 허리를 감싸며 거리를 좁혔다. 이에 불안하기만 하던 그녀의 마음도 사르르 녹았고 두 불안한 심장이 만나 점점 가까워졌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윤해준은 안다혜가 걷지 못 하게 안고 움직였다. 얼굴이 빨개진 안다혜가 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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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안다혜는 이것이 발버둥 치면서 난 상처임을 알아채고 부자연스럽게 손을 거뒀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다 작은 상처인데요 뭘.”안다혜가 다시 한번 그를 내보내려 했다.“나가요. 정말 혼자 괜찮다니까요.”윤해준은 아직도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안다혜를 보며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왜 탁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지 의문이었다.“이게 어떻게 작은 상처야?”안다혜는 윤해준의 억양이 낮아졌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네. 별거 아니니까 한잠 자고 일어나면 돼요.”안다혜가 얼른 샤워하려고 다시 한번 윤해준을 내보내려는데 눈꺼풀을 들자마자 상대의 깊은 눈동자가 보였다.“왜 그래요?”안다혜가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다정아, 나는 앞으로 네가 너무 혼자 짊어지지 말았으면 좋겠어.”남자의 말투에서 관심과 걱정이 묻어났다.“나에게 기대도 되잖아. 늘 굳세야 한다는 법은 없어.”이 말에 안다혜가 넋을 잃었다.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격한 교육을 받은 그녀는 너무 많은 사랑을 받지는 못했다. 그때부터 더 독립적이고 더 단단해진 그녀는 뭐든 혼자 완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준 게 처음이라 그녀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아... 알았어요. 얼른 나가봐요.”안다혜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부자연스럽게 말했다. 욕실이 원래도 비좁은데 두 사람이 함께 들어와 있으니 숨마저 가빠졌고 들숨과 날숨에 온통 그의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윤해준은 온몸이 흙먼지와 상처로 뒤덮인 안다혜를 보며 너무 마음이 아파 일단 한발 양보하기로 했다.“그래. 일단 씻어.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윤해준이 이렇게 말하며 몸을 돌렸다. 남자가 나가자 한시름 놓은 안다혜는 그제야 편안하게 온몸을 욕조에 담갔다. 오늘 겪은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 너무 피곤했다.안다혜는 지금 이 순간 그저 몸을 깨끗이 씻고 이런저런 잡생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윤해준이 간단하게 가운만 챙겨입은 채 물이 뚝뚝 떨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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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윤해준의 섬세한 보살핌을 받으며 조금도 설레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다만 안다혜는 그의 비망록과 첫사랑이 떠올라 자꾸만 슬퍼졌다. 그녀는 이런 감정이 어디서 자꾸만 솟구쳐 올라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예전에 했던 은밀한 사랑이 생각났고 마음속 깊이 묻은 채 종래로 입을 열지 않았다.윤해준은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린 채 앞에 앉은 여자의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며 보물이라도 대하듯 진지한 표정으로 빗겨줬다. 평소 수조 원이 넘나드는 계약서를 사인하던 손은 어느새 안다혜의 머리를 말려주고 있었다.오정우가 이 장면을 본다면 해가 서쪽에 뜬 게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 머리를 다 말리자 안다혜의 사색도 해결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윤해준은 지금 안다혜의 약혼 상대였다. 너무 과하게만 나오지 않으면 그녀는 그가 다른 사람과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을 셈이었다. 다만 그래도 기본적이 체면은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의아한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아참, 나는 어떻게 찾아낸 거예요?”손발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걸 보고 안다혜는 어쩌면 그 남자들에게... 하지만 위급한 순간 윤해준이 신처럼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윤해준이 잠깐 고민하더니 낮에 봤던 상황이 떠올라 이렇게 말했다.“회사 아래서 기다리고 있다가 데스크에 물어봤는데 진작 갔다고 하더라고.”여기까지 떠올린 윤해준이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납치에 가담한 사람은 그 누구도 봐줄 생각이 없었다.안다혜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랬구나.”그러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그 사람들은 어떻게 처리했어요?”윤해준이 안다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그녀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알아내려 했다. 그녀만 원한다면 모든 걸 대신 해줄 생각도 있었다.안다혜가 잠깐 고민하더니 결국엔 그저 흘려보내기로 했다.“이쯤 하면 됐어요. 이제 경찰에게 맡기고 절차대로 가자고요.”아무튼 상대가 성공하지 못했으니 나머지는 그저 순서대로 가고 싶었다. 그녀도 마냥 성모마리아는 아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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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이튿날.잠에서 깬 안다혜는 늘 그랬듯 윤해준이 준비한 아침을 먹었다. 그날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안다혜는 윤해준과 잘 지내며 더는 잡생각을 하지 않았다. 모두 숨기고 싶은 비밀과 물건이 있는데 더 캐물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다 성인인데 개인공간이 필요했다.“오늘 계란후라이 참 잘됐네요.”안다혜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칭찬하자 윤해준이 멈칫하더니 활짝 웃는 내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좋으면 다음에 똑같이 만들어줄게.”“그래요.”두 사람의 사이는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식사를 마친 안다혜는 차를 운전해 출근하러 향했다. 윤해준은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안다혜가 차키를 드는 걸 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해준은 안다혜가 새장에 갇힌 새가 아닌 자유가 필요한 개성 넘치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하여 윤해준도 더는 그런 그녀를 속박하기 싫어 마냥 옆에서 도와주기보다 직접 겪고 부딪치며 성장하게 했다.회사에 도착한 안다혜가 안으로 들어가며 데스크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데스크 직원은 회사로 나온 안다혜를 보고 가십의 혼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안다혜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데스크 직원들이 함성을 토해냈다.“안다혜 씨 미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 남자가 그때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 알 것 같아.”“두 사람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아. 얼굴과 아우라만 봐도 다 천생연분 같아.”“그만해. 보는 것만으로도 미치겠으니까.”안다혜는 뒤에서 데스크 직원들이 토론하는 걸 듣지 못한 채 바로 자리로 향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이지영이 다가오며 신비롭게 물었다.“다혜 씨,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요?”“무슨 일인데요?”컴퓨터를 켜는 동안 안다혜는 고개를 들고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이지영을 바라보며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 했다.“그 임유정 있잖아요.”이지영이 정의의 사도라도 된 듯이 말했다.“인과응보라는 말이 맞아요. 임유정이 한 짓은 누가 봐도 혀를 끌끌 찰 정도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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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안다혜가 앞에 놓인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머릿속으로 방안과 아이디어를 빠르게 검열했다. 그리고 안다혜가 선보인 방안과 임유정 사건은 그대로 안소현과 김미진의 귀에 들어갔다.한편, 안씨 가문.김미진은 요 며칠 회사로 나가지 않고 안소현과 집에 있었다. 허종혁과 있었던 일로 안소현이 집을 나간 뒤로 김미진과 단독으로 시간을 보낸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안소현은 관리가 잘된 김미진을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책만 내려다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 이에 안소현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저번 일은 허종혁이 이미 해명했고 그녀도 별다른 얘기가 없었지만 안소현은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안다혜가 녹음까지 들고 있어 해명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엄마, 내가 듣기로는 다혜가 임유정이라는 사람을 해고했다던데요?”이 말에 커피를 마시던 김미진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안소현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미진의 안경에 달려있던 체인도 좌우로 흔들렸다.“왜? 나도 그 소식은 들어서 알고 있어.”김미진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안소현을 바라봤다.“엄마가 알고 있다니 더 설명하지 않을게요.”안소현이 하려던 말을 삼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김미진이 흥미를 보였다.“괜찮아. 소현아, 무슨 일 있으면 그냥 얘기해.”김미진은 명실상부 커리어우먼이었고 이 바닥에 오랫동안 있으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왔기에 안소현이 무슨 꿍꿍이로 이러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라고 했다. 그러자 안소현이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나는 다혜의 일 처리가 너무 매정하다고 생각해요.”“그래도 안씨 가문 둘째 아가씨인데 너무 세게 나가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안씨 가문을 갑질한다고 나무랄 것 같아서요.”김미진은 이 말을 듣고도 바로 맞장구를 치지는 않았다. 안소현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고 있었지만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면 이 일이 안다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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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다만 안소현은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아 김미진은 안소현을 더 부드러울 수밖에 없었다.‘게다가 소현이는...’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김미진은 입술을 꼭 앙다문 채 안소현에게 이렇게 말했다.“기특한 것. 알았어. 다혜에게 잘 말해놓을게.”“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위신을 쌓으려면 절대 혼자 결정할 게 아니라 말단 사원들의 의견도 중요하지.”안소현이 활짝 웃었다.“엄마만 이해해 주면 돼요. 다 다혜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그래. 장하지.”김미진이 안소현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더니 화제를 그녀에게 돌렸다.“소현아, 나는 네가 좋은 아이라는 거 늘 알고 있단다.”“하지만 종혁이 일은 어떻게 할 셈이야?”이 일은 김미진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있었다. 두 딸이 한 남자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있다는 소문이라도 돌면 꼴이 우스워지기 마련이었다.안소현이 옷자락을 꼭 잡은 채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엄마, 이 일은 종혁 씨가 전에 해명하지 않았나요?”아니나 다를까 김미진은 아직도 이 일을 신경 쓰고 있었다.“술을 많이 마셔서 다혜를 나로 착각한 거예요.”김미진이 반박하려는데 안소현이 한발 빨랐다.“게다가 엄마, 이미 약혼도 했는데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안씨 가문의 체면이 중요하지.”김미진은 안소현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씨 가문의 체면이 중요하다는 말에 동의하는 것도 있었다. 태안 그룹을 지금까지 이끌어오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 스캔들이라도 터지는 날에는 주식에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다.“그래. 알았어. 네가 수고가 많다.”김미진이 위로했다.“수고는 무슨. 엄마, 나도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데 몸이 변변치 않아서 늘 미안했어요.”“그리고 종혁 씨는 내가 선택한 남자인데 억울할 게 뭐가 있겠어요.”시종일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니 얌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김미진은 안소현의 병약한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괜찮아. 네가 몸조리 잘해서 건강한 게 내게는 제일 큰 효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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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김미진은 안다혜에게 늘 엄격하기만 했지만 안소현은 아픈 손가락이라 더 보살필 수밖에 없었다. 안소현은 어릴 적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데 얌전한 데다 무슨 결정을 할 때면 늘 김미진이 우선이었기에 안다혜와 안소현 중에 안소현을 조금 더 편애했지만 표현이 서투른 게 문제였다.평소에는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바빠 다른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두 아이의 관계를 별로 신경 쓰지 못했다.“소현아. 언제가 됐든 억울한 거 있으면 엄마한테 얘기해. 엄마는 영원히 네 편이야.”안소현이 알았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고마워요.”“그래. 이제 가봐.”안소현은 그제야 김미진의 품에서 나왔다. 인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테이블에 올려둔 컵을 바닥으로 쓸어버렸다. 뒤처리하고 나서도 안소현은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거렸다. 이 방은 방음이 좋아 아래층에 있는 김미진이 혹시나 듣지는 않을까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안소현은 김미진이 그녀를 태안 그룹으로 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었다. 안다혜가 회사에서 실적을 올리며 칭찬을 받을 때마다 안소현은 속이 뒤틀렸다.“안다혜, 아직 우쭐거리긴 이르지.”안소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어디론가 문자를 보냈다. 상대의 답장을 받고 나서야 어둡던 안색이 그나마 나아진 것 같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유리 조각을 본 순간 다시 불만이 솟구쳐 올라온 안소현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도우미를 불러 청소하게 했다. 도우미는 안소현이 한쪽에 서서 지켜보자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바닥을 정리했다.김미진은 몰라도 도우미는 잘 알았다. 여기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여름 날씨처럼 자주 변하는 안소현의 성격을 익히 알았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물건을 때려 부수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라 잘 알았다. 전에 일하던 젊은 도우미들은 그 성격을 견디지 못해 자주 울었고 안소현은 그 뒤로 나이가 많은 도우미만 찾았다. 젊은이들은 오랜 경력을 갖고 있는 도우미에 비해 스트레스를 견디는 능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안다혜는 도우미가 유리 조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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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저번에 만나고 다시는 마주친 적이 없어 서진우는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 알아보라고 보낸 사람들도 안씨 가문 둘째 아가씨의 소식을 알아 오지는 못했다.“쓸모없는 것들.”서진우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방안을 돌아다니며 요즘 일어난 일들을 떠올리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안다혜가 수상했다. 사귀었을 때만 해도 얌전한 척은 다 하더니 헤어지자마자 꼬리를 드러냈으니 말이다.“안다혜 이 빌어먹을 년.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 나라고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줄 알아? 누가 마지막까지 웃는지 한번 지켜보자고.”서진우가 핸드폰을 꽉 움켜쥐자 금세 핏줄이 튀어나왔다. 그러다 문득 풍산 그룹에 지인이 있던 게 떠올랐다. 낮은 신분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떻게든 그 지인에게 안다혜를 손봐주라고 할 생각이었다.‘이 프로젝트 절대 안다혜 손에 들어가게 해서는 안돼.’서진우는 바로 풍산 그룹에서 관리자로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프로젝트를 확정할 때 안다혜가 건넨 서류를 백지로 프린트해달라고 하자 지인이 망설이기 시작했다.온천 프로젝트는 윗분들도 매우 중시하는 프로젝트인데 단지를 걸었다가 발각되면 목이 잘려 나가는 건 한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인의 걱정을 읽어낸 서진우가 걱정할 거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안다혜 시골에서 올라온 대학생인데 태안 그룹에서 인턴으로 일할 뿐이에요. 뒷배 같은 거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그제야 지인이 한시름 놓았다. 지인을 달래고 전화를 끊은 서진우는 그제야 음침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한편, 태안 그룹.안다혜는 풍산 그룹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 데이터를 연구하며 그들이 원하는 스타일이 도대체 뭔지 깊이 파고들었고 비교를 통해 유의미한 성과를 얻었다.이지영은 안다혜가 자리에 앉아 열심히 자료를 검토하는 걸 보고 감히 건드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안다혜가 기지개를 쭉 키는데 지그시 감은 눈과 작고 갸름한 얼굴이 어딘가 나른해 보였다.그때 프로젝트팀장이 안다혜 앞에 나타나 가볍게 기침하더니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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