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혁은 안다혜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안소현을 바라보며 설명하려 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것보다도 안소현을 달래는 게 제일 중요했다.“소현아, 내 말 좀 들어봐.”안소현이 애써 유지했던 불쌍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제쳐두고 허종혁의 손을 홱 뿌리쳤다.“녹음까지 들어놓고 무슨 할 말이 남았다고 그래요?”안소현의 눈동자에 남은 건 원망과 의문밖에 없었다.“설마 아까 들은 녹음이 본인 목소리가 아니라고 할 건 아니죠?”“나는...”허종혁의 눈빛이 반짝 빛나더니 안다혜가 짜깁기한 거라고 얘기하려는데 안다혜가 한발 빨랐다.“형부, 녹음 시간 보여줄게요. 방금 녹음한 거예요.”안다혜가 예쁜 눈으로 활짝 웃었지만 그 웃음은 마치 가시가 달린 장미처럼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걱정하지 마요. 손댈 시간 없었어요. 게다가 그 입으로 직접 한 말이잖아요.”말문이 막힌 허종혁은 반박할 힘을 잃었고 안소현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졌다. 오늘 허종혁이 저지른 짓은 안소현의 따귀를 후려친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김미진 앞에서 약혼한 일로 이간질까지 한 걸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허종혁이 안소현을 보며 뭔가 말하려다 말고 손을 내밀며 더 해명하려 했지만 안소현은 그런 허종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앞으로 성큼 다가가 안다혜와 김미진을 향해 사과했다.“미안해. 엄마, 그리고 다혜야, 내가 오해했어... 이제 엄마랑 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김미진이 그런 안소현을 보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소현아, 너도 몰랐잖아.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어.”안다혜는 화목한 두 사람을 보며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허종혁과 안다혜 중에 허종혁을 고르더니 안소현이 사과하자마자 자책할 필요가 없다며 위로했다. 이로써 김미진의 마음속에 누가 더 순위가 높은지 알 수 있었다.김미진은 곁눈질로 안다혜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안다혜가 한 말을 떠올렸다.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평소에 늘 안다혜를 엄격하게 대했던 김미진이었기에 바로 변하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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