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남편은 알고 보면 여우: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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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이 말에 김미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예전에 서진우를 만난 것만 해도 이미 민성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었기 때문이다.‘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건가?’김미진은 그런 안다혜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안소현에게 당부했다.“소현아, 너 착한 거 아는데 이 일은 관여하지 마.”“다혜도 이제 어른인데 모든 일에 후과가 따른다는 걸 알고 움직여야지. 늘 우리에게 기댈 수는 없잖아.”안소현이 한마디 덧붙이려다 포기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알겠어요. 엄마 말대로 할게요. 다혜가 빨리 철들어서 엄마 속 좀 그만 썩였으면 좋겠네요.”안소현의 말에서 김미진을 향한 걱정이 잔뜩 묻어났다. 김미진은 착하고 얌전한 안소현을 보며 정반대인 안다혜가 생각나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티 나지 않게 얼른 감췄다. 그래도 안소현은 그 정서를 잽싸게 캐치했다. ‘안다혜. 태안 그룹으로 들어오면 뭐 해. 엄마가 내 편인데.’...한편.안다혜가 차에 시동을 걸려는데 프로젝트팀장이 파일을 하나 보내와 시장 상황에 근거해 서류를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 자료를 간단히 훑어본 안다혜는 이 파일을 조사하고 서류를 작성한 적이 있다는 게 떠올랐다. 다만 이 자료는 전에 안씨 저택에 다녀오면서 방에 흘리고 나온 것 같았다.한숨을 푹 내쉰 안다혜는 다시 정리하기 싫어 안씨 저택에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보니 아직 김미진이 들어가기 전이었기에 서류만 챙기고 빨리 사라질 생각이었다.안다혜가 노련하게 차를 고급 별장 차고에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 햇살이 비춘 별장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이상하다, 안소현 오늘 집에 없나? 그럴 리가 없는데. 몸이 허약해서 맨날 집에서 쉬잖아.’안다혜가 의문을 안고 대문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형부 허종혁이 소파에 대자로 뻗어있었는데 취기가 올라와 몽롱한 눈빛을 짓고 있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예요?”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서류를 가지러 왔지만 허종혁의 몰골을 보자마자 흥미를 잃어버렸고 당장이라도 별장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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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다혜야. 내 말 좀 들어볼래? 내게도 기회를 줘.”인내심을 잃은 안다혜가 소리를 질렀다.“이거 놔요.”“더럽지도 않아요? 설마 언니가 있다는 거 잊은 건 아니죠?”안소현이 나오자 허종혁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술기운을 빌려 막무가내로 안다혜를 끌어안고는 이렇게 말했다.“하지만 처음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땐 우리 두 사람이었잖아.”“다혜야. 사실 나도 너 좋아해...”이 말에 안다혜는 온몸에 소름이 끼쳐 힘껏 발버둥 쳤지만 체급 차이도 있고 허종혁이 만취 상태라 꿈쩍도 하지 않았다.“형부, 언니가 알면 형부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안다혜가 빨개진 허종혁의 얼굴을 보며 위가 뒤틀리듯 역겨웠다.“형부 언니랑 약혼한 사이에요. 둘이 약혼한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미안하지도 않아요?”허종혁이 움찔했지만 손에 들어간 힘은 여전했다.“다혜야, 소현이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인사불성이 된 허종혁은 모든 신경을 안다혜의 몸에 집중했다. 향기롭고 말캉한 안다혜는 안고 있으면 은은한 장미 향기가 풍겼는데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게다가 안다혜는 성격이 만만치 않아도 외모와 몸매는 허종혁의 마음에 쏙 들었다.“다혜야, 한 번만 기회를 줘. 너만 좋다면 우리 다시 만나도 돼.”허종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나는 너 다시 받아줄 생각이 있어.”허종혁이 이렇게 말하며 더 힘껏 끌어안았고 안다혜가 뭐라 하든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던 안다혜가 허종혁의 발을 꽉 밟았다. 허종혁은 너무 아팠지만 안다혜의 허락을 받기 위해 고통을 꾹 참았다.“다혜야, 나 지금 진지해...”“두 사람 지금 뭐 하는 거야?”하지만 이내 익숙한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놀라움이 섞인 말투는 이내 분노로 뒤바뀌고 말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보니 안소현이 김미진과 함께 현관에 서 있었다. 소리를 낸 사람은 김미진이었고 안소현의 눈시울은 이미 빨개진 상태였다. 안소현은 김미진 옆에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해자라도 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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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안소현이 울자 김미진은 마음이 아팠다. 동생과 약혼자가 부둥켜안고 있는 걸 보고도 김미진을 다독이는 안소현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허종혁이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소현아, 다 내 잘못이야.”이 말에 세 여자의 시선이 일제히 허종혁에게로 향했다. 안다혜도 허종혁이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지 의아한 표정으로 허종혁을 바라봤다.‘뭐야. 무슨 짓을 했는지 인정하려는 건가?’안소현이 울먹이며 말했다.“당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김미진도 안다혜를 오해한 게 아닌지 의심하며 언짢을 표정을 짓는데 허종혁이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오늘 술을 좀 마셨는데 머리가 어지러워서 소파에 누워 있었어.”이 말을 들은 안다혜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허종혁이 덧붙인 말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근데 다혜가 소파 옆으로 다가오더니 이런저런 실없는 말을 꺼내면서 언니가 약혼자를 뺏은 걸 원망하더라고.”고개를 들자 보이는 허종혁의 빨개진 눈시울이 참으로 억울해 보였다.“어머님,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저를 주체하지 못한 건 맞지만 소현이를 향한 내 마음은 진심이에요. 다혜가 없었어도 나는 소현이를 선택했을 거예요.”“종혁 씨...”감동한 안소현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허종혁을 바라봤고 허종혁도 진지한 눈빛으로 답했다. 그러자 분위기는 마치 안다혜가 세컨드라도 되는 것처럼 흘러가기 시작했고 안다혜의 표정이 굳어질 대로 굳어졌다.‘역시 남자는 다 똑같다니까. 사실대로 말할 거라고 기대한 내가 바보지.’“형부, 지금 한 말 다 사실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안다혜가 차가운 눈빛으로 허종혁을 쏘아보자 허종혁이 안다혜의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말했다.“당연하지. 나랑 너희 언니는 쭉 안정적이었는데 내가 왜 너희 언니를 버리고 너를 만나겠니.”“게다가 네가 서진우를 3년이나 쫓아다닌 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왜?”김미진은 이 말이 살짝 불편하게 느껴졌다. 안다혜가 무슨 짓을 저질렀든 딸인 건 변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이 왈가왈부하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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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허종혁이 안소현 옆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관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소현아, 너 괜찮아?”“안 그래도 몸이 약한데 울면 어떡해. 네가 우니까 나도 마음이 아프잖아.”허종혁이 다시 한번 약속했다.“걱정하지 마. 나 안다혜랑 아무 일도 없었어. 나도 너를 생각해서 그저 동생으로만 여겼던 거야.”김미진도 안소현 옆에 서서 안소현의 몸을 챙겼다. 극명한 차이에 안다혜는 순간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악녀가 된 것 같았고 순간 많은 걸 깨닫게 되었다. 원래는 그들을 굳이 신경 쓰지 않으려 했는데 그들은 마치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떼거지로 몰려와 안다혜의 신경을 긁어댔다.“그래요. 허종혁 씨.”안다혜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경멸에 찬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직도 거짓말을 늘어놓는 걸 봐서는 정신 못 차린 것 같은데.”“내가 무슨 거짓말을 했다고 그래? 소현이 이렇게 된 거 안 보여? 넌 왜 항상 그렇게 막무가내야?”이 말에 김미진도 언짢은 표정으로 안다혜를 바라봤다. 안소현과 비기면 안다혜가 막무가내인 건 사실이었다.“됐어. 이제 와서 뭘 더 말해.”안다혜가 핸드폰을 꺼내 들며 태연하게 웃었다.“엄마, 내가 뭘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거야 당연히 사건의 진상이 뭔지 보여주려는 거죠.”이 말에 허종혁이 당황하더니 안다혜의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설마...’안다혜가 허종혁의 눈빛에서 당황한 기색을 읽어내고는 느긋하게 말했다.“맞아요. 허종혁 씨 지금 나랑 같은 생각 하고 있어요.”“안다혜,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안다혜가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다 허종혁 씨가 자초한 일이잖아요. 나를 사지로 몰아넣은 건 형부예요. 내가 기회를 줬는데.”안소현은 안다혜가 핸드폰을 꺼냈을 뿐인데 몹시 당황해하는 허종혁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뭔가를 알아채고는 눈빛이 흔들렸다.‘설마 거짓말한 거야?’김미진도 허종혁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보아냈다.안다혜가 미간을 찌푸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녹음 파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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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허종혁은 안다혜의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아 안소현을 바라보며 설명하려 했다.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것보다도 안소현을 달래는 게 제일 중요했다.“소현아, 내 말 좀 들어봐.”안소현이 애써 유지했던 불쌍하고 연약한 이미지를 제쳐두고 허종혁의 손을 홱 뿌리쳤다.“녹음까지 들어놓고 무슨 할 말이 남았다고 그래요?”안소현의 눈동자에 남은 건 원망과 의문밖에 없었다.“설마 아까 들은 녹음이 본인 목소리가 아니라고 할 건 아니죠?”“나는...”허종혁의 눈빛이 반짝 빛나더니 안다혜가 짜깁기한 거라고 얘기하려는데 안다혜가 한발 빨랐다.“형부, 녹음 시간 보여줄게요. 방금 녹음한 거예요.”안다혜가 예쁜 눈으로 활짝 웃었지만 그 웃음은 마치 가시가 달린 장미처럼 공격성을 띠고 있었다.“걱정하지 마요. 손댈 시간 없었어요. 게다가 그 입으로 직접 한 말이잖아요.”말문이 막힌 허종혁은 반박할 힘을 잃었고 안소현의 안색도 점점 어두워졌다. 오늘 허종혁이 저지른 짓은 안소현의 따귀를 후려친 거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김미진 앞에서 약혼한 일로 이간질까지 한 걸 생각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허종혁이 안소현을 보며 뭔가 말하려다 말고 손을 내밀며 더 해명하려 했지만 안소현은 그런 허종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앞으로 성큼 다가가 안다혜와 김미진을 향해 사과했다.“미안해. 엄마, 그리고 다혜야, 내가 오해했어... 이제 엄마랑 너를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김미진이 그런 안소현을 보며 마음이 약해지기 시작했다.“소현아, 너도 몰랐잖아.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어.”안다혜는 화목한 두 사람을 보며 마음이 싸늘하게 식었다. 허종혁과 안다혜 중에 허종혁을 고르더니 안소현이 사과하자마자 자책할 필요가 없다며 위로했다. 이로써 김미진의 마음속에 누가 더 순위가 높은지 알 수 있었다.김미진은 곁눈질로 안다혜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안다혜가 한 말을 떠올렸다. 부자연스럽긴 했지만 평소에 늘 안다혜를 엄격하게 대했던 김미진이었기에 바로 변하긴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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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그도 그럴 것이 김미진은 늘 강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태안 그룹 회장으로서, 그것도 여자로서 하이에나 같은 주주들을 이기려면 얼마나 힘들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지만 김미진은 한 번도 이런 말을 안다혜에게 털어놓은 적이 없었고 제일 자주 하는 말은 빨리 회사를 물려받을 수 있게 성장하라는 말이었다.기억 속의 김미진은 늘 엄격하면서도 강압적이었고 무슨 일을 하든 완벽함을 추구했기에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었다.김미진은 한참 지나도 안다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해 시선을 아래로 축 늘어트린 채 긴 속눈썹으로 애써 실망한 티를 감추려 했다. 자세히 생각해 보니 아까는 확실히 처사가 너무 과했다.‘왜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종혁이 편을 들었지? 다혜야말로 내 친딸인데 오히려 다른 사람 편에 섰네.’김미진은 그제야 안다혜에게 쌓인 오해가 많다는 걸 알아챘다.“한 번도 탓해본 적 없어요.”안다혜가 김미진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엄마, 난 엄마가 늘 수고하는 거 알아요.”“혼자 이 자리까지 오려고 많은 일을 겪었다는 거 알아요. 한 번도 엄마 탓해본 적 없고 엄마가 나 엄격하게 대해도 다 이해해요.”김미진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안다혜를 바라봤다. 예쁘장하게 생긴 얼굴은 김미진과 많이 닮아 있었다. 특히 강압적이고 매서운 모습을 보일 때면 김미진이 사업할 때 보이는 과감한 모습과 똑닮아 있어 자기도 모르게 어릴 때의 모습이 겹치며 눈물이 차올랐다. 김미진이 안다혜에게로 다가가자 안다혜가 한걸음 먼저 다가와 의아한 눈빛으로 김미진을 바라보는데 김미진이 안다혜를 품에 꼭 끌어안은 채 머리를 안다혜의 어깨에 살포시 기댔다.“그래. 전에는 엄마가 잘못했어.”“엄마를 이해해 준다니 뿌듯하네.”안다혜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김미진과 이렇게 친근한 행동을 한 적이 거의 없었고 대부분 혼자 임무를 완성하면 김미진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게 전부였다. 김미진과의 스킨십은 안다혜가 크고 나서 극히 드물었다.안다혜는 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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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안다혜가 수락하자 김미진은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기다릴게. 오기 전에 미리 연락하고.”안다혜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윤해준이 시간이 되는지 몰라 고민에 빠졌다.‘첫사랑 곁에 있어 줘야 할 텐데.’“아참, 엄마.”안다혜가 입을 열자 김미진이 계속 말해보라는 사인으로 눈썹을 추켜세웠다.“언니랑 허종혁 씨는 어떻게 처리할 거예요?”안다혜는 원래도 형부라는 호칭이 입에 잘 맞지 않았기에 아예 호칭을 바꿔버렸다. 그런 남자는 형부라고 부르기 아까웠다.허종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김미진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다시 커리어우먼 이미지로 돌아갔다.“이 일은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처리할게.”김미진이 멈칫하더니 결국 참짐 못하고 이렇게 말했다.“아까 너희 언니도 자기가 잘못해서 그런 거라고 했잖니.”“너희 언니가 알아서 잘할 거야. 믿어줘. 소현이도 까맣게 속았으니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어?”안소현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생각에 김미진이 마음 아파했다. 그 눈빛을 읽어낸 안다혜는 김미진이 그래도 안소현을 편애한다는 걸 알아챘다. 비록 안소현이 안다혜가 약혼자를 뺏긴 게 아쉬워 일부러 꾸민 짓이라고 모함해도, 김미진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질타를 받아도 변하는 건 없었기에 안다혜는 다시 마음이 씁쓸해지기 시작했다.‘오늘 이 녹음이 없었다면 어땠을까?’“네, 알겠어요.”김미진은 안다혜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자 한마디 덧붙이려는데 안다혜가 먼저 이렇게 말했다.“엄마, 시간도 늦었는데 이만 가볼게요.”“엄마도 일찍 쉬세요. 다음엔 그이와 함께 올게요.”김미진이 떠나는 안다혜의 뒷모습을 보며 오늘 일을 떠올리더니 눈빛이 어두워졌다.차를 운전해 집으로 돌아갔지만 안다혜의 머릿속은 온통 아까 저택에서 일어난 일로 가득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안소현이 무슨 핑계로 무마할지 궁금했다.‘허종혁은 아마도 사람을 잘못 봤다는 핑계로 다시 돌아오겠지?’이렇게 생각한 안다혜는 이 상황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안소현,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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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안소현의 성격도 억울한 걸 참는 성격은 아니었다. 허종혁은 본인도 안소현을 퍽 만족스러워했고 가문의 어르신들도 안소현을 자주 칭찬했기에 화들짝 놀랐다. 더 중요한 건 안소현이 민성에서는 있는 집 아가씨로 알려져 데리고 다니면 허종혁의 어깨가 올라갔다. 그런데 만약 안소현과 헤어진다면 허종혁도 아쉬울 것이다.이렇게 생각한 허종혁은 안소현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으며 부드럽게 다독였다.“소현아, 안다혜가 먼저 작업 건 거라니까. 내가 사랑한 사람은 늘 너뿐이었어.”“그러니까 그런 말은 빈말이라도 하지 마. 우리 이미 약혼했고 난 평생 너랑 함께 살 거야. 내 마음속엔 너밖에 없어.”허종혁은 꽤 잘생긴 편이었는데 특히 눈동자가 그윽했다. 거기에 입에 발린 말까지 더해지자 안소현은 그 말을 믿고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말했다.“그래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줄게요. 엄마한테는 뭐라고 할 거예요?”“다혜가 녹음까지 재생해서 쉽게 넘어가진 못할 것 같은데.”허종혁은 우쭐거리던 안다혜의 얼굴을 떠올리며 표정이 음침해졌다.“걱정하지 마. 어머님은 내가 잘 설득할게.”“우리가 힘을 합치면 어머님도 뭐라 하지는 않으실 거야.”안소현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 뭐라 덧붙이지 않았다.“레스토랑 예약했는데 오늘은 나랑 같이 나가서 먹자.”허종혁이 웃으며 말하자 안소현이 촉촉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데 허종혁이 눈물을 닦아줬다.“됐다. 더 울면 나 마음 아파.”두 사람은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해했다....안다혜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방안이 어두컴컴했다.‘아직 안 돌아온 건가?’안다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몰랐는데 차라리 잘됐네.’오는 길에 안다혜는 이 일로 고민 또 고민했는데 윤해준이 집에 없으니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안다혜가 아무 부담 없이 불을 켰는데 윤해준이 소파에 앉아 있는 걸 보고 화들짝 놀라며 미간을 찌푸렸다.“집에 있으면서 왜 불도 안 켜고 그래요?”윤해준이 대꾸하지 않았다. 오뚝한 코가 얼굴에 작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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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요새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랬어요.”안다혜는 윤해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 얼른 이렇게 말했다.“이거 놔요. 샤워하러 갈래요.”윤해준은 놓아줄 생각이 없어 보였고 안다혜가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아 오히려 안다혜를 뚫어져라 쳐다봤지만 이 일은 안다혜가 먼저 입을 열지 않으면 윤해준도 손쓸 방법이 없었다. 윤해준은 두 사람 사이가 딱딱해지는 게 싫어 더 캐물으려 했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좋았는데 안다혜가 뭔가 단단히 오해한 것 같았다.“다정아, 나는 우리 둘 사이에 오해 같은 거 없었으면 좋겠어.”윤해준이 안다혜의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렸다.“그러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얘기해.”윤해준의 부드러운 목소리는 첼로의 저음처럼 사람의 심금을 울려 안다혜의 마음이 파르르 떨렸지만 그날 윤해준이 바로 자리를 비운 게 생각나 더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묻는다고 서로 원하는 것만 취하는 번개 결혼의 목적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기에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정말 뭐 없어요.”안다혜가 다소 차가운 표정으로 윤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엄마가 언제 한번 밥 먹으러 오래요.”“불편하면 내가 거절할게요.”윤해준이 바로 대답했다.“당연히 가야지.”“장모님이 밥 사준다는 데 당연히 가야지.”장모님이라는 말이 윤해준의 입에서 나오자 안다혜는 귀가 후끈 달아올랐다.“그래요. 언제 시간 되면 말해요.”두 사람이 교묘하게 전에 나누던 대화를 스킵했다. 안다혜는 이 관계의 민낯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다. 굳이 낱낱이 까밝히기보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샤워를 마친 안다혜가 먼저 방으로 돌아갔다. 윤해준도 샤워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가 안다혜를 꼭 끌어안는데 안다혜의 몸이 굳는 게 느껴져 눈빛이 어두워지고 표정이 굳었다.안다혜는 윤해준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가 그저 손을 안다혜의 몸에 올려놓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자 몰래 한시름 놓았다.첫사랑의 존재를 안 뒤로 안다혜는 ‘부부의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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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그 얼굴을 보니 안다혜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그래요. 알겠어요.”윤해준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웃음이 얼굴로 번졌다.“윤 여사님, 그러면 문자 기다릴게.”안다혜가 알겠다고 대답하더니 회사로 향했다. 윤해준은 안다혜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차에 시동을 걸었다.출근한 안다혜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세련된 슈트를 입고 머리를 위로 묶자 매끈한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옅은 화장은 원래도 예쁜 얼굴을 더 정교해 보이게 했고 커리어우먼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인사하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는데 안다혜의 외모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자리로 온 안다혜는 어제 프로젝트팀장이 맡긴 일과 안씨 저택에서 가져온 자료를 취합하고는 무테안경을 오뚝한 콧날에 올린 채 앵두 같은 입술을 앙다물고는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모니터에서 반사된 빛이 안다혜의 얼굴의 입체감을 살려줬다. 주변이 아무리 떠들어도 안다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업무에 푹 빠져 있었다.안다혜가 원하는 건 프로젝트를 보완해 풍산 그룹 프로젝트에서 더 큰 성과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 안다혜는 줄곧 이성적이고 독립적으로 일해왔다. 그러다 보니 윤해준과 윤해준의 첫사랑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정 안되면 룸메이트 뒀다고 생각하지, 뭐.’안다혜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모든 신경을 앞에 놓인 서류에 쏟아부었고 두 자료를 취합하는 과정에 풍산 그룹의 이념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풍산 그룹이 원하는 건 레저와 휴양을 위한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온천이었기에 이 프로젝트를 따내려면 절대 전통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차원이 다른 새로운 방안을 선보여야만 여러 건축회사를 제치고 돋보일 수 있었다.안다혜가 빨간 입술을 앙다물며 김미진과 했던 내기를 떠올렸다.‘이번에는 무조건 이길 거야.’안다혜가 업무에 매진하는데 프로젝트팀장이 자료를 들고 찾아와 안다혜의 책상에 올려놓았다.“다혜 씨, 이 자료 좀 풍산 그룹에 가져다줘야겠어요.”“풍산 그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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