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Kabanata 1041 - Kabanata 1050

1160 Kabanata

제1041화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주기훈은 주민혁에게 어떤 편의도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룹 전반에 지시를 내려 모두가 그를 ‘바짝 감시하라’고 못 박았다.프로젝트 결정 같은 큰 사안부터 협력 계약 같은 사소한 일까지, 가는 곳마다 제약이 걸렸고 그는 사업을 하면서도 손발이 묶인 채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 했다.그렇다면 다른 한쪽의 심종연은 어떠한가.주씨 가문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사람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 본래 자신이, 그리고 주상 그룹이 누려야 할 모든 편의를 독차지하고 있었다.주기훈이 심종연에게 보이는 편애는 날카로운 가시처럼 주민혁의 마음에 박혀 있었다.웃기지도 않았다.모든 짐은 자신이 짊어지는데 편의와 혜택은 심종연의 몫이라니.사무실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듯 무거웠고 한쪽에 서 있던 려운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굳어 있었다.한참의 침묵 끝에 주민혁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려운.”그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상공 협회에 지시해. 내가 스승님 곁에서 끝내지 못했던 07 전투기 프로젝트, 오늘부로 내가 인수할 거라고. 이번 달 말부터 공식적으로 가동해.”“대표님?”순간 몸이 굳어진 려운의 얼굴에 충격받은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다. 손에 들고 있던 서류마저 하마터면 떨어질 뻔했다.07 전투기 프로젝트.그건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이름이었다.주민혁의 스승, 항공우주 분야에서 덕망 높던 구교진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기술을 돌파하기 위해 밤낮없이 매달리다 결국 과로로 쓰러졌고 실험실에서 생을 마감했다.그 이후 이 프로젝트는 국내외에서 모두가 노리는 대상이 되었다.성공한다면 과학기술의 거대한 도약이었지만 구교진은 그 핵심 기술을 가슴에 품은 채 그해 바다에 묻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그 후 수년 동안, 이 프로젝트를 다시 건드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하나는 기술적 난도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왜, 무슨 문제 있어?”주민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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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2화

이후 구교진이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프로젝트는 그대로 중단되었고 업계에서는 누구도 쉽게 손대지 못하는 난제로 남았다.그런 프로젝트를 지금 와서 주민혁이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당시 프로젝트에 깊숙이 관여했던 그의 이력과 지금 그가 가진 자원을 생각하면 자격이 없는 건 아니었다.다만 문제는 왜 하필 지금이냐는 것이었다.최수빈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머릿속이 의문으로 가득 찼다.약혼식에서 벌어진 소동은 아직 수습되지도 않았고 임명규는 감시를 받고 있으며 주기훈과 심종연의 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이었다.주씨 가문은 그야말로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주민혁은 이런 시점에 가장 민감한 국가 기밀 프로젝트를 건드리고 있었다.“주민혁 씨 기사 보고 있어?”뒤에서 육민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최수빈 앞에 내려놓았다.그러자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올려다봤다.“선배도 봤어요? 07 전투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겠대요.”육민성은 화면에 떠 있는 뉴스를 말없이 바라봤다. 깊은 눈동자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판이 바뀌려는 거야.”최수빈은 잠시 멍해졌다.“무슨 말이에요?”“은산시의 판, 주씨 가문의 판, 그리고 항공우주 업계 전체의 판.”육민성은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마셨다.“07 전투기 프로젝트는 단순한 사업이 아니야. 국가 기밀이 걸려 있고 그 뒤에 얽힌 이해관계와 세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해. 주민혁 씨가 지금 이걸 재가동한 이유가 단지 스승의 유언을 이루기 위해서만은 아닐 거야.”최수빈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한층 날카로워졌다.“생각해 봐. 주기훈 선생님, 심 대표님에게는 플라잉 테크 쪽으로 온갖 편의를 주면서 정작 주상 그룹에는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어. 임명규 씨 그분이 감시를 받게 된 일, 약혼식에서 벌어진 사고... 이 모든 게 우연일 리 없어. 그런데 지금 민혁 씨는 07 전투기 프로젝트를 손에 쥐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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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3화

07 전투기 프로젝트 재가동 소식은 깊은 바다에 떨어진 폭탄처럼 고요하던 은산시 과학기술계를 뒤흔들어놓았다.그리고 그 파장은 결국 심종연까지 끌어왔다.주상 그룹 최상층 회의실.주민혁은 상석에 앉아 아무렇지 않은 듯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맞은편의 심종연을 바라보고 있었다.“주 대표님, 07 전투기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하시다니, 결단력이 대단하시군요.”심종연은 커피잔을 든 채 옅게 웃었다.“플라잉 테크는 항공 소재 분야에서 꽤 기반을 쌓아왔습니다. 어쩌면 협력할 여지도 있지 않을까요?”주민혁이 천천히 눈을 들었다. 그러나 눈빛에는 전혀 온기가 없었고 입가에도 희미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심 대표님, 플라잉 테크는 아직 급이 안 됩니다.”짧은 한마디였으나 그 말은 차가운 물처럼 심종연의 기대를 단숨에 식혀버렸다.심종연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미소를 짓더니 커피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장을 정리했다.“주 대표님 말씀이 그렇다면,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돌아서 나서는 순간,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눈빛은 밤처럼 깊고 차갑게 가라앉았다.주민혁의 성격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이 협력이 애초에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단칼에 거절당하자 등골을 타고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주민혁, 생각보다 훨씬 상대하기 까다롭군.’주상 그룹을 나선 심종연은 곧장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차를 몰아 외진 찻집으로 향했다.별실 안에서는 주기훈이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앞에 놓인 차는 식어버린 지 오래였다.“협력 거절당했나요?”심종연이 들어서자마자 주기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었다.심종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에 앉았다.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거절했을 뿐 아니라, 플라잉 테크는 급이 안 된다고 하더군요.”잠시 말을 멈췄다가 그가 다시 우려가 담긴 눈빛으로 주기훈을 바라보았다.“정말 주 대표님이 아무것도 못 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07 전투기 프로젝트가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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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4화

“해온시에서 전학 올 때도, 그쪽 학교가 쉽게 보내주지 않아서 꽤 애를 먹었습니다.”“최율...”주민혁은 그 이름을 입안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그러다 무언가에 정통으로 얻어맞은 듯해 몸이 순간 굳어버렸다.주예린, 최율.자신의 딸이 성도 이름도 바꿨다는 사실을 그는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이제 아이는 더 이상 주씨 가문의 아이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었다.그 순간, 보이지 않는 손이 심장을 세게 움켜쥔 것처럼 가슴이 저려왔다.주예린이 어린 목소리로 ‘아빠’라고 부르던 순간들, 품에 안겨 떼를 쓰듯 매달리던 모습이 영화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최수빈은 정말로 철저하게, 완전히 선을 그은 것이었다. 심지어 딸의 이름까지 바꿔가며 말이다.그리고 그녀와 육민성의 관계 역시 단순한 연기라고 보기 어려웠다.교장은 여전히 최율이 얼마나 총명하고 야무진지, 얼마나 재능이 뛰어난지 열을 올려 설명하고 있었지만 주민혁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머릿속에는 오직 ‘최율’이라는 두 글자만 맴돌았다. 가슴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욱신거리며 아팠다.이윽고 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알겠습니다.”교장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사이, 그는 이미 교장실을 나와 학교를 떠나고 있었다.차 안에 앉은 채 주민혁은 교문을 드나드는 아이들을 멍하니 바라봤다.숨을 깊이 들이마셨지만 몸이 떨렸다. 밀려오는 감정을 도저히 다잡을 수가 없었다.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와 떨리는 손으로 약을 꺼내 삼켰다.한참을 핸들에 이마를 기댄 채 숨을 고르고 나서야 조금 진정되는 듯했다.차의 시동도 끄지 않고 주민혁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불을 붙이지도 않은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공허한 눈으로 학교 정문을 바라봤다. 귓가에는 조금 전 교장이 했던 말이 계속해서 맴돌았다.그때, 익숙한 차 한 대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육민성이 먼저 차에서 내렸고 뒤이어 최수빈이 내렸다.최수빈은 단정한 흰 원피스 차림이었다. 어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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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5화

최수빈의 시선이 허공에서 잠시 주민혁과 맞닿았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깊고 어두웠다.하지만 그녀는 곧 입술을 살짝 다물더니 미련 하나 남기지 않고 시선을 거두었다.그리고 손을 들어 최율의 작은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율아, 우리 집에 가자.”육민성은 자연스럽게 최율의 책가방을 받아 들고 뒷좌석 문을 열었다. 모녀 모두 차에 타는 것을 살뜰히 챙긴 뒤 운전석으로 돌아갔다.차에 오르기 전, 그는 잠시 고개를 돌려 주민혁의 차를 바라봤다.차창이 굳게 닫혀 있어 안은 보이지 않았지만 유리를 뚫고 나오는 듯한 무거운 시선만은 또렷하게 느껴졌다.육민성은 더 오래 보지 않고 시선을 거둔 뒤 시동을 걸었다. 그렇게 차는 천천히 학교 앞을 벗어났다.차 안은 고요했다.육민성은 룸미러로 뒷좌석을 힐끗 봤다.최수빈은 고개를 숙인 채 최율이 들려주는 학교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마치 조금 전 교문 앞에서 있었던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싶었다.“그 사람이 여기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닐 거야.”침묵을 깬 육민성의 목소리는 차분했다.“이 시점에 07 전투기 프로젝트 재가동을 발표하고 곧바로 학교까지 율이의 상황을 알아보러 왔잖아. 단순할 리 없어.”최수빈의 손이 잠시 멈췄다가 곧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움직였다.그녀는 최율의 앞머리를 정리해주며 담담하게 말했다.“이제 나랑 상관없는 일이에요.”짧은 한마디였다.하지만 그 말은 보이지 않는 벽처럼, 주민혁을 그녀의 세계 밖으로 완전히 밀어냈다.육민성의 말뜻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녀 역시 주민혁이 분명 어떠한 의도를 품고 등장했을 거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이미 너무 지쳐 있었다. 과거의 사람과 과거의 일에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다.이제 그녀가 바라는 건 단순했다.딸을 잘 키우고 천공의 연구를 무사히 해내고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가는 것.뒷좌석의 최율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수학 쪽지시험 1등 상장을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말은 하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조금 전 보았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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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6화

최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최율의 손을 잡고 동 출입구 안으로 들어갔다.두 사람의 뒷모습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육민성은 몸을 돌려 단지 입구에 있는 슈퍼마켓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는 알고 있었다.겉으로는 담담해 보이는 최수빈의 얼굴 아래에는 지워지지 않은 과거의 상처가 깊이 남아 있다는 것을.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그녀 곁을 지키는 것뿐이라는 것도....그 시각, 주민혁은 여전히 차 안에 앉아 있었다.최수빈 일행의 차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눈을 감았다.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을 어떻게든 가라앉혀 보려는 듯했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천천히 눈을 뜨고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차를 몰아 그들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나갔다....과학단지의 한 빌딩에는 새 회사가 입주해 있었다. ‘제노 테크’라는 간판이 최상층에서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유리 외벽에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비쳐 있는 것이 이 도시가 항공우주 분야의 새로운 세력에 거는 기대까지 함께 비추는 듯했다.이곳은 주민혁이 07 전투기 프로젝트를 다시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였다.준비 단계부터 자본과 기술 인재들의 시선이 집중된, 그야말로 업계의 중심이었다.천공연구원 회의실.최수빈과 육민성 앞에 놓인 협업 제안서는 바로 그 제노 테크에서 보낸 것이었다.“제노 테크에서 손을 내밀었는데, 받아들일까?”육민성은 제안서 위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신중한 어조로 물었다.최수빈은 앞에 놓인 커피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잔의 따뜻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졌다.그녀의 시선은 창밖,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제노 테크 빌딩으로 향해 있었다.“받죠.”잔을 내려놓으며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같은 은산시에 있고, 같은 항공우주 산업에 몸담고 있는데 피한다고 피해질 문제는 아니에요. 천공이 신흥 강자로 떠오르긴 했고 정부 협력 프로젝트도 안정적으로 진행 중이지만 연구개발 자금은 늘 빠듯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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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7화

양측은 팽팽히 맞선 채 물러서지 못했고 회의실 안의 공기는 점점 무겁게 가라앉았다.최수빈은 내내 말없이 양쪽의 공방을 듣고 있었다. 머릿속은 쉼 없이 돌아가며 돌파구를 찾는 중이었다.그런데 그때, 갑작스럽게 메스꺼움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다.반사적으로 입을 막은 최수빈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수빈아, 괜찮아?”가장 먼저 이상함을 알아차린 육민성이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하려 하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최수빈은 손을 저으며 책상 위의 물컵을 들어 한 번에 크게 들이켰다. 울렁거리는 속을 애써 달랜 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고개를 들어 주민혁을 바라봤다.“괜찮아요. 계속 이야기하죠. 지분 배분과 관련해서 새롭게 제안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주민혁의 시선은 줄곧 최수빈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미세한 반응 하나까지 모두 놓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이윽고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담담하게 말했다.“몸이 안 좋으면 다음에 다시 하시죠.”“괜찮습니다.”최수빈은 다시 한번 손을 내저었다.“오늘 논의해야 할 건 오늘 다 정리하는 게 좋죠.”주민혁은 그녀가 애써 버티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더 이상 말을 끊지는 않았다.대신 그녀의 제안을 차분히 들었고 중간중간 필요한 질문만 던졌다.결국, 그날 협상은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제노 테크 건물을 나서자마자 육민성은 곧바로 최수빈의 팔을 붙잡았다. 목소리에는 아까보다 훨씬 짙은 걱정이 묻어 있었다.“입덧이 점점 심해지는 거 아니야? 회의실에서도 쉬었어야 했는데... 안색이 너무 창백해.”최수빈은 고개를 저으며 차체에 잠시 기대 숨을 골랐다.그러자 잠시 후,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아왔다.“괜찮아요. 늘 있던 일이니까. 조금만 참으면 지나가요. 예전에 율이 임신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힘들었는데도 다 넘겼잖아요.”“그때랑 같아?”육민성의 말투에는 나무라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그때는 곁에 돌봐주는 사람이라도 있었지. 지금은 혼자 다 떠안으면서, 자기 몸은 전혀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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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8화

“제노 테크는 지금 업계에서 가장 탐나는 대상이에요. 한몫 끼려는 회사들만 해도 이 단지에서 시내 중심까지 줄을 설 정도죠.”최수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07 전투기 프로젝트는 너무 매력적이에요. 기술, 자원, 정부의 보증까지... 어느 하나 지금 천공에 필요 없는 게 없잖아요. 율이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제대로 서기 위해서라도... 숨이 한 가닥만 남아 있어도 끝까지 버텨야 해요.”육민성은 굳게 입술을 다문 그녀의 옆얼굴을 바라보다가, 마음이 아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최수빈의 성격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사람이었다.“내가 도와줄게.”결국 그는 물러섰다.“오늘 밤은 내 작업실로 가자. 장비도 다 갖춰져 있고 내가 옆에서 도와줄게. 혼자서 억지로 버티는 것보단 낫잖아.”최수빈은 그를 돌아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밤.육민성의 작업실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컴퓨터 화면의 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비추고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최수빈은 계약서의 핵심 조항을 정리했다.기술 연계 일정부터 부품 품질 기준까지, 한 줄 한 줄 허투루 넘기지 않았다.육민성은 옆에서 수치를 대조하며 천공의 과거 협업 사례와 이번 프로젝트의 리스크를 하나씩 맞춰 나갔다. 조금의 허점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다.작업 도중, 최수빈은 다시 두 차례나 메스꺼움을 느꼈다.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달려가 한참을 토하고 돌아왔을 때 얼굴은 종잇장처럼 창백해져 있었다.그러자 육민성은 미지근한 물 한 컵을 건네고 소다 크래커를 손에 쥐여 주었다.“좀 쉬어. 나머지는 내가 마무리할게.”“괜찮아요.”최수빈은 크래커를 한 입 베어 물며 울렁거리는 속을 달랜 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마지막 부분만 남았어요. 수익 배분에 대한 보완 조항인데, 이건 내가 직접 써야 해요. 그래야 우리 쪽 이익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어요.”육민성은 더 말리지 않았다.그저 옆에 조용히 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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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9화

휴대폰을 쥔 최수빈의 손에 힘이 확 들어갔다. 손톱이 손바닥을 깊게 파고들 정도였다.주민혁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제노 테크는 협력사를 고를 여유가 있지만 천공에는 이 기회가 절실했다.결국, 최수빈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서러움과 불편한 몸을 뒤로 한 채 다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알겠습니다. 30분 안에 보내드릴게요.”전화를 끊은 뒤, 그녀는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와 책상 앞으로 갔다.컴퓨터를 켜는 동안에도 울렁거림은 점점 더 심해졌다.데이터를 수정하는 내내 그녀는 몇 번이나 헛구역질을 하며 작업을 이어갔다.30분 뒤, 수정된 계약 세부안은 정확히 시간에 맞춰 주민혁의 메일함으로 전송됐다.최수빈은 컴퓨터를 끄자마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졌다. 그리고 의식이 흐릿해진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제노 테크 빌딩.주민혁은 아직 사무실에 남아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방금 도착한 최수빈의 계약 수정본이 떠 있었다.그는 한 조항씩 꼼꼼히 읽어 내려갔다.데이터가 정확하고 조항 구성도 명확한 것이 짧은 시간 안에 정성을 다해 손본 흔적이 분명했다.이내 그는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보내려 했다. 수정본에 문제가 없다는 말 한마디만 전하면 될 일이었다.하지만 화면 위에 멈춘 손가락은 좀처럼 내려오지 않았다.조금 전 통화에서 들렸던 그녀의 쉰 목소리, 지금은 몸이 좋지 않다던 그 한마디가 자꾸 떠올라서였다.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마음 한켠에서 번졌다.이윽고 주민혁은 려운에게 전화를 걸어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내일 아침에 천공에 다녀와. 계약 최종본 확인만 하면 돼. 그리고 수빈이한테 몸 상태 괜찮은지도 물어봐. 정말 힘들면 이틀 정도 쉬어도 된다 하고. 계약은 급하지 않으니까.”려운은 잠시 놀란 듯했지만 곧바로 대답했다.“알겠습니다, 대표님.”...다음 날 아침.최수빈은 침대에 누운 채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눈꺼풀은 납덩이처럼 무거웠고 온몸이 불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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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0화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말뜻이 또렷했고 흐름도 분명했다.논리도 치밀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이상을 느낄 수 없었다.제노 테크 회의실 상석에 앉은 주민혁은 모니터 화면 속 ‘최수빈’이라는 이름 옆에 떠 있는 회색 카메라 아이콘을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기술 연계 일정과 관련해서 천공 쪽에서는 추가 의견이 있습니까?”주민혁이 불쑥 입을 열었다.시선은 여전히 화면에 고정된 채였고 목소리에는 감정이 실리지 않았다.최수빈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생각을 정리해 답했다.“저희 쪽에서는 3단계 연구 기간을 일주일 정도 늘리는 게 좋다고 봅니다. 핵심 부품 생산에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이후 품질 문제를 사전에 막기 위한 조치입니다.”말을 잇는 사이,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고 목의 통증도 더 심해졌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말을 멈추고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적셨다.이에 주민혁의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 어젯밤 통화에서 들었던 그녀의 쉰 목소리가 떠올라서였다.‘정말로 아픈 건가...’회의는 계속 이어졌다.최수빈의 발언은 점점 줄어들었고 대부분은 필요한 순간에만 짧게 덧붙이는 정도였다.그녀는 침대 머리에 기대어 있었다.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으나 오로지 버티겠다는 의지 하나로 깨어 있는 상태였다.그게 아니었다면 이미 잠들었을지도 몰랐다.이윽고 회의는 막바지에 다다랐다. 진행자가 회의 내용을 정리한 뒤, 추가로 질문이 있는지 물었다.그런데 그때, 스피커 너머로 육민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걱정이 담긴 톤이었다.“최수빈, 회사 일 정리되는 대로 바로 갈 테니까 집에서 기다려. 먹을 것도 좀 사 갈게.”그의 말이 회의실 전체에 울려 퍼지는 순간, 만년필을 쥐고 있던 주민혁의 손이 잠시 멈칫했다.그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회색으로 표시된 최수빈의 카메라 아이콘을 바라봤다.“와, 육 대표님과 수빈 씨는 정말 사이가 좋으신가 봐요? 업무 회의 중인데도 애정 표현을 하시는 걸 보면...”회의실 한쪽에 앉아 있던 젊은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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