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부디, 그 허리를 굽히소서: Capítulo 281 - Capítulo 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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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1화

신수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혼사라니요? 무슨 혼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당연히 우리 둘의 혼사지.”이도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단정했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신수빈이 그동안 마음속 깊이 눌러두고 있던 불안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눈동자 깊은 곳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붙잡았다.“왕야께서 농을 하시는군요. 저는 윤씨 부인입니다. 헌데 어찌 왕야와 혼담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이도현은 신수빈이 스스로를 윤씨 부인이라 부르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속에서 일어나는 불쾌함을 눌러 담은 채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곧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본왕이 무엇때문에 너의 친정을 끌어올리고 네 부친의 신분을 바로 세워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모두 문벌과 출신을 떠들어대는 자들의 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네가 아이를 낳은 뒤, 그 무능한 자와 이혼하거라. 마침 네 부모도 곧 경성에 들어올 터이니 내년 봄 꽃이 필 무렵, 본왕이 너를 정식으로 맞아들이겠다.”신수빈은 그가 자신을 왕부에 들이겠다는 것이 아닌 자신과 혼인하겠다고 말했음을 분명히 들었다.여전히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을 본 이도현은 봄샘처럼 잔잔히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이 유난히도 또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명매정취다. 삼매육례를 갖추고 조상과 하늘에 고하겠다.”신수빈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깊고 짙은 그의 눈동자에는 항상 이렇게 마음이 풀어진 순간마다 언제나 다정한 정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어젯밤 보았던 피로 쓴 서찰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핏빛 안개 속에서 전생의 기억들이 쉼 없이 스쳐 갔다.윤서원, 주서화, 태후, 불길, 뼈를 부수는 고통, 혼을 가두는 저주, 멸문…그는 분명 뛰어난 권력자였다. 황제가 되었다면 후세에 이름을 남길 명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황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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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내가 그 아이를 용납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보통 가문에서도 성이 다른 아이는 종족과 형제, 숙부들의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하물며 황실은 어떻겠느냐?본왕은 그 아이를 위해 생각하는 것이다. 네가 그를 데리고 왕부로 들어온다면 겉으로야 네가 있으니 감히 입을 여는 자는 없겠지. 허나 그 이면에서는 어떻겠느냐? 종실의 군왕들과 군주들이 그를 가볍게 보지 않겠느냐? 날 선 말들이 오가지 않겠느냐? 장차 조정의 귀족 자제들 또한 그의 출신을 두고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다. 본왕의 왕위는 오직 우리의 아이가 이어야 한다. 그 아이가 왕부에 머문다면 처지는 몹시 애매해지고 이는 그의 성장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네가 훗날 마음 아파할까 염려되지 않았다면 본왕이 이렇게까지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반면, 그를 후작부에 남겨두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그의 생모가 왕비가 된다면 후작부 안에서든, 조정의 친귀들 사이에서든, 감히 그를 얕보는 자는 없어질 것이다. 오히려 더욱 조심할 테지. 그리고 장차 우리의 아이가 이 왕위를 잇게 되면 그 역시 같은 어머니를 둔 형으로서 많은 보살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까지 배려했는데 네가 걱정할 게 무엇이 있느냐?”확실히, 천하의 권세를 쥔 사내가 재가한 여인을 맞이하면서 이처럼 전 남편 아이의 앞날을 헤아려 주는 일은 좀처럼 보기 드물었다.이도현이 말을 마치고 보니 신수빈은 고개를 숙인 채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 이내 조급함이 스며들었다.“빈아, 어떠냐?”이도현은 가슴에 짙은 안개가 걸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짧은 침묵조차도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라도 빨리 이 안개를 걷어내고 싶었다.그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신수빈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침내 고개를 들었다. 각진 윤곽과 단정한 눈매는 눈동자 깊은 곳에 고인 짙은 기색 때문에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신수빈은 시선을 살짝 내렸지만 이도현은 그녀가 도망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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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신수빈은 혹여 이도현이 분노한 나머지 아이에게까지 화를 옮길까 봐 두려웠다.장원 부인의 전례가 아직도 눈앞에 선명했기에 결국 그녀는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그의 소매를 붙잡은 채, 눈동자는 가을 물결처럼 잔잔히 흔들리며 맑은 빛을 머금고 있었다.“왕야께서 제게 베푸신 마음, 감사히 여기고 있습니다. 다만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립니다. 어린 나이에 어미 곁을 떠날 생각을 하니 그저 마음이 아플 뿐입니다. 왕야께서 저를 가엾이 여겨주신다면 이번 한 번만 더 허락해 주십시오. 아이가 서너 살이 될 때까지 곁에 두고 그 이후에는 모든 것을 왕야의 뜻에 따르겠습니다.”여기서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결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전생의 궤도대로라면 그 무렵 이도현은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게 되기에,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이도현만 사라진다면 그동안 그녀가 쌓아온 계산과 수단으로 태후 하나쯤은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다. 전생에 신 씨 가문이 멸문당한 그 쓰디쓴 대가를 이번에는 장 씨 가문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생각이었다.이도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침상 곁에 앉아 있는 여인이 고개를 살짝 치켜든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히려 서서히 식어갈 뿐이었다.“서너 살이 지나면, 너는 또 다른 이유를 대며 떠나지 않으려 하겠지. 그다음에는 그가 장가가는 것을 봐야 한다 하고 다시 아이들이 무릎 아래 모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겠지. 신 씨, 정녕 본왕이 너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그 말에 오늘 하루 가슴 설레며 품었던 기대와 들뜬 기분, 그리고 얽히고설킨 애정이 모두 우스운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이 그녀 뱃속의 아이 하나만도 못한 것처럼 변해갔다.이도현은 그녀가 붙잡고 있던 소매를 거칠게 빼냈다. 자신이 입고 있던 소박한 도포를 내려다보다가 성의점의 주인이 연신 자신을 사위 어른이라 불러대던 순간이 떠올라 더욱 씁쓸해졌다.비단 곤룡포를 두고 이런 조악한 소복을 걸치고 그녀 앞에 와 스스로를 욕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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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신수빈의 마음에는 아무런 파문도 일지 않았다. 이 일은 이미 명양 장공주에게서 들어서 알고 있던 터였기 때문이다.그래서였구나!최 씨 가문이 최문화를 비롯한 남매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한발 물러선 이유가. 결국 그들이 노린 것은 섭정왕비의 자리였다.최 씨 가문의 적장녀는 태후가 직접 이도현에게 내민 패였다. 그리고 이도현은 그 제안을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이를 보면 태후가 그에게 미치는 영향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신병문 역시 중추절이 지나서야 부친이 후작에 봉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일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생겨서, 항주로 편지를 띄웠을 때에는 이미 신 씨 부부가 항주를 떠나 입경 길에 오른 뒤였다.부모에게서 온 서신을 받은 신병문은 날짜를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중추절 이전부터 이미 길을 나섰다는 뜻이었다.이 섭정왕은 모든 일을 미리 계산해 두는 인물이었다. 신 씨 가문의 입경 역시 훨씬 전부터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그는 사내기에 같은 사내의 속내를 더 또렷이 꿰뚫어 볼 수 있었다.이도현이 정말 단순히 누이와 희희낙락하며 한때의 흥을 즐기고 있었던 것일까?과거 신 씨 가문이 반쪽 재산을 내놓고도 얻지 못했던 작위가 이번에는 근거도 모호한 길상 하나로 손에 들어왔다. 섭정왕의 속셈은 이미 분명했다.사실 이도현의 움직임은 그들의 계획을 적잖이 흐트러뜨렸다. 형제와 누이가 함께 계책을 세울 때부터, 신 씨 가문을 장안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항주는 명주와 맞닿아 있었고 훗날 장안에 변고가 생기면 명주를 통해 바다로 나가 온 가문을 보전할 생각이었다. 조정이 사태를 파악할 즈음이면, 신 씨 가문은 이미 망망대해 위에 있을 테니 그들의 자취를 찾는 일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신 씨 가문인 후작에 봉해진 뒤로 온 식구가 장안으로 옮겨오면서 오히려 제약이 많아졌다. 그로 인해 원래는 누이를 불러 한 번 자리를 마련하려 했으나 돌아온 것은 관사 하나뿐이었다.“세자 부인께서 전하라 하셨습니다. 오늘 마님께서 부내에 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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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최명주는 그저 신 씨라는 여인을 한 번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과연 어떤 여인이기에 섭정왕이 상가 출신 집안을 끌어올려 후작에 봉하게 만들었는지.다만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었다. 신 씨처럼 남편을 두고도 외간 남자와 얽혔다는 소문이 도는 여인은 굳이 자신이 손을 더럽혀 정리할 가치조차 없었다.“내 명첩을 들고 가서 섭정왕부에 있는 진하빈을 초대해 와. 함께 윤 부로 국화 구경을 가자고.”최 씨 가문의 적녀가 보낸 초청장이 왕부에 도착했을 때, 관사는 이미 그날 경성에 도는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이 최 씨 아가씨가 머지않아 왕부의 주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 섰기에 그는 초청장을 보관해 두었다가 왕야가 귀부하자 올려보냈다. 이도현은 초청장을 한 번 훑어보더니 시선이 윤부라는 글자에 닿자 콧소리를 흘렸다.“진하빈에게 보내거라. 내일 최 씨 아가씨와 함께 국화 구경을 가라고. 본왕은 조회를 마친 뒤 직접 데리러 가겠다.”장풍은 이번에는 눈치를 좀 챙겼다. 왕야의 속내를 일곱, 여덟 할쯤은 읽어냈기 때문이다. 지난번 한밤중에 윤 가에서 돌아온 뒤 그는 한동안 마님을 찾지 않았다. 처음에는 정말로 붙잡힌 줄 알았는데, 곱씹어 보니 두 사람이 또 다툰 것이 분명했다.진하빈이 왕부에 들어온 뒤로 이 여인은 철저히 ‘도구’ 역할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왕야가 직접 데리러 간다는 말은 마님을 자극하려는 의도였다.장풍은 초청장을 진하빈이 머무는 뜰로 전했다.진하빈은 그것을 받아 들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장풍을 바라보았다.“왕야께서… 제가 가도 된다고 하셨나요?”“왕야의 뜻으로 전달하는 겁니다.”진하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 미소를 지을 때 드러난 고운 치아를 보며 장풍은 문득 그녀가 마님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마님과도 닮았고 신 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과도 닮아 있었다.진하빈은 몸을 낮춰 장풍에게 예를 갖췄다.“번거로우셨을 텐데,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하지만 장풍은 그저 옆으로 비켜서며 그 예를 받지 않았다.진하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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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진하빈은 속이 끓어올랐지만 감히 내색하지 못했다.그렇게 문밖에서 반 시진을 꼬박 서 있어 다리가 저릴 대로 저려올 즈음, 최명주가 마침내 방 안에서 느릿하게 걸어 나왔다. 그녀는 진하빈을 흘끗 보며 은근히 내려다보는 기색이 섞인 미소를 지었다.“동생을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진하빈은 그녀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그저 공손한 웃음을 띠고 답했다.“아닙니다. 최 아가씨,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최명주는 진하빈의 한껏 낮춘 태도가 몹시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앞서 걸었고 진하빈은 조용히 한 걸음 뒤를 따랐다.윤부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최명주는 연지와 분, 장신구 같은 여인네의 잡담을 나누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화제를 신수빈 쪽으로 옮겼다.“동생은 왕야 곁에 오래 있었으니 요즘 왕야께서 자주 어디를 드나드시는지 알고 있겠지?”진하빈은 그 말이 섭정왕의 동선을 캐묻는 것이라 여겨,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저는 내원에만 머물어서, 왕야의 일정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밖에서 어디를 가시는지는 알지 못합니다.”최명주는 아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안타깝다는 눈길로 진하빈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이런 표정과 말투는 자신이 이어서 받아주길 바라는 신호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설령 훗날 최명주가 섭정왕비가 되지 못하더라도 진하빈은 그녀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 없었다.최 씨 가문은 대주 왕조 제일의 명문이었다. 뿌리가 깊어 왕야조차 함부로 맞설 수 없는 집안이었다.“아가씨께서는 왜 탄식하시는 겁니까?”진하빈은 순순히 물었다.“동생이 너무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안타까워서지. 그저 내원에서 얌전히 왕야만 기다리며, 밖에서 왕야가 어떤 요사스러운 여자들에게 홀려 동생을 잊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그 말에 진하빈은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설마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외부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녀는 섭정왕의 총애를 받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그저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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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윤부에 도착하자 최명주는 진하빈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그래도 나는 동생과 인연이 닿는 듯해. 마음이 늘 동생 쪽에 있거든.”그러자 진하빈은 얼굴에 감사한 기색을 띠었지만 속으로는 냉담했다. 이건 결국 자신의 손을 빌려 신수빈을 건드리려는 셈이 아닌가?진하빈은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그리고 신 씨는 어디까지나 윤 가의 부인이었다. 왕야가 잠깐의 신선함을 느낄 수는 있어도, 재가한 여인을 위해 자신의 명성을 해칠 리는 없었다.반면 최 씨는 달랐다. 불심을 내세운 얼굴 뒤에 독을 숨긴 여인이라 수단도 만만치 않았다.만약 그녀가 정말 왕부로 들어온다면 자신이 바라던 일은 모조리 물거품이 될 터였다. 그런 여인이 자신을 용납할 리 없었다.“언니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최명주는 곁의 시비에게 눈짓을 했고 곧 시비 하나가 진하빈에게 비단 주머니 하나를 건넸다. 진하빈은 영문을 몰라 최명주를 바라보았다.“이건 무슨 뜻이신지요?”최명주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나는 그 신 씨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강남 제일 미인이라는 명성쯤은 들었지. 전조의 황제마저 그녀가 자라기만을 기다렸다고 하더라. 그런 미인을 품에 안고서야, 왕야가 어찌 동생의 장점을 떠올리겠어?”그 말이 끝나자, 옆에 서 있던 몸종이 자연스레 말을 이었다.“진 아가씨, 이 주머니 안에는 향긋하고 달콤한 가루가 조금 들어 있습니다. 오늘 국화 연회에는 들벌이 많이 꼬일 텐데 이 벌들은 단내를 몹시 좋아하지요. 아주 소량만 써도 충분합니다. 사내들이 좋아하는 건 결국 그 얼굴이니 만약 그 신 씨의 용모가 상한다면 진 아가씨의 미모와 겨룰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진하빈의 마음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녀는 신수빈을 알고 있었다. 같은 얼굴을 하고도 항주의 선비와 문사들은 오로지 그 여인만을 찬미했고 자신은 늘 그 뒤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 같은 얼굴이라면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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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금자는 마님의 표정이 평온한 것을 보고도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그 소문난, 왕야께 시집간다는 최 씨 가문의 적장녀 말이에요.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다들 아부하고 달라붙는 건지 모르겠어요. 별처럼 떠받들기나 하고 말입니다. 솔직히 생김새도 마님만 못한데 왕야께서는 대체 그분의 어디가 마음에 들었답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비위를 맞추는 걸까요?”신수빈은 가볍게 웃으며 바늘과 실을 내려놓고 금자의 볼을 살짝 집었다.“그녀에게 사람들이 붙는 데는 이유가 있지. 하나는 머지않아 섭정왕비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야. 그녀에게 잘 보인다는 건 곧 왕야에게 줄을 서는 일과 같거든. 또 하나는, 그 집안 자체가 이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출 만한 값어치가 있어서야. 최 씨 가문은 씨족의 으뜸이지. 조정에 뿌리가 깊게 얽혀져 있어, 문하생이 천하에 퍼져 있어. 최 씨의 손을 잡으면 앞날이 어디까지 열릴지 알 수 가늠할 수 없을 정도야”금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박했다.“그럼 그냥 왕야께 잘 보이면 되잖아요. 지금 조정에서 왕야가 제일 세지 않으십니까? 설마... 최 씨 가문이 왕야보다 더 센 건가요?”신수빈은 세상 물정 모르는 금자의 맑은 눈을 바라보다가 씨족이 천하에 미치는 영향을 모두 설명하기엔 벅차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최대한 알기 쉽게 풀어 말했다.“조정의 일은 벼슬이 크고 작음으로만 돌아가지 않아. 벼슬이 아무리 높아도 하늘보다 클 수는 없지 않니? 그런데도 역대 왕조를 보면 모든 황제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야. 천자가 조서를 내려도 아래에서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 아랫사람들이 미적거리며 협조하지 않는데 무슨 정사가 제대로 굴러가겠니! 수단이 강한 황제라 해도 맞서 싸우기보다는 균형을 맞추는 게 더 나아.”금자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그럼 말 안 듣는 사람들을 다 죽이면 되잖아요. 그러면 해결되는 거 아닌가요?”신수빈은 웃음을 지었다.“그렇게 단순했으면 좋겠지. 과거제는 고조께서 입관하신 뒤에 세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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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아차, 들켰다!금자는 급히 머리를 감싸 쥐고 밖으로 달아났고 그 모습에 신수빈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지었다. 은보가 안으로 들어와 부인이 웃으며 백복 작은 이불을 접는 모습을 보고는 손을 내밀어 받아 들었다.“마님, 둘째 마님께서 손님들이 모두 도착했다며 마님을 모셔오라 전하셨습니다.”신수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청하는 어디에 있느냐? 아침 내내 보이지 않던데, 혹시 둘째 마님 쪽에서 부른 것이냐?”“아닌 것 같습니다. 아침 식사 시중을 든 뒤에 연지를 좀 사겠다며 외출했습니다.”평소 청하가 쓰는 연지와 분은 늘 신수빈과 같은 것으로, 밖에서 따로 사 온 적이 없었다. 모두 신 씨 가문의 상점에서 들여온 것이었다.“요즘 들어 청하가 자주 밖에 나가는 것 같네.”신수빈은 최근 한가할 때도 청하의 얼굴을 잘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그뿐만이 아닙니다. 나갈 때마다 식합도 들고 가는데, 반나절은 훌쩍 비우고 옵니다.”청하는 항주에서부터 함께 올라온 아이였다. 이곳 장안에는 친지라 할 만한 사람도 없었다. 은보의 말을 듣고 나니 신수빈은 대강 짐작이 갔다.나이가 차면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나 그에게 기울어지는 건 여자의 본성이다. 다만 돌아오면 조용히 물어봐야 했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인물인지. 미리 알아 두어야 청하가 상처 입지 않을 테니까.은보가 신수빈을 부축해 일으켰고 그녀는 국화원으로 향했다. 오늘은 규수들과 젊은 부인들뿐 아니라 장안의 몇몇 세가 공자들까지 자리를 함께했다.둘째 마님은 이 국화 연회를 빌려 자신의 장녀를 세상에 내세우려 했다. 모두에게 그 딸이 윤서령과는 다르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겉으로는 이 연회가 윤재인이 직접 준비한 것이라 전해 체면과 명성을 한껏 끌어올릴 셈이었다.이 국화원은 뒤쪽 정원에 있었는데, 대주 왕조는 본래 풍속이 개방적이어서 전왕조처럼 미혼 여인이 얼굴을 드러내지 못하게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전란으로 인구가 급감해 장정들이 전장에 나가 죽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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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최명주는 집안에서 큰 형수나 부친, 그리고 형제의 첩들이 아이를 가졌을 때를 숱하게 봐오며 자랐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전보다 몸이 불고 얼굴빛도 예전의 정교함을 잃기 마련이었다.그런데 이 신 씨는 달랐다. 배만 보아야 회임했음을 알 수 있을 뿐, 다른 곳에는 군살이라곤 전혀 없었고 오히려 기색은 더없이 맑았다. 눈빛은 봄샘과 가을 물처럼 윤택해서 시선을 돌릴 때마다 생기가 흘렀다.이런 여인을 보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사내가 대체 어디 있겠는가?회랑 너머에서 그녀가 하찮게 여겼던 그 선비들조차 저도 모르게 신 씨를 힐끗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최명주가 깔보던 그 미모야말로 사실 사내들이 가장 좋아했다.잠시 후, 최명주는 찻잔을 내려놓고 턱을 살짝 들었다. 아무리 곱게 태어났다고 한들 무엇이 문제인가? 이미 윤 가로 시집을 간 몸인데.설령 왕야가 아무리 그녀를 마음에 두었다고 해도, 신하의 아내를 강탈할 수는 없는 법. 결국은 이런 음지의 왕래만 이어질 뿐이고 마지막에는 자신들처럼 명문 세가의 적녀를 맞아 자손을 잇게 될 것이다.“마님께서 오셨군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태후께서도 극찬하신 최 씨 언니이십니다. 최 씨 가문의 적장녀시지요.”최명주는 원래도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있었다. 사족 가운데서 최 씨 가문이 차지하는 위상은 남다르고 어디를 가든 추켜세움이 따르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신수빈은 그저 예의 바르되 담담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었다.그 얼굴에 깃든 거리감은 마치 높은 자리에 선 이가 미물을 내려다보는 듯해, 최명주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했다. 그녀는 순간 멈칫했다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상인의 딸 주제에 어디서 이런 기세를 부린단 말인가? 감히 자신을 내려다보는 듯한 태도라니.세가의 자존과 오만을 몸에 지닌 최명주는 본디 이런 출신을 눈에 담지 않았다.입을 여는 순간, 말끝에는 자연스레 비아냥이 실렸다.“아, 이분이 바로 그 세자 부인이시군요. 듣자 하니, 세자 부인의 친정이 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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