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의 모든 챕터: 챕터 721 - 챕터 730

790 챕터

제721화

임서율은 시선을 거두고 휴대폰으로 근처 술집을 검색했다.그중 가장 마음에 든 곳은 오렌지 술집이었다. 은은한 고풍스러움이 묻어나는 인테리어에, 1층에서는 잔잔한 공연도 곁들여져 있어 분위기를 풀기에도 좋았다. 그렇다고 시끄럽지도 않아, 일 얘기를 나누기에도 제격이었다.그녀는 곧장 예약을 눌렀다.“봐요, 내가 고른 이곳 완전 딱이지 않아요?”평소 같았으면 하도원은 성가시다는 듯 휴대폰을 밀쳐내며 아무 데나 잡으라고 했을 터였다.하지만 이번엔 의외로 흥미로운 듯 화면을 들여다봤다.“괜찮아 보이네. 하지만 방을 잡는 게 낫겠어. 조용해야 대화가 잘 들리고, 또 이안이는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일 얘기하는 걸 싫어해.”하도원이 고개를 숙여 화면을 함께 보는 순간, 까만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임서율의 턱끝을 살짝 스쳤다. 간질거림과 함께 은은하게 풍기는 샴푸 향이 그의 냉담한 분위기와 묘하게 어울렸다.임서율은 순간 멍해졌다.‘아니, 방금까진 성 대표, 성 대표 하더니... 이제는 친근하게 이안이라고 부르네?’괜히 속이 쓰렸다. 하지만 곱씹을 틈도 없이 하도원이 또 말을 이었다.“그리고 저녁에 안주 몇 가지 미리 시켜둬. 방 안은 조금 꾸며 달라고 해. 이안이는 은은한 분위기를 좋아하니까. 음...”임서율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물었다.“꽃도 좀 두는 게 어때요? 그러면 성 대표님 더 좋아하시겠죠?”말은 그렇게 했지만 얼굴에는 이미 불쾌감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하도원은 눈치도 못 챈 듯, 오직 성이안을 기쁘게 할 생각뿐이었다.“좋네. 너도 여자니까 더 잘 알 거 아냐. 알아서 해.”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외투를 벗어 던지고 침대에 드러눕더니, 방 안에서 무심히 외쳤다.“와서 노래 좀 불러.”임서율은 어깨가 푹 내려앉았다. 늘 이런 식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하도원을 달래는 것도 결국 그녀의 일이었다.그녀는 침대 곁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정작 본인이 먼저 졸음에 굴복해 버렸다.눈을 감고 있던 하도원은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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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2화

하도원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을 켜자, 화면에 새로 뜬 메시지가 눈에 들어왔다.[나 술집 갔어.]그 문장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어깨가 툭 하고 내려앉았다.‘다행이야. 역시 시간 관리 하나는 철저한 사람이니까.’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다시 앉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했다.‘하도원은 지금 성 대표랑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겠지. 술 마시며 이야기 나누는 건 문제가 없지만, 혹시라도 분위기에 취해 버리면...’성이안의 속내는 뻔히 드러나 있었고 하도원에 대한 호감을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하도원이 말한 것처럼 남자든 여자든 좋아하는 상대 앞에선 똑같았다. 욕심도, 소유욕도, 성별의 구분 없이 끓어오르는 법이었다.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머릿속에 선명한 장면을 그려버렸다.‘설마, 하도원이 정말 성 대표랑...?’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하도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야. 일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내던질 리 없어. 만약 그런 부류였다면 지금쯤 곁에 여자가 수두룩했을 거야.’하지만 문제는 하도원이 아니라 성이안이었다.혹시 술에 무언가를 넣기라도 한다면... 임서율은 소름이 돋아 어깨를 움츠렸다.‘가서 확인하는 게 낫겠어.’그녀가 바라는 건 단지 하도원이 매력을 적당히 이용해 협상을 원만히 성사시키는 정도지 결코 몸까지 내주는 게 아니었다.임서율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다시 멈췄다.‘내가 나타나면 성 대표가 의심하겠지...’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진승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진 비서님, 지금 대표님이랑 같이 계신가요?]답은 곧 돌아왔다.[저는 제 방에 있습니다. 대표님은 오늘 밤 성 대표님과 단둘이 술집에 가신다고 하셔서요. 제가 본 건 혼자 나가시는 모습뿐이었습니다.]임서율은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꽉 쥐었다.하도원은 정말 혼자 간 것이었다.진승윤은 그녀의 불안한 기색을 눈치채고 조심스레 다른 제안을 내놨다.[서율 씨, 저희 그냥 살짝 가서 볼까요? 혹시 대표님이 성 대표님이랑 과음이라도 하신다면, 모시고 와야 하잖아요.][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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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3화

진승윤은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임서율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눈치챘다. 그녀의 눈썹이 아주 살짝 찌푸려진 걸 보고는, 자신이 방금 실언했다는 걸 깨닫고 급히 말을 고쳤다.“서율 씨,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제 말은, 대표님은 절대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임서율이 곧장 받아쳤다.“그럼 성 대표님은요?”“성 대표님은...”진승윤은 고개를 숙였고 뭐라 답해야 할지 몰라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임서율은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은 듯 단호하게 물었다.“근데 진 비서님도 눈치챘죠? 성 대표님이 도원 씨 좋아하는 거.”이번엔 진승윤의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빠져 있으신 것 같아요. 서율 씨는 모르실 테지만, 성 대표님은 지금 처음 대표님을 마음에 둔 게 아닙니다. 예전에 해외에서 함께 근무할 때부터 이미 좋아했어요. 이건 우리 회사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입니다.”임서율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그럼 두 분이 같이 일한 기간이 얼마나 됐는데요?”“3년쯤 됐을 겁니다.”진승윤이 턱을 매만지며 기억을 더듬듯 말했다.“해외에서만 3년, 그리고 대표님께서 귀국한 시간까지 합치면 거의 7년이네요!”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성이안이 이렇게 오랫동안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니.정작 그녀도 이런 상황에서 십 년 가까이 한결같이 한 사람을 마음에 두는 게 가능할까 확신할 수 없었다. 그것도 상대가 마음을 주지 않은 채, 오롯이 혼자만 애써야 한다면.분명 성이안도 알고 있을 터였다. 하도원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정말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에 두 사람은 이어졌을 테니까.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임서율은 오히려 등골이 서늘해졌다.그녀와 하도원은 아직 계약 연애 중이니, 지금은 연인 관계인 셈이다. 그러니 그가 원한다면 그녀에겐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계약이 끝난 후엔 하도원이 누구를 좋아하든, 누구와 함께하든 상관없는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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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4화

임서율은 손가락으로 돈 세는 시늉을 해 보였다.“이 세상에 돈만 제대로 주면, 안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진승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 말도 맞네요. 그럼 해보죠.”불과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위층에서 급한 발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곧 각 방의 문들이 차례차례 열렸고, 당연히 하도원과 성이안이 있던 방도 예외는 아니었다.갑작스러운 방해에 성이안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스쳤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왜 우리까지 전부 내려가야 하는 건데요?”직원은 예의 바른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정말 죄송합니다, 손님. 경찰에서 갑자기 수색을 왔어요. 저희 술집의 특수성 때문에 오늘은 위층 객실을 모두 비워야 하는 상황입니다.”성이안은 눈살을 바짝 찌푸리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그건 당신들 문제잖아요. 우리가 굳이 이 객실을 고른 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인데, 이렇게 하면 어떻게 일을 하라는 거죠?”직원은 연신 고개를 숙이며 거듭 사과했다.“불편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대신 오늘 객실 사용료는 전부 저희 사장님께서 부담하시고, 특제 와인 한 병을 서비스로 드리겠습니다.”하지만 성이안의 표정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돈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지금은 당신들 사정 때문에 제 일이 방해를 받고 있어요. 우리가 원한 건 조용한 공간이지, 공짜 술이나 와인이 아니라고요.”직원은 난감한 듯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아래층도 충분히 조용합니다. 방금 공연도 모두 중단시켰으니 안심하고 이야기 나누셔도 됩니다.”성이안은 한동안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그때 하도원이 앞으로 나서더니 성이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이 사람도 지시 받은 거니까 괜히 곤란하게 하지 마.”성이안은 하도원의 눈치를 보며 서둘러 해명했다.“도원 씨, 오해하지 마. 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도원 씨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니까, 더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었어. 알지?”하도원의 표정은 변함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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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5화

하도원이 고개를 들었다. 완벽한 이목구비는 언제 보아도 사람을 빠져들게 만들었다.“기획안에 관한 문제야?”“아니, 사적인 문제야.”성이안은 치맛자락을 꼭 움켜쥐었고 긴장한 듯 붉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하도원은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몸을 뒤로 기대었다.“사적인 얘기라면 나중에 해. 오늘은 사업 이야기 때문에 나온 거니까, 궁금한 거 먼저 물어봐.”그의 태도에 성이안은 두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도원 씨, 내가 도원 씨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봤는지,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모르진 않았을 거야. 해외에서 함께 일할 때도 고백했잖아. 그때 도원 씨는 연애는 아직 생각도 없다고 했었지. 일이 중요하다면서.”“하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도원 씨는 이미 회사를 세웠고 기반도 잡았어. 이제는 연애해도 되는 거 아니야?”하도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이런 화제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다.“성 대표, 내 회사 사정은 지금도 어려워. 이런 상황에 내가 연애할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성이안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속내를 드러냈다.“상관없어. 내가 도와줄게. 이번 위기만 잘 넘기면, 그다음엔 나랑 함께해 주면 안 돼?”하도원은 서늘한 표정으로 말했다.“성 대표, 나랑 오래 일했으니 잘 알겠지. 난 일할 때 사적인 문제를 끌어들이는 걸 굉장히 싫어해.”그러나 성이안은 물러서지 않았다.“그럼 이렇게 해. 지금 당장 계약서에 사인할게. 다만 사인한 뒤에 내 질문에 대답해 줘.”하도원은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기획안을 다시 집어 들며 담담히 물었다.“다시 묻지. 성 대표, 이 안에 제시된 조건들, 정말 다 받아들일 수 있어?”성이안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다. 왜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일밖에 없는 걸까.“도원 씨,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옆방에 숨어 있던 진승윤은 대화를 엿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성 대표님이 아직도 대표님을 포기 못 하셨네요. 이번엔 아예 계약을 미끼로 답을 강요하잖아요.”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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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6화

진승윤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는 어색하게 임서율을 쳐다보다가, 곧 자기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죄송합니다, 서율 씨. 아까 한 말은 취소할게요.”그는 차라리 땅속에 구멍이라도 뚫고 들어가고 싶었다.‘아니, 대표님 대체 왜 이러시는 거야. 성 대표님 제안을 거절하지 않다니, 서율 씨랑 만나던 거 아니었어?’임서율은 그 말을 들은 순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역시 너무 순진했다. 하도원이 혹시 술에 취해 성이안에게 휘둘릴까 봐 걱정했지만, 지금 보니 오히려 스스로 성이안에게 휘둘려도 괜찮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았다.임서율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고, 고요한 수면처럼 잔잔했다.“가죠.”진승윤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네? 지금 그냥 돌아가는 거예요? 조금 더 지켜보는 게...”“볼 것도 없어요. 우리가 여기 앉아 있는 건 오히려 방해될 거예요.”그녀는 더 이상 기다릴 뜻이 없다는 듯, 곧장 걸음을 옮겼다.진승윤은 못내 아쉬운 듯 하도원의 쪽을 힐끔 돌아봤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어 결국 임서율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괜히 임서율을 혼자 두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면, 나중에 하도원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차에 올라탄 순간, 진승윤은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몸을 움츠렸다. 임서율은 별다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차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대표님이랑 같은 분위기가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내 목숨이 남아나질 않았을 거야...’그 시각, 아무것도 모르는 하도원은 여전히 성이안과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그가 생각해 보겠다고 말한 순간, 성이안의 눈빛이 환하게 빛났다. 마치 세상 가장 귀한 보물을 손에 넣은 사람처럼.“도원 씨, 정말이야? 나랑 만나는 거 생각해 볼 거야?”“며칠 시간을 줘. 다만 조건이 있어. 내가 어떤 대답을 하든, 이번 프로젝트는 공과 사를 분명히 구분해야 해. 사적인 감정을 섞는다면, 우리는 앞으로 친구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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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7화

“아까 사장님한테 돈까지 챙겨 줬더라. 평소엔 우리 보면 원수 만난 것처럼 인상만 쓰던 양반이, 오늘은 싱글벙글 웃고 난리였잖아. 퇴근하면 다 같이 야식 사주겠다던데?”“진짜야? 나 일하느라 개처럼 굴러다녀서 야식 먹을 시간도 없었는데.”“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문제는, 그 아가씨가 왜 굳이 그런 짓을 했냐는 거지. 그게 이해가 안 돼.”“혹시 남편이 여기서 딴 여자랑 술 마시고 있는데, 체면 때문에 직접 찾을 순 없으니까, 그냥 전부 내보낸 거 아냐?”“네 말 듣고 보니, 그럴듯한데?”하도원은 그 얘기를 들으며 문득 임서율이 떠올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느낌일 뿐, 이성적으로는 설마 임서율이 그럴까 싶었다.이미 그와 잠자리를 가졌고, 그녀에게 진심으로 사귀고 싶다고까지 말했는데, 정작 그녀는 아직도 망설이고 있었다.하도원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고, 임서율의 사진을 찾아내 직원에게 내밀었다.“방금 돈을 건네준 아가씨, 혹시 이 사람 맞습니까?”직원은 눈을 크게 뜨고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바로 이분이에요. 혹시 손님, 이분 아세요?”옆에서 같이 있던 동료가 눈치를 주자, 그제야 직원은 상황을 알아차린 듯했다.‘아, 이 손님이 바로 그 아가씨가 찾던 남자였구나. 역시 잘생긴 사람은 다 똑같아, 절대 한 여자만 보지 않는 법이지.’하도원은 그런 수군거림을 아는지 모르는지, 피식 웃으며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건넸다.“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직원은 돈을 받아 들고도 어리둥절했다.“이상한 사람이네... 애인이 분명 여기서 다른 여자랑 술 마시는 걸 눈치챘을 텐데, 팁을 줄 기분이 날까?”하도원은 택시를 타고 곧장 호텔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가 외투를 벗은 뒤, 곧장 임서율의 방문을 두드렸다.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시계를 확인하니, 그녀가 술집에서 나간 지 대략 40분 남짓이었고 이 시간에 벌써 잠들었 리는 없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은 됐어도 받지 않았다.이번엔 메시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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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8화

임서율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 입술을 꾹 다문 채 시선을 피했지만, 속으로는 식은땀이 맺히는 기분이었다.‘도대체 왜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거야. 걸음 수까지 확인하다니...’이쯤 되면 부정하는 건 더 이상했다.그녀는 억지로 핑계를 댔다.“방 안에서 그냥 조금 걸었어요. 요즘 허리가 조금 안 좋아서.”하도원은 그 말을 굳이 파헤치지 않고, 일부러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느긋하게 말했다.“아, 몰랐네. 방 안에서만 운동해도 오천 보나 걸을 수 있다니, 꽤 대단한데.”그는 태평한 자세로 침대에 앉았다. 하얀 셔츠의 단추가 반쯤 풀려 있어, 곧게 뻗은 쇄골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임서율의 심장이 불규칙하게 요동쳤다. 그의 표정과 말투에는 분명한 의심이 깔려 있었지만, 동시에 장난스러운 기색도 스며 있었다.마치 네가 거짓말을 하는 걸 뻔히 알지만, 굳이 지켜보며 즐기겠다는 듯한 태도였다.임서율은 이 거짓말을 계속 이어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니 하도원이 이미 다 꿰뚫어본 게 분명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털어놓기로 결정했다.“그래요. 나갔다 왔어요. 하지만 지금은 퇴근 시간이잖아요. 게다가 난 당신 회사의 정식 직원도 아닌데, 무슨 권리로 따져 묻는 거예요?”말을 끝내자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침대 반대편 끝에 걸터앉았다. 등을 돌려야만 그의 눈길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그러나 하도원은 언제 다가왔는지, 조용히 그녀의 곁에 붙어 섰다.“나 피하는 거야?”그는 나른하게 웃었고, 그녀가 미동도 하지 않자 낮게 덧붙였다.“왜, 내가 널 잡아먹을까 봐?”임서율은 흠칫 몸을 떨며 고개를 홱 돌렸다.“내가 진 비서님도 아닌데, 뭘 무서워하겠어요.”“서율아, 알잖아.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 다 티난다는 거. 자, 이제 솔직히 말해. 오늘 어디 갔다 왔어?”그는 손끝으로 그녀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집어 올려 손가락에 감으며, 장난기 어린 어조를 섞어 말했다.임서율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도원의 강한 기세 때문인지, 아니면 들킬까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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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9화

임서율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하도원이 지금 말하려는 건 절대 좋은 소식이 아니라는 걸.하도원의 성격상, 스스로 나서서 남의 험담이나 가십을 꺼낼 리가 없었다. 설령 누가 먼저 귀띔해 준다 해도, 그가 굳이 귀 기울여 듣는 성격도 아니었다.이건 함정이었다.그녀는 일부러 크게 하품하며 시선을 피했다.“내일 말해요. 지금은 늦었잖아요.”하도원은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씩 웃었다. 그의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는 모든 걸 꿰뚫어 보는 듯한 날카로운 빛이 번뜩였다.“좋아, 그럼 내일 얘기하자. 오늘 밤은 네 방에서 잘까, 내 방에서 잘까?”임서율은 순간 멍해졌다.“뭐라고요?”“재워주는 서비스 말이야.”하도원이 태연하게 일깨워주었다.임서율은 휴대폰을 들어 달력을 확인했다.“지금 며칠인지 봐요. 이미 계약 기간 끝났거든요?”“아, 벌써 시간이 됐네. 그럼 하루 연장. 내일 정산해 줄게.”그가 태연히 단추를 풀기 시작하자, 임서율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연장하기 싫으니까 제발 자기 방으로 돌아가서 자요.”이 남자는 파산 위기라는 자각이 있긴 하는 걸까.보통 사람이라면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안달일 텐데, 이 사람은 여전히 유유자적, 마치 돈이 무한정 있는 재벌 같았다.하도원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담담하게 중얼거렸다.“서율아, 그래도 우리 그동안 꽤 오래 함께했잖아. 하루쯤은 덤으로 줘도 되지 않아?”“당신은...”임서율은 말끝을 잇지 못한 채 이를 악물었다.그녀가 반박할 틈도 없이, 하도원은 벌써 침대 위에 몸을 던졌다.임서율은 손끝이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움켜쥐었고, 가슴속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내가 뭐 자기 시녀라도 된단 말이야? 필요하면 부르고, 필요 없으면 내치고...’게다가 밖에서는 성이안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산장 초대까지 흔쾌히 받아놓고, 이제 와서 무슨 낯짝으로 이렇게 태연하게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임서율은 아예 거리를 두며 의자에 앉아버렸다.그녀의 표정은 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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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0화

임서율의 머릿속은 순간 정지된 듯 멍해졌다.‘왜 나는 저 조항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거지...?’하도원은 손목에서 시계를 풀어내 옆 탁자 위에 툭 내려놓았다.“의심되면 전자 계약서 다시 확인해봐.”임서율은 반사적으로 휴대폰을 꺼내 계약서를 열었다.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조항을 찾아내는 순간, 그녀는 입을 떡 벌렸다.정말 있었다. 다만 다른 조항 사이에 교묘히 끼워져 있어서, 얼핏 보면 알아차리기 힘들었다.그녀는 휴대폰을 꼭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이 사기꾼! 교활한 여우 같은 놈!’하도원은 태연하게 옆자리를 두드렸다.“그만 보고 얼른 누워. 일찍 쉬어야지. 내일은 산장에도 가야 하잖아.”임서율은 낮에 술집에서 하도원이 성이안에게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비릿하게 올렸다.“이제 와서 무슨 의미가 있어요? 기획안은 이미 성 대표님 손에 넘어갔고, 조항들도 전부 이해했을 텐데요. 지금은 성 대표님께서 단지 고민하는 단계일 뿐이잖아요.”“직업 윤리에 대해 다시 설명해야 할까? 지금 네 모습은 마치 사회에 갓 발을 들인 신입사원 같아.”그제야 임서율은 깨달았다. 그가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는 내내 감정에 휘둘리고 있었다는걸.정작 본인조차 그 감정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낮게 중얼거렸다.“미안해요. 세수 좀 하고 올게요.”임서율은 욕실로 들어가 문을 닫고 수도꼭지를 틀었다. 차가운 물을 두 손에 담아 얼굴에 힘껏 끼얹자, 그제야 머릿속이 조금 맑아졌다.거울에 비친 창백한 얼굴을 마주한 순간, 방금 전 자신의 일련의 반응들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깨닫고 말았다.‘나 지금 질투라도 한 거야? 하도원하고 성이안을 두고?’거울 속 자신을 노려보며,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임서율, 너 제정신이야? 하도원은 네 진짜 남자 친구가 아니야. 그저 계약 상대일 뿐이라고.”하지만 인정하기 싫어도, 하도원은 어디서나 눈길을 끄는 남자였다.흠잡을 데 없는 외모와 체격, 내면의 단단함과 기품, 어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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