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501 - Chapter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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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1화

그러면 윤해준이 안다혜의 전화를 놓칠 일도 없었을 것이다.‘미친 것들.’눈을 질끈 감은 한유라는 어쩔 수 없이 짐을 정리하러 갔다. 윤해준이 이 정도로 명확하게 말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정말 재미없어질 것이다.다시 병실로 돌아온 윤해준은 이모건이 슬픈 표정으로 침대맡에 서 있는 걸 보았다. 이모건이 손을 내밀어 안다혜의 얼굴을 쓰다듬으려는데 윤해준이 한발 빨리 그 손을 쳐내더니 주먹을 날렸다.“뭐 하는 거예요?”이모건이 콧방귀를 뀌었다.“왜요? 윤해준 씨가 못 지킨 사람 내가 챙기려는데 그것도 안 돼요?”“당장 나가요.”윤해준이 살기를 뿜어내며 말했다.“두 사람은 그저 일로 엮인 관계라는 거 잊지 마요. 다혜 남편은 나고, 우리야말로 법이 인정한 사이에요.”“그쪽은...”윤해준이 하찮다는 표정으로 이모건을 아래위로 훑어봤다.“끽해야 빛을 보지 못하는 세컨드일 뿐이에요.”세컨드라는 말이 이모건의 마음을 심하게 후벼팠다. 이모건은 미련 가득한 표정으로 안다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어쩔 수 없이 몸을 돌렸다.윤해준의 말이 맞았다. 이모건의 신분으로 여기 있는 건 피차 민망해지는 일이었다.“다혜 잘 챙겨요. 말하면 말한 대로 남자답게 약속을 지켜요.”윤해준이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에요. 다시는 다혜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잘 지켜줄 거예요.”“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윤해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는 이모건에게 하는 말이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경고였다.‘이런 일은 한 번으로도 족하지.’윤해준은 앞으로 안다혜에게서 한 발짝도 떨어지지 않고 지킬 생각이었다.이모건은 마지막으로 안다혜를 눈에 담고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포기한 듯 이렇게 말했다.“약속 지키길 바랄게요.”그러더니 몸을 돌려 병실에서 나갔다.이모건이 떠나고 나서야 구석에 숨어있던 유이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와. 심장이 툭 튀어나오는 줄 알았네.’두 사람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정말 극명한 차이를 이루었다.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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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2화

“다혜야. 아니, 다정아. 내가 미안해...”윤해준이 안다혜의 손을 잡고 이마에 올렸다. 그러자 눈가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안다혜의 손바닥에 툭 떨어졌다. 아쉽게도 안다혜는 지금 약에 취해 의식이 없이 잠에 빠진 상태였다.두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서로에게 의지한 채 지금만 생각하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서로에게 집중했다.유이현이 돌아왔을 때 윤해준은 안다혜의 손을 잡고 쉬고 있었다.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한 것도 있고 안다혜를 찾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윤해준은 안다혜의 침대맡에 기대 잠깐의 평온함을 만끽하려 했다.안으로 들어가려던 유이현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다시 물러갔다.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둘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데 방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유이현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렸다.윤해준은 안다혜 옆이라 그런지 푹 잘 수 있었다. 어제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편안하게 눈을 붙인 적은 없었다....허종혁의 품에서 깨어난 안소현은 고개를 들어 허종혁을 힐끔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지금 몇 시예요?”“왜 그래?”허종혁이 안소현의 몸에서 손을 떼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소현아, 무슨 일인데 이렇게 서둘러.”“나올 때 엄마한테 종혁 씨 찾으러 온다고 하고 나왔어요. 지금 다혜가 쓰러져 있는데 소식 받았는지 모르겠네요.”안소현이 이렇게 말하며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이 말에 따라서 잠이 깬 허종혁이 이렇게 말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 나도 병원 문제 해결해야지.”병원이라는 말에 안소현이 동작을 멈추자 입다가 만 옷이 반쯤 몸에 걸쳐 있었다. 순간 몸을 돌린 안소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허종혁을 바라보며 얼굴을 어루만졌다.“종혁 씨, 이 일은 한번 시작하면 물러설 곳이 없어요. 결정했으면 그냥 밀고 나가는 거예요.”“내 계획은 종혁 씨 빼고 아무에게도 알린 적이 없어요. 비밀 잘 지키면서 일 처리해요.”안소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다 우리 미래를 위해서 그러는 거예요. 알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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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3화

허종혁은 그런 안소현이 너무 사랑스러워 꼭 끌어안으며 서로의 체온을 공유했다. 안소현도 처음에는 웃다가 이내 정색했다.“됐어요. 이렇게 계속 안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다고. 우린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어요.”이제 안소현은 체념한 상태였다. 허종혁은 다른 건 다 좋은데 머리가 좋지 않았다. 무슨 일을 시작하면 머릿속에 온통 그 일밖에 없어 정작 중요한 일에 쏟을 정력이 없었다. 그리고 허종혁에게는 잠자리를 가지는 게 다른 일보다 더 중요했다.이렇게 생각한 안소현은 짜증이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허종혁이 난감한 표정으로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알겠어. 나는 네가 너무 좋으니까 놓아주기 싫었던 거지.”“다른 사람이었으면 절대 이러지 않았을 거야.”안소현은 허종혁의 말에 금세 기분이 풀렸지만 해야 할 일을 잊어먹지는 않았다.“입에 침이나 바르고 말해요. 병원이 급하니까 잊지 말고 꼭 처리해요.”안소현이 다시 옷을 입기 시작했다. 허종혁은 침대에 느긋하게 누워있다가 안소현이 옷을 다 입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입었다. 사실 허종혁은 아직도 안소현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생각했다. 안다혜가 이미 쓰러진 이상 기생오라비 같은 윤해준만 남았는데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이렇게 신경을 곤두세우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허종혁의 생각을 들은 안소현은 오히려 고민에 빠졌다.“종혁 씨가 기생오라비라고 부르는 사람 아무래도 아우라가 남다른 것 같지 않아요?”안소현은 이 느낌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이라면 안소현도 이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윤해준의 행동이 너무 특별해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허종혁은 안소현이 걱정하는 걸 보고도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다.“됐어. 소현아. 허구한 날 뭔 걱정이 그렇게 많아.”허종혁이 안소현을 보채기 시작했다.“사서 걱정하지 마. 그냥 아무 일도 아닌데 요새 잘 쉬지 못해서 예민해진 걸 수도 있어.”이 말에 안소현도 일단 의심을 내려놓았다.“그래요. 종혁 씨 말이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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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4화

하지만 김미진은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안다혜 혼자 밖에서 돌아다녀도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작 며칠 만에 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김미진은 안다혜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안소현의 웃는 얼굴을 보고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안소현은 김미진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보자 마음이 불안했다.‘왜 이렇게 뚫어져라 보시지? 설마 눈치챈 건가?’‘그럴 리가. 비밀리에 진행해서 아는 사람이 없을 텐데. 내가 말하지 않은 이상은 알아낼 방법이 없지.’이렇게 생각한 안소현은 대담해져 이렇게 물었다.“엄마, 나 들어왔어요. 왜 계속 거실에 앉아계시는 거예요?”“무슨 생각 하시길래 내가 말해도 대꾸조차 안 해주세요?”김미진은 그제야 반응하고 이렇게 말했다.“아니야. 회사 일 생각하고 있었어.”김미진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안소현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치 아까 넋을 잃은 사람이 자기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이 집사도 그런 김미진을 걱정했다. 안다혜가 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지금 혼수상태로 병원에 누워있다고 하니 이 집사도 큰 충격에 잠겼다.다만 김미진은 잠깐 넋을 잃었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집사는 김미진이 무슨 이유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지만 그래도 안다혜를 관심해 주길 바랐다. 오랫동안 이 집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이 집사는 이미 안다혜를 친손주처럼 생각했지만 그래도 하인인 건 변함이 없었기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개 집사인 그가 말해봤자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안소현은 상태가 별로인 김미진을 보며 눈빛이 살짝 변했다. 이미 모든 걸 알아챘으면서 알리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여 안소현은 어쩔 수 없이 김미진을 타이르며 화제를 안다혜로 유도했다.“엄마, 무슨 걱정 있어요?”안소현이 웃으며 말했다.“회사에는 다혜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다혜가 책임지고 회사 잘 운영할 거예요.”“다혜가 어떻게 협업을 따냈는지 봐서 알잖아요. 그런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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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5화

안소현이 웃으며 말했다.“그래. 너 착한 거 나도 안다.”안소현이 김미진을 꼭 안아주더니 위층으로 올라갔다. 이 집사는 안소현의 그림자가 2층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사모님, 왜 큰 아가씨께 작은 아가씨가 혼수상태라는 걸 비밀로 하신 건가요?”김미진은 이 집사 앞에서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집사님은 몰라요. 아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김미진도 곤란한 상황이었다.“게다가 소현이가 안다고 해서 도움이 될까요?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다혜가 혼수상태에 빠진 이유를 알아내는 거예요.”이 집사도 김미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안소현이 안다고 해도 도움이 되기보다는 걱정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많아지는 쪽이라 크게 소용은 없었다.“네. 사모님. 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불러주세요.”김미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중심 병원으로 가서 다혜 정밀검사 좀 하게 해주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빨리 알아내야죠.”“네. 지금 바로 조치하겠습니다.”이 집사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병원으로 출발했다.김미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앉아 손에 땀을 쥐었다.‘내가 너무 큰 부담을 준 건가?’안다혜는 속을 썩인 적이 거의 없는 아이였다. 아마 요새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 일을 처리하느라 무리한 것 같았다.‘그래도 고작 20대인데.’이렇게 생각한 김미진은 마음이 착잡해져 주먹을 불끈 쥐었다.‘내가 그동안 너무 다그쳤나? 앞으로는 아무래도 숨 쉴 구멍을 좀 줘야겠어.’김미진은 안다혜가 깨어나면 회사에 묶어두지 않고 자유시간을 줄 생각이었다. 정작 본인은 한평생을 회사에 바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지만 아이들만큼은 자기가 원하는 생활을 살게 하고 싶었다.황당했던 배우자와 결혼 생활만 생각하면 김미진은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그 남자만 아니었다면 김미진이 평생 회사에 묶여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슬픈 건 김미진이 회사를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도 그 남자는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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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6화

‘근데 왜 나는 엄마가 안다혜를 더 좋아하는 거 같지?’안소현은 착각인지 몰라도 가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는 허종혁에게 빨리 다음 단계로 들어가라고 알리려 했다. 이 집사는 고지식한 사람이라 두 눈으로 상황을 확인하지 않으면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이렇게 생각한 안소현은 허종혁에게 문자를 보냈다.[빨리 움직여요. 엄마가 알아버렸어요. 병원을 옮기는 날에는 손대기가 어려워져요.]문자를 확인한 허종혁이 재빨리 옷을 챙겨입었다. 이 집사가 도착하기 전에 얼른 병원에 도착해 의사들과 짜고 안다혜가 병원을 옮기는 걸 막아야 했다.그렇게 전속력으로 달린 허종혁은 끝내 이 집사가 도착하기 전에 병원으로 들어갔다. 허종혁이 병원 로비로 들어가는데 간발의 차이로 이 집사도 안으로 들어갔다.이 집사를 알아본 허종혁은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성큼성큼 외과 교수 사무실로 향했다. 안다혜가 어느 병실에 있는지 알고 있는 허종혁은 행동이 빨랐지만 이 집사는 달랐다. 안으로 들어갔지만 여기가 병원이라는 정보밖에 없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덕분에 허종혁은 한발 먼저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사는 안으로 들어온 허종혁을 보며 깜짝 놀랐다. 오너가의 도련님이라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도련님, 도련님이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허종혁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이따 안다혜의 가족이 오면 안다혜의 상황을 곧이곧대로 알려주세요.”“그리고 큰 문제가 없는데 깨어나지 못한 건 그동안 너무 피곤해서 그럴 뿐 다른 문제는 없다고, 절대 병원을 옮기지 말라고 하세요.”“왜요?”교수는 허종혁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곧이곧대로 말하라는 건 원래도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의사란 모름지기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늘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온 말은 다 듣긴 했어도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너무 힘들어서 그렇다니?’‘내 기억이 맞다면 이 환자 위장염이었던 것 같은데?’‘어제저녁에 왔는데 아직도 깨어나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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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7화

의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렇다고 오너 일가를 거스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사람들에 비하면 의사는 개미와도 같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눌러 죽일 수 있었다.“그래요. 알겠습니다. 일을 맡겨주셔서 감사합니다.”허종혁이 부탁한 사람은 손건후가 아닌 황규석이었고 손건후가 바로 황규석 밑에서 일했다. 오랫동안 피타는 노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고 잘리는 건 더더욱 싫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천직인 황규석은 환자들이 완치 후 짓는 웃음이 너무 좋았다. 이런 순수한 열정이 있어 황규석은 이 일을 더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든 허산 그룹 도련님에게 잘 보여야만 한다. 가끔 이들은 일반 서민은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뤄주기 때문이다.황규석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번 일만 끝내면 다른 일은 안 해도 되는 거죠?”허종혁은 두려움에 찬 황규석의 표정을 보고 큰 만족감을 느꼈다.‘그렇지. 서민들은 나를 보면 이런 표정을 지어야 맞지.’‘이연서도 이 도리를 알고 얼른 굴복해야 하는데 쉽지 않네.’‘데려온 지도 한참 됐는데 포기란 걸 모르고 아직도 발버둥 치고 말이야.’이렇게 생각한 허종혁은 눈동자가 어두워지더니 온몸으로 우울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깜짝 놀란 황규석이 전전긍긍하며 말했다.“근데 제가 뭘 더 도와드리려고 해도 도울 수 있는 게 없습니다.”“일개 의사인데 할 줄 아는 거라고는 사람 구하는 것밖에 없어요. 그 외에는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폐물입니다.”허종혁은 곧 울 것 같은 황규석을 보며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내가 다른 사람에게는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구나.’‘허씨 가문 도련님 신분, 꽤 쓸만하네.’“됐어요. 겁주려고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아요.”허종혁이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아직은 이 일만 도우면 돼요. 다른 건 아직 필요 없어요. 일단 안다혜 가족부터 진정시켜요.”황규석은 다른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의 한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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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8화

황규석도 협박당하는 게 싫었지만 지금으로써는 방법이 없었다. 생활이 원래도 고달픈데 설상가상으로 이런 일까지 맞닥트린 것이다.하지만 재벌들에게 그들의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서민들을 제일 밑바닥에 깔아두고 부려 먹으면서 원하는 걸 얻어내려 했고 서민들은 그걸 뻔히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했다. 그게 대자연의 법칙이었다.황규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허종혁이 원하는 대로 해주려 했다. 아니면 이 직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면 사람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하면서 황규석도 이 일이 천직임을 알았다. 그러니 절대 이 일자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황규석도 인생의 도리를 잘 몰랐다. 계속되는 삶 속에 그가 바꿀 수 있는 건 태도뿐이었다. 전에 고수한 신념이 뭐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서 이 자리에 남아 있어야만 앞으로도 의사로서 빛을 낼 수 있다.‘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다면 도련님의 말에 따라야 해.’이렇게 생각한 황규석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가족이라는 사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허종혁이 직접 찾아왔다는 건 환자의 가족이 곧 찾아올 거라는 의미였다.황규석이 한숨을 푹 내쉬며 정신을 가다듬고는 다시 의자에 앉아 침착한 표정으로 앞에 놓인 데이터를 내려다봤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노크했다. 황규석은 내심 놀랐지만 이내 올 것이 왔음을 직감하고 마른기침하더니 이렇게 말했다.“들어오세요.”그제야 문을 열고 들어온 이 집사는 안에 앉은 황규석을 보고 공손하게 인사했다.“황 선생님, 맞나요?”황규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무슨 일로 오셨나요?”사실 황규석은 상대가 왜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지만 혹시나 사람을 잘못 봤을까 봐 걱정했다. 다만 생각을 바꿔보니 허종혁이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찾아왔다는 건 상황을 물으러 온다는 가족이 바로 이 사람이라는 의미였다.‘그래. 틀림없어.’이 집사는 조금 전 데스크에서 안다혜의 상황을 확인한 후 검사지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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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9화

전에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라 살짝 신기하기도 했다.황규석은 어쩔 수 없이 설명을 이어갔다.“아무래도 환자가 전에 너무 무리한 것 같아요. 그래서 몸이 자기방어 기제에 들어간 거죠.”“지금 환자에게 제일 필요한 건 푹 쉬는 거예요. 다른 말로 환자가 깨어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거예요.”이 집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런데 위장염도 이런 상황이 일어나요?”황규석이 말하는 상황은 보통 머리를 다친 환자에게만 나타났고 안다혜의 상황과는 차이가 있었다.황규석은 이 집사의 막연한 표정을 보며 뭐라도 말해주고 싶었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눈을 질끈 감고 일단 거짓말을 이어 나갔다. 이런 일은 누구도 단정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허종혁이 이런 일을 시킨다는 건 약 성분을 조사하기 어렵다는 의미인데 그러면 일단은 가족을 달래는 게 중요했다.“사실입니다. 사람의 의식과 관련이 있지 다친 부위와는 관련 없습니다.”황규석이 달래기 시작했다.“가족분, 걱정하지 마세요. 큰 문제 없을 겁니다. 민성에서 제일 좋은 병원인 중심 병원이 왜 이런 일로 거짓말을 하겠어요.”이 집사는 황규석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검사지를 챙기며 이렇게 말했다.“그래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수고하세요.”“별말씀을요. 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데요. 최대한 환자와 얘기를 많이 나누세요. 그 말을 듣고 정신을 차릴지도 모릅니다.”이 집사는 그 방법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네. 그럴게요.”그러더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황규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 힘이 풀려 의자에 거의 몸을 맡기다시피 했다.‘내게 이런 날이 오다니. 의사가 돼서 사람을 속이기나 하고. 이러려고 의사가 된 건 아닌데.’하지만 일자리를 지키려면 어쩔 수 없었다. 다행히 허종혁이 보낸 사람은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라 일도 깔끔하게 잘했다. 조금 전 이 집사가 건넨 검사지에서는 그 어떤 흠집도 찾아낼 수 없었다.‘그래. 그러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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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0화

‘정말 대표님을 찾으러 온 거였어?’‘설마 대표님 할아버지인가?’유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 지금 이 병실에 계십니다.”이 집사는 그제야 웃으며 되물었다.“대표님이요?”“태안 그룹 사람이에요?”유이현은 앞에 선 노인이 태안 그룹까지 꺼내자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네. 태안 그룹을 어떻게 아세요?”유이현이 허리를 꼿꼿이 펴며 공손한 말투로 말했다.‘이분이 대표님 할아버지라면 내가 너무 무례하게 굴었는데? 마음에 담아두지 말았으면 좋겠다.’유이현은 살짝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집사는 그런 유이현의 걱정을 읽어내고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나를 대표님 가족이라 생각하면 돼요. 오늘은 문안차 온 거고요.”그러더니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들어가 보고 싶은데 옆으로 비켜줄래요?”자라는 걸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 집사는 안다혜를 친손주처럼 생각했기에 안다혜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유이현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어르신, 일단 기다려보시는 게 어때요?”유이현은 이 집사가 지금 들어가면 두 사람의 좋은 분위기를 깨트릴 것 같아 일단 막아섰다.“왜 기다려야 하죠?”이 집사는 안다혜가 안에 있는데 비서마저 자리를 지키지 않고 밖에 있는 게 살짝 이상했다.‘이 사람들 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유이현은 이 집사가 고집을 꺾지 않자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늘 명령에 따르며 큰 변화가 없는 삶을 살아온 그는 배짱이 두둑하지는 못해 이 집사처럼 노련한 사람을 만나면 겁을 내기 일쑤였다. 하여 눈을 질끈 감고 조금 전 있었던 일을 그대로 이 집사에게 털어놓았다.“사실은 대표님과 대표님 남편이 안에 계시거든요. 지금 들어가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서요.”이 말에 이 집사는 할 말을 잃었다.“됐어요. 여기 있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요. 아니면 정신 차리게 혼쭐이라도 냈을 거예요.”같잖은 이유로 방안에 두 사람만 놔둔 걸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러면 그동안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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