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701 - Chapter 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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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1화

진승윤의 얼굴이 굳어졌다.“대표님, 왜 또 그런 식으로 말씀하세요. 저 이 일하고 아무 상관 없습니다. 저는 줄곧 서율 씨와 함께 있었고, 아예 회사에도 들어오지 않았어요.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질러요.”하도원은 몸을 약간 기울이며 손끝으로 펜을 천천히 굴렸다.“내가 방금 진 비서라고 말한 적 없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서 해명부터 해?”그제야 진승윤도 자신이 지나치게 조급했다는 걸 깨달았다.“죄송합니다. 너무 급해져서 그만... 대표님께서 오해하실까 봐요.”하도원은 독수리처럼 날카롭게 그의 눈동자를 꿰뚫어보았다.“진 비서, 나랑 함께 일한 세월이 몇 년인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를 리 없지. 그리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뭔지도 알잖아.”“네, 잘 알고 있습니다.”하도원은 굳이 길게 말하지 않았다.“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진 비서가 뭐라고 답하든, 난 다시는 묻지 않겠어. 그러니까 제대로 생각해서 대답해.”진승윤은 속으로 숨을 골랐다. 오늘 밤, 이 몇 시간 동안 내내 그의 심장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진정될 틈이 없었다.지금 이 순간에도 선택을 잘못하면 끝장이라는 압박이 그를 조여왔다.하지만 만약 그의 희생으로 하도원이 이번 위기를 넘길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감당할 생각이었다.그렇게 마음을 다잡자, 진승윤은 다시 용기가 생겼다. 그는 허리를 곧게 펴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몇 번을 물으셔도 제 대답은 똑같습니다. 이 일은 저와 아무 관련 없습니다. 서율 씨도 마찬가지고요. 저희는 아파트를 나온 뒤로 줄곧 함께 있었고, 단 한 순간도 서율 씨의 시야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만약 저희 둘이 공모했다고 의심하신다면, 그건 더더욱 말이 안 됩니다. 그렇게 공모해서 저희가 얻을 이익이 대체 뭐가 있겠습니까? 목적도 없는데요.”하도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그 말을 끝까지 들은 뒤, 더 이상 추궁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회사는 계속 조사하도록 해. 난 먼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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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진승윤은 당장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일단은 그 문제를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었다. 조급하게 굴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으니까.“알겠어요. 서율 씨도 조심하세요. 대표님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것 같아요. 자칫하면 의심이 서율 씨 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어요.”“괜찮아요. 의심 풀어줄 방법은 제가 알아서 만들 테니까요.”그 말에 진승윤은 조금 안심했다. 둘 중 적어도 한 사람이라도 하도원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둘 다 의심받기 시작하면 모든 게 끝장이니까.“그럼 전 이만 끊을게요. 도원 씨가 돌아온 것 같아요.”임서율의 말이 끝나자 진승윤도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통화 기록을 전부 지운 뒤, 서둘러 이불 속으로 몸을 넣고 눈을 감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고 있었던 사람처럼 숨소리까지 고르게 맞춰놓는다.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낯익은 기척과 함께 익숙한 향이 밀려왔다.“임서율, 또 자는 척이야?”하도원의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그의 턱이 임서율의 머리카락 끝을 스치며 내려왔고, 넓고 따뜻한 손이 그녀의 차가운 손등을 감싸 쥐었다. 손끝이 피부 위를 천천히 훑고 지나가는 감촉이 너무도 생생했다.임서율은 눈썹을 미세하게 떨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왜 이렇게 귀신같이 다 알아채는 걸까. 그녀가 잠든 척하는 것조차 눈치채다니, 들킬 만한 구석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는데.‘그래, 상관없어. 끝까지 연기하자. 혹시 지금 이 상황도 하도원이 날 떠보는 걸지도 몰라. 절대 동요하지 말자.’그가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녀를 품 안에 반쯤 가두자, 임서율은 귀끝까지 화끈해졌다. 느슨하게 풀린 넥타이가 어깨와 목덜미를 스치며 피부 위를 간질이는 감각이 이어졌고, 그의 손길은 점점 더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숨이 점점 가빠지고 더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결국 임서율은 몸을 돌려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마주친 건 어둠 속에서도 묘하게 빛을 띠는 하도원의 눈빛이었다.“왜 이제야 돌아왔어요?”오랜 망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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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하도원은 그녀의 기침 소리에 황급히 다가와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임서율,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급하게 들이키면 어떡해. 천천히 마셔, 이건 다 네 거야.”하지만 임서율의 신경은 이미 다른 데로 가 있었다. 가까스로 숨을 고른 그녀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잠깐만... 당신 언제부터 만나던 여자가 있었어요? 몇 년 동안 연애 안 했다고 했잖아요?”운성에서는 심지어 그의 성향이 정상인지 아닌지까지 의심받을 지경이었다.하도원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내가 언제 연애했다고 했어? 나를 좋아하긴 하는데 끝내 고백은 못 하고,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면서 어려울 때 도와주는 사람일 수도 있지 않겠어?”그 말에 임서율은 속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싶어졌다.‘나중에 내가 이 프로젝트를 밀어넣은 걸 알게 되면, 그때도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 미치겠네, 정말.’“아니, 제발 그 왕자병 좀 고치면 안 돼요?”임서율은 쏘아붙였다.“협력자가 남자일 수도 있잖아요. 굳이 여자라고 단정짓지 마요.”그 말이 떨어지자, 하도원의 입꼬리에 걸려 있던 미소가 아주 미묘하게 굳었다.“누군가 우리 회사 보안 시스템을 뚫었어. 기술팀도 손을 못 썼고, 결국 다 해고됐지. 그리고 그 세 건의 해외 계약서 전부가 내 필체를 모방해서 서명돼 있고, 직인까지 찍혀 있었어.”임서율은 무심한 척 잔을 들어 다시 한 모금 마셨다.“그래서 손해 본 건 있어요?”“없어.”하도원은 단호하게 답했다.“그럼 됐잖아요.”그녀의 목소리는 나른하고 여유로웠다.“손해도 안 봤는데 그게 뭐 그렇게 큰일이에요? 게다가 계약서에 문제가 없다면, 왜 사인을 못 해요? 하도원 씨, 당신은 가끔 좀 편견을 내려놓고, 말 그대로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어요?”“지금 회사가 곧 파산 직전인데, 그 구멍을 메우는 게 먼저죠. 왜 굳이 해외 업체를 의심하는 데 그렇게 매달리는 거예요?”“그리고 말이에요, 세상을 그렇게 복잡하게만 보지 말아요. 진짜 누군가 그냥 도와주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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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임서율은 관자놀이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머릿속이 지끈거리고 죽고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가끔은 하도원의 그 지나친 신중함이 너무도 미워서, 듣고만 있어도 숨이 막히고 피로가 몰려왔다.“그럼 마음대로 해요. 어차피 망하는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잖아요. 난 혼자 떠날 거예요.”그 말에 하도원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는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서율아, 너한테 이런 숨겨진 면도 있었네? 예전에 차주헌이 그렇게 궁상맞을 때도 안 떠났잖아. 그런데 내가 망하면 떠나겠다고? 이 배은망덕한 것.”“그러니까 회사 빨리 다시 일으켜 세우라고요.”임서율은 담담하게 받아쳤다.하도원은 턱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그는 이게 그녀의 진심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그녀만의 위로 방식이었다.하도원은 임서율이 유난히 잘 먹는 걸 보자 몇 점의 삼겹살을 접시에 올려줬다.“천천히 먹어.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닌데.”임서율은 온전히 음식에 빠져 있었고 눈이 반쯤 감긴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진짜 맛있다... 당신도 좀 더 먹어요.”“너나 많이 먹어.”“나 아는 친구 중에 서예 연습하는 걸 좋아하는 애가 있어. 특히 해서체? 그런 느낌으로 글을 쓰고 싶다더라.”“그래서요?”임서율은 건성으로 대답하고 다시 삼겹살에 집중했다.“전에 들으니까 네 어머니가 너한테 서예를 가르쳐줬다고 하던데, 혹시 그 친구를 위해 편지 하나 써줄 수 있겠어? 아픈 여자 친구한테 남기고 싶다더라.”그 말에 임서율은 순간 멈칫했다.‘왜 나에 대해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거지? 심지어 이런 자잘한 과거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다니.’임서율은 결국 고기를 내려놓고 하도원을 똑바로 바라봤다.“도원 씨, 당신이랑 얘기하고 있으면 항상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비밀이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당신 앞에 서면 마치 옷 한 겹 안 걸친 기분이랄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하도원은 그저 무심하게 눈썹만 살짝 올렸다.“그래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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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하도원은 천천히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생각보다 멍청하진 않네.”임서율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문득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나에 대해 대체 얼마나 많은 걸 알고 있는 걸까...’“도원 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얼마나 알고 있어요? 그냥 한꺼번에 다 말해봐요.”마치 치약을 짜내는 느낌이 들었다.하도원은 의자에 느긋하게 기댄 채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임서율을 바라보며 말했다.“좋아, 대신 조건이 있어.”임서율은 곧장 그의 조건이 뭔지 알아차렸다.“당신 친구가 부탁했다는 그 편지, 대신 써달라는 거죠?”“응.”“써줄게요.”그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보내왔고, 임서율은 화면을 훑어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이렇게 급해요?”“혹시나 부인이 오래 못 기다릴지도 모르니까. 내일 나 출장 가야 하잖아, 미리 해두는 게 낫지.”하도원이 거절할 틈도 없이 종이와 펜을 내밀자, 임서율은 결국 체념한 듯 펜을 들었다. 몇 줄 되지도 않는 글이라 금세 마쳤고 그녀는 종이를 내밀며 물었다.“근데 당신은 왜 안 써요? 우리 글씨체 거의 똑같잖아요.”“그건 신경 쓰지 마.”하도원은 종이를 받아들고 한참을 꼼꼼히 봤다.임서율은 다시 꼬치 하나를 집어 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대체 뭘 그리 오래 보는 거야.’몇 분 후, 그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이걸 보면 내 친구 부인이 정말 기뻐하겠는데.”임서율은 입가를 닦으며 중얼거렸다.“하지만 직접 쓰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진심을 전할 기회잖아요.”“친구는 이런 글씨를 못 써. 쓸 줄 알았으면 진작 썼겠지. 부인이 이런 서체를 무척 좋아해서 예전에 따라 배우려 했는데, 아무리 해도 그 맛이 안 난다고 했어.”임서율은 살짝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부럽기도 했다.“그래도 참 좋은 남편이네요. 요즘 그런 사람 별로 없는데. 평소엔 잘하다가도 아내가 병에 걸리면 슬쩍 책임 떠넘기고 손 놓는 사람도 많잖아요. 인터넷에서 그런 얘기 많이 봤어요.”“집엔 돈 한 푼 없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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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하도원이 말끝을 흐리더니, 임서율 앞에 놓인 빈 와인병을 바라보며 눈썹을 찌푸렸다.“너 다 마신 거야?”임서율은 아직 제법 멀쩡하다고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근데 이 술 진짜 맛있네요.”하도원은 이마를 짚으며 낮게 웃음을 흘렸다.“맛있지. 대신 도수가 아주 높아.”“그래요?”임서율은 병을 들어 올려 라벨을 힐끗 확인했다.“난 괜찮은 것 같은데.”“지금은 괜찮겠지. 10분만 지나 봐. 그땐 그런 말 못 할걸.”임서율은 눈살을 찌푸렸다.“그게 무슨 말이에요?”하도원은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일단 침대에 가서 누워 있어. 나 잠깐 내려가서 이모님한테 볼일 좀 보고 올게.”“이모님 벌써 주무시지 않았어요?”“괜찮아. 이 시간쯤엔 보통 한 번쯤 일어나.”임서율은 별다른 말 없이 그를 보내주었다.하도원은 내려가면서 물 한 잔을 챙겨 들었다. 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김정란이 그를 보고 깜짝 놀라 두 손을 가슴에 얹었다.“아이고, 깜짝이야. 대표님, 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배고프세요? 뭐라도 좀 해드릴까요?”“아니요, 해장국만 끓여주세요.”“서율 씨가 술을 좀 많이 마셨나 보네요?”“네, 제가 방심했어요.”김정란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괜찮아요. 연인끼리 가끔 술 좀 마시는 것도 재미죠. 전혀 문제 될 거 없어요.”하도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정란은 그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농담을 이어가진 않았다. 그가 물을 따라 들고 다시 올라가려 할 때, 김정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대표님.”하도원이 고개를 돌렸다.“네?”김정란은 한층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제가 나설 일은 아니란 거 알지만 그래도 한마디만 하고 싶어요. 서율 씨 정말 좋은 분이에요. 두 분 마음도 잘 맞는 것 같으니, 혹시 아이를 갖는 건 어떠세요?”“제가 아직 젊으니까요. 나중에 애 봐주는 것도 도울 수 있을 거예요.”하도원은 그녀가 좋은 마음에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았다.“이모님, 아직 그런 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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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임서율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입고 있던 검은 슬립 드레스가 허리께까지 흘러내려 있었고 노란 등 아래 그녀의 피부는 물기가 오른 듯 은은히 빛났다.볼은 이미 익은 듯 붉게 물들어 있었고, 그녀는 계속해서 몸에 걸친 옷을 괜히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더워...”하도원이 다가왔다. 따뜻한 손끝이 그녀의 팔에 닿는 순간, 임서율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그는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단순히 술에 취한 반응이 아니었다.하도원은 곧장 발코니 쪽으로 걸어가 방금 마셨던 술병을 들어 코끝에 댔다.‘술에 뭔가 들어 있어.’그는 다시 침대로 돌아와 임서율을 다시 살폈다. 손등으로 그녀의 이마를 짚는 순간, 손바닥이 데일 정도로 열이 올랐다. 아까부터 그도 이상하게 입안이 마르고 혀끝이 쓰라렸지만 그저 술기운이라 넘겼던 터였다.아직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임서율이 마치 구원의 끈을 붙잡듯 그의 팔을 끌어안고 얼굴을 비볐다.하도원은 그녀를 단번에 품에 끌어안아 고정시켰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서율아.”희미한 의식 너머로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자, 임서율은 천천히 눈을 떴다.눈앞에 펼쳐진 건 하도원의 흠 잡을 데 없는 얼굴이었다.“도원 씨, 왜 이제 왔어요. 오늘 좀 어지러워서 당신 재워주기 힘들지도 몰라요.”하도원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진짜 대단하네. 이런 상황에도 날 재워줄 걱정부터 하다니.”임서율은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눈을 반쯤 감았다. 초점 없는 눈동자가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흐려져 있었다.“괜찮아요. 그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우리 계약했잖아요. 이제 일주일밖에 안 남았어요... 마지막까지는 내 몫 다 해야죠.”그 말에 하도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볼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고 입술은 살짝 벌어졌는데 평소의 차가운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하도원은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계약은 나중에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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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하도원의 말에 임서율은 무심코 아래를 내려다봤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는 눈을 크게 떴다.어젯밤의 기억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그의 목을 끌어안고 매달렸던 순간들, 뜨겁고 거칠던 그의 숨결과 입맞춤까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임서율은 얼굴이 단번에 화르르 달아올랐다.그녀의 반응을 지켜보던 하도원이 입꼬리를 올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기억났어?”임서율은 입술을 꼭 다문 채 이불을 움켜쥐었고 하얀 손등에 힘줄이 불거져 있었다.“술이 사람 잡는다더니. 나 앞으로 다시는 안 마실 거예요.”하도원은 그 술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괜히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 필요는 없었으니까.그는 조심스럽게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괜찮아. 난 네가 술 마신 모습도 좋더라. 어제 네가 음, 꽤 흥미로웠거든.”어젯밤 그녀가 먼저 품에 파고들던 순간이 떠올라, 하도원의 목울대가 묘하게 흔들렸다.임서율은 부끄러움에 못 이겨 이불을 얼굴까지 끌어올렸다. 지금 당장 구멍이라도 파고 그 안에 숨어버리고 싶었다.“그만 말해요, 제발...”“알았어, 안 할게. 이러다간 우리 서율이 창피해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네.”그때, 하도원의 휴대폰이 울렸다.“대표님, 시간 다 됐습니다. 더 늦으면 비행기 놓쳐요.”진승윤의 목소리였다.“알았어.”전화를 끊은 하도원이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갈 수 있겠어? 몸이 안 좋으면 그냥 집에서 쉬어. 진 비서랑 나만 가도 돼.”“괜찮아요. 나도 갈래요.”임서율은 조금이라도 빨리 이 문제를 정리하고 싶었다. 계속 마음속에 남겨두는 건 그녀에게도 좋지 않았으니까.“그럼 준비해. 난 샤워 좀 하고 올게.”“네.”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하도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단단한 몸과 조각처럼 완벽한 얼굴이 남김없이 시야에 들어왔다. 임서율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완벽한 외모에, 막강한 집안 배경, 거기에 능력까지. 모자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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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양지우는 금세 눈치를 채고 불안한 기색을 드러냈다.“설마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 나 어제 좀 티가 난 것 같긴 한데. 서율아, 미안해. 또 내가 발목을 잡은 거 같아.”“괜찮아. 네가 안 그랬어도, 도원 씨는 언젠간 눈치챘을 거야.”임서율은 양지우가 모든 책임을 혼자 짊어질까 봐, 계속해서 그녀를 달랬다.양지우도 임서율의 성격을 모를 리 없었다.“네가 날 위로하려는 거 아는데... 하, 나도 딱히 변명할 말은 없어. 내가 워낙 쉽게 기죽잖아. 하 대표님 그 얼굴만 봐도 지옥 문턱에 선 것 같아. 눈길 주기도 무섭다니까.”“방법은 내가 찾아볼게. 넌 네 일만 잘하면 돼. 그리고 이번 주 안에 또 빚 독촉하러 올 거야. 꼭 준비해둬.”임서율은 잠시 생각하다가, 하도원의 의심을 확실히 떨쳐내려면 연극이든 뭐든 제대로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한 번만 찾아오는 빚쟁이가 어디 있겠나. 게다가 하도원은 진승윤까지 의심하기 시작한 상태였다.양지우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좋아, 그럼 얼른 네 할 일 해. 난 출장 준비해야 돼.”“응.”전화를 끊자마자 임서율은 곧장 몸을 일으켜 빠르게 짐을 챙겼다. 옷을 챙겨 입으면서 이불을 걷자, 깨끗하게 정리된 자신의 몸이 눈에 들어왔다.어젯밤 그렇게 만취한 상태에서 스스로 씻을 능력은 없었을 터, 남은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하도원이 직접 씻겨준 것이다.그 사실이 오히려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끝나고 나면 자기 옷 챙기기 바쁘지,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진 않으니까.옷을 갈아입은 임서율은 화장대 앞에 앉아 옅게 화장했다. 출장을 가야 하니 차림새도 단정해야 했다. 서랍을 열다 지난번 하도원이 사준 향수가 눈에 띄어, 그것도 챙겨 들었다.마침 샤워를 마친 하도원이 나오며 그녀를 보고는 조금 놀란 듯 말했다.“꽤 빠르네. 머리는 괜찮아?”“네, 좀 나아졌어요.”하도원도 빠르게 옷을 입고 미리 싸둔 가방을 들었다.“그럼 내려가자. 아침 먹고 바로 출발해야지.”둘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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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넌 뭘 몰라서 그래. 이건 연인 사이의 은밀한 재미일 뿐이야. 부끄러워할 것도 없고, 오히려 네가 인정해야 할 욕구지.”하도원의 눈꼬리가 가볍게 올라갔고 눈동자에 잔잔한 빛이 스쳤다. 그 시선에는 어쩐지 묘하게 끌어당기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임서율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창피해 어쩔 줄 몰랐다. 차라리 그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을 정도였다.“억지 부리지 마요.”그녀는 성급히 하도원을 밀어내고 난간을 붙잡으며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하도원의 눈가에는 오히려 웃음기가 배어들었다.식사 자리에서 하도원이 김정란에게 말을 건넸다.“이모님, 오늘 아침에 일찍 닭 삶으셨다면서요? 서율이한테 국물 많이 주세요.”김정란은 상황을 단박에 알아채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이고, 알았어요. 제가 지금 갖다드릴게요.”임서율이 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에요, 이모님. 아침부터 국은 좀 느끼해요.”“괜찮아요, 기름은 다 걷어냈으니까 가볍고 맛도 좋아요.”김정란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마치 산후조리라도 받는 듯했다.임서율은 난감해 하도원의 옷자락을 슬쩍 잡아당겼다.“빨리 말해요, 나 진짜 필요 없다고요.”“보충은 해야지. 요 며칠 일정도 빠듯했는데, 네 몸이 버틸 수 있겠어?”하도원은 삶은 달걀을 그녀 앞으로 밀어두며 단호하게 말했다.임서율은 속수무책이었다. 억지로라도 먹어두지 않으면 길에서 쓰러질 게 뻔했으니 입맛은 없어도 결국 꾸역꾸역 삼킬 수밖에 없었다.곧 김정란이 국을 들고 와 내밀었다.“어서 드세요, 서율 씨. 직접 키운 토종닭이에요. 원기 회복엔 이만한 게 없죠.”김정란의 열정에, 임서율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었다.“네, 감사합니다.”국물 위엔 기름기 한 점 보이지 않았는데, 김정란이 정성을 다했다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한 숟가락 떠먹자, 고소한 맛에 굳었던 표정이 천천히 풀렸다.“정말 맛있네요.”김정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맛있다니 다행이네요. 제가 한 그릇 더 드릴까요?”“그럼, 하 대표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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