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병원.검은색 카이엔 차량의 창문이 열려 있었고, 지호는 팔꿈치를 창틀에 걸친 채 2층 창 하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얇은 커튼 너머로 사람 그림자가 어렴풋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외국인 할머니 참 대단하시네. 냄비 속, 그릇 속, 그리고 상에 올릴 마지막 한 접시까지. 한 번에 다 모아놨네.”조수석의 진오가 비꼬듯 말을 던지며 고요를 깨뜨렸다.평소 같으면 가차 없는 입놀림이 나왔겠지만, 지호는 이번엔 의외로 받아치지 않았다.그저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그 할머니 가족은 얼마 기다리면 도착해?”“대략 30분이면 전장에 도착할걸.”진오의 장난기 어린 말투는 여전했고, 지호는 등을 시트에 기댄 채, 무심하게 중얼거렸다.“삼십 분.”“오, 수학을 국어 선생님한테서 배우지는 않았구나. 완전 정답.”진오가 헛기침을 하며 농담을 던지자, 지호는 혀끝을 살짝 치아에 눌렀다.“듣자 하니 너네 대학 은퇴한 국어 선생님이 A국에 봉사활동 갔다던데? 그렇게 널 좋아했다면, 혹시...”“나 급해. 화장실 좀.”진오는 재빨리 차에서 내려 사라졌다.10분 후, 진오는 휴대폰을 들고 돌아와 지호에게 내밀었는데, 화면 속은 병실 CCTV 영상이었다.시아, 승준, 그리고 네덜루 부인이 함께 있었다.네델루 부인은 계속 무언가를 이야기했고,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정과 몸짓만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네델루 부인은 시아와 승준을 한 쌍의 연인으로 여기고 있었기에, 손을 잡아끌어 두 사람 손을 맞잡게까지 했다.시아는 담담한 얼굴로, 가끔 네델루 부인과 같은 언어로 짧게 대답했다.승준은 말없이 시아를 바라봤는데, 눈빛 속 깊은 정이 화면 밖으로 흘러넘칠 정도였다.“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그리고 네 와이프 A국어도 할 줄 알아?”진오는 놀란 듯 말했다.지호는 몇 초간만 화면을 보더니, 휴대폰을 툭 던져 진오에게 돌려줬다.지호는 외투를 집어 들고, 차문을 열어 내렸다.진오도 따라 내려가며 잔소리를 늘어놨다.“지호야, 이 할머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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