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카운트다운, 너를 버릴 시간: Chapter 901 - Chapter 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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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1화

임서율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고기 한 점을 하도원의 입가로 가져가며 살짝 부끄러운 투로 속삭였다.“여... 여보.”하도원의 눈가가 흡족하게 풀렸다. 그는 손을 들어 임서율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우리 서율이 착하네. 자, 밥 먹자.”임서율은 이제 도통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볼이 뜨겁게 달아올라 마치 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다.하지만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정말로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여보’라고 부르니까 사람들이 안 보게 될 거라고.”“이제 다들 우리가 합법적인 부부인 걸 아니까. 설령 관심이 있어도 끼어들 틈이 없지.”그제야 임서율은 하도원의 의도를 완전히 깨달았다.그녀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중얼거렸다.“역시 여우는 여우네요.”결국 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하도원은 고기를 다 먹고는 의자에 몸을 기대며 느긋하게 앉았다.“좋아, 이제 슬슬 네 문제를 추궁해 볼까?”임서율이 젓가락을 멈췄다.그는 카페 때부터 이미 따질 생각이 있었던 거다. 다만 그때는 꾹 참은 것뿐.정말 잘도 참는다.더 이상 숨기지 않기로 결심한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솔직히 말했다.“그래요, 나 사실 지우한테 간 것도 아니에요. 지우가 그냥 나 대신 둘러댄 거죠.”하도원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손바닥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좋아, 솔직해서 마음에 드네. 근데 네가 진작 들킬 만한 상황이었는데,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뭔지 알아?”“몰라요.”하도원이 당시 양지우에게 전화를 걸었던 상황을 설명하자 임서율은 뒤늦게 사정을 이해했다.진승윤이 그때 갑자기 자신을 찾지 않았다면 이미 다 들통났을 것이다. 임서율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도원 씨 생각까지는 못 읽었네.’생각해 보면 이것도 다 운명이었다. 아니면 어떻게 하다가 협상 상대가 하도원이 됐을까.“그런데 진성우 씨랑 아는 사이예요? 당신 회사랑은 아무 관련도 없던데요.”“우리 회사랑은 관계없지. 대신 재훈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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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2화

하도원이 그렇게까지 한 건 임서율의 일을 완전히 허락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를 존중한 것이었다.그는 누구보다 임서율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막아선다고 해서 그녀에게 통할 리 없었다. 오히려 억누르면 더 강하게 부딪쳐 올 게 뻔했다.임서율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가진 사람이었고 흐름에 휩쓸릴 타입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의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하늘을 나는 독수리와도 같았다. 누구에게도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야만 하는 사람.그래서 그녀에겐 적당한 자유가 필요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결국 스스로 쇠사슬을 끊고 날아가 버릴 테니까.임서율의 눈이 반짝였다.“그럼 나 프로젝트 하는 거, 허락한 거네요?”“뭐, 그렇게 봐도 되겠지.”하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임서율은 너무 기뻐서 그만 후다닥 다가가 하도원의 볼에 입을 맞췄다.“도원 씨, 당신 정말 최고예요!”하도원은 뺨에 닿은 그 짧은 온기에 순간 멈칫했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매일 이런 상이라면 나쁠 것 없겠는데.”그제야 임서율은 자신이 방금 뭘 한 건지 깨달았다.공공장소 한복판에서 하도원에게 뽀뽀를 했다니, 하지만 곧 체념하듯 속으로 중얼거렸다.‘이미 해버렸는데 뭐 어때.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식사를 마친 뒤, 하도원은 다시 회사 일 때문에 돌아가야 했다. 사실 오늘 점심도 원래는 간단히 때우려 했는데 임서율이 협상 상대로 나타나는 바람에 이렇게 된 것이다. 결국 밥도 함께 먹고 이제는 그녀를 데려다줘야 했다.임서율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지우 병원에 데려다줘요.”“지금?”“응, 아직 한 시 조금 넘었잖아요. 가서 잠깐이라도 같이 있어 줄게요.”낮엔 아이도 학교에 가 있었고 친구가 혼자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쓰였다.하도원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내가 데려다줄게.”“괜찮아요. 당신 회사 가야 하잖아요. 나 혼자 운전해서 갈게요.”임서율은 하도원이 식사 내내 시계를 자주 보는 걸 눈치챘다.그건 그의 습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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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3화

양지우의 솔직한 말투에 임서율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장난스럽게 그녀의 팔을 톡 쳤다.“너 내가 그때 얼마나 민망했는지 몰라. 진짜 발가락으로 30평짜리 집은 파고 들어갔을걸?”정말 재수 없었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양지우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이건 그냥 하늘이 정해놓은 일인 것 같아.”임서율은 오는 길에 사 온 물건들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았다.“이건 먹을 거랑 마실 거, 그리고 이건 아이 줄 거야.”양지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임서율과 하도원의 회사 사정이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았고 그 와중에 그녀의 병원비까지 임서율이 대신 내주고 있다는 걸. 피보다 진한 정이라는 게 있다면 아마 이런 게 아닐까 싶었다.그녀는 임서율의 손을 꼭 잡았다.“서율아, 이제 그만 나 챙겨. 나 걱정하지 말고 네 일부터 먼저 마무리해.”하지만 임서율은 친구의 성격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조용히 웃으며 달랬다.“알아. 너도 그렇게 부담 갖지 마. 나도 내 사정 정도는 알아서 챙길 수 있어. 이 정도 사 온다고 내 지갑이 비진 않아.”그때 병실 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어, 다들 여기 계셨네요.”임서율이 고개를 돌리자 엘리와 다른 두 명의 의사가 들어왔다.임서율은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엘리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여기 생활은 이제 좀 익숙해졌어요?”엘리는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 꽤 괜찮았어요. 서율 씨 나라 생활도 생각보다 좋네요.”임서율은 잠시 생각하다가 제법 대담한 제안을 꺼냈다.“그럼 아예 여기에 정착하는 건 어떠세요. 몸이 좀 더 회복되면 어머님도 모셔 오는 거예요. 명절엔 여기서 지내고 집엔 휴가처럼 들르면 되잖아요.”그녀는 예전에 심리학을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엘리처럼 과거의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환경을 바꾸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생각해 볼게요.”임서율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 말은 이미 그도 그 문제를 마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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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4화

“네, 알겠어요.”임서율은 엘리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너 일단 푹 쉬어. 오후에 애들은 도우미한테 데려오라고 할게. 여기 먹을 것도 챙겨서 같이 보내.”양지우는 기운이 많이 빠져 보였다. 그녀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응, 고마워, 서율아.”임서율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우리 사이에 그런 말은 하지 마.”그렇게 말한 뒤, 임서율은 하도원과 함께 병실을 나섰다. 복도로 나오자마자 그녀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지우 상태, 지금은 좀 어떤가요?”엘리는 창가 쪽에 멈춰서서 안경을 살짝 밀어올렸다. 잠시 임서율의 걱정 어린 표정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최근 검사 결과를 보면 지난달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종양 표지자 수치가 거의 30% 가까이 떨어졌고 전이 부위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죠.”임서율의 긴장된 어깨가 눈에 띄게 풀렸다. 하지만 손끝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그럼 치료가 예상보다 잘 되고 있다는 뜻인가요?”엘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신중하게 덧붙였다.“맞아요. 하지만 방심하면 안 됩니다. 지우 씨는 체력이 약한 편이라 이미 두 차례 강도 높은 항암을 견뎠잖아요. 그 영향으로 백혈구랑 혈소판 수치가 많이 떨어졌어요. 앞으로는 치료 간격을 3주에서 5주로 늘리고 약물 강도도 조금 줄여야 합니다. 무리하면 몸이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어요.”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조용히 덧붙였다.“다만 그렇게 되면 치료 주기가 길어지니까 눈에 띄는 효과가 바로 안 보여서 환자가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항암 부작용으로 피로감이 심하고 입맛도 떨어질 테니 정서적으로도 많이 흔들릴 거예요. 가끔 아이들 얘기나 예전 즐거운 일들 꺼내서 이야기해 주세요. 심리적인 안정도 치료 못지않게 중요합니다.”임서율은 고개를 깊이 끄덕였다.“네, 알겠어요. 매일 조금이라도 들러서 같이 있어 줄게요. 기분이라도 조금 나아지게요.”그때 하도원이 그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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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5화

임서율은 병원을 떠나기 전, 다시 한 번 양지우의 얼굴을 보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병실 문을 살짝 열자 양지우는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녀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임서율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예전보다 얼굴빛이 한결 창백했고 몸도 눈에 띄게 쇠약해져 있었다.임서율은 그런 모습을 다 보면서도 차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그 말을 꺼내면 오히려 양지우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봐.둘 다 보이는 모습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늘 단정하고 강해 보이려 애쓰는 성격이라 누구에게도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했다.하지만 그런 모습일수록 더 마음이 아팠다.임서율은 가끔 이렇게 생각했다. 양지우가 이렇게 힘든 치료를 견디며 버티는 게 결국 건강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라면 그 고통쯤은 감수할 수 있다고.하지만 정말 두려운 건 이렇게 고생하면서도 몸이 나아지지 않을까 봐였다.병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 참고 있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왔다. 콧등이 시큰해진 채 그녀는 조용히 하도원을 바라봤다.“도원 씨, 지우, 괜찮아질까요?”하도원은 그녀의 눈가가 붉게 물든 걸 보자 이미 감정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느끼고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곧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괜찮을 거야. 우리 할 수 있는 건 다 했잖아. 양지우 씨 지금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치료 받고 있어.”그 말은 차갑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사실 뼈저리게 현실적인 말이었다.“솔직히 말해서 양지우 씨가 너 같은 친구를 만나지 못했으면 1차 치료비도 버티지 못했을 거야. 게다가 장인어른도 전에 큰 병을 앓으셨잖아. 이런 병이 얼마나 돈을 잡아먹는지 네가 제일 잘 알 거야.”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들이라 해도 이건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사실을 담담히 말했을 뿐이었다.임서율은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그래요. 나도 좋은 쪽으로 생각해야겠어요.”하도원은 그녀의 목을 부드럽게 만졌다.“이제 가자.”“네.”차가 도로에 들어섰을 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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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6화

“응.”임서율은 대답은 했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집에 돌아오자 하도원은 그녀 외투를 벗겨 정리해 걸고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줬다.“좀 쉬어. 나는 회사 일 조금 처리하고 올게. 저녁은 같이 먹자.”임서율은 고개만 끄덕이고 물잔을 받았다.그 무기력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던 하도원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집을 나서며 휴대폰을 꺼냈다.“진 비서, 반 시간 전에 서율이한테 걸려온 전화, 누가 한 건지 확인해.”“네, 대표님.”5분 후, 전화가 다시 울렸다.“대표님, 확인했습니다. 안나라고 하는데 전에 임서율 씨와 채무 문제가 있었던 그 사람입니다.”하도원은 폰을 바짝 움켜쥐었다.“회사랑 거래하는 변호사 연결해. 만약 기한 안에 돈을 못 갚으면 법적으로 어떻게 되는지 물어봐.”10분 뒤, 변호사에게서 온 답변은 하도원의 표정을 싸늘하게 만들었다.안나가 정한 날짜 안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안나 측 회사가 임서율을 바로 고소할 수 있고 금액과 정황으로 볼 때 실형 가능성도 있다는 내용이었다.하도원의 턱선이 단단히 굳어졌다.“회사에서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현금이랑 현금화 가능한 자산 전부 정리해서 보고해.”잠시 뒤, 진승윤이 자료를 보내왔다.“대표님, 신재생 프로젝트 자금은 다음 달 돌아오고 주식이랑 채권 정리하면 100억, 운영 자금까지 몽땅 긁어모아도 겨우 200억입니다.”회사도 이제 막 숨통이 트이고 있었다. 양지우 병원비까지 대신 정리하느라 비상금도 이미 털린 상태였다.하도원은 차 안에서 핸들을 두드리며 한동안 침묵했다.“자회사 팔지. 전에 인수하겠다고 했던 장 사장한테 연락해.”진승윤이 바로 반대했다.“대표님! 지금 자회사까지 팔아버리면 회복이 더 느려지고 기업에도 타격이 큽니다. 굳이 그 정도까지...”“그만. 이미 결정했어. 이틀 안에 계약 잡아.”그는 딱 잘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폰 화면에 환하게 웃고 있는 임서율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누렁이를 데리고 왔던 날 그녀 몰래 찍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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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7화

임서율은 급히 앞으로 다가가 현관 바닥에 엎드려 있던 누렁이와 율이를 향해 나긋하게 말했다.“이리 와, 손님 놀라잖아.”두 마리는 정말 알아들은 듯 꼬리를 흔들며 임서율 발목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김유민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경계했다.“얘네가 좀 경계심이 많아.”“괜찮아요.”임서율은 두 마리를 한쪽으로 몰아두고 김유민과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서재 문을 닫자 김유민은 의자를 끌어와 앉고 서류봉투를 열어 자료를 꺼내 임서율 앞으로 내밀었다.“이건 제가 이틀 동안 찾은 투자처랑, 예전에 거래했던 업체들이에요. 제가 다 연락해봤는데 최대 빌릴 수 있는 금액이 60억이에요. 그런데 이자도 높고 하루 단위로 붙어요.”임서율은 자료 위 숫자를 쓱 훑어보고 고개를 저었다.“60억으로는 택도 없어. 아직 200억이 넘게 부족해.”김유민은 홱 일어서더니 손으로 책상 모서리를 꽉 잡았다.“그럼 어쩌죠? 안 되면 제가 사채라도 알아볼까요?”“안 돼.”임서율의 대답은 단호했다.“사채는 끝이 없어. 그리고 이건 몇 백도 아니고 수백억 규모야. 사채꾼이 그렇게 돈이 많으면 사채업 안 하고 회사 차렸지.”“하지만 소송 들어가면 정말로 감옥 갈 수도 있잖아요!”김유민의 눈이 빨갛게 달아올랐다.“누나는 제 상사이기 전에 제 가족이에요! 그때 누나가 절 데려가지 않았으면 저는 벌써 감옥에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한테 뒤집어씌워요. 안나한테 제가 회사 돈 빼돌렸다고 하라고요. 저 혼자 들어가면 돼요!”그 순간 임서율의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김유민의 팔을 두드렸다.“유민아, 네 마음 알아. 근데 이건 내 일이고 내 책임이야. 너한테 덮어씌우면 내가 정말 사람도 아니지.”“하지만...”“아니.”임서율의 눈빛이 단단하게 굳었다.“난 이미 마음의 준비 끝냈어. 정 못 갚으면 그때는 결과를 받아들일 거야.”김유민은 절박하게 소리쳤다.“하 대표님한테 말이라도 해보세요! 그분이 가만히 계실 리가 없잖아요!”임서율은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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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8화

“서율 씨가 벌써 돈 다 마련했나 보네?”안나의 목소리엔 비웃음이 그대로 섞여 있었다.“안 대표님, 제발 부탁드립니다.”김유민의 목소리는 간절했다.“서율 누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요. 몇 달만, 몇 달만 유예해주실 수 있을까요?”그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만약 그게 안 된다면 제가 대신 감옥에 가겠습니다. 회사에다 제가 프로젝트 자금을 임의로 옮겼다고 하세요.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전화기 너머로 안나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하하, 몰랐네. 임서율 곁엔 이런 기사님이 있었군요. 심민호도 집안 돈 몰래 써가며 도와주더니 이젠 당신까지 앞장서서 인생을 내던지는군요. 당신 같은 사람들은 한 번 감방 갔다 오면 끝이에요. 사회에서 사람 취급도 못 받을 거야.”“그건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회사엔 결과만 필요하잖아요. 누가 대신 책임지든 그건 중요하지 않을 겁니다.”몇 초간의 정적 후, 안나가 다시 피식 웃었다.“대신 감옥을 가겠다고? 당신 제정신이야?”“임서율이 빚 진 건 400억이야. 4만 원이 아니라, 400억! 당신이 감옥에 가면 그 돈은 누가 갚을 건데?”“제가 갚겠습니다. 평생 걸려도 제가 갚을게요.”“웃기지 마.”안나가 차갑게 말했다.“임서율이 그때 나한테 당당하게 덤비더니 이제 와서 무릎 꿇을 줄은 몰랐네. 걔 남자친구가 그렇게 돈 많다면서? 그 남자 시켜서 갚으라 그래.”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유예는 없어. 이틀 뒤에도 돈 안 들어오면 바로 소송이야. 누가 와서 빌든 나한텐 아무 의미 없어.”전화가 끊겼다.김유민은 손에 든 휴대폰을 천천히 내리더니 고개를 들며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설마 이대로 임서율이 고소당하고 감옥에 가는 걸 그냥 두고 봐야 하나?다음 날 아침, 임서율은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하도원은 전날 밤에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회의가 늦어져서 회사에서 자겠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그는 끝에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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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9화

“안나가 정한 마감일이 거의 다가오는 것 같은데. 돈, 아직 못 맞춘 거 맞지?”차주헌도 자기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이미 이혼한 지 오래고 각자 다른 삶은 살고 있는데 마음만큼은 한 번도 그녀를 떠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예전 연애할 때보다 더 신경 쓰였고 더 알고 싶어졌다.임서율은 서늘하게 입을 열었다.“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서율아, 너도 알잖아. 나한테 말만 하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대신 조건이 붙겠지?”임서율은 피식 웃었다.차주헌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 손해 보는 거래를 하는 남자가 아니었다.차주헌은 마치 큰 결심이라도 한 듯 말했다.“내 애인 안 해도 돼. 우리 그냥 평범한 커플처럼 만나자. 이번엔 절대 너 실망시키지 않을게.”“너만 고개 끄덕이면 지금 당장 부족한 돈 전부 채워줄 수 있어.”그는 정말로 이것이면 충분히 유혹적일 거라 생각했다. 설마 그녀가 감옥을 택할 만큼 자기를 싫어하진 않을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임서율은 즉답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그녀 마음속엔 이미 결론이 내려져 있었다.‘난 도대체 이 남자의 어떤 면을 좋아했을까.’이제 와 깨닫는다. 그는 여전히 오만하고 이기적이고 심지어 감정마저 거래의 조건으로 사용하는 비겁한 인간이었다.차주헌은 그녀가 말이 없자 조급해졌다.“나 이제 강수진이랑 완전히 이혼했어. 다시는 그 여자가 우리 사이에 끼어들 일도 없을 거야. 내가 약속할게.”임서율은 실소가 터졌다.“차주헌,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난 이제 너 좋아하지도 않아.”“그리고 내 뱃속엔 이미 도원 씨 아이가 있어. 나랑 다시 만나자고? 그럼 넌 그 아이한테 뭐가 되는데? 내가 일일이 설명이라도 해줘?”차주헌은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평평한 아랫배를 바라보았다.“너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지? 벌써 삼촌이랑 애가 생겼다고?”임서율은 차갑게 웃었다.“봐. 너도 잘 알잖아. 도원 씨는 네 삼촌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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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0화

임서율은 차에 오르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하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통화 연결음만 길게 울릴 뿐 그는 받지 않았다.불길한 예감이 순식간에 온몸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조수석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재촉했다.“기사님, 조금만 더 빨리 가주세요. 급한 일이 있어요.”차는 도로 위를 전속력으로 달렸다.끝내 보금 그룹 본사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에 차에서 뛰어내렸다.임서율은 숨도 고르지 못한 채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 18층 회의실로 향했다. 문 앞에 다다른 순간,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귀를 때렸다.“대표님, 여기가 주식 양도 계약서입니다. 서명만 하시면 오늘 안으로 돈이 대표님 계좌에 입금됩니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던 임서율은 거칠게 문을 밀어젖혔다.“서명하지 마요!”하도원은 순간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문가에 서 있는 임서율을 보자 그의 눈동자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여긴 어떻게 왔어.”“내가 안 왔으면 당신, 회사 팔아치울 뻔했잖아요!”임서율은 숨이 턱턱 찰 정도로 달려왔지만 계속 말했다.“우리 약속했잖아요. 어떤 일이 있어도 머리 맞대고 해결하자고! 근데 왜 몰래 자회사를 팔아요? 자회사가 없으면 재호 그룹도 위험한 거, 그 정도는 당신도 알잖아요.”“자회사를 잃어도 다시 만들면 돼. 근데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난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아.”하도원은 평소처럼 임서율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그 말에는 회사에 대한 미련이 조금도 없었다.“400억은 이미 마련했어. 걱정하지 마.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바로 입금돼. 그럼 기소당할 일도 없어.”임서율은 그의 팔을 꽉 붙잡았다.“내 일은 내가 해결해요. 차라리 내가 감옥에 가더라도 당신이 회사 파는 꼴은 절대 못 봐요!”그때, 회의실 문이 다시 열리더니 검은 정장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노인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서류가 들려 있었다.그는 하도원 앞에 멈춰 서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오랜만입니다, 도련님.”하도원이 미간을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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