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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의 꽃길: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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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밤이 되자 남지혜는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이연우의 팔을 덥석 잡아끌며 방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문을 닫자마자 남지혜는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연우야, 밖에 있는 두 남자 말이야. 어떻게 생각해?”“사업하는 사람들 중에서는 정점에 선 엘리트들이잖아. 상위 1% 상류층이니까 그야말로 끝내주지.”이연우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남지혜는 곧바로 눈을 흘기더니 손바닥으로 이연우의 이마를 가볍게 툭 쳤다. 워낙 친한 사이여서 그런지 거리낌이 없었다.“내가 물은 건 그게 아니잖아! 서지훈하고 방현준 중 누구한테 마음이 더 끌리냐고?”남지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연우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그녀의 눈빛 속에 숨겨진 답을 캐내려 했다.“끌리긴 뭐가 끌려! 도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데?”이연우는 남지혜의 손바닥에 맞은 이마를 문질러가며 눈살을 살짝 찡그렸다. 괜히 화난 척 눈을 흘기기도 했다.사실 마음속으로는 남지혜의 뜻을 알아채고 있었다. 다만 대답하기가 몹시 난감할 뿐이었다.남지혜는 체념한 듯 침대에 털썩 앉아 다리를 꼬았다. 이번엔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이연우, 설마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두 사람 다 너한테 호감 있잖아. 그걸 눈치 못 챘다고?”그 말을 듣는 순간, 이연우는 제자리에 얼어붙었다.그러더니 고개를 들어 닫힌 방문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마음이 복잡해졌다.방현준과 서지훈이 자신에게 특별한 태도를 보여온 걸 이연우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이연우는 평범한 이혼녀일 뿐이었다.반대로 그 두 사람은 비즈니스계의 정점에 서 있는 집안의 후계자들이었다.현실적으로 이연우와 두 사람 사이에는 도저히 건널 수 없는 벽이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이연우는 과거 심형빈과 결혼하기 전, 세상 남자들이 다 다를 거라 철석같이 믿었다.하지만 그 실패한 결혼 생활은 그녀의 모든 환상을 산산조각 냈다.지금 방현준과 서지훈도 그저 잠깐의 호감이 생겼을지도 모른다.게다가 두 사람은 계속 신경전을 벌였으니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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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됐어. 시간도 늦었는데. 저 두 사람이 계속 있다가는 저녁까지 먹고 가게 생겼어.”남지혜가 다급히 일깨우듯 말했다.이연우의 미간이 곧바로 깊게 찌푸려졌다.남지혜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손님을 어떻게 내쫓는단 말인가.두 사람은 문을 열고 천천히 거실로 나왔다.그런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넓은 소파에는 이미 네 명의 남자가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방현준, 서지훈.그리고 어느새 심형빈과 서환희까지 와 있었다.강문수는 구석에서 쭈뼛 서 있었는데 손에는 갓 따른 차를 올려둔 쟁반을 들고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주인을 시중드는 하인 같았다.꽤 넓다고 생각했던 거실이 이 순간만큼은 사람들 때문에 숨 막히게 좁아진 듯했다.“연우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이 사람들이 너희 집에 있는 거야?”이연우가 나오자 심형빈이 벌떡 일어서며 물었다. 원래도 어두웠던 얼굴은 한층 더 싸늘해져 있었다.“서 대표님과 방 대표님이 찾아오셨죠. 왜요? 문제라도 있어요?”이연우는 고개를 살짝 들며 심형빈을 똑바로 바라봤다. 거리를 두려는 기색이 목소리에도 묻어났다.“저 사람들 눈빛이 손님 대접 받으러 온 것 같아 보여? 넌 대체 왜 이렇게 생각이 없는 거야!”심형빈의 시선이 서지훈과 방현준을 스쳐 지나갔다. 그의 눈빛엔 날카로운 경계심이 번뜩였다.두 남자가 이연우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치 그녀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 뜨거웠다.하지만 이연우는 아무런 방패도 없이 그들 앞에 선 순한 토끼 같아 보였다.“형빈 씨, 우리 이미 이혼했잖아요. 쓸데없는 말은 그만해요.”이연우는 차갑게 쏘아붙이며 눈을 부라렸다.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었다. 대체 누가 이 눈치 없는 사람들을 안으로 들인 건지.베이랜드는 보안으로 유명한 아파트 단지였다.그런데도 사람들이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다니.이연우는 경비실에 정식으로 항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심 대표도 참 바쁘게 사네. 애인 챙기랴, 전처 문제까지 나서서 간섭하랴.”방현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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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심형빈은 서환희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의 눈과 마음에는 오직 이연우만이 가득했다.그는 옆에 두었던 봉투를 들더니 정성스레 포장된 도시락을 꺼내 이연우에게 내밀었다.“연우야, 네가 좋아하는 우설이야. 네가 자주 가던 그 집에서 포장해 온 거야.”그는 마치 칭찬받길 기다리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이연우는 도시락을 바라보다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왜 또 우설이야. 이러다가 우설이 남아나질 않겠네.’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옆에 있던 남지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심 대표님, 이제 그만하세요. 연우가 우설을 먹고 싶다고 하면 알아서 챙겨주는 사람이 있으니까요.”남지혜는 태연하게 말을 흘리면서도 손가락으로 슬쩍 주방 쪽을 가리켰다.그곳에는 이미 누군가가 보내온 우설이 놓여 있었다.하지만 정작 그게 누구의 선물인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말끝을 흐렸다.애매하게 던진 그 한마디는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듯 심형빈의 마음을 흔들었다.순간 위기감이 몰려왔다.심형빈은 주변을 훑어보았다.이 자리에 있는 남자들은 모두 만만찮은 상대들이었다.사회적 지위도 집안 배경도 그와 대등했다.게다가 심형빈은 이연우의 전남편이라는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 사실이 무엇보다 뼈아팠다.하지만 단 한 가지, 이연우를 잘 알고 있다는 점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믿었다.그러나 이연우는 심형빈이 내민 도시락을 받지 않았다.그리고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단호하게 말했다.“형빈 씨, 여기는 내 개인적인 공간이에요.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불쑥 찾아오지 마세요.”“연우야, 우리 둘 다 지금 솔로잖아. 왜 내가 너에게 다가가면 안 되는데?”심형빈은 체면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오히려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채 뻔뻔하게 이 자리에 눌러앉을 기세였다.이 모습을 본 남지혜는 속으로 혀를 찼다.세 명의 짝사랑 남과 전남편의 난전이라니. 이건 웬만한 드라마보다 훨씬 자극적인 전개였다.소설이라 해도 이렇게 과감한 전개는 쉽게 볼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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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그러나 이연우는 꽃을 받지 않았다. 정승주의 성의를 단호히 거절하며 말했다.“괜찮아요. 그날 일은 마음에 두지도 않았고 사과하실 필요도 없어요.”그날을 떠올리면 이연우는 여전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좋은 마음으로 나섰다가 되레 오해를 사고 졸지에 된장녀 취급까지 받았으니 말이다. 이제 찾아와서 사과한다 한들 그녀에게는 별 위로가 되지 않았다.그때, 뒤에서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왔다.“이 비서님 집이 아주 북적북적하네요. 설날 잔치 같기도 하고.”갑작스러운 방현준의 말에 이연우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정승주는 방현준을 보자마자 얼굴빛이 달라졌다.눈에 담겼던 미안함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그의 시선에는 적대감이 번뜩였다.두 사람 사이에 원한이 있는 듯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이연우는 그 모습을 보더니 정신이 아찔해졌다.머리가 터질 듯 복잡해 두 사람의 신경전에 관심을 가질 겨를조차 없었다.어떻게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사려 깊은 서지훈은 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이 많은 남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 이연우에게 큰 부담이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잠시 생각하더니 그는 조심스레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연우 씨,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저희는 먼저 돌아가겠습니다. 요리 솜씨가 참 좋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또 맛볼 수 있길 바랍니다.”그 말을 들은 이연우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로 화답했다.“서 대표님께서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에요. 언제든 다시 오세요.”“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서지훈은 여전히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누나, 다음에 꼭 형이랑 같이 올게요!”서환희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이연우가 한 요리를 맛보지 못했으니 말이다.‘다 형 탓이야. 괜히 나더러 회사 일이나 배우라고 떠밀어놓더니 정작 자기는 누나를 찾으러 왔네.’하지만 다음 기회가 또 있다는 생각에 서환희의 눈빛은 금세 반짝였다.“그래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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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정승주는 이연우의 집 앞, 굳게 닫힌 문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다.잠시 후 그는 천천히 무릎을 굽혀 손에 들고 있던 장미꽃 한 다발을 조심스럽게 문 앞에 내려놓았다. 꽃잎에 맺힌 물방울이 아직 반짝이고 있었다.모든 걸 내려놓은 듯 그는 다시 일어서더니 느릿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버튼 위로 뻗은 정승주의 손가락은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방현준이 사는 층을 눌렀다.희미한 조명이 내려앉은 엘리베이터 안, 차가운 빛은 그의 날카로운 얼굴선을 드러냈다. 깊은 눈빛은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어두운 기운을 품고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열리자 시선 끝에 방현준이 보였다.그는 팔짱을 낀 채 벽에 기대어 정승주를 기다리고 있었다.“이런 후진 곳에서 살 줄은 몰랐네.”정승주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며 주위를 훑어보고는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비좁다 싶으면 발도 들이지 마.”방현준은 차갑게 쏘아붙이고는 집 안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정승주는 혀를 차더니 흥미롭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뒤따라 들어섰다.그러나 문이 닫히는 순간, 싸늘한 기운이 그의 후두부를 파고들었다.곧이어 정승주는 뒤통수에 단단하고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 느낌을 받았다.“형, 내가 H국에 돌아와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이 형이야. 그런데 총으로 맞아주는 건 좀 너무하지 않아?”정승주는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태연하게 농담을 던졌다.“여기는 왜 왔어?”방현준의 얼굴은 냉기로 굳어 있었다. 의심과 경계가 뒤섞인 눈빛이 정승주를 꿰뚫었다.분명 전에 진태호는 아직 시간이 1년이나 남았다고 말했었다.그런데 정승주는 왜 지금 나타났을까?“형, 진짜 오해한 것 같은데 나 형이랑 맞서려고 온 게 아니라니까.”정승주는 두 손을 살짝 들어 보이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그제야 방현준의 손에 들린 작지만 날렵한 소형 권총이 눈에 들어왔다.비록 크기는 작았지만 정승주는 해외에서 여러 총기를 접해본 터라 그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방아쇠만 당기면 머리가 산산이 조각날 게 뻔했다.“형,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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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정승주는 말을 잇다가 고개를 들었다. 눈빛 속에는 날카로운 기운과 광기가 교차하며 사납게 스쳤다.이번 H국 행은 역시나 놀라움으로 가득했다.눈앞의 모든 것이 그에게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내가 경고했지. 그 사람에게 손대기만 하면 넌 내 손에 죽을 거라고.”방현준은 총을 거두고는 허리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빠르게 뽑았다.정승주가 반응하기도 전에 방현준은 비수를 정승주의 손에 깊숙이 꽂았다.“윽!”짧은 신음과 함께 정승주의 손은 단단히 벽에 고정됐다. 상처에서 솟구친 피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금세 어두운 피 웅덩이를 만들었다.정승주를 바라보던 방현준의 눈빛은 혐오로 가득 차 있었다.정승주가 미치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의 광기는 이미 병에 가까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었다.방현준은 정승주가 이연우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마음먹었다.정승주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 눈빛엔 두려움이나 굴복은 없었다.그는 이를 악물었다. 고통과 분노에 얼굴 근육을 일그러뜨리면서도 끝까지 광기 어린 눈빛으로 방현준을 노려봤다.방현준은 그 눈빛을 차갑게 받아내며 잠시 복잡한 기색을 스쳤다.그러더니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정승주의 손을 꿰뚫고 있던 비수를 단번에 뽑아냈다.칼날이 빠져나오자 피가 분수처럼 다시 터져 나오며 바닥에 핏방울이 흩날렸다.하지만 정승주는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방현준이 칼날을 빼낼 때도 어디선가 번쩍이는 칼을 꺼내더니 광기에 젖은 눈으로 방현준을 향해 곧장 내리꽂았다.하지만 이미 그를 경계하고 있던 방현준은 그렇게 허술하게 기습에 당할 리 없었다.눈빛을 단단히 고정한 채 그는 민첩하게 몸을 틀며 정승주의 공격을 피해냈다. 훈련으로 다져진 유려한 동작인 듯했다.정승주의 일격은 허공을 가르게 되었다.과도한 힘 때문에 정승주는 균형을 잃고 앞으로 휘청였다.곧이어 두 사람은 거실 한복판에서 치열한 격투를 벌이기 시작했다.고급 장식품들이 부딪치면서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세련되고 깔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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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방현준은 정승주의 광기 어린 눈빛을 보자마자 그의 속내를 단번에 알아챘다.눈에 살기가 스치더니 그는 곧장 두 손으로 정승주의 목을 움켜쥐었다.앞으로 강하게 밀어붙이자 두 사람은 거칠게 뒤엉켜 몸을 부딪쳤다.집 안의 가구들이 모조리 쓰러지면서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거대한 굉음과 함께 거실의 통유리가 산산조각 났다.균형을 잃은 두 사람의 몸이 뒤로 곤두박질쳤다.순간 방현준이 재빠르게 몸을 틀었다. 그 덕에 둘은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소파 위로 넘어졌다.강하게 부딪힌 충격에 소파가 밀려나며 귀를 찢는 듯한 마찰음을 냈다.마침 그때, 강문수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아수라장이었다.방현준과 그 밑에 깔린 정승주, 사방에 튀어 있는 유리 조각과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순간 얼어붙은 강문수는 본능적으로 목청을 터뜨렸다.“방 대표님!”강문수는 곧바로 정신을 다잡고 허리춤의 가죽 벨트를 잡아당겼다.망설일 틈도 없이 다가가 정승주의 손과 몸을 거칠게 묶어 고정했다.강문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 순간, 정승주의 얼굴에 잠깐 복잡한 기색이 스쳤다.곧이어 냉소가 터져 나왔다. 그 웃음 속에는 노골적인 조롱과 멸시가 담겨 있었다.“강문수, 네놈이 아직 살아 있었구나.”강문수의 눈빛이 어둡게 흔들렸다. 고개를 아주 살짝 숙이며 낮은 목소리로 응수했다.“정승주 씨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데 제가 어떻게 감히 먼저 죽겠습니까.”강문수는 곧장 방현준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의 얼굴에는 걱정이 묻어났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괜찮아.”방현준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옷에 묻은 피는 대부분 정승주의 것이었다.손에 유리 조각에 베인 상처 몇 군데가 있을 뿐, 치명적인 부상은 입지 않았다.“정승주 씨는 어떻게 할까요?”강문수는 바닥에 묶인 채 여전히 버둥거리는 정승주를 흘깃 바라보며 방현준에게 물었다.“F국으로 돌려보내.”방현준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의 목소리엔 차갑고도 흔들림 없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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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그는 피와 먼지로 얼룩진 옷차림을 내려다보며 짧게 숨을 고른 뒤, 방으로 들어가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었다.그러고는 다시 발걸음을 돌려 이연우의 집으로 향했다.문 두드리는 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문을 연 이연우는 눈앞에 선 방현준을 보고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창백한 얼굴에 피곤이 묻어나는 모습이 낯설게 다가왔기 때문이다.“방 대표님, 또 무슨 일 있으세요?”오늘 집안은 유난히 시끌벅적했다.손님들이 끊임없이 들락날락, 마치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 듯한 풍경이었다.“저희 집 유리가 깨졌거든요. 오늘 이 비서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까요?”방현준은 입가를 살짝 올리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이연우는 코웃음을 살짝 흘리며 말했다.“방 대표님, 그 말 믿으라고 하시는 거예요?”그녀의 입장에서는 유리 깨진 걸 이유로 남의 집에 묵겠다는 건 너무 억지스러웠다.오고 싶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될걸, 왜 그렇게 허술한 핑계를 대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방현준은 이연우가 쉽게 믿지 않을 거란 걸 미리 알아챈 듯 휴대폰을 꺼내 찍은 집 안 사진을 보여주었다.거실은 엉망이었고 통유리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이연우는 사진을 보고 눈을 살짝 크게 떴지만 쉽게 굴하지 않고 마음을 다잡고는 다시 말했다.“강 비서님 집도 바로 아래층이잖아요. 혹시...”“이 비서님, 제 팔이 아직 다 낫지 않았다고요.”방현준은 이연우의 말을 끊으며 다친 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 한마디에 이연우는 순간 멈칫했다.그렇다. 방현준의 팔은 깁스를 풀었지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지금 생각해 보니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이 조금 무례하게 느껴질 법도 했다.이연우는 얼굴에 살짝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하지만 곧 문을 열며 정중히 허리를 숙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으로 들어오세요. 대표님께서 저희 집을 찾아와주시다니, 정말 영광입니다!”방현준은 아무 말 없이 집 안으로 들어섰다.배가 고파 고기국수를 먹겠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익숙하게 침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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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이연우의 눈이 크게 휘둥그레졌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길이 눈앞에 성큼 다가온 남자에게 꽂혔다.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 온 세상이 정지한 것 같았다.그러다 기력이 다한 방현준이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지자 그제야 이연우는 꿈에서 깬 듯 정신을 차렸다.‘키스? 방금 나 키스한 거야? 그것도 방현준이랑?’그 사실이 머리에 스치자 이연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심장은 미친 듯이 두근거리며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았다.순간 전율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자 이연우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하지만 지나치게 당황 탓에 발을 헛디뎌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아야...”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몸의 통증 따위는 잊은 채 시선은 여전히 침대 위 남자에게 박혀 있었다.방현준은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얼굴은 열로 붉게 달아올라 잘 익은 토마토 같았다.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연우는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열난 거 맞잖아. 그런데 어떻게 키스를 해? 설마 연기한 거야?”이연우는 망설이다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방현준의 숨결을 확인하려 했다.하지만 손끝이 닿기도 전에 방현준이 갑자기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목소리에 힘은 없었지만 또렷하게 잘 들려왔다.“이 비서님, 저 몸이 아픈 거지 죽은 건 아니라고요.”지금의 방현준은 눈이 희미하게 풀려 있었다.평소의 냉철하고 침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이연우는 놀란 사슴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당황한 그녀는 방현준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 손이 뜨거운 불덩이처럼 느껴졌다.곧장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가 거실로 향했다.다급하게 장을 열어 영양제를 넣은 상자를 꺼내고 휘젓듯 약을 찾았다.머릿속은 온통 뒤엉켜 있어 손은 본능대로만 움직였다.침실로 돌아와 체온계를 그의 입에 물린 뒤에야 조금 진정이 되었다.하지만 곧 약을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 떠올라 또다시 허둥지둥 주방으로 달려갔다.약통을 뒤적이며 해열제를 찾아내고 돌아온 그녀는 체온계를 들여다보았다.39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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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이연우는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머금은 뒤 조심스레 몸을 기울였다.방현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까이 대고 물을 흘려 넣으려 했다.다행히 이번에는 약이 제대로 넘어갔다.안도의 숨을 내쉬려던 찰나, 이연우는 몸을 일으키려다 기겁했다.무언가 부드럽고 뜨거운 것이 입안으로 파고들어 왔다.방현준의 혀였다.순간 눈이 휘둥그레진 이연우는 충격과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도망치려 했지만 이내 커다란 손이 불시에 뻗어와 그녀의 머리를 움켜쥐었다.그렇게 키스는 더욱 깊어졌다.머릿속이 핑 돌더니 이연우의 몸은 얼어붙었다. 두 손은 본능적으로 그의 가슴을 밀쳐냈다.“방현준 씨!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죠?”이연우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눈빛이 방현준을 향했다.그러나 침대 위의 남자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뺨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고열 때문에 미간이 절로 좁혀지면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의식은 깊이 잠겨 이연우의 추궁에도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이연우는 분한 듯 눈가가 빨개졌다. 그의 손을 세게 내리치면서 화풀이했다.하지만 그때, 손바닥에 따뜻한 액체가 스며들었다.고개를 떨구고 보니 피가 손에 묻어 있었다.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이연우는 방현준의 손바닥을 살펴보았다.가느다란 상처가 길게 나 있었고 거기서 피가 천천히 번져 하얀 시트에 붉은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손을 다쳤으면 말을 했어야죠.”투덜대는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걱정이 묻어났다.지금은 방현준을 추궁할 때가 아니었다. 이연우는 서둘러 그의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감아줬다.그리고 물을 떠 오고는 수건을 적셔 그의 얼굴과 몸을 닦아주었다.그렇게 분주히 간호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녘이 다가왔다.온몸이 녹초가 된 이연우는 결국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린 채 잠에 빠져들었다.비몽사몽 중에 따뜻하고 단단한 품이 자신을 감싸 안는 기분이 들었다.순간 몸이 움찔하면서 의문이 스치기도 했지만 깊게 내려앉은 졸음이 금세 정신을 삼켜버렸다. 눈을 뜰 기운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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