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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9화

Author: 코코넛 서고
연기준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저는 수많은 장졸들의 마음을 대신해 분노하는 것이옵니다. 그들이 피로써 싸운 헌신이 이렇게 비교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지요.”

황제는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상왕 말이 옳다! 내년 군량을 오백만 냥 더 늘리도록 하겠다. 조정은 장졸들의 공훈을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병부에서 맡거라. 절대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된다.”

병부상서가 곧장 앞으로 나와 고개를 숙였다.

“예, 폐하, 명 받들겠사옵니다!”

연기준은 그제야 얼굴빛을 누그러뜨렸다.

“신이 전선의 장졸들을 대신하여 폐하의 성은에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옵니다.”

옆에서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서인경은 약간의 의심이 들었다.

‘사실은 군량을 더 뜯어내려고 싶어서 연기한 것이었나?’

한바탕 소동이 끝나자 환관은 계속하여 진 씨 집안 사람들에게 다른 규수들도 소개해 주었다. 방금 막 상왕에게 꾸중을 들었던 터라 진 가의 사람들은 꼬리 내린 채 찍소리도 못 하고 얌전히 앉아 들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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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거슬러   제1260화

    연풍이 아래로 내려가 살펴보고 돌아왔다.생사를 숱하게 겪어 온 그조차, 눈빛에 어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능지국 백성들 같습니다. 몸에 채찍질 당한 자국과 고된 노동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마 설장로가 끌고 와서… 유적을 짓게 한 듯합니다.”“참으로 천인공노할 짓이로군! 겉으로도 선해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잔혹할 줄이야…”서인경은 눈앞의 아름답게 지어진 이곳을 바라보았다.그 아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세상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탐낼 만한 것이었다.옛날에도 바로 이곳 때문에 천하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쟁탈전을 벌였고, 그로 인해 일불락 수십만의 백성이 설산에 묻혔다.그리고 지금 이곳에는 또 하나의 죄가 더해졌다.능지국의 수만 명에 이르는 무고한 백성들이 이곳에 묻혀 버린 것이다.“묻어주자.”서인경이 조용히 말했다.“일불락의 부흥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는 이곳을 떠나, 바깥 사람들처럼 새로운 터전을 다시 세울 수 있다. 되살려야 할 것은 사람이지 재앙이 아니거든.”모두가 말없이 고개를 떨궜다.끝없이 이어진 만인갱을 바라보며, 얼굴마다 깊은 비통과 참혹함이 서려 있었다.*반 달이 흐른 뒤, 설산에는 다시 한 번 눈사태가 일어났다.그러나 백 년 전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단 한 사람도 목숨을 잃지 않았고, 어떤 생명도 희생되지 않았다.다만 설산의 용맥이 끊어지며 모든 길이 완전히 막혀 버렸다.만수림의 모든 생명체는 막북 변방의 원시림으로 옮겨졌다.그 숲 근처에는 새로운 성이 하나 세워졌다.설성.그날 이후, 일불락은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일불락에 대한 모든 것은 영원히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그러나 그 혈맥만은 설성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며 살아 숨 쉬었다.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이들이 알게 되었다.그 성의 주인이 오랫동안 자취를 감췄던 진국의 황제와 황후라는 사실을.*성루의 가장 높은 곳, 서인경은 연기준의 품에 안긴 채

  • 시간을 거슬러   제1259화

    설장로는 과연 오랜 세월 설산에서 수행해 온 자다웠다.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온 사자후는 공기를 뒤흔들었고, 그 위력에 사람들은 일제히 팔을 들어 막아야 했으며, 더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곧이어 검은 그림자가 번쩍이며 서인경을 향해 덮쳐들었다.“조심하십시오!”“어머니!”서인경이 손을 들어 막아냈지만, 설장로의 장력에 밀려 몸이 연달아 뒤로 밀려났다.설장로는 땅에 내려서며 핏기 어린 눈으로 서인경을 몰아붙였다.“왜냐고요? 말해 보십시오. 어째서 이 세상에서 사라진 무공 비급을 당신 손으로 부숴 버린 겁니까? 당신도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까?”서인경은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냈다.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규화비급을 익히려면 만인의 피를 마시고, 만인의 살을 먹어야 합니다. 그 안의 고충술 또한, 우리 일불락 사람들의 피로 길러야 하지요. 일불락은 그런 해악을 남길 수 없습니다. 남을 해치고 스스로를 망치는 그런 것 따위, 저는 원하지 않아요.”“하!”설장로는 비웃음을 터뜨렸고, 살기는 더욱 짙어졌다.“당신 조상과 다를 바 없군요. 일불락 수령 일족은 하나같이 겁 많고 나약하며 어리석습니다! 항상 이런 식이니 일불락이 천하를 통일할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지요!”서인경의 눈동자는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이제야 알겠군요. 여와께서 처음 일불락을 세우실 때, 왜 수령 일족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주셨는지. 당신 같은 사람이야말로, 일불락의 재앙이자 치욕입니다. 그리고 수령 일족은 바로 당신 같은 자를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요.”“정녕 죽고 싶습니까!”설장로는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온 힘을 끌어모아 서인경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예상했던 참극은 일어나지 않았다.어느새 나타난 흰 그림자 하나가 그녀의 공격을 정면으로 가로막았다.예상치 못한 반격에 설장로는 기운을 거두지 못한 채, 그대로 역류를 맞고 피를 토해냈다.연기준은 하얀 옷자락에 눈송이가 몇 점 내려앉은 채, 마

  • 시간을 거슬러   제1258화

    설장로는 싸늘한 눈으로 막효연을 노려보았다.“애송이가 감히 어른에게 이 따위로 말하는 것이냐? 봉은노, 당신 손녀는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요!”그 말에 봉 대장로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 손녀를 어떻게 가르칠지는 제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다만, 방금 효연이 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답을 해 주어야 할 것 같군요.”그 한마디로, 봉 대장로는 분명히 설장로의 반대편에 섰다.사람들의 시선이 하나같이 자신을 향해 쏠리자 설장로의 얼굴이 마침내 일그러졌다.그녀는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며 냉소를 흘렸다.“이 혹한의 설산을 백 년이나 지켜왔습니다. 헌데 당신들은 제가 이대로 남의 밑에 들어가 살기를 원한다고 생각합니까?”그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역심을 품었군요.”“역심?”설장로는 하늘을 향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수령에게 복종하지 않겠다고 하면 곧 역심인 겁니까? 우리 여족은 천 년을 수령에게 충성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지난 백 년 동안, 이 설산을 지켜온 유일한 부족이기도 하지요. 그렇다면 우리도 스스로 문을 세우고 왕이 될 수 있습니다. 남의 숨결에 기대어 사는 건, 당신 같은 종이나 하는 짓이예요!”봉은노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되받았다.“여족이 재난을 당해 거의 멸족 직전까지 갔을 때, 살아남은 건 단 한 명의 족장뿐이었습니다. 그때 수령께서 자신의 수명 오십 년을 깎아 그 족장을 살려냈고, 그 덕에 여족의 혈맥이 이어진 겁니다. 누구도 여족에게 복종을 강요한 적은 없어요. 그때 무릎 꿇고 스스로 귀순을 택한 건, 당신 족장이었습니다. 설산을 지켜온 백 년 동안, 당신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스스로 왕이 될 수 있었겠지요. 헌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었으니까요. 수령의 보호 아래 안정을 누리면서, 남에게 짐을 떠넘기고, 뒤에서는 왕이 되려는 속셈이나 꾸미다니… 수령을 당신 사병쯤으로 여긴 겁니까? 세상에 그런 좋은 일이 어디 있습니까!”그 말을 듣자 설장로의 얼굴은 점점 더 음침하게 가라앉았다.“입

  • 시간을 거슬러   제1257화

    꼬막이는 작은 손으로 눈을 한 움큼씩 퍼서, 연기준의 몸 위에 덮어 올렸다.작은 얼굴은 울다가, 다시 찬바람에 말라붙기를 반복했고, 여린 피부는 이미 갈라져 터져 있었다.그는 울부짖듯 외쳤다.“아버지! 아버지 돌아오세요! 콜록… 콜록…!”목소리는 이미 쉰 지 오래였고, 한 번 외칠 때마다 격하게 기침이 터져 나왔으며, 온몸이 떨렸다.그는 겨우 한 살짜리였다.봉한설의 심장이 죄여들었다. 그녀는 달려가 아이를 품에 끌어안았다.연풍은 이미 눈이 붉게 충혈된 채, 자신의 망토를 벗어 꼬막이의 몸에 감싸 주었다.그러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연기준 곁으로 기어갔다.“주군… 소인이 마지막 길을 모시겠습니다!”뒤에 있던 암위들 또한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주군을 배웅하겠습니다!”우렁차면서도 비장한 목소리 속에는, 억누르지 못한 울음이 스며 있었다.그 장면 위로, 슬픔이 한 겹 더 내려앉았다.사람들은 몰래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설장로만은 끝내 믿지 못한 채, 천천히 다가갔다.눈으로 직접, 눈구덩이 속에 조용히 누워 있는 사람을 확인했다.이렇게 죽었다고? 목족의 유일한 혈맥이… 이렇게 사라졌다고?“언제 죽은 겁니까?”설장로가 서인경에게 물었지만, 서인경은 묵묵히 눈을 덮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반응하지 않자, 설장로는 성큼 다가가 서인경의 팔을 거칠게 붙잡고 흔들었다.“제가 묻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죽었냐고!”서인경은 초췌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언제 죽었는지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당연히 중요하지요!”설장로의 목소리가 조급하게 떨렸다.“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한 시진 안이라면 몸속의 피는 아직 따뜻합니다. 말하십시오. 언제 죽은 겁니까?”서인경은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어젯밤 오시에 죽었습니다. 설장로, 실망하셨겠네요.”“아닙니다!”설장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며 무너져 내리듯 외쳤다.“그럴 리 없습니다! 그는 목족의 마지막 혈맥인데 어떻게 죽을 수가 있습니까!”서인경이 굳이 더 말하지

  • 시간을 거슬러   제1256화

    “소인이 어찌 감히 장로님을 속이겠습니까? 저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습니다만, 이 혹한에 한밤중이라 사람을 내보내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우리 쪽에만 영향이 없다면, 내일 밝아진 뒤에 확인하는 편이 더 안전할 것 같은데 설장로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막수한은 자연스럽게 선택을 설장로에게 넘겼다.설장로는 막수한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상대해 온 사람이었지만, 그가 잔꾀를 부리거나 속임수를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결국 그녀는 일단 믿기로 했다.“그럼 돌아가자. 모두들 돌아가거라. 밤이 되면 만수림의 짐승들이 나온다. 살고 싶으면 괜히 돌아다니지 말거라.”설장로의 말이 떨어지자, 의문을 품은 사람들도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마지막으로 막수한은 연풍과 시선을 마주쳤다. 그 순간 연풍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혹시라도 막수한이 자신을 추궁하거나, 직접 따라가 보겠다고 나설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그렇게 되면 모든 게 드러나 버릴지도 몰랐다.다행히 막수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을 거두고, 그대로 방으로 돌아갔다.그날 밤, 어떤 이는 다시 깊은 잠에 빠졌고, 어떤 이는 끝내 한숨도 이루지 못한 채 밤을 지새웠다.그리고 동이 막 트려는 순간, 밖에서 처절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큰일입니다! 진국 황제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금족 족장이 사라졌단 말입니다!”문들이 하나둘 열리며, 사람들이 허둥지둥 밖으로 뛰쳐나왔다.설장로는 맨 앞에 서서, 소식을 전하러 온 하인을 붙잡았다.“누가 죽었다고? ‘없어졌다’는 건 또 무슨 뜻이냐!”하인은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이 추운 날씨에도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금… 금족 족장, 연기준 황제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수령께서 지금 산 위에서… 직접 장례를 치르고 계십니다!”순간, 모든 이의 머릿속이 하얗게 울렸다. 마치 벼락이 정수리를 내리친 것 같았다.봉한설은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어 가장 먼저 산을 향해 달려갔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곧 뒤따랐다.*설산 중앙, 일불락 유적

  • 시간을 거슬러   제1255화

    그리고 다른 이들 가운데 만약 마음속에 반심을 품은 자가 있다면 그들이 일불락에 끼칠 해는 백 년 전의 그것에 못지않을 터였다.유적이 열리는 순간, 수많은 보물이 숨겨진 이 땅은 적의 침입을 허용하게 되고, 결국 타인의 손에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 뒤 외적까지 끌어들이게 된다면 후환은 끝이 없을 것이다.예전의 서인경은 일불락 사람들을 아무 조건 없이 믿었다. 그러나 금족과 화족에서 배신자가 나온 이후로, 그녀는 더 이상 다른 이들을 그대로 신뢰할 수 없게 되었다.문득 낮의 일을 떠올리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만약 한 번 더 생각하지 않고 정말로 여섯 부족의 피를 썼다면 결과는 어땠을까?도대체 아직 자신이 모르는 것이 얼마나 더 남아 있는 것일까?꼬막이는 자신의 피가 유적에 들어갈 수 있고, 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마자 손을 내밀었다.“어머니, 베세요. 꼬막이는 안 아파요.”서인경은 가슴이 저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머니의 보물… 아주 조금만 쓸게.”꼬막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저 정말 하나도 안 아파요.”서인경은 꼬막이의 피를 조금 받아내고, 곧바로 지혈약을 뿌려 상처를 눌러주었다.작은 팔괘진은 꼬막이의 피가 닿는 순간, 즉시 반응했다. 강렬한 금빛이 번쩍이며 터져 나왔다. 그 빛은 마치 부처가 강림해 중생을 구제하는 듯, 주변의 눈밭까지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다음 순간, 눈앞의 설산이 우르릉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마치 거대한 양문이 정면에서 쪼개지듯 펼쳐졌다. 그 안쪽은 여전히 설역이었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집과 궁전이 서 있었고, 푸른 버드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그 풍경은 마치 만화 거장의 손에서 그려낸 동화 속 세계 같았으나 현실의 자연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겨울에 어찌 푸른 버드나무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분명했다.서인경은 틀리지 않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푸른 버드나무였다.“어머니, 너무 예뻐요! 지난번에 왔을 때는 이렇지 않았어요.”꼬막이의

  • 시간을 거슬러   제513화

    그녀는 설산에서 걸어 나온 뒤로 매일같이 이런 꿈을 꾸었다.그런데 오늘 누군가가 그녀에게 말했다. 여족뿐만 아니라 어족도, 심지어 일불락의 수장 일족도 모두 살아있다고.도대체 누가 그녀를 속이고 있는 것일까?중년 여인은 죽었다. 죽는 순간에도 얼굴에는 여전히 분노가 가득 남아 있었다.막수한은 장검을 거두고 연기준을 바라보았다.“이 여인은 여족의 작은 지류에 불과하니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다만 설장로의 공력으로도 설산 밖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그녀는 설산을 빠져나와 능지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렇다는 건

  • 시간을 거슬러   제555화

    이번에 서인경은 반드시 검은 옷 사내를 제거하겠다는 결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를 없애야만 마음 놓고 이곳을 떠날 수 있을 테니까.갈대밭 깊은 곳의 대나무 집.바깥에서 누군가 발을 들이자 사내는 즉시 눈을 떴다. 어제 역공으로 입은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았지만 그는 몸을 일으켜 창밖의 풍경을 살폈다. 창가에 달린 풍령(风铃)이 쉬지 않고 흔들리며 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는 바깥의 장치가 이미 뚫렸다는 신호였고 외부의 침입자들이 장벽을 통과하고 있다는 뜻이다.사내의 얼굴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어제 그 붉은 털 늑

  • 시간을 거슬러   제525화

    서인경은 낮이 저물고 밤이 찾아올 때까지 두 늑대를 따라 굽이진 산길을 오르고 또 올랐다. 길이 얼마나 꼬불꼬불한지 그녀는 몇 번이고 방향을 잃을 것만 같았다. 서인경은 여러 번 멈춰 서서 늑대에게 물었다.“도대체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그러나 늑대는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옷자락을 이로 물고 놓아주지 않았다.서인경은 이 늑대가 자신을 해치지 않으리란 걸 알기에 따라왔지만 이쯤 되니 인신매매범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길 중간에 몇 번이나 쉬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마침내, 두 늑대는 그녀를 이끌고 한

  • 시간을 거슬러   제538화

    서인경의 심장은 북을 쳐대듯 거세게 뛰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그녀는 눈앞의 맹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리의 맨 앞에 선 호랑이는 살기를 머금은 눈으로 서인경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마지막엔 그녀의 꽉 쥔 주먹에 시선을 고정했다.서인경은 그 시선을 따라 손을 내려다보았고 순간 심장이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역시 이곳의 짐승들은 밖의 것들과 달랐다.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호랑이가 반응하기도 전에 서인경은 재빨리 손을 들어 가루를 한 움큼 뿌렸다. 그러나 뜻밖에도 호랑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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