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일불락의 야명주에 대해 막 성주께서는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야명주요?”막수한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야명주는 금족의 물건입니다. 예전 금족은 일불락과 인접해 살던 작은 부족으로 야명주 산출로 생계를 이어가던 집단이었습니다. 훗날 금족의 수장이 중병으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일불락의 수장이 그의 목숨을 구해 주었지요. 그 일을 계기로 금족은 일불락에 귀속되었고 부족에서 가장 귀중하게 여기던 극상품 야명주를 바쳤습니다. 빛을 밝힐 뿐 아니라 부패를 막는 효능이 있는 물건입니다. 일불락의 역대 수장들은 모두 사후에 야명주의 보호를 받았지요. 한데 왕야께서는 어찌하여 갑자기 이 이야기를 꺼내신 겁니까?”연기준은 사실대로 말했다.“제 모후의 관 안에 누군가 야명주를 넣어 두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났음에도 시신이 변하지 않았어요.”막수한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는 지금 믿기 어려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왕야의 모후라면... 희태비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혹시 희태비께서도 일불락의 후손이신 겁니까?”말을 하다 말고 그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닙니다. 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로 불가능합니다.”연기준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어째서 불가능하단 겁니까?”막수한의 표정이 단단해졌다.“극상품 야명주는 일반 야명주와 다릅니다. 영성을 지닌 물건이지요. 일불락 수장 일족 가운데서도 오직 수장만이 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일불락의 멸망에는 진국의 전대 상왕 연강호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희태비는 진국의 황비였습니다. 야명주는 원한의 기운을 감지하기에 적의 혈통을 보호할 리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는 가능성은 하나뿐입니다.”막수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게 이어 말했다.“희태비가 금족 출신일 경우입니다. 그리고 야명주를 관에 넣은 사람 또한 금족의 후손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돌아가는 길 내내, 연기준의 머릿속에는 막수한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설산의 후예들이 점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는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에요. 천하가 요동칠
온조는 허리를 굽혀 예를 갖추고 차분히 대답했다.“왕야께 아룁니다. 대장로께서 며칠에 한 번씩 노장군의 맥을 짚고 계십니다. 대장로의 말씀에 따르면, 노장군께서는 연세가 있으신 데다 원래도 예전 같지 않은 몸에 섭혼술 이후의 부작용이 후유증으로 남았고 그 뒤 설산에서 오랫동안 얼어붙은 채로 지냈던 탓에 단번에 많이 쇠약해지셨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요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한데 노장군께서는 편히 쉬지 못하시고 날마다 경성에 있는 분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연기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알겠다. 수고가 많다. 계속 잘 보살펴 드리거라.”온조는 고개를 끄덕였다.“왕야 염려 마십시오. 왕비 마마께서 저희 자매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저희는 온 힘을 다해 노장군을 모실 것입니다.”연기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났다.그가 경성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로 막수한은 줄곧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마침내 그를 맞이할 수 있었다.연기준이 모습을 드러내자 막수한은 곧바로 그를 서재로 안내하고는 몇 통의 서신을 꺼내어 공손히 내놓았다.“왕비 마마께서 저에게 보내신 서신입니다. 일불락의 행적이 이미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고 지하흑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으니 설산으로 철수할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연기준은 서신을 받아 펼쳐 보았다. 확실히 서인경의 필체였다.그녀는 언제나 영민하니 지하흑시의 정체와 내력을 이미 오래전에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서신이 쓰인 시점을 확인한 순간, 연기준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와 예정연이 서재에서 단둘이 있던 장면을 서인경에게 들킨 바로 그날이었다.그때의 그녀는 분노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이 서신에 적힌, 철수하라는 말에는 아마도 연기준 자신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이 서신이 타인의 손에 들어갈 경우 얼마나 위험한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보냈다는 것은 그 뒤에 자신에게조차 숨긴 또
그녀는 결국 돌아오고 말았다.사신단이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작스러운 폭우가 앞쪽 다리를 무너뜨렸다.연기준은 즉시 명을 내려 사신단을 그 자리에 이틀간 머물게 했다.그 이틀 사이, 그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대열을 빠져나왔다. 그가 향한 곳은 지하흑시였다. 그는 서인경에게 약속한 바가 있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서회윤과 숙귀비를 직접 확인하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지하흑시가 바로 그들의 은신처였다.그러나 서회윤을 직접 만나고서야 숙귀비가 열다섯 째 황자를 걱정해 신분을 바꾸고 다시 궁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서회윤은 대장로의 득월산장에 몸을 숨기고 있었고 온조와 온난 자매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인경을 생명의 은인처럼 여겼기에 서회윤 역시 친조부를 모시듯 정성껏 보살피고 있었다.서회윤은 이미 의식을 되찾은 상태였으나 섭혼술의 부작용을 겪은 데다 설산에서 한차례 혹독한 동상을 입은 뒤라 몸 상태는 예전 같지 않았다.연기준이 도착했을 때, 서회윤은 막 약을 마신 뒤 처마 아래에 누워 빗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가 문을 들어서는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서회윤의 귀 옆으로 드러난 흰머리였다. 그는 눈에 띄게 늙어 있었다.연기준을 본 서회윤은 비교적 담담했다. 하루 전 이미 연기준이 찾아올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왔습니까? 인경이와 아이들은 무사합니까?”연기준은 우산을 접고 그의 곁에 앉았다.“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만 인경이는 늘 노장군을 걱정하며 직접 찾아뵙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 열다섯 째 황자도 많이 성숙해졌습니다.”서회윤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인경이에게 전해 주세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지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열다섯 째 황자, 그 아이는 참으로 가혹한 길을 걷고 있군요.”“황실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면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 후궁에 황자가 그렇게 많지만 편히 살아갈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지요.”그 말에 대해 서회윤은 더 이상 할 말을 잇지 못했다. 요즘 들
서인경은 연기준의 인품을 믿지 못해서 이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명성과 지위를 생각해 보았을 때 그가 정말로 다른 여인을 원했다면 진작에 후원은 처첩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그러니 굳이 수도를 떠나 몰래 누군가를 만날 이유는 없었다. 더구나 태황태후 역시 그에게 첩을 들이기 위해 굳이 자신을 찾을 리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늘 경계와 계산으로 가득 찬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서인경은 그 끝을 가늠하기 힘들었다.21세기에서 온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누리며 살아온 여자였다. 돈도 있었고 외모도 출중했으며 남편과 아이까지 있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대에 와서도 말 그대로 부유하고 권세 있는 귀부인의 삶을 살고 있었다.날마다 노동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고 생계를 위해 머리를 쥐어짜야 할 이유도 없었다. 제혁에서 해마다 들어오는 배당금만으로도 손이 모자랄 정도였다. 원한다면 산천을 유람하며 아직 오염되지 않은 이 대호강산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갈 수도 있었다.그런데 지금 왜 이 좁은 땅에 발이 묶인 채 이런 음모와 암투에서 서로를 속이고 견제하는 일에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걸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자신의 일불락 설산으로 돌아가 호롱이와 늑대들과 함께 지내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이번 생에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고 그로 인해 지금의 많은 일들이 전생의 궤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황제가 이 몸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차기 황태자가 누가 될지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계획한 금선탈각이 과연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역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이었다.당장의 최우선 과제는 열다섯 째 황자를 사라지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래야만 그녀와 연기준이 더는 뒤탈 없이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서인경은 열다섯 째 황자를 가짜 죽음으로 빼돌릴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소식을 전하자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대신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왔다.서인경이 봉투를 열자 안에는 힘차고 또렷한 필체의 글이 한 줄 적혀 있었다.열다섯 째 황자는 이제
소위 말하는 내연녀라는 표현 역시 서인경이 처음 가르쳐 준 말이었다. 맹은영은 이제 그 말을 제법 입에 붙여 쓰고 있었다.서인경은 난처한 듯 그녀를 흘끗 보았다.“사내가 정말로 바람을 피우고 싶어 한다면 그 상대가 누군지는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네. 그러니 내연녀를 찢어 봐야 소용없지. 후환을 완전히 끊고 싶다면 먼저 사내부터 찢어야지 않겠는가? 이 방법, 그대도 잘 배워 두시게.”“쯧.”맹은영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제가 그런 걸 왜 배웁니까? 저는 평생 시집도 안 갈 건데요.”그제야 서인경은 맹은영이 한때 대황자부에 시집가지 않기 위해 스스로 궁사점을 없애고 평생 혼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사실을 떠올렸다. 물론 그때는 궁지에서 나온 임기응변이었지만 정말로 마음을 나눌 사람을 만난다면 서인경은 그녀가 행복해지길 바랐다.다만 맹은영이 정말로 개의치 않는 것인지, 아니면 어떻게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과거를 꺼내는 그녀의 말투는 지나치게 가벼웠다.“궁사점도 없으니 어느 사내도 저를 원하지 않겠지요. 한데 저도 맹국공 집안 권세나 노리는 속물 남자들은 질색입니다. 외삼촌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저 혼자 잘 살라고 큰돈을 남겨 두셨답니다. 조카들 역시 장차 제가 늙으면 자기가 모시겠다고 서로 나서고 있고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폐하나 황후께서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실 테니 그땐 제가 뭘 하든 간섭할 사람도 없습니다. 돈이 있으니 영앤핸썸인 사내들이야 마음껏 즐기면 그만이지 않겠습니까?”영앤핸썸이라는 표현 역시 서인경이 알려 준 말이었다. 21세기 출신인 서인경도 맹은영의 이 같은 발상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담력도 있고 계산도 빠른, 그야말로 본받을 만한 인물이었다.더 말할 것도 없이 곁에 있던 연풍과 평이, 봉한설은 그저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중 서인경과 봉한설은 질투 섞인 부러움이었고 연풍과 평이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그, 그런 삶도 가능한 겁니까?”“맹 아가씨는 정말로 세상 이치를 벗어나 계십니다.”
그 유모는 태황태후가 직접 붙여 보낸 인물로 유가영을 돕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사람이었다. 이전에도 그녀는 자주 연도현에게 들여보내질 여자들을 감시하러 보내졌었다. 도중에 겁을 먹고 물러서려는 이들을 다루는 일쯤은 이미 손바닥 보듯 익숙했다.“태황태후께서 뒤에 계시는데 아가씨께서는 무엇을 그리 걱정하십니까? 정말 이대로 돌아가실 셈이신가요? 상왕을 잡지 못한다면 유 가는 태황태후께 아무 쓸모 없는 집안이 됩니다. 유 아가씨께서는 잘 생각해 보십시오. 유 상서께서 아가씨에게 과연 얼마나 더 인내심을 가질 것 같습니까? 듣자 하니 유 상서께서는 이미 화류병(花柳病: 성병)에 걸린 승상의 아들을 사위로 삼아 적출인 큰아들에게 앞길을 열어 주려 한다고 하더군요.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병든 남자에게 시집가 후반생의 행복을 통째로 망칠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상왕비의 자리를 위해 한 번 크게 걸어볼 것인지.”선택지의 격차가 클수록 그 유혹은 더 치명적이었다. 유가영은 돌아가 맞닥뜨릴 자신의 운명을 떠올리자 온몸이 저절로 떨려왔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유모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남겠습니다. 상왕비의 자리를 위해, 한 번 끝까지 가 보겠습니다.”유모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여 당부했다.“반드시 성공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이 자리가 누구 덕분인지 잊지 마세요. 태황태후께서 아가씨를 이 자리에 올려놓으신 겁니다. 베갯머리에서 불어넣을 말이 무엇인지는 아가씨께서도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유가영은 즉시 충성을 표했다.“염려 마세요, 유모. 태황태후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는 모두 태황태후의 뜻을 따르겠습니다.”어둠 속에 숨어 있던 무현은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소리 없이 비웃음을 흘렸다. 사람들이 자리를 떠난 뒤에야 그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연기준에게 보고하러 향했다.사신 길에 오른 도중, 연기준이 침상에 기어오른 여인을 거의 죽일 뻔했다는 일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중요한 소식은 늘 더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