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차의 불빛이 점점 멀어져 갔고 시우는 서재의 통유리 창 앞에 서서 무심결에 손끝으로 도경란이 남기고 간 USB를 굴리고 있었다.시우의 표정은 어둡고 알 수 없었으며, 눈동자 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파도처럼 뒤섞여 있었다.“대표님, 일은 모두 처리되었습니다.”뒤에서 비서가 조심스레 알리자 시우는 돌아보지 않은 채 낮게 대답했다.“그래요.”이때 비서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물었다.“대표님,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하씨 집안을 돕는 건가요?”시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그 집안을 왜 돕는다고요?”이윽고 남자는 몸을 돌려 날카로운 눈빛을 내리꽂았다.“난 내 자신을 돕는 거예요.”시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비서에게 가방을 가져오라 손짓했다.봉투 하나를 꺼내더니 천천히 열자 빛바랜 사진과 오래된 기사 스크랩이 가득 들어 있었다.사진 속에는 울음을 참지 못한 어린 소녀가 법원 문 앞에서 기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그 곁에는 젊은 시절의 도경란이 서 있었다.“20전, 우리 주씨 집안은 도경란 손에 무너질 뻔했지.”시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가슴 깊이 파고드는 서늘함이 묻어났다.기억은 20년 전, 주씨 저택으로 거슬러 올라갔다.“아버지! 뭐라고요?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나요!”열 살 남짓한 시우가 서재 한가운데 서서,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었다.주창석의 얼굴은 검푸르게 굳어 있었고, 손에 들린 찻잔은 탁자 위에 쾅 하고 부서졌다.“이놈! 너도 날 못 믿는단 말이냐!”“하지만 신문에는...”시우는 주먹을 꼭 쥐며 목이 메었다.그날의 신문 1면에는 굵은 제목이 박혀 있었다.[주한그룹 회장, 여대생 강간 혐의. 피해자, 눈물로 고발]사진 속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도경란은 절친인 양 여자를 부축하며 분노에 찬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난 누군가의 함정에 빠진 거야!”그 일을 떠올리자 주창석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그날 술자리에서 술 한잔을 마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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