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Bab 611 - Bab 620

825 Bab

제611화

임서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는 이미 모두 병원으로 옮겨진 뒤였다. 그곳에 있던 고용인은 은근히 책망 섞인 눈길을 그녀에게 보냈다.“서율 씨, 고용인 주제에 감히 주인들 일에 끼어드는 건 아닌데요, 이번 일은 좀 다릅니다. 회장님은 심장이 약하셔서 절대로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며칠 전에도 도련님 일로 크게 노하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또 이렇게 찾아와 자극을 주시다니,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시겠습니까?”그 말을 듣자 임서율의 눈빛에 잠시 죄책감이 스쳤다. 아까는 조급한 마음에 말이 다소 거칠게 쏟아져 나온 것도 사실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그때 옆에 있던 양지우가 곧장 목소리를 높였다.“회장님께서 심장병이 있으셔서 자극받으면 안 된다고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당하는 건 괜찮다는 거예요? 한종서가 밖에서 무슨 짓을 저질러도 막을 생각은 안 하고, 회장님은 늘 뒤에서 감싸기만 했잖아요. 한종서가 무슨 더러운 짓을 벌였는지, 회장님께서 제일 잘 아실 텐데요.”고용인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임서율이 이미 독하게 쏘아붙이는 것도 벅찼는데, 조용하던 양지우까지 덤벼드니 더는 할 말을 찾지 못했다.“정말 말이 안 통하네요.”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휠체어에 앉은 한종서가 밀려 나왔다. 우연히도 임서율이 부른 구급차가 바로 이 병원으로 한태민을 실어 온 참이었다.“아줌마, 할아버지 상태는 어때?”한종서는 다급히 고용인에게 물었다.“회장님이 화병 때문에 지병이 재발하셨습니다. 지금 수술실에서 응급조치를 받고 계세요.”“갑자기 왜. 설마 나 때문에 그러신 건가?”“그게 아니라 사실은...”고용인은 시선을 임서율 쪽으로 흘렸다.그 순간, 한종서의 눈이 번뜩였다. 멀찍이 서 있는 임서율을 보자마자 그는 모든 걸 알아챈 듯했다.분노로 일그러진 얼굴로 휠체어를 몰아 임서율 앞에 다가가더니, 그녀의 가는 손목을 거칠게 낚아챘다.“임서율! 너 미쳤어? 감히 우리 할아버지를 자극해? 죽고 싶어?”손목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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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양지우가 겁에 질린 얼굴로 임서율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서율아, 그만해.”임서율은 그녀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긴장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양지우의 말대로 더는 한종서와 실랑이를 이어가지 않았다. 괜히 자극했다간 어떤 짓이든 서슴지 않고 할 인간이었으니까.하지만 정작 한종서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는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걸고 임서율을 내려다봤다.“임서율, 잘난 척도 얼마 못 가. 들으니 하도원도 요즘 좋은 변호사 찾고 있다던데? 운성시의 불패 신화라나. 아쉽지만 이미 우리 할아버지가 먼저 손을 써놨어.”그는 점점 목소리를 높이며 조롱했다.“결국 재판에서 질 게 뻔해. 그러니 이참에 체념해. 그리고 다시는 나한테 빌 생각 하지 마. 넌 이제, 내 관심 밖이니까.”임서율은 그 말이 우스워 피식 웃었다. 그리고 눈길조차 줄 가치가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지만 한종서는 더 신이 난 듯 목청을 높였다.“알아둬. 네가 지금 당장 내 앞에서 홀딱 벗는다 해도, 난 눈길 한 번 주지 않을 거야.”이쯤 되면 더 말 섞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이성은 그녀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가슴속 억울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종서 같은 인간은 상대해주지 않으면, 자기 이름 석 자도 금세 잊어버릴 작자니까.결국 임서율은 참지 못하고 독설을 퍼부었다.“한종서, 넌 아직도 네가 예전처럼 멀쩡한 줄 아나 본데. 웃기지 마. 누가 네 앞에서 벗는다 해도 이제 넌 아무것도 못 하잖아.”“임서율!”한종서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그는 두 눈을 부릅떴고 얼굴마저 광기에 찼는데 섬뜩하기까지 했다.“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 꼴이 됐겠어? 앞으로 내가 여자를 건드리지 못한다면 너도 똑같이 만들어버릴 거야!”그는 광기에 젖은 목소리로 외쳤다.“네 평생을 날 위해 노예처럼 살게 만들 거야! 죽을 때까지 널 괴롭혀주지!”그 섬뜩한 선언에 임서율의 심장이 움찔 조여들었다.이건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한종서는 진짜 미쳐 있었다. 상상도 못 할 짓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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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한종서가 바닥에 침을 탁 뱉으며 걸레 같은 욕을 내뱉었다.임서율은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이런 인간은 하도원 같은 사람이 나서야 제압이 되는 법이지, 보통 사람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하도원은 못 들은 척 한종서 쪽으로 다가갔다. 그의 얼굴은 웃는 건지 화난 건지 알 수 없었다.“뭐라고? 방금 뭐라 했어? 잘 안 들리네.”한종서는 이를 악물고 다시 내뱉었다.“개소리하지 말라고!”“아이고, 우리 아들 참 착하네.”하도원의 입꼬리가 천천히 휘어졌고 깊은 바다 같은 눈빛은 어둡고 서늘하게 빛났다.그제야 자신이 또다시 농락당했다는 걸 깨달은 한종서는 얼굴이 일그러졌다.“하도원, 너 이...”하지만 하도원은 한가롭게 정원을 산책이라도 하는 듯 태연했다. 그의 목소리조차 농담처럼 들려, 화를 내는 건 한종서 혼자뿐이었다.임서율의 눈에는 한종서가 그저 하도원 손바닥 위에서 굴러다니는 쥐 한 마리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진승윤과 한종서 뒤에 서 있던 간병인마저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웃어? 누가 웃어! 또 웃기만 해봐, 다 죽여 버릴 거야!”한종서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하도원은 태연히 임서율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시선을 내렸는데 그 속에는 달콤한 기색이 배어 있었다.“임서율, 왜 이렇게 말 안 들어. 내가 회사 일 마무리하고 돌아온다 했잖아. 근데 왜 굳이 사람을 이렇게 병원에까지 오게 만든 거야.”겉으론 미안한 듯했지만 임서율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장난기 어린 조소를 발견했다.그녀가 볼 수 있는 걸 한종서가 못 볼 리 없었다.“하도원! 오늘 너 그냥 가만 안 둬!”한종서는 벌떡 일어나려다 허벅지 사이로 날카로운 통증이 번지자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끄으윽...!”하도원은 손을 들어 달래듯 말했다.“한종서, 괜히 허세 부리지 마. 지금 다친 데 보통이 아닌 거 알지? 너희 집 어르신이 지금 안에서 사투 중인데, 네가 여기서 또 사고 치면 그 양반 숨넘어가겠어.”그 말에 한종서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핏줄이 온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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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한종서는 손을 휙 들어 올리며 뒤에 서 있던 간병인을 성급히 물러나게 했다.“선생님, 접니다. 환자 상태가 지금 어떻습니까?”“생명에는 큰 지장이 없습니다만 연세가 있으신 만큼 가족분들이 평소에 신경을 잘 쓰셔야 합니다. 괜히 자극을 주어서는 안 돼요.”그 말을 들자, 한종서는 곧장 임서율을 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임서율, 의사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노인네 연세가 몇인데 자극을 주면 어떡해!”임서율은 억울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중얼거렸다.“난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그게 왜 자극이야.”앞뒤 가리지 않고 화풀이를 하도원에게 퍼부은 한태민에 비하면 사실만 말한 그녀가 대체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한종서의 볼살이 부르르 떨렸다. 그는 손가락까지 덜덜 떨며 임서율과 하도원을 번갈아 가리켰다.“너희 둘 다 한통속이지! 두고 봐. 끝까지 가 봐야 누가 이기는지 알 거야.”그때 의사가 소리를 질렀다.“보호자분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환자는 안에서 아직 수술 중이에요. 수술실 앞에서 이러면 어떡해요. 관계없는 분들은 전부 물러나 주세요.”의사가 단호하게 제지하자, 하도원은 오히려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물었다.“선생님, 그럼 환자 상태는 이제 안정된 건가요? 당장은 큰 위험은 없는 거죠?”의사가 고개를 끄덕였다.“위기는 넘겼습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앞으로 관리에 각별히 주의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수술 중에 확인된 건데 한태민 씨는 이미 폐암을 앓고 계셨어요.”그 순간, 한종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허공만 멍하니 바라봤다.“뭐, 뭐라고요! 폐암이라고요?”한종서는 의사의 가운 자락을 움켜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의사는 잠시 고개를 숙이며 낮게 말했다.“직접 확인해 보시면 알 겁니다. 몇 달 전 이미 검사를 받으셨는데, 가족분들은 모르셨던 것 같군요.”한종서는 힘겹게 침을 삼켰고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냈다.“그럼, 그럼 아직 가망은 있는 거죠?”사실은 ‘말기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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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임서율과 하도원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한태민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은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병원을 나서던 길에 임서율은 문득 무언가 떠올린 듯 입을 열었다.“어쩐지 한 회장이 그토록 큰돈을 써가며 당신 회사를 무너뜨린다 했어요. 결국은 한종서를 위해 길을 닦아주려 했던 거네요.”하도원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한 회장도 끝까지 자기기만에 빠져 있군. 한종서가 도대체 무슨 능력이 있다고. 본인 눈에는 안 보이나 봐.”그는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었다.“내 회사를 무너뜨려 한종서한테 집안을 맡긴다고 해도, 그 철부지가 제대로 굴릴 리가 없지. 얼마 못 가 한씨 집안은 거덜나고 말 거야.”임서율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애초에 한종서를 그렇게 무분별하게 감싸던 순간부터 한씨 집안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죠.”하도원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젊은 시절 유능함으로 인정받던 한태민을 떠올리며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그 세대 사람들은 온전히 맨손으로 길을 개척해온 이들이었다. 요즘처럼 집안의 뒷받침을 받으며 창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세대와는 달랐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각자의 운명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하도원은 차 문을 열었지만 다리 탓에 몸을 싣기가 여의치 않았다. 임서율이 서둘러 손을 뻗어 그를 도와주자, 하도원의 움직임이 순간 멈췄다. 그는 옆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그녀를 꿰뚫듯 바라보며 이어 장난스럽게 말했다.“서율아, 설마 내가 곧 파산할까 봐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늘 그렇듯 장난스러운 그의 표정에 임서율은 못 이긴다는 듯 그의 가슴팍을 툭 두드렸다.“지금 상황이 어떤데도 농담이 나와요? 하도원 씨, 당신은 파산이 무섭지도 않아요?”하도원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파산하면 어때. 그래도 너 하나쯤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 네가 그랬잖아. 내 몸매라면 모델도 할 수 있다고. 안 되면 ‘재벌 회장’ 역이라도 맡아 드라마에 나올까?”그는 손을 펴 보이며 장난스럽게 덧붙였다.“아니면 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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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회사 얘기가 나오자, 하도원의 얼굴빛이 단번에 굳어졌다.“그 일은 네가 신경 쓸 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 거야.”임서율은 그 말만 들어도 이번엔 한태민이 정말로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게 틀림없음을 알 수 있었다.그녀는 굳이 더 말하지 않았다. 이 남자는 체면을 목숨처럼 중시하는 사람이니까. 더구나 진승윤 앞에서는 절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을 터였다.병원으로 돌아오자마자, 조현우가 바람처럼 달려왔다.“아니, 두 사람 뭐 하는 거야? 내가 소식 듣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는데, 정작 너희는 병실에 없더라.”하도원은 무심하게 입꼬리를 올렸다.“나갔다 왔어.”조현우가 그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형 지금 이 꼴로? 이 상태로 뭘 ‘나갔다 왔다’는 거냐.”그는 잔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형이 환자인 채로 나간 것도 문제인데, 왜 굳이 서율 씨까지 끌고 나가? 무슨 일이라도 터졌으면 병원이 어떻게 책임지냐고.”하도원은 못마땅하다는 듯 조현우를 흘겨봤다.“나이 들더니 진짜 점점 잔소리가 늘어가네. 꼭 우리 할머니 같아.”그 말에 떠오른 기억 때문일까, 하도원은 순간 잠시 멍해졌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잔소리를 멈추지 않던 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기 때문이다.그는 더는 말하지 않고 차갑게 조현우를 노려봤는데 그 깊은 눈빛에는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순간, 공기마저 묘하게 어색해졌다.조현우는 혼자 한참을 떠들었는데 정작 상대방은 대꾸 한마디도 없자 기분이 더 상했다. 그래도 뭐, 하도원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이해는 했다.‘하지만 최소한 눈길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이건 날 사람 취급조차 안 한다는 태도잖아.’조현우는 입술을 꾹 다물며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드디어 분을 터뜨리려는 찰나, 임서율이 먼저 나섰다.“조 선생님, 그게... 도원 씨는 회사 문제 때문에 나간 거예요. 정말 급한 상황이라 직접 처리할 수밖에 없었어요.”그 말 덕분에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조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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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임서율은 난처하다는 듯 조현우를 바라봤다.“조 선생님, 저 사람 성격 아시잖아요. 겉으론 강하게만 굴지만 속은 여린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조현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걱정 마요. 사실 형 어릴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강했죠. 차씨 집안에서 그때 조금만 더 보듬어줬다면 지금 같은 모습은 안 됐을 거예요.”임서율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다.“알아요. 일종의 방어기제 같은 거겠죠.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쌓이면서 습관처럼 굳어진 거예요.”겉으로는 독설 같지만 사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갑옷일 뿐이었다.임서율은 무심결에 병실 안의 하도원을 바라봤다.언제나 강해 보이는 남자였지만 사실 그의 마음은 이미 상처투성이였다.이 시간 동안 매일 그와 함께 지내며, 특히 밤이 되면 그는 너무나도 연약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왜 그에게 불면증이 있는지도 차츰 이해할 수 있었다.밤마다 그는 너무 쉽게 잠에서 깼고 작은 소리에도 눈을 떴다. 때로는 악몽에 시달리며 꿈속에서 연거푸 외치곤 했다.“닫지 마! 제발...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제발...”임서율은 조현우에게 말했다.“걱정 마세요, 조 선생님.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잘 자요. 얼굴빛도 좋아진 것 같지 않으세요?”조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다친 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빛이나 정신 상태가 전보다 훨씬 낫습니다. 이제는 진짜 살아 있는 사람 같네요.”잠시 망설이던 임서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조 선생님, 아버지 상태, 요즘 좀 안 좋으신 거 맞죠?”말은 할 수 있고 걸음도 옮길 수 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떠나기 직전에 나타나는 마지막 기운일 수도 있다는 것을.그녀는 그게 두려웠다.조현우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임서율은 이미 자신의 짐작이 옳다는 걸 직감했다. 임규한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그녀는 심호흡하며 두 손을 꼭 움켜쥐고 마음을 다잡은 뒤 물었다.“조 선생님,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아버지께 시간이 얼마나 남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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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가능해요. 가족은 환자가 계속 치료를 받을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 보자면 이 시점까지 왔는데 굳이 병원에서 고생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조현우가 담담히 말을 이었다.“남은 시간은 가족과 함께 보내세요.”“...네.”조현우가 자리를 떠나자, 임서율은 병실로 돌아왔다. 그 순간 하도원은 그녀의 얼굴빛만 보고도 속마음을 읽어냈다.“무슨 일 있어?”임서율은 잠시 멍해졌다가 금세 정신을 다잡고는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방금 조 선생님이 아버지 상태에 대해 얘기해 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가려고 해요.”그녀의 머릿속은 복잡했다.아버지를 어디로 모시는 게 좋을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임씨 집안으로 보내는 건 조금 꺼려졌다. 지난번 일로 임태규의 태도를 똑똑히 보았으니까. 그에게 그녀는 여전히 외부인이었고 괜히 거기로 보냈다간 갈등만 커져 아버지의 몸에 더 해가 될지도 몰랐다.그때, 하도원이 불쑥 말을 꺼냈다.“그럼 우리 집으로 모셔와.”“네?”임서율은 놀란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봤다.“지금 뭐라고 했어요?”하도원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아버님을 우리 집으로 모시자고 했어. 좀 외진 곳이긴 해도 바깥 풍경이 좋아. 몸이 괜찮은 날이면 밖에 나가 낚시도 하고 경치도 보실 수 있을 거야.”뜻밖의 제안에 임서율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며 조심스레 물었다.“근데 당신한테 부담되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 상태는 도원 씨도 알잖아요.”하도원은 무심결에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임서율이 곧장 날카로운 눈빛을 보내자 얼른 손을 거둬들였다.“그냥 머리 한번 쓰다듬으려던 건데? 싫으면 안 할게.”임서율이 겨우 안도하는 순간, 하도원은 그녀의 머리를 와락 끌어안아 마치 반죽이라도 하듯 거칠게 헝클어뜨렸다.“하도원 씨! 진짜 미쳤어요?”그녀가 버둥거리며 소리쳤지만 하도원은 태연하게 웃어넘겼다. 그러다 곧 단호히 말했다.“그냥 내 말대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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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오늘 밤엔 재밌는 거 준비해서 나 좀 재워줘. 며칠 뒤면 아마 그런 여유도 없을 거야.”앞부분까진 임서율도 담담히 들었다. 애초에 하도원 곁에 있는 이유 중 하나가 그를 편히 잠들게 해주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뒤쪽 말을 듣자 이마가 절로 찌푸려졌다.“아직 퇴원할 때가 아니잖아요.”하도원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분명 회사를 챙기려는 거였다. 이번에 한태민이 가한 압박은 전례 없는 수준이었고 백년 기반의 한씨 집안과 달리 하도원은 이제 막 기반을 다진 신흥 세력이었다.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결코 쉽지 않았다.“이제 큰 문제는 없어. 가끔 움직이는 게 불편할 뿐이지, 앉아서 처리하는 건 다 할 수 있어.”그 말에 임서율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이 남자의 성격상 막는다고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지금은 말리는 게 아니라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게 맞았다.“알겠어요. 그럼 의사랑 잘 얘기해 둬요. 당장은 퇴원 못 하니까, 정식으로 상의는 하고 나가야죠. 그래야 내가 안심해요.”하도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우리 서율이, 이제 점점 사람 배려할 줄 아네.”임서율은 그의 등을 툭 쳤다.“지금 농담할 때예요? 어서 가요.”“응.”그가 천천히 걸어 나가자 진승윤이 부축하려고 손을 내밀었다.그때 임서율이 곧장 입을 열었다.“진 비서님, 그냥 혼자 가게 해요. 어차피 곧 퇴원하는데, 회사 일 바빠지면 진 비서님이 늘 옆에 있을 수도 없잖아요. 지금부터 혼자 움직이는 게 필요해요.”진승윤은 그녀의 속뜻을 눈치챘다. 하 대표 앞에서 꺼낼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그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하도원이 손가락으로 진승윤을 가리키며 웃었다.“앞으로 네 월급은 임서율한테서 받아. 되게 잘 따르네.”“사모님 말씀이 곧 대표님 말씀이죠.”진승윤이 장난스럽게 받아치자, 하도원은 입이 귀까지 걸린 듯 웃으며 병실을 나섰다.이제 병실엔 임서율과 진승윤만 남았고 그는 곧장 다가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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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임서율은 이미 마음을 굳혔다.“걱정 마세요. 전 자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거래처도 연결할 수 있어요. 새로운 협력사가 생기기만 하면 회사는 다시 굴러갈 수 있죠.”진승윤은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하지만 지금은 한 회장이 공개적으로 말했습니다. 우리 회사와 손잡는 건 곧 한씨 집안과 맞서는 거라고요.”임서율은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답했다.“그게 무슨 대수예요. 그 협력사들, 겉으로는 한씨 집안 눈치를 본다 해도 결국 원하는 건 돈이에요. 이익 앞에선 의리 따위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저도 똑똑히 봤어요. 그 어떤 동맹이든 돈만 충분히 되면 언제든 등을 돌리는 게 세상 사람들이잖아요.”자신만만한 눈빛에 진승윤은 그녀가 정말 방법을 갖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는 깊숙이 허리를 굽혀 정중히 인사했다.“서율 씨, 대표님 대신 감사 인사드릴게요. 역시 대표님 안목은 틀리지 않으셨어요.”임서율은 단 하나만 당부했다.“하지만, 진 비서님. 이 일은 꼭 비밀로 해주세요. 특히 도원 씨한테는요. 그 사람 옆에서 꽤 오래 있었으니 성격 잘 아시잖아요.”진승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 시각, 하도원은 결국 의사를 설득해 잠시 퇴원을 허락받았다. 단, 이틀에 한 번은 꼭 병원에 와서 상처를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마저도 조현우가 강하게 밀어붙인 덕분이었다. 아니었으면 하도원은 아예 병원에 발길조차 끊었을 터였다.병실로 돌아온 하도원은 노트북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수액을 맞은 채 키보드를 두드리는 임서율을 발견했다.그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고 이내 성큼 다가와 그녀의 손을 눌러 멈추게 했다.임서율이 올려다보자, 차갑던 눈빛이 이내 부드럽게 풀렸다.“돌아왔네요. 얘기는 잘 됐어요?”“응. 이틀마다 병원에 들르라는 조건으로 퇴원 허락받았어.”“잘됐네요.”임서율은 의사의 단호함에 은근히 안도했다. 이 완고한 환자를 다루려면 그 정도 강경함은 필요했다.“나중에 꼭 감사패라도 드려야겠네요. 정말 책임감 있는 좋은 의사예요.”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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