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Kabanata 931 - Kabanata 940

947 Kabanata

제931화

셋째 고모가 낮게 말했다.“바로 저 눈매 말이야. 몰랐어? 이 아가씨의 눈매가 너랑 정말 많이 닮았어.”그러자 임서율이 고개를 돌려 오가연 쪽을 다시 보았다. 마침 시선이 딱 마주쳤고, 오가연은 당황한 듯 굳어 버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임서율만 바라보았다. 임서율은 대수롭지 않게 미소만 건네고는 시선을 거두었다.셋째 고모가 또 물었다.“이제 느껴지지? 너희 둘, 좀 닮았지?”임서율이 이번엔 제대로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요. 조금 닮았네요.”셋째 고모가 비꼬듯 웃으면서 말했다.“내가 뭐랬니. 주헌이가 갑자기 어린 아가씨를 데려온 데는 다 이유가 있다니까. 인연이라는 건 아무리 끊어내도 실처럼 질겨. 그때 너랑 같이 있을 때 성의껏 못 하더니, 이제 와서나 후회가 남았겠지.”식사가 시작되자 오가연은 음식을 작게 한입씩만 뜯었다. 입맛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반면 임서율은 요즘 좋아하는 메뉴가 상에 가득해 젓가락질하기에 바빴다. 매운 닭요리, 매운 생선찜, 소고기볶음까지, 전부 임서율의 취향이었다.하도원은 옆에서 내내 임서율의 그릇을 챙겼다.“이것도 좀 먹어 봐. 신김치 넣은 생선탕도 괜찮고, 네가 좋아하는 새우도 있어. 게는 네 몸에 좋지 않을까 봐 조금만 먹고.”그 모습을 본 큰어머니가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아이고, 난 또 처음 보네. 도원이가 여자한테 이렇게 살뜰하게 대해 줄 줄은 말이야. 이러다가 서율의 집사가 다 되겠어.”셋째 고모가 큰어머니를 슬쩍 놀렸다.“누가 알겠어요? 저 집은 금슬이 좋으니까 그렇겠죠. 언니네 집 영감탱이는 맨날 언니 속만 태우잖아요. 그러니 질투 나는 거죠?”“그래. 알았어. 그래도 서율이가 매운 걸 이렇게 찾는 거 보니 아마 딸일 거야. 딸이 얼마나 좋은데... 우리 집의 아들자식 좀 봐봐. 매일 나를 속 태운다니까.”식사 분위기는 꽤 좋았다. 자잘한 해프닝이 있어도 금세 웃으며 지나갔다.식사를 마치고 하도원은 임서율과 함께 뒤뜰을 거닐었고 오가연은 차주헌의 소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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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2화

오가연은 애써 눈물을 참았다. 차주헌에게 동정받고 싶지도 않았고 울기만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방금 터져 나온 차주헌의 말은 바늘처럼 가슴에 콕 박혔다.결국 더는 버티지 못했고 눈물이 뚝뚝 바닥에 떨어졌다. 오가연은 주먹을 꼭 쥔 채 울먹이며 소리쳤다.“저는 그 사람의 대역을 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처음에 먼저 다가온 건 오빠였잖아요. 내가 오빠를 좋아하긴 해도 남의 대역으로 살 생각은 없어요. 내가 오빠를 좋아한다는 걸 핑계로 함부로 날 모욕하지 마세요!”연속으로 말을 쏟아낸 오가연은 얼굴을 감싼 채 문을 열고 그대로 뛰쳐나갔다. 거실을 지나치자, 사람들은 눈물범벅인 오가연이 뛰쳐나가는 걸 모두 보았다.“어머, 무슨 일이래? 주헌이가 또 여자애를 울린 거야?”“참, 이 녀석은 왜 이렇게 사람 속을 썩여. 예전에 임서율이랑 사귈 때도 그러더니.”하지만 오가연은 몇 걸음도 못 가서, 마침 하도원과 함께 돌아오던 임서율과 마주쳤다.“죄송합니다...”오가연은 눈길만 스치고는 곧장 비켜 나가려 했다.임서율이 오가연을 불러 세웠다.“가연 씨, 잠깐만요.”오가연은 발걸음을 멈추며 온몸이 잔뜩 굳었다. 임서율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어딘가 알 수 없는 경계심이 스몄다.“왜요? 임서율 씨도 저한테 두어 마디 비꼬시려는 거예요? 저도 주헌 오빠한테 어울리지 않는 거 알아요.”임서율은 오가연이 무엇을 마음에 두고 있는지 짐작했지만 화를 내지 않았고 고개만 돌려 하도원에게 말했다.“꿀물 한 잔만 가져다줘요. 오가연 씨랑 잠깐 얘기할게요.”하도원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당부했다.“조심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네.”하도원이 거실로 들어가자 임서율은 어깨에 걸친 옷을 한 번 여몄다.“이쪽에 와서 잠깐 앉아요.”오가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임서율을 따라갔다. 대역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하긴 했지만, 분노보다 더 큰 건 억울함이었다.오가연은 임서율이 예쁜 사람이라는 걸 인정했다. 사람들 속에서도 단번에 눈에 띄었고 귀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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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3화

“하지만 남의 잘못 때문에 자신을 부정하지는 마세요. 저와 닮은 건 우연일 뿐이고, 오가연이라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예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누구의 부속품이 되면 안 돼요.”오가연은 움켜쥔 컵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가슴속의 원망이 미지근한 물에 얼음이 녹듯 조금씩 사라졌다.오가연은 차주헌이 놓지 못한다던 임서율을 바라보았다. 임서율은 잘난 체하는 기색 하나 없이 오히려 차분히 자기 마음을 다독여 주고 있었다. 오히려 질투와 부러움에 휩싸인 어린아이처럼 굴었던 건 자신이었다.“죄송해요. 임서율 씨, 제가 오해했어요. 아까 주헌 오빠 말을 듣고는 도무지 감정이 가라앉지를 않아서... 임서율 씨를 괜히 경쟁 상대로 여겼어요. 그래도 주헌 오빠가 저한테 잘해 준 건 사실이에요. 오빠는...”오가연은 서서히 진정을 되찾았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다.“제가 고수를 못 먹는다는 것도 기억하고, 야근하면 저를 데리러도 왔어요. 그래서... 저를 좋아한다고 믿었거든요.”그건 정식으로 사귀기 전, 가끔 친구처럼 지내던 때의 일들이었다.임서율은 차주헌과 7년을 함께했으니 그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었다.“하지만 가연 씨, 분명히 해야 해요. 그 배려가 오가연에게 향한 건지, 아니면 임서율을 향한 건지 말이죠. 진짜 좋아한다는 건 가연 씨만의 매력을 알아보는 거지, 가연 씨를 누구의 모습으로 고치는 게 아니에요.”오가연이 잠시 멈칫했다. 그러자 갑자기 함께한 장면들이 스치듯 떠오는 오가연은 또박또박 말했다.“맞아요. 저더러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전 그게 그저 오빠의 취향인 줄 알았는데... 오늘에서야 알겠어요. 주헌 오빠가 좋아한 건 임서율 씨와 비슷한 사람이었네요. 그래도 오늘은 정말 고마워요. 드디어 자신을 똑바로 보게 됐어요. 다른 사람의 집착 때문에 제가 아플 필요는 없잖아요. 저는 누구의 그림자 속에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에요.”임서율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가연 씨는 참으로 영리하네요.”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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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4화

그러자 임서율은 대문 쪽을 흘끗 보았다.“가연 씨는 아까 네가 화나게 해서 나간 거 아니야?”차주헌이 고개를 조금 떨군 채 낮게 말했다.“그 얘기를 다 들었구나.”임서율은 팔짱을 끼고 여유롭게 차주헌을 훑었다.“차주헌, 이런 건 말 안 해도 다 보여. 예전에는 나를 강수진의 대역으로 썼고, 이제는 오가연을 내 대역으로 쓰고 있어. 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임서율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싫증이 비쳤고 차주헌은 말이 없었다.사실 임서율은 굳이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이혼했고, 이제는 서로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였다. 그런데 오가연이 또 한 번 자신의 대역이 되는 꼴은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해야 할 말은 하기로 했다.“돌아가서 제대로 생각해 봐. 네가 좋아하는 게 그 사람의 자체인지, 성격인지, 겉모습인지. 사람은 누구나 하나뿐이야. 누구도 누구의 대체품이 될 수 없어. 지금 네가 하는 짓은 너 자신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고, 상대에 대한 모욕이기도 해. 가연 씨를 좋아하지 않으면서 누군가의 그림자로만 보는 거라면 그만 놔 줘.”차주헌은 주먹을 꽉 쥐었다. 굳은 얼굴과 눈빛에는 지난날에 대한 미련이 어렸다.“네가 나랑 다시 시작해 줬다면 나도 이렇게까지는 안 했을 거야.”그러자 임서율이 다시 차주헌의 말을 잘랐다.“우리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해. 그리고 주헌아, 넌 사실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한 것도 아니야. 정말 누군가를 좋아하면 다른 사람을 핑계로 좋아하는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을 거야. 지금 네 머릿속에 남은 건 집착뿐이야. 우리 이혼한 지가 몇 년인데, 넌 잘 살기만 했잖아. 날마다 죽네 사네 하면서 매달린 적도 없었어.”임서율의 말에 차주헌은 말문이 막혔다.그때 큰어머니가 안에서 나오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걸 보고 얼굴에 잠깐 이상한 빛을 스쳤다. 임서율도 그 기색을 느끼고 차주헌을 향해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내가 한 말은 스스로 잘 생각해.”임서율은 큰어머니 곁을 지나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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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5화

그러자 둘째 고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드디어 우리 집안의 말썽꾸러기 하도원을 잡아 둘 사람이 나타났네. 예전에는 세상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누가 하도원을 다스리겠나 싶었지.”하도원은 말없이 웃기만 했고 오히려 슬쩍 자부심까지 생겼다. 보통 남자라면 아내한테 잡혀 산다는 말을 들으면 체면 깎인다며 급히 해명하거나 버럭 화를 냈을 텐데, 하도원은 임서율을 품에 끌어안고 행복한 미소만 지었다.“아내한테 잡혀 사는 게 뭐가 나쁘겠어요?”임서율은 장난스러운 말투에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저를 그만 놀리세요.”“농담이 아니야. 진심이야.”오후에 두 사람은 차진만과 한동안 담소를 나눴다. 임서율의 기운이 슬슬 빠져 보이자 하도원이 먼저 자리를 일어나겠다고 말했다.차진만은 아쉬운 기색으로 두 사람을 붙잡았다.“이렇게 벌써 가겠다고? 집에서 저녁까지 먹고 가렴.”“괜찮습니다. 서율이가 피곤해 보여서요. 돌아가서 쉬게 하고 싶습니다.”하도원은 조금 전 임서율이 연달아 하품하는 걸 이미 눈여겨보고 있었다.“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서율이부터 챙겨.”본가를 나서자 임서율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드디어 무사히 넘겼네요.”하도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임서율을 바라보았다.“오기 싫으면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 네가 굳이 오겠다고 했지.”“저도 도원 씨를 생각해서 온 거예요. 도원 씨의 친척들이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회장님이 계시니 크게 흔들릴 일은 없죠. 가족끼리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쁠 게 없고요.”임서율의 말을 들으며 하도원은 아무 말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임서율은 누구보다 하도원이 가족과 사랑을 갈망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하도원도 이런 자신을 알고 있었다. 임서율이 본가에 돌아오기로 한 건 전부 하도원을 위한 선택이었다.하도원은 임서율의 손을 꼭 잡았다.“이제 집에 가서 푹 쉬자. 아까 꽤 많이 먹었지? 특히 갈비찜을 정말 좋아하던데. 집에 가면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해 달라고 할게.”임서율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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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6화

임서율은 누렁이와 율이가 참 사랑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두 녀석은 임서율의 말을 정말 알아듣는 듯했다. 임서율이 손을 뻗어 두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자, 누렁이와 율이는 머리를 더 바짝 들이밀며 손길을 졸랐다.그때 하도원의 휴대폰이 울렸고 화면을 보니 진승윤이었다.“대표님, 회사에 일이 생겨서 지금 오셔야겠습니다.”“알았어. 바로 갈게.”전화를 끊은 하도원이 임서율을 돌아봤다.“회사에 좀 다녀올게. 너는 아주머니랑 집에 있어. 심심하면 잠깐 바람 쐬고 와도 돼. 대신 반드시 아주머니랑 같이 가야 해.”“네. 얼른 다녀와요. 운전 조심하고요.”오늘은 밖에 나갈 생각이 없던 임서율은 잠깐 올라가 쉬고 싶었다. 하도원이 떠나자 부엌에서 일하던 아주머니에게 말했다.“아주머니, 먼저 일 보세요. 저는 올라가서 잠깐 낮잠 좀 잘게요.”본가에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더니 임서율은 금세 피로가 몰려왔다. 요즘은 임신 때문인지 특히 잠이 잘 왔다. 예전에는 일이 몰리면 의지로 버텼지만 임신 후에 찾아오는 졸음은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한편 하도원은 회사 건물 앞에 도착했다. 진승윤이 서둘러 차 문을 열어 주었고, 하도원은 차 키를 경비에게 맡기면서 물었다.“무슨 일이야?”“협력사 때문입니다. 오전까지는 오후에 계약서 서명하기로 합의했는데, 방금 갑자기 조건을 바꾸면서 투자 이익 배분을 20% 추가로 달라고 합니다. 아니면 철수하겠다고 합니다. 프로젝트팀이 벌써 30분째 협상 중인데... 태도가 아주 강경합니다.”하도원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협력사의 배경 자료,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투입한 원가 내역을 5분 안에 내 메일로 보내. 법무팀하고 프로젝트팀은 회의실에서 대기하라고 전해.”“네, 알겠습니다.”진승윤은 매번 이렇게 체계적으로 판을 정리하는 하도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도저히 손쓸 수 없을 것 같던 일도 하도원에게 맡기기만 하면 결국 깔끔하게 해결되었다.잠시 후, 협력사의 자료가 하도원의 메일에 도착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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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7화

사실 성원 그룹도 그런 리스크는 감당하기 어려웠다.하도원은 이진수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선택하세요. 원 계약대로 서명하시든지, 아니면 제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이시든지요.”2분도 채 지나기 전에 이진수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하 대표님, 원 계약대로 서명하겠습니다. 방금은 제 잘못이었어요. 막판에 조건을 바꾸면 안 됐습니다. 앞으로도 잘 협력하길 바랍니다.”하도원이 고개를 들고 법무팀이 건넨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서명란에 이름을 단정히 적고 나서 말했다.“협력의 전제는 상호 존중입니다. 앞으로도 오늘 일을 기억해 주세요.”많은 사람 앞에서 직접 지적을 받자 이진수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지만,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이진수를 배웅하고 돌아오자 프로젝트 책임자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눈을 반짝였다.“대표님,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희만 있었으면 분명 이진수에게 끌려다녔을 거예요. 조금 전도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는데, 대표님은 몇 마디로 판을 뒤집어 버리시네요.”“사업은 정으로 하는 게 아니야. 실력과 원칙으로 하는 거지.”하도원은 계약서를 진승윤에게 건넸다.“법무팀에서는 후속 기술 인수인계 절차를 빈틈없이 지켜봐. 틈이 생기지 않게 말이야. 그리고 오늘 일을 재무팀에 알리고, 초기 투입 비용 내역을 정리해서 다음 주에 성원 그룹과 한번 정산해.”하도원은 통유리창 앞에 서서 아래의 차들을 잠시 내려다보더니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냈다.[일은 다 처리했어. 곧 집에 갈게. 푹 자.]임서율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오후 여섯 시를 조금 넘긴 때였다. 그때 양지우에게서 전화가 왔다. 임서율은 벌떡 일어나 통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지우야, 미안해. 오늘 도원 씨랑 본가에 다녀오느라 네 문자에 회신을 못 했네.”“괜찮아. 오늘 엘리 선생님이 나보고 두 시간 일찍 퇴근해도 된대. 시간 되면 같이 쇼핑 갈래? 아기 옷 구경하자.”“좋지!”임서율은 마침 낮잠에서 깨어난 뒤라 시간도 딱 맞았다.예전의 임서율은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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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8화

“유민 씨, 우리랑 같이 좀 둘러볼래요?”그러자 김유민은 두 손을 내저었다.“전 괜찮아요. 서율 누나, 하 대표님께서 다른 심부름도 맡기셔서 저는 먼저 들어가 볼 게요.”“그래요. 그러면 조심해서 가요.”양지우는 임서율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빨리 가자. 안에 들어가서 보자.”임서율은 손을 들어 양지우의 옆머리를 정리해 주었다.“요즘은 어때? 몸은 좀 나아졌어?”“응.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어. 네가 소개해 준 엘리 선생님 덕분이지 뭐. 우리 주치의도 그러더라. 엘리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다고.”“그렇지? 엘리 선생님은 진짜 천재야. 전에 맡았던 케이스들 보니까 대단하더라. 네가 잘 설득해서 다시 의사 선생님으로 돌아오면 좋겠다.”두 사람은 곧장 2층의 유아 용품점으로 발길을 옮겼다. 예전에는 유아 용품에 관심 없던 임서율이었지만 막상 임신하고 보니 자꾸 눈이 갔다.분홍색 유모차 하나가 눈에 띄자 임서율이 양지우를 급히 불렀다.“지우야, 이것 좀 봐. 너무 예쁘네.”“이 파란색도 괜찮네.”양지우가 다가와 고개를 끄덕였다.“둘 다 너무 예쁘네. 너 지금 아이 용품을 고르는 모습이 예전이랑 완전히 딴 사람 같아. 예전에 동료가 애를 데리고 오면 넌 멀찍이 피했잖아.”“직접 임신해 보니 알겠더라.”임서율이 아랫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미소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우리 아기한테 제일 좋은 걸 해 주고 싶어져. 아, 너희 집 애들 것도 몇 벌 고를래? 마침 환절기잖아.”임서율은 말하며 옆에 놓인 아기 양말을 집으려 몸을 돌리는 순간, 팔꿈치가 뒤쪽 사람과 스쳤다.“으악!”그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튀어나왔다. 보라색 임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두어 걸음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고, 손에 들고 있던 쇼핑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안에 있던 수입 분유 캔이 데굴데굴 굴러갔다.“앞을 좀 똑바로 보고 다니세요. 눈이 없어요?”여자는 배를 감싸 쥐며 얼굴이 굳어졌다. 언성이 높아지자 매장 안 손님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저 임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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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39화

“무슨 일이에요?”임서율이 다소 놀란 얼굴로 물었다.“도원 씨, 여기는 웬일이에요?”“내가 보낸 메시지 못 봤어?”임서율은 허둥지둥 휴대폰을 확인했다가 고개를 들었다.“미안해요. 지우랑 쇼핑하느라 미처 핸드폰을 보지 못했네요.”“괜찮아.”하도원은 임서율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양지우는 아까부터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더 당당해졌다. 하도원이 오자 곧장 방금 일을 쭉 설명했다.하도원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낮고 차가웠다. 한 번 훑는 차가운 눈빛만으로도 상대 여자가 본능적으로 두 걸음 물러섰다.“분유 비용은 보상할 수 있습니다.”하도원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단호했다.“그런데 방금 이 백화점은 남편분이 총괄한다고 했죠?”여자는 하도원의 맞춤 슈트와 분위기에 잠깐 주눅이 들었지만 끝까지 목소리를 세웠다.“그래요! 우리 남편이 백화점의 총지배인이에요. 알아서 사과하고 배상하면 좋게 넘어가고 아니면 앞으로 여긴 발도 못 들일 거예요.”여자는 휴대폰을 꺼내 건방진 표정으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여보, 나 지금 아기 용품점에 있는데, 누가 날 괴롭혀. 빨리 와서 해결해 줘.”얼마 지나지 않아 양복 차림에 배가 불룩 나온 남자가 급히 들어왔다. 이 백화점의 총지배인인 장결희였다. 장결희는 아내를 보자마자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띠었다.“여보, 무슨 일이야? 누가 당신을 건드렸어?”“저 사람들이야!”여자는 임서율과 하도원을 가리켰다.“나를 밀치고도 돈을 안 물더니, 감히 눈까지 부라리면서 지랄이야! 얼른 저 사람들 내쫓아. 다시는 못 들어오게 해!”장결희는 아내가 가리키는 쪽을 보며 한마디 하려다가, 하도원의 얼굴을 알아보는 순간 안색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고 걸음을 휘청이며 말이 꼬였다.“하... 하 대표님? 여기에는 어쩐 일이십니까...”그 순간 장결희의 아내는 멍해졌다.“여보, 저 사람 알아?”“알아...”장결희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고는 서둘러 하도원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굽혔다.“대표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 아내가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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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40화

하도원과 임서율이 막 백화점 출구에 이르자, 장결희가 허둥지둥 따라왔다.“하 대표님, 사모님, 잠시만요.”그러자 하도원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고개만 돌렸다.“무슨 일인데?”장결희가 서둘러 쇼핑백을 내밀면서 말했다.“아까 사모님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던 것들입니다. 제 아내가 무례했던 일에 대한 사과로 제가 대신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머지 유모차는 곧바로 댁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하도원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집안 사람부터 잘 단속해. 그렇지 않으면 이 업계에서 오래 못 버틸 거야.”오늘 본 장결희의 태도만으로도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저런 성깔로 뒤에서 얼마나 사고를 쳤고, 얼마나 많은 사람의 미움을 샀을지 말이다.장결희는 잽싸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충고 감사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두 사람이 멀어지는 걸 배웅하고서야 장결희는 겨우 숨을 돌렸다. 그때 그의 아내가 또 따라 나왔다.“여보, 어때? 하 대표님께서 많이 화내셨어? 우리... 망하는 거 아니지?”화가 치밀어 오른 장결희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내를 노려보았다.“제발 좀 정신 차려. 너는 왜 아무한테나 시비 거는 거야? 지난번에도 민신 그룹 대표의 아들이 옷 사러 왔다가 물 조금 흘린 걸로 매장 한복판에서 난리 치더니, 결국 내가 사흘 내내 선물 들고 집까지 찾아가 사과했어.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우리가 얼마를 날렸을지 알아?”“왜 나를 탓하는 거야? 지난번 그 자식의 실수 때문에 나 유산할 뻔했잖아!”장결희는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기에 바로 소리쳤다.“그게 다 네가 집에 안 붙어 있고 할 일도 없이 맨날 백화점만 들락거리니까 그렇지!”그 말에 아내는 고개를 푹 숙이며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나도 당신 부담 덜어 주려고 그런 거잖아. 가게에 일 터지면 내가 나가서 수습도 했고...”“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마.”잔뜩 화가 난 장결희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됐고. 입 다물어. 오늘부로 백화점에는 절대 오지 말고 집에서 몸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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