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Bab 51 - Bab 60

100 Bab

제51화 여기선 아무도 당신을 몰라

“지호 씨, 다중인격이에요?”시아가 보기에 지호가 결혼을 선택한 건 복수심 때문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오래된 깊은 사랑이라는 감정 놀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남자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응, 아마 그런가 봐. 그래서 당신을 데리고 다중인격의 세계를 보여주려는 거야.”식사를 마친 후, 지호는 코인 넣고 타는 자동차에 시아를 태워 주었다.차는 작아 보였지만 두 사람이 함께 탈 수 있을 정도였고, 놀이공원에서 아이들이 타는 미니카를 연상케 했다.다만 네 개의 바퀴가 굵고 튼튼해 오프로드 차량 같은 느낌도 풍겼다.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시아는 ‘겉모습으로만 판단하지 말라는 말’이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물건도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장난감처럼 생긴 이 차는 실제로 타보니 훨씬 더 안정적이고 속도도 제법 났다.도로 위를 달리면서 주변 풍경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지호는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시아는 오늘 하루 종일 놀게 해줄 생각이라는 걸 눈치챘다.‘그래, 놀자. 어차피 여기까지 온 거, 그냥 즐기자.’생각해 보면 시아는 승준 곁에서 일하는 동안 제대로 된 휴가 한번 가지지 못했다.그녀는 승준과 출장을 함께 간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도착하자마자 일하고 곧장 돌아오는 식이었다.제대로 쉬어본 적은 단 한 번, 둘이 만불산에서 소원을 빌었을 때였다.세도나의 거리는 깨끗했고, 길을 걷는 사람들도 많지 않았다.가게들은 대체로 한산해 보였지만 가게 앞에선 여전히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있었다.그 사람들의 얼굴에선 생활에 대한 조급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마치 돈을 벌고 못 버는 건 그저 부차적인 일일 뿐,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는 듯했다.지호가 물었다.“부럽지?”시아가 무슨 생각을 하든 지호는 귀신처럼 알아챘다.차가 골목을 돌아 들어가는 순간, 하얗게 센 수염을 가진 노인이 라틴댄스를 추고 있었다.그 모습에 시아는 말문이 막혔다.춤 실력이 뛰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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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꼭 행복해질 거예요

시아는 춤을 출 줄은 몰라도, 흉내 정도는 낼 수 있었다.가만히 있어서 노인만 민망하게 만들 바엔 그게 나았다.그동안 사람들은 늘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의 시아만 봐왔다.하지만 누구도 그녀가 얼마나 많은 거절과 외면을 견뎌왔는지는 몰랐다.시아는 침묵 속의 거절이 얼마나 쓰라린지 잘 알고 있었다.더군다나 눈앞의 이 노인은 나이도 많았고, 노인이 손을 내민 건 그저 따뜻한 인사를 건넨 것일 뿐이었다.“발 삐끗하지 마. 난 안 업어줄 거야.”지호는 여전히 입만 열면 빈정거렸다.시아는 지호가 일부러 그러는 걸 알았다. 그래서 맞받아쳤다.“그럼 업지 말고 안아줘요.”그렇게 말하곤 이미 노인 앞에 서 있었다.노인은 곧장 시아의 손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 주변을 한 바퀴 빙 돌고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시아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자, 머지않아 몸이 휙 돌기 시작했다. 마치 발밑에 바퀴가 달린 듯, 부드럽게 이끌리는 감각이었다. 몸이 한없이 가벼워졌고, 마치 날개라도 달린 듯했다.이건 정말 신기한 느낌이었다.지금껏 춤 한 번 안 춰본 시아는 자기 몸이 이렇게 유연할 줄 몰랐다.그동안 그녀는 스스로를 과소평가했던 거였다.노인은 리드에 따라 시아를 돌리고 멈추고, 다시 회전시키며 리듬을 맞췄다.주변의 배경도 함께 춤을 추는 듯, 고요함과 움직임이 섞여 마치 장면 전체가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었다.문득 시아는 누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무용수의 영혼은 자유롭다.’이제 그 말의 의미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처음의 부끄러움은 이미 사라졌다.그녀는 몸이 움직이는 대로, 리듬이 흐르는 대로, 모든 것을 잊고 오직 이 순간에만 집중했다. 노인의 발걸음이 점점 더 경쾌해졌고, 주위엔 춤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처음엔 단순히 끌려가던 시아였지만, 점점 움직임을 주도하게 되었다.노인과의 호흡도 더욱 자연스러워졌고, 회전은 점점 커졌다.공중을 자유롭게 가르는 그 느낌에 시아의 영혼마저 풀려나는 듯했다.그 순간만큼은 승준이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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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그냥 테스트해 보는 거예요

“자기야, 좋은 아침.”승준이 눈을 뜨자, 검은색 슬립 원피스를 입은 은채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이불 속의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걸 보고 승준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았다.필름이 끊긴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남아 있는 게 없는 건 아니었다.승준은 다시 눈을 감았고, 은채를 쳐다보지 않았다.은채는 남자의 이런 반응이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자기야, 우리 밖에 좀 나가볼까? 강 비서 커플 좀 봐. 얼마나 잘 노는지.”은채는 눈앞의 친구 전용 핸드폰을 돌려 방금 본 영상을 승준에게 보여줬다. 자기 힘으로는 이 남자의 시선을 끌 수 없으니 다른 사람을 이용한 것이다.이 방법은 꽤 효과적이었다.승준은 눈을 뜨고 영상 속 화면을 바라봤다.영상엔 조금 전 시아가 춤추는 장면, 지호가 시아를 안아 들던 장면, 둘이 코인 자동차를 타고 놀던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잘 찍혀 있었고, 감성적인 편집 덕분에 더 로맨틱해 보였다.승준의 가슴에는 쓰고 시린 감정이 치밀었다.그는 이불을 걷어내고 곧장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후, 은채는 안에서 들려오는 구역질 소리를 들었다. 질투 때문에 토한 건지, 아니면 씁쓸함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그러나 그 이유가 무엇이든 결국 승준은 지호와 시아 앞에 나타났다.상처 난 자리를 가리기 위해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렸고, 캐주얼한 트레이닝 세트를 입은 모습은 여전히 보기 좋았다.은채도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함께 걸어왔다.두 사람은 겉모습만큼은 여전히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보였다.“쟤 또 왔어.”지호와 시아는 지금 수천 평에 달하는 잔디밭에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초록 풍경은 마치 초원에 온 듯한 기분을 들게 했다.“왜요? 당신 때문일 수도 있잖아요?”햇살이 강해지자 시아도 선글라스를 썼다. 그런 서늘한 분위기에 선글라스까지 더해지니 치명적이면서도 거칠고 자유로운 느낌을 풍겼다.지호는 반쯤 누운 자세로 다리를 꼬고 있었다.“그래, 나 때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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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나는 와이프를 팔 생각이 없어요

“하 대표님, 조건이 뭐예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시아를 놓아줄 생각이에요?”승준은 조금 전 시아가 앉아 있었던 자리에 앉았다.여자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그것만으로도 지금의 승준에겐 커다란 위안이자 만족이었다.지호는 팔을 뻗어 의자 옆 버튼을 눌렀다.그 순간 위로 차양이 올라오며 남자의 얼굴은 그늘 속으로 숨어들었다.그러나 선글라스는 여전히 벗지 않았다.“구 대표님, 어젯밤 술이 아직 안 깼어요? 아니면 몽유병?”비아냥이 섞인 말에도 승준은 반응하지 않았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하 대표님 원한다면 파마산 땅을 줄 수도 있어요.”파마산은 신도시의 핵심 부지였다.지난달 여러 차례의 선별 끝에 남은 경쟁자는 승준과 지호 단 두 명뿐이었다.그날 입찰장에서의 장면을 승준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그때 시아도 함께 있었고, 지호가 했던 말이 아직 귀에 생생했다.“구 대표님, 좀 양보하시죠.”지금 돌이켜보면 지호가 탐냈던 건 단지 그 땅만이 아니었다.그는 그 땅뿐만 아니라 시아까지도 원했던 것이다.물론 지호가 시아와 결혼한 데는 목적이 있었지만 승준은 같은 남자로서 지호가 진심을 품게 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도대체 언제부터 지호가 시아를 마음에 두기 시작한 건지는 알 수 없었다.“그 땅, 그냥 주는 거예요?”지호의 목소리는 나른하게 풀려 있었다. 마치 한잠 자다 깬 사람처럼 말이다.아직 오전 10시.하루 중 가장 정신 맑을 시간인데 지호의 목소리는 전날 밤 제대로 쉬지 못한 사람처럼 들렸다.그 순간, 승준의 머릿속에 스친 건 어젯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던 시아의 나른한 숨소리였다.승준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그렇게만 해서 되는 거라면 못 줄 것도 없어요.”시아를 되찾을 수 있다면 잃을 수 없는 건 없었다.“구 대표님, 내 아내한테 정말 진심이시네요. 수천억 부지를 그리 쉽게 내놓다니.”지호는 몸을 한 번 움직였다.지금 자세가 불편한 듯, 천천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승준은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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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기세가 왜 이렇게 세지?

시아는 넓은 잔디밭 위에서 한창 즐겁게 놀고 있었다.그런 시아에게 코인 자동차 한 대가 가까이 다가왔다.누가 온 건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이렇게 멀리까지 피했는데도 또 쫓아왔어.’그러나 은채가 찾는다고 해서 순순히 기다려줄 시아가 아니었다.시아는 코인 자동차의 페달을 더 깊게 밟고, 잔디밭 중에서도 더 넓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그녀가 탄 코인 자동차는 생각 이상으로 훌륭했다. 초반에 이게 뭐냐며 흘겨봤던 걸 사과하고 싶을 정도였다.잘 달릴 뿐 아니라 운전하는 손맛도 제법이어서 심지어 한 대 공수해서 국내 거리에서 타고 다니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은채는 시아가 멀어지는 걸 보자, 입꼬리에 비웃음을 걸고 시아를 따라 페달을 밟았다.그렇게 초록 잔디밭 위에서 두 여자의 대형 장난감 추격전이 벌어졌다.“강시아! 도망치는 거야?”은채는 거리를 좁히지 못하자 소리쳤다.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는 시아의 모습은 멋지고 당당해 보였다.시아는 은채한테 눈길도 주지 않고 그저 차를 몰았다.이렇게 넓은 공간에서는 은채가 아무리 목청을 써도 웬만해선 들리지 않는다.하지만 들었음에도 티 내지 않고 그냥 은채가 목 풀게 놔두었다.“얘기 좀 하자니까! 멈춰봐!”이번엔 명령하듯 소리쳤다.시아는 곧장 코인 자동차의‘보조 가속 기능’을 켰다.이건 아까 이곳에 왔을 때 지호가 몰래 알려준 숨겨진 기능이었다. 초보 운전자는 모르는 버튼이라며 자랑하듯 가르쳐 주었다.그 덕분에 코인 자동차는 더욱 빠르게 치고 나갔고, 은채는 그 그림자조차 따라가지 못했다.물론 완전히 따돌려버리면 재미가 없다. 적당히 따라오게 만들어야, 끝까지 쫓아오는 걸 보는 맛도 나는 법이다.이런 ‘개 산책’ 같은 놀이는 흔치 않으니까.“강시아!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나 마주칠 용기는 없고, 그래서 피하는 거잖아?”은채의 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은채 잔머리는 셌다. 시아에게 도발을 해보려 한 거겠지만 시아는 그런 얕은수에 넘어갈 여자가 아니었다.시아는 속도를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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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사람 보는 눈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왜 다들 알고 있는 거지?’하씨 가문이 시아의 성과를 공개하자마자 시아의 과거까지 들춰진 모양이었다.물론, 은채도 그중 하나이다.‘근데 이 여자가 갑자기 도와주겠다는 건 또 무슨 수작일까?’시아는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다.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은채는 계속할 거니까.그렇게 무시당할 줄은 몰랐는지 은채는 예상 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다시 국내에 돌아와 승준을 되찾기 위해 그녀는 시아에 대해 꽤나 깊이 조사했었다.그리고 시아가 일 잘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고고하고 강한 자존심을 가진 줄은 몰랐다.부모 없는 고아에 불과한 시아가 대체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오는지 은채는 알 수 없었다.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했다.며칠간 가까이서 지내면 알게 된 개 있었다.그것은 바로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열세인 듯하면서도 절대 기죽지 않는 시아의 당당함, 그건 분명히 사람을 묘하게 불편하게 했다. 지금은 하지호라는 든든한 남편까지 곁에 있었다.한 나라 재계의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하지호, 이 남자가 시아에게 무릎 꿇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은채는 질투와 분노로 미칠 지경이었다.진씨 가문의 가주인 진성호가 귀국을 결정하며 국내 유력 가문들과의 연결 가능성을 생각했을 때, 그가 가장 눈여겨 본 사람도 하지호였다. 하지만 은채가 조사를 하면 할수록 하지호는 손도 닿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을 알게 되었다.결국 타협하듯 택한 상대가 옛 연인, 구승준이었다.그런데 결국 최후의 승자가 시아라니.여자의 뒷모습을 노려보던 은채는 잔디를 짓이기듯 발로 꾹 누른 뒤 결국 다시 시아를 따라 걸었다.“강시아, 도도한 척 좀 그만해. 지금 그 고고한 척하는 이유, 내가 모를 줄 알아? 일부러 튕기면서 더 끌리게 만들려는 수작이잖아.”“그 말, 하지호가 해줬어?”시아가 비꼬듯 되물었다.은채가 국내 공항에서부터 지호에게 집착하던 모습, 승준이 은채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던 걸 시아는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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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나 상처받는 거 정말 싫어

시아의 SNS 친구는 많지 않았다.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는 사람은 딱 한 명이다.그런데 그 단 한 명 때문에 아주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이 메시지를 본 순간 시아는 정신이 멍해졌다.곧이어 또 하나의 메시지가 보였다.[지금 여기 있는 거야?]시아의 눈이 움찔거렸다. ‘이 말은... 설마 이 사람도 지금 이곳에 있다는 건가?’‘이럴 수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나.’두 사람은 줄곧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었다.예전에 이 친구가 만나자고 한 적은 있었는데, 시아는 단칼에 거절했고, 그 이후로 이 친구도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두 사람이 계속 연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서로가 그 선을 넘지 않는 태도 덕분이었다. 상대방은 시아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고, 거리는 확실히 지켰다. 세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나도 세도나에 있어. 바로 네 근처야. 그러니까... 잠깐 얼굴 볼래?]상대방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시아의 대답은 하나였다. 단호한 거절.시아는 예전에도 이 친구를 만나지 않았고, 지금은 더더욱 만날 이유가 없었다.사실 그녀는 최근 들어 이 친구와의 연락을 끊을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 어이없는 오해 사건 이후, 시아는 더욱 확신했다.가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시아는 손가락을 움직여, 조용히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앞으로 우리...]“왜 안 돌아가나 했더니 여기서 딴짓하고 있었네.”지호의 목소리가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왔다.시아는 깜짝 놀라 몸을 움찔거렸고, 들고 있던 핸드폰도 그만 떨어뜨릴 뻔했다.‘도대체 언제 온 거야? 발소리 하나 안 들렸는데...’시아는 핸드폰을 꼭 쥐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봤다.다행히도 시아는 지금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아니면 지금 얼굴에 드러난 당황스러움을 다 들켜버렸을 것이다.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왠지 딱 들킨 기분이다.“걸어왔어요?”시아는 뒤편을 힐끔 봤는데, 차는 없었다.지호는 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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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안아줄까?

결국 시아의 거짓말은 지호한테 통하지 않았다.속이지 못할 바엔 차라리 숨기지 않는 게 낫다.시아는 조용히 핸드폰을 집어넣었다.그 순간, 상대가 또 메시지를 보낸 것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확인할 여유가 없었다.돌아오는 길, 운전은 시아가 맡았다.지호는 마치 황제처럼 옆자리에 앉아 다리를 편히 꼬고, 긴 팔을 운전석 등받이에 걸쳐두었다.그야말로 여유 만만한 모습이었다.“왜 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야?”지호가 불쑥 물었다.무슨 질문인지 시아는 곧바로 알아챘다. 은채가 미아를 보여주겠다고 한 일을 말하는 듯했다.“믿을 수 없으니까요.”지호의 손끝에 시아의 긴 머리카락이 감겼다.부드럽게 손가락을 말아가며 지호는 다시 물었다.“그럼,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긴 해?”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예전에 시아는 승준을 믿었다. 하지만 승준은 시아의 마지막 신뢰마저 저버렸다.시아가 아무 말 없이 침묵하자 그 자체가 곧 대답이 되었다.그때, 운전대 위에 낯선 손이 하나 더 얹혔다.지호가 가까이 다가왔다.“앞으로는 남편을 믿어.”그 말은 장난처럼 들렸고, 시아는 아무런 대꾸 없이 조용히 운전을 계속했다.도착했을 때 승준과 은채는 이미 거기에 없었다.두 사람이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시아는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좀 피곤해요.”그녀도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그건 그저 일시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마음 한편의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으니까.그리고 만나자고 한 그 친구가 이곳에 자신이 있다는 걸 안 이상, 혹시라도 찾아오면 곤란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시아는 오히려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그 친구와의 연락을 끊은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평범하게 사는 게 최선이야.’시아도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버릴 건 버리고, 끊을 건 끊어야 한다. 가진 게 적을수록 삶은 가벼워질 거니까.인간관계도 마찬가지이다. 덜 알수록, 덜 얽힐수록 덜 괴로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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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원한다면 남편이 해줄게

[미안... 아까 말은 취소할게.][다른 뜻은 없었어. 그냥 이렇게 타국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반가워서 그랬어.][여행이야? 출장이야?]시아는 핸드폰을 열자마자 SNS에 도착한 메시지 세 통을 확인했다.상대방의 SNS 닉네임은 ‘열두 살 그해’이고, 지금까지 둘은 서로의 본명도 모른다.시아는 그 친구를 ‘12’라 부르고, 그 친구는 시아를 ‘사탕’이라 부른다. 시아의 닉네임이 ‘사탕은 달지 않아’였기 때문이다.시아는 대화를 위로 스크롤 했다. 그동안 둘이 나눈 흔적은 오늘 그 친구가 보낸 메시지뿐이었다.시아는 주기적으로 메시지를 정리하는 습관이 있었고, 남겨두는 걸 싫어했다.그 습관 때문에 하필이면 청혼 메시지를 지호에게 잘못 보낸 것이다.그 친구를 떠올리니 시아도 약간 골치 아팠다.지호는 마치 사냥꾼처럼 시아를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중이었다. 아직 덫을 놓기만 했을 뿐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그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시아는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생각이 없었다.그래서 지호는 피해야 할 상대였다.[앞으로 나 SNS 안 할 거야.]메시지를 보내기 전, 잠시 머뭇거렸지만 결국 전송 버튼을 눌렀다.이 말의 의미, 상대는 분명 알 거라고 믿었다.곧바로 입력 중이라는 알림이 떴다. 그 친구는 시아의 답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우리의 약속 어긴 건 나야.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메시지를 다 읽기도 전에 또 하나가 도착했다.[정말이야. 약속할게.]그 친구는 관계를 끊고 싶지 않은 듯했다.물론 시아도 그 마음을 알아챘지만, 이미 마음을 정리했다.[세상에 헤어지지 않는 사이는 없어. 그동안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웠어.]그 문장을 보내고 나서 시아는 SNS 앱을 아예 삭제했다.그날 밤, 시아는 잠이 들었고 꿈을 꾸었다.미아가 나왔고, ‘12’도 나왔다.‘12’는 꼭 한 번만 보자고 했고, 시아는 마침내 이 사람에게 다가갔다.하지만 그 얼굴을 보기도 전에 코끝이 간지러워졌고, 재채기를 터뜨린 시아는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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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오래 기다렸어?

시아가 말을 마치자마자 운전사가 차 문을 열었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시아는 이유 모를 한기를 느끼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지호는 시트에 등을 기댄 채 나른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엔 웃음이 담겨 있었지만 그 웃음은 눈까지 닿지 않았다.“또 뭘 말하려고?”시아는 순간 멍해졌다가 곧 정신을 차렸다.오늘은 두 사람의 결혼 3일째 밤이다.지호는 일부러 말을 비틀어 장난을 치고 있었다.‘이 남자 정말...’“난 와이프 데리고 인맥 관리하는 취미는 없어.”지호가 먼저 차에서 내렸고, 손을 내밀며 짧지만 확실한 대답을 남겼다.지호는 시아의 손을 잡고 전망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엘리베이터 안에서 본 세도나의 야경은 또 다른 아름다움과 평온함을 담고 있었다.하늘 위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시아가 전에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그녀는 비서로 일한 세월 동안 수많은 접대와 장소를 미리 조사해 왔기에 이런 고급 레스토랑이 낯설지는 않았다.승준에게는 이런 고급 레스토랑의 단골이었던 고객이 하나 있었는데, 어린이날 같은 날조차 꼭 이곳에서 인증샷을 남겨야 하는 타입이었다. 하여 그 고객을 위해 시아는 철저한 공략을 준비해 둔 적이 있었다.비록 직접 와본 적은 없지만 이곳의 고급스러움은 사진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밟고 있는 카펫조차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한 포근함이 있으면서도 안정감이 있었다.레스토랑은 완전히 오픈된 구조였고, 모든 테이블에는 칸막이가 없었다.하지만 누구 하나 다른 손님의 시선이나 대화를 의식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각 테이블 반경 3미터 내에는 적외선 소음 차단이 설치되어 있어 외부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설계된 보이지 않는 벽이 있기 때문이었다.지호는 시아를 데리고 통유리창 근처의 테이블로 향했다.그 테이블 옆에는 키가 187, 아니 188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그 남자는 홀을 등지고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는 듯, 두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시아는 그 남자가 바로 지호가 말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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