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부자의 배신, 이혼만이 답이다!: Chapter 1221 - Chapter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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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1화

주용화는 똑똑한 사람과 상대하는 걸 좋아했다. 굳이 모든 말을 다 꺼내지 않아도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그는 문득 임채아를 떠올렸다. 당시 그가 임채아에게 투표수와 데이터 조작을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임채아는 크게 기뻐하며 그가 자신을 위해주는 줄로만 알았다.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건 주용화가 그녀 스스로 뛰어들도록 파놓은 함정이었다.그 무렵 그는 하지율에게도 같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하지율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단번에 거절했다. 그녀에게는 분명 옳고 그름을 가려낼 줄 아는 판단력이 있었다.주용화가 말했다.“유소린 씨가 우리에게 흘린 정보도 아마 손여준 쪽에서 나온 걸 거예요. 얼마 전에 손형원이 별장 안에서 유소린 씨를 대대적으로 찾았는데 끝내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손여준의 보호가 없었다면 유소린 씨가 그렇게 완벽하게 숨어 있을 수는 없었겠죠.”손형원이 갑작스럽게 권력을 움켜쥐지만 않았다면 손여준은 차기 가주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다. 가주 후보에 오를 수 있었던 사람이 손에 쥔 카드 하나 없이 버텨왔을 리는 없었다.하지율의 표정이 복잡해졌다.“유소린은 아직 자기가 들켰다는 걸 모를 거예요. 지금도 손여준 곁에 머물고 있는데 정말 괜찮을까요?”주용화는 담담하게 말했다.“손여준이 유소린 씨를 숨겨줬다는 건 우리에게 협력 의사를 분명히 밝힌 거예요. 그리고 유소린 씨는 우리와 손여준 사이에서 정보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연결 고리고요. 손여준이라는 강력한 조력자가 있으면 손형원을 무너뜨리는 건 훨씬 수월해질 겁니다. 저는 일단 그 사람과 손을 잡아도 된다고 봐요.”하지율이 갑자기 물었다.“만약 이번 제 계획이 실패하면요? 그러면 손여준은 우리와 협력하지 않겠죠? 그럼 유소린도 위험해지는 건가요?”주용화는 그녀의 희고 매끈한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는 하지율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끝내 거짓말은 하지 못했다.“맞아요. 그 사람이 정보를 준 건 지율 씨가 이 기회를 제대로 잡을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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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2화

주용화는 말을 이었다.“연태훈이 그렇게까지 연정미를 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연정미 개인이 얼마나 뛰어나서가 아니에요. 연태훈이 진짜로 보는 건 연정미가 손에 쥐고 있는 인맥과 자원이죠.”“조사해 보니 연정미는 지난 몇 년 동안 권력자들과 상당히 폭넓게 교류해 왔더군요. 손형원이나 단보현처럼 그 여자를 쫓던 사람들, 그리고 단서현이나 손형서 같은 친구들까지. 연경 그룹에 들어간 뒤로는 몸값과 입지도 함께 올라갔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상류층 인물들과 연결됐어요.”주용화의 말을 듣던 하지율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화야 씨, 손형서랑 지금도 연락해요?”주용화는 그녀를 힐끗 보고 담담히 말했다.“그 여자와는 별다른 연락이 없었어요.”하지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그런데 얼마 전에 봤을 때 두 분이 꽤 사이가 가까워 보였던 것 같아서요.”지금 그들과 손씨 가문의 관계는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만약 주용화와 손형서 사이에 감정이 얽혀 있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때 주용화가 갑자기 물었다.“내가 그 여자랑 가까이 지내는 게 그렇게 신경 쓰여요?”하지율은 멈칫하고 본능적으로 주용화를 바라봤다. 그는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녀를 보고 있었고 그의 검은 눈동자는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다처럼 어두웠다.하지율의 가슴 속에 설명하기 힘든 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예전 같았으면 당연히 상관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주용화의 인간관계는 그의 자유니까.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지금 우리와 손형원의 관계를 생각하면 화야 씨랑 손형서가 너무 가까워지는 건 좋지 않아요.”주용화가 다시 물었다.“그럼 손형원이 사라진다면요? 그 사람이 없으면 내가 그 여자와 가까워져도 문제없다는 건가요?”하지율은 주용화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손형원이 없다면 딱히 문제가 될 건 없겠죠.”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주용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그러니까 지율 씨의 입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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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3화

유민재가 들어오자 조금 전까지 굳어 있던 병실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한결 부드러워졌다. 다만 대화의 중심은 거의 하지율과 유민재였고 주용화는 좀처럼 대화에 끼지 않았다.그는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만 만지작거리며 두 사람의 대화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유민재가 주용화 곁에 붙어 지낸 지도 꽤 되었는데 지금 그의 기분이 썩 좋지 않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그는 티 나지 않게 하지율을 한 번 훑어봤지만 하지율은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특별한 감정 변화는 읽히지 않았다.셋은 잠시 더 이야기를 나눴고 그때 하지율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하지율의 눈빛이 미세하게 굳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유민재와 주용화에게 말했다.“민재 씨, 잠깐 화야 씨랑 같이 있어 주세요. 저 전화 한 통만 받고 올게요.”유민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천천히 다녀오세요.”병실을 나선 하지율은 전화를 받았다.“지율 씨.”수화기 너머로 정기석의 낮고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요즘은 어떻게 지내요?”하지율과 정기석은 꽤 오랜만에 연락했다.정기석은 사업 기반을 M국으로 옮긴 뒤 한동안 회사를 정비하는 데 매달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할머니가 위독해지자 정시온을 데리고 L국으로 돌아갔다.하지율은 담담하게 말했다.“저는 괜찮아요. 기석 씨랑 시온이는요? 아, 그리고 할머님 상태는 좀 안정되셨어요?”정기석은 한숨을 내쉬었다.“할머니가 시한부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 말로는 길어야 반년 정도라고 하더군요.”하지율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물어봐서 미안해요...”정기석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할머니랑 할아버지는 사이가 정말 좋으셨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할머니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죠. 그래도 그동안 버텨 주시면서 시온이까지 키워 주신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신 거예요.”정기석이 S시에 오기 전까지 정시온은 줄곧 정기석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이후 회사 문제로 그들이 Z국에 돌아와야 했을 때도 할머니가 직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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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4화

하지율은 병원 안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그건 저녁에 만나서 다시 이야기해요.”정기석도 더 캐묻지 않았다.“알겠어요.”시간과 장소를 정한 뒤 하지율은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병실 안에서 유민재와 주용화는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았다. 유민재는 의자에 앉아 있으면서도 좀처럼 가만히 있지 못했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는데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반면 주용화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아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총성이 터지는 효과음이 휴대폰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고 화면 속 전장은 한창 가장 치열한 국면에 들어선 듯했다.주용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캐릭터를 조작하고 있었다. 마치 감정이란 게 전혀 없는, 냉정한 저승사자처럼 상대를 하나둘씩 쓸어버리고 있었다.하지율은 의외라는 듯 눈길을 멈췄다. 그녀가 주용화를 간호하는 동안, 그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않긴 했지만 게임하는 모습은 거의 본 적이 없었다.무엇을 보고 있느냐고 물으면 늘 연예 뉴스나 사회면 기사, 가십 같은 걸 보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하지율은 그가 총상을 입은 뒤 상처에 무리가 갈까 봐 게임을 일부러 피하는 줄로만 알았다.하지율은 유민재를 바라보며 물었다.“민재 씨, 화야 씨랑 같이 게임 안 하세요?”유민재는 어색하게 웃었다.“아... 저는 게임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굳이 말하자면 그는 게임 안에서 주용화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역할이 되고 싶지 않았다. 주용화는 기분이 나쁠 때 감정을 풀기 위해 게임 속에서 무차별 학살을 벌이는 타입이었으니까.하지율은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다. 그녀는 유민재를 보며 물었다.“이따가 혹시 일정 있으세요?”유민재는 곧바로 대답했다.“아니요, 딱히 없어요. 지율 씨, 혹시 제가 도와드릴 게 있나요?”하지율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제가 잠깐 친구랑 저녁을 먹으러 나가야 해서요. 아마 여덟 시 전에는 돌아올 것 같은데 그동안 여기서 화야 씨 좀 봐주실 수 있을까요?”유민재는 반사적으로 주용화를 힐끗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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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5화

“다만 그전에 흘러 나간 소식들은 전부 연막에 불과해요.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소문들은 전부 사실이 될 거고요.”손여준이 하지율에게 제공한 자료에는 이른바 ‘어둠의 세력끼리 서로 물어뜯은’ 정황, 즉 흑막 내부의 다툼을 입증할 증거들이 적지 않게 담겨 있었다.이 증거들이 세상에 풀리는 순간, 이 일이 설령 손형원이 직접 저지른 게 아니라고 해도 그는 바다에 뛰어들어 몸을 씻는다 한들 결백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이번 일은 그야말로 벙어리 냉가슴 앓듯 손형원이 무조건 떠안을 수밖에 없는 판이었다.하지율은 다음 수를 어떻게 둘지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정기석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하지율은 생각을 거두고 고개를 들며 말했다.“왜 그렇게 보세요?”정기석은 담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오랜만에 보니까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요.”하지율은 이미 이런 말을 한두 번 들은 게 아니었다. 그래서 되물었다.“그럼 기석 씨는 제 변화가 좋다고 보세요? 아니면 나쁘다고 보세요?”정기석은 뭔가를 간파한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했다.“사람은 누구나 변하죠.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전부 지율 씨를 이루는 일부예요. 그런 걸로 너무 고민하지 마요. 이미 결정을 내렸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면 돼요.”그 말에 하지율의 눈앞을 막고 있던 안개가 바람에 쓸려간 듯 그녀의 머릿속이 갑자기 맑아졌다.그녀는 물컵을 들어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정기석은 고개를 저었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안 해도 돼요.”정기석은 하지율이 가장 무력하고 힘들 때 가장 많이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지율은 그를 더욱 신뢰했고 정기석이 무언가를 물으면 숨기지 않고 다 말했다.하지만 정기석은 손형원과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가 언제든지 나설게요.”하지율 역시 사양하지 않았다.“네. 기석 씨도 제 도움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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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6화

혹시 하지율이 오해할까 봐 걱정됐는지, 정기석이 다시 말했다.“지율 씨, 걱정하지 마세요. 그냥 연기일 뿐이에요. 절대 지율 씨에게 이상한 짓 하지 않을게요. 할머니께 남은 시간이 얼마 없으니 저희가 결혼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예전이었다면 하지율은 주저 없이 흔쾌히 동의했을 것이다. 정기석이 자신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생각하면 말이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왠지 모르게 망설여졌다. 정기석은 그녀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눈빛이 더 깊어졌다.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혹시 불편하면 괜찮아요. 굳이 억지로 도와줄 필요 없어요.”그 말에 하지율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자신이 이런 사소한 일로 망설였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꼈다.정기석이 그동안 그녀에게 준 도움을 생각하면 겨우 이 정도의 일로 망설이는 게 말이 안 되었다. 그래서 하지율은 얼른 말했다.“불편하지 않아요. 기꺼이 도와드릴게요.”그러자 옆에 있는 정시온이 먼저 신이 나서 손뼉을 쳤다.“좋아요!”정기석도 어쩐지 미소를 지었다.음식이 차려지자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이어갔고 거의 다 먹어갈 즈음, 정기석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화면을 보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전화를 받았다.“할머니.”수화기 너머로 온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기석아, 혹시 소씨 할머니 기억나니? 예전에 우리 옆집에 살았잖아. 그 소씨 할머니가 내가 M국에 와서 요양 중이라는 걸 알고 손녀 연이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어. 연이 기억하지? 어릴 때 너랑 같이 잘 놀았잖니. 연이는 아이를 특히 좋아해서 아예 체인 조기교육학원을 운영하고 있어. 너 잠시 시간 나면 시온이 데리고 와서 한 번 만나봐. 내가 보장하는데 시온이가 연이를 정말 좋아할 거야.”예전 같으면 정기석이 맞선에서 실패하면 늘 정시온 탓으로 돌리곤 했다.하지만 이번에 할머니가 ‘아이를 좋아하는 전문가’인 연이라는 여자를 내세웠으니 정시온을 설득 못할 리가 없었다.정기석은 이를 눈치채고 하지율을 바라보며 휴대폰에 대고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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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7화

정기석이 운전하던 중 길가에 있는 한 식당을 지나칠 때 하지율이 갑자기 말했다.“기석 씨, 잠깐만 기다려 주실래요? 저 가게에서 세트 메뉴 하나 포장해 가려고요.”정기석은 곧바로 차를 세웠다.식당 안으로 들어간 하지율은 메뉴를 고른 뒤 직원에게 주문했다.“청양고추, 양파, 고수는 빼 주세요. 그리고 밥과 반찬은 꼭 따로 포장해 주세요. 절대 섞어 담지 마시고요.”하지율의 요구를 듣고 정기석은 미간을 살짝 꿈틀거리며 본능적으로 식당 이름을 흘끗 쳐다보았다. 이곳은 분명 덮밥 전문 식당이었다.정기석은 눈빛이 깊어졌고 식당 직원이 포장을 마친 뒤 그는 하지율에게 물었다.“지율 씨, 이거 혹시 화야 씨한테 저녁으로 먹이려고 포장하는 거예요?”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그걸 어떻게 아셨어요?”정기석이 말했다.“전에 화야 씨가 다쳐서 입원했다고 했잖아요. 게다가 지율 씨는 매운 거 잘 먹고 고수도 안 먹는 걸 본 적이 없거든요.”아까 대화할 때 정기석이 손형원에 대해 깊이 묻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율은 주용화가 입원한 것도 일부러 꺼내지 않았었다.정기석이 물었다.“화야 씨, 지금 상태는 어때요?”하지율이 대답했다.“별일 없어요. 며칠만 더 있으면 퇴원할 것 같아요. 지금 화야 씨의 친구가 병실에 함께 있어요. 방금 메시지가 왔는데 화야 씨가 오늘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병원의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제가 세트 메뉴 하나 사 가려고요.”그 말에 정기석의 눈빛이 복잡해졌다.“지율 씨가 화야 씨의 취향을 꽤 잘 아는 것 같네요.”하지율이 담담히 말했다.“저를 지켜주는 사람이니까요. 매일 함께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도 있죠.”그러나 정기석의 눈빛은 점점 더 깊고 복잡해졌다.“알아요, 너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요.”그 말에 하지율은 멈칫했다.정기석은 차분하게 말했다.“그럼 가요. 제가 데려다줄게요.”...주용화는 병실 창가에 서서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또 창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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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8화

하지율은 오랜만에 정시온을 만나서 기분이 한층 좋아졌고 목소리조차 평소보다 부드럽고 경쾌하게 변했다.그녀가 말했다.“저녁 먹으러 간 식당이 손님이 엄청 많고 음식 나오는 속도도 느려서 조금 늦었어요.”하지율의 눈빛과 미소에서 흐르는 온화한 기운을 느낀 주용화는 왠지 마음이 답답해졌다. 그런데도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켰다.눈치 빠른 하지율은 주용화가 기분이 좋지 않은 듯하다는 걸 느꼈고 혹시 자신이 늦게 돌아온 탓에 주용화가 아직 아무것도 못 먹어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늦게 돌아와서 미안해요. 내일은 좀 더 일찍 올게요.”주용화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었다.“내일요? 또 정기석 씨를 만나러 갈 거예요?”하지율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기석 씨의 할머님이 M국에 오셔서 내일 뵈러 가야 해요.”주용화가 말했다.“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하지만 하지율은 단호하게 거절했다.“괜찮아요. 화야 씨는 아직 다 낫지 않았잖아요. 이럴 때는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마요.”주용화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안 돼요. 혹시 위험한 일이 생기면...”그러나 하지율이 그의 말을 끊었다.“제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기석 씨가 내일 직접 데리러 올 거라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주용화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다음 날, 정기석은 하지율을 데리러 일찍 병원에 왔고 병실에 들러 주용화를 잠깐 살폈다.주용화는 정기석이 오자 쌀쌀하게 맞이하며 간단히 인사만 하고는 다시 침묵을 지켰다.정기석은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화야 씨, 상처 잘 치료하세요. 지율 씨는 걱정하지 마시고요. 제가 잘 챙길 테니까.”주용화는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이 떠나는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보았다.정기석 할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하지율은 백화점에 들러 몇 가지 선물을 골랐다. 선물을 고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는지, 정기석의 휴대폰이 울렸다.전화를 받자 할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우리 손주며느리 언제 도착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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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9화

하지율은 정기석 할머니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할머니.”할머니는 아주 흐뭇해하며 기뻐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아가, 기석이는 어려서부터 우리가 너무 감싸며 길러서 그런지 여자한테 다정하게 대하는 법을 몰라. 하지만 걱정하지 마. 이따가 너희가 오면 이 할머니가 그 녀석을 제대로 혼 내줄 테니까. 자기 여자 친구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모르다니, 그건 너무하잖니. 하지만 괜찮아. 앞으로 이 할머니가 네가 좋아하는 거 다 기억해 둘게.”할머니의 말투는 따뜻하고 자상했다.“혹시 기석이가 너를 괴롭히면 바로 할머니한테 말해.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까.”하지율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할머니.”정기석의 할머니는 기대에 찬 말투로 덧붙였다.“시온이한테 부탁해서 네 사진도 봤어. 정말 믿기지 않는구나. 우리 기석이가 이렇게 예쁜 여자 친구를 찾았다니. 내가 기석이한테도 분명히 말했어, 너를 절대 소홀히 대하지 말라고...”할머니가 또 잔소리를 늘어놓자 결국 정기석은 참다못해 하지율이 들고 있는 휴대폰을 뺏었다.“됐어요, 할머니. 집에 가서 이야기해요.”그의 할머니는 투덜거리듯 말했다.“아이고, 그래. 내가 또 쓸데없이 말이 길었구나.”정기석은 차분히 말했다.“지율 씨가 해산물도 안 먹고 생 음식도 안 좋아하니까 이 두 가지는 준비하지 마세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알겠어.”...정씨 가문 본가에 도착한 뒤 정기석은 양쪽을 소개했다.“지율 씨, 이분이 제 할머니세요.”하지율은 은발의 미소가 온화한 노인을 바라보며 공손히 인사했다.“할머니, 안녕하세요.”정기석의 할머니는 눈가의 주름까지 함께 찌그러지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하지율의 손을 꼭 잡았다.“아이고, 사진보다 훨씬 예쁘구나. 기석아, 너 참 복 많구나.”곧 할머니는 하지율을 자리에 앉히고 식사를 시작했다.정기석 할머니의 성격이 매우 부드럽고 편안해서 하지율은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또 하지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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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0화

수백억 원대의 가문의 보물을 그냥 선물로 준다니, 하지율의 마음속에서 묘한 감정이 일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거절했다.“이건 받을 수 없어요. 너무 귀중한 물건이잖아요.”그러나 정기석의 할머니가 단호하게 말했다.“시온이가 그러던데, Z국에 있을 때 네가 늘 시온이를 잘 챙겨줬다며. 시온이도 너를 많이 좋아하더구나. 너무 부담 가지지 마. 네가 정씨 가문에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내가 고마운 마음으로 꼭 너한테 주고 싶어서 그래.”하지율은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상했고 그녀는 생의 마지막을 앞둔 할머니를 속이는 것이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그때 옆에서 정기석이 말했다.“지율 씨, 그냥 받아요.”정기석이 이렇게 말했으니, 하지율도 더 이상 거절하기 어려웠다.“감사합니다, 할머니.”정기석의 할머니는 팔찌를 그녀의 손목에 살며시 채우며 말했다.“앞으로 누가 감히 널 괴롭히면 바로 할머니한테 말해. 내가 반드시 네 편이 되어 줄 거야.”하지율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씨 가문 저택을 떠난 후 하지율은 손목의 팔찌를 조심스럽게 풀어 정기석에게 건넸다.“기석 씨, 이 팔찌 돌려드릴게요.”하지만 정기석은 고개를 저었다.“이건 할머니가 준 거니까 그냥 지율 씨가 갖고 있어요. 다음에 할머니 댁에 갈 때 지율 씨가 이걸 안 차고 있으면 물으실 거예요.”하지율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그래요, 그럼 반년 후에 다시 돌려드릴게요.”정기석도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대신 말했다.“그럼 이제 병원에 데려다줄게요.”...병실 문을 열고 들어선 하지율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석양의 잔광이 깨끗한 통유리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와 남자의 선이 뚜렷한 얼굴 위에 붉은빛을 살짝 입혔다. 지금 그의 모습은 마치 고풍스럽고 우아한 한 폭의 그림 같았다.하지율은 예술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회화를 배웠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그녀는 왠지 모르게 이 남자를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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