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apítulo 291 - Capítulo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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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신수빈은 이런 아가씨들과 말다툼을 벌일 마음이 없었다. 세가의 규수들이 상가를 업신여기는 심정쯤은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섞일 수 없는 세계였기에, 그녀 역시 억지로 그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다만 최명주의 말끝마다 묻어나는 날카로움을 감추고 일부러 담담하게 구는 태도가 흥미로웠다.이도현 역시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었다. 훗날 이 최 씨가, 그가 태후를 닮았다며 하나 둘 곁에 두게 될 여자들을 과연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그건 두 사람의 팔자에 달린 일이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그들은 오래 갈 운명도 아니었다. 이도현은 단명할 팔자였고 최명주는 결국 과부가 될 터였기 때문이다. 황실의 과부는 보통 집안의 과부와 달리 자유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엄격한 궁중 규율이 한 치의 일탈도 허락하지 않았다.이도현이 그동안 적으로 돌린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황자와 친왕, 세가와 대족까지. 만약 최 씨가 아이 없이 남게 된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자식을 두게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도현이 사라진 뒤 어린 아이를 안고 남겨질 그들의 나날은 실로 험난할 수밖에 없다.신수빈은 모든 것을 차분히 꿰뚫고 있었고 그 높은 섭정왕비의 자리에 대해서는 애초에 조금도 욕심이 없었다. 사내라는 존재는 참으로 단순하다. 가질 수 없을수록 마음은 더 집요해지기에, 굳이 왕비가 되지 않아도 한동안은 이도현의 마음을 붙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로도 이미 충분한데 그가 죽은 뒤의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게다가 그녀는 후작부에서 충분히 자유롭기에, 그의 후원에 있는 진하빈 같은 여자들을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신수빈은 예의상 잠시 자리를 지킨 뒤, 몸이 무거워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는 핑계로 물러나려 했다. 그러나 마침 둘째 마님이 다가와 살갑게 그녀의 손을 붙들며 윤서원의 병세를 물었다.신수빈은 어쩔 수 없이 다시 현숙한 얼굴을 쓰고 둘째 마님과 한동안 더 앉아 있어야 했다.그녀는 미리 귀띔을 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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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신수빈은 미소를 머금은 채 둘째 마님을 바라보며 말했다.“둘째 숙모의 호의는 마음으로만 받겠습니다. 다만 서방님의 하인들에게만 맡기기엔 제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요... 지금은 병세가 가장 중요한 때기도 해서, 한 치의 지체도 허락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아시고, 오늘은 이쯤에서 이만 물러나겠습니다.”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예를 갖춰 인사를 한 뒤 은보를 데리고 돌아섰다.신수빈이 내세운 명분은 더없이 적절했다. 둘째 마님으로서 붙잡고 싶어도 붙잡을 수가 없었다.최명주는 분을 참지 못한 듯 진하빈을 노려보며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다.쓸모없는 것.진하빈은 신수빈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신수빈 같은 여인이 있는 한, 왕야의 눈에 다른 여인이 들어올 자리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최명주가 자신을 앞세우는 의도를 읽고 있었기에 더더욱 경계했다.지금은 왕야가 신수빈에게 마음이 가장 뜨거운 시기였다. 이럴 때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했다간 왕야의 분노는 아무도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설령 호봉이 얼굴을 망치지 못하더라도 오늘처럼 부녀자들이 가득한 자리에서 소동이 벌어져 회임한 신수빈이 놀라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대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만약 조산이라도 한다면 아이는 십중팔구 죽은 목숨이 될 것이었다.그 순간, 신수빈은 이 윤부와의 모든 인연을 끊고 왕부로 들어갈 것이다. 그때의 신수빈은 자신에게 가장 위협적인 적이 된다.진하빈은 여러 번 따져 본 끝에 끝내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신수빈이 창란원으로 돌아오자마자 금자를 불렀다.“가서 좀 지켜봐. 저들이 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금자는 곧장 나갔다. 그녀는 기척을 숨기는 데 유달리 능했고 최명주가 진하빈을 따로 불러내는 것을 보자마자 뒤를 밟았다.“내가 네 처지가 딱해 동정까지 하며 머리를 써 줬다. 윤부 둘째 마님에게 사람을 시켜 옆뜰에 호봉집까지 마련해 주었건만 네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구나!”“언니, 노여움을 거두세요. 정말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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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최명주는 본래 윤부에서 볼만한 장면이 있을 줄 알고 기대하며 왔는데, 진하빈이 이토록 소심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물러설 줄 알았다면 애초에 다른 수를 준비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은 뒤였다. 신수빈이 이미 자리를 떠났으니, 다시 기회를 잡기도 어려워졌다.최명주는 속으로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이만하면 됐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어차피 기혼인 여인이다. 섭정왕이 체면을 조금이라도 중히 여긴다면 결코 대놓고 나설 수는 없을 터.그런 여자가 무슨 큰 파장을 일으키겠는가?그 같은 사내라면 곁에 여인이 끊이지 않는 법이다. 왕야가 그녀를 왕부로 들이지 않는 한, 자신의 지위에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 아까 그녀의 눈부신 자태에 잠시 정신이 흐려졌던 것뿐이었다.생각을 정리한 최명주는 더 이상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다시 자리에 앉아 세가의 아가씨들과 담소를 나누며 진하빈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모두가 알고 있었다. 최명주는 머지않아 섭정왕부의 안주인이 될 인물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아첨할 수 있는 상황에 명분조차 없는 진하빈을 굳이 챙길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갑게 굴던 귀녀들이 이제는 최명주의 눈치를 살피며 일부러 진하빈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자, 그녀는 속에서 약간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런데 그때, 술을 들고 있던 어린 시녀 하나가 최명주 곁으로 다가오다 발을 헛디뎌서 술이 그대로 그녀의 치맛자락 위로 쏟아져 버리고 말았다.최명주는 세가 규수로서의 체면을 지켜야 했기에 남의 집에서 하인을 나무랄 수 없었기에, 그녀는 막 욕설을 퍼붓던 둘째 마님을 제지했다. 둘째 마님은 그 시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어서 최 아가씨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사드리거라.”시녀는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를 표한 뒤 무릎 뒤를 문지르며 일어났다.방금 전, 누가 다리를 툭 친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 순간 통증에 다리에 힘이 풀렸던 것이다.금자는 나무 뒤 담장 위에 숨어 아래를 내려다보며 흐뭇하게 웃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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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그렇게 모두가 호봉의 표적이 되었다.호봉들이 다른 이들을 잘못 쏘기도 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최명주 곁에 몰려 있었고 그녀와 가까이 서 있던 몇 사람에게 집중되었다.이처럼 수많은 호봉이 한꺼번에 날아들자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사람들은 최명주와 둘째 마님, 그리고 시녀 둘이 호봉 떼에 포위되어 머리와 얼굴을 향해 쏘이는 모습을 멀뚱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구해 보려는 이도 있었으나 저토록 많은 호봉 앞에서는 누구도 쉽사리 나서지 못했다.이내 최명주의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다. 마침내 최 씨 가문의 문생인 한 젊은 사자가 용기를 내 앞으로 뛰어나와 겉옷을 벗어 호봉을 내리치듯 쫓아내고는 그 옷으로 최명주의 머리를 덮어주었다.그럼에도 그는 몇 차례 호봉에 쏘였다. 그러자 최명주는 땅바닥에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뒹굴었고, 평소의 고고한 기품 따위는 눈곱만큼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진하빈은 그 광경을 보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최명주의 처참한 모습에 마음이 괴로우면서도 본능적으로 일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느꼈다.둘째 마님 역시 심하게 쏘여 이미 사태를 수습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곧 하인들이 허둥지둥 달려와서, 세자 부인을 모셔와 이 난국을 정리해 달라며 청하기 지작했다.창란원.“마님, 보지 못해서 모르시겠지만, 그 최명주가 바닥에서 뒹구는 꼴이 평소에 턱을 치켜들고 다니던 모습이랑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였다니까요!”금자는 숨 돌릴 틈도 없이 말을 쏟아냈다.그러자 신수빈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배를 어루만졌다. 아이가 안에서 움직이고 있어, 마치 달래듯 천천히 손길을 옮겼다.오늘은 그녀와 최명주와의 첫 대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명주는 단 한 번 본 사람을 마음속의 질투 하나로 해치려 들었다. 먼저 눈치챘기에 망정이지 만약 알아채지 못했다면...지금 땅바닥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쪽이 그녀였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이를 해치려는 모든 음모에 대해 그녀는 단 하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고 조금도 손을 늦추지 않을 것이다. 아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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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사람들은 신수빈의 강남 여인 특유의 부드럽고 나른한 음성이 섞인 목소리를 듣고 나니 더는 따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게다가 이 국화 감상 연회는 본래 윤부 둘째 마님이 주관한 자리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애초에 세자 부인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그런 와중에 배가 불러 온몸이 무거운 그녀가 나서서 이 난장판을 수습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드문 현숙함이었다. 사람들은 이전부터 윤부에서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질 때마다 결국 이 세자 부인이 나섰다는 이야기를 들어 왔다. 이러니 이 집안은 세자 부인이 없으면 진작에 무너졌을 거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그렇게 신수빈은 사람들 마음속에서 한층 더 높은 평판을 얻게 되었다. 잠시 후, 몸을 몸을 돌리던 그녀는 한쪽에 시녀 하나 없이 멍하니 서 있는 진하빈을 발견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놀란 듯 보였다.“진 아가씨, 시녀는 데리고 오셨나요?”진하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얼굴이 창백해진 채 고개를 저었다.“최 아가씨와 함께 왔습니다.”신수빈은 곧바로 그녀가 무슨 일인지를사정을 알아차렸다.최명주는 이미 최 씨 가문의 하인들에게 데려가졌을 터라,, 진하빈을 돌볼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진 씨도 가엾은 처지였다.뿌리 없이 떠도는 부평초 같은 인생. 이도현 곁에 붙들려 있는 것도 태후를 닮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런 신세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오늘 윤부에서 손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 탓에해 진 아가씨도 많이 놀라셨겠어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곧 잠시 후 사람을 시켜 아가씨를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지요.”그러자 진하빈은 눈앞의 여인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흐트러짐 없는 태도, 와 빈틈을 허락하지 않는 말투. 앞의 혼란 속에서도 전혀 중심을 잃지 않은 그녀의 모습은 오늘 보아 온 그 어떤 귀녀보다도 차분하고 단정했다. 처미색으로 이름을 날린 여인이라 들었는데 막상 마주해 보니, 그 미모조차 미모는 그저 그녀의 수많은 장점 가운데 하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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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금자는 반만 이해한 듯, 여전히 고심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마음속으로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마님의 모든 선택은 다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왕야와의 혼인조차 마다하는 사람이었다.잠시 뒤, 금자는 마님이 고개를 숙여 배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보며 다시 마음이 환해졌다. 마님이 좋아하는 사람이면 자신도 좋아하면 된다. 그녀가 아이를 사랑한다면 자신은 앞으로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지키면 그만이었다.이도현이 마차를 타고 윤부에 도착했을 즈음, 부내의 손님들은 이미 하나둘씩 돌아가고 있었다. 사람들 얼굴에는 아직도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도현은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의아해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윤부의 관사가 섭정왕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진하빈을 불러 내보냈다.이도현은 진하빈의 뒤를 한 번 훑어보았다. 그 곁에는 은보만 있을 뿐,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은보는 진하빈을 데려다 놓은 뒤 가볍게 몸을 굽혀 예를 올렸다.“마님께서 진 아가씨를 잘 지키라 명하셨고 왕야께 직접 모셔다 드리라 하셨습니다. 이제 왕야께서 오셨으니, 소인은 이만 마님께 돌아가 보겠습니다.”이도현은 그녀가 사람을 보내 진하빈을 돌려보냈다는 사실에 잠시 망설이다가,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부인이 다른 말은 하지 않았느냐?”“예, 없었습니다.”은보의 단정한 대답에 이도현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타거라. 돌아가자.”진하빈은 서둘러 마차에 올랐다. 차렴이 내려온 뒤에도 이도현은 여전히 노기가 가시지 않은 듯 눈을 감고 차벽에 기대 있었다.마차가 한참을 달린 뒤, 진하빈은 두 무릎을 접어 앉은 자리에서 곧바로 꿇어앉아 몸을 낮춰 사죄했다.“왕야, 오늘 윤부에서 민녀가 일을 일으켰습니다. 부디 벌을 내려 주십시오.”이도현은 천천히 눈을 뜨고 평소와 다름없는 냉담한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무슨 일이냐?”진하빈은 최명주가 향낭을 건네며 신수빈에게 해를 가하라고 사주한 일부터, 그날의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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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한편 윤부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졌다. 비록 이 모든 일이 이방에서 주관한 국화 감상 연회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평양 후부는 반드시 사람들 앞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아야 했다. 그래야 계속해서 경성에 발붙이고 서 있을 수 있었다. 반최 가의 적녀는 이미 실려 나갈 때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다른 귀녀들 역시 크고 작게 호봉에 쏘여 상처를 입었다.그 호봉에는 독이 있었고, 여인에게 용모는 곧 생명과도 같은데, 이것을 어찌 작은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평양후가 귀부에 돌아와 이 일을 전해 듣고는 크게 노했다. 평양 후부는 엄연히 공훈을 세운 귀족 가문이다. 그런데 고작 국화 연회 하나를 이렇게 망쳐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되다니.그는 곧장 국화원으로 향했는데, 회랑 아래에는 신수빈이 앉아 시녀들에게 뒤처리를 지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평양후의 가슴에 쌓여 있던 분노가 더더욱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평소엔 네가 살림을 맡았는데, 어찌 이런 난리가 나도록 방치만 했느냐? 최 가의 아가씨가 들것에 실려 나갔다. 만일 최 가에서 문제 삼기라도 하면 우리 집안 자제들이 조정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신수빈은 어른 행세를 하며 꾸짖는 그의 태도를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춘 뒤, 차분히 입을 열었다.“공부님께서 모르시는 일이 있습니다. 이번 연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둘째 마님께서 주관하신 것으로 저는 일절 관여하지 못했습니다. 초대장 또한 제가 아닌, 윤재인 아가씨께서 직접 쓰신 거라 어떤 집안의 귀녀들이 초대되었는지도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평양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요즘 들어 집안 일이 하나같이 꼬이기만 했고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가장 만만한 며느리를 붙들고 화풀이를 이어갔다.“각 원마다 시녀와 하인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어찌 정원에 호봉이 둥지를 튼 것도 몰랐단 말이냐? 조금만 더 신경 썼다면 오늘 같은 사달은 나지 않았겠지.”신수빈의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도 드러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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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신수빈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다행히도 이 집안에 아직은 영리한 사람이 남아 있었다. 영리한 이와 말을 섞으면 쓸데없는 힘을 쓰지 않아도 되어 편했다.“아주버님 말씀대로입니다. 헌데 최명주가 어떻게 우리 부에 호봉이 있는 줄 알았을까요?”윤수혁은 그녀의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받았다.“부 안에서 최 씨와 내통한 사람이 있었겠지요.”그는 잠시 국화원을 둘러보며 차분히 말을 이었다.“며칠 전만 해도 이곳에는 벌집이 없었습니다. 이틀 전부터 둘째 마님께서 연회를 준비하며 꾸미기 시작했는데 시녀들과 유모들은 귀한 국화들을 망칠까 두려워 이 안으로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둘째 마님 쪽 사람들이 드나들었지요.”윤수혁의 마음속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최근 며칠간 국화원을 지키던 사람들을 불러 물어보면 곧 드러날 일입니다.”신수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을 이었다.“최명주는 어쨌든 명문가의 규수입니다. 우리 부와는 원래 교분도 없었으니, 만약 그녀를 위해 움직일 사람이 있다면 평범한 인물은 아닐 겁니다. 다만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이렇게까지 벌여서 그녀가 얻고자 한 것이 무엇이냐는 점이지요. 단순히 이 국화 연회를 망치려 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것인지요.”말끝은 부드러웠으나 스스로를 완전히 이 일에서 떼어내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윤수혁은 그녀가 차분히 논리를 풀어가는 것을 들으며 이미 속내를 읽고 있었다. 사태를 이처럼 빠르게 수습하고, 흐름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을 보니 마음속 계산은 이미 끝난 셈이었다. 판은 최명주가 벌였으나 결국 그 대가를 치른 것도 최명주였다. 이것이 단순히 하늘의 뜻일 리는 없었다. 신수빈이 판을 뒤집은 것이다.윤수혁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일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에는 어느새 부드러운 빛이 스며 있었다. 그녀의 선함에는 분명한 날이 있었다. 궁지에 몰려도 물러서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눈부신 사람.경성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 최명주가 곧 왕야의 부인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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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아버지께서는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관아에 고발한다고 해도 우리가 직접 최 아가씨를 지목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사건을 맡은 관원들이 알아서 판단할 것이고 우리는 그저 결과를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평양후는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는 기색이었으나 윤수혁의 시선은 벌집이 걸려 있던 커다란 나무에 머물러 있었다. 그 눈빛은 멀고도 깊었다.“지금은 아직 규방에 있는 최 가의 아가씨 하나가 이런 음험한 수법을 거리낌 없이 윤부에 들이밀었습니다. 이는 곧 윤부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오늘은 최 아가씨였지만, 내일은 왕 아가씨, 그 다음은 이 아가씨가 될 수도 있습니다. 윤부가 조정에서 설 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 규중의 부녀자들 앞에서도 눈치를 보게 될 것입니다.”평양후는 순간 말을 잃었다. 오늘따라 장남에게 이런 날 선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그는 노기를 띠고 꾸짖었다.“방자하구나!”윤수혁은 평소와 다름없이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마치 여전히 순순한 서장자처럼 보였으나 그의 허리는 꼿꼿이 곧아 있었고 한 치의 굽힘도 없었다.“말이 거슬릴 뿐, 사실입니다. 설령 윤부가 최 가를 두려워해 고발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 가의 적장녀가 이토록 큰 상처를 입었는데 최 가에서 아무 말없이 넘어갈 것이라 보십니까? 그때 가서는 지금처럼 주도권을 쥘 수도 없게 될 겁니다. 더군다나 이번 일은 왕야의 총희를 겨냥한 계책이었습니다. 왕야의 성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이 정말 순순히 넘길 인물 같습니까?”평양후는 결국 설득되고 말았다. 만약 최 가가 직접 윤부에 따져 묻는다면 그로서는 감당할 도리가 없었기에, 지금으로서는 그저 윤수혁의 판단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윤수혁이 성큼성큼 국화원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평양후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곧 그 생각을 떨쳐냈다.윤수혁은 장차 혼인하게 되면 분가시킬 인물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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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둘째 마님께서는 아무리 그래도 세자 부인보다 어른이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둘째 마님의 체면을 깎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신수빈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고요하고 깊은 눈빛으로 눈앞의 관리를 바라보았다. 그 관리로서는 이유를 알 수 없었으나 등줄기가 저릿하게 당기고 목덜미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신수빈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압박감이 가슴을 짓눌렀다.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이 세자 부인을 지나치게 얕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그저 상인의 딸이라 여겼고 후부의 살림을 맡게 된 뒤에도 그녀가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밑의 사람들이 대신 꾸려 간다고만 생각했다. 강남 출신의 가냘프고 부드러운 여인이 어찌 이런 큰 집안을 감당할 안목과 기개가 있겠느냐고 여겼던 것이다.그러나 지금의 그는, 세자 부인이 위엄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에게는 이렇게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침묵으로 서 있기만 해도 사람의 심장을 조여 오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내가 후부 살림을 맡던 날, 이미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이방과 삼방의 이후 지출은 각자 책임진다고. 세개 방이 한 몸이라는 말은 내게 꺼낼 필요도 없다. 그날 이후로 그런 관례는 모두 끝났으니까. 지금도 이방에 거처를 내어 주고 별도의 거처 비용을 받지 않는 것만 해도 어른이라는 점을 감안해 준 것이다. 헌데 이제 와서 후부의 돈으로 자기 체면을 세우려 든다? 정말로 내 말이 허울뿐이라 여기는 것이냐? 오늘 벌어진 소동으로 부서진 집이며, 귀한 규수들을 달래는 데 들어간 비용까지, 내일 목록을 만들어 이방으로 보내겠습니다.”이방의 관리로서는 더 이상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설마 이 세자 부인이 이토록 단호하고 물러섬 없는 인물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결국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금자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다는 직감에 잽싸게 그 뒤를 따라나섰다. 한편 은보는 신수빈 앞에 따뜻한 차를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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