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의 모든 챕터: 챕터 551 - 챕터 560

604 챕터

제551화

‘혹시...’최수빈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주민혁이 이유 없이 자신을 찾을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애써 어젯밤의 상황을 떠올려 보려 했다.희미하지만 몇몇 장면들이 머릿속에 어른거렸다.그들은 눈매조차 너무 닮아 있었고 심지어 몸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까지도 놀라울 만큼 흡사했다.최수빈의 정신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는 정확한 구분이 어려웠다.하여 그녀는 주민혁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오랫동안 침묵했다.그리고 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주민혁이 먼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전에 말했었지. 주변 자원은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플라잉 테크가 돌아선 마당에 네가 남이준과 손을 잡는 게 최선의 선택이야. 그 사람은 배신하지 않을 거니까.”“남이준... 민혁 씨가 부른 거예요?”최수빈은 거의 반사적으로 그 말 속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했다.남이준과 주민혁은 분명 같은 사회적 범주에 속해 있었고 두 사람은 절친한 사이이기도 했다.진승우나 박하린이 그녀와 주민혁 사이의 일들을 조롱했던 것과 달리 남이준만은 단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이전 성안 건에 대한 거절도 사실은 진승우가 남이준에게 혼란을 주어 낸 루머 때문이었고 그 후로 남이준은 먼저 손을 내밀어 왔다.주민혁은 아무런 설명 없이 그녀를 바라봤고 침묵하는 것은 곧 동의였다.오랜 침묵 끝에 그는 다시금 말을 꺼냈다.“신세계 그룹의 지분 구조, 제대로 살펴본 적 있어?”그의 물음에 최수빈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솔직히 말해 그녀는 그럴 시간조차 없었다.모든 관리는 거의 전문 경영인들에게 맡긴 상태였고 신세계 그룹 내부의 인사 구조 역시 특별한 변화 없이 안정되어 있었다.아무 대답이 없자 주민혁은 그녀가 모른다는 걸 확신한 듯한 얼굴로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신세계 그룹에는 주상 그룹의 지분이 있어.”그 말을 들은 순간, 최수빈의 몸이 굳어버렸다.그녀는 분명 계약 당시 권성우와 함께했고 계약서상 문제는 전혀 없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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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2화

그녀는 얼굴이 굳은 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주민혁을 바라봤다.이 남자는 정말이지, 했으면 했다고 말하는 타입이었다.심장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빠르게 뛰어 최수빈은 아무런 내색도 없이 주먹을 꼭 쥐었다.“민혁 씨였어요?”“나였지, 그럼 누구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형?”주민혁은 눈썹을 살짝 올려 그녀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그러다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섰고 말투 역시 여유로웠다.“그렇다면 유감이네.”그가 덧붙였다.“책임질게. 원하는 게 뭐야?”최수빈도 주민혁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는 예상 밖의 일이자 그녀가 가장 원하지 않았던 상황이기도 했다.“성인끼리 뭘 그렇게 따져요. 굳이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분명 자신이 먼저 다가간 것이었고 서로 원해서 한 일이었다.결혼했을 때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았고 몇 년을 함께했지만 사랑 없이 욕망만 있었던 관계였다.때문에 상대가 아무리 주민혁이라 해도 최수빈이 괴로워할 이유는 없었다.“한 번이나 천 번이나 매한가지예요.”최수빈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꼭 뭘 바란다면, 난 민혁 씨가 내 인생에서 좀 멀어졌으면 해요. 아주 멀리. 다시는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고요하게 최수빈을 바라보고 있던 주민혁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표정이 서서히 바뀌는 것도 눈에 보였다.그리고 이내 그는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띠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그 목소리는 차분하고 길게 가라앉아 있었고 속내를 쉽게 알 수 없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나도 그러고 싶어. 너처럼.”말을 끝낸 그는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아무 미련 없이 돌아섰고 최수빈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냉소적인 웃음을 지었다.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자기가 무슨 순결한 사람이라도 돼? 왜 저렇게 억울한 표정인 건데?’...그 일은 최수빈에게 있어 그저 잠깐의 삽화일 뿐이었다.그러나 주민혁이 남긴 몇 마디는 분명히 신경을 건드렸고 그가 말한 것들이 경고인지, 의도적으로 혼선을 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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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3화

육민성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생각했다.‘주민혁 같은 남자가 정말로 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다 넘겨줬다고?’신세계 그룹은 분명 신세계 그룹이었다.애초에 그들은 분명 이 안에 어떤 함정이나 리스크가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안에는 엄청난 이익이 숨어 있었다.‘플라잉 테크의 공급망은 왜 갑자기 문제가 생긴 걸까?’어젯밤, 최수빈은 심종연, 남이준과 함께 술을 마시다가 누군가에 의해 약에 당했다.‘만약 남이준이 주민혁의 사람이라면 주민혁이 그 방에 나타나 수빈이와 그런 일을 겪은 것까지... 설마 모두 그 사람의 통제하에 일어난 일인 건가?’“그렇다면... 플라잉 테크에도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 아닐까?”육민성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주민혁이 널 위해 위험 요소를 제거해주는 중일 수도 있잖아?”“생각해봐. 예전 우리가 손잡았던 두 개의 협력 업체, 하나는 주민혁이 박하린에게 넘긴 곳이었고 다른 하나는 네가 박하린이 들어오길 기다리게 둔 곳이었지. 결국은 다 넥스트 테크에서 터졌잖아.”하나하나 생각해보면 정말 이상한 일 투성이었다.겉으로 보면 이익은 전부 박하린에게 돌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 그랬을까?이 모든 일들은 결국 나중에야 효과가 드러나는, 뒤늦게야 뒤통수를 맞게 되는 일종의 ‘롱테일 효과’처럼 이어지는 일들이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최수빈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왜 그래야만 했을까? 이유가 뭐지?’아무리 생각해도 그럴만한 이유는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지금으로서는 모든 걸 우연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다.“이미 네 손에 지분이 들어와 있는 이상, 그다음부터는 뭘 하든 너의 몫이야. 왜 그렇게 망설여?”육민성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주민혁은 전부 다 너한테 내준 거면 그건 양심이 있다는 거지. 몇 년간의 결혼 생활에 대한 보상이라 생각하자고.”최수빈은 말없이 눈썹을 살짝 내리고 입을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그러자 육민성이 이어서 말했다.“그 사람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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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4화

마치 주민혁이 최수빈을 찾아온 것처럼, 이 세상에 이유 없이 찾아오는 이익이란 없다.이상한 움직임이 있다는 건 그 속에 반드시 꿍꿍이가 있다는 뜻이었다.최수빈이 내릴 수 있는 분석은 딱 거기까지였다....그날 밤, 최수빈은 비서와 함께 지분 관련 사항을 다시 한번 확인했고 권성우의 말까지 종합해본 결과 사실이었다.그리고 단순히 그 10%만 있는 게 아니라 계약 당시에 자신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일부 항목들이 더 있었다.주민혁이 오늘 아침에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끊임없이 맴돌아 그녀는 점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그리고 오늘 호텔로 도착했던 그 익명의 택배, 그건 과연 누가 보낸 것이었을까?깊은숨을 내쉬며 그녀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답답한 가슴을 식히려 호텔 옥상으로 향했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막 옥상에 발을 디디는 순간, 최수빈의 눈에 익숙한 인물이 들어왔다.검은 옷을 입은 한 남자가 옥상 난간 쪽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등 뒤로 난간을 기대고 앉아 한 손은 무릎에 느슨히 걸쳐둔 채,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날리고 있었다.그 모습은 싸늘하면서도 어딘가 느긋했고 삶과 죽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한 무기력함이 스며 있었다.최수빈은 그처럼 보이는 주민혁을 처음 봤다. 그동안 보여준 그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다.그녀가 다가오자 주민혁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들어 최수빈을 바라봤다.무표정한 얼굴, 담담한 눈빛...이어 그는 깊게 한 모금 들이마신 담배를 손가락으로 비벼 끄며 말했다.“잠이 안 와서? 아니면... 뛰어내리려고 온 거야?”최수빈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시간, 이런 장소에서 그를 마주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으니 말이다.‘새벽이 다 된 시간에 잠도 안 자고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던 거지?’몇 초간 가만히 서서 생각하던 그녀는 결국 발걸음을 옮겨 그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이혼 이후, 거리 두기를 넘어서 주민혁을 철저히 외면해온 최수빈의 태도로 보아 좀처럼 있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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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5화

최수빈은 주민혁이 뭐라고 대답하든 기다리지도 않은 채 그대로 돌아섰다.그와는 말이 섞일수록 피곤할 뿐이었다....다음 날,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현장.오늘은 전 세계 결승전이 치러지는 날로 전 세계 시청자들이 함께 결과를 지켜볼 수 있도록 실시간 생중계가 진행되었다.현장에는 하나둘씩 이름 있는 인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박하린은 심사위원으로 온 성지택과 눈을 마주쳤다.오늘 이 대회는 그녀에게 있어 반드시 쟁취해야 할 무대였다.박하린이 이끄는 팀은 구성부터가 전문성과 실력이 탁월했고 최수빈이 개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팀 단위로 보자면 승산이 없을 터였다.진승우는 박하린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이번 결승에서 이기게 되면 앞으로는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게 될 거예요.”이번 대회는 단순한 국내 경연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연구기관과 기업이 모두 주목하는 대형 무대였고 이름이 한 번 올라가면 향후 세계 과학계에서도 입지를 굳히는 계기가 될 터였다.박하린은 이 무대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최수빈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한지원이 환한 미소를 띠며 달려왔다.“언니, 또 만나네요!”한지원의 목소리는 달콤하기까지 했다.최수빈은 그녀를 보고 미소 지으며 조금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오늘 관람하러 온 거예요?”“아니요.”한지원은 고개를 살랑 흔들었다.“저도 이번 대회 참가해요. 다만 좀 조용히 준비하느라요.”“원래는 소피아가 이 대회에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무리해서라도 참가 신청을 했었거든요. 꼭 한번 보고 싶어서요.”한지원은 최수빈의 능력을 존경하며 그녀를 우상으로 여겼다.그러다 이제야 드디어 만나게 된 이상, 절대 이 시간을 놓칠 수 없었고 한순간이라도 더 그녀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백스테이지.박하린은 최수빈과 한지원이 다정히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그녀는 인맥을 잘도 이용해서 각계 인사들과 줄을 트고 있는 최수빈이 참 교묘하다고 느꼈다.하지만 그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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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6화

“팀워크라고요?”한지원이 말을 이어받으며 박하린을 바라봤고 눈빛에는 비웃음이 스쳐 지나갔다.“이익만 좇는 오합지졸들과 진짜 과학 연구의 이상을 위해 불태우는 사람은 애초에 존재의 차원이 달라요.”그 말에 박하린의 얼굴빛이 순간 굳어졌고 입가에 애써 걸려 있던 웃음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이를 악문 채 말없이 표정을 가다듬은 그녀는 차갑게 내뱉었다.“결과는 좀 이따 확인하죠.”이번 대회에서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무엇보다 지금 이 결승전 무대는 자신의 홈그라운드나 다름없었고 심사위원 대부분이 자기편이었다.기술 하나로 인맥을 이길 수는 없을 테니 최수빈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이 세상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굴러가는 사회다.인맥과 자원을 가진 사람만이 사회의 정점에 설 수 있고 최수빈 같은 부류는 언제나 가장 아래에서 머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드디어 결승이 시작됐다.이번 대회의 주제는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우주 도시 설계, 지구-달 L5 라그랑주 점에 8만 명이 거주할 이주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목표였다.핵심 과제는 중력을 조절할 수 있는 주거 모듈을 설계하는 것.이번에는 특히 팀워크 기반 협업 방식이 강조되었고 모든 팀은 27시간 안에 설계 도면, 예산 계획, 생명 유지 시스템 등을 영어로 통합해 제출해야 했다.일부 팀은 다국어 협업까지 포함됐다.예상과 달리 이번에는 랜덤으로 팀이 편성되는 거라 박하린은 순간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즉, 기존의 자기 전문팀이 아니라 현장에서 무작위로 팀이 결정되는 방식이었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대형 스크린에 뜨는 팀 명단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명단이 공개되자 다행히도 자신의 팀은 여전히 전문 인력들로 구성되어 있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반면, 최수빈과 한 팀으로 묶인 한지원은 흥분한 듯 펄쩍 뛸뻔했다.이번 평가는 단지 최고의 팀만 뽑는 것이 아니라 가장 우수한 개인도 함께 선발되는 방식이었다.팀 구성이 완료되자마자 설계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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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7화

주민혁은 시선을 들어 그녀가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봤다.박하린은 계속 밥을 먹으며 중얼거렸다.“수빈 씨, 요즘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이제는 눈도 머리 꼭대기에 달려서 내가 말 좀 붙이기만 해도 날 아래로 보더라니까?”주민혁은 그 말에 조용히 시선을 거두었고 눈동자 깊은 곳에는 무슨 생각인지 읽기 어려운 웃음기가 스며 있었다.“그래?”말투는 느릿하고 여유로웠으며 어딘지 모르게 비꼬는 듯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다.박하린은 순간 눈썹을 찌푸렸다.“이번 설계 주제는 완전히 내 전문 분야야. 사실 전부터 계속 이쪽 연구 해왔던 거라 팀이 섞인다 해도 상관없어. 난 충분히 이길 수 있어.”박하린은 자신이 있었다.실제로 그녀는 해외에서 관련 분야 연구 경험도 있었고 국내 기준으로 보면 기술력은 분명 한발 앞서 있었다.주민혁은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아무 말 없이 그녀를 흘깃 바라봤다.“자신감 있는 건 좋은 거지.”그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설계 방향은 이미 잡았어?”박하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별거 아냐. 다만 수치 쪽에서 궁금한 게 좀 있어서... 오빠한테 물어봐도 될까?”주민혁은 특별한 표정 없이 다리를 꼬고 앉아 가볍게 웃었다.“전문 분야가 따로 있잖아. 난 이제 그 업계 떠난 지 오래야.”그 말인즉슨 알려줄 생각은 없다는 것이었다.박하린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살짝 세게 쥐며 속으로 꾹 참았다.주민혁은 과거에 업계에서 전설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만약 그가 지금까지 그 분야에 남아 있었다면 지금쯤 최수빈 못지않은 위치에 있을지도 모른다.그가 직접 항공우주 전문 회사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전히 뛰어난 전문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반증이었다.박하린의 굳어진 얼굴을 바라보던 주민혁은 가볍게 입을 열었다.“너무 신경 쓰지 마.”그의 짙고 고요한 눈동자가 그녀를 조용히 응시하며 말했다.“괜히 너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래.”박하린은 말문이 막혔다.확실히 어떤 일이든 기술이란 건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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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8화

송미연은 진지하게 추측을 늘어놓았다.“갓 귀국했는데도 너 따라다니며 대회까지 같이 와준 거... 완전 챙겨주는 거잖아. 나 기억나, 예전에 너 학교 다닐 때 술집 가서 취했을 때도 그 사람이 데리러 왔었잖아. 그때도 완전 애정 가득한 얼굴이었어. 눈빛도 뭔가 좀 심상치 않았고.”그녀는 턱을 매만지며 진지한 분석을 이어갔다.“혹시 너한테 마음 있는 거 아니야?”최수빈은 한가득 쌓인 데이터를 들여다보다 말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봤다.“미연아... 언제쯤 네 그 로맨스 회로 좀 꺼줄 수 있을까?”“...”이에 송미연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고 다시는 말을 잇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장미꽃을 바라보았다.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정성스럽게 골라 담긴 것처럼 완벽했고 누가 봐도 정성 들여 고른 고급 꽃이었다.그리고 카드 위의 글씨체는 뭔가 낯이 익은 느낌이 들었다....극한의 27시간에 걸친 설계 작업이 끝났고 이제 남은 건 최종 발표와 4시간의 프레젠테이션 및 심사 답변이었다.각 팀은 50페이지 이상 분량의 전면 영어 설계 보고서를 제출해야 했고 그 안에는 기술 상세 설명 및 시각적 모델링 자료가 포함되어야 했다.또한 발표와 질의응답까지 전부 영어로 이루어졌으며 설계의 완성도, 창의성, 현실성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루어졌다.심사위원단은 이미 자리에 착석해 있었고 모두 각국 항공우주 전문가들이었다.질의응답 세션에서는 실시간 질문이 주어졌고 팀 간 협업 논리와 기술적 깊이를 중심으로 까다로운 심사가 이뤄졌다.발표는 네 시간 동안 진행되었으며 가장 먼저 발표에 나선 것은 박하린 팀이었다.그녀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났을 때, 심사위원들의 표정에는 의미심장한 반응이 스쳤고 결국 내린 평가는 전원 매우 높은 점수였다.이 순간까지만 해도 그녀가 현재까지 최고 점수를 받은 참가자였다.현장 관중뿐 아니라 온라인 중계 화면에 뜬 채팅창도 박수를 보냈다.모두가 이번 아시아 결승전의 우승자는 박하린일 거라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설계의 모든 항목에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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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9화

박하린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늘 그 독특한 내면의 자존감과 내적 동력으로 인해 자신 외의 그 누구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았다.그런 그녀를 향해 최수빈은 느릿하게, 그러나 날카롭게 한마디를 던졌다.“이정도 멘탈이니 남의 가정에도 떳떳하게 끼어들 수 있었겠죠.”말소리는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하지만 박하린의 표정은 그 말에 즉각 일그러졌고 눈빛도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진승우는 무대 위 두 사람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입씨름에 있어서는 박하린은 늘 최수빈에게 밀렸다.최수빈의 입은 억지를 부려도 논리가 되어버릴 만큼 날카롭고 집요했으니 말이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앉아 있는 주민혁을 힐끗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수빈 씨가 하린 씨를 또 몰아세웠나 봐요. 말발은 기가 막히게 세잖아요. 국내에서야 실력이 탄탄한 편이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좀 부족하지 않을까 싶네요.”이 말을 정확히 들은 송미연은 바로 고개를 돌려 진승우를 노려봤다.“그 부족한 정도도 못 따라오는 그쪽은 뭐죠?”“...”그러자 진승우가 황당한 얼굴로 송미연을 바라봤다.“내가 언제 그쪽 얘기했어요? 왜 그렇게 발끈해요?”송미연은 비웃음을 흘렸다.“남자가 돼서 뒤에서 험담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차라리 입에 달린 그거 잘라버리지 그래요?”“저기요!”진승우는 이를 악물고 분을 삭였다.“역시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최수빈 씨랑 딱 어울리네요!”막 도착해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주선웅은 이 대화를 들으며 조용히 진승우를 향해 무거운 눈빛을 던졌다.“그렇게 급하게 결론 내리는 버릇은 언제 생긴 거지? 언제부터 그렇게 눈이 삐뚤어졌냐?”주선웅의 말투에 싸늘함이 스며 있어 진승우도 잠시 굳어버렸다.조윤미는 주선웅이 나타난 것을 보자 얼굴이 바짝 굳었다.그는 주씨 가문의 재산을 노리고 돌아온 가장 위험한 변수, 그녀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이었다.곧 최수빈이 무대 위로 올랐고 본격적인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정면을 올려다보자 가장 눈에 띄는 중앙에 앉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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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0화

박하린의 팀도 분명히 뛰어났으나 진짜 더 뛰어난 건 바로 저기 있었다.주선웅은 무대 위의 최수빈을 바라봤다.눈빛은 깊고도 따뜻했고 아낌없는 애정과 자부심이 담긴 채 최수빈을 향해 천천히 엄지를 치켜세웠다.이 모습을 본 최수빈은 고개를 살짝 숙이며 청아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카메라에 비친 그녀의 그 맑고 아름다운 얼굴은 생중계 화면을 보고 있던 수많은 시청자들의 심장을 한순간에 강타했다.반면, 주민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옆자리에 앉은 주선웅을 잠깐 보더니 무표정하게 시선을 거두었다.그리고 박하린의 얼굴빛은 그보다 더 창백해졌다.‘그래, 인정하지. 몇 년 전의 최수빈은 확실히 뛰어난 인물이었어.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니... 말도 안 돼!’그녀는 몇 년간이나 주씨 가문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묵묵히 집안일을 하며 부엌 앞에서 시간을 보내던 여자였다.그런 그녀가 이 짧은 시간에 최첨단 기술의 흐름을 따라잡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과거에는 업계 천재였을지 몰라도 손을 뗀 지 그렇게 오래됐는데 복귀하자마자 이런 성과를 내다니... 그것도 업계를 꾸준히 파고든 나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뒤에 뭔가가 있는 게 분명해.’진승우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최수빈의 예전 정체가 세상에 공개됐을 때, 그들은 인정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을 품고 있었다.한때 빛나던 존재인 것은 맞으나 수년간 업계를 떠나 있었고 지금 돌아와 육민성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 해도, 또 과거의 일까지 더해져 후광 효과는 있겠지만 이건 아니었다.지금의 결과는 명백히 조작된 것이라 생각됐다.현장에서 꾸준히 실력을 다져온 박하린이 밀릴 리가 없었다.심사위원 중 한 명인 성지택은 박하린의 시선을 피하며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에 나온 데이터와 개인 능력 측정 결과는 분명 어딘가 이상했다.최수빈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AI 시스템조차 이 정도 정밀도는 구현하지 못하는데 이건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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