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풍루 꼭대기, 천자호라 불리는 객실.예정훈은 이른 새벽부터 이곳에 와 아침을 들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도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창가에 앉아 성문 밖으로 번화한 경성의 거리를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만 두 주전자나 되는 차를 비워냈다.곁에서 모시는 홍복은 의아하기도 하고 또한 은근한 불안에 사로잡혔다. 그는 알았다. 어젯밤 상왕비를 만나고 돌아온 뒤로 자신의 태자가 어딘가 달라졌음을.그는 차를 새로 따르며 조심스레 몸을 기울였다.“태자 전하, 무슨 심사가 있으신 것이옵니까?”예정훈은 잠시 침묵하더니 묘한 빛이 서린 눈길을 홍복에게 던졌다.“홍복, 그대는 내 모비 곁에서부터 모셔온 사람이기도 하고 또 내가 가장 믿는 자이기도 하다. 만약 그대마저 내게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면 내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다는 보장은 없겠지.”그 말에 홍복은 기겁하여 즉시 무릎을 꿇었다.“태자! 노복은 하늘에 맹세코 태자와 선황후를 향한 충심에 털끝만큼도 숨기는 것이 없사옵니다! 노복 일가의 목숨은 선황후께서 친히 구해주신 바, 감히 배반할 리 있겠사옵니까?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벼락이 쳐서 온 집안이 멸절하기를 원하옵니다!”“그만, 과중한 말은 하지 말거라.”예정훈은 손을 뻗어 그를 부축하며 고개를 저었다.“그 말이면 충분하다. 미안하구나. 사방이 함정인 듯한 지금, 내가 경계심을 늦출 수가 없어서 그리한 것이다.”홍복은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답했다.“태자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 노복은 탓할 수 없사옵니다. 다만, 분명 무슨 일이 있으신 듯한데... 만약 태자께서 노복을 믿으신다면 함께 의논해 주시옵소서.”예정훈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시선을 홍복에게 고정했다.“그대는 모비를 오래 모셨지. 혹시 모비와 진국 서 씨 집안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아는가?”홍복은 깊게 주름진 이마를 매만지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다 불현듯 눈빛이 번쩍였다.“노복, 생각났사옵니다. 진국의 대장군 서회윤이 일찍이 우리 야랑국에 와서 삼 년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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