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Kabanata 531 - Kabanata 540

604 Kabanata

제531화

주민혁은 깊고 검은 눈동자로 조용히 그녀를 응시했다.남자는 고개를 돌려 병상 위에 누워 있는 주예린을 한 번 바라보고는 이내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주민혁의 목소리는 느리면서도 차분했다.“따라 와.”간단한 세 글자의 말에서는 그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최수빈은 무의식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큰 보폭으로 걸어 나가는 주민혁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뒤늦게 발걸음을 옮겨 그를 따라갔다.주민혁은 세 글자에 불과한 단답으로 최수빈과 대화를 나눌 의향이 있음을 드러냈다.그가 최수빈을 데리고 도착한 곳은 한 휴게실이었다.최수빈은 휴게실 전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인테리어의 휴게실은 주민혁이 자주 이용하는 공간 같았다.주민혁은 소파에 앉은 후, 최수빈에게도 앉으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테이블 위에는 많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주민혁의 의도를 알아챌 수 없었던 최수빈은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구겼다.하지만 주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최수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일단 밥부터 먹자.”최수빈은 고개를 숙여 테이블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거의 다 그녀가 평소에 즐겨 먹는 것들이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계속 주예린을 간호하고 돌보느라 제대로 된 식사를 할 틈이 없었다.하지만 이렇게 한 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도 최수빈을 식욕을 느낄 수 없었다.“일부러 준비한 거예요?”최수빈은 고개를 들어 주민혁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그 침착한 표정 속에서 감정을 읽어보려 애썼다.“배 안 고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동문서답이었다.최수빈은 별다른 반응 없이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입맛이 없어서요.”최수빈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계속해서 주민혁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에게는 이렇게 한가하게 식사나 하고 있을 여유 따위 없었다.의도를 알 수 없는 주민혁의 행동에 최수빈의 마음은 답답해져만 갔다.어쩌면 처음부터 최수빈이 계속 알아채지 못했던 것들이 있을지도 몰랐다.주예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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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최수빈은 아이가 그렇게 변한 건 주민혁의 탓이라고 생각했다.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니다가 아들까지 데리고 가 소개해 줘서 그렇게 된 거라고 여겼다.하지만 최수빈은 뒤늦게 깨달았다.최수빈이 정성껏 키웠던 주시후는 처음부터 주민혁과 박하린의 아들이었고 송지훈은 그저 허울 좋은 핑계에 불과했다.최수빈을 가만히 바라보던 주민혁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얇은 입술을 움직였다.“최수빈, 너는 내가 만난 여자들 중에서 가장 양심 없는 여자야.”최수빈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민혁의 말을 이해해 보려 노력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주민혁은 자신이 최수빈을 무척이나 사랑했고 양심 없는 쪽은 오히려 최수빈이라며 몰아가고 있었다.들을수록 우스운 말이었다.“내가 양심이 없는 거라고요?”최수빈은 주민혁을 노려보았다.“대체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그녀는 주씨 가문을 위해서 희생해 왔고, 심지어 자신의 사업과 학업까지 포기했다.최수빈은 주민혁을 위해 내조에 힘썼고 육아에 전념하며 주씨 가문의 이런저런 인간관계도 관리해 줬다.게다가 주씨 가문의 모든 사람들을 돌봐주며 주민혁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하지만 최수빈에게 돌아온 것은 주민혁의 매정한 ‘양심 없다’는 한 마디였다.“우리 중에 정말 양심 없는 사람이 대체 누구인 것 같아요?”최수빈의 표정이 차가워졌다.‘어떻게 감히 나한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최수빈의 말이 끝나자 휴게실 안은 기묘한 정적에 휩싸였다. 싸늘한 침묵만 감도는 휴게실 안에서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까지 또렷하게 들릴 것 같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본 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난히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휴게실 안을 가득 채웠다.그렇게 한참이 지나, 주민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 대답을 아직도 못 알아들은 거야?”“내 뜻은 이미 다 행동으로 보여준 것 같은데.”최수빈이 미간을 구겼다.주민혁이 했던 대답은 영원히 무조건적으로 박하린의 편에 설 것이라는 뜻이었다.그가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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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주민혁이라면 분명 어떤 숨겨진 사정을 알고 있을 터였다.딸의 안전에 관련된 일이라면 최수빈은 주민혁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낱낱이 물어볼 작정이었다.그녀는 이 말만 남긴 채, 다급히 주예린의 병실로 향했다.주예린은 오늘 일로 분명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그런 일을 당했으니 깨어났을 때 주위에 익숙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무서워할 가능성이 높았으니 반드시 최수빈이 곁에 있어 주어야 했다.병실 안.의식이 돌아온 주예린의 두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최수빈을 보는 순간, 아이는 고여 있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주예린의 얼굴색은 잔뜩 겁을 먹은 듯 창백해져 있었다.최수빈은 딸을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했다.열이 내렸다는 의사의 말에 최수빈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주예린을 다시 재우고 보니, 주민혁은 어느새 병원을 떠나고 없었다.그에게도 따로 바쁠 만한 일이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무엇 때문에 바쁜지 최수빈은 알 수 없었다.-다음 날 점심.진서령과 주나연이 온갖 선물을 바리바리 들고 주예린의 병문안을 왔다.“우리 손녀 좀 보러 왔어.”진서령은 최수빈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아무리 네가 민혁이랑 이혼했다고 해도 예린이는 우리 주씨 가문 핏줄이잖니. 못 보러 올 이유도 없지.”주나연은 옆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최수빈을 바라보았다.“예린이가 다쳤다는 소식에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최수빈은 두 사람의 연기를 보며 참으로 조악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그녀가 주씨 가문에서 지낼 때는 그 누구보다도 냉담하게 굴던 두 사람이었다.하지만 이혼하고 나서 모든 사실이 드러나기 무섭게 태세를 바꾸고는 일부러 친근한 척하며 다가왔다.명예와 이득만을 노리는 그 욕심이 얼굴에 아주 선명하게 드러났다.두 사람을 맞이하는 최수빈의 냉담한 표정에서는 환영의 기색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주나연이 웃으며 말했다.“우리가 안 반가울 수는 있어도 아주버님은 반가워해야 하는 거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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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주선웅은 최수빈의 멍한 표정을 잠시 지켜보더니 재밌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다정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애정이 흘러넘쳤다.“왜 그래? 오빠 못 알아보겠어? 계속 멍하니 보고만 있네.”그제야 최수빈은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많이 변했네.”주선웅은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유학 갈 때까지만 해도 엄청 어린애였는데. 이제는 다 컸다고 오빠한테 애교도 안 부리는 거 봐.”그는 병상 위에 누워 있는 주예린을 한 번 바라보았다.“어때?”남자는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장난감들을 잔뜩 들고 병상 옆으로 가서 쪼그려 앉았다.“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주예린은 아빠와 닮은 남자의 등장에 한껏 긴장한 표정으로 최수빈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최수빈이 부드럽게 대답했다.“큰아빠야, 예린아.”주예린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얌전하게 인사를 했다.“안녕하세요, 큰아빠.”주선웅은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어 주예린의 뺨을 약하게 꼬집었다.“착하네. 너희 엄마 어릴 때처럼 귀엽다.”“그럼 나도 우리 꼬마 아가씨한테 자기소개를 해야겠지?”남자의 다정하고 친근한 말투는 단숨에 아이와의 거리를 좁혔다.“내 이름은 주선웅이야. 너희 아빠의 형이니까 큰아빠라고 부르면 돼.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큰아빠는 무조건 네 편이야.”주선웅에게서는 사회적 강자 특유의 카리스마와 다정한 분위기가 풍겼다. 주예린도 그의 말투와 목소리에 담긴 선의를 느낄 수 있었다.아이는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감사합니다, 큰아빠!”‘어쩐지 아빠랑 너무 닮았다 싶었는데. 형제여서 닮은 거였구나.’쪼그리고 앉아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최수빈의 눈시울이 왜인지 모르게 붉어졌다.그 시절의 최씨 가문은 최진식과 이혜정의 사업 때문에 한창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가끔씩 이혜정이 최수빈을 챙겨주긴 했지만 일 때문에 출장이 잦아서 제대로 돌봐주는 것은 무리였다.보통 최수빈을 돌봐주는 사람은 외삼촌이었지만 그 역시 회사를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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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이제 주씨 가문의 명실상부 안주인은 진서령이었다. 그러니 갑자기 주선웅이 나타나서 재산을 상속받는 것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나도 같이 가자.”주나연이 함께 자리를 떴다.“저 둘만 같이 있게 둘 수는 없잖아요?”주나연이 진서령을 보며 말했다.“만에 하나라도 수빈이랑 오빠가...”진서령이 단호하게 말했다.“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어.”“민혁이도 참, 이렇게 중요한 시점에 어디로 간 건지...”사실 진서령은 속으로 아주 조급했다.갑자기 돌아온 주선웅에 대해 하는 것이 별로 없어서 더욱 견제됐다.주나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침묵했다.그녀에게도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다.진서령은 당연히 모든 권력을 주민혁에게 넘기려 했지만 주씨 가문은 주나연의 친정이었다.가문만 강하면 그만이었다.게다가 주선웅도 정 없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여동생을 외면하지도 않을 터였다.불안해하는 진서령에 비해 주나연은 한없이 차분했다. 그녀는 옆에서 조용히 구경만 하다가 한쪽에 붙으면 되는 끝나는 일이었다.-복도.“없어도 상관없어.”주선웅은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 둘이 결혼했을 때는 내가 못 와 봤잖아. 그런데 다시 돌아와 보니까 이혼했다고 들어서.”“민혁이가 너한테 잘못한 거 있어? 혹시 괴롭히기라도 했니?”그러자 최수빈은 눈을 밑으로 깔고 말했다.“나랑 민혁 씨 사이에 대해 더 할 얘기는 없어요.”서로 깔끔하게 헤어진 사이니,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면 그만이었다.두 사람은 이미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엮여 있었다.최수빈은 겨우 주민혁에게서 벗어났고, 더 이상 그와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이런 상황에 최수빈은 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애초에 그녀와 주민혁의 감정은 이미 과거의 일이 되어 버렸다.굳이 과거에만 머물 필요는 없었다.최수빈은 고개를 들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주선웅을 바라보았다.“그동안 유학 가 있는 동안 소식 끊겼잖아요. 내가 연락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주선웅은 해외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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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휴대폰 줘 봐.”주선웅이 입을 열었다.최수빈은 살짝 고개를 들더니 주선웅에게 휴대폰을 건넸다.그는 연락처에 전화번호 하나를 추가하고는 다시 최수빈에게 돌려주었다.“이건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번호야.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오늘 금방 귀국했는데 예린이가 납치됐다는 소식 듣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어.”최수빈을 바라보는 주선웅의 부드러운 목소리에서는 듬직함이 느껴졌다.“혹시 누군가한테서 원한이라도 샀어?”최수빈은 고개를 저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지금 경찰에서 조사 중이에요.”“어쩌면 민혁 씨가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주선웅이 눈썹을 살짝 들썩였다.“예린이는 민혁이 딸이잖아. 아는 게 있다면 둘이 얘기를 나눠봐야지.”“아무리 이혼했다고 해도 딸까지 모른 척할 수는 없지 않아?”그 말에 최수빈은 목이 메었다.오늘 만났던 주민혁은 친딸 일에도 나 몰라라 하는 태도였다.하지만 그러면서도 완전히 외면 중인 것은 아니었다.지금 이렇게 주예린을 자신 소유의 요양원으로 오게 했으니, 방임이라고만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정말 모른 척하고 있는 거야?”주선웅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이런 망할 놈이.”“내가 나중에 민혁이 찾아가서 따질게.”주선웅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전화를 받으며 최수빈을 바라보았다.“민혁이한테서 온 전화야. 같이 갈래?”최수빈은 고개를 저었다.“둘이서 얘기 나누세요.”최수빈은 주민혁과 주선웅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없었다.이론적으로 따졌을 때 두 사람은 경쟁 관계였다.하지만 주선웅은 주민혁과 가문의 재산을 두고 경쟁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최수빈이 아는 주선웅도 그럴 사람은 아니었다.어릴 때부터 최수빈에게 주선웅은 아주 좋은 오빠였다.주선웅이 몸을 돌려 자리를 뜨자 최수빈은 조용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남자는 두세 걸음 걷다가 난감하다는 듯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다시 뒤돌아섰다.최수빈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주선웅은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남자의 따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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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주민혁은 그 말을 듣고도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그저 입술만 살짝 비틀었다. 그는 시선을 내리깐 채, 손에 든 담배를 비벼 끄고는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마음대로 해.”주선웅은 이토록 무심한 주민혁의 반응에 미간을 살짝 구겼다.주민혁은 간단한 한마디만 남긴 후,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그는 최수빈에게 극도로 무관심해 보였다.딸이든 최수빈이든 주민혁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존재가 아닌 듯했다.주예린이 이 세이프 요양원에 온 것조차 쓸데없는 소문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주선웅의 눈빛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주예린의 몸은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지만 밤마다 반복되는 악몽은 그칠 줄을 몰랐다.아이는 잠을 자다가도 악몽 속에서 깜짝 놀라 잠에서 깨기 일쑤였다.최수빈은 한시도 병상 곁을 떠나지 않은 채, 주예린을 지켰다.이런 상황을 알게 된 주선웅이 말했다.“심리 상담사 한 명을 데려오는 게 좋겠어.”주선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린이가 계속 이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지. 그리고 너도 곧 있으면 ISSDS 대회에 나가야 한다고 들었는데.”최수빈은 주선웅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대회는 별문제 없어요.”이 정도 규모의 대회는 최수빈에게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최수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주예린이었다.주선웅은 최수빈의 검은 눈동자를 빤히 바라보았다.“내가 잘 챙겨줄게.”주선웅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511 연구원이랑 천공 연구원에서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꽤 많다고 들었어. 이대로 갔다가는 네 몸이 먼저 무너질 거야.”그는 천천히 최수빈의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병실은 밝은 빛으로 가득했고 주선웅이 곁에 앉는 순간, 코끝에서는 차가운 향기가 느껴졌다. 유난히 익숙한 향기였다.주선웅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드리워진 최수빈의 손을 잡았다. 그는 따뜻한 온기가 담긴 엄지손가락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손등을 문질러 주었다.“아이도 챙겨야지, 일도 바쁘지.”“어떻게 이걸 오랫동안 혼자 감당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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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주시후를 끔찍이도 아끼는 주민혁이라면 진작 이 사건을 분명하게 조사해 진상을 밝혀냈을 것이다.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는 것은 이 사건이 주민혁조차 파내기 힘들 만큼 까다롭다는 뜻이었고, 배후를 알아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보여주는 방증이었다.육민성에게서 상황을 묻는 전화가 걸려 왔다.“주민혁이랑은 얘기해 봤어? 그쪽에서는 뭐래? 따로 알아낸 건 없고?”최수빈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그쪽에서도 얻은 정보가 있다면 경찰에 알렸을 거예요.”주민혁의 일 처리 방식으로 생각해 봤을 때, 배후를 알아낸다면 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아직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마.”육민성이 위로했다.“내가 경호원 몇 명 더 배치할게. 24시간 동안 예린이 주위 잘 감시하도록 했으니까 더 이상 문제 생기는 일은 없을 거야.”최수빈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사실 그녀는 이미 마음속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고민 끝에 최수빈이 입을 열었다.“선배, 박하린이랑 만날 수 있도록 자리 한 번 마련해주세요.”...일 처리 속도가 빨랐던 육민성은 곧바로 최수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박하린은 곧바로 천공 연구원에 도착했다.“육 대표님, 이제 좀 마음의 문이 열렸나 봐요? 나랑 협력할래요?”넥스트 테크는 주상 그룹의 도움으로 다시 활력을 찾았고 채무 역시 깨끗하게 정리한 상태였다.동시에 신세계 그룹에게서도 완전한 독립을 이루게 되었다.박하린은 이제 모든 공식 석상에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나타났다.그녀의 회사는 이제 주상 그룹의 산하로 들어가게 되었다.육민성은 차분한 표정으로 박하린을 회의실까지 안내했다.회의실 안에 조용히 앉아 있던 최수빈이 고개를 들어 박하린을 응시했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박하린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졌다.육민성이 말했다.“둘이서 얘기 나눠요.”이 말만 남긴 채, 육민성은 회의실에서 나갔다.그가 자리를 뜨자 회의실에는 순식간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회의실 안의 기류가 점점 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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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굳이 인정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을게요.”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만약 우리 예린이한테 또 한 번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때는 모든 책임을 다 하린 씨한테 물을 거예요.”“넥스트 테크가 신세계에서 독립한 건 맞아요. 하지만 지창 그룹 투자는요? 하린 씨 집안에서 운영 중인 회사 아니에요? 그건 버릴 생각이에요?”최수빈이 몸을 일으키는 순간, 주변은 보이지 않는 장벽으로 둘러싸인 듯했고 공기마저 차갑게 식었다.박하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이제 감히 내 머리 위로 올라서서 협박이라도 해 보겠다는 거야?’“이봐요, 최수빈 씨. 자기가 엄청 대단한 사람인 줄 아는 것 같은데, 그거 아니에요. 우리나라에 수빈 씨 같은 연구원이 한둘인 줄 알아요?”박하린이 차가운 얼굴로 말했다.“우리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권력이에요. 수빈 씨한테 나를 협박할 만한 게 있다고 생각해요?”실권을 장악한 게 아니라면 모든 것은 허상이나 다름없었다.‘연구원인 게 뭐가 대단하다는 거야? 그런 연구 좀 해냈다고 무슨 소용이냐고?’자본을 사용한다면 박하린도 충분히 최수빈처럼 뛰어난 연구원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하지만 최수빈은 여전히 그 권력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민혁 오빠가 지금 내 편이에요. 만약 수빈 씨가 우리 어머니 회사든, 우리 가문의 뭔가를 탐내려고 한다면 민혁 씨부터 쓰러뜨리고 봐야 할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수빈 씨가 과연 민혁 오빠의 상대가 될 수 있는지.”박하린은 조롱하듯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어디 한번 해 봐요.”주민혁이야말로 박하린의 가장 든든한 뒷배였다.이러한 자신감과 용기는 모두 주민혁이 박하린과 주시후에게 준 것들이었다.이 때문에 박하린은 지금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당당하게 최수빈의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 있게 된 것이다.최수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아래로 드리운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박하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든 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다.그녀는 최수빈의 앞에서 대놓고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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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박하린은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이제야 민혁 오빠가 왜 수빈 씨를 안 좋아했는지 알겠네요. 수빈 씨는 너무 천진난만해요. 그런데 그게 지독하리만치 어리석어 보이는 게 문제죠.”“이 세상은 흑과 백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온갖 권모술수를 부려가며 뺏고 뺏기죠. 결국 마지막에 웃는 사람은 승자겠죠.”상류층에서는 유능할수록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어리바리하게 굴수록 도태당한다.성실하고 순수하게 굴며 착하게만 살아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뜻이었다.최수빈은 그토록 오랫동안 주성 그룹의 안주인으로 살아왔지만 손에 넣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박하린은 싸늘한 미소만을 남긴 채, 곧장 몸을 돌렸다.그녀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최수빈을 깔보고 있었다.박하린은 쭉 안하무인으로만 살아왔다.그녀는 모든 상황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주민혁의 성격상, 절대 주시후를 먼저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그리고 박하린은 주시후의 친엄마였다.주민혁에게 직접 사랑 받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주시후의 친엄마라는 명분으로 버림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주민혁은 박하린을 사랑하게 됐고, 무슨 일이 생기든 무조건 그녀의 편부터 들고 봤다.그러니 최수빈은 어떻게 해도 절대 박하린을 이길 수 없었다.박하린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주민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도울 것이 뻔했다.최수빈은 이 길고 긴 감정싸움 속에서 영원한 패배자이자 광대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최수빈은 냉담한 눈빛으로 박하린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이것은 두 사람이 처음으로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두고 나눈 대화였다.박하린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예린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이미 너무나 명확했다.이는 최수빈에게 일종의 시그널이 되었다.박하린을 제거하지 않는 한, 주예린은 평생 안전하게 살아갈 수 없게 된다.최수빈은 차가운 얼굴로 회의실을 걸어 나왔다.육민성은 최수빈을 발견하자마자 다가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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