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541 - Chapter 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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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1화

안소현은 김미진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고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안 괜찮을 게 뭐가 있다고? 안다혜가 평생 깨어나지 않아도 좋아. 차라리 영원히 그렇게 잠들어 있어라.’‘그래야 피차 좋지 않겠어? 굳이 깨어나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지 말고.’그렇게 안소현은 임시 대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김미진이 재촉했다.“얼른 회사로 가서 업무부터 숙지해.”김미진은 처음으로 대표직을 맡은 안소현이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전공이 딱 들어맞아 기회를 준 거지 아니면 절대 이런 자리를 쉽게 내어주지 않았을 것이다.안소현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게 노력할게요. 회사 이익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어요.”김미진이 고개를 저었다.“바보 같긴. 최선을 다하면 되지 그런 맹세는 안 해도 된다. 뭐니 뭐니 해도 너의 생명과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엄마 눈에는 너희들의 건강과 미래가 제일 중요해. 회사는 그저 너희를 위해 깔아둔 길일뿐이야.”안소현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하지만 마음속으로는 김미진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김미진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미진이 이런 말을 한 건 그저 모양을 내기 위해서지 속마음은 다르다고 생각했다.게다가 김미진이 회사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는 옆에서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회사를 고작 몇 마디로 설명하고 지나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엄마, 지금 바로 회사로 나가서 업무 숙지할게요. 엄마는 집에서 건강 잘 챙겨요.”엄마를 위해 회사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안소현을 보며 김미진이 입을 열었다.“그래. 네가 고생이 많다.”안소현이 고개를 저었다.“고생은요. 나도 가족 중 한 명이잖아요. 가족끼리 뭘 그런 걸 따져요?”“가봐. 모르는 게 있으면 전화하고.”안소현은 그제야 집을 나섰다. 김미진은 그런 안소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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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재벌가의 비밀은 죄다 추잡스럽기만 해서 사람들이 모르게 잘 숨겨야만 했다. 그 어떤 것도 나가서 말할 수는 없었다. 이는 이 집사도 잘 알고 있어 소파에 앉은 김미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지금 김미진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가끔은 김미진 본인도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몰랐다. 회사가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김미진은 참 많은 심혈을 기울였지만 지금 이 지경이 된 건 호시탐탐 노리는 하이에나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회사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를 바라면서도 회사를 차지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었다.솔직히 말하면 김미진이 이 회사를 세우고 성공시키지 않았다면 수익은 물론 뒤따라온 것도 없을 텐데 득달처럼 달려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들 머리로는 절대 회사를 지금의 자리까지 발전시키지 못했을 것이다.다만 김미진도 이제 나이가 들면서 건강이 나빠지고 머리도 빠릿빠릿하지 못해 더는 나날이 커지는 하이에나들의 욕심을 컨트롤하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안다혜가 능력이 좋아 연속으로 프로젝트 두 개를 따내면서 호시탐탐 노리는 그들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회사를 그들에게 맡기라니 시름이 놓일 리가 없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안소현에게 맡겨보는 게 가망이 컸다.소파 손잡이를 꽉 잡은 김미진의 표정에서는 기분을 알아낼 수 없었다. 지금은 그저 안다혜가 하루라도 빨리 깨어나 회사를 장악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집을 나선 안소현은 큰 기쁨에 휩싸였다. 김미진이 이렇게 쉽게 손을 놓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예전과 비기면 아예 딴사람이 된 것 같았다.‘인내심을 가지고 더 구슬려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쉽게 얻어냈네? 곧 회사를 장악할 수 있겠는걸?’‘안다혜만 깨어나지 않으면 계속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어. 회사 임무만 숙지하면 안다혜가 깨어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 회사가 이미 내 손아귀에 있는데 뭐가 걱정이야.’앞으로 있을 일까지 다 생각해 둔 안소현이 흥분하며 허종혁에게 전화했다.“종혁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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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안소현이 정말 회사를 장악한다면 허산 그룹의 자금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정말이야. 자기야? 너무 대단하다.”허종혁이 진심으로 기뻐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기다려. 저녁에 파티라도 해서 축하해야지.”안소현이 우쭐대기 시작했다.“그래요. 자리는 종혁 씨가 예약해요. 지금은 일단 끊어야겠어요.”“왜 그래. 자기야. 무슨 일 있어?”허종혁의 목소리는 꿀이 떨어질 정도로 부드러웠다. 그게 누구든 대신 숙제를 완성해 준다면 허종혁은 상전으로 모셨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허종혁의 양면성이었다. 그는 마치 촛불처럼 바람이 부는 쪽으로 흔들렸다.안소현도 허종혁이 자기라고 부르는 걸 즐겼다. 사실 안소현은 지금까지 누군가의 존중을 받아본 적이 없었고 안다혜가 있는 곳이라면 늘 주인공이 아닌 카메오였다. 특히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때는 김미진도 그렇고 임원들도 그렇고 안소현의 이름을 꺼내기 싫어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제 태안 그룹의 임시 대표가 되었으니 어딜 가든 자기 이름이 붙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안소현은 너무 흥분되었다.‘안다혜, 제발 그대로 잠들어 있어. 그래야 내 기회가 많아져.’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차려진다는 말이 맞다.‘나는 내가 챙겨야지 누가 챙기겠어?’이 도리를 잘 아는 안소현은 어릴 적부터 쭉 안다혜와 경쟁했다. 그날 수영장에서 안다혜가 보는 앞에서 민초연을 밀어버린 것도 다 안다혜를 질투해서였다. 안다혜 옆에 있는 사람은 그 누구든 부러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민초연은 안다혜에게 지극정성이니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여 어떻게든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했던 것이다.안소현이 입을 열었다.“일단 태안 그룹으로 가서 인수인계 받아야죠. 가는 길에 잠깐 전화한 거예요.”“그래. 자기야. 일단 일 봐.”허종혁이 자기야를 남발하며 달콤하게 속삭이자 안소현의 기분도 따라서 달콤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완전히 시름을 놓을 수는 없었다.“안다혜 쪽은 잘 지켜봐요. 절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돼요.”“지금이 제일 중요한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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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전화를 끊으려는데 안소현은 수화기 너머로 웅얼거리는 소리와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를 듣고 이렇게 물었다.“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안소현의 말투가 이내 차가워졌다.“지금 어디예요?”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안소현은 자꾸만 찝찝했다.“아무것도 아니야.”허종혁이 웃으면서 설명했다.“아마도 네가 잘못 들은 것 같아. 실수로 물건을 떨어트린 것뿐이야.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회사로 가봐야 한다며. 얼른 가봐. 늦으면 첫인상이 안 좋아질 것 같아.”“맡겨준 일은 최대한 빨리 완성하고 알려줄게.”“응.”이 말에 허종혁은 안소현이 무슨 말을 더 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안소현은 어두워진 화면을 내려다보며 눈빛이 어두워졌다. 여자의 육감으로 아까 들은 소리가 정상이 아니라는 느낀 것이다.게다가 더 이상한 건 허종혁의 태도였다. 평소에는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는 법이 없었는데 오늘은 한 번에 모든 대답을 욱여넣은 것이다. 마치 캐묻는 게 두려운 사람처럼 말이다.이렇게 생각한 안소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속으로 구시렁댔다.‘허종혁. 나를 속이는 게 없기를 바랄게. 아니면 다 같이 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소현은 이렇게 다짐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차를 운전해 태안 그룹으로 향했다.한편, 허종혁은 음침한 표정으로 입이 틀어막힌 이연서를 내려다봤다.“왜? 도망가고 싶어?”허종혁이 손에 힘을 주며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 이연서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해 그저 눈만 부릅떴다. 사실 아까 안소현의 목소리를 듣고 연신 자기야라고 부르는 허종혁을 보며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몸으로 테이블을 부딪치며 일부러 소리를 냈다.이연서는 불같이 화를 내는 허종혁을 보며 수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이 이미 허종혁을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알아챘다. 아니면 허종혁도 이렇게 화를 낼 이유는 없었다.이렇게 생각한 이연서는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들었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몸을 혹사한 의미가 없었다.허종혁은 이연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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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아무래도 매질은 피해 갈 수 없을 것 같았다.허종혁은 겁에 질린 이연서의 표정을 보고 큰 만족감을 느꼈다.‘이게 바로 군림하는 느낌이구나.’부모님 앞에서는 착한 척, 안소현 앞에서는 젠틀한 척하던 허종혁은 이연서 앞에서만 본모습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처음 느껴보는 기분에 허종혁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하여 이연서를 조금도 아끼지 않고 거칠게 대했다.이연서는 몸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이내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날이 언제 끝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명확한 건 지금 겪고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계속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이연서는 부모님이 누군지, 밖에 친구는 없는지 알고 싶었다. 계속 여기 있는 건 허송세월하며 죽기를 기다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이연서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도 여기서 이렇게 있으면 안 된다는 건 알았다. 아까 그런 행동을 한 것도 다 안소현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였다. 허종혁이 안소현 앞에서는 비굴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연서는 이를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덤벼들었지만 돌아온 건 더 가혹한 매질뿐이었다. 이연서는 그래도 희망이 있다면 그게 뭐든 단단히 잡고 싶었다. 기회는 쟁취하는 사람의 것이지 기다리는 사람에게 차려지는 건 더 이상 기회가 아니었다.허종혁은 고집스러운 이연서를 보며 화가 치밀어올랐다.“왜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거야? 그냥 얌전히 내 옆에 있으면 안 돼?”“내가 못 해준 게 뭐야? 외모도 이만하면 잘생긴 거 아니야? 뭐가 불만인데?”이연서는 이 말을 들으며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퉤. 너는 그 말이 우습지 않아?”허종혁의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뭐가 우스운데?”이연서가 웃음을 터트렸다.“나는 사람이야. 목줄 단 애완동물이나 강아지가 아닌.”“나도 내 일이 있고 내 삶이라는 게 있어. 그런 내가 지금은 네가 만든 감옥에 갇혀 있잖아. 그게 말이 돼?”이 말에 허종혁은 침묵했다. 이연서는 아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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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허종혁은 힘 빠진 이연서를 보고도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허종혁이 이연서에게 원하는 건 사실 명확했다. 이연서는 어디까지나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자기가 누군지도 모르니 갖고 놀기에 딱 맞았다.탈칵.이 소리에 이연서의 몸이 딱딱하게 굳더니 눈을 부릅뜨고 허종혁을 바라봤다.“뭐... 뭐 하자는 거야?”이연서의 목소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파르르 떨렸다. 허종혁이 뭘 하려는지 알고 있었지만 두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공포가 엄습했다.매번 허종혁과 이런 짓을 할 때면 이연서는 극락이 아니라 두려움과 치욕이었다. 행동이 거친 것이 이연서의 기분은 조금도 케어하지 않았다. 몇 번은 그런 거친 행동에 몸이 다친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연서는 자기가 마치 몸을 파는 여자라도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 데나 옮겨도 되는 짐짝처럼 인생의 가치를 느끼지 못할 때도 있었다.‘21세기에 아직도 이런 일을 당한다는 게 말이 돼? 인신매매를 당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이연서는 가끔 허종혁의 사상이 왜 이 정도로 퇴화했는지 생각했다. 이런 법치 사회에 어쩌다 이런 인간쓰레기, 인간 말종이 나타났는지 의문이었다.이제 이연서에게 남은 건 기도밖에 없었다. 안소현이 그녀가 낸 소리를 들었다면 이 고통이 조금은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의 생활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그래서 언젠가 쓰레기 같은 허종혁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허종혁은 이연서가 협조하지 않자 마음이 불편해졌다.“너 그거 무슨 표정이야? 신분도 없는 너를 싫어해도 내가 싫어하지 네가 무슨 자격으로 싫어해?”허종혁이 콧방귀를 뀌며 이연서의 얼굴을 억지로 돌렸다. 차가운 표정으로 바지를 벗은 허종혁은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태도로 본론에 들어갔다.이연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시트를 꽉 움켜잡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던 목소리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녀를 이 지옥에서 꺼내줄 수만 있다면 평생 고마워할 것이다....저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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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적어도 지금은 꽤 쓸만했다.허종혁이 완전히 떠나고 나서야 이연서는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반듯하게 누워 천장을 올려다봤다.‘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많은 일을 겪으면서 이연서는 화를 낼 힘조차 없었다. 가끔은 생활이 온통 회색인 것 같아 삶의 의미가 뭔지 몰랐다.‘정말 살아서 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허종혁에게 당하다 보면 정말 이대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이연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멍한 표정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눈앞이 캄캄해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얼마나 지났을까, 방문이 다시 열렸지만 이연서는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아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아가씨, 뭐라도 좀 드세요. 밖에 놓고 갈게요.”이연서는 아줌마의 목소리에 살짝 놀랐다.‘벌써 밥 먹을 때가 된 건가?’아무래도 정신을 놓고 있었던 게 틀림없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밥때가 되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연서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다. 이 방에만 있으면 자기가 고양이나 강아지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배가 고파야만 먹을 걸 조금 내어줬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늘 혼자 이 방에 갇혀 있었다. 말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핸드폰도 없어 바깥세상과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연서는 너무 서글펐다.‘어쩌다 이런 삶을 살게 된 거지?’‘부모님이 알면 비웃지 않을까?’하지만 이연서는 부모님이 누군지도 몰랐다.‘나를 찾아보려고는 했을까?’‘가족들도 친구들도 다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야?’숨을 크게 들이마신 이연서는 밖에서 나는 소리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밖에 있는 아줌마와 만날 수도 없고 만난다 해도 내보내 줄 리가 없었다.전에 이 방법을 시도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국 다 실패로 끝났다. 게다가 방금 허종혁에게 당하고 나니 말하거나 밥 먹을 기운은커녕 손 하나 까딱하기 싫었다.아줌마는 한참 서 있어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방을 바라보며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아 했다. 처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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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쉽게 얻을 수 없는 좋은 일자리였다. 아줌마로서 좋은 직장을 내버려두고 낯선 여자를 도울 리가 없었다. 게다가 아줌마는 이 여자와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허종혁도 아줌마가 어떤 사람인지, 품성이 어떤지 잘 알았기에 시름 놓고 썼던 것이다.한편, 별장에서 나온 허종혁은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한번 해본 경험이 있으니 매우 익숙하게 황규석의 사무실을 찾을 수 있었다.허종혁이 사무실 앞에 도착했을 때 황규석은 다른 환자의 일을 보고 있었다. 하여 누군가 문을 두드려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문 열려 있으니까 그냥 들어오세요.”안다혜를 절대 다른 병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의사들의 약속을 받아낸 뒤로 황규석은 기분이 많이 좋아졌다. 허종혁이 준 임무를 완성했으니 요즘은 별걱정 없이 보낼 수 있었다. 하여 사람을 대할 때도 전보다 많이 여유로워졌다.황규석은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사무실에 들어왔다는 걸 느꼈지만 한참 기다려도 아무 말이 없자 살짝 답답해지기 시작했다.‘뭐야. 찾아와 놓고 왜 아무 말도 안 해?’고개를 든 황규석의 눈동자에 느긋하게 서 있는 허종혁이 보였다. 너무 놀라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황규석이 서둘러 이렇게 말했다.“도련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허종혁이 눈썹을 추켜세웠다.“왜요? 내가 오면 안 될 곳이라도 왔어요?”황규석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무슨 그런 말씀을. 찾아주시면 저야 좋죠. 농담이라도 그런 말씀은 마세요.”“이 병원은 허씨 가문에서 투자한 병원이잖아요. 운명 공동체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제가 어찌 그런 말씀을 드리겠어요.”황규석이 활짝 웃으며 아부하자 허종혁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만 황규석의 체면 따위는 봐주지 않고 황규석이 앉았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아무 자료나 꺼내 이리저리 펼쳤다.“요즘 안다혜는 좀 어때요?”황규석이 얼른 허종혁에게 보고했다.“도련님이 예상했던 대로 입니다. 그 남자는 안다혜에게 새로운 의사를 찾아주는 걸 포기하지 않더라고요.”“그래서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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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환자의 몸을 함부로 움직이면서 병원을 옮기면 환자의 몸에 2차 피해가 갈 수도 있다고 했거든요.”허종혁이 흐뭇한 표정으로 황규석을 바라봤다.“제법인데요? 그 말은 나조차도 반박하지 못하겠어요.”황규석은 그제야 살짝 웃었다.“도련님, 과찬입니다. 도련님을 보고 배운 건데요.”“약물을 잘 고르지 않았다면 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었을 겁니다.”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서로 칭찬하기 시작했다. 허종혁은 황규석의 조심스러운 태도가 퍽 마음에 들었다. 집에서는 아버지의 눈치를 보고 평소에는 안소현의 눈치를 봐야 하는데 이제는 장난감으로 주워 온 여자까지 성질을 부리니 짜증이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온전히 자신의 관할 구역인 병원에서 아래사람들이 굽신거리며 아부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통쾌함을 느꼈다.황규석이 웃으며 말했다.“도련님을 위해서 일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들킬 위험도 없어서 제가 대처하기도 쉽습니다.”허종혁이 황규석의 어깨를 토닥였다.“걱정하지 마요. 앞으로 섭섭지 않게 잘해줄게요.”“평소에 누워서 핸드폰만 하지 말고요. 어깨가 이미 삐뚤어진 것 같은데?”이 말에 황규석은 살짝 놀랐다. 허종혁이 그를 관심하며 어깨가 삐뚤어진 것까지 챙길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대화였다.대화가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지자 허종혁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아래에 두고 있으니 앞으로 다른 일이 있어도 편하게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사실 크게 신경 쓸 것도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만 알려주면 황규석이 알아서 잘했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만 허종혁을 찾아왔다.허종혁은 그런 황규석이 퍽 마음에 들었는지 사무실을 나갈 때도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황규석은 허종혁의 그림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승사자 같은 허종혁이 자리를 비웠으니 이제 자기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황규석은 의자에 걸터앉아 허종혁이 한 말을 곱씹었다.‘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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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마스크를 낀 허종혁은 안다혜를 만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싶어 목적 없이 병원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이렇게 많은 외국 의사들이 이 병원에 나타날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내가 모르는 회진이라도 있는 건가?’허종혁은 영문을 몰랐지만 이상하게 그 의사들만 보면 심장이 쿵쾅거려 얼른 안소현에게 전화를 걸었다.밖에서 업무를 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안소현은 허종혁이 걸어온 전화를 보고 짜증이 치밀어올랐다.‘아니. 무슨 일 있을 때마다 전화해서 물어볼 생각인가?’‘다 큰 사람이 이런 일 하나 처리 못 해?’안소현은 기가 찼지만 앞으로 이 남자를 계속 이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성질을 죽이고 상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사실 안소현도 허종혁이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궁금했다.“소현아, 바빠?”안소현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무슨 일 있으면 그냥 얘기해요. 우물쭈물하지 말고.”허종혁은 그제야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연서 앞에 섰을 때와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 이연서 앞에서는 더없이 기고만장했고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기는커녕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며 욕구를 해소할 수 있으면 그 행동이 얼마나 거칠든 서슴지 않았다. 상대의 모습이 처참할수록 허종혁은 흥분했다. 이연서는 허종혁의 짐승 같은 본모습을 끌어내는데 제격이었다.하지만 이런 모습을 안소현에게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허종혁에게 안소현은 박씨를 물어다 주는 제비와도 다름없었기에 태도가 좋아야만 했다. 부모님도 안소현의 체면을 봐줘야 하는데 허종혁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태안 그룹과의 협업은 얘기도 꺼내지 못했는데 일단 잘 달래야 했다.“그래. 물어볼 일이 있어서 전화했어.”“말해요.”안소현은 허종혁이 말을 이어 나가길 기다렸다. 앞에 놓인 계약을 보며 이미 인내심을 잃은 상태였다. 전에는 계약서가 이렇게 힘든 서류인지 몰랐는데 지금은 마치 고전 서적을 읽는 것처럼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계약서를 보다 보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릴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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