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621 - Chapter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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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1화

“약 갈 시간입니다.”의사가 병실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임서율은 화들짝 놀라, 반사적으로 하도원을 밀어내고는 흐트러진 머리칼을 허겁지겁 정리했다.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가와 말했다.“거즈 갈아야겠네요. 아까 잠깐 외출하셨죠? 지금쯤 약이 다 스며 나왔을 겁니다.”하도원은 태연히 침대에 누웠다.“수고 많으십니다, 선생님.”의사가 커튼도 치지 않은 채 바지를 내려 상처를 확인하려 하자 하도원이 허리끈을 붙잡았다.“잠깐만요. 커튼 좀 쳐주시겠어요?”의사는 실소를 흘렸다.“이런 걸 뭘 가려요. 두 분 연인 사이 아니던가요? 이 정도도 피하시게요?”임서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라리 안 치면 좋았다. 그럼 그 틈에 하도원의 허벅지 근처에 남은 상처 자국을 볼 수 있을 테니까. 예전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끝내 확인하지 못했었다.하도원이 가볍게 기침하며 낮게 중얼거렸다.“여자 친구가 좀 부끄럼이 많아서요. 지금 제 상태, 아시잖습니까.”그 목소리는 의사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았다. 의사는 순간 멈칫하더니, 어쩐지 놀란 표정으로 임서율을 곁눈질했다.임서율은 그 시선을 받고 괜스레 당황해 물었다.“의사 선생님, 어디 문제라도 있나요?”“아, 아닙니다.”의사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당기더니 이내 두 사람 사이에 커튼을 드리웠다.뜻밖의 행동에 임서율은 순간 멍해졌다.두 사람은 대체 무슨 말을 나눈 걸까.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별로 유쾌한 말은 아닐 게 뻔했다.하지만 그렇다고 못 보게 두겠다는 건 불가능했다. 그녀는 조심스레 커튼 가장자리를 집어 조금 벌렸다. 작은 틈 사이로 보이는 건 단단히 다져진 그의 허벅지와 매끈한 근육 선이었다.임서율은 고개를 흔들었다.지금은 감탄할 때가 아니었다.그녀는 조금 더 커튼을 젖혀 시야를 넓혔다. 의사가 허리를 굽히고 상처를 소독하고 있었다. 피부 곳곳이 벌겋게 벗겨져 피멍이 들었고 살점이 드러난 자리는 처참했다. 그걸 보는 순간 임서율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하도원이 한종서의 사람들과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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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의사가 고개를 돌려 임서율을 보며 말했다.“심하게 무리하지 않는 한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결국 피부 외상이라 내상보단 훨씬 낫죠.”임서율도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뼈와 근육을 다치지 않았으니 크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되었다.의사가 나간 뒤, 하도원이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방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임서율은 여전히 똑같은 대답만 내놨다.“아무것도 아니에요.”하도원은 태연히 소매를 걷어 탄탄한 팔뚝을 드러냈다.“임서율, 다른 방법 쓰게 하지 마.”임서율은 속으로 혀를 찼다.도대체 이 남자는 어떻게 아는 걸까. 그녀가 뭔가 감추고 있다는 걸 기가 막히게 알아챈다. 정말 티가 그렇게 많이 났단 말인가.결국 그녀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으니까.“몇 년 전, 그 화재에서 날 구한 게 당신이었죠?”하도원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지만 곧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그의 입가엔 오히려 장난스러운 웃음이 번졌다.“임서율, 아까 나 훔쳐봤지?”그 강렬한 시선에 임서율은 마치 현장에서 들킨 범인처럼 숨이 턱 막혀 급히 변명했다.“그냥... 우연히 본 거예요.”하도원은 믿지 않는 눈치였고 미묘하게 치켜오른 눈썹에 의심이 가득 묻어났다.“정말 우연히 본 거야? 아니면 일부러 본 거야?”“그게...”임서율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그가 그런 눈빛을 보내는 한, 버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마치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었는데 그의 앞에서는 작은 비밀 하나조차 숨길 수 없을 것 같았다.하도원이 그녀의 붉어진 뺨을 손가락으로 꼬집으며 낮게 웃었다.“거짓말은 결국 들통나고 종이로는 불 못 가리지.”임서율은 억울해 반박했다.“당신은요? 거짓말 안 했어요? 몇 년 전 날 구한 게 당신이면서, 왜 그렇게 오래 숨겼는데요? 왜 차주헌이라고 속인 건데요?”그게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녀를 구해주고도 차주헌에게 모든 공을 넘겨주었고 오랫동안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속였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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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임서율은 알지 못했다. 하도원이 그녀를 이해하기 시작한 게 단지 지금부터가 아니라는 걸. 아주 어린 시절, 첫 만남부터 그는 늘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녀가 모르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도록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하도원은 턱을 괴고 있었는데 임서율의 말에도 전혀 기분 상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미롭다는 듯, 길고 깊은 눈매에 다정한 빛을 담았다.“좋지. 네가 원한다면 나 나가서 관상이라도 봐줄까? 상이라도 차려줘. 상처만 다 났으면 당장이라도 나가겠어.”임서율은 괜히 던진 농담일 뿐이었다. 게다가 이 남자의 얼굴은 굳이 따질 데가 없었다. 유창한 윤곽, 높이 솟은 콧대, 옅은 붉은 빛이 도는 입술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었다. 정말 그가 길거리에서 관상을 본다면 사람들이 몰려드는 건 점괘가 아니라 그의 얼굴 때문일 게 뻔했다.임서율은 고개를 돌리며 대꾸했다.“진짜 파산하면 그때 다시 얘기해요.”하도원의 표정이 한순간 애처롭게 바뀌었다. 맑은 눈동자가 촉촉이 젖은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평소의 차갑던 모습과는 완전 딴판이었다.“그럼 내가 정말 망하면 서율이 네가 나 먹여 살릴 거야?”임서율은 그가 장난을 치는 걸 뻔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손을 꼭 잡아주며 진지하게 말했다.“걱정 마요. 그땐 우리 같이 배달이라도 하면 되죠. 당신을 굶게 하진 않을 거예요.”하도원은 낮게 웃음을 터뜨리며 그녀의 손을 빼냈다.“웃기고 있네, 저리가.”임서율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먼저 시작한 건 당신이잖아요. 난 그냥 맞장구친 것뿐인데요?”그제야 하도원은 진지한 기색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손을 다시 잡아, 거친 손끝으로 손등을 쓰다듬으며 물었다.“임서율, 네 무용담 좀 말해봐. 도대체 한 회장한테 무슨 말을 했길래, 그 양반이 병원 신세까지 지게 된 거야?”임서율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별말 안 했어요. 어차피 당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게 뻔했으니까, 그냥 있는 대로 다 쏟아낸 거죠 뭐. 한종서를 잘못 키웠다고 해서 화가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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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양지우와 김유민은 거의 동시에 병실 앞에 도착했다.그 순간, 양지우는 곁눈질로 옆에 선 남자를 보고 잠시 굳어 버렸다.저런 인상은 어디서든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매서운 눈매는 보는 이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경계심을 품게 만들었고 날카로운 윤곽선은 어딘가 불량스러운 기운을 풍겼다. 그래도 눈에 띄는 이목구비 덕에 묘하게도 거친 멋이 있었다.잠깐의 시선 교차 후, 양지우는 곧장 눈길을 거두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김유민이 먼저 들어가도록 비켜섰다.김유민이 병실에 들어서자, 짐을 챙기던 임서율이 돌아봤고 그녀의 눈가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유민아, 오랜만이네.”“서율 누나.”김유민은 어색할 정도로 기계적인 목소리로 인사했지만 곧 다가가 임서율을 껴안았다.그 모습을 문가에서 지켜보던 양지우는 눈이 휘둥그레졌다.‘...뭐야? 이 남자, 서율이랑 아는 사이였어?’처음엔 한씨 집안에서 보낸 사람인 줄 알았다. 험상궂은 얼굴은 누가 봐도 조직의 보스 같은 분위기였으니까. 결코 만만해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다.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전혀 달랐다.임서율은 발끝을 세워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어디 아픈 건 아니지?”“아뇨. 그냥 혼자 있으니까, 좀 심심해서 그런 것 같아요.”김유민은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그 순간 양지우는 아예 말을 잃었다.‘세상에. 저런 반항기 가득한 얼굴에서 어떻게 저렇게 속상한 표정이 나올 수 있어?’병약 미소년, 딱 그 느낌이었다.임서율은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로했다.“곧 바빠질 거야. 그럼 심심할 틈도 없어.”김유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하게 웃었다.“그러니까 누나는 이제 절대 절대 저를 다른 데로 보내지 마요. 일이 있든 없든, 그냥 늘 곁에 둬요.”임서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 마. 네가 가고 싶어도 못 가게 할 거야. 요즘은 특히 네가 필요하거든.”“좋아요. 누나가 시키는 건 뭐든 다 할게요. 제가 이렇게 된 것도 다 누나 덕분이잖아요. 그때 누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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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세 사람은 곧장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하필 그 장면을 현관 쪽에 있던 강수진이 보게 되었다.강수진은 순간 어리둥절했다.임서율은 분명 입원 중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호텔에 나타난 거지? 양지우야 당연히 알지만 문제는 그녀 곁에 있던 낯선 남자였다. 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그때 불현듯 머릿속에 계략이 떠올랐다. 한종서 일도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임서율이 또 모르는 남자와 호텔로 들어가다니, 그것도 시퍼런 대낮에. 정말 한시도 조용할 날이 없다 싶었다.하도원은 다쳐서 당분간 부부 사이의 일을 할 수 없을 터였다. 그런데 나이 든 여자는 오히려 그런 쪽에서 더 왕성하다지 않은가.강수진의 눈가에 비릿한 웃음이 번졌다. 어차피 임서율도 신경 쓰지 않는데, 차라리 자신이 나서서 도와주는 셈 치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차주헌이 임서율 같은 여자에게 미련을 완전히 끊을 수 있을 테니까.강수진은 휴대폰을 들어 차주헌에게 전화를 걸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주헌아, 내가 지금 리아 호텔 앞에서 누구를 봤는지 알아?”차주헌은 요 며칠 회사 일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강수진과 결혼한 지도 오래되어 이제는 이 여자의 본모습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지금은 오히려 임서율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많았다.그제야 깨달았다. 결혼이란 게 사람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걸.결혼 전 강수진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마치 고양이가 발톱으로 톡톡 만지는 듯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입만 열면 역겨울 뿐이었다. 늘 가식적이었고 더는 본래의 그녀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돈타령, 쇼핑 얘기뿐이었고 일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예전 임서율과 함께였을 땐 이렇게 고생할 일도 없었다. 굳이 말을 다 꺼내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알아들었고 일에서도 합이 잘 맞았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차주헌은 속이 씁쓸해져 땅을 치고 후회할 지경이었다.그는 손에 쥔 펜으로 기획안을 수정하다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모르겠어. 나 바쁘니까 얼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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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임서율이 양지우, 김유민과 함께 짐을 막 꺼내던 참에 양지우의 휴대폰이 울렸다. 임유나였다.양지우는 처음엔 받을 생각이 없었고 의외라서 잠시 화면만 바라봤을 뿐이었다.그녀의 표정이 달라진 걸 눈치챈 임서율이 휴대폰 화면을 슬쩍 들여다보곤 물었다.“오늘 회사 쉬는 날 아니었어?”해성 그룹은 직원 관리가 비교적 느슨했다. 할 일을 제대로 끝내기만 하면 주말에는 상사가 굳이 연락하지 않는 게 보통이었다.“그러게. 오늘은 회사도 전부 휴무일 텐데, 왜 하필 지금 전화를 한 건지 모르겠네.”양지우도 고개를 갸웃거렸다.임서율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받아. 괜히 안 받으면 또 뭐라고 할 거야.”임유나는 곧 부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생겼다. 게다가 이제는 프로젝트 부서에도 속하지 않으니 양지우를 좌지우지할 수 없는 처지였다.임서율은 일단 참고 넘어가기로 했다.양지우는 휴대폰을 탁자 위에 두고 임서율이 보는 앞에서 통화를 받으며 스피커를 켰다.“무슨 일이에요?”“지우 씨, 지난주에 올린 기획안에 데이터 두 구둔데 문제가 생겼어요. 나 지금 회사에 있으니까 당장 와서 수정해요.”양지우는 잠깐 떠올려본 뒤 차분히 설명했다.“그럴 리 없는데요. 제가 퇴근 전에 다 확인했거든요. 오류는 없을 겁니다.”임유나의 목소리가 곧장 날카로워졌다.“뭐예요, 지금 나를 의심하는 거예요? 내가 문제 있다고 말했는데, 감히 말대꾸를 해요?”양지우는 속으로 눈을 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임유나는 틈만 나면 시비를 걸어왔다. 이 일이 임서율 덕분에 얻은 자리라 맞서기도 애매했고 무엇보다 지금 형편상 이 직장을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다.“그럼 제가 내일 아침에 가서 고치면 안 될까요? 지금은 일이 있어서요.”하지만 임유나는 단칼에 잘라 말했다.“안 돼요. 내일 아침이면 이미 늦어요. 그리고 지금 임서율 믿고 회사가 당신 손에 들어왔다고 착각하나 본데, 착각하지 마요. 난 여전히 회사의 부사장이고 임서율은 그저 주주예요. 배당만 받을 뿐이지 회사 의사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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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양지우가 떠난 뒤, 임서율이 김유민에게 물었다.“멀리까지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잠깐 쉴래?”이틀 내내 김유민은 자기 일도 제쳐두고 그녀를 도와주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이렇게 곧장 일에 매달리면 몸이 버티지 못할까 걱정됐다.하지만 김유민은 가슴을 툭 치며 대답했다.“걱정 마요, 누나. 전 괜찮아요. 대신 딱 하나만 부탁할게요.”“뭔데?”“커피 한 잔만 주세요.”임서율은 피식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이미 주문해 놨어. 하지만 약속해, 억지로 버티지 말고 정말 힘들면 나한테 말하기.”“네.”김유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임서율은 알지 못했다. 김유민이 벌써 이틀 밤을 꼬박 새우며 그녀 명의의 재산 정리를 직접 하고 있었다는 것을. 원래는 재무팀에 넘기라 했지만 김유민은 혹시 모를 위험을 차단하고자 직접 맡았다. 비즈니스에서 속까지 투명한 사람은 드물었으니까.임서율은 곧장 업무에 집중했고 김유민은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을 물었다. 두 사람이 정신없이 몰두하다 보니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커피 배달이라고 생각한 임서율이 먼저 일어나 문 쪽으로 향하려는데, 김유민도 재빨리 따라 일어섰다.“누나, 앉아 있어요. 제가 다녀올게요.”“넌 일 보라니까. 내가 갈게.”결국 두 사람은 나란히 문 앞까지 가서 동시에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잠시 실랑이가 이어지다가, 임서율이 먼저 손을 놓으며 웃었다.“네가 해.”김유민이 문을 열어 배달원에게서 커피를 받았다. 봉투에서 컵을 꺼내려던 순간, 힘 조절이 잘못됐는지, 아니면 뚜껑이 덜 닫혔는지 커피가 한꺼번에 쏟아졌다.뜨거운 갈색 액체가 바닥에 튀고 사방으로 흩날렸다. 임서율은 반사적으로 한 발 물러섰지만 옷자락에 몇 방울이 튕기는 건 피할 수 없었다.김유민이 황급히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이곳저곳을 살폈다.“누나, 괜찮아요? 어디 데인 데 없어요? 정말 죄송해요, 제가 부주의했어요.”임서율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조금 튄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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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임서율은 잠시 멍해졌다.김유민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아마 지우 누나가 돌아온 것 같아요.”그는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고 현관에 서 있는 낯선 얼굴을 보고서야 눈썹을 찌푸렸다. 양지우가 아니라, 모르는 남자였다.“실례하지만 누구를 찾으십니까?”김유민은 예의를 갖춰 물었다.차주헌은 순간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원래는 강수진의 말도 반쯤만 믿고 있었다. 임서율 곁에 이미 하도원이 있다는 사실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하도원의 능력과 배경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까.그러나 정작 눈앞의 상황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임서율이 하도원을 두고 다른 남자를...? 대체 차씨 집안을 어디까지 욕되게 할 셈이야.’하도원이 표면상 차씨 집안과 거리를 둔다 한들, 피붙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만약 이 일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차씨 집안은 풍파에 휘말릴 것이 뻔했다.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차주헌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특히 눈앞의 남자가 옷조차 걸치지 않은 채 서 있는 모습이 그의 분노에 불을 붙였다.“너, 누구야?”뜻밖의 질문에 김유민은 어리둥절했지만 곧 다시 물었다.“실례지만 누구를 찾으십니까?”“임서율을 찾으러 왔어.”차주헌은 가슴 속 분노를 가까스로 누르며 낮게 답했다.김유민은 잠시 뒤를 돌아, 안쪽에 대고 외쳤다.“누나, 누가 찾아왔어요.”임서율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지우가 돌아온 게 아니었나?’문가에 나서서 차주헌을 확인한 순간, 그녀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졌다.“차주헌? 네가 왜 여기 있어?”그리고 이내 어딘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여긴 어떻게 알았던 거야?”임서율은 단순히 의아해 물었을 뿐이었지만 차주헌의 귀에는 다르게 들렸다. 마치 그의 등장이 못마땅하다는 뉘앙스였다.차주헌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서늘하게 말했다.“왜, 내가 방해라도 됐나 보지?”“너 진짜 미쳤구나.”임서율이 바로 받아치자 차주헌은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임서율, 하도원 회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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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차주헌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임서율을 노려보았는데 눈빛엔 음울한 기운이 가득했고 오른쪽 뺨은 불타듯 뜨거웠다.“임서율, 감히 날 때려? 미쳤어?”결혼생활 내내 그녀가 차주헌에게 손을 올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거엔 ‘차 사모님’이라는 이름 때문에 감히 그러지 못했는데, 이혼하고 나니 오히려 기세가 등등해진 모양이었다.임서율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입꼬리를 비틀며 싸늘하게 말했다.“그래, 때렸어. 그런데 너 맞을 짓 했잖아.”차주헌은 분노로 치를 떨며 그녀의 가운 차림을 가리키더니, 다시 상반신에 옷조차 걸치지 않은 김유민을 가리켰다.“봐, 내가 틀린 말 했어? 너 지금 내 삼촌이랑 사귀는 거 아니었어? 그런데 정작 뒤에선 딴 놈이랑 호텔방까지 잡아? 그게 바람 아니면 뭔데!”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비아냥거렸다.“설마 지금 이 꼴로 일 얘기라도 하고 있었다고 말하려는 거야?”임서율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우리는 지금 일 얘기를 하고 있었어.”차주헌은 고개를 젖히며 웃었다.“임서율, 내가 바보냐? 이 꼴로 일을 한다고. 참 특별한 일이네.”김유민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이봐요, 정말 오해하신 겁니다. 저랑 서율 누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닥쳐! 여기에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차주헌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고 눈빛은 칼날처럼 김유민을 향해 꽂혔다.김유민은 분노에 주먹을 움켜쥐었으나 임서율이 앞을 막아서며 그를 진정시켰다.“유민아, 이런 인간 때문에 화낼 필요 없어. 그럴 가치도 없는 사람이야.”임서율은 곧바로 차주헌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의 목소리는 한겨울 얼음처럼 싸늘하고 날카로웠다.“차주헌, 너랑 난 이미 남이야. 네가 무슨 권리로 내 일에 끼어들어? 설령 따져 묻는다 해도 그건 네 삼촌 몫이지, 네가 참견할 자리는 없어.”그 말에 차주헌은 순간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러나 이내 분노에 치를 떨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좋아.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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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난 이미 말했어. 평생 남자가 없어도 너 같은 놈이랑은 절대 만나지 않을 거라고.”임서율의 목소리는 매섭고 단호했다.그 눈빛 속에 스친 결연함이 차주헌의 심장을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가슴속이 텅 빈 듯한 낯선 감각에 그는 본능적으로 심장을 움켜쥐었다.“임서율, 내가 그렇게 미워? 예전엔 분명 날 사랑했잖아.”세월이 흘러도 그녀와 함께한 기억은 단 한순간도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그 그리움이 얼마나 짙었는지 누구에게도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술에 취한 밤마다 그를 무너뜨린 것도 언제나 그녀였다.임서율은 그의 눈빛에 잠깐 스친 후회와 고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역겨움만 치밀어 올랐다.“웃기지 마, 차주헌. 네가 진짜 날 사랑했다면 바람은 피우지 않았겠지.”“내가 청력을 잃은 걸 틈타 강수진이랑 희희낙락했던 그 순간들, 네 입에서 흘러나온 그 달콤한 말들은 칼이 되어 내 가슴을 난도질했어. 난 과거 따위 되새기고 싶지도 않은데, 넌 왜 자꾸 그 더러운 기억을 들춰내?”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안이 오물에 막힌 듯 구역질이 났다.하지만 차주헌은 그녀의 분노와 원망조차 자신에 대한 미련이라 착각했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다급히 임서율의 어깨를 움켜쥐었다.“서율아, 아직 늦지 않았어. 네가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우리 다시 시작할 수 있어. 7년의 정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어? 너도 아직 날 사랑하지?”임서율은 그의 눈에 서린 간절함을 보고 오히려 통쾌한 기운이 치밀었다.차주헌은 여전히 그녀에게 미련이 있었다. 남자의 눈은 결코 거짓을 숨기지 못하니까.그녀는 고개를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차주헌은 당혹스러운 듯 물었다.“서율아, 왜 웃는 거야?”임서율은 돌연 웃음을 거두었다.“네가 우스워서 그래. 우리가 목숨 걸고 함께했을 때만 해도 널 믿었어. 그래도 소중히 여겨주겠거니 했어. 그런데 넌 밖에서 다른 여자랑 만나다가 첫사랑이랑 또 달콤한 연애를 즐겼지.”“잘 생각해봐. 지금 네가 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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