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421 - Chapter 430

623 Chapters

제421화

허종혁의 어머니는 못마땅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 게 오히려 다행일지 모른다.안소현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만약 시집을 오게 되면 무슨 사고를 얼마나 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그런 일까지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허종혁의 아버지는 아내의 말을 듣자마자 속에서 분노가 확 치밀어 올랐다.“당신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야? 당신은 쟤 엄마 아니야?”허종혁의 어머니는 눈을 부릅뜨며 받아쳤다.“저는 그런 말 한 적 없어요. 결혼을 서두르려는 말은 전부 당신 입에서 나온 거잖아요.”허종혁의 아버지는 화가 더 치밀어 방 안을 왔다 갔다 했다.“내가 이러는 게, 내가 서둘러 결혼을 밀어붙이는 게, 결국은 이 가문을 위해서 아니야? 우리 회사 사정을 당신이 몰라? 회사가 정말 망하기라도 하면 당신은 대체 무슨 낯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고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겠어? 진짜 배부른 줄도 모르고 있어.”허종혁의 아버지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집 밖으로 나가 버렸다.이런 속 좁은 여자랑은 대화가 길어질수록 답도 안 나오고 제대로 된 대화도 되지 않았다.그리고 그는 분명히 깨달았다. 안소현은 지금 결혼을 서두르고 싶지 않은 것이다.‘지금 다른 사람이랑 저울질하는 건가?’자기 아들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저 여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허씨 가문에서는 절대로 그런 변덕스러운 여자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만약 안소현이 나중에 정말로 집안에 들어오게 된다면 반드시 가르침을 단단히 받아야 할 것이다.아니면 하늘 높은 줄을 모르는 사람처럼 함부로 행동할 것이다.그 모든 속내를 이미 자리를 박차고 나온 안소현은 조금도 알지 못했다.그녀는 아직 허씨 가문에 들어가기도 전인데 이 가문의 사람들은 벌써 그녀를 길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이런 사실은 어디에 내놓더라도 충격적인 일이었다.허종혁이 급히 뒤따라 나갔을 때 안소현은 이미 차에 올라 시동을 걸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그는 황급히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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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당연히 진심이지!”허종혁은 손가락을 내밀어 맹세했다.“정말이야, 소현아. 오늘 일이 있고 나서 너를 더 좋아하게 됐고 너 없이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 나는 너와 함께하고 싶어. 장난이 아니라 진심이야.”차 안에 앉아 있던 안소현은 허종혁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결국 마음이 움직였다.“알겠어요. 당신 마음은 알겠어요. 집에 돌아가면 엄마와 잘 얘기해볼게요.”이 말은 진심이었다.비록 안다혜와는 말다툼했고 김미진이 편애하는 태도에도 불만이 있었지만 결혼 문제만큼은 꼭 김미진의 인정과 축복을 받고 싶었다.그건 자기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두 가문이 함께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이런 문제에 있어서만큼 안소현은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했다.허종혁은 당장 답을 얻지 못해 못내 아쉬웠지만 그래도 안소현이 마음을 풀고 자신을 받아들인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 여겼다.그래서 다시금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고마워, 소현아. 그럼 장모님 앞에서 좋은 말 좀 많이 해줘.”허종혁은 차창 너머로 안소현의 손을 잡고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나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둘의 미래를 위해서라고 생각해 줘. 응?”“알겠어요.”안소현은 마음이 움직인 듯 표정이 누그러졌다.“걱정 마요. 내가 알아서 할게요.”허종혁은 아쉬움 가득한 눈길로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내가 집까지 데려다줄까?”“됐어요. 아까 아버님 어머님하고도 불편하게 만든 게 있으니, 대신 잘 말씀드려줘요.”앞으로 함께할 사이라면 이미지 관리가 중요했다. 안소현은 눈치 싸움과 암투 속에서 살고 싶지는 않았다.허종혁은 그녀의 진심 어린 태도를 알아차리고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부모님 잘 말씀드릴게. 운전 조심해.”안소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선글라스를 쓴 뒤, 차를 몰고 떠났다.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허종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표정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싸늘했다.집으로 돌아오자마자 허종혁의 어머니가 다가왔다.“어떻게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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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허종혁은 얼굴에 음습한 웃음을 띠고 한 걸음씩 지하실로 향했다.지하실 안에 있던 여자는 멍한 표정이더니 허종혁이 들어서자 바로 눈빛이 또렷해졌다.온몸에 묶인 쇠사슬이 덜그럭덜그럭 소리를 냈다.입에는 천이 틀어막혀 있어 한마디도 할 수 없는 상태였고 겨우 눈동자만 굴릴 수 있었다.몸에는 고작 몇 조각의 헝겊만 걸쳐져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였다.그 광경을 본 허종혁의 눈빛 속에서는 욕망이 터져 나올 듯 일렁였다.특히 옷을 걸치지 못한 채,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 그의 숨을 거칠게 만들었다.여자의 몸 여기저기에는 선명한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여자의 눈빛은 원래 무덤덤했으나 허종혁을 보자 그 속에 숨어있던 증오가 넘쳐흘렀다.허종혁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와 그녀의 턱을 움켜쥐고 악의적으로 말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 그 표정은 또 뭐야?”여자의 얼굴은 눈에 띄게 예뻤다. 자세히 보면 안다혜와 닮은 구석이 있었고 그 오만한 기운조차 안다혜와 비슷했다.바로 그 점 때문에 허종혁은 더욱 그녀에게 집착하며 아꼈다.그녀의 이름은 이연서였고 허종혁이 밖에서 주워 온 여자였다.처음 만났을 때 그녀의 온몸은 상처투성이였고 깨어난 뒤에는 모든 기억을 잃은 상태였다.허종혁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어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우연이라면 우연이었다. 애초에 안다혜를 닮았다는 이유로 동정심을 발휘해 데려온 것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허종혁은 그녀와 안다혜가 겹쳐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둘 사이는 그렇게 이어졌다.처음엔 이연서도 그와 잘 지내볼 생각이 있었다. 외모도 준수하고 가문도 괜찮으니 충분히 고려할 만한 상대라고 여겼다.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기억의 조각들이 조금씩 돌아오자 허종혁은 불안에 휩싸였고 결국 지금과 같은 극단적인 수단을 쓰게 된 것이다.허종혁은 눈앞의 고고하고 싸늘한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과 증오가 뒤섞인 감정을 느꼈다.그는 그녀의 입을 막고 있던 천을 거칠게 잡아당기며 불만스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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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짐승 같은 놈, 있으면 날 차라리 죽여...”이연서는 이런 고통 속에서 더는 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영화 속에서처럼 혀를 깨물어 죽는 건 다 거짓말이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시도했는데 아무런 소용도 없었고 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그런 생각이 들자 이연서는 크게 좌절했다.이미 이렇게 오래 당해온 만큼 고통에도 익숙해져 버렸다.어쩌면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조차 사라져 인생이 정말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당하느니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허종혁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우리 연서, 넌 내 보물이야. 내가 널 죽게 둘 리가 있겠어?”그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달라붙었다.이연서는 반항밖에 모르는 아이처럼 어떤 선택이든 일부러 더 힘든 쪽을 택했다.비록 허종혁의 행동에는 강압이 섞여 있었지만, 시간이 결국 증명해줄 것이다.허종혁에게 이연서는 그저 장난 같은 존재인 게 컸지만, 진심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 허종혁 자신뿐일 것이다.두 사람이 이렇게까지 된 건 허종혁조차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이연서 역시 더는 좋게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지금의 그녀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그녀는 허종혁의 강압적인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거부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었다.결국 어쩔 수 없이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허종혁은 이연서를 자기 별장으로 데려갔다.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장소였고 부모님조차 알지 못했다.그는 이연서를 주 침실로 데려가 씻고 오라 지시했다.“여기서 밥이나 먹어.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네 행동 하나하나 전부 내가 보고 있어. 널 풀어줄 일은 없다는 거 기억해.”그 말을 듣자 이연서는 완벽하게 체념했다.허종혁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연약한 얼굴을 쓰다듬었다.“자, 깨끗이 씻고 푹 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이연서는 눈빛에 생기가 전혀 없는 채로 욕실로 향했다. 아직 옷은 걸치지도 못한 상태였다.허종혁의 눈빛은 점점 어두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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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심서아는 이렇게 지내는 건 안 되겠다 싶었다. 너무 무기력하고 의미 없게 흘러가기만 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녀는 곧장 무용과 금융 학원에 등록해 매일 충실하게 채우며 지내기 시작했다.한편 서진우는 심서아를 찾아가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정말로 시간이 나지 않았다.서동욱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맞춰 그를 붙들고 마치 죄수를 감시하듯 눈을 떼지 않았기 때문이다.자유라고는 조금도 허락되지 않는 나날 속에서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다.그곳은 온통 음모와 계산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서동욱에게는 아들의 행복 따위 한 푼의 가치도, 이용할 만한 구석도 없었다.그 사실을 깨달은 이후, 서진우는 오히려 심서아와 함께하려는 마음을 더욱 굳혔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의 돈만 노렸지만, 심서아는 달랐다.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곁을 지키며 욕심 한 번 내지 않았다.하지만 태생이 문제였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은 심서아를 인정하지 않았다.그런데도 두 사람은 이미 서로의 마음을 약속했고 평생을 함께하자 다짐한 사이였다.서진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직접 서동욱을 찾아가기로 했다.서동욱은 서재에서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아들이 불쑥 들어오자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었다.“갑자기 웬일이야?”금테 안경 너머로 보이는 얼굴은 여전히 엄격하고 위압적이었다.한 번 스치듯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서진우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세월이 흘러도 아버지의 기세는 변함없었고 표정조차 달라진 것이 없었다.서진우는 주먹을 움켜쥐었다.“아버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할 말 있으면 해.”서동욱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떨어져 지내는 동안, 서진우는 심서아에게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결국 걸지 못했다.심서아는 이미 그의 번호를 차단한 상태였다.서진우가 쓴 갖가지 꼼수들이 다 어디서 배운 것인지, 서동욱은 고개를 저었다.아들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중얼거렸다.“이제 나는 나이가 들었어. 세상은 너희 젊은 사람들의 것이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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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서동욱은 코웃음을 치더니 장난스럽게 아들을 툭 걷어찼다.“뭔 소리야, 나는 불법적인 일은 안 해.”서진우가 헛웃음을 흘렸다.“아버지, 그냥 분위기 좀 풀려고 한 말이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불법적인 짓은 안 합니다. 전 모범 청년이니까요.”서동욱이 웃으며 말했다.“이놈이 괜히 입만 살았어. 내가 원하는 건 단순해. 회사에 네 자리를 하나 만들어 줄 테니, 바로 들어가서 밑바닥부터 배워. 한 걸음씩 차근차근 절대 게으름 피우지 말고.”그 말을 들은 서진우는 얼떨떨했다. 이렇게 쉽게 아버지와 합의가 된다니 믿기지 않았다.‘지금껏 왜 그렇게 사이가 틀어졌던 걸까?’그 생각에 괜히 마음이 조금 불편해졌다.그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 아버지 뜻 잘 압니다. 정말 열심히 배우겠습니다.”“그럼 됐어.”서진우가 조심스레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서동욱이 먼저 손을 내저었다.“가서 그 여자를 만나봐. 하지만 알아둬. 그 여자는 네게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야. 결국 네가 결혼해야 할 사람은 따로 있어.”서진우의 눈빛에 슬픔이 서렸다.그러나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서동욱은 이미 서재를 나서고 있었다.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건지, 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막으려고 하는 건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윤해준과 이모건은 음식을 산 뒤, 서로 말을 섞지도 않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해준 씨, 근데 이 족발은 좀 과한 거 아닌가요?”“그래요? 그럼 당신이 산 어묵탕은 괜찮습니까?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겁니까?”윤해준은 독설을 내뱉고 나서야 이 사람은 왜 아직도 안 가고 따라다니는 건지 문득 깨달았다.“이봐요, 왜 아직도 안 돌아가고 저랑 같이 오는 겁니까? 대체 뭐 하자는 거예요?”윤해준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졌다.이모건의 뻔뻔스러움은 도를 넘었다. 어디서든 나타나니, 이제는 질릴 지경이었다.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윤해준은 걸음을 멈추고 이모건을 똑바로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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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결국 그는 어떤 명분도, 이유도 없었다.그 사실을 깨닫자 이모건의 눈빛에 잠시 쓸쓸함이 비쳤다. 그는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알겠습니다.”그가 시선을 떨군 모습은 예전에 자유분방하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이제서야 그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걸 완벽하게 깨달았다.명분뿐만 아니라 입장도 달랐다.정말로 김미진을 찾아뵙고 싶다면 직원들이 시간을 낼 수 있을 때 함께 오는 수밖에 없었다.그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이모건은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으며 윤해준에게 대신 가져가 달라는 뜻을 전했다.“해준 씨 말이 맞습니다. 저는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윤해준은 대답하지 않았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그 의미는 충분히 전해졌다.음식을 전해줄 것이고 마음도 함께 전하겠다는 뜻이었다.결국 이모건은 그대로 몸을 돌려 떠났다.언젠가 다시 기회가 올 거라 믿었고 제발 그 기회가 오기를 바랐다.햇살 아래 그의 뒷모습은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하지만 윤해준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이모건이 안다혜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눈에는 분명한 위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같은 남자이기에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렇기에 더더욱 곁에 두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자신이 늘 안다혜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라도 방심하면 이모건이 그 틈을 파고들려 하는 건 뻔한 일이었다.그걸 어떻게 용납할 수 있겠는가.윤해준은 떠나는 이모건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고 곧장 발걸음을 옮겨 병실 쪽으로 향했다.반면, 병원을 떠나는 이모건의 뒷모습은 한없이 외로워 보였다.석양이 지는 길 위에서 그의 그림자는 더욱 쓸쓸해 보였다.집에 돌아왔을 때, 소파 위에 앉아 있는 동생이 눈에 들어왔다.텔레비전에서는 여전히 만화가 나오고 있었지만, 동생은 그저 인형을 안고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아린아, 오빠 왔어.”목소리에 지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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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딸과 아들, 두 아이가 그저 건강하기만을 바라는 게 엄마의 마음이었다.하지만 수많은 일을 겪고 나니 이모건의 어머니는 점점 더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하늘은 두 아이를 조금도 보살펴주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이런 고단한 삶을 견뎌내라고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자신은 이제 나이를 먹었으니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해도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렸다.특히 딸아이는 왜 이렇게 어린 나이에 이런 아픔을 감당해야 하는 건지,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졌다.딸아이의 상황은 평생 마음의 응어리로 남을 것이다.아들의 얼굴을 보니 분명 밖에서 무슨 큰 좌절을 겪고 온 게 분명했다.어머니는 이모건 옆에 조용히 앉아 나지막이 말했다.“모건아, 세상에 지나가지 않는 일은 없어. 무슨 일이든 조금만 단순하게 생각해 봐. 다 지나가기 마련이란다.”그녀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묻지 않았다. 아들은 언제나 사리분별을 잘하는 아이였고, 무엇을 하던 자기 주관이 뚜렷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래서 어머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아들을 다독이며 스스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이었다.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괜히 더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을까.이모건은 눈가가 붉게 물들었고 코끝이 시큰해져서는 낮게 물었다.“엄마, 제가... 드물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한 발짝 늦었더라고요. 그럼 앞으로도 계속 한 걸음씩 뒤처지게 되는 건가요...”그 말에 어머니는 단번에 아들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그녀는 아들을 꼭 끌어안으며 위로했다.“알아. 엄마는 네 말 무슨 뜻인지 알아. 사랑이란 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야. 말 몇 마디로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야... 그냥 순간적인 일이기도 하지. 사랑에 빠지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거야. 옳고 그름도 없어. 그 누구도 사랑에 빠지는 자신의 마음을 제어할 수는 없으니까.”이모건은 말없이 어머니 어깨에 기대앉아 품 안에 있는 이아린을 더 꼭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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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어머니의 말이 맞았다.만약 계속 억지로 마음을 억누른다면 그건 자신을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시간만 허비할 뿐이지, 아무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그 사실을 깨달은 이모건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엄마, 알겠어요. 잘 생각해 볼게요. 더는 이 상태로 무기력하게 있을 수는 없어요.”어머니는 아들의 웃음을 바라보면서 그게 과연 얼마나 진심일지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게 진심이라고 믿고 싶었다.아들도 이제 다 컸으니 자기 생각이 있는 게 당연했다.만약 스스로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결국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하나의 방법일 터였다.“그래.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엄마와 아빠도 늘 네 편이야. 언제나 뒤에서 지켜줄 거야.”“고마워요, 엄마.”이모건은 감동이 밀려와 어머니를 꼭 껴안았다.이아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둘을 바라보다가 곧 다시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비교해 보니 텔레비전 속 애니메이션이 훨씬 더 흥미로워 보였다.한쪽은 이렇게 화목한 분위기였지만 다른 한쪽은 윤해준이 병실에 들어서자 안다혜와 김미진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전에 비해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솔직히 말해 오히려 자신이 떠나기 전보다 덜 편안해 보였다.윤해준은 이상하다 싶으면서도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괜히 물었다가 정작 아무 일도 없었는데 자신이 괜한 얘기를 하는 꼴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안다혜는 윤해준이 들어오자 무심하게 뒤를 한번 훑어봤다.“왜 혼자예요? 이모건 씨는요?”윤해준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태연하게 대답했다.“일이 있다고 먼저 갔어.”그러고는 들고 온 음식을 내밀며 덧붙였다.“다혜야, 이건 내가 장모님한테 드리려고 산 족발이랑 갈비탕이고 이건 이모건 씨가 산 어묵탕이야. 같이 못 와서 아쉬워하더라고.”김미진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일이 있으면 가야지. 나도 이제 깨어났잖아.”윤해준은 웃으며 음식을 하나하나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장모님, 너무 사양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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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고개를 숙여 보니 윤해준은 안다혜를 위해 음식을 이것저것 조금씩 덜어주었고 그녀가 싫어하는 파까지 꼼꼼히 골라내 주었다.그 모습을 보자 안다혜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녀는 그릇을 두 손으로 들고 윤해준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윤해준은 괜히 어색해져서 말했다.“밥 먹어야지, 왜 나를 보고 있어?”“잘생겨서 보고 있죠.”무심코 튀어나온 안다혜의 대답에 김미진이 웃음을 터뜨렸다.김미진의 웃음소리에 두 사람의 귓불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김미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아이고, 결혼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신혼부부처럼 그렇게 부끄러워해?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는데도 여전히 귀까지 빨개지다니.”김미진의 농담에 안다혜와 윤해준도 자신들이 민망해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말 그대로였다. 둘이 함께한 시간이 이렇게 긴데 아직도 사소한 말에 쉽게 얼굴이 붉어지는 게 사실 이상했다.안다혜는 밥을 먹으면서 옆에 앉은 윤해준을 흘겨보았다. 그러자 윤해준은 금세 얌전해져서 아무 장난도 치지 못했다.바로 그 점 때문에 김미진은 두 사람이 너무 쉽게 부끄러워한다고 느낀 것이었다.곰곰이 생각하니 혹시 자신이 같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자신이 이 자리에 있어서 두 사람이 평소처럼 편하게 행동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랐다.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김미진은 곧 답을 알 것 같았다.그래서 서둘러 밥을 몇 숟가락 먹은 뒤, 두 사람을 내보내려 했다.“됐어, 나 다 먹었어. 너희는 볼일 있으면 보러 가. 굳이 나 챙긴다고 여기 있을 필요 없어.”하지만 안다혜는 고개를 저었다.“엄마, 어떻게 그래요. 엄마가 아직 병상에 누워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다른 일을 보러 간다는 거예요. 제가 엄마한테서 눈을 뗄 수 있겠어요?”안다혜는 정말로 김미진이 걱정돼서 그렇게 말했다. 안다혜가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으므로 오히려 김미진은 자신이 괜히 딸에게 방해가 되는 게 아닌지 염려가 되었다.“괜찮다니까.”김미진은 계속 재촉했다.“회사에는 너랑 내가 같이 있어서 문제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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