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는 알고 있었다.만약 하이현이 아직 살아 있었다면, 지금 이 무대 위에서 자신이 누리는 환호와 존경은 모두 하이현의 그늘에 가려졌을 거라는 사실을.해리는 평생을 다 바쳐도 하이현이라는 벽을 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자신의 빛과 명성이 아무리 찬란해도, 하이현이 활을 올리는 순간이면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하이현을 비추니까 말이다.그 압도적인 실력의 차이를, 해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다행히도, 하이현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그 소식을 들은 날, 해리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었다.세상이, 운명이, 모두 자기편을 들어 준다고 믿었다.이제는 누구도 해리의 머리 위에 서지 못한다고 확신했다.하이현이 죽은 뒤, 해리의 실력은 말 그대로 폭발적으로 치솟았다.현성 대가를 제외하면, 바이올리니스트 중에서 해리는 단연코 일인자였고, 감히 그를 넘어서는 사람은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그런 기분은 통쾌했고, 홀가분했다. 심지어는 하이현에게 지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고 상상했다.“봐. 나는 이미 당신이 결코 닿을 수 없던 높이에 올라와 있어.”해리는 언제나 피라미드 꼭대기에 선 채 모든 사람을 벌레 보듯 했다.세월이 흐를수록, 해리는 패배라는 감각이 어떤 것이었는지조차 서서히 잊어 갔다.그런데 지금 이 순간 하지율의 손에 들린 그 악기를 보자마자 해리의 가슴 속에서 익숙한 압박감이 천천히 꿈틀거렸다.멀어져 가는 하지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해리의 눈빛이 차갑게 식어 갔다.‘착각이겠지.’지금 하지율의 나이는 그때의 하이현보다도 더 어리다. 그러니 그 어린 나이로 어떻게 해리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하지만 하지율은 강병주보다도 더 타고난 재능을 지녔다.그렇기에 단 1초의 틈도 주어서는 안 된다.해리가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한, 하이현과 하지율 모녀에게는 영영 빛이 비치지 않을 것이다....무대의 조명이 천천히 켜지고, 하지율의 실루엣이 은은하게 무대 중앙에 나타났다.머리 위 스포트라이트가 하지율을 감싸안았고, 하지율의 손에 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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