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161 - Chapter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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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1화 도와줘요

[연결이 되지 않아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되며 삐 소리 이후 통화료가 부과됩니다. 세 번을 연속으로 걸었지만 돌아온 건 같은 안내음뿐이자 시아는 힘없이 손을 내려뜨렸다.강국의 휴대폰은 늘 24시간 켜져 있었지만, 지금 연결이 되지 않는다는 건 무슨 의미인지 시아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강국이 사고를 당한 것이다.이 오랜 시간 동안 강국은 많은 사람을 건드렸지만 나름의 방패가 있어 무사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미아 뒤에 숨어 있는 비밀은 시아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깊고 그 배후 세력은 권세가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였다.시아의 등골로 차가운 기운이 스며들었다. 자신이 너무 성급했고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자책이 밀려왔으나 후회해도 소용없었다.지금은 조강국의 안전을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시아는 떨리는 숨을 고르며 전화를 걸었다.“지호 씨, 강국이 사고를 당했어요.”시아의 목소리는 힘없이 흔들렸고 지호는 단번에 감지했다. 소파에 느긋이 앉아 있던 남자는 곧장 몸을 일으켰다.[어디야?]“코치님이 교통사고를 당했어요.”대답은 질문과 어긋났지만 지호의 발걸음은 이미 병원을 향하고 있었다....지호가 도착했을 때, 시아는 응급실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공을 응시한 눈빛은 마치 바다에 떠밀린 부평초처럼 의지할 데 없고 무력했다.“괜찮아. 아무 일 없을 거야.”지호는 시아를 조심스레 안아 올리며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조강국은 무사해. 다만 의도적으로 연락이 끊긴 것뿐이야.”병원으로 오는 길에 이미 사람을 풀어 확인했고 결과는 확실했다.이에 시아의 굳은 어깨가 조금 떨렸다.“정말 무사해요?”“그래, 무사해. 거짓말 아니야.”지호는 시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시아의 나약함이 그곳에 드러나 있었다.지호의 말을 믿고 싶었지만 시아는 또 물었다.“그러면 지금 어디 있어요?”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다. 서현아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당했듯, 조강국도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지호의 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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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당장 풀어줄게요

깊은 밤 두 시.유진오는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아 거의 감기 직전이었다.“잠깐 눈 좀 붙일게. 누가 나오면 깨워.”“응, 벌써 나왔어.”지호의 말에 진오는 고개를 홱 돌렸다.“장난치지 마라. 진짜 10분만 잘 거니까.”지호 역시 밤새워 긴장하며 버텨 목소리가 탁해져 있었다.“장난 아니야.”진오는 믿지 않았으나 곧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억지로 눈을 뜨자 지호가 긴 다리를 뻗으며 역광을 등지고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젠장, 밤새 안 나오더니 내가 막 눈 붙이려는 순간 튀어나오냐.”진오는 욕설을 내뱉으며 하품하고는 차에서 내려섰다.바로 그때 거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새벽에 길을 막는 게 누군데?”지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었는데, 차 불빛에 비친 흰 바지가 눈부시게 빛났다.“마왕.”두 글자가 흘러나오자 남자의 시선이 지호에게로 꽂혔고 술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하지호 도련님?”“나예요.”지호가 남자의 곁에 있던 여자 둘을 스치듯 바라봤다. 몸에 딱 붙은 옷차림의 여자들은 눈치를 채고는 재빨리 팔을 놓고 달아났다.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남자는 버팀목을 잃고 그대로 지호 쪽으로 고꾸라졌다.이내 진오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발끝을 남자의 복부에 걸쳤다.“지호 품이 너 같은 놈이 안길 자린 아니야.”남자가 진오의 얼굴을 확인하자 남은 술기운마저 싹 가셨다.“유진오 도련님.”“똑바로 서세요. 휘청거리지 마시고요.”진오가 경고하듯 발을 걷자 간신히 몸을 세운 남자가 헛웃음을 지었다.“둘도 놀러 나온 거예요? 우연히 마주치네요.”“우연이라고요? 우리가 당신을 기다린 지가 벌써 몇 시간이에요.”진오는 또다시 하품을 터뜨리며 눈가를 문질렀다.“마왕, 우리가 왜 당신을 기다렸을 것 같아요?”지호의 낮고 나른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묵직하게 울려 퍼졌다. 상대의 가슴팍을 꾹 누르는 듯한 힘이 담겨 있었다.마왕의 본명은 구현성이었다.집안 다섯째로, 돈만 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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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전부 네 덕분이야

시아가 강국을 보았을 때, 남자는 난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또한 시아는 강국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말했다.“미안해, 너까지 곤란하게 했어.”“누나, 이건 제 체면을 구기는 말이야.”강국은 지호를 흘끗 보며 덧붙였다.“하 대표님께도 감사드려요.”강국은 지호가 직접 나서주지 않았다면 자신이 이렇게 빨리 풀려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강국 씨, 많이 놀랐겠네요.”지호의 그 장난스러운 어투는 여전해서 강국을 더 말문 막히게 했다.시아에게서 돈을 받았지만 일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리니 정말 낯이 뜨거웠다.“그들이 당신을 붙잡은 건 분명 무언가를 알아낸 탓이죠?”지호가 곧장 묻자 강국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두 사람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많이 조사하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마저도 전부 빼앗겼고요.”“음, 빼앗겼다고요?”지호가 눈썹을 미세하게 치켜올리자 강국은 입을 닫았다. 그 난처한 기색을 시아는 똑똑히 보았다.“강국아, 네가 무사한 것만으로 다행이야. 만약 네게 무슨 일이라도 있었다면 나는 평생 마음 놓고 살 수 없었을 거야.”강국의 눈빛에 불안과 감동이 함께 스쳤다.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앞으로 사모님과 하 대표님께서 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시면 도울게요.”“이번 일로 앞으로도 강국 씨 손을 빌릴 수밖에 없을 거예요.”지호가 시아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부부의 행색을 드러낸 남자의 태도만 봐도, 강국이 무엇을 도와야 하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강국 문제가 일단락되자 시아는 한결 마음이 놓였으나 서현아가 크게 다친 상태였다. 온몸에 다발성 골절이 있었지만 당시 헬멧을 쓰고 있어서 머리에는 이상이 없었다.하지만 서현아가 다친 것도 이 사건 때문이었다. 시아로서는 더 캐묻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 서현아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선 진실을 말하지 않을 게 뻔했다.“이 일은 장기적으로 살펴야 해. 당신은 더 이상 관여하지 마. 내가 처리할게.”지호는 시아를 확실히 사건에서 빼내려 하자 여자는 그의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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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내가 당신을 지켰다는 증거

은채가 병원에 가서 상처 치료를 받았는지는 시아도 알지 못했으나 지호의 이마 쪽 상처는 재검받아야 했다.상처 회복은 괜찮았지만 흉터가 하나 남았다. 완벽한 사람이란 없는 법이었고 지호 역시 이 자연의 법칙을 피하지 못한 셈이었다.“선생님, 이거 복원할 수 있나요?”시아가 의사에게 물었다.“가능해요. 다만 완전히 티 안 나게 하려면 나중에 레이저 시술을 해야 해요. 마치 여성분들이 미용 시술받는 것처럼요.”의사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게다가 이 흉터는 그리 눈에 띄지 않아요. 굳이 복원하지 않아도 되고, 한다 해도 간단하고요.”“우리 병원에서도 할 수 있나요?”시아의 말은 분명했고 지호의 흉터를 없애고 싶다는 뜻이었다.이 흉터는 결국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이었으니까.그때까지 묵묵히 있던 지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가능해도 안 해.”시아는 지호의 손등에 생긴 붉은 자국을 보며 답답하게 눈을 굴렸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알았다. 이 사람은 비행기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의사도, 특히 의사가 손에 쥔 칼과 가위도 두려워한다는 것을.“안 아프잖아.”시아의 짧은 몇글자에는 장난기 어린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내가 아픔을 무서워한다고?”지호는 오만하게 자신의 자존심을 지켰다.시아가 비웃듯 입꼬리가 올라가자 지호는 담담히 말했다.“이 흉터는 남겨야 해.”이상한 말에 의사와 시아는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이건 증거야. 내가 당신을 지켰다는 증거. 언젠가 당신이 늙어 기억이 흐려져도 이걸 보면 떠올리게 될 거야.”지호의 말은 마치 노년 문학의 대목 같았다. 그러나 그 속에는 분명한 로맨스가 담겨 있었다.“아내를 지키다 남은 흉터라면 이건 사랑의 훈장이죠. 그렇게 말하니 정말 남겨야겠네요. 차라리 그때는 치료를 대충 하고 흉터가 더 크게 남았어야 했어요.”의사조차 농담 섞인 말로 맞장구치자, 지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응했다.“그렇나요? 그럼 수고스럽지만 다시 한번 칼로 손봐주실래요?”두 사람은 웃으며 주고받았지만 시아는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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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Ana Ahebak

또 그 주제로 흘러갔다.시아는 끝내 지호의 깊고도 의중을 담은 눈빛을 마주 보았다.“지호 씨, 이별 얘기에 그렇게 민감한 건 내가 먼저 꺼냈다는 게 못마땅해서예요? 아니면...”시아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정말 나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서 혹은...”짧은 문장이었지만 쉽게 나오지 않았다. 스스로도 이 질문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 있음을 알았기에, 혹시 조롱당할까 두려웠다. 그러나 지호의 달라진 태도는 시아를 그쪽으로 자꾸 이끌었다.“응?”지호가 시아가 망설이는 것을 보고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이에 시아는 남자의 깊은 눈동자를 응시하며 숨을 고르고 입술을 열었다.“혹은 나를 사랑하게 돼서... 그래서 나와 헤어지기 싫은 거야?”말이 끝나자 공기는 갑자기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정적은 시아의 자만과 착각을 조용히 비웃는 듯했다.순간, 시아는 후회가 밀려왔다.‘어떻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했단 말이지?’‘하지호가 미아에게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내가 누구보다 잘 알잖아?’‘이성을 잃고 그런 질문을 던지고 그것도 입 밖으로 내뱉다니.’그동안 이성적으로 살며 후회할 말과 행동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방금의 말만큼은 뼈저리게 후회됐다.다시 거둬들일 수만 있다면 시아는 기꺼이 삼켜버렸을 것이다.특히 지호의 묵묵한 시선에 갇히자 정말로 땅이 꺼져 들어가고 싶었다.이미 말해버린 이상 시아는 변명이라도 덧붙여야 했다.“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그때 지호의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울렸다.“Ana Ahebak.”시아의 어깨가 순간 떨렸다.“지난번엔 못 들은 거야? 아니면 뜻을 몰라?”지호의 눈빛은 어둡고도 은근한 웃음을 머금었다. 농담인지 진심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만의 특유한 장막이었다.Ana Ahebak, 나는 널 사랑한다.시아는 문득 지호가 처음 이 말을 꺼냈던 순간을 떠올리며 웃음을 흘렸다. 결국 그저 장난처럼 흉내 낸 말일 뿐이라고 생각했다.“뭐가 웃겨?”지호가 미간을 좁혔다.“Ana Aheb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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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반드시 죽여버릴 거야

“시아 언니, 언니도 왔어요? 너무 기뻐요!”진서는 시아를 보자마자 환히 웃으며 그대로 달려와 껴안았다.만약 오늘이 생일이 아니었다면 시아는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지호의 인간관계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진서는 달랐는데 이 아이는 한때 시아가 직접 돌본 적이 있었다.진서가 열네 살이던 해, 사춘기 반항심에 집을 뛰쳐나와 시아를 찾았다. 아무리 설득해도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았고, 오빠인 부진영과도 함께하기를 거부했다. 끝내 시아를 따라붙어 무려 반 년 넘게 함께 지냈다.“생일 축하해, 진서야.”시아는 진서를 꼭 안아주며 따뜻하게 축복했다.“축하, 축하! 언니를 보니 제일 행복해요!”진서의 이름처럼, 활력이 넘쳐흘렀다.“행복은 알았으니까, 인제 그만 놓아. 내 아내 다 말라버리겠다.”지호는 누구에게든 가차 없이 쏘아붙였다.그러자 진서는 코를 찡긋하며 지호에게 맞서더니, 오히려 시아 팔을 더 세게 감았다. 그 행동에서 친밀함이 그대로 묻어났다.“시아 씨까지 오다니, 진서 체면 섰네.”진오가 다가와 시아에게 인사했다.물론 진오와 함께 온 부진영도 있었다. 오랜 지인이기에, 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나눴다. “진서야, 시아 언니 붙잡지 말고 친구들 기다리잖아. 어서 가서 놀아.”진영이 일깨워주었다.오늘 생일 모임은 두 자리로 나뉘었다. 하나는 진서가 친구들과 노는 방, 또 하나는 진영이 따로 준비한 생일 축하 방이었다.“괜찮아요. 자기들끼리도 잘 놀아요.”진서는 고개를 시아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언니 못 본 지 너무 오래됐잖아요. 나 언니랑 붙어 있어야 해요.”진오가 지호의 표정을 슬쩍 살피며 말했다.“그건 네 둘째 오빠한테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그 사람이 뭔데요? 시아 언니가 무슨 사유물이에요?”진서는 생각나는 대로 속내를 그대로 내뱉었다.“내 여자가 아니면 네 여자냐?”지호 역시 어린 동생이라고 봐주지 않았다.진서가 반박하려 하자, 진영이 눈길로 제지했다. 그러자 진서는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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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안아줘요

시아의 발걸음이 멈췄다.문틈 사이로 위협적인 말을 내뱉은 사람을 보니 주영식이었다.남자 안에서 걸어 나왔다.‘저 사람은 어째서 하지호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걸까?’방 안에서는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영식이 형, 지금의 하지호는 쉽게 건드릴 상대가 아니에요. 복수를 함에 있어서 십년은 늦지 않다잖아요.”“십년은 개뿔! 그 놈이 날 안에서 그렇게 농락하게 두고도 내가 가만히 있냐? 내가 꼭 갚아주지!”영식의 분노는 거칠고 노골적이었다.욕설에 잠시 숨죽였던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형, 그 놈이 그렇게까지 한 건 결국 그 여자를 지키려고 한 거잖아요. 차라리 여자를 건드려보면 어떻겠어요? 그보다 더 통쾌한 복수가 어디 있겠습니까.”“하하하, 그 말 괜찮은데?”날카로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듣기 거북한 웃음이었고, 시아의 눈빛에는 냉기가 드리워졌지만 가슴 깊은 곳은 두근거리며 미묘하게 떨렸다.우연히 들은 이 대화가 아니었다면, 지호가 자신을 위해 영식을 처리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끝났어?”지호가 방에서 나올 때, 마침 시아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려는 참이었다.시아는 지호를 바라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에 지호가 고개를 기울였다.“왜 그래?”“당신...”시아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끝내 입을 다물었다.“응?”지호는 시아의 이상함을 느끼고 손을 잡았는데 차갑게 식은 손끝이 전해졌다.이윽고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손이 왜 이렇게 차? 몸이 안 좋아?”“네.”시아는 작게 대답했다. 지호가 외투를 벗으려 하자, 시아는 다른 손으로 그를 붙잡았다.“안아줘요.”뜻밖의 네 글자였다. 지호가 반응하기도 전에, 시아는 한 발 앞으로 다가서 남자의 품에 파고들었다.갑작스러운 행동, 평소와 다른 기색.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지호의 검은 눈빛은 순간 날카로워졌다. 시아가 온 방향을 응시하던 그때, 눈에 들어온 건 멀리 서 있는 승준이었다.답은 분명했다.지호는 시아의 허리를 감싸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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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정말 감동했어요

“당신 동생도 오늘 여기 있는 줄 몰랐어요. 그래서 선물을 준비 못 했고요.”진서와 민아의 실랑이가 끝난 뒤, 시아는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호와 괜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설명을 덧붙였다.“생일도 아닌데 무슨 선물이야? 당신이 빚진 것도 아닌데 줄 이유가 없지.”지호의 말투에는 친오빠의 정 같은 건 전혀 없었다.이치로는 맞았지만 시아는 굳이 말했다.“그 아이가 아쉬운 건 팔찌가 아니라, 친구들 앞에서 체면을 지키는 거니까.”“체면은 그렇게 세우는 게 아니야. 왜 진서는 당당히 당신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민아는 못 했는지 그걸 생각해야지.”지호의 말은 시아의 가슴을 찌르듯 들어왔다.사람의 마음은 마음으로 갚는 법 누군가 자신을 대해주는 만큼 똑같이 돌려주는 것이었다. 민아는 처음부터 시아에게 단 한 번도 좋은 태도를 보여주지 않았다.지호는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고, 또 여자의 편에 서 있었다.처음부터 신경 쓰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지호의 말을 듣고 나니 오히려 속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내 시아는 가볍게 웃었다.“그래도 당신 여동생이잖아요.”“그게 누구든 상관없어. 동생이든 누구든, 다 똑같아.”지호 특유의 독선이었지만 이번에는 시아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강시아,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어. 더구나 억지로 맞춰줄 필요도 없어. 조씨 집안에서든 어디에서든 마음에 안 든다고 하는 사람은 스스로 화나게 놔둬. 그러니 싫은 사람 때문에 스스로를 억누를 필요 없어. 알겠어?”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는 늘 억울하게 살지는 말라고 가르쳤지만, 막상 일이 닥치면 ‘참을 수 있으면 참아라. 큰일을 작은 일로 줄여라’ 하고 타일렀다.승준과 함께 창업하며 수많은 억울함을 겪었을 때도, 그의 태도는 늘 ‘한발 물러서라, 그래야 평안하다’였다.하지만 오늘 지호는 정반대였다. 자신에게 참지 말라고 스스로를 억누르지 말라고 했다.게다가 영식을 자기 대신 조용히 처리해 준 일도 단 한마디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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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널 묻으려고

“나한테 이렇게 잘하지 마요. 무서워요.”시아는 또 술을 많이 마셨고 지호가 여자를 안아 차에 태우려는 순간, 목을 감싸 안으며 낮게 중얼거렸다.“뭐가 무서운데?” 지호가 조용히 묻자 시아는 웃었다.“내가...”뒤이어 울린 전화벨 소리에 말끝이 묻히자 지호의 미간이 단단히 찌푸려졌다. 지호는 걸려온 번호를 흘끗 보았지만 무시한 채 시아를 바라봤다.“뭐가 무서운 건데?”이때 시아의 머리가 옆으로 기울더니 분홍빛 입술이 지호의 목 언저리에 스쳤다. 그리고 가볍게 움직였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여보.” 지호가 불렀으나 돌아온 것은 깊은 잠뿐이었다.전화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이에 지호는 손을 뻗어 전화를 집어 들었다.“조금 있다 걸면 죽기라도 해?”상대가 움찔하며 2초 정도 말이 없었다.[그럼 끊을게. 조금 있다가 다시 걸까?]지호는 힘없이 미간을 비틀었다.“너야말로 저승사자 졸다 들여보낸 놈이지. 할 말 있으면 빨리 해.”[뭐야? 하지호. 그렇게 성질을 내는 걸 보니 내가 방해한 거 아냐? 혹시 시아 씨가 오늘 드디어 허락이라도 한 건가?]“내일 해 뜨는 거 안 보고 싶냐?” 지호의 혀끝이 이로 밀리며 드러난 목소리는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아, 원래 하루하루가 좋은 날인데 어떻게 안 볼 수 있겠냐?] 진오는 여전히 느긋하게 웃었다. [미안하네, 진짜 방해할 뜻은 없어. 그래도 축하할 일 같아서...]“잡담은 그만하지?” 지호가 말을 잘라내자 진오는 가볍게 헛기침했다.[우리 예상대로 마왕이 처리됐어. 다음은 놈이 스스로 우리 쪽으로 기어 올 날만 기다리면 돼.]“그게 그렇게 신기한 일도 아니지 않나?” 지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그날 마왕을 풀어준 것도 지호의 뜻이었다. 진오는 억지로 다그치면 놈이 곧바로 입을 열 거라 생각했지만, 지호는 굳이 서두를 필요 없다고 했다. 놈을 풀어주면 그쪽은 반드시 의심을 품을 테니, 결국 문제가 생기면 누가 배후인지 알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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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사람 하나 알아봐 줘

“입술 왜 그래요?”시아가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지호 입가에 난 상처였다.시아는 순간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고 자신이 어젯밤 술에 취해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려 애썼다.지호는 하얀색 긴 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두 다리를 자연스럽게 꼬아 마당의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 뒤로는 싱그러운 화초와 꽃들이 어우러져 그 모습이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당신 생각은?”지호는 나른하게 대꾸했다.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태도였다.시아는 지호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나 필름 안 끊겼어요.”“못된 여자네.”지호의 입에서 바로 튀어나온 두 단어는 꽤 직설적이었다.‘내가 한 것도 없는데 벌써 못된 여자라니. 앞으로는 술을 함부로 같이 마시면 안 되겠네.’그렇게 속으로 다짐했다. 괜히 여자 망나니 소리 듣기 십상이었다.시아는 이미 지호의 투박한 말투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내가 한 거라 해도 그런 식은 아니었어.”시아는 요즘 들어 지호와의 대화가 한층 편해졌음을 느꼈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서로에게 거리낌 없는 분위기였다.지호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천천히 덮고는 책 모서리를 입가에 가볍게 갖다 댄 채 물었다.“그럼 어떤 식으로 해야 내 입술에 상처를 남길 수 있지?”‘이건?’시아는 기억을 더듬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게다가 더 이상 이어가면 곤란한 주제였기에 시아는 얼른 화제를 돌렸다.“주영식, 그 사람 당신 증오하는 건 알았는데 나도 함께 증오하고 있어요. 그러니 조심해요.“이미 사람 붙여놨지.”지호는 시아가 어제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바로 대비책을 세워두었다.그 자신은 괜찮지만 시아에게는 단 한 치의 실수도 허락할 수 없었다.시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하 대표님 일 처리하는 건 늘 믿음직스럽네요.”“칭찬 고마워, 여보.”지호가 시아를 향해 손짓하자 시아는 의아하게 바라봤다.“뭐예요?”“이리 와.”시아는 몇 초간 망설이다가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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