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의 모든 챕터: 챕터 681 - 챕터 690

818 챕터

제681화

하도원은 휴대폰에 단 한 줄을 찍어 보냈다. 글자마다 날카로운 경고의 기운이 묻어났다.[주재훈, 요즘 많이 한가한가 봐? 너희 집 영감님께 말씀드려서 너 해외로 보내라고 할까?]주재훈은 곧바로 손가락을 멈추었다. 그때 곽현호가 하도원을 달래듯 나섰다.[됐어. 내가 답을 알려줄게. 두 가지로 방법으로 공략해야 해. 하나는 자극을 주는 거고, 다른 하나는 그 사람한테 형의 진심을 보여주는 거야. 장난이 아니라.][그 ‘자극’이라는 게 뭐냐면...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똑똑히 직시하게 만드는 거야. 내가 만나본 여자들 중에도 그런 성격이 꽤 있었어.] [속으로는 좋아하면서도 입으로는 절대 인정하지 않는 자존심 센 타입 말이야. 서율 씨 성격도 비슷하잖아.]하도원은 그 분석에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임서율은 한눈에 보기에도 자존심이 세고 고집스러운 사람이었다. 늘 집착과 포기 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곤 한다.하도원은 허투루 시간을 낭비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해결책이 보이자 곧장 답장도 하지 않고 채팅창을 닫아버렸다.주재훈이 다시 몇 번이나 하도원을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됐어. 이럴 줄 알았어. 다 이용해 먹었으니까 필요 없다 이거지. 해답만 얻고 사라져버렸어.]곽현호는 폭소를 터뜨렸다.[형 계속 이래왔잖아.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지. 그런데 말이야, 아무래도 형은 아직 서율 씨 마음을 완전히 얻진 못한 것 같아.]주재훈이 한숨 이모티콘을 보냈다.[마음에 드는 여자를 쟁취하는 길은 멀고도 험한 법이지. 행운을 빌 수밖에.]하도원은 휴대폰을 내려놓은 뒤 머릿속을 차근차근 정리했다. 대략적인 방향이 잡히자 마음도 한결 가라앉았다.그때 부엌에서 김정란이 걸어 나왔다.“자, 식사하세요.”하도원은 몸을 일으키며 위층으로 향했다.“아주머니, 같이 드시죠.”뜻밖의 제안에 김정란은 화들짝 놀랐다.이곳 하씨 집안엔 주인과 도우미가 함께 겸상할 수 없다는 규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전 임서율이 두어 번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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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될 대로 되라지.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될 일이다. 묻지 않으면 그녀 역시 말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묻는다 해도 이미 다른 방법을 생각해 두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식탁에 앉자 하도원은 그녀에게 반찬을 덜어주며 말했다.“많이 먹어.”그가 자신의 그릇 위에 얹어 놓은 반찬을 본 순간, 임서율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걸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하나 보다.평범하기 그지없는 행동인데도 아까 유민과의 통화를 그가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불안해진 것이다.하도원이 가장 잘하는 게 바로 사람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었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갖고 노는 것처럼 바로 죽이지 않고 거듭 장난을 치곤 한다. 그렇게 먹잇감으로 하여금 스스로 견디지 못해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만든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임서율은 파르르 온몸을 떨었다. 약간의 공포감까지 깃들었다.하지만 그녀 역시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릴 만큼 어리석지 않다.먹는 둥 마는 둥 깨작거리는 임서율의 모습에 천천히 생선 살을 발라먹던 하도원이 물었다.“내가 낮에 했던 말, 생각 좀 해봤어?”임서율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뭘요?” 하도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임서율, 내가 한 말 제대로 듣긴 한 거야? 아니면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야?”그녀는 몇 초간 생각하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아, 기억나요.”“그래, 그럼 대답은?”임서율은 고개를 저었다.“아직이요.”“정말 아직 못 정한 거야, 아니면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이었던 거야?”하도원의 돌직구 같은 질문이 그녀의 정곡을 찔렀다.임서율의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버렸다. 그에게 너무 많은 신세를 졌기에 차마 단칼에 거절할 수는 없었다.사실, 하도원에게 전혀 감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함께 지내며 정도 들었고, 더욱이 과거의 일을 알게 된 이후엔 그에 대한 호감이 배가 되었다.다만...그와의 문제는 그리 단순한 게 아니었다.저쪽에서 맡은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욱 중요한 건 그녀에게는 반드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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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임서율의 얼굴에 짜증스러움이 묻어났다.“아버지, 아까 다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지금 아버지를 아버지로 인정하는 건, 비록 늘 임유미를 편애하신다 해도 어느 정도 이해는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임유미도 아버지의 딸이긴 하니까요.”“하지만 아버지, 자꾸만 저를 옭아매려 하지 마세요. 전 임유미에 대한 아버지의 죄책감까지 대신 짊어질 의무 없어요.”“듣자 하니 도원이네 회사에 요즘 문제가 많다면서? 단기간에 투자자를 끌어오지 못하면 파산까지도 갈 수 있다지.”그 말을 들은 순간, 임서율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안감이 무섭게 엄습했다.“아버지,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예요?”“우리 해성 그룹이 완전히 위기에서 벗어나게 돕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급한 불은 꺼줄 수 있다.”“네가 만약 네 동생을 살려준다면, 난 해성 그룹의 반을 떼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 도울 거야.”그 순간, 임서율의 가슴이 거칠게 요동쳤다. 당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은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들었다.그녀를 죽이려 했던 임유미를 위해, 기꺼이 회사 절반을 내어주겠다니.눈물이 왈칵 차올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그저 한마디, 임규한에게 물었다.“만약 언젠가 저한테 이런 상황이 닥쳐 회사와 바꾸어야 한다면... 그때도 이런 선택을 하실 건가요?”“그럼. 당연하지.”한 치의 망설임조차 없는 대답이었다....가슴속 쓰라린 상처가 아주 조금은 치유되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선뜻 답을 내놓기는 어려웠다.“생각 좀 해보고 며칠 안에 답 드릴게요.”“그래, 천천히 생각해. 급할 것 없어. 네 동생도 결국 자업자득이니 안에서 고생 좀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그 말에 임서율은 묘한 통쾌함을 느꼈다.전화를 끊고 돌아선 순간, 건너편에 있는 하도원의 잔뜩 찌푸려져 있는 얼굴이 들어왔다. 방금 전만 해도 우울해 있었던 임서율은 숯가마처럼 새까맣게 일그러진 그의 표정을 보니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누가 또 당신 화나게 한 거예요? 하도원 씨, 내가 거울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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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마지막 한마디에는 은근한 삐딱함까지 섞여 있었다.임서율은 어리둥절한 듯한 얼굴이었다.“언제 보낸 건데요? 난 몰라요.”그녀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양지우의 프로필을 누르려는 순간, 하도원이 손을 뻗어 그대로 빼앗아 갔다.그는 메시지를 하나하나 열어보더니 사진들을 모조리 지워버렸다.임서율은 반사적으로 그의 팔을 붙잡았다.“잠깐! 전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왜 멋대로 지워요!”하도원은 휴대폰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왜, 나 하나로도 모자라 다른 남자까지 건드리려고? 아이고, 우리 임서율 씨, 생각보다 꽤 화려하게 노네?”임서율은 발끈하며 그의 말을 부정했다.“화려하게 논다니요! 난 그저 한 번 보려고만 했던 것뿐이에요. 잘생긴 사람 좋아하는 게 죄예요? 그리고 당신은 다 봤으면서, 왜 난 안 된다는 거예요?”그때, 하도원은 오관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는 준수한 얼굴을 그녀에게 바짝 들이밀었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기묘한 울림을 머금고 귀를 파고들었다.“내 얼굴만으로는 부족해? 꼭 다른 놈들까지 봐야겠어?”그의 음성은 눅눅한 열기와 함께 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임서율은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하도원은 매번 이런 식이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말 한마디, 눈빛 하나만으로도 넘치는 남성미를 드러낸다.더욱 큰일인 건 그 모습이 그녀의 취향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 자체가 매혹적이었다. 하도원의 깊은 눈동자가 혼을 빼갈 것처럼 집요하게 응시하자 임서율은 숨이 막혀 고개를 돌려버렸다.“안 보면 되잖아요. 그런데 지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단순히 남자 얼굴을 보여주려고 보낸 건 아닐 거예요. 제가 전화해서 직접 물어볼게요.”“그럼 내가 다 지우고난 뒤에 해.”하도원은 한 장도 놓칠 수 없다는 기세로 하나하나 세심하게 삭제하고 나서야 휴대폰을 건넸다.임서율은 곧장 양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바로 연결됐다.“서율아! 내가 아까 전화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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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어... 저기, 양지우, 함부로 말하지 마. 그런 걸 아무렇게나 말하면 안 되지!”임서율은 혹여라도 양지우가 더 불편한 말을 꺼내기라도 할까 봐 다급히 말을 끊었다. 바로 옆에서 자신을 뚫어지라 노려보고 있는 잔뜩 날이 선 하도원의 시선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 말하게 놔두었다간 오늘 저녁잠도 제대로 자지 못할 것 같았다.양지우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서율아, 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설마 잊어버린 거야? 지난번 네가 새로운 프로젝트 진행할 거라고 말했었잖아. 여성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뭐겠어? 당연히 매력적인 남자 아니겠어?”양지우의 말이 이어지자, 임서율은 그때에야 비로소 자신이 무심코 흘리듯 내뱉었던 말이 떠올랐다.뒤에 다른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그 프로젝트는 잠시 접어두었었다.양지우의 기억력이 이렇게까지 뛰어날 줄이야.임서율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게 좋겠네. 근데 나 아까 제대로 보지 못했어. 하 대표님이 실수로 다 지워버렸거든. 혹시 다시 한번 보내줄 수 있어?”“그럴 필요 없이 차라리 우리가 직접 면접 보는 게 낫지. 그래야 진짜 괜찮은 사람을 고를 수 있으니까.”양지우의 제안이 더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임서율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게 더 낫겠다. 그럼 그렇게 하자.”“참, 그쪽 일은 잘 돼 가? 내가 가서 도와줄 거 있어?”양지우는 하도원에 관련된 일이라는 걸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불안감에 안절부절못하던 임서율로 하여금 안도하게 했다.“괜찮아. 시간이 늦었어. 얼른 쉬어.”“그래.”잠시 후, 통화를 마친 임서율은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그녀가 주도권을 잡을 차례다. 묘한 쾌감이 밀려와 입꼬리가 위로 말려 올라갔다.“하 대표님, 이젠 제 결백을 인정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하도원은 턱을 괴고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혹시라도 있을 상황을 대비해 이러는 거야. 그중에 나쁜 꿍꿍이를 품은 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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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하지만 그녀가 있은 뒤로 밤이 기다려지기 시작했다. 설레고 기분 좋은 색다른 느낌이었다.임서율이 위층으로 올라간 뒤 막 욕실에 들어가려던 중 드디어 양지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일부러 핸드폰을 들고 하도원 쪽으로 걸어갔다.만약 스피커를 누르다면 너무 노골적이라 의심 많은 하도원에게 곧바로 들켜버릴 것이다.하여 그녀는 음량을 최대치로 높이고 태연하게 전화를 받았다.“지우야, 무슨 일이야.”양지우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율아, 나한테 심각한 일이 좀 생겼어. 지금 좀 와줄 수 있어? 네가 도와줘야 해.”임서율도 목소리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무슨 일인데 그래? 말해봐.”“전화로는 말하기 곤란해서 그래. 일단 와줘.”“알았어.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뒤 임서율은 외투를 걸치며 하도원에게 말했다.“당신 먼저 쉬어요. 난 지우 집에 다녀와야겠어요.”하도원이 망설임 없이 말했다.“내가 같이 갈게.”“그럴 필요 없어요. 아까도 도원 씨가 집에 있는 걸 아니까 전화로 말 못 했을 거예요. 당신이 가면 더욱 말을 꺼내기 힘들어할 거예요.”“그럼 올라가지 않고 아래에서 기다리지 뭐.”하도원은 곧바로 다른 방법을 생각해냈다.“번거롭게 그럴 필요 없어요. 불안하면 진 비서님을 붙여줘요. 그럼 되잖아요.”그녀의 자연스러운 제안에 하도원은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잠시 후 진승윤의 차에 올라타 출발한 다음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하 대표님 혹시 의심하지 않을까요?”“아닐 거예요. 빈틈없이 진행했으니까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스스로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도원은 워낙 치밀한 인물이니 말이다. 그에 대해 잘 안다고 자신하는 진승윤도 가끔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당황하기가 일쑤였다.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하지 않나. 임서율의 마음속에도 불안감이 깃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저할 겨를이 없었다.“일단 일부터 해결해요. 사무실 열쇠는 챙겼죠? 먼저 감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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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임서율은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진승윤에게 물었다.“그 이유가 뭔데요?”“LS, 뭔가 사람 이름 같지 않아요?”진승윤은 바로 답을 말하지 않고 힌트만 간단히 주었다.임서율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누구 이름인데요?”그녀가 전혀 눈치를 못 채자 진승윤은 다시 짚어 주었다.“잘 생각해 보세요. L, 그리고 S.”층수를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임서율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L과 S, 이름의 이니셜을 의미하는 거라면... 그런 이름은 세상에 너무 많지 않은가. 도대체 어떻게 맞추란 말인가.“진 비서님, 일부러 저 곤란하게 하려고 이러시는 거죠. 하 대표님 인맥이 얼마나 넓은데, 누구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지었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설마... 대표님의 어머니세요?”진승윤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혀버렸다.“등잔 밑이 어두운 법이죠.”‘띵.’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임서율은 깜짝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설마... 그 사람이 저는 아니죠?”진승윤이 말했다.“LS, 서율 씨 한자 이름 앞 글자와 끝 글자 이니셜이잖아요. 쉽게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장난으로 한 말이 정답이었다니... 그녀는 얼떨떨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진 비서님, 장난치지 마세요.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대표님이 왜 제 이름을 적어놓으셨겠어요? 게다가 회사를 세울 땐, 전 아예 없었을 텐데요?”“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중요한 건 두 분이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죠. 단지, 그때 서율 씨는 대표님에게 관심을 두고 계시지 않았던 거죠.”임서율은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했다.“이건 말도 안 돼요. 농담이시죠? 대표님이 아무리 한가해도 제 이름을 쓸 리는 없어요. DY 같은 이름도 충분히 괜찮잖아요.”세상엔 이렇듯 누군가의 이름을 딴 회사가 많고도 많다. 하필이면 그녀의 이름이어야 할 이유는 도무지 찾아볼 수가 없다.진승윤은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었다.“그 이유에 대해선 스스로 찾아보세요.”말을 마친 뒤 그는 곧장 열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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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하도원의 필체는 휘갈겨 쓴 듯 거칠지만 분명한 특징이 있어 알아보기 쉬웠다. 그게 가장 곤란한 점이었다.임서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곤 연습지 위에 몇 번이고 흉내를 내봤다. 하지만 결과물은 ‘비슷하다’라는 말조차 붙일 수 없을 정도였다.진승윤은 난감한 얼굴로 식은땀을 훔쳤다.“서율 씨, 제가 그때도 말했잖아요. 이 방법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요. 도장을 훔치는 건 쉬워도, 사인을 흉내 내는 건 어려워요.”“저도 모방해 봤지만 전혀 안 되더라고요. 글씨가 조금이라도 다르면 금세 들통납니다. 연관된 다른 서류도 심사에 통과 못 할 거고요.”임서율 역시 긴장으로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가정 걱정되는 건 사인을 베끼는 데에 실패하는 것이었다.“저 다그치지 말아요. 좀 더 연습해 볼게요.”그녀는 하도원의 사인을 이리저리 반복적으로 관찰했다. 확실히 획들이 이어져 흐르듯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 역시 예전 서예를 배운 적이 있었지만, 그의 필체는 그보다 더욱 복잡했다. 필경 그의 이름 자체부터 단순하지 않았으니 말이다.십여 분 동안 집중한 끝에, 그녀는 다시 모사해 진승윤에게 내밀었다.“어때요, 이번엔 좀 닮았죠?”진승윤은 그녀가 내민 사인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조금 닮았네요.”임서율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주무르고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좋아요, 이제 도장을 꺼내 주세요.”진승윤은 머뭇거리며 뒷머리를 긁적였다.“문제가 있습니다. 도장은 대표님의 금고에 보관되어 있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쓸 수 있습니다..”임서율의 펜 끝이 멈췄다. 그녀는 한동안 진승윤을 노려보았다. 정말이지 폭발해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한 손으로 허리를 짚고 하도원의 책상에 몸을 기댄 채 말했다.“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거예요? 사인도 제가 모사해야 하고, 이번엔 또 그 사람의 머릿속까지 들여다보라는 거예요? 금고 비밀번호까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진승윤은 난처하게 웃으며 변명했다.“서율 씨, 절 탓하지 마세요. 미리 말했더라면 분명 거절하셨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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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예전 차주헌의 회사에도 많은 싱글맘 직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취한 방식은 아이를 데리고 회사에 오는 걸 철저히 금지하는 쪽이었다.단 한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그의 논리는 단순했다. 회사에는 명확한 규정이 있다. 회사는 유치원도, 시장 바닥도 아니니 아무도 들여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결과는 뻔했다.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는 싱글맘 직원들은 하나같이 업무에 문제를 일으켰고, 차주헌은 그저 일방적으로 처벌만 내릴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않았다.잠시 후, 진승윤이 바깥 사무실 책상 위에서 글씨 연습 책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서율 씨, 우선 급한 대로 이걸 쓰시죠. 나중에 제가 다시 사서 아이에게 줄게요.”“알겠어요.”임서율은 연습지를 하도원의 사인 위에 얹고, 하나하나 따라 그려내듯 흉내 냈다.다행히 예전 배웠던 경험이 있어 빠르게 70퍼센트 닮은 정도로는 뽑아낼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이 베낀 사인을 진승윤 앞에 내밀었다.“어때요? 이 정도면 가능하겠어요?”“충분해요. 누가 일부러 의심을 품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들킬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좋아요. 그럼 우선 계약서에 사인을 해두고 도장은 그다음에 생각해요. 그리고 이건 유민의 전화번호예요. 직접 연락해서 이 빌딩의 CCTV부터 지워달라고 하세요. 하 대표님한테 들키는 순간 바로 밥줄이 끊겨버릴 테니까요.”임서율은 휴대폰 화면을 열어 유민의 번호를 진승윤에게 건넸다. 그러고는 곧장 하도원의 금고 앞으로 가 비밀번호 입력을 시도했다.이번에는 그의 생일이나 전화번호가 아니라 곧장 자신의 생일을 눌러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삑’ 그 절망적인 소리에 심장이 또다시 쿵쾅거렸다.그녀의 생일도 아니라면, 하도원의 비밀번호는 대체 뭘까.그녀가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진승윤은 이미 유민과의 통화를 끝내고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서율 씨, 그 유민이라는 친구 실력이 보통이 아니군요. 그렇게 쉽게 CCTV를 해킹하다니. 나중에 사태가 수습되면 아예 우리 기술팀으로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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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임서율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이번엔 절대로 무모하게 시도할 수 없었다.그녀는 이마에 손을 얹고 곰곰이 되뇌었다.“진 대표님, 하 대표님이 혹시 힌트 흘린 적 없어요? 사소한 거라도 좋아요. 제 말은 그 사람의 말로 비밀번호를 유추하자는 거예요.”진승윤의 얼굴엔 당황함이 역력했다.“서율 씨, 하 대표님께서 하루에 저한테 하는 말씀이 얼마나 많은데요... 저더러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내라고요.”임서율이 협박하듯 단호히 말했다.“그럼 어쩔 수 없죠. 지금 진 비서님이 생각해내지 못하시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는 거예요.”“그건...”진승윤은 입술을 질근 깨물고 필사적으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하도원이 금고에 대해 말했던 내용을 최대한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그때 임서율의 휴대폰이 울렸다.유민이었다.발신자 이름을 본 순간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설마 해킹에 실패한 건 아니겠지?그녀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무슨 일이야? 실패했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성공하긴 했어요. 다만 서둘러야 해요.”임서율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무슨 뜻이야?”“하도원이 지금 회사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어요. 급한 일이 있는 모양이에요. 서둘러요.”임서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지금 어디쯤 왔는데?”“거기까지 3킬로미터 정도 남았어요.”임서율은 그야말로 질식해버릴 것처럼 정신이 아찔해졌다.“알았어.”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진승윤을 다그쳤다.“빨리요! 유민이 말로는 하 대표님이 여기로 오고 있대요.”미간을 잔뜩 찌푸린 그의 이마엔 식은땀이 흥건해 있었다.“서율 씨, 조금만 기다려요. 지금 생각하고 있어요.”얼마 후, 돌연 그의 눈빛이 번쩍였다.“기억났습니다! 예전 하 대표님께서 자신의 모든 비밀번호에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예컨대 아파트 비밀번호는 소율 씨의 생일이었죠.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걸 같은 걸로 하시진 않았을 겁니다.”“그분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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