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빈의 몸이 순간 굳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혼사라니요? 무슨 혼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당연히 우리 둘의 혼사지.”이도현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단정했고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신수빈이 그동안 마음속 깊이 눌러두고 있던 불안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 눈동자 깊은 곳이 잠시 흔들렸지만 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붙잡았다.“왕야께서 농을 하시는군요. 저는 윤씨 부인입니다. 헌데 어찌 왕야와 혼담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이도현은 신수빈이 스스로를 윤씨 부인이라 부르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속에서 일어나는 불쾌함을 눌러 담은 채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곧 그렇지 않게 될 것이다. 본왕이 무엇때문에 너의 친정을 끌어올리고 네 부친의 신분을 바로 세워주었다고 생각하느냐? 모두 문벌과 출신을 떠들어대는 자들의 입을 막기 위함이었다. 네가 아이를 낳은 뒤, 그 무능한 자와 이혼하거라. 마침 네 부모도 곧 경성에 들어올 터이니 내년 봄 꽃이 필 무렵, 본왕이 너를 정식으로 맞아들이겠다.”신수빈은 그가 자신을 왕부에 들이겠다는 것이 아닌 자신과 혼인하겠다고 말했음을 분명히 들었다.여전히 그녀가 눈을 크게 뜨고 있는 것을 본 이도현은 봄샘처럼 잔잔히 흔들리는 그녀의 눈빛이 유난히도 또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지며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속삭였다.“명매정취다. 삼매육례를 갖추고 조상과 하늘에 고하겠다.”신수빈은 그런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깊고 짙은 그의 눈동자에는 항상 이렇게 마음이 풀어진 순간마다 언제나 다정한 정이 깃들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멀어진 뒤였다.어젯밤 보았던 피로 쓴 서찰이 다시 눈앞에 어른거렸다. 핏빛 안개 속에서 전생의 기억들이 쉼 없이 스쳐 갔다.윤서원, 주서화, 태후, 불길, 뼈를 부수는 고통, 혼을 가두는 저주, 멸문…그는 분명 뛰어난 권력자였다. 황제가 되었다면 후세에 이름을 남길 명군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황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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