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271 - Chapter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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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1화

하도원은 절대 뒤에서 칼을 꽂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앞에서 찌르면 모를까...이런 생각을 하니 임서율은 마음이 편해졌다.“어차피 지금 대표님한테 묶인 상태잖아요. 전 이미 이용 가치가 없어요.”“그럼 일단 빚진 거로 할게요. 서두를 필요 없잖아요? 나중에 천천히 갚아요.”하도원은 비워진 잔을 내려놓고 이불을 젖히며 침대에 누웠다.“노래 불러줘요.”임서율은 시계를 확인했고 정말 늦은 시간이었다.그녀는 불 끄고 침대 옆 탁자에 있는 작은 무드등만 남겨두었다.그러고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 후 하도원에게 노래를 불러주기 시작했다.발매된 지 아주 오래된 ‘붉은 노을’이었다.가사를 거의 다 잊어버린 상태였지만 방금 차주헌과 강수진이 있는 사이 옆방에서 휴대폰으로 검색해 살짝 연습해 둔 덕분에 버벅거리지 않았다.다른 노래도 준비했는데 한 곡을 다 부르기도 전에 하도원의 안정된 호흡 소리가 들려왔다.임서율은 의도적으로 노래를 멈추며 하도원이 정말 잠들었는지 확인한 후에야 방을 나섰다.문 앞에 누워있던 율이는 임서율을 보자마자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차주헌에게 며칠 동안 양지우 집에 있다는 핑계를 대서인지 마음이 조마조마해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차주헌이 거짓말을 알아챌까 봐 걱정되었지만 너무 외진 곳이라 택시를 부르기도 불편했다.‘일단 참자.’임서율은 곧장 옆에 있는 게스트룸으로 갔다. 불을 켜자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가 보였다.방금은 차주헌을 피하는 데 급급해 방 안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다.침대 시트는 새 것 같은 느낌이었고 소재도 너무 부드러워 만져보기만 해도 이미 졸음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대표님은 정말 수면장애가 있는 걸까?’‘수면 장애가 있는 사람이 저렇게 빨리 잠든다고?’노래를 부른지 고작 몇 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하도원은 이미 잠든 상태였다.임서율은 고개를 저으며 이런저런 생각들을 지운 후 대충 씻고 침대에 누웠다....차주헌과 강수진은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서를 작성했다.애초에 큰 문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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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하지만 곧이어 강수진은 또 다른 사실을 깨달았다.“만약 서율 씨가 정말 하 대표랑 결혼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야?”이 역시 차주헌의 가장 큰 걱정거리이자 그의 가슴에 박힌 가시였다.필사적으로 임서율과 하도원의 접촉을 막으려는 이유이기도 하다.그는 체면을 구길 자신이 없었고 차씨 가문도 체면을 잃을 수 없었다.강수진과 함께 경찰서를 나온 차주헌은 참지 못하고 다시 임서율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돌아오는 건 그녀의 문자뿐이었다.[무슨 일이야? 나 지금 지우 집에 있어. 내일 얘기하자.]차주헌이 답장을 하기도 전에 임서율이 또 다른 문자를 보냈다.[오늘 하 대표님 집에 갔었어?]갑작스러운 질문에 차주헌은 당황했다.그녀가 하도원의 집에 들어가는 걸 강수진을 통해 알게 됐다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하도원과 단둘이 있을 거라 의심하고 쳐들어갔는데 방에서 임유나를 발견했다고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래서 차주헌은 애매모호하게 답장했다.[하 대표님에게 볼 일이 있어서 갔는데 거기서 유나 씨를 봤어. 하 대표님이랑 만나는 사이야?][잘 모르겠는데? 궁금하면 유나한테 직접 물어봐.]임서율은 자신을 이 일에서 완전히 배제했고 차주헌은 더 이상 묻지 못했다.[그럼 오늘 밤도 안 들어오는 거야?][지우 집 정리하는 거 도와주느라 오늘은 안 들어갈 거라고 했잖아.]할 말을 잃은 차주헌은 그저 일찍 쉬라고만 답장을 보냈다.다음 날 아침, 오늘은 강혜수의 비석을 이장하는 중요한 날이라 임서율은 일찍 일어나 집으로 돌아갈 택시를 잡았다. 비로소 모든 게 차차 제 자리를 되찾았다.강혜수의 생전 소원이 나중에 합장될 수 있도록 임규한과 가까운 곳에 묻히는 것이었다.하지만 중간에 어떤 사건으로 임태규가 임씨 가문에 묘지를 묻는 걸 강력히 반대했다.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한 일일 수 있지만 임서율에게는 가슴에 박힌 가시와 같았다.임서율은 하도원에게 알리지 않았다. 수면 장애가 있으니 더 자게 내버려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떠나기 전 율이 밥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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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하도원은 아주 평범한 얘기를 듣고 있는 듯 조금도 놀란 기색이 없었다.그는 무심코 계란 하나를 깨며 휴대폰을 스피커 모드로 바꿨다.“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 안 해도 알지?”“네.”“그리고 오늘 임씨 가문에 큰 행사가 있는 모양입니다...”...임서율은 옷을 갈아입은 후 임씨 가문으로 돌아왔고 임유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정설아는 임서율을 대하는 태도가 180도 돌변했고 평소엔 볼 수 없었던 환한 표정으로 다가와 임서율의 손을 잡았다.“서율아, 오늘 늦을 줄 알았는데 시간 맞춰서 잘 왔구나.”임서율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했다.“엄마가 집에 오시는 날인데 제가 어떻게 늦겠어요.”정설아는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그러니까. 저쪽에서 이미 준비 중이야. 우리가 제사를 마치면 예식은 끝나는 거야.”임서율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설아는 임서율이 본인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록 임유나가 임씨 가문의 딸이지만 머리도 얼굴도 임서율보다 못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임서율을 더 마음에 들어 했었다.하지만 임서율은 강혜수의 일로 늘 원망 섞인 마음으로 지냈다.그녀는 정설아가 임태규 앞에서 강혜수를 헐뜯었기 때문에 할아버지가 엄마를 싫어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에 임씨 가문의 족보에 오르지 못했고 임씨 가문에 묻히지 못했다고 확신했다.만약 임서율이 진짜 딸이었다면 지금쯤 진작에 출세했을 것이다.임유나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디 한 군데도 아가씨 같은 모습이 없었고 여전히 촌스럽기만 했다.몸에 명품을 잔뜩 걸치고서야 다른 사람과 겨우 수준이 비슷해 보일 정도였다.하지만 임서율은 다르다. 평범한 옷을 입어도 남다른 포스가 느껴졌고 그 아우라에는 청량함까지 더해져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임서율만 원한다면 운성의 부잣집 자제들은 마음대로 고를 수 있었다.차씨 가문에 시집간 것도 괜찮은 편이지만 강혜수의 일로 생긴 원망 때문에 정설아는 임서율의 덕을 보지 못했다.그러니 이제 모든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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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임서율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줄 전혀 몰랐던 정설아는 그대로 말문이 막힌 채로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옆에 있던 임유나도 그 말을 이해했는지 갑자기 표정이 달라졌다.이를 알아챈 정설아가 임유나를 끌어당기며 말했다.“유나야, 네가 직접 언니한테 말해봐. 하 대표 어때?”임유나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재빨리 입을 열었다.“좋아요. 얼굴도 잘생겼는데 누가 안 좋아하겠어요? 운성 전체를 둘러봐도 하 대표님을 안 좋아하는 여자는 없을 거예요.”임서율은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였다.“누가 그래? 난 안 좋아하거든?”하도원은 입이 독하다. 강철 멘탈인 임서율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유리 멘탈인 임유나야.농담이 아니라 임유나는 하도원의 팩폭 두 마디 정도에 무너질 정도로 약한 사람이다.하지만 임유나는 임서율의 말을 믿지 않았다.“어차피 다 가족인데 그냥 솔직하게 말해. 하 대표님 좋아하잖아. 그게 아니라면 한밤중에 형부 몰래 하 대표님 집에 갈 일도 없겠지.”“내가 갔을 때 하 대표님 막 샤워를 마친 상태였어. 둘이 뭐 했어?”임유나는 임서율이 싫었다. 중요한 순간에는 부르지도 않더니 둘이 할 거 다 해놓고 뒤처리용으로 불러서 보호막 역할을 시켰으니 너무 불쾌했다.임서율은 임유나의 표정만 봐도 그녀의 머릿속이 온통 이상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었다.“머릿속에 들어있는 더러운 생각 좀 치워줄래? 남자랑 여자가 같이 있으면 꼭 그런 일을 해야 한다는 거야?”임유나는 파고들며 물었다.“그게 아니라면 뭐했는데?”“당연히 일 얘기했지.”임서율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임유나는 여전히 믿지 않았다.“그럼 일 얘기하다가 하 대표님이 샤워하러 들어갔다는 거야?”“유나야, 언니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너부터 잘해.”이때 임규한이 위층에서 내려왔다.임유나는 평소에도 임규한이 임서율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알고 있었고 무슨 일이든 항상 임서율을 먼저 챙겼다.그러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히 임씨 가문의 딸은 그녀인데 임서율이 그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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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그리고 이건 그냥 들은 건데... 요즘 형부 계속 다른 여자랑 같이 다니는 거 같대. 설마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임서율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실 그녀는 속내를 잘 숨기는 못하는 성격이었고 특히 임유나의 그 말은 가슴 가장 아픈 곳을 찌르는 거나 다름없었다.가끔은 아예 연기조차 할 수 없을 때가 있다.임유나는 마친 신대륙을 발견한 듯 눈이 반짝였다.“진짜야?”표정이 굳어진 임서율은 극도의 당혹감에 사로잡혔다.분위기가 가라앉는 순간 밖에서 집사가 소리쳤다.“차 대표님 오셨습니다.”그 말에 임서율은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 동시에 사위가 아닌 차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귀에 따끔하게 박혔다.비록 익숙해졌지만 매번 들을 때마다 여전히 누군가가 칼로 심장을 후벼파는 것처럼 아팠다.이미 아물었던 상처가 다시 피를 흘리며 벌어지는 고통이랄까?차주헌은 양손 가득 짐을 들었고 뒤를 따르던 이재우도 마찬가지였다.그 모습에 정설아는 깜짝 놀라며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하지. 그럼 문 앞까지 마중 나갔을 텐데.”차주헌은 임서율과 정설아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모두에게 예의를 차리는 건 당연하다.“어머님.”“안 그래도 방금까지 차 서방 얘기했어. 오랜만에 서율이랑 같이 있는 것 같네? 둘이 싸웠어?”정설아는 차주헌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동시에 그가 들고 있는 짐들을 한참이나 쳐다봤다. 임서율은 봉투를 뚫고 들어갈 듯한 정설아의 시선과 탐욕스러운 모습이 너무나 역겨웠다.하지만 정설아의 잡담과 탐욕보다 더 궁금한 건 차주헌이 어떻게 대답할지였다.임서율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차주헌을 바라봤다.차주헌은 임서율 앞으로 다가가 물건을 옆에 있던 도우미에게 건네더니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다른 손으로 수화를 했다.“어제 불꽃놀이도 해주고 꽃도 선물해 줬어요. 요즘 일이 너무 바빠서 잘 못 챙겨줬거든요. 그래서 화가 난 모양이에요.”임서율은 지난 7년 동안 봐온 그 눈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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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정설아는 언제나 뒤에서만 수를 썼다. 누가 못마땅해도 절대 앞에서는 내색하지 않았고 꼭 뒤에서 헐뜯었다.그런데 막상 공개석상에 나가면 원수도 자기 딸처럼 대해버리는 사람이다.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임서율은 정설아가 강혜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겉으로는 후배들에게 늘 어른을 공경해야된다고 말하고 강혜수를 마치 친언니 대하듯 행동했다.하지만 임서율이 기억하는 정설아는 예전부터 강혜수를 수도 없이 배신해온 사람이었다. 겉으론 돕는 척하면서도 뒤에서는 몰래 임규한을 유혹했었으니까.몇 사람이 막 현관에 도착했을 무렵, 한 남자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남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고 머리는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뒤로 단정하게 넘겼다.평소에도 차가운 인상이었지만 지금은 더더욱 날이 서 있었고 묘한 긴장감마저 풍겼다.하도원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조용히 한 번 훑어본 뒤,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아저씨, 아주머니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임규한도 알고 있었다. 예전에 강혜수가 어린 시절의 하도원을 도운 적이 있다는 걸.이 시점에 굳이 찾아온 걸 보면 정말로 인사만 드리러 온 거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굳이 말리지 않았다.게다가 요즘 임태규가 임유나와 하도원을 엮어보려는 기색도 보이니, 혹시 둘이 잘되기라도 하면 하도원이 사위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그래, 고맙구나.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잊지 않고 와줘서.”임유나는 하도원을 보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재빨리 다가가, 그의 팔에 조심스럽게 손을 올렸다.그녀의 목소리도 평소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애교가 섞여 들렸다.“올 거였으면 미리 말이라도 해주죠. 그랬으면 저도 같이 왔을 텐데.”“저도 갑자기 결정해서 온 거예요.”하도원은 말끝을 흐리며 자연스럽게 팔을 슬쩍 빼냈다.임유나는 허공에 붕 떠 있는 손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정설아는 한층 더 적극적으로 다가와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도원아, 다음에 집에 올 일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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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지금 이 시점에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절대 피해야 했다.혹시라도 임태규가 자신과 하도원 사이에 뭔가 사적인 거래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정말 다리뼈가 부러질지도 몰랐다.하도원의 깊고 어두운 눈빛이 임서율을 향해 스치듯 흘렀다.그저 무심히 스친 시선이었지만, 임서율은 그 눈길이 자신에게 적어도 서너 초는 머물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그 짧은 순간이면 충분했다.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기에 충분했으니까.그때 하도원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노래요.”임규한이 다소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다.“노래? 그건 또 처음 듣는 얘기네. 보통은 뭐 한약이나 침,이런 거 얘기하지, 노래는 처음 들어보는 방법이야.”“그럼 노래라면 그냥 틀어놓기만 해도 되는 건가?”하도원은 어딘가 의미심장한 말투로 고개를 젓는다.“아뇨, 직접 불러야 해요. 틀어놓는 건 효과 없다고 하더라고요.”정설아가 재빨리 끼어들었다.“도원아, 우리 유나가 노래를 꽤 잘해. 시간 될 때 한 번 들어봐.”임유나는 마치 보물을 자랑하듯 재빠르게 하도원 앞으로 다가섰다.“맞아요, 하 대표님. 저도 노래 잘해요. 대학 다닐 때 상도 받은 적 있다니까요! 제가 한 곡 불러드릴게요.”그러고는 망설임 없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청아한 음색이 울려 퍼지자 주변이 순간 조용해졌다. 마치 꾀꼬리가 지저귀는 듯한 소리였다.임서율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 실력만큼은 자신보다 확실히 낫다는 걸.사실 마음 한켠에선 임유나가 대신 하도원에게 노래를 불러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러면 자신은 더 이상 계약 위반이 아닐 테니까.그녀가 대신 해도 아무 문제 없지 않을까. 비록 임유나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그들은 가족이었으니까.임유나는 몇 소절을 부른 뒤 조심스럽게 멈췄다.사람들은 하도원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그 순간 임서율의 눈에 비친 하도원은 마치 사람의 운명을 쥐고 있는 판관 같았다. 그에 비해 임유나는 한 남자에게 모든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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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임서율은 그 순간 진심으로 하도원을 발로 걷어차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역시나. 이 남자는 남의 곤란한 꼴 구경하는 걸 세상에서 제일 좋아한다. 세상이 뒤집어져야 속이 시원한 사람이었다.머리를 재빨리 굴리던 그녀는 곧 하나의 핑계를 떠올렸다.아주 적당하고, 절묘한 핑계 말이다.“아빠, 저번에 우연히 하 대표님 치료해주신 한의사 선생님을 만났었거든요. 근데 며칠 전엔 밖에서 불량배한테 휘말렸어요. 그때 마침 하 대표님이 절 도와주셨고 저 대신 다치셨어요.”임규한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지며 임서율을 위아래로 살폈다.“다친 데는 없냐?”“아니에요, 저는 괜찮아요. 오히려 하 대표님이 저 때문에 다치셨어요. 등에 칼 맞은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어요.”임규한의 관심이 온통 자신의 상처에 쏠리는 걸 보자, 임서율은 마음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나마 위기에서 벗어난 느낌이었다.그러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순간, 하도원이 얕은 웃음을 머금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목격했다.분명 웃고 있는데 소름이 끼쳤다. 그 눈 속에 담긴 건 결코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그의 눈동자는 마치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같아서, 임서율은 자주 그와 시선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웠다. 보고 있으면 괜히 빠져버릴 것만 같아서.이후로 하도원에 대한 임규환의 태도는 확연히 누그러졌다.그는 정중한 말투로 하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원아, 정말 미안하게 됐구나. 우리 서율이 때문에 괜한 고생을 했네.”하도원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사실 별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에요. 그때 임서율 씨가 차 대표님께 전화도 했던 것 같긴 한데... 아마 그 시간엔 차 대표님이 회사 여직원분과 함께 계셨던 것 같더라고요.”그 말을 끝낸 하도원은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슬쩍 차주헌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그리자 임씨 가문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차주헌에게로 쏠렸다.임씨 가문뿐만이 아니었다. 운성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다. 차주헌이 임서율을 얼마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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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임서율의 인생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큰 변화를 겪고 있었다. 마치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처럼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린 느낌이었다.임유나가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잘해보려 했었다. 고분고분 비위를 맞췄고 환심을 사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다른 이유가 아닌 그저 이 집에 남고 싶었다.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 곁에 머물고 싶었을 뿐이었다.하지만 임유나는 그걸 원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간질하고 상황을 엉망으로 만든 끝에 결국 차 회장이 임서율을 쫓아내게 했다.그 시기에 그녀는 차주헌을 만났다.처음엔 그가 자신의 구원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결국 그도 그녀를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최근 임서율은 많은 걸 깨달았다.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차주헌에게 의존했는지, 그를 통해 마음속의 상처를 메우려 했던 게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도.이제야 자신의 상처는 결국 본인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누군가에게 의지해 메워지기를 바랄수록 그 사랑이 변해버리는 순간, 자신은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임서율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고마워요, 아빠...”차주헌의 얼굴은 형편없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속내를 드러낼 정도로 교양이 없진 않았기에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아버님, 지난번 일은 확실히 제 불찰이었습니다. 당시 회사 프로젝트 때문에 동료와 논의 중이었어요.”“제 부주의였습니다. 하지만 서율이에 대한 제 마음만큼은 확실해요. 전 한 번도 서율이와 이혼할 생각을 해본 적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일 없을 거고요.”차주헌의 변명에 임규한은 딱히 반응하지 않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같은 남자로서 사랑이란 결국 그 순간의 감정일 뿐이라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사랑할 땐 모든 걸 다 줄 것처럼 굴지만 마음이 식으면 아무리 애써도 붙잡히지 않는 것이 남자의 마음이니까.그리고 그걸 억지로 붙들어둘 사람도 없었다.임서율은 차주헌의 말에 단 한 마디도 반응하지 않았다.그 말 속에서 느껴진 건 오직 조소뿐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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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예전 한종서도 그녀에게 혼사를 청한 적이 있었다.임서율은 거절했지만 소용없었고 결국 그는 할아버지를 들먹이며 압박했다. 그가 직접 임씨 가문에 찾아와 청혼 의사를 밝힌 순간, 임씨 가문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때 임규한이 임태규에게 말했었다. 임서율은 친딸이 아니며 곧 언론을 통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사실 한씨 가문은 애초에 임씨 가문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종서가 극단적으로 단식투쟁까지 벌이지 않았다면 한 회장 역시 그 혼사를 억지로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한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데,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 오를 각오로 평범한 여자를 며느리로 들이겠는가.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면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테니, 결국 한 회장이 먼저 발을 뺐고 그 뒤로 한종서도 조용히 입을 닫았다.그 일은 분명 임서율에게 커다란 상처였지만 지금 와서 보면 오히려 그녀를 구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면 그녀의 인생은 그날로 끝장이었을 것이다.임서율은 한종서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뻔히 알기에 그런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임규한에게 조용히 말했다.“아빠, 전 방에 좀 들어가 있을게요.”임규한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잠깐 피해 있어라.”임서율이 몸을 돌려 계단을 오르려는 찰나, 그놈의 익숙하고도 듣기 싫은, 건들건들하고 건방진 목소리가 바로 귀를 때렸다.“어이, 이게 누구야? 우리 임서율 양 아니신가? 내가 온다는 소식 미리 들었나 보지? 방으로 도망치려다 딱 걸렸네?”임서율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어버렸다.계단 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하얀 손마디가 드러났다.뒤늦게 뛰어온 도우미가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죄송합니다. 막으려 했는데 막지를 못했습니다.”임규한은 한종서의 버릇을 잘 알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제멋대로 굴고 남 체면 따위는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놈.그는 도우미에게 손짓만 했다.“됐으니 나가봐요.”임서율은 더 이상 피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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