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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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부케

차창이 천천히 올라가고, 승준의 눈에는 하얀 웨딩드레스 자락만이 눈에 스쳐갔다.“방금... 너한테 말 건 사람 누구야?”승준이 멍하니 앉아 있는 은채에게 물었다.은채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입술 끝까지 올라온 ‘시아’라는 이름, 그걸 꺼내는 순간 승준이 차 문을 열고, 당장이라도 맞은편 웨딩카로 달려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은채는 알고 있었다. 승준이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닌 시아라는 걸.그런데 승준이 왜 자신과 결혼하는지 은채는 정확히는 알지 못했다.다만, 은채와 결혼하면 진씨 가문과 연결되고 승준은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배경 때문이라고 짐작했다.“이거 봐, 맞은편 신부가 나한테 준 부케야. 예쁘지?”은채는 일부러 말을 돌렸다.승준의 시선은 아직도 맞은편 웨딩카에 고정되어 있었다.창문은 이미 닫혔지만 왠지 눈을 떼기 싫었다.은채가 남자의 눈앞에 부케를 들이밀었다.그제야 승준은 고개를 숙이고 꽃을 바라봤다.그 순간 삼생석 앞에서 시아가 했던 말이 귀가에 쨍하고 울려 퍼졌다.“오늘 우리 약속했으니까 나는 다음 생에도 그다음 생에도 네가 거베라를 들고 나를 데리러 오기를 기다릴 거야.”그때 승준이 물었다. 왜 다른 여자들처럼 장미가 아니라 그 낯선 꽃을 택했냐고.시아는 웃으며 거베라는 부부가 서로 기대고, 함께 걸어가는 의미라고 말했다.그 말이 마음에 남아 승준은 직접 꽃말을 찾아보았고, 며칠 전엔 일부러 그 꽃을 주문하기도 했다.“이 꽃, 누가 줬어? 맞은편 신부가 준 거야?”승준의 목소리가 흔들렸다.그의 눈빛엔 분명 동요가 있었다.은채는 승준의 반응에 불안해졌다.승준이 이 꽃을 평범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히 느껴졌기 때문이다.은채는 목이 메었다. 하지만 애써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응...”그리고는 급히 말을 덧붙였다.“이 꽃... 나 처음 보는 꽃인데, 혹시 안 좋은 의미는 아니겠지?”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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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지금 어디 있어?

“강 비서님이 먼저 결혼식 시작하라고 하셨습니다.”비서의 말에 승준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 말은 곧, 시아가 이 자리에 있다는 뜻이었다.시아가 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승준은 숨이 트였다.차에서 내린 은채는 끝까지 불안한 얼굴이었다.승준이 지금이라도 자신을 두고 떠날 것 같아 두려웠다.오늘 결혼식은 전무후무한 대형 행사였다.작은 실수 하나에도 순식간에 망신살이 뻗칠 수 있어 어떻게든 이 결혼식을 무사히 마쳐야 했다.그 이후의 일은 나중에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은채는 들러리를 보내 부모님께 예식을 서두르라고 전달했다.승준 쪽도 마찬가지였다.그는 조용히 스태프에게 시작을 알렸고, 음악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사회자의 목소리가 차분히 흐르기 시작했다.은채는 부케를 들고 천천히 버진로드를 걸었다.승준의 눈을 보며 걸어갔지만 남자의 눈 속엔 은채가 없었다.승준은 아직도 시아를 찾으면서 그녀가 이 장면을 직접 보기를 바랐다.그게 시아한테 전하고 싶은 마지막 설명이었기 때문이다.“신랑께서 신부님을 맞이해 주시죠.”사회자의 말이 끝나자 승준은 걸어 나가야 했지만, 승준은 아무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승준의 시선은 여전히 은채를 향하지 않았고, 수많은 인파 속 어딘가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사람들은 그 이유를 모르지만 은채는 알고 있었다. 승준이가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승준아.”은채가 먼저 승준을 불렀다.어색함을 덜기 위해 은채는 승준한테로 달려갔다.“말했잖아, 오늘 결혼으로 내가 너한테로 달려가겠다고.”사람들은 은채의 말에 큰 환호소리를 외쳤다.은채는 승준 품에 달려가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게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모두가 지켜보고 있어. 혹시라도 무슨 일 생기면, 우리 두 가문 모두 곤란해질 거야.”승준은 시아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 은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두꺼운 메이크업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창백함. 눈동자 속엔 공포가 어른거렸다.은채는 두려워하고 있었다.하지만 아직 시작도 안 했다.승준은 은채를 바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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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용서하지 않을 거야

“승준아!”은채가 절규하듯 승준의 등 뒤에서 외쳤다.“오늘은 네 결혼식이야. 지금 뭐 하는 짓이냐?”은채의 아버지가 달려와 승준을 가로막았다.이어서 진씨 가문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승준을 둘러쌌다.승준은 그제야 멈춰 섰다.혼란에 빠진 은채를 바라보다 승준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잠시 잊고 있었다. 지금 이 자리가 어떤 자리였는지를.승준은 다시 은채에게 다가갔다.“넌 이미 다 알고 있었지?”승준의 말에 은채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했다.“아니. 난 아무것도 몰라. 내가 아는 건 오늘 우리가 결혼한다는 거야.”은채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승준의 눈동자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그저 시아도 요즘 은채처럼 눈물 흘리며 자신을 붙잡았던 적이 있었던지 생각하고 있었다.“궁금하지 않았어? 왜 내가...”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은채가 몸을 던져 승준의 입을 막았다.은채는 승준의 목을 감싸 안으며 입술을 남자의 귓가에 바짝 붙였다.“정말 눈치 못 챘어? 오늘 이 자리엔, 강시아 말고도 결정적으로 빠진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거.”그 말에 승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은채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너희 엄마, 내가 사람 붙여서 모시고 있어. 지금이라도 나랑 결혼식만 잘 마치면별일 없이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거야.”“진은채.”승준은 손등에 핏줄이 도드라진 채 은채의 팔을 짓눌렀다.아팠다. 하지만 결혼식장에서 혼자 버려지는 수치보다, 진씨 가문이 당할 재앙보다는 그 고통이 차라리 나았다.“오늘 너는 강시아와 네 엄마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어.”은채의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승준의 가문은 이미 파산했고, 아버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며, 어머니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 가까스로 구조됐다.죽기 직전의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말. 그건 어머니를 지켜달라는 유언이었다.승준이 망설인 순간, 은채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7년 전 네가 날 떠날 때, 무슨 말 했는지 기억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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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못 찾아

‘무슨 속셈이든 상관없고, 무조건 시아를 찾아야 해.’‘모든 걸 설명하고, 좀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하면 이해하고 용서할 거야.’시아는 언제나 승준을 이해해 주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화를 내지 않고 용서해줄 것이라고 믿었다.“강시아 못 찾아.”은채가 갑자기 조용히 말했다.승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또 뭔가 수작을 부리려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은채는 그런 승준의 반응에 얕은 웃음을 흘렸다.“아까, 네가 물었잖아. 내가 그 웨딩카 안에 누가 있는지 봤냐고. 그래, 봤어. 그 안에 앉아 있던 신부는 강시아였어. 이제 걔는 하지호의 와이프야.”승준의 어깨가 휘청였다.남자의 시커먼 눈동자가 은채의 얼굴을 꿰뚫어 봤다.귀에는 조금 전 들었던 ‘행복하세요’라는 말이 울렸다.그토록 익숙했던 말투. 그래서 그 순간 승준은 그 목소리를 시아라고 느꼈던 거였다.정말 시아였다.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치 수만 개의 덩굴이 승준을 갈기갈기 찢어서 깊은 절벽으로 내던지는 기분이었다.하지만 승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아니야.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시아는 나를 버릴 사람이 아니야. 더군다나 다른 사람과 결혼하다니.’‘하지호와는 아예 아는 사이도 아닌데, 어떻게 결혼을 해.’‘시아를 찾아가지 못하게 은채가 거짓말을 한 것이야.’‘들은 그 목소리도 어쩌면 그냥 환청일 수도 있어.’‘그건 진짜가 아니야.’“뉴스 좀 봐! 하지호 신부, 강 비서래. 강 비서가 결혼했대!”어디선가 하객 한 명이 외쳤다.승준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그 사람은 핸드폰을 높이 들고 있었고, 사람들은 하나같이 그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승준은 화면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확실히 보였다.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고 있었다.“강 비서 맞아. 설마 했는데, 하씨 가문으로 시집가다니...”‘아니야.’‘나의 시아가 그럴 리 없어.’‘절대, 그럴 리 없어.’승준은 눈앞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속이 터질 듯이 외쳤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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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또 궁금한 거 있어?

하씨 가문의 저택은 넓은 면적의 고풍스러운 건물로 눈에 보이는 곳마다 축하 의미를 담긴 물건들이 가득했다.건물 앞, 리무진 웨딩카 양옆으로 키도 비슷한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각자 손에는 지폐가 수북이 담긴 쟁반이 들려 있었다.어디선가 마이크를 통해 정중한 멘트가 흘러나왔다.“신부님께서 처음으로 ‘어머님’, ‘아버님’이라고 불러주시는 그 순간부터, 두 분께서는 마음은 물론, 앞으로의 삶까지 든든히 뒷받침해 주실 것입니다.”그건 신부가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라는 일종의 신호였다.예물도 이미 다 갖춰진 상태.하지만 시아는 차 문손잡이를 꽉 움켜쥔 채,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차에서 내릴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처음 하지호를 봤을 때부터 시아의 머릿속엔 하나의 의문만 가득했다.‘내가 결혼하기로 한 그 온라인 친구가 어떻게 하지호일 수가 있지?’그 의문을 채 묻기도 전 외할머니가 기쁜 얼굴로 다가와 시아를 잡고 차에 태워버렸다.차에 탄 이후, 시아의 불안은 더 커졌다.무려 10년을 대화해 온 사람이 하씨 가문의 후계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몰래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메시지가 고정된 사람이 아닌 리스트 첫 번째 사람에게 보내졌고, 지호가 언제 SNS 친구가 됐는지, 왜 시아의 SNS에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다.결론적으로 이 결혼은 실수였다.“후회돼?”낮고 깊은 목소리가 귓가를 스치면서 시아는 신경이 곤두섰다.고개를 살짝 들자 지호의 옆얼굴이 보였다.차창은 짙은 틴팅으로 외부 빛을 완전히 차단했고, 검정 가죽 시트는 차주인의 냉철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지호는 다리를 자연스럽게 꼬고 앉아 한 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넓은 어깨와 반듯한 등, 날카로운 이목구비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뿜어냈다.승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지호 씨, 정말 이 결혼... 괜찮은 거예요?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시아가 조심스레 물었다.“내가 지금 장난치는 사람처럼 보여?”지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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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나만 믿어

지호의 얼굴엔 그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마치 승준의 등장이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듯했다.하지만 승준이 방금 던진 한 마디만으로 시아는 지호가 자신과 승준의 과거를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그 사실이 시아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대체 왜 나랑 결혼하려는 거지?’“지호 씨, 제 과거를 알면서도 왜 절 선택하신 거죠?”시아는 더는 애매하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그저 서로 필요한 걸 채우기 위한 결혼이라면 시아도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하지만 다른 의도가 있다면 자신이 누군가의 도구나 말판 위의 말이 되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다.“시아 씨는 신랑이 필요했고, 난 신부가 필요했어.”지호의 말은 설득력이 부족했다.시아는 지호를 조용히 바라봤다. 이해하고 싶었지만 지호의 속마음은 깊은 바다처럼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지호는 이마에 흐트러진 앞머리를 가볍게 쓸어올리며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꼭 이유가 필요하다면 오래전부터 시아 씨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거야.”‘이게 지금 나를 뭣도 모르는 애로 보나. 오래전부터 날 마음에 두고 있었다니.’‘이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시아 자신이 스스로를 낮춰서가 아니라 하지호란 남자가 너무 완벽하고 빛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지호 곁에 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재력과 외모, 학벌까지 고루 갖춘 상류층이었다.그 누구를 내세워도 시아를 훨씬 초월하는 스펙의 존재들이었다.“지호 씨, 장난치지 마세요. 오늘 결혼 이미 여기까지 와버렸고,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니까, 저희 서로 솔직했으면 좋겠어요.”시아는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지호의 눈가엔 장난기 어린 웃음이 스며들고, 곧 입꼬리까지 올라갔다.“사실인데 왜 안 믿지? 그럼 시아 씨한테 상처 준 그 사람 열받게 해주려고 결혼하는 거라면 믿겠어?”시아는 말이 막혔다.두 가지 이유, 다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따지고 들 여유는 없었다.승준이 이쪽으로 오기 전에 무슨 일이 터질까 걱정이었다.자신이 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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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딱 한 번만 더 날 믿어줘

시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지호가 내민 손을 잡았다.지호의 손바닥은 건조하면서도 따뜻했다. 남자의 큰 손이 자신의 손을 감싸는 순간, 시아는 마치 그 안에 있던 불안과 공포까지 함께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지호를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이상한 낯익음을 느꼈다.이 장면, 이 감정, 어딘가에서 분명 겪어본 듯한 너무도 익숙한 감정이었다.부처는 모든 인연에는 전생과 내생이 있다고 말했다.어쩌면 시아의 생에 진짜 인연은 승준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물론 눈앞의 이 사람도 아닐 것이다.이건 그저, 자신이 불러온 착각일 뿐이었다.승준은 시아를 보았다.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반듯하고 잘생긴 남자의 손을 꼭 잡은 채, 한 걸음 한 걸음 지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그 순간, 승준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악몽 같았다.‘시아는 내 신부인데... 어떻게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있지?’“시아야.”승준이 달려가 시아의 손을 잡았다.“나랑 같이 나가자.”하지만 시아는 승준의 손을 피했다.“돌아가.”시아의 말투는 담담했고, 얼굴의 아무 표정 없는 눈빛은 잔잔했다.승준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나랑 같이 가자. 다 설명할 수 있어. 결혼식장에 가면 모든 걸 알게 될 거야.”승준의 목소리는 떨렸고, 쉰 듯 갈라졌다.“진은채랑 결혼할 생각 없었어. 그 결혼식은 걔랑 진씨 가문을 무너뜨리기 위한 함정이었고, 내 부모님의 복수를 위한 것이었어.”“그건 너를 위한 결혼식이야. 네가 제일 좋아하는 꽃으로 예식장을 가득 채웠고, 나는...”승준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시아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모든 게 내 잘못이야. 너에게는 다 사실대로 말했어야 했는데, 너 혼자 고통을 감당하게 했어...”승준은 시아가 아팠다는 걸 알면서도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도 사랑한다고 말했다.사랑이란 상대방이 작은 상처 하나 입는 것도 참지 못하는 감정 아닌가.승준의 해명은 시아가 생각지 못했다.결혼식을 복수의 도구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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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정말 나랑 가지 않을 거야?

“구 대표님, 제 와이프는 이미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주시죠.”그동안 침묵하던 지호가 시아의 손을 붙잡고 있는 승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승준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지호를 노려보았다.“네가 뭔데 끼어들어? 내 여자를 당장 놔.”승준은 당장이라도 지호의 손을 떼어낼 기세였다.하지만 시아가 그 앞을 막아섰다.“지호 씨는 지금 내 남편이야. 앞으로 내 인생을 함께할 사람이기도 해. 그러니까 지호 씨 건드리지 마.”승준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예전에 누군가와 싸울 때 시아는 바로 저런 모습으로 승준을 감싸 안았다.자기 남자라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여자였다.하지만 지금, 시아가 지키는 남자는 더 이상 승준이 아니었다.승준은 마치 한겨울의 바다에 던져진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몸 속의 모든 신경과 세포가 얼어붙은 듯 아팠다.“시아야...”“그만 돌아가. 사람들이 다 보고 있어. 남은 자존심이 있다면 그거라도 지켜야지.”시아가 말했다.시뻘개진 눈을 힘겹게 깜빡이던 승준은 갑자기 뒤를 돌아 지호의 부모를 향해 말했다.“회장님, 사모님. 두 분도 다 보셨고, 알고 계시겠지만 시아는 제 비서이자 제 여자였습니다. 오늘만큼은 두 분께서 나서주셔야 합니다. 시아를 데려가게 해주세요.”“구 대표님.”하정철 회장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시아는 이제 우리 하씨 가문의 며느리이고, 내 아들 지호의 아내입니다. 오늘 하객으로서 축하해주신다면 감사하겠지만 그 외의 행동은 용납하지 않을 겁니다.”시아는 그 말에 눈물이 차올랐다.처음이었다.누군가가 자신을 이렇게까지 지켜준 건.부모 없이 자란 시아에게 학교에서 놀림당할 때마다 바랐던 게 바로 이런 보호였다.시아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그 보호를 이 뜻밖의 결혼을 통해 처음 느꼈다.승준은 충격에 말문이 막혔다.오는 길 내내 승준은 생각했다. 하씨 가문이 시아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아무리 지호가 원해도 결혼을 허락하지 않을 거라고.하지만 승준이 틀렸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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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우리 그냥 결혼해요

승준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하리라고는 시아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조금 전,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승준의 말, 어쩌면 자신이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말도, 행동도 이미 늦어버렸다. 지금 이건 사랑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강요였고, 위협이었다.지호는 물론이고, 하씨 가문에까지 망신을 주는 일이었다.승준은 늘 자기 감정을 앞세웠고, 시아를 진심으로 생각해 준 적은 한 번도 없었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먼저 사랑한 건 늘 자기 자신이었다.순간의 충격이 지나가자 사람들의 시선은 모두 지호에게 쏠렸다.그 눈빛 속엔 놀람과 동시에 은근한 흥미와 기대가 섞여 있었다.구경꾼의 흥분이었고, 권력자의 굴욕을 기대하는 잔인한 욕망이었다.오늘 이 자리에 모인 하객 대부분은 하씨 가문의 권세와 재력을 의식한 사람들이었다.겉으로는 정중하고 예의바른 척하면서 속으론 하씨 가문이 망신당하길 바라고 있었다.이게 인간의 본성이다. 남이 잘되는 꼴은 못 보는 것, 설령 잘 돼도, 나보단 못해야 속이 편하다는 옛말에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이 사람들은 신처럼 완벽하고 위엄 있는 지호만을 봐왔지 승준이가 이렇게 무력하고 초라해진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한 남자에게 있어, 와이프는 자신의 또 다른 얼굴이다.때로는 본인보다 더 큰 상징이 되기도 한다.그런데 오늘 이 결혼식에서, 지호가 선택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드러났다.그 남자는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망쳐놓았고, 심지어 피까지 흘렸다.이제 사람들은 지호가 무너지는 모습만 기다리고 있다.“거기 누구 없어? 구 대표님, 병원에 모셔다드려.”옆에서 침착한 얼굴로 지켜보던 하정철 회장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곧장 두 사람이 달려와 승준을 부축했다.승준은 머리에 피를 흘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는데도 버티며 말했다.“시아야... 제발 나랑 같이 가자... 응?”하지만 시아의 눈엔 승준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지호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결혼식이 이 지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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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당신과 결혼할 수 없어요

가슴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시아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지호와 잡았던 손을 놓고 승준 앞으로 다가가며 뺨을 후려치고는 떨리는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았다.“정말 사람도 아니야...”승준은 자기 피가 묻은 여자의 손을 바라보았다. 비열한 방법이란 걸 알지만 이게 시아와 지호의 결혼을 막을 유일한 방법이었다.그는 오직 모든 걸 막아야 시아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다.그 순간, 차분하던 지호의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고, 검은 눈동자 속으로 살기 어린 기운이 밀려들었다.주변을 둘러싼 공기마저 싸늘하게 바뀐 듯했다.현장 전체가 숨을 삼키고 지호의 반응을 지켜봤다.하씨 가문의 후계자,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이 몸을 피하던 남자가 오늘 이런 수모를 겪은 것이다.사람들은 승준은 이제 끝이고, 적어도 오늘 이 자리에서 무사히 나가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지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시아의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에 꽂혀 있던 비싼 실크 행커치프를 빼내 여자의 손끝에 묻은 피를 조심스레 닦아냈다.승준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마치 상대방이 그럴 가치도 없는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구 대표님이 그런 말을 하는 건 날 자극해서 시아 씨를 포기하게 만들려는 거겠죠. 그런 일 없을 거예요.”“내가 시아 씨를 아내로 맞기로 한 이상, 시아 씨의 모든 걸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거든요. 과거까지도 포함해서.”“사랑한다면서 사람들 앞에서 시아 씨를 망신 주는 게 그쪽 방식이라면 왜 시아 씨가 떠났는지 알 것 같네요.”지호는 단어 하나하나를 또박또박 내뱉었다.그중 시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넘었고, 시아조차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구 대표님, 밖으로 모셔다드려.”말을 마치고 지호는 피가 묻은 손수건을 바닥에 내던졌다.승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수준 차이가 뚜렷하여 비교는 승준에게 곧 수치였다.승준은 문득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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