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apítulo 1811 - Capítulo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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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1화

이곳에는 육민성의 흔적도, 그 금발 여자의 그림자도, 아이의 웃음소리도 없었으며, 그녀가 얼마나 비참하게 실패했는지를 끈질기게 일깨우는 숨 막히는 공기조차 존재하지 않았다.이곳은 오롯이 그녀만을 위한, 그녀 혼자만의 공간이었다.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사 도우미가 주기적으로 관리를 해둔 덕분인지 집 안은 무척이나 정갈하고 깔끔했다.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담한 정원에서는 풀과 나무들이 고요히 숨 쉬고 있었고 모든 것이 완벽할 만큼 평온했다.침실로 캐리어를 밀고 들어간 송미연은 침대 위에 무너지듯 걸터앉으며 그제야 참아왔던 긴 숨을 토해냈다.비로소 가슴을 짓누르던, 질식할 것만 같았던 울타리에서 온전히 벗어난 순간이었다.끔찍했던 시각적 충격과 마음을 갉아먹던 독설들을 더는 방어할 필요가 없었다. 억지로 태연한 척하거나 초라한 상처를 숨기려 애쓸 필요 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밀실에서 안온함을 누릴 수 있었다.대강 씻고 침대에 누웠지만 잠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머릿속에서는 최근 며칠 동안의 일들이 끊임없이 재생되었고 어지러운 기억 조각들은 날 선 무딘 칼날이 되어 마음을 사정없이 할퀴어 댔다.스스로 무뎌졌다고 생각했지만 눈을 감으면 육민성의 냉정한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얼마나 뒤척였을까,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송미연은 겨우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이튿날 잠에서 깨어 편한 옷을 찾으려 드레스룸으로 향하던 그녀의 걸음이 멈칫했다.늘 덮던 캐시미어 담요와 즐겨 읽던 책 몇 권, 그리고 소중한 의미가 담긴 만년필을 비롯한 소소한 소지품들을 어제 경황이 없어 신혼집에 그대로 두고 온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 탓이었다.대단히 값나가는 물건들은 아니었지만 하나같이 손때가 묻고 애착이 깊은 것들이었기에 그곳에 그대로 버려두어 낯선 이의 손길이 닿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한참을 갈등하던 송미연은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돌리기로 마음먹었다.육민성이나 그 여자와 마주칠 일 없이, 내 물건만 재빨리 챙겨 미련 없이 빠져나오면 그만이었다.대충 외출 준비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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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2화

송미연은 여자를 철저히 무시한 채 곧장 침실로 걸어갔다.그녀의 물건들은 창가 한구석에 볼품없이 쌓여 있었다. 마치 당장 갖다 버리라는 듯 처량하게 방치된 그 작은 무더기는, 주인의 손길만을 애처롭게 기다리는 구박덩이 같았다.송미연은 무릎을 굽혀 묵묵히 소지품을 가방 안으로 쓸어 담았다. 한시라도 빨리 이 숨 막히는 아파트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손놀림은 자꾸만 다급해졌다.마지막 물건까지 가방에 챙겨 넣고 일어서려던 찰나, 등 뒤로 서늘한 발소리가 들려왔다.육민성이었다. 그의 손에는 서류 몇 장이 들려 있었다.그는 송미연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침대 옆 협탁에 서류를 무심히 내려놓으며 얼음장같이 건조한 목소리로 덤덤하게 말했다.“이혼 서류야. 난 이미 서명했어.”송미연은 온몸이 얼어붙은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창문으로 비쳐든 햇살 아래 ‘이혼 합의서'라는 다섯 글자가 눈이 시리도록 아프게 내리꽂혔다.서류 맨 밑에 적힌 육민성의 서명은 거침없고 단호하여 일말의 주저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가 벌써 서명까지 마쳤다니.구태여 대화를 나눌 시간도, 상의할 여유도,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며 이별을 받아들일 틈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모진 무정함이었다.송미연은 손끝이 바르르 떨렸고 가슴을 무수히 찌르는 통증에 숨이 턱 막혀왔다.그때 육민성은 기어이 쐐기를 박으려는 듯 목소리를 조금 높였다. 거실에 앉아 있는 그 여자에게 들려주려는 듯 또렷하고 선명한 어조였다.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송미연을 똑바로 응시하며, 재촉하듯 단호하게 내뱉었다.“확인해 보고 별다른 문제 없으면 사인해.”낮게 깔리는 한 음 한 음이 지독하리만치 차분하고 단호했다.전부 의도된 행동이었다.굳이 그 여자가 있는 집 안에서 이미 서명을 마친 이혼 서류를 내민 것 말이다. 이는 송미연에게 관계의 종말을 기어이 각인시키려는 의도였으며 자신과의 모든 선을 철저히 그음으로써 거실에 있는 그 여자에게 완벽한 확신과 안도감을 주려는 잔인한 배려였다.송미연은 눈앞에 놓인 싸늘하게 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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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3화

획 하나하나가 매끄럽고 깔끔했다.이로써 육민성과의 과거도, 더는 없을 미래도 완전히 잘려나갔다.송미연은 잉크가 마르는 것을 지켜본 뒤, 서명이 끝난 이혼 합의서를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얇은 종이 몇 장이 그어버린 이 명확한 경계선은, 껍데기만 남은 지옥 같은 결혼 생활로부터 비로소 그녀를 해방해 주었다.육민성은 그 종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에는 여전히 냉랭함이 가득했다.방 안에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지던 그때, 거실에 있던 금발의 여자가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들어섰다. 입가에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미소를 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이 공간의 진짜 안주인이 누구인지 증명하는 듯했다.“간식을 좀 만들었는데 따뜻해요. 조금이라도 들고 가세요.”여자는 몸을 살짝 돌려 뒤편 식탁 위에 차려진 죽과 아기자기한 간식들을 보여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가증스러운 너스레를 늘어놓았다.“서로 원수진 것도 아닌데 이렇게 서먹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요.”품에 안긴 아이는 송미연을 멍하니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무어라 웅얼거렸다.송미연은 시선을 돌려 여자를 덤덤히 응시했다. 마음속에는 묵직한 정적만이 흐를 뿐, 더는 그 어떤 동요도 일지 않았다.그녀는 차분히 펜 뚜껑을 닫고 제 가방을 챙겨 들며 예의 바르지만 싸늘하게 대꾸했다.“됐어요. 단란한 시간에 방해꾼이 되고 싶진 않네요.”그녀의 시선은 육민성을 차갑게 비껴지나 다시 여자에게로 향했고 나지막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한 글자씩 얹었다.“행복하세요.”단 다섯 글자의 인사말에는 원망도, 억울함도, 일말의 미련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마치 길에서 마주친 타인에게 건네는 일상적인 안부처럼, 지극히 무미건조하고 덤덤한 작별이었다.인사를 마친 송미연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지체 없이 걸음을 옮겨 문밖을 나섰다.그녀가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랐을 때, 등 뒤에서 현관문이 덜컥하며 다시 열렸다.그 소리에 송미연은 멈칫하며 발걸음을 세웠고 순간 가슴이 바짝 조여들었다.방금 서류를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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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4화

이혼 합의서에 서명한 이후 며칠 동안, 송미연은 별장에 스스로를 가둔 채 지냈다. 밖으로 나가지도, 누구를 만나지도 않았으며, 육민성에 관한 소식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서명까지 마쳤으니 이제 정말 끝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비록 법원의 정식 이혼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그의 아내로 등록되어 있었지만, 현실의 삶에서 그녀는 이미 육민성의 인생 밖으로 완벽하게 밀려난 상태였다.다행히 무너지기 직전이던 가업은 주민혁의 든든한 자금 지원과 그녀가 직접 발 벗고 나선 경영 쇄신 덕분에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한동안 엉망이었던 재무 구조와 거래처 갈등, 산적해 있던 부채 문제 등이 그녀의 세심한 조율을 거치며 하나씩 해결되어 갔다.그녀는 모든 에너지를 일에만 쏟아부었다.낮에는 회사에 파묻혀 지내고 밤에는 서류를 검토하며 지새우는 등, 극한의 바쁨으로 마음이 헛헛해질 작은 감정의 틈새마저 철저히 메워나갔다.사랑은 없어도 내 일과 인생은 굳건히 남아 있으니, 그가 없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천공연구원 쪽은 이전의 해외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난 데다, 송씨 가문과 천공 간에 얽힌 사업적 교류도 상당했던 덕분에 송미연은 송찬 그룹의 책임자라는 신분과 육민성의 아내라는 명분을 동시에 내세워, 아주 자연스럽게 천공연구원의 일부 프로젝트에서 법무 대리인직을 수행하고 있었다.이는 지난 프로젝트 당시 체결한 공식 협약에 따른 것으로 권한과 책임이 명확하고 절차가 엄격하여, 그녀가 맡은 업무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비중을 차지했다.이날 송미연은 예정된 일정에 맞춰 해외 협력 관련 법무 서류를 처리하기 위해 천공연구원 본부로 향했다.몸에 잘 맞는 깔끔한 블랙 슈트 차림에 차분한 화장, 그리고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로비에 들어서는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등을 곧게 펴고 당당히 걷는 모습은, 과거 육민성의 그늘에 기댄 채 의지하려만 들던 가녀린 여인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린 듯했다.다만 육민성의 자취가 도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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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5화

그 단어들은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송미연의 고막을 찔러댔고 심장을 사정없이 옥죄며 숨통을 막아왔다.로라.아이를 데리고 자신의 신혼집 안방을 차지한 채, 눈치 한번 보지 않고 안주인 행세를 하던 바로 그 금발의 여자였다.그런데 그 여자가 이곳 천공연구원에까지 나타나다니. 그것도 모자라 회사 사람들마저 이미 그 여자를 육민성의 진짜 부인인 양 대접하고 있었다.송미연은 제자리에 선 채 손끝을 굳게 쥐어짜며 손바닥에 깊은 손톱자국을 남겼다.육민성과는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을지언정 법원의 정식 절차는 아직 밟지 않은 상태였으니 법률적 의미에서 그녀는 여전히 육민성의 합법적인 아내였다.부부라는 명분도, 혼인 관계도 여전히 유효했기에 그녀는 남들의 눈에도 여전히 당당한 육씨 가문의 안주인이었다.하지만 지금, 다른 여자가 그 호칭을 가로챈 채 그의 회사에 버젓이 나타나, 자신과 육민성이 공고히 다져온 활동 반경 속에서 사람들의 환대와 동조를 누리고 있었다.송미연은 말할 수 없는 허탈함과 함께, 뼈를 깎는 듯한 시린 오한이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단숨에 엄습해 오는 것을 느꼈다.‘대체 무엇이 그렇게 급했던 걸까. 서둘러 그 여자에게 네 성을 붙여주고, 서둘러 모든 사람에게 그 여자의 신분을 공표하며 나라는 사람을 네 세상과 삶, 그리고 일터에서 한순간에 지워버리려고 이토록 조급하게 굴었단 말인가.’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며 가슴속을 휘젓는 쓰라림과 수치심을 억눌렀다. 그리고 허리를 곧게 세운 채 당당한 걸음으로 사무실 안을 향해 들어섰다.시끌벅적하던 말소리들이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민망함과 동정, 그리고 은밀한 조소가 뒤섞인 수많은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꽂혔지만, 감히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송미연은 그 어수선한 시선들을 완전히 배제한 채 차분히 주변을 둘러보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내뿜는 실루엣에 시선을 멈추었다.로라였다. 탕비실 문가에 서서 고급스러운 원피스를 차려입고 커피잔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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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6화

로라는 초기 단계의 협의에조차 참여해 본 적이 없어 업무 프로세스와 계약 조항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사업 정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 입을 열자마자 송미연의 자리를 꿰차겠다고 덤비는 것일까.그녀가 믿는 구석이라고는 오직 육민성의 맹목적인 편애뿐이었다.“이 자리는 그쪽이 탐낸다고 해서 쉽사리 앉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송미연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전체적인 업무 흐름과 공동 협약, 권한과 책임의 분배까지 전부 내가 기초 단계부터 밟아가며 공들여 조율해 온 업무예요. 실무 경험도 없고 프로젝트의 히스토리조차 모르는 그쪽이 섣불리 넘겨받았다간, 감당할 수 없는 문제만 터질 뿐이라고요.”“경험이 있고 없고는 민성 씨가 결정하면 그만이죠.”로라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 기가 막힐 만큼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미 민성 씨한테 말했고 그 사람도 허락한 일이에요.”송미연은 머리를 강하게 얻어맞은 듯 안색이 순식간에 창백하게 질려버렸다.‘그가 허락했다니? 이렇게나 쉽게?’당사자인 자신에게 의향을 묻는 최소한의 상의도 없었고, 이 기가 막힌 인수인계가 업무적으로 타당한지에 대한 아주 기초적인 검토조차 없었다.그는 송미연에게 지난날의 정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공정함이나 비즈니스적인 예의조차 베풀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로라라는 여자를 위해서라면 이미 확정된 공식 업무 조정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할 수 있었고, 모든 규정과 절차를 묵살할 수 있었으며, 미연이 오랜 시간 뼈를 깎아가며 책임져 온 프로젝트마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빼앗아 갈 수 있었다.그의 마음속에서 송미연이 그간 쏟아부은 땀방울과 전문성, 그리고 헌신적인 노력이 로라의 콧소리 섞인 칭얼거림 한마디보다 가벼웠다는 뜻이었다.송미연은 마치 거대한 손아귀가 심장을 사정없이 움켜쥔 듯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을 느꼈다.승리감에 젖어 웃고 있는 로라를 뒤로한 채, 그녀는 대표실을 향해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육민성에게 직접 물어야 했다.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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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7화

“업무 배치는 내가 내리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니, 네가 참견할 이유가 없어.”“이혼 합의서요?”송미연은 심장이 예리한 칼끝에 찔린 듯한 통증을 느꼈다.“우린 아직 법적으로 갈라서지 않았어요! 법적으로 난 여전히 오빠 아내라고요! 그런데 오빠는 지금 뻔뻔하게 다른 여자를 회사에 데려와서, 직원들 입에서 그 여자를 ‘사모님’이라 부르게 만들고, 내 일까지 빼앗아 그 여자한테 주려는 거잖아요! 도대체 내 기분이 어떨지, 단 한 번이라도 헤아려본 적은 있느냔 말이에요!”“내가 왜 네 기분까지 배려해야 하지?”육민성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다시 한번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어차피 헤어지기로 한 마당에 이런 사소한 일로 기 싸움 할 필요 없어. 로라는 지금 내가 지켜야 할 사람이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난 뭐든 다 들어줄 생각이니까.”그는 오직 로라를 지키기 위해,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내어주겠노라 선언했다.비록 그 대가가 송미연의 존엄성을 처참히 짓밟고 그녀가 온 힘을 다해 쌓아 올린 오랜 커리어를 빼앗으며 홀로 감내해야 할 억울함을 철저히 외면하는 일일지라도 말이다.육민성의 가슴팍에 기댄 로라가 비열한 실소를 숨긴 채, 순진무구한 표정을 가장하며 가증스럽게 속삭였다.“송미연 씨, 그냥 양보해 줘요. 앞으로 민성 씨랑 얽힐 일도 없을 텐데, 직함 하나 가지고 왜 이렇게 유난을 떨어요? 굳이 양쪽 다 피곤하게 굴 필요 없잖아요.”“피곤하게 군다고요?”송미연은 눈앞의 파렴치한 두 사람을 보며 실소를 터뜨렸다.“이건 내 일이에요. 온전히 내 노력으로 일구어낸 내 영역이고, 내 자리라고요! 당신들이 적선하듯 던져준 것도 아니고, 기분에 따라 멋대로 가로챌 수 있는 가벼운 물건은 더더욱 아니죠. 그러니 난 이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송미연은 흐트러짐 없는 기세로 육민성을 똑바로 쏘아보았다.“공적으로 합당한 사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전 절대로 인수인계를 진행하지 않을 거예요.”그 말에 육민성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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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8화

그리고 그 따뜻한 친절을 오직 로라에게만 쏟아부으면서, 자신에게는 차가운 냉대와 상처만을 남겨둔 남자의 지독한 무정함 때문이었다.송미연은 넋이 나간 상태로 천공연구원을 벗어났지만, 집으로도, 제 본래 일터인 송찬 그룹 본사로도 향하지 못한 채 차 안에서 홀로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창밖으로는 수많은 사람이 바쁘게 지나가고 도시는 소란스러웠으나, 그녀에게는 온 세상이 정지해 버린 채 오직 아릿하게 고동치는 제 심장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로라의 득의양양한 미소, 동료들의 수군거리는 시선, 육민성의 서늘하고 단호한 표정, 그리고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줄 생각이다’라던 잔인한 약속이 머릿속을 맴돌며 매 순간 심장에 깊은 생채기를 내고 있었다.이혼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제 삶의 가장 비참한 바닥일 거라 믿었건만, 육민성이 보여준 무정함의 끝은 고작 서명 한 장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깊고 잔혹했다.그는 그녀의 마지막 남은 자부심과 일터를 빼앗았고 최소한의 체면마저 처참히 짓밟았다. 온 회사 사람들 앞에서 로라가 안주인 행세를 하도록 방치한 것은 노골적인 차별과 멸시로 그녀의 존엄성을 완전히 짓밟아 뭉개버린 것과 다름없었다.끝내 북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송미연은 최수빈에게 전화를 걸었다.신호음이 끊기고 연결되었다.“수빈아... 나 너무 아파.”겨우 그 한마디만을 간신히 토해낸 그녀는,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서럽게 흐느끼기 시작했다.집에서 율이와 놀아 주던 최수빈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송미연의 물에 젖은 듯 허물어지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곧바로 손에 쥐고 있던 장난감을 내려놓고 서둘러 딸아이를 달래어 방으로 들여보낸 뒤, 주민혁에게 상황을 알리는 메시지를 남기고 송미연이 있는 곳을 향해 미친 듯이 차를 몰았다.현장에 도착해 마주한 송미연의 모습은 처참했다. 운전대에 고개를 파묻은 채 붉어진 눈으로 하염없이 흐느끼고 있는 그녀는 안색이 하얗게 질려 손쓸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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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9화

최수빈은 로라에겐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육민성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미연이가 맡고 있던 천공연구원의 법무 대리인 자리를 빼앗아, 저 로라 씨한테 주기로 했다는 게 사실인가요?”육민성은 지극히 사소한 일이라도 대하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꾸했다.“그래.”“선배 지금 제정신이에요?”최수빈은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가며 서늘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천공은 선배 개인 사유물이 아니에요. 주요 보직을 바꾸고 비즈니스 담당자를 교체하는 건 선배가 사적으로 내뱉은 말 한마디로 결정할 수 있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고요. 미연이는 이 사업의 초기 기획 단계부터 관여해 계약 조건과 리스크 요인, 다국적 조항까지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유일한 적임자예요. 그런데 국내 법체계조차 모르는 데다 실무 지식이 전무한 로라 씨한테 이 중책을 넘기겠다는 건, 지금 진행 중인 비즈니스를 장난감 취급하는 것과 다름없어요.”이 항변은 단순히 친구인 송미연을 비호하기 위한 감정싸움이 아니었다. 철저히 기업 공동 창립자이자 동업자의 시각에서 던지는 매서운 경고였다.공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기업의 시스템을 흔들어놓은 육민성의 이번 조치는, 명백한 월권이자 주주들을 기만하는 독단이었다.육민성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기대며, 여전히 서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실무는 전문 인력들이 뒤에서 보좌할 테니, 네 우려처럼 문제 생길 일은 없어.”“문제가 없다고요?”최수빈은 기가 막힌 듯 실소를 터뜨렸다.“법무 대리인이라는 자리는 기업 간 협력을 가능케 하는 전제 조건이자, 리스크를 제어하는 마지막 방어선이에요. 여기서 계약상 구멍 하나만 터져도 타격을 입는 건 선배 개인의 체면뿐만이 아니에요. 천공연구원 전체의 신뢰는 물론, 송찬 그룹과의 비즈니스 동맹까지 단숨에 무너진다고요. 단지 로라 씨가 탐을 낸다는 유치한 이유로, 오랫동안 이 사업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은 책임자를 이렇게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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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0화

예전의 육민성은 차분하고 이성적이며 늘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송미연과는 비록 계약 결혼으로 얽힌 관계였을지언정 늘 최소한의 인간적인 도리를 다했고, 위기의 순간에는 솔선수범하여 곁의 사람들을 지켜내곤 했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눈먼 애정에 사로잡혀 차갑고 편협해졌으며 공과 사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있었다. 곁에 둔 새로운 연인을 위해 오랜 세월 비바람을 함께 견뎌온 동반자의 품위를 무참히 짓밟고 희생양으로 삼는 모습은, 최수빈이 아는 이라 생각하기 힘들 만큼 지독하게 낯설고 이질적이었다.육민성은 최수빈의 모진 다그침에 자극받아 주먹을 꽉 쥐었으나 이내 무거운 침묵을 깨고 돌아온 목소리는 여전히 고집스럽고 딱딱했다.“사람은 누구나 변해. 내가 내린 결정이니, 그 책임 역시 내가 지면 그만이야.”“선배는 이 일에 결코 책임지지 못해요.”최수빈의 눈빛이 서늘하게 불타올랐다.“로라 씨에 대한 인사 명령을 즉각 철회하고 송미연을 제자리로 복귀시키든가, 아니면 주민혁이 돌아오는 대로 주주총회를 소집해 경영권 박탈을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든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하세요.”동업자로서 건넬 수 있는 최후의 통첩이었다.육민성이 여기서 폭주를 멈추기만 한다면, 최수빈 역시 파국으로 치달을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육민성은 무미건조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아.”최수빈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처참한 환멸에 휩싸였다. 눈앞의 남자는 이미 그녀가 알던 육민성이 아니었다.사랑에 눈이 멀어 사리 분별을 못 하니, 아무리 옳은 말을 들려주어도 그저 쇠귀에 경 읽기였다.그녀는 들끓는 분노를 꾹 누르며 길게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그를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에는 한때 나눴던 동지애 대신, 오직 싸늘하게 식어버린 비즈니스 파트너로서의 엄격한 선만 존재할 뿐이었다.“좋아요. 끝까지 독단을 부리겠다면 그 결과 또한 선배가 온전히 책임져야 할 겁니다. 오늘부로 나 역시 천공의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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