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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141 - Chapter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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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화

“괜히 저를 모함하지 마세요. 저는 그저 할아버지께서 집에서 자손들과 함께 평안히 지내시길 바랄 뿐입니다.”연기준은 미간을 살짝 치켜올리며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장군님께서 스스로 젊은 장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으시겠다고 고집하신다. 이미 행차는 정해졌고 네가 동행하기만 한다면 장군임께서는 무척 기뻐하실 거다.”서인경은 속으로 온갖 궁리를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그곳에 가려는 걸까?편히 쉬시라 거듭 말씀드렸는데도 듣지를 않으시니...그녀는 입술을 굳게 다문 뒤 단호하게 말했다.“저는 안 갑니다. 추위를 못 참거든요.”하지만 이 핑계는 연기준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오늘 같이 매서운 날에도 그녀는 도포조차 걸치지 않았고 평소에도 얇은 옷을 즐겨 입으며 추위를 탄 적이 없었으니까.“예전에 네가 제일 좋아한 게 바로 북방이었다. 장군님 말씀으로는 네가 어린 시절 눈 오는 날이면 달달거리고 눈밭에 뒹군 적도 있다더군. 사탕을 안 준다고 눈 위에서 구르던 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이냐?”서인경은 멍해졌다. 정말 그런 적이 있었던가? 희미하게 어릴 적 기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 순간, 그녀가 반박하려 했지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할아버지께서는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해주는 군.그날 저녁 내내 두 사람은 이 문제로 옥신각신했다. 연기준이 아무리 사정하고 논리적으로 설득해도 서인경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거절이었다.연기준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지만 밥을 제대로 삼키지 못했다. 반면, 서인경은 억울하고 화가 나 괜히 닭 반 마리를 더 먹어 치웠다.‘화이는 안 해 주면서 꼴도 보기 싫다고 나를 멀리 쫓아내려 해? 그럼 더는 희희낙락할 공간이 남지 않게 그냥 내가 그 자리를 꿰차고 있어주마.’그날의 식사는 겉보기에는 화목했으나 속은 삐걱거림뿐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부아가 치밀어 한 끼를 억지로 끝냈다.서인경이 뜰로 돌아오니 평이가 이미 자줏빛 궁중 예복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옷은 화려하기 그지없지만 평상복만큼 편하지 않아 입으면 손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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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2화

평이는 급하게 소리쳤다.“왕비마마, 이제 입궁하셔야 하옵니다. 왕야께서 사람을 보내 서두르라 하셨사옵니다.”서인경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곧장 화장하러 갔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평이와 온조가 분주히 움직이며 그녀를 꾸며주었다.그 시각, 그녀는 신식을 이용하여 약왕곡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서인경이 예전에 미리 사 둔 약재 분쇄 도구가 있었다. 그녀는 평이가 가져온 약재를 곱게 갈아 약왕곡에서 직접 뜯어낸 약초와 배합해 흰색 자기병에 담았다.손에 법보가 있으니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약을 정리하고 다시 본체의 몸으로 돌아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순간, 평이의 진심 어린 탄성이 들려왔다.“왕비마마,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왕야를 노리는 세가의 규수들도 감히 마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온조도 웃으며 맞장구쳤다.“미인은 살갗이 아닌 뼈대에서 비롯된다 하지요. 마마는 제가 본 그 어떤 여인보다 완벽하십니다.”서인경은 반신반의하며 몸을 기울여 동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해 보았다.과연 평이와 온조의 손재주는 그녀가 인정할 만큼 뛰어났다. 원래부터 뛰어난 골상이 그녀의 미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바로 그때, 마침 뜰로 들어서던 연기준은 멀리서 세 여인이 서로의 얼굴을 두고 아낌없는 찬사를 쏟아내는 소리를 들었다. 특히 서인경은 조금도 겸손하지 않았다.“내가 말해주지. 이 얼굴은 전무후무한 미모이다. 현대라면 연예계에 들어가 모든 사람을 짓밟아버렸을 외모야.”평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왕비마마, 연예계라는 게 무엇이옵니까?”서인경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즐거움을 주는 집단을 말하는 것이지.”평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그럼 청루 여인들과 다를 바 없지 않사옵니까? 왕비마마는 어찌 스스로를 청루 여인과 견주시는 것이옵니까?”그녀는 말을 내뱉자마자 자신이 실언했음을 깨닫고는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온조 언니, 미안합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언니는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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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서인경이 신나게 떠들다 어느 순간 익숙한 그림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손을 떨었다. 그러자 평이가 비명을 질러댔다.“꺄, 왕비마마! 눈썹… 눈썹이…!”애초에 화장 준비도 더디게 하던 터라 눈썹을 다시 그려 제대로 마차에 올랐을 때는 이미 예정 시간보다 반 시진은 늦어 있었다. 마부는 연회 시작을 그르칠까 걱정되어 그들이 막 마차에 오르자마자 채찍을 휘둘러 앞으로 내달렸다.서인경은 불시에 몸이 확 흔들리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번엔 크게 나가떨어지겠다 싶던 그때, 익숙한 기운이 덮쳐왔다. 연기준이 그녀의 허리를 움켜쥐어 단단히 품 안에 가둔 것이었다.“뭐? 돈을 벌어? 즐겨? 부러워? 다른 남자들에게 시중 받아?”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스치며 한 단어씩 내뱉을 때마다 그의 손길은 허리를 더 세게 조였다. 서인경은 그 ‘더러운’ 손을 억지로 떼어내려 했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습니다.”“흥.”연기준이 코웃음을 치며 손바닥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자세가 애매했던 터라 그녀를 받쳐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어루만지는 꼴이 되었다. 덕분에 서인경은 오히려 알 수 없는 간지러움에 휘둘려 몸을 비틀며 피했다.마차는 전속력으로 궁문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차체가 요동칠 때마다 서인경의 몸도 위아래로 흔들렸다.“왕야께서는 어찌 그리 속이 좁은 겁니까? 저는 그저 평이와 온조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 풀어주려고 한 말이었잖습니까? 그리고 저번에 배 위에서! 단 한 번뿐인 기회도 결국 왕야께서 망… 아니, 구해 줬잖습니까. 그럼 말로라도 아쉬움을 풀어야지요.”“그만 비비거라.”연기준의 호흡이 무겁게 가빠졌다. 서인경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자 곧바로 움직임을 멈췄다. 하지만 자신이 멈춰도 마차는 계속 흔들렸다. 가까이 붙어 있는 두 사람의 몸은 부딪히고 스치며 더욱 뜨겁게 맞닿았다.연기준은 끝내 손을 놓지 않았다. 서인경은 속으로 그를 향해 쌍욕을 퍼부었다. 애초에 그가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놀라게 하지 않았다면 눈썹이 삐끗해 다시 그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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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4화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이 있으면 셋째 도련님이나 좀 챙겨드리게.”서인경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맹은영은 맹경운이 한 아가씨만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눈이 번쩍 커졌다.“저건 누구 집 규수입니까? 본 적 없는 얼굴 같은데요.”서인경은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천주 진 가의 둘째 아가씨, 진가이라고 하네.”그러자 맹은영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다.“우리 오라버니께서 어찌 태황태후 집안 여인을 좋아할 수가 있습니까?”서인경은 천연스레 말했다.“사랑이 오면 막을 수 없지. 낭군은 재능이 있고 아가씨는 빼어나니 잘 어울리지 않은가?”하지만 맹은영은 여전히 발을 동동 구르며 오라버니가 계속 고개를 돌리지 않는 걸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아직도 보고 있네! 경성에 그렇게 예쁜 규수들이 얼마나 많은데 굳이 왜 하필 진 가 사람이어야 하냐고!”그녀의 반응은 서인경에게도 의외였다.맹은영은 결코 집안 배경이나 정견 차이 따위로 오라버니의 혼사를 반대할 리 없는 성격이었으니까. 평소대로라면 신이 나서 오히려 부추기며 호들갑을 떠는 것이 정상일 텐데.“진 가 사람들이 뭐 어쨌다고 그러는 겐가?”맹은영은 눈썹을 찡그리며 서인경 가까이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진선엽 그 인간은 완전히 미친놈입니다. 젊을 때는 저희 어머니가 아버지랑 혼약 중인 걸 알면서도 태황태후를 앞세워 억지로 빼앗으려 했었지요. 강제로 빼앗지 못하자 저희 어머니께서 강호를 떠돌며 이미 정절을 잃었다는 모욕적인 소문까지 퍼뜨렸습니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나서야 얌전해지셨지요. 한데 그 뒤로도 괴롭힘은 멈추지 않았어요. 첩을 들일 때마다 꼭 우리 어머니를 닮은 여인만 골라서 일부러 자극했다고요! 얼마나 역겨운 집안인지 마마께서는 몰라서 그런 겁니다. 우리 오라버니는 천하의 그 누구와도 혼인할 수 있지만 유독 진 가 여인만은 절대 안 됩니다!”서인경은 원래 잠시 화제를 돌리려고 했을 뿐인데 이런 뒷얘기가 있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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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맹경운은 곧장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그럴 리가 있겠습니까!”그는 겉으로는 공손했지만 속으로는 온갖 비아냥을 쏟아냈다.자기 왕비도 날마다 이혼 소동을 부리고 있는데 대체 무엇을 배워줄 수 있단 말인가?맹경운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연기준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그 여인이 널 알아볼 수 있겠느냐?”맹경운은 고개를 저었다.“그날은 얼굴을 가렸고 일부러 수법도 숨겼습니다. 그러니 절 알아볼 리는 없을 겁니다.”연기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이번에는 많은 세력이 얽혀 있다. 움직일 거면 뿌리째 뽑아야 해.”맹경운은 수많은 어린 딸아이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속이 타들어갔다. 하지만 상대 세력은 치밀하게 숨어 있었고 몇 해 전 한번 실패한 뒤로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번에야 겨우 단서를 찾았는데 다시 무모하게 덤빌 수는 없었다.“예, 언제든지 명을 받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연기준은 전각 안을 바라보며 물었다.“맹 아가씨가 이 일에 끼어들던데 맹국공은 뭐라 안 하시더냐?”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아버니께는 예전부터 제 여동생이 마음에 맞는 낭군을 만나 행복하게 살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꿈이 무산되었으니 차라리 마음 맞는 자매라도 만나 함께 지내면 좋겠다 하십니다.”연기준의 시선이 매섭게 번쩍였다. 맹경운은 그 얼굴에서 흔들리는 틈을 포착하고는 몰래 웃음을 참으며 목소리를 낮췄다.“왕야, 오해 마시옵소서. 그저 자매처럼 의기투합해 같이 일한다는 뜻입니다. 잃어버린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다 보니 은영이가 나서고 싶다 하였고 아버지는 이를 지지한 겁니다. 제가 사람을 더 붙여 지켜보게 하겠습니다.”연기준은 며칠 전, 맹은영 때문에 자신은 서재에서 자야 했던 일을 떠올렸다.주인의 뜰은 이미 그들 여럿의 거점이 되었다.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육승이나 안포도 쉽게 드나들 수 있는데 정작 자신은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 그의 미간은 잔뜩 찡그러졌다.“일을 하는 건 좋다. 그러나 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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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6화

서인경은 곧장 잘라 말했다.“대황자께서 무슨 오해가 있으셨나 보군요. 이 일은 대황자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대황자는 여전히 성의 가득한 태도를 유지했다.“어쨌든 황숙모를 지켜드리지 못한 건 제 불찰입니다. 앞으로 황숙모께서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말씀만 하십시오. 저는 온 힘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서인경은 그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제게는 이미 남편이 있습니다. 그는 진국의 상왕이지요. 그러니 저를 지키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그녀의 뜻은 명백했다. 남편이 있으니 네 차례가 올 리는 없다는 것.보통 사람이라면 얼굴빛이 변했을 텐데 대황자의 표정은 흔들림조차 없었다.“황숙부께서 황숙모의 신임을 얻으셨으니 이는 황숙부의 복입니다. 이제 어머니께서 곧 도착하시니 저는 마중을 가야겠습니다.”그가 떠나자 서인경의 얼굴은 곧바로 굳어졌다.맹은영은 서인경의 얼굴빛은 보지 못했지만 옆에서 은근히 수군거리며 과일을 베어 물었다. 그녀는 서인경의 팔을 잡아끌며 목소리를 낮췄다.“대황자께서 왜 그런 묘한 말을 하는 겁니까? 설마 마마를 연모하는 겁니까?”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그는 오직 권세만 좋아하네.”전생에서 그가 후궁에 들인 여인들은 모두 황위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되는 가문 출신들이었다.자신은 그의 황숙모이니 그가 이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 소문이라도 나게 된다면 천하의 조롱과 비난을 면하기는 힘들 것이다. 게다가 그라면 이런 상황에서 반드시 서 가를 희생양으로 삼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러니 대황자가 그녀를 좋아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다시 태어난 후, 많은 일들은 예측할 수 있었지만 대황자만은 늘 예외였다. 전생에서 접점이 적어 그녀조차 끝내 그의 속마음을 파악할 수 없었으니까.대황자가 막 자리를 비키자 바로 앞에 또 다른 한 사람이 서 있었다.오늘 청색 장삼으로 갈아입은 진방옥은 여전히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공자 풍모였다.“상왕비를 뵙습니다. 맹 아가씨, 또 뵙게 되었군요.”먹던 걸 방해받은 서인경은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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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화

맹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진 가는 하나같이 못돼 처먹었습니다. 마마, 절대로 그의 겉모습에 속지 마십시오.”서인경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이는 겐가?”맹은영은 불신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잠시 후, 연기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두 사람 앞에 멈춰 서더니 눈빛 하나만으로 맹은영을 쫓아냈다.“저, 저 가요, 저 갑니다!”그녀가 물러나자 연기준은 서인경 옆에 앉았다.“무슨 얘길 그렇게 하는 것이냐?”“여인들만 할 수 있는 얘기요.”서인경은 다시 음식을 한 조각을 집어 들려다 손이 덜컥 멈췄다.“가만히 있거라.”연기준은 그녀의 손을 눌러 멈추게 하더니 다른 손을 뻗어 머리 위로 가져갔다.“먹다 먹다 과자 부스러기도 머리에 붙이고 다니는 것이냐?”그 동작을 빌미로 그는 곧장 서인경의 손을 잡아 깎지를 끼고는 자기 무릎 위에 얹었다. 서인경은 두 번이나 손을 빼내려 했지만 허사였다.“제 손을 붙잡고 있으면 저더러 어찌 먹으라는 것입니까?”연기준은 흘깃 그녀를 보고는 태연히 말했다.“곧 폐하와 황후께서 들어오실 거다. 입가에 붙은 부스러기나 닦거라.”서인경은 얼른 입술을 만져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눈을 부릅뜨며 연기준을 노려보았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놀려먹은 게 기뻤는지 입가에 웃음을 띠며 흡족해했다.서인경은 분에 못 이겨 손에 힘을 주어 그의 손등을 꼬집었다. 그러자 연기준은 곧바로 다른 손까지 잡아 열 손가락을 포개어 두 손을 함께 무릎 위에 고정시켰다.서인경은 부아가 잔뜩 오른 표정으로 앉아있었지만 연기준은 여유롭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탁상 아래에서는 그녀가 팔과 다리로 버둥거리며 그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다. 이 모든 장면은 뒤쪽에서 몰래 지켜보던 맹은영의 눈에 한없이 부러움으로 비쳤다.“오라버니, 저 두 분 좀 보십시오. 정말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까?”맹경운은 흘깃 바라보다 차갑게 응수했다.“네 눈에는 저게 행복해 보이느냐? 왕야 손이 곧 퉁퉁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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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8화

“이분이 바로 명성이 자자한 상왕비시군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더니 이번에 입궁해 상왕비를 뵐 수 있어 영광입니다.”태황태후는 곁에 있는 사람이 서인경을 치켜세우는 꼴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얼굴의 주름살이 한층 더 깊어졌다.“언제 상왕비 이야기를 들은 것이냐?”그러자 진가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마마, 이미 민간에 떠도는 소문이 있사옵니다. 상왕비께서 지혜와 계략으로 역병에 맞서 백성을 고통에서 구해내셨다고요.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주신 만민의 구세주이자 보살이라는 칭송까지 받고 있사옵니다. 다들 상왕의 공로는 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이한 부인에게 있다고 얘기하고 있지요.”그녀의 말이 끝나자 전각 안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아무리 아량 넓은 군왕이라 해도 한 왕비가 만민의 구세주로 떠받들리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피와 땀으로 쌓은 전장의 공훈이 부인에게 가려지는 꼴을 누가 가만히 볼 수 있겠는가?서인경은 고개를 들어 순진무구한 눈망울로 자기를 바라보는 진가이와 시선이 맞닿았다. ‘이 자가 정녕 날 죽이려는 것이군.’그녀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빠르게 궁리하던 그때 탁자 아래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하찮은 백성들의 무지한 칭송을 감히 폐하와 백관들 귀에 들이밀다니! 이 얼마나 가당치 않은 일인 것이냐? 네가 입에 올린 그 이른바 기이한 부인이란 게 혼인한 지 3년이 되도록 자식 하나 못 낳고 남편과 말다툼을 하면 곧장 청루로 뛰어가는 자인 것이냐? 네 말은 수십 년 전장을 누비며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장수들의 공훈이 고작 그런 여인에게 밀린단 뜻이겠지? 이따위 망언은 우리 진국의 수만 장졸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국토에 묻힌 충혼들을 모욕하는 짓이다! 지금 그걸 알고 떠들어대는 것이냐?”서인경은 속으로 숨을 들이켰다. 놀랍게도 연기준이 자신을 헐뜯는 말을 하는데도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분노는 연기가 아니라 진심 같았다.연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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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연기준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저는 수많은 장졸들의 마음을 대신해 분노하는 것이옵니다. 그들이 피로써 싸운 헌신이 이렇게 비교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요.”황제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상왕 말이 옳다! 내년 군량을 오백만 냥 더 늘리도록 하겠다. 조정은 장졸들의 공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병부에서 맡거라. 절대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병부상서가 곧장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예, 폐하, 명 받들겠사옵니다!”연기준은 그제야 얼굴빛을 누그러뜨렸다.“신이 전선의 장졸들을 대신하여 폐하의 성은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옵니다.”옆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인경은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사실은 군량을 더 뜯어내려고 싶어서 연기한 것이었나?’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환관은 계속하여 진 씨 집안 사람들에게 다른 규수들도 소개해 주었다. 방금 막 상왕에게 꾸중을 들었던 터라 진 가의 사람들은 꼬리 내린 채 찍소리도 못 하고 얌전히 앉아 들을 수밖에 없었다.탁자 밑에서 서인경은 슬쩍 연기준의 손바닥을 긁었다. 그러자 그가 몸을 약간 기울이며 물었다.“왜?”“진가이가 왕야를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연기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녀를 살피더니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어떻게 알아챘지?”라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서인경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쳇, 이 전각 안에서 저한테 적대적인 여인들은 십중팔구 다 왕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든요.”연기준은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가볍게 웃어넘겼다.“질투하는 것이냐?”물론 그건 아니었다. 잘생긴 사람을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그걸로 질투할 거면 연기준처럼 잘생긴 남편을 두고 살 수가 없겠지.서인경이 그를 놀리려던 찰나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돌아보니 열다섯 째 황자가 서 있었고 그는 두 손에 푸른색 주머니 한 쌍을 들고 있었다.“모비께서 만드신 겁니다. 고모와 숙부께 드리라 하셨어요.”세대가 어긋난 호칭에 서인경은 두어 초 멍을 때리다 겨우 받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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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0화

단은설의 목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저는 상왕비와 함께 이 곡을 배운 적이 있사옵니다. 그때 스승님께서 상왕비의 거문고 실력을 두고 노련함이 극에 달했다고 칭찬하셨지요. 감히 청하오니 저는 비파를, 왕비마마께서는 거문고를 타서 함께 ‘새북곡’을 연주하여 이 자리에 계신 분들께 바치고자 하옵니다. 왕비마마, 어떻습니까?”서인경은 그 말에 얼굴이 굳어버렸다.왔구나, 왔어! 늦긴 해도 결국 오는구나. 이 지긋지긋한 궁중 암투가!그녀는 아쉬움 가득한 눈길로 손에 들고 있던 고기 완자를 내려놓았다.“오늘은 몸이 불편하고 준비도 하지 못했네. 괜히 분위기를 망칠까 염려되니 사양하겠네.”단은설은 고운 미소를 띠며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상왕비께서 겸손이 지나치십니다! 스승님께서 당시 말씀하시길 왕비마마는 실력의 십분의 일만 써도 경성의 모든 악사를 단숨에 제칠 수 있다 하셨습니다.”스승께서...? 나한테...?단은설의 발언에 막 무대를 마친 규수들 사이에서 곧바로 파문이 일었다.“십분의 일만 써도 제칠 수 있다니? 그렇다는 건 경성의 제일 재녀란 뜻 아니겠습니까? 그럼 장차 우리 대황자비보다도 낫단 말입니까?”“말도 안 됩니다! 정말 그런 재능이 있었다면 어찌 수년간 비웃음만 당했겠습니까?”“그러게! 왕비마마니까 스승께서 입 발린 소리 하신 거겠지요”“무슨 몸이 불편하다 그러십니까? 사실은 자기 실력이 뻔히 드러날까 두려운 거 아닙니까?”원래 서인경은 많은 여인들의 원망과 질시를 샀다. 그러니 이런 순간, 다들 여인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돌을 던지는 건 당연했다.서인경은 답답해하며 이마를 짚었다.그때, 오랫동안 말이 없던 황후가 입을 열었다.“폐하, 신첩이 예전에 상왕비가 거문고를 타는 것을 들은 적이 있사옵니다. 단 아가씨의 평이 결코 과장은 아니지요. 차라리 오늘 이 자리에서 한번 들려주시는 게 어떠하옵니까? 모두의 눈도 즐겁고 귀도 열릴 테니까요.”서인경은 뇌리를 빠르게 뒤졌다. 원래 몸 주인이 황후 앞에서 거문고를 탄 적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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