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apítulo 1831 - Capítulo 1840

1855 Capítulos

제1831화

“선배 미연이 남편이잖아요. 아무리 마음이 없다 해도 이 정도면 얼굴이라도 한번 비춰야 하는 거 아니에요?”휴대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돌아온 육민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무심하기 짝이 없었다.“자기 몸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한 건 본인 문제야. 나랑은 상관없어.”“선배!”최수빈은 분노로 인해 온몸이 떨렸다.“선배한테는 정말 마음이라는 게 있기는 해요? 미연이는 엄연히 선배와 결혼한 사이라고요. 미연이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것도 전부 선배 때문이고요! 당장 병원으로 와요. 안 오면 나 평생 선배 용서 안 해요. 천공연구원과 진행 중인 협력도 오늘부로 끝이에요!”최수빈은 육민성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육민성이 송미연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천공연구원과의 협력 사업까지 아무렇지 않게 포기할 리는 없었다. 최수빈이 기대를 걸 수 있는 건 이제 그 이해관계 하나뿐이었다.그리고 예상대로 이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며 육민성이 들어왔다.그는 여전히 서밋에서 입었던 검은 정장 차림이었다. 다만 넥타이와 셔츠 깃은 아까보다 흐트러져 있었고 몸에서는 아직 행사장의 향긋한 향이 희미하게 묻어났다.그러나 얼굴에서는 걱정도, 다급한 기색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병원에 온 것도 그저 귀찮은 의무 하나를 해치우러 온 듯 무심하고 냉랭했다.병실 문 앞에 선 육민성은 침대에 누운 송미연을 한번 흘끗 바라봤다.너무나 담담한 눈빛에는 안타까움도, 미안함도, 하다못해 사람이라면 보일 법한 최소한의 걱정조차 없었다. 그저 마치 모르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이러한 모습에 최수빈의 마음은 싸늘하게 식어갔다.“이제야 왔네요.”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갑게 그를 노려봤다.“미연이 이 꼴 된 걸 보니까 이제 속이 시원해요?”육민성은 최수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송미연의 창백한 얼굴에만 시선을 두었다.그러고는 잠시 후 잔인할 만큼 무덤덤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본인이 너무 약한 거지. 이 정도 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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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2화

사흘 내내 송미연은 별장에 틀어박혀 지냈다.그동안 송찬 그룹의 비서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업무 보고를 보내왔지만, 송미연은 몇 마디 지시만 간단히 남길 뿐 제대로 들여다볼 기력조차 없었다.휴대폰에는 최수빈이 보낸 걱정 어린 메시지가 여러 개 쌓여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난 괜찮아’라는 짧은 답을 보냈다.자신의 우울한 감정까지 친구에게 계속 떠넘기고 싶지는 않았다.그러나 밤이 깊고 주변이 조용해지면, 육민성과 관련된 기억들이 제멋대로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타국 임시 주둔지에서 육민성과 함께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끊임없이 떠올랐다.처음에는 최대한 깔끔하게 물러날 생각이었다.조용히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고 더는 육민성과 다투지도 얽히지도 않으려 했다.하지만 천공연구원에서 한차례 부딪힌 뒤, 육민성이 보여 준 냉정함과 노골적인 편애를 떠올릴수록 마음속 억울함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진심을 다했는데 돌아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라는 게 억울했다.자신이 쏟아부은 모든 마음과 노력을 그가 ‘이름뿐인 아내’라는 말 한마디로 아무렇지 않게 치부해 버린 것도 견딜 수 없었다.무엇보다 아직 법적으로 끝나지도 않은 결혼인데, 다른 여자에게 마치 자신이 승리자라도 된 양 몇 번이고 모욕당해야 했다는 사실이 참을 수 없이 분했다.이제 체면을 지키는 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계속 참고만 있다가는 상처를 삼키며 자신만 갉아먹을 뿐이었다.그렇게 결국 새벽녘, 송미연은 육민성을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했다.더는 감정을 억누르지도, 애써 예의를 지키며 거리를 두지도 않을 생각이었다.그동안 가슴속에 쌓아 둔 말을 전부 쏟아내고 그 자리에서 이혼까지 확실히 매듭지어 이 관계를 완전히 끝낼 생각이었다.아침 7시, 도시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도로에는 이른 출근길 차량만 드문드문 지나가고 있었다.준비를 마친 송미연은 어두운 계열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 섰다. 안에는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과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가가 고스란히 비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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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3화

“처음 계약 결혼을 시작했을 때, 오빠는 집안의 결혼 압박을 피하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위장일 뿐이라고 했죠. 난 그 말을 믿었어요. 해외에 나가서는 함께 포격을 견디고, 내부 배신자를 찾아다녔죠. 오빠가 다쳤을 때는 내가 밤낮으로 병상을 지켰고, 우리 집안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을 때 오빠가 먼저 나서서 이혼하지 않겠다고도 했고요. 그때 있었던 일들까지 전부 거짓은 아니었잖아요?”송미연의 말이 점점 빨라졌다. 눈가는 어느새 붉게 물들었고 목소리도 확연하게 떨렸다.“난 가짜 결혼도 언젠가는 진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서로 의지했던 마음만큼은 진심이라고 믿었고요. 그런데 결국 나 혼자 착각했던 거네요. 그렇죠?”육민성은 손끝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리며 한동안 말이 없다가, 몇 초가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임무 중 서로 도운 건 책임 때문이었어. 그건 부정한 적 없어. 하지만 임무가 끝났으면 우리 관계도 처음 약속했던 대로 돌아가는 게 맞아.”“책임?”허탈한 웃음을 흘리는 송미연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그럼 로라 씨랑 그 아이는 뭔데요?”“해외 레스토랑에서 갑자기 나타났을 때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딱 잡아떼더니, 돌아서서는 우리가 살던 신혼집에 그 여자를 들였잖아요. 나랑 이혼도 하기 전에 회사 사람들이 그 여자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게 내버려 뒀고요. 그것도 책임이라 할 수 있어요?”“로라와 아이는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야. 내가 출국하기 전부터 이어져 있던 관계고.”육민성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때 말하지 않은 건 괜히 임무에 차질을 빚고 팀 전체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야.”“그래서 나한테만 숨겼다는 거예요? 결국 나만 희생양이 됐고?”송미연의 가슴이 거칠게 들썩였다.“내 앞에서는 다정한 남편인 척해 놓고, 뒤에서는 이미 자기 가족이 따로 있었던 거잖아요. 그러다 임무가 끝나니까 기다렸다는 듯 날 밀어냈고, 로라 씨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도발하든 내버려 뒀죠. 심지어 천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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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4화

책상 위에 놓인 차가운 서류를 바라보자 송미연의 마음 한구석에 희미하게 남아 있던 마지막 기대는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이제야 똑똑히 알 것 같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을 잘못 본 건 자신이었다. 잠시 기댈 곳이 되어 준 사람을 평생 함께할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송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기사 부를 필요 없어요.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갈 거니까. 지금 출발하죠. 오늘 한 번에 다 끝내요.”이에 육민성은 바로 외투를 집어 들었다. 위로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그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같이 가면 되잖아. 굳이 따로 운전할 필요 없어. 그게 더 편해.”“...”절차를 정리한 두 사람은 앞뒤로 천공연구원 건물을 나섰다.육민성이 운전석에 앉았고, 송미연은 말없이 조수석 문을 열고 몸을 숙여 차에 올라탔다.차 안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송미연은 좌석에 등을 기댄 채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을 바라봤다.며칠째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한 데다 마음고생까지 심했고, 며칠 전에는 비를 맞고 찬바람까지 쐰 탓에 가벼운 감기 기운도 돌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이혼을 완전히 끝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쯤은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그러다 차 안이 조용해지자 참아 왔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머리는 무겁고 관자놀이는 지끈거렸으며 막힌 코 때문에 숨쉬기도 답답했고 목은 바짝 마른 채 따끔거렸다.점점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송미연은 아무리 육민성이 냉정해도 적어도 먼저 이혼 수속부터 마친 뒤, 다른 일을 보러 갈 거라고 생각했다. 오늘 이혼하기로 한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고 두 사람이 함께 내린 결정이었으니 말이다.육민성은 정면만 바라본 채 운전에 집중하고 있었다. 굳은 표정과 차가운 분위기 때문에 쉽게 말을 붙이기조차 어려워 보였다.그리고 송미연은 가끔 곁눈질로 그의 굳은 옆모습을 바라봤다. 마음속은 이미 아무것도 남지 않은 황무지처럼 메말라 있었다.숨 막히는 침묵이 십여 분쯤 이어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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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5화

육민성은 송미연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앞쪽 도로만 똑바로 바라봤다. 목소리에는 조금도 타협할 여지가 없었다.“애가 열이 나. 로라 혼자서는 감당이 안 돼.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해. 이혼은 나중에 해도 되지만, 아이 일은 미룰 수 없어.”너무도 가볍게 내뱉은 ‘나중에’라는 말에, 송미연이 간신히 붙들고 있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용기를 내 그를 찾아왔고, 이 관계를 끝내겠다고 마음먹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던가.그렇게 겨우 가정법원으로 향하게 됐는데, 육민성에게 이혼은 로라와 아이의 다급한 전화 한 통보다도 뒷순위였다.송미연의 몸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온몸이 쑤시고 힘이 풀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버거웠다.창백한 얼굴로 좌석에 기대 앉은 그녀는 가쁜 숨을 겨우 내쉬며 반쯤 정신이 흐려진 상태였다.그래도 적어도 수속만큼은 먼저 끝내자고 한마디 더 해 보려 했지만, 바짝 마른 목에서는 제대로 된 말조차 나오지 않았고 희미한 숨소리만 새어 나올 뿐이었다.육민성은 곁눈질로 그런 송미연의 모습을 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처럼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집에서 울고 있을 아이와 당황한 로라뿐이었다.송미연이 아픈 것도, 힘든 것도, 기다리고 있는 것도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차는 다음 교차로에서 방향을 틀어 가정법원과 정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갔다.송미연은 차창에 머리를 기댔다. 틈새로 스며든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머리가 더 무겁게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몸을 작게 웅크린 채 차갑게 식은 팔을 감싸 안았다. 하지만 몸이 아픈 것보다 가슴속에서 번지는 서늘함이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한때는 사랑이 식더라도,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정 정도는 남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함께 수많은 일을 겪어 온 만큼 마지막까지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킬 줄 알았었다.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마음이 떠나고 나면 쌓아 온 정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고, 마지막 예의조차 너무도 쉽게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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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6화

그날 도로변에 홀로 버려진 순간, 송미연의 마음속에 실낱같이 남아 있던 미련은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육민성의 저울 위에서 로라와 그 아이는 언제나 절대적인 우선순위였다.자신이 아프든, 이혼 서류를 안고 기다리든, 그에게는 그저 언제든 미룰 수 있는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그러나 서류가 묶인 채 이혼 숙려기간은 무심하게 흘러갔다. 이 지지부진한 관계를 더는 끌고 싶지 않아, 송미연은 요 며칠 그녀는 육민성에게 문자도 보내고 전화도 걸며 함께 법원에 갈 날짜를 맞추려 애썼다. 하지만 보낸 메시지는 대부분 묵묵부답이었고 어쩌다 오는 답장도 요즘 바쁘니 좀 더 기다리라는 식의 지극히 성의 없는 말뿐이었다.전화 역시 몇 번 신호음이 울리다 끊기기 일쑤였고 나중엔 아예 수신이 거부되었다.송미연도 구차하게 매달려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이 일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마음이 한시도 편치 않았다.이혼 숙려기간에는 명확한 기한이 있었기에,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 처음부터 절차를 밟아야 했고 그렇게 시간만 끌다가는 자신이 더 불리해질 게 뻔했다.그때 마침 업계의 대규모 리셉션 소식이 들려왔다.업계에서 쟁쟁한 기업인들이 대거 참석하는 자리였기에 천공연구원과 송찬 그룹 역시 나란히 초청장을 받았다.송미연은 원래 이런 사교 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다. 온통 남의 사생활을 캐묻기 좋아하는 사람들 틈에서 육민성과의 관계를 추궁당하는 게 껄끄러웠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시 생각하니 이번이야말로 육민성을 대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 계속 연락하며 거절당하느니 차라리 직접 마주하고 날짜를 확정 짓는 편이 나았다.그녀는 가볍게 채비를 마치고 몸에 잘 맞는 검은색 롱 드레스를 입은 뒤, 한 듯 안 한 듯 옅게 화장했다.며칠 전 걸린 감기가 아직 다 낫지 않아 이따금 어지럽고 코가 막혀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지만, 적어도 남들 앞에서는 마땅히 갖춰야 할 품위는 유지한 것이다.리셉션은 도심의 한 고급 호텔 연회장에서 열렸다.송미연은 홀로 생수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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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7화

송미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거리를 두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낮게 경고했다.“자중하시죠.”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실랑이가 그리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주변 사람 몇몇은 이미 낌새를 채고 흥미롭다는 듯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송미연은 무의식중에 인파 한가운데를 힐끗 살폈다. 육민성은 시야가 닿는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이곳의 소란을 모를 리 없었다.그러나 그는 주변 임원들과 시종일관 담소를 나누며 미소 지을 뿐, 단 한순간도 그녀 쪽으로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못 본 게 아니라, 애초에 관심이 없는 것이었다.그 순간 송미연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아직 정식으로 이혼한 것도 아니니, 남들 눈에 그녀는 엄연히 육민성의 아내였다.하지만 그녀가 이런 불쾌한 희롱을 당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는 철저히 수수방관했다.그녀가 곤경에 처하든 말든 애초에 그에겐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송미연은 더 이상 누군가 나서서 상황을 수습해 주길 기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싸늘하게 굳은 얼굴로 그 능글맞은 남자를 뒤로한 채 연회장 안쪽 화장실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이 숨 막히는 공간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았다. 이따 육민성을 만나면 용건만 전하고 곧장 자리를 뜰 생각뿐이었다.시끌벅적한 복도를 지나 화장실로 들어간 송미연은 찬물로 얼굴을 씻어 내렸다.그러고 나서 세면대에 기댄 채 한참 숨을 고르고 나서야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밖으로 나오던 찰나, 복도에 선 육민성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그는 벽에 기대어 화장실 출구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누군가를 기다리는 기색이 역력했다.굳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가 기다리는 사람은 로라일 게 뻔했다.좁고 고요한 복도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송미연은 속에서 치미는 억울함과 불만을 꾹 억누른 채 곧장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단도직입적이고 단호한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날짜 잡아서 이혼 수속 밟아요.”육민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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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8화

송미연은 더 이상 따져 묻지도, 캐묻지도 않은 채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그 모습에 로라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고, 더는 아무 말 없이 육민성의 팔짱을 낀 채 연회장 쪽으로 몸을 돌렸다.두 사람은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나란히 멀어지며 단 한 번도 송미연을 뒤돌아보지 않았고 길고 좁은 복도에는 오직 송미연 혼자만이 덩그러니 남겨졌다.등 뒤 화장실에서 새어 나오는 서늘한 불빛에 그녀의 그림자는 유난히 초라하고 외로워 보였다.송미연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콧속의 답답함은 점점 더 심해졌고 온몸은 여전히 쑤시고 피로했다.이번 리셉션에서 어떻게든 이혼을 매듭지으려 했던 그녀에게 돌아온 건 지독한 무시와 성의 없는 대답뿐이었다.송미연은 휴대폰을 꺼내 육민성 비서의 연락처를 찾았지만, 통화 버튼 위에서 맴돌던 손끝은 끝내 허공에서 거두어졌다.문득 더 이상 이렇게 먼저 매달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할 만큼 노력했고, 할 말도 다 했다. 남은 절차는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면 그만이었다.설령 이혼 숙려기간이 지나 다시 처음부터 신청해야 한다 해도, 그의 앞에서 매번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았다.송미연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허리를 꼿꼿이 편 채 호텔 출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연회장은 여전히 환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더는 그녀가 그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는 단 하나도 없었다....리셉션 날 그렇게 냉대를 받은 이후로 송미연의 마음속에는 줄곧 커다란 돌덩이가 얹혀 있는 것만 같았다.육민성의 회피, 비서를 찾으라던 로라의 가벼운 한마디, 그리고 수없이 애썼음에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혼 절차까지.그 모든 상황은 상대방의 자발적인 협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허황된 일이라는 현실을 그녀에게 뼈저리게 일깨워주었다.이대로 시간만 흘려보내다가는 끝없이 지체될 뿐이고, 결국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밟으며 이 애매모호한 관계에 계속 발목이 잡힐 게 뻔했다.답답함에 더는 버티지 못한 송미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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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9화

우편물이 도착한 날 오후, 육민성은 해외 프로젝트 마감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안내 데스크에서 우편물을 가져다주었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평범한 업무용 자료라 생각하며 무심코 뜯었지만, 그 안에 든 이혼 소장을 확인한 순간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종이에 적힌 청구 취지는 재산 분할, 혼인 관계 해소, 향후 상호 간섭 금지까지 한 치의 모호함도 없이 명확하고 논리정연했다.서류를 쥔 손끝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며 그의 안색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마침 그때, 프로젝트 핵심 서류 건으로 최수빈이 대표실을 찾았다.문을 열고 들어선 그녀의 눈에 팽팽하게 굳은 육민성의 옆모습과 책상 위에 펼쳐진 소장이 단번에 들어왔다.최수빈은 멈칫하며 상황을 대략 눈치챘고 사무실 안의 공기는 순식간에 숨 막힐 듯 무거워졌다.고개를 들어 그녀를 발견한 육민성은 끓어오르는 짜증을 억지로 짓누르며 서류를 한쪽으로 밀어내고는 짧게 내뱉었다.“용건만 말해.”최수빈은 곧바로 업무 이야기를 꺼내는 대신 책상 위의 이혼 소장에 시선을 둔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미연이는 이미 법적 절차에 들어갔는데, 이 일을 언제까지 끌 생각이세요?”육민성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미간을 찌푸린 채 귀찮다는 듯 대답했다.“내가 알아서 해.”“알아서 한다는 게 계속 피하면서 미연이만 무작정 기다리게 만드는 건가요?”최수빈이 앞으로 두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예전의 선배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잖아요. 우리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리스크를 감당할 때만 해도 선배는 일 처리가 늘 깔끔했고 공과 사 구분이 확실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고작 사적인 문제 하나 매듭짓지 못하고 질질 끌어서 상황을 최악으로 치닫게 만들었잖아요. 결국 미연이가 이혼 소송까지 걸게 했고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한층 무거워진 어조로 덧붙였다.“선배가 계속 이런 태도로 일관하면서 협조도 안 하고 사적인 감정을 공적인 자리까지 끌고 온다면, 나도 천공연구원의 지분과 업무 분할을 진지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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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0화

송미연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 없을지 몰라도, 회사의 미래만큼은 절대 외면할 수 없었다.십여 분간 이어진 대치 끝에 육민성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어깨를 천천히 늘어뜨렸다.“협조할게. 법원에 가서 합의이혼 절차 밟겠다고.”그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 그리고 넌 계속 천공연구원에 남아서 핵심 사업을 맡아.”그의 머릿속 계산에서 회사의 이익은 언제나 사사로운 감정보다 우선이었다.최수빈은 천공연구원에 대체 불가능한 인재였고, 개인적인 문제로 이토록 중요한 비즈니스 파트너를 잃는 것은 어떻게 따져봐도 밑지는 장사였다.육민성의 말을 들은 최수빈은 더는 그를 탓하지 않았다.지금으로서는 이게 얻어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타협안임을 알았기 때문이다.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들고 몸을 돌려 사무실을 나선 뒤, 지체 없이 송미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최수빈의 목소리는 방금 전보다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선배가 결국 한발 물러섰어. 너랑 같이 가서 이혼 절차 밟겠대.”최수빈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솔직하게 덧붙였다.“대신 나도 같이 갈 생각이야. 셋이 함께 만나서 한 번에 확실하게 매듭을 지어야 나중에 뒤탈이 안 나니까.”송찬 그룹 사무실에서 결산 서류를 검토하던 중 전화를 받은 송미연은 예상과 달리 벅차오르는 해방감 따위는 느끼지 못했다. 그저 마음 한구석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가 마침내 쿵 내려앉는 기분이었다.“알았어. 시간과 장소 정해지면 알려줘.”약속한 날은 금세 다가왔다.법원 입구는 담담한 낯빛으로 이혼 수속을 밟는 부부들로 붐볐다.송미연은 약속 시간보다 십 분 먼저 도착해 심플하고 단정한 옷차림으로 계단 한편에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최수빈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는 송미연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고 구태여 위로의 말을 얹지 않은 채 묵묵히 곁을 지켰다.몇 분 후 육민성의 차가 도로변에 멈춰 섰다. 그는 로라 없이 홀로 내렸고 짙은 색 캐주얼 슈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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