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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151 - Chapter 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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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서인경은 천천히 거문고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이 현에 채 닿기도 전에 경계심이 일었다. 거문고 현 위에는 화천세가 발라져 있었던 것이다.약임과 동시에 독인 그것.소량으로 사용하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지만 오늘처럼 의도적으로 듬뿍 발라 놓은 거라면 분명 치명적인 독이 될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즉사하는 것은 아니다. 약성은 3일 뒤 발동하여 의식이 멀쩡한 상태에서 칠규로 피를 쏟으며 말라죽게 된다. 죽는 모습은 극도로 참혹하고 흉측할 터, 그때쯤이면 증거는 이미 사라져 거문고가 원인임을 알아낼 수조차 없게 된다.서인경은 이 거문고가 단 가에서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궁에서 미리 준비해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자신의 목숨을 끊어버리기 위해 누군가 엄청난 값을 치렀다는 사실이었다.화천세는 본래 귀한 약초라 한 뿌리만 해도 은 백 냥은 족히 넘는다. 지금 발라진 양은 적어도 은 천 냥어치.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이토록 아낌없이 쓴 것을 보면 얼마나 자신이 간절히 죽기를 바라는지 알 수 있었다.서인경이 거문고에 가까워질수록 단은설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다. 그녀가 손끝으로 현을 튕기기를 고대하며 목을 길게 빼고 기다렸는데 서인경이 갑자기 동작을 멈췄다.그녀는 고개를 돌려 황좌 위에 앉은 황제를 향해 환히 웃으며 말했다.“전하, 용서해 주십시오. 신첩은 상왕부에 시집온 뒤로 사람들 앞에서 거문고를 탄 적이 없습니다. 제 거문고 소리는 오직 제 남편에게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그 말이 떨어지자 전각 안은 곧장 술렁이며 웅성거렸다.연기준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그녀를 깊게 바라봤고 황제는 흥이 깨진 듯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물었다.“상왕비, 고작 거문고 한 곡일 뿐이다. 설마 짐이 들을 자격이 없단 말이냐?”서인경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천하는 모두 전하의 것이니 전하께서야말로 들을 자격이 충분하지요. 다만 신첩의 처지를 헤아려 주십시오. 방금 막 제 남편의 노여움을 샀던 터라 돌아가서 풀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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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연기준은 잠시 멍하니 서인경을 바라보다가 이내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걸렸다.그는 일부러 몸을 기울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더 많이 먹어두거라. 그래야 돌아가서 혀를 잘 놀릴 것 아니냐.”서인경은 순간 몸이 마비되는 듯했다. 그녀는 모른 척하려 했으나 어쩔 수 없이 붉어진 얼굴은 감추지 못했다. 분노가 섞인 손길로 그녀는 식탁 아래서 젓가락으로 곧장 연기준의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하지만 그는 재빠르게 서인경의 공격을 막아내더니 그녀를 품 안에 끌어안았다.“급해할 것 없다. 돌아가서 천천히 하자구나. 본왕은 기다릴 수 있다.”그의 목소리는 적잖이 컸고 그 덕분에 주변의 관심을 비파 소리에서 둘의 자리로 끌어올 수 있었다.사람들은 또다시 경악했다.상왕비, 지금 이 자리에서 벌써 애정을 과시하려는 건가? 연인 바보일 뿐만 아니라, 아주 대담하기까지 하군.연주가 끝나자 모두가 환호했고 황제마저 손뼉을 치며 직접 상을 내렸다.단은설은 사례하면서 곁눈질로 연기준을 보았다.그는 서인경과 테이블 밑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맘 속에서 억눌러온 증오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그녀를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아 버리고 싶었다.서인경은 자신이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여러 번 눈빛으로 살해당하고 있다는 듯한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연기준은 아예 젓가락을 빼앗아버리고 그녀의 오른손을 자신의 허벅지 사이에 끼워 눌러버렸다. 넓은 곤룡포가 두 사람의 다리를 덮고 있어 밖에서는 그저 나란히 앉아 다정히 속삭이는 것처럼 보였다.서인경은 있는 힘껏 팔을 빼려 했지만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기준에게 따졌다.“놓으실 겁니까? 마실 겁니까?”연기준도 똑같이 낮은 목소리로 대꾸했다.“다시 찌를 것이냐? 말 것이냐?”서인경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러다 불현듯, 하나의 대책이 번뜩 떠올랐다.이성의 제동이 걸리기도 전에 다른 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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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태황태후는 이쪽에서 나는 소란을 들었다. 두 사람이 대전 한복판에서 서로 잡아끌며 장난치는 꼴을 보자 그녀의 미간이 찌푸러졌다.“대전 위에서 이게 무슨 체통이냐? 상왕비, 너희 서 가에서는 궁중 예법도 가르치지 않았더냐?”태황태후가 진심으로 노하자 대전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서인경에게 쏠렸다.그녀는 억울하다는 생각에 속으로 화를 억누르며 옆에 앉은 연기준을 흘겨보았다.그는 장난기를 거두고 드물게 태황태후의 노여움을 자신에게로 돌렸다.“모두 본왕의 잘못입니다.”태황태후는 방금 서인경이 한 모든 말과 행동이 혹시 연기였던 건 아닌지 강하게 의심했다. 그녀의 가슴속에 한 줄기 울분이 치밀어 오르려는 순간 가까운 자리에서 부드럽지만 은근한 농담 소리가 들려왔다.“아이고, 벌써부터 감싸고 도시는군요! 상왕비께서는 겉으로는 고생을 토로하는 척하시더니 사실은 우리 앞에서 자랑을 하시려던 거 아닙니까? 소문에 의하면 상왕은 어르고 달래줘야 하는 철부지 없는 남편이라고 하던데 지금 보니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느닷없이 입을 연 이는 서왕비였다. 그녀는 서인경에게 답할 틈조차 주지 않고 태황태후를 향해 웃으며 말을 이었다.“태황태후, 저 두 젊은 부부가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꼭 성조 선제와 태황태후 두 분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합니다. 그때 저희가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르지요. 그런 복은 태황태후 같은 재덕을 겸비한 분만 누리실 수 있는 특혜라 생각했으니까요.”서왕은 정사에 관여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위엄은 여전했고 서왕비의 체면 또한 함부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서왕비가 그 둘을 태황태후와 성조 선제의 부부에 견주어 말하자 막 터져 나오려던 태황태후의 질책은 목구멍에 걸려 삼켜졌다.잠시 어색하게 굳은 분위기를 곁에 있던 진가이가 재빠르게 풀었다. 그녀는 태황태후의 그릇에 음식을 덜어주며 말했다.“태황태후, 이건 제가 친히 어선방에 가서 만든 천주 별미입니다. 한번 맛보시옵소서.”비교가 되니 더 눈에 띄는 법. 태황태후는 눈치 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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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그 시각, 마음이 뒤숭숭한 것은 진방옥 역시 마찬가지였다.그의 시선은 줄곧 서인경이 앉은 자리로 향해 있었고 두 사람이 서로 잡아당기는 모습, 정확히 말하자면 연기준이 일방적으로 서인경을 붙잡고 늘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는 알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하지만 그 감정은 복잡하기 짝이 없어 스스로도 뭐라 설명하기 힘들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서인경 같은 기혼 여인에게 마음을 두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 오히려 방금 그녀와 어깨동무를 하던 그 작은 아가씨, 그쪽이 자신의 취향에 훨씬 가까웠다.그도 이미 알아본 바 있었다.들려오는 말로는 맹 가의 큰 아가씨는 대황자와의 혼인을 거부했다가 스스로 궁사점을 떼어내 버렸고 그 탓에 이 생애는 시집갈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궁사점이란 이 시대에서 여인의 정절을 증명하는 표시로 매우 중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진방옥의 눈에는 그게 대체 뭐가 그리 대단한가 싶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쓸데없는 표식일 뿐.그가 여전히 서인경 쪽을 향해 사색에 잠겨 있을 때 즈음 옆에서 누군가 팔꿈치로 그를 툭 건드렸다.“뭘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냐?”진방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본래라면 태황태후 곁에 앉아 있어야 할 진가이가 어느새 그의 곁에 앉아 있었다.“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둘째 누님께서는 왜 여기로 내려오신 겁니까?”진가이가 말했다.“태황태후께서 피곤하시다 하여 유모더러 모시고 가라 하였다. 내가 너에게 부탁했던 일은 어찌 되었느냐?”진방옥은 대놓고 서인경 쪽을 한번 바라보았다.“제가 말했잖습니까. 상왕비께서 허락하지 않습니다.”진가이의 눈매가 살짝 싸늘해졌다.“그까짓 상왕비 따위가 무슨 권리로 청루 여인을 거둬들이는 것이냐? 정말 그녀가 허락하지 않은 게 맞느냐?”진방옥도 확신은 없었다.“분명 상왕비께서 직접 말했습니다. 온조를 의자매로 삼았기에 이제부터는 온조를 여동생처럼 곁에 두겠다고. 상왕비의 뜻이 아니라면 남은 건 상왕뿐인데, 설마 상왕께서 온조를 데려가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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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진방옥은 본래 이번에 경성에 온 목적이 두 누이의 혼사를 정하기 위해서라 여겼다. 그러나 막상 경성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안에 자기의 혼사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는 이미 진선엽 앞에서 오래도록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는 누구와도 혼인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태황태후의 뜻을 따르거라.”두 번째 간청했을 때도 거절당하자 진방옥은 다소 낙담했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던 여인에게 마지막 기대를 걸고 살짝 그녀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큰 누님...”진 가의 장녀인 진보이는 연회 내내 시선을 대황자 쪽에만 고정한 채 마치 못 박힌 듯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동생의 애교 섞인 부름에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이 일은 내가 도와줄 수 없다. 내 혼사 또한 태황태후의 뜻에 달려 있으니.”태황태후가 직접 나서니 황후 또한 거절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측비의 자리를 허락했다. 그녀 역시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어찌 천한 상가의 여식이 자신 위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연회장에서 단여월이 대황자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마음은 삽시에 바뀌었다. 자신감과 동시에 멸시가 함께 피어올랐다.“대황자의 총애만 얻는다면 머지않아 중궁의 자리는 반드시 내 것이 될 것이다.”경성으로 오기 전, 그녀의 어머니가 당부한 말이 떠올랐다.“참거라. 그래야 큰일을 도모할 수 있다.”진방옥은 옆에서 투덜거렸다.“그건 누님께서 대황자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지요. 저는 그 아가씨 따윈 관심도 없습니다.”진보이는 정곡을 찔렸으나 소녀다운 수줍음 대신 허리를 곧게 세웠다.“나도 경성에 와서야 알았다. 대황자는 문무를 겸비하고 황제의 총애까지 받는 분이니 내가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하지만 네 둘째 누님은 어떠냐? 상왕을 몰래 좋아한 게 몇 년인데 끝내 명분은커녕 눈길 한 번조차 받지 못하니...”그 말에 진가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언니…”진보이는 예전부터 그녀를 제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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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두 사람은 열다섯 째 황자가 건네준 작은 폭죽을 손에 들고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속삭였다.“마마, 아까 왕야와 식탁 밑에서 대놓고 놀던데요?”서인경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다... 본 겐가?”분명 당시 연기준이 겉옷을 넓게 드리워 가려주었기에 봤을 리 없을 텐데.그렇지 않았다면 그녀가 열 개의 목숨을 가졌다 해도 대중 앞에서 어찌 감히 상왕을 희롱할 수 있었겠는가.맹은영의 목소리는 한껏 우쭐해졌다.“아이고... 제가 바로 마마 뒤에 앉아 있었는데 어찌 제 눈을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겁니까?”서인경은 변명하려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꿀꺽 삼켰다.“왕야께서 내가 살찐다며 젓가락을 뺏어갔네. 그러니 되찾아 와야 않겠나?”맹은영은 금세 흥이 식은 듯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고작 젓가락 싸움이라니!”서인경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확실히 맹은영은 정확한 내막을 모른 채 둘이 옥신각신거리는 모습만 본 게 맞았다. 그 사실에 서인경은 마음이 놓였고 그녀의 얼굴도 한결 태연해졌다. “그래, 그냥 젓가락 싸움이네. 그게 아니면 또 뭐가 있겠는가?”맹은영은 입술을 내밀며 말했다.“마마께서는 보지 못하셨겠지요. 두 분께서 그리 엉겨 붙어 있을 때, 단은설과 진가이의 눈빛은 마마를 죽일 것 같았거든요.”단은설의 반응은 늘 그렇듯 평범해서 놀랍지 않았다.하지만 진가이의 태도는 예상 밖이었다.“아가씨는 진가이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맹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출신에 대해서는 좀 들었지요.”서인경은 눈썹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출신?”맹은영은 차분히 말했다.“겉으로는 진 씨 부인의 적차녀라고 하지만 사실 친어머니는 진 씨 부인이 아니라 그녀의 이모라 하더군요. 예전에 진 씨부인의 서매(庶妹:남편과 첩실 사이에서 나은 자식)가 진선엽의 눈에 들어 첩으로 들어갔는데 그 총애가 워낙 대단해서 적실의 지위까지 위협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해 바로 진가이를 낳았지요. 하지만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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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서인경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호기롭게 말했다.“장가이가 내 남자를 뺏으려 하니 그녀에 대해 좀 알아본 게 뭐가 그렇게 큰일인 겐가? 내가 뭐 때린 것도 아닌고.”맹은영은 할 말이 없어 엄지를 치켜세웠다.“마마 진짜 멋집니다.”그때 연기준이 서인경을 찾으러 돌아다니다가 그녀의 당당한 발언을 듣게 되었다.그는 방금 마신 술기운이 도리어 더 진해진 듯 정신이 흐려졌다. 술기운이 머리끝까지 치솟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도는 기분에 당장이라도 부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 그녀를 거칠게 붙잡아두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찰나, 서인경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그리고 그 진방옥은 피부도 희고 곱상하게 생겼지. 예쁜 걸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나 다 있지 않은가? 그러니 몇 마디 물어보는 건 당연한 걸세.”맹은영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상왕보다 더 잘생겼다는 것입니까?”서인경은 곰곰이 그를 떠올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바로 그 순간, 연기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다른 종류의 잘생김이네. 연기준은 강인한 느낌이고 진방옥은 부드럽지.”“오호…”맹은영은 눈을 크게 뜨며 목소리에 음흉한 느낌을 가득 실었다.서인경은 즉시 그녀의 오해를 눈치채고 황급히 덧붙였다.“그런 의미가 아니네. 그냥 주는 느낌이 다르다는 걸세.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맹은영은 고개를 저으며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그녀를 훑어보았다.서인경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 경험도 없는 아가씨가 어쩌다 이런 은근한 농담에 그리도 능숙해졌단 말인가. 그녀는 결국 포기한 듯 투덜거렸다.“아가씨가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네. 어차피 나중에 연기준이랑 화이하면 진방옥 같은 강아지 상인 사내나 찾아야겠네. 말 잘 듣고, 잘생기고, 집안일도 잘하고, 애도 잘 보는 그런 사내 말일세. 그리고 나는 돈 벌어서 그를 먹여 살리면 되지 않은가?”연기준의 화는 머리끝까지 치솟았다가 순식간에 가라앉으며 술기운마저 반쯤 사라졌다.‘강아지 같은 남자라니? 이 미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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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갈림길에 선 서인경은 유모에게 명했다.“너는 돌아가서 사람을 불러오거라!”유모는 걱정스럽게 앞쪽을 가리키며 말했다.“왕비마마, 조심하십시오. 저 앞의 전각은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아 무척 황폐하옵니다.”서인경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걱정 말고 어서 가거라. 더 많은 인원과 함께 찾도록 해야지.”유모는 감히 지체하지 못하고 급히 뒤돌아 달려갔다. 서인경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선 황자를 찾는 게 급선무였으니.그런데 그녀가 막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묘하게 자극적인 꽃향기가 정면에서 훅 하고 밀려왔다. 향기가 너무 강렬해 반응할 틈조차 없었다. 잠시 후 그녀의 눈앞은 순식간에 암흑으로 가라앉았다. 서인경은 의식이 흐려지기 직전 검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여인의 뒷모습을 보았다.한편, 맹은영은 황급히 대전으로 돌아왔다.그곳은 술에 취한 웃음과 고성으로 가득 차 시끌벅적했다.그녀의 원래 목표는 맹경운이었지만 어디로 사라졌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끝에 결국 시선이 멈춘 곳은 연기준이었다.평소라면 감히 그를 함부로 붙잡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급했다.맹은영은 냅다 달려가 그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마마께서 왕야를 찾고 계십니다. 함께 가시지요!”연기준은 즉시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존재하지도 않는 먼지를 털어냈다.“할 말이 있으면 여기서 하거라.”맹은영은 원래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으나 그의 냉랭한 태도에 순간 다급해졌다.“열다섯 째 황자가 사라졌습니다! 마마께서 혼자 찾으러 갔는데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렵습니다.”그 말에 연기준의 얼굴빛이 단단히 굳어졌다.“인원을 더 보내거라. 다 같이 가서 찾아보도록 하지.”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몸은 이미 어둠 속으로 뛰어들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사람들도 그 소식을 듣자 즉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 시각, 숙귀비는 어서재에서 황제께 해장탕을 올리던 중이었다. 태감의 보고를 들은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사발을 놓쳐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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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뒤이어 들어온 환관들은 두어 초 멍하니 서 있었다. 밤의 적막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하고 적나라했다. 마치 고양이가 우는 듯한 소리...하지만 자세히 귀를 기울어 보면 남자의 거친 숨소리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기묘한 움직임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그러니 진짜 고양이는 아닐 것이다.두 환관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곧장 총관을 불러왔다.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지만 안쪽의 소리는 줄기는커녕 오히려 한층 더 격렬하고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파열하듯 이어지는 소리에 듣는 이들 모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감히 후궁을 더럽히다니! 목숨이 아까운 줄도 모르는 자가 있군!”“사람들이 다 모였으니 누가 없어졌는지 확인하면 되지 않겠습니까?”누군가 그렇게 말하자 일순간 모두의 시선이 엇갈렸다.“그러고 보니... 아까 상왕비께서 먼저 나서서 황자를 찾으러 갔다 하지 않았습니까? 한데 오면서 왕비마마를 본 자가 있습니까?”그 말에 사람들은 멍하니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때, 막 인파를 헤치고 들어온 맹은영이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빛을 바꾸었다.“함부로 농락하지 말거라! 마마께서는 그러 실 분이 아니다.”그 말을 들은 단여월은 곧 옆 사람에게 눈짓을 보냈다.미래의 대황자비에게 잘 보이고 싶은 자들이 눈치껏 나서며 말했다.“맹 아가씨, 성급하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상왕비의 평판이야 모두가 아는 사실 아닙니까? 혹여 상왕의 사랑을 얻지 못해 외로움을 못 이긴 건지도 모르지요.”맹은영은 번개처럼 그녀를 쏘아 보았다.“입 닥치십시오! 그쪽 남편은 첩을 여덟이나 들이지 않았습니까? 그와 반대로 상왕께서는 측실 하나 두지 않으셨지요. 이치로 따지면, 마마보다 훨씬 외로운 건 마님이 아닙니까?”“너…!”정곡을 찔린 상서부인의 얼굴은 핏빛으로 물들었고 그녀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그 자리에는 연기준도 함께 있었다. 그는 차가운 얼음을 품은 듯 싸늘한 기운을 흩뿌리며 마당 한가운데 서 있었다. 십 리의 공기마저 얼려버릴 듯한 기세에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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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이불에 둘둘 말린 채 무릎을 꿇고 있으면서도 두 사람은 서로를 놓지 못하고 꽉 껴안았다.그들의 움직임에 두툼한 이불이 흘러내리자 하얀 살결이 드러났다.여자는 부끄러움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남자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그녀의 의식은 또렷해 보였으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누가 봐도 약에 취한 상태였다.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은 그들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가 아니었다. 오직 그 불륜의 정체가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은 욕망뿐이었다.맹경운은 급히 손을 뻗어 맹은영의 눈을 가리려 했으나 그녀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그녀는 맨 앞에 서서 대놓고 두 사람의 얼굴을 살피더니 곧장 외쳤다.“진보이 아가씨와 단평안 도련님 아닙니까!”자신의 마마를 욕보이게 두진 않겠다는 기세였다. 이 말에 사람들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졌다.진보이는 대황자의 측비로 책봉될 예정이고 해가 바뀌면 정비와 함께 의식을 치를 인물이었다. 그리고 단평안은 이미 순성어사에게 잡혀 감옥에 갇힌 몸 아니었던가?그런 두 사람이 어째서 이곳에 나타나 파렴치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단 씨 자매였다. 그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만 지었다. 분명 오늘 서인경을 치욕의 나락에 빠뜨리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을 짰는데. 아니, 분명 그녀를 안에 들여보내지 않았던가!희미한 불빛으로 인해 처음에는 얼굴이 똑똑히 보이지 않았으나 궁인들이 등롱을 가까이 들이대자 두 사람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정말 그분들이군요!”“쳇, 저토록 뻔뻔할 수가!”평소 잘난 체하던 자들의 추한 꼴을 보니 사람들은 혀를 차며 조롱했다.진가이는 가만히 서서 구경만 했고 진방옥의 얼굴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는 더는 남녀의 예를 따질 겨를도 없이 곧장 겉옷을 벗어 누이의 몸을 덮어주기 위해 달려갔다.“누님, 정신 차리십시오!”환관과 궁인들도 서둘러 두 사람을 떼어놓으려 달려들었다.단은설은 얼른 하녀들을 불러 단평안에게 천 조각을 씌워 수치를 가리게 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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