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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전쟁보다 위험한 사랑: Chapter 161 - Chapter 170

280 Chapters

제161화

“월녀 아씨시다!”“월녀 아씨께서 참으로 오셨다!”병사들의 부름은 끝내 환호로 번져갔다.“대군 나리! 진 대인! 월녀 아씨께서 오셨습니다! 월녀 아씨께서 정말로 오셨습니다!”유봉진의 가슴이 바짝 조여 왔으며 흥분 때문인지 아니면 감동 때문인지 입가에 맺혔던 핏물도 다시금 흘러내렸다.진무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는 벌떡 일어났다.인파 속에서 소박한 흰옷 차림의 한 여인이 걸음을 재촉하며 다가오고 있었다.처음에는 환영인 줄 의심했으나 점점 또렷해지는 그 모습에 진무는 울음이 터질 듯했다.“월녀 아씨, 제발... 제발 우리 대군 나리를 살려 주십시오! 대군 나리를 살려 주십시오. 월녀 아씨...”정녕 추월녀가 온 것이었다.추월녀는 유봉진이 중상을 입었다는 소식을 듣자 곧장 발걸음을 더 재촉했다.추월녀가 유봉진의 곁에 이르러 무릎을 꿇었을 때, 그리고 손을 뻗어 추월녀의 흩어진 머리칼에 닿을 수 있었을 때, 그제야 진무는 추월녀가 정말로 왔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월녀 아씨, 어서 대군 나리를 구해 주십시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습니다! 대군 나리께서... 대군 나리께서 오래 버티지 못하실 것 같습니다!”추월녀는 말없이 단도를 꺼내 유봉진의 옷자락을 베어내어 상처를 드러냈다.그건 화살이 깊이 살을 파고든 중상이었다.“화살촉을 뽑으려면 살을 도려내야 합니다. 대군 나리께서 견디실 수 있겠습니까? 여기에는 감각을 마비시키는 약이 없습니다.”추월녀는 유봉진을 똑바로 보며 말했고 유봉진 역시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으나 추월녀의 말이 귀에 닿지 않는 듯했다.유봉진은 오직 추월녀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았다. 의식이 흐려서인지 혹은 이 모든 것이 꿈이라 여겨서인지 이 모든 게 아득한 꿈속인 듯했다.추월녀가 정말로 홀몸으로 적진을 뚫고 유봉진을 구하러 온 것일까?“월녀야...”“대군 나리, 보아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으신 것 같습니다.”추월녀는 담담한 얼굴로 불을 켜 단도의 날을 달구고는 자운선을 돌아보며 말했다.“상처를 깨끗이 할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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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유봉진이 선우원영의 혈을 눌러 제압했을 때는 이미 중상을 입어 기력이 모자라 힘이 부족한 상태였다.진무의 질문이 끝나기 바쁘게 선우원영의 혈이 마침 스스로 풀렸다.선우원영은 벌떡 뛰면서 성난 소리로 질책했다.“무공을 모르는 네가 뭐 하러 왔느냐? 우리를 구할 수도 없거니와 모두에게 민폐가 될 뿐이다! 희망을 주어 놓고 또다시 절망을 안겨주니 그보다 못 한 것이 어디 있겠느냐!”추월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선우원영을 한 번 쳐다보았을 뿐 더는 신경 쓰지 않고 하늘을 올려보았다. 동녘 하늘에 어렴풋이 새벽빛이 비치는 걸 보니 날이 밝아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추월녀는 돌아서서 모든 병사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나 한 사람의 힘은 미약하여 모든 부상자를 돌볼 수는 없다. 다만 대군 나리만은 살리려 한다. 모두 알아야 할 것이다. 대군 나리께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모두 살길이 없다는 것을.”그 말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주위가 너무 고요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가 들을 수 있었다.추월녀의 말은 잔인하게 들렸으나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유봉진의 목숨이야말로 그들의 것보다 훨씬 귀중하였다. 만약 유봉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살아남기 어려울 터였다.누군가가 낮게 외쳤다.“저희는 월녀 아씨의 뜻을 따르겠습니다!”주위 병사들도 곧바로 화답하였다.“월녀 아씨의 뜻대로 하겠습니다!”“월녀 아씨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이것들이...”“원영 아씨, 계속 그리 함부로 말씀하시면 저에게 호의를 기대하지 말아야 할 겁니다!”진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그의 건장한 체구에서 흘러나오는 차가운 기운에 선우원영은 두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이번만큼은 진무도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다.“또 떠들어 대면 이곳에 결박하여 버려둘 터니 살든 죽든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겁니다!”선우원영은 이런 하대를 참을 수 없어 멀찍이 누워 있는 유봉진을 노려보며 울분을 터뜨렸다.“유봉진, 네 하인들이 어찌 나를 대하는가 보아라! 나더러 도성에 남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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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들것이 준비되자 진무와 한 병사가 유봉진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잠에서 깬 유봉진은 상처가 너무 아파 온몸이 불편했으며 여전히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추월녀가 앞장서서 걸었고 그들은 바로 뒤를 따랐으며 선우원영은 유봉진 곁을 지키며 줄곧 그의 손을 잡고 있었다.유봉진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기운이 없으니 그저 선우원영이 잡은 손을 뿌리치지 못할 뿐이었다.자운선은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며 투덜거렸다.“전장 한가운데서까지 저토록 집착하는 걸 보면 남들이 저들을 한 쌍인지 모를까 봐 심히 걱정인가 봅니다.”추월녀는 담담히 이르렀다.“길을 나가는 데에만 집중하거라.”자운선은 추월녀가 전혀 신경 쓰지 않자 따라서 더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어차피 추월녀가 원치 않는 남자라면 손을 잡든 공공연히 끌어안든 상관없었다.한참을 걸었건만 대열은 여전히 숲속을 헤매고 있을 뿐 빠져나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선우원영이 참지 못하고 불평을 토했다.“추월녀, 도대체 나갈 길을 알기는 아는 것이냐? 출구는 이 방향에 없다! 출구는 우리가 머물던 그 자리 바로 그 근처였다.”“거기로 나가서 난무하는 화살에 맞아 죽고 싶은 게냐?”추월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맑은 목소리로 주변 사람이 모두 똑똑히 들을 수 있도록 일침을 가했다.“만약 네가 정말로 그러고 싶거든 제발 앞장서서 모두를 이끌고 나가 보아라.”“추월녀, 네가 정녕 날 죽이고 싶은 게로구나. 네가...”“감히 그러지 못하겠다면 당장 그 입을 다물어라! 너의 그 소란스러움이 심히 거슬리는구나.”추월녀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고 선우원영은 격분하여 욕설을 퍼붓으려다 그만두었다. 이때 선우원영이 쥐고 있던 큰 손이 갑자기 풀렸다.“봉진아...”선우원영은 고개를 숙여 유봉진을 바라보며 눈에 불안의 기색이 번졌다.선우원영의 손을 놓는 행동을 어찌 해석해야 하는 걸까?유봉진은 눈을 감고 쉰 목소리로 지시했다.“모든... 병사들은 명을... 들어라. 지금부터 다들... 추월녀의 명을 들을지어다.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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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나는 싫다!”선우원영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숨었다.그 뒤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들것 위에 누워 있는 유봉진이 있었다. 선우원영은 급히 유봉진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손을 움켜쥐었다.“봉진아, 추월녀가 나를 해치려고 한다고 고했으나 너는 믿지 않았지! 이제 믿겠느냐?”“먼저 나가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추월녀도 유봉진을 바라보았다.유봉진은 지금 정신이 온전치 못하여 도중에 잠깐씩 정신이 흐려지기도 했으나 추월녀는 유봉진이 의식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너의 대군 나리께서 다치지 않으셨다면 분명 친히 부대를 이끌고 나가셨을 터. 네가 대군 나리의 여인이라면 대군 나리와 마땅히 함께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니면 무슨 자격으로 대군 나리 옆에 함께하겠느냐?”선우원영의 얼굴이 붉어지면서 불만이 가득했으나 한편으로는 추월녀가 자신을 정말 앞장세울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유봉진의 얼굴도 붉어졌으나 그건 수치심으로 인한 건지 다른 감정인지 알 수 없었다. 유봉진은 일어나려고 손을 뻗었으나 힘이 미치지 못하였다.진무는 겁에 질려 재빨리 말했다.“대군 나리께서는 다치셨으니 무리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가겠습니다.”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앞서가던 추월녀가 이미 한 걸음 내디디며 출구로 향했다.유봉진은 가슴이 조여 와 급히 외쳤다.“월녀야, 위험하니 돌아오너라!”“월녀 아씨, 안 됩니다!”병사들도 추월녀를 막으려 달려들었으나 선우원영만이 옆에 서서 비웃었다.“그저 너희들이 보는 앞에서 연극을 할 뿐이다. 저런 여인이 어찌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을 희생하겠느냐?”“내가 정말 나가면 도성으로 돌아가서 국공부 대문 앞에서 열두 시진 동안 무릎 꿇고 사죄하겠노라고 약조할 수 있겠느냐?”추월녀가 뒤돌아보면서 차가운 눈으로 선우원영을 노려보았다.선우원영은 성을 내어 말했다.“네가 무슨 권리로 그렇게 요구하는 게냐?”“그럼 네가 먼저 나가 보거라.”“나는... 난 앞장서지 않겠다! 전부 다 자네의 계략이 아니더냐? 너는 분명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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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추월녀는 장졸들을 밀쳐내고 맨 앞에 서서 출구로 나아갔다.유봉진은 몇 번이고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진무가 다시 눕히며 막아섰다.“대군 나리, 소인이 월녀 아씨를 지켜드릴 터니 부디 더는 움직이지 마십시오!”유봉진이 계속 몸부림치니 진무는 자리를 비울 수조차 없었다.허나 추월녀의 뒷모습이 안개 속으로 사라지려 하자 진무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급히 달려 나갔다.그러나 곧 진무는 눈앞의 광경에 얼이 빠졌다.“아씨, 이건...”불과 십여 보를 걸었을 뿐인데 시야가 갑자기 탁 트이면서 눈앞의 광경이 훤히 드러났다.그 뒤를 따라온 병사 십여 명도 모두 넋을 잃었다.두려움에 떨며 죽음을 무릅쓰고도 추월녀를 홀로 보내지 않으려고 사내답게 그녀를 따랐거늘 그저 몇 걸음 만에 짙던 안개가 다 사라져 버렸다.뒤돌아보니 숲속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한 모습에 진무와 장졸들은 턱이 빠질 정도로 놀랐다.“월녀 아씨, 이건...”“이 숲은 지세가 특이하여 후세에 인위적으로 고쳐 놓은 진형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길을 잃고 빠져나오지 못하지. 어서 돌아가 병사들에게 이 길은 안전하다고 전하고 모두 나오게 하거라.”추월녀는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드디어 진짜 출구를 찾은 것이로군요. 허나 아씨, 주변에 난적이 없겠습니까?” 진무도 추월녀가 이 질문에는 답할 수 없는 걸 알고 있었다.추월녀가 출구를 찾아낸 것만으로 이미 기적 같은 일이니 적이 매복하고 있는지까지 알 길은 없을 것이다.“월녀 아씨...”“스스로 귀 기울여 보거라.”추월녀가 먼 곳을 가리키며 말하자 다들 숨을 고르고 경청했으며 곧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이 소리는...”“나의 큰 오라버니인 추소하 장군께서 황실의 군사를 거느리고 난적을 포위했다. 허나 너희들은 이틀 밤낮을 굶주려 지금은 전투에 나설 힘이 없을 것이다. 괜스레 가담하였다간 목숨만 버릴 터이니 여기서 잠잠히 기다리다 추 장군과 황실 군사들이 이곳까지 당도하거든 함께 나아가면 되느니라.”지금 병사들의 상태로는 싸움에 보탬이 되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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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한순간 도성 안은 위로 궁궐의 황제, 태후, 황후와 각 비빈들부터 아래로 시골 장터의 백성들까지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건 바로 국공부의 적녀 추월녀가 진왕을 향해 지극한 정을 보였다는 것이었다.전에 혼약을 물린 것도 결국은 진왕 곁에 다른 여인이 있었기에 추월녀가 버림받은 것이라 여겨졌다.“지금 밖에서... 다들 대군 나리께서 월녀 아씨를 버렸다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진무는 바깥 정세를 살펴보고 돌아와 주군을 향해 낮게 전했다. 목소리에는 알게 모르게 주군을 원망하는 기색이 묻어 있었으나 감히 드러낼 수는 없었고 그저 작게 한마디 덧붙일 뿐이었다.“비록 그 말들이 사실과는 다르오나 적어도 한 가지는 틀림없습니다.”병상에서 요양하던 유봉진이 담담히 물었다.“그게 뭐더냐?”진무는 몰래 주군의 안색을 살피고는 다행히 노기가 서리지 않고 고요하였기에 그제야 입을 열었다.“월녀 아씨께서 대군 나리께 품은 정은 참으로 깊고도 두터우다고 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어찌 홀몸으로 생사를 무릅쓰고 석산에 들어가 대군 나리를 찾으셨겠습니까?”사실 자운선도 함께했으나 하찮은 계집종에 불과하여 병사들은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사람들의 입에서 떠도는 이야기는 곧 추월녀가 홀로 목숨을 걸고 난적의 소굴에 뛰어들어 애정하는 사내를 구했다는 전설로 전해졌다.유봉진은 눈을 떨구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진무는 주군의 표정에 여전히 흔들림 없자 또다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대군 나리, 월녀 아씨께서 전에는 냉정하게 돌아서셨습니다. 혹 대군 나리께서는 스스로 그 까닭을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본왕은 알고 있다.”유봉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고 침상 머리에 기대었다.이틀의 휴양 끝에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으나 마음의 무거움은 사라지지 않았다.“결국은 본왕이 월녀를 저버린 것이로다.”진무의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그렇다면 대군 나리께서는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지금 유봉진의 처지는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진무는 본디 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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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진무가 급히 답했다.“마마님, 진왕 대군께서 며칠 동안 방 안에서 나오지 말고 반성하고 있으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추월각에도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서 상궁은 미간을 찌푸렸다.“어찌하여 반성하고 있으라고 한 게냐? 설마 그 소문들이 사실이란 말이더냐? 정말로 그 계집이 이 부장군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대군 나리께서 중상을 입게 했단 말이냐?”진무는 그런 일들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일이기에 대답을 망설였다.“소인도 잘 모르는 일이오니 진왕 대군 나리께 직접 여쭙는 편이 나을 겁니다. 소인은 약이 잘 끓여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가 보겠습니다.”진무는 말을 마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다행히 마주한 상대가 서비가 아닌 서 상궁이라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상대가 서비였다면 진무는 도망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서 상궁은 방 안으로 들어가 서비의 귀에 낮게 몇 마디 속삭였다.유봉진은 비록 상처로 누워 있었으나 청력이 좋아 서 상궁의 말을 다 들을 수 있었다.“어마마마, 이는 모두 군영의 장졸들이 숲속에 갇혀 절망한 끝에 헛된 말을 퍼뜨린 것일 뿐이옵니다. 진실은 그리 간단치 않사옵니다...”“너는 군영의 장졸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냐? 아니면 이 어미를 우습게 보는 것이냐?”“아니옵니다!”서비는 상처 입은 아들을 향해 날 선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억누르고 있었으나 가슴이 답답했다.“봉진아, 어찌 그리 어리석단 말이냐? 월녀 같은 기특한 여인이 곁에 있고 또 언제나 월녀의 오라비 같은 이가 따르거늘. 국공부는 허울뿐이라도 쓸모가 있지 않겠느냐?”서비는 분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다.“특히 지금 추소하가 상처를 입어 앞날이 불투명하니 앞으로는 여동생을 의지할 수밖에 없을 터. 네가 월녀를 아내로 삼는다면 진왕부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서비는 과거의 수많은 전공을 전부 추월녀의 공이라고 믿기 싫었었다. 허나 이번에 추월녀가 곁에 없으니 유봉진은 전투에서 패하고 추월녀 남매가 구해야 할 처지에 이르자 서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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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황자님, 이미 확인되었습니다. 그날 석산에 홀몸으로 들어간 이는 실로 월녀 아씨 한 분뿐... 아니, 시녀 한 명도 데리고 있었는데 바로 자운선이라는 그 계집입니다.”계필이 소식을 전하러 돌아왔을 때 선우혁은 창술을 연마하고 있었다.여전히 길우강에게 비단 장막 여러 겹을 들게 하고 그 앞에서 창을 휘두르는 훈련이었다.창끝이 번개처럼 한 번 스치자 얇은 비단이 단숨에 갈라졌다.길우강은 비단을 세어 보더니 눈을 크게 뜨고 외쳤다.“황자님! 여덟 겹이 정확히 갈라졌습니다! 한 겹도 모자람이 없이 이번에는 완벽히 성공했습니다!”길우강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선우혁이 병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며칠째 곧바로 이 수련에 매달렸기 때문이었다.사흘 내내 오직 창술만 익히며 다른 것은 일절 거들떠보지 않았다.마침 지금은 동릉에 머무니 정무를 볼 일도 없었고 시간은 넉넉했다.허나 길우강은 고통스러웠다.선우혁의 창에는 한기가 서려 있었으며 정작 당사자는 모르나 내력이 약한 길우강은 뼛속까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이번에 정확히 여덟 겹을 베어내자 길우강은 감격하여 곧장 찢어진 비단을 주워 선우혁 앞에 들이밀었다.“보십시오. 여덟 겹이지 않습니까? 소인이 어찌 감히 거짓말하겠습니까?”선우혁의 눈빛에도 잠시 기쁨이 스쳤으나 이내 표정이 다시 무너졌다.아홉 번째 겹에 작지만 작은 틈이 나 있었으며 비록 미세하나 힘이 거기까지 닿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길우강은 급히 위로했다.“황자님, 여덟 겹을 베어내셨으니 이미 대단한 겁니다. 무왕 대군도 쉽게 이루지 못할 일입니다.”“그 자라면 분명 해낼 것이다.”선우혁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면서 빌어먹을 유상무를 발로 차 버리고 싶었다.“추월녀도 해내지 않았더냐?”길우강은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답했다.“그건 단지 묘한 손재주일 뿐이지 무공이 아닙니다. 여인의 동작이 사내보다 민첩한 건 흔한 일입니다. 이상할 것 없지요...”“그렇다면 유미를 데려와 대신 수련해 보아라.”선우혁의 차가운 한마디에 길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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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이날은 추월녀 남매가 유봉진을 구해 데려온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추소하는 이른 아침부터 이미 궁으로 들어가 황제를 알현하였고 유봉진을 구출하고 난적을 평정한 공로로 많은 상을 받았다.그날 저녁 무렵 황제는 추월녀를 어전으로 불렀다.“추 장군 말로는 이번에 난적을 한꺼번에 도륙한 공이 모두 너의 공이라더구나.”추월녀는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레 아뢰었다.“폐하, 그건 큰 오라버니와 만 통령의 공이옵니다. 저는 조금 힘을 보탰을 뿐이니 어찌 감히 공을 독차지하겠사옵니까?”황제는 가볍게 웃음을 띠고 어서방에 서 있는 소녀를 오래 바라보았다.황제는 이제 막 열일곱인 단아하게 자란 소녀의 자태를 보면서 눈빛이 조금씩 흐려졌다.마치 추월녀를 통해 다른 누군가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안 내관, 네가 보기엔 닮았느냐?”추월녀는 말없이 두 사람의 시선을 받았다.안세권은 황제가 누구를 말하는지 곧 알아차렸다. 그건 바로 옛 남강의 최고 미인 명여윤이었다.안세권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정말 닮았사옵니다. 볼수록 닮았나이다. 눈썹과 기색이 닮았을 뿐만 아니라 언행과 기품까지 거의 흡사하옵니다. 다만 명 장군보다 기상이 조금 온화하옵니다.”그때의 명여윤은 무예가 출중했던 인물이었으나 지금 눈앞의 추월녀는 무예를 모르는 여인이었다.심히 안타까운 일이었다.추월녀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략 짐작은 하였으나 입술을 다문 채 조용히 서 있었다. 황제는 추월녀를 볼수록 더욱 마음이 끌리는 기색이었다.“허허.”황제는 살짝 웃더니 말을 이어갔다.“만 통령도 이미 아뢰었노라. 네가 앞서 길을 탐색하고 적의 상황을 샅샅이 살피고 정확히 분석하였다더구나.”황제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그리고 봉진이한테도 내가 사람을 보내 물었노라. 장졸들이 난석진에 갇혔을 때 그 진법을 꿰뚫어 보고 병사들을 안전히 구해내고 괴석림 다른 곳에 갇힌 장졸들도 찾아 구해냈다지?”추월녀가 없었더라면 진왕만이 아니라 육천여 명의 장졸 또한 그곳에서 굶어 죽었을 것이다.“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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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황제가 한 사람을 사라지게 하는 건 쉬운 일이었다.진왕은 분명 분노하고 상심하겠지만 서비에게 화를 낼 수는 있어도 황제에게는 감히 불만을 내비칠 수는 없을 것이다.영원히 사라지게 하겠다는 말이 황제의 입에서 나온 건 서비의 입에서 나오는 것과는 그 무게가 하늘과 땅 차이다.그 도리를 추월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오늘 황제는 추월녀라는 며느리를 인정하고 총애한다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냈다.황제가 누군가를 총애한다면 분명 총애받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어야 마땅하다.선우원영 같은 어딘가에서 불쑥 튀어나온 시골 계집은 황제의 손짓 한 번에 영영 사라질 계집일 따름이다.“월녀야, 이번에 내가 돕겠지만 이후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네가 좀 더 분별 있게 처신해야 할 것이다.”황제도 사내인지라 사내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새로움이 사라지고 다른 여인을 좇게 되는 법이다. 추월녀가 이런 본질을 간파하지 못한다면 과연 황실의 여인으로 적합할지도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진왕의 신분은 훗날 못해도 친왕에는 이를 터이니 후궁과 측실이 생기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추월녀는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월녀 아씨, 어찌 이러십니까?”안세권은 놀라서 물었고 황제도 눈살을 찌푸리며 추월녀를 응시하였다.추월녀는 고개를 들고 황제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았다. 추월녀의 눈빛은 잔잔했고 얼굴빛은 평온하여 감정의 기복이 거의 없었다.“폐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다만 소녀는 진왕부에 들어갈 생각이 없사옵니다. 그 뜻은 일찌감치 폐하께 분명히 아뢰었고 폐하께서도 이미 폐혼 교지를 내리지 않으셨사옵니까? 어찌 어명을 되돌리려고 하시옵니까?”황제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허나 넌 진왕을 향한 정이 깊지 않더냐?”“폐하께서 어찌 소녀의 마음이 아직 진왕 대군 나리를 향한다고 여기시는 것이옵니까?”추월녀는 눈을 깜빡이며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소녀가 큰 오라버니와 함께 석산으로 향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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