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율은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디서부터 입을 열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예전의 하지율이었다면 고지후 앞에서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을 것이다. 사소한 일에도 웃고 괜히 말꼬리를 늘어뜨리며 시간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꺼낼 이야기가 없었다. 임채아가 사라진 지금은 다툴 이유마저 사라져 버렸으니까.고지후는 그녀의 침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 듯, 차분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다.“많이 변했네. 예전에는 우리에게 아이만 있으면 내가 조금만 양보하고 달래주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윤택이를 이용해서 너를 붙잡으려 했지만...”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웃었다.“윤택이가 그러더라. 지금의 네가 예전보다 훨씬 행복해 보인다고.”고지후는 죄책감에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그때의 나는 몰랐어.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곁에 있는 게 가장 행복한 선택이라고만 생각했거든. 지금 와서 보니, 나는 다섯 살짜리 아이보다도 못했더라.”그 순간, 그는 하지율의 눈에서 낯선 빛을 보았다. 지난 몇 년 동안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던 생기 어린 광채였다.문득 결혼 초기가 떠올랐다. 자신과 혼인했을 때의 하지율 또한 이런 눈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는 이제야 알아차렸다.고지후가 그녀를 아내로 맞이한 이유가 아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그때는, 하지율이 자신의 아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느꼈을 뿐이었다.고지후는 그녀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약하지만 분명한 호감이 있었다. 싫어하는 사람과 결혼하기 위해 어머니와의 연까지 끊을 수는 없었을 테니까.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지율은 서서히 생기를 잃어갔다.고지후는 그 변화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습관처럼 그녀를 무시했고, 그사이 쌓이는 실망과 고통은 온전히 하지율의 몫이 되었다.어느새 그녀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사라졌고, 하지율은 시들어가는 장미처럼 말라갔다.사랑하는 사람은 꽃을 기르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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