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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시간을 거슬러: Chapter 891 - Chapter 900

902 Chapters

제891화

악어들은 모두 얼굴에 슬픔을 드러냈고 서인경은 그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보았다.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조용히 물었다.“연강호는 왜 너희를 잡아 온 거야?”[악어 고기는 원래 대보약입니다. 거기에 일불락의 악어는 인간의 내공을 크게 끌어올려 주지요. 연강호는 일불락의 법력 비급을 손에 넣은 뒤 저희를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야 수련 효과가 배로 뛰니까요.][헌데 이상하게 그가 두 번째로 설산에 들어간 뒤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그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서인경은 연강호에 대한 증오가 더욱 깊어졌다. 그 천인공노할 인간, 지난번 설산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설령 이 전각을 벗어날 수 없더라도 서인경에게는 그들을 구할 방법이 있었다.그녀는 도팔천의 약왕곡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든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그 안에는 내가 일불락 유적에서 가져온 온천수가 있어. 너희만 쓸 수 있게 따로 강 하나를 파 줄게. 다만 내가 다시 설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그 안에서만 지내야 해. 밖으로는 못 나가.”장소를 옮길 수 있다는 말에 세 마리 악어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좋습니다! 이 썩은 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요.][예전에 설산에도 약왕곡이 있었는데 당신 공간과 비슷할까요?][자기 편이 만든 거라면 분명 비슷할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되네요.]악어들은 모두 동의했고 서인경은 공간을 열어 그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였다. 곡 안에서는 온천수가 졸졸 흐르고 있었고 악어들은 멀리서부터 물소리를 듣고 흥분했다. 물 밖에 있는데도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서인경보다 더 빠르게 기어갔다.온천가에 도착하자마자 셋은 동시에 몸을 던졌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고 크지 않은 온천은 순식간에 꽉 차 버렸다. 그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확인한 서인경은 열다섯 째 황자가 걱정돼 더 머물지 않았다.“안에 먹을 것도 있고 마실 것도 있으니 알아서 해결해.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가능하면 내가 다시 들어오마.”악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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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2화

서인경은 잠시 말을 멈춘 채, 열다섯 째 황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직 몇 달은 더 지나야 겨우 열 살이 되는 아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단 하루 사이에 총애받던 황자에서 누구에게나 짓밟히는 존재로, 그리고 친아버지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만인의 사랑을 받던 자리에서 한순간에 아무것도 없는 처지로 되어버린 것이다.서인경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부서진 무언가를 보았다. 그녀는 열다섯 째 황자를 품에 끌어안아 주었다.“황실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고 생사여탈을 쥔 자리야. 구오지존이라는 권좌, 그리고 장생불사라는 욕망, 그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인간 본성 가장 밑바닥의 욕심이지.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위치라 그런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뿐이야. 황실 사람들은 발끝만 들면 손에 닿을 수 있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은 도박을 해보려는 거야. 황실의 감정이 쉽게 무너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이란 존재의 본성 때문이기도 해.”현대에서는 흔히 그 세계는 원래 복잡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서인경은 늘 생각했다. 문제가 있는 건 세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지금의 황실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결국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열다섯 째 황자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사촌 누님, 저건 독이잖아요. 저는 죽는 건가요?”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절대 안 죽어. 내가 장담해. 우리는 둘 다 살아.”남매는 서로에게 기댄 채 벽에 남은 마지막 햇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완전히 어둠으로 바뀔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열다섯 째 황자는 말했다. 모후와 외조부가 너무 보고 싶다고, 서 씨 가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서인경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서 씨 가문의 운명과 함께 묶인 이후로 그들 모두는 이미 그녀의 피붙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꼬막이도 그리웠다. 채 한 살도 되기 전에 곁을 떠난 아이. 지금쯤 어떻게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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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3화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과 고생을 겪었을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황제의 눈을 피해 후궁까지 숨어 들어오기 위해 그도 큰 준비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늦었다고 탓하면 안 되는데...서인경은 모든 경계를 내려놓는 순간 결국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았다.왜 이렇게 늦었냐고.그녀는 정말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더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연기준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슴이 제대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너희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또렷하고 분명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와 몸을 감싸는 온기 속에서 서인경은 천천히 눈을 떴다.꿈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돌아왔다.연기준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던 열다섯 째 황자는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황숙이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라 믿었으니까.그날 밤, 서인경은 연기준의 품에 안긴 채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낮은 목소리로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연기준은 듣는 내내 마음이 서늘해졌다.“내가 상왕부에 남겨둔 사람들은 너랑 꼬막이를 지키라고 둔 거였다. 헌데 넌 오히려 그들을 먼저 지켜주고 모든 암위를 다 빼서 나를 찾게 했지. 네가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나는 어쩌라고 그런 것이냐?”서인경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허리에 부볐다.“폐하께서는 저를 쉽게 죽이지 않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계산하고 있었거든요. 헌데 그들 중 누가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게 다 제 약점이 됐을 겁니다.”연기준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끌어당겼다.“앞으로는 무조건 너 자신부터 생각하거라. 설령 우리 아들과 너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와도 난 네가 먼저였으면 좋겠어.”서인경은 그의 허리를 꼬집으며 투덜거렸다.“말도 안 됩니다. 그 애는 당신 친아들이예요.”“너보다 친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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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4화

매일 자시는 황제가 단약을 복용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 태의원에서 모습을 감췄던 두 명의 태의가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 편전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각각 쟁반 하나씩을 들고 있었고 쟁반 위에는 흰색 자기 그릇이 놓여 있었다.두 태의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고 내시가 다가가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그 안에는 검은색 단약 두 알이 드러났다.“폐하께 아뢰옵니다. 이는 폐하께서 내려주신 반쪽 비방을 토대로 연성한 단약입니다. 비방이 완전하지 않아 약효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이 단약으로 몸을 보강하시길 바랍니다.”내시는 두 개의 자기 그릇을 황제 앞에 올려두었다. 황제는 음침한 얼굴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탁자를 쓸어버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상주문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짐이 원하는 건 강신이 아닌 장생불사다! 이 정도 일도 못 해내는데, 너희는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두 태의는 겁에 질려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폐하, 노여움을 거두소서. 신들의 무능을 용서하옵소서.”황제는 몸속이 텅 비어 가는 느낌에 숨이 막혔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쏟아낼 곳조차 없었다.그의 초조함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 몸이 더 이상 오래 버텨주지 않는다는 걸.그래서 단은설의 피가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그 여자를 궁으로 들였고 진국이 열국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기준을 제거했으며 서인경을 어떻게든 후궁에 가두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심지어 양쪽을 동시에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서인경에게는 독으로 협박하고 태의들에게는 비방을 쥐여주며 몰아세웠다. 그러나 오늘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하루였다.황제는 벌게진 얼굴로 남아 있던 마지막 문서마저 바닥에 내던졌다.“꺼져라! 다음에도 못 만들어오면 전부 사약이다!”두 태의는 기어서 물러나다가 문가에 이르러서야 허겁지겁 일어나 달아났다.내시는 황제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급히 소매에서 작은 자기 병을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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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5화

그리고 사람들은 또 하나를 잊고 있었다. 진국에는 한때 군권을 스스로 내려놓고 홀연히 자취를 감춘 인물이 있었다는 사실을.그는 막북의 신비한 부족으로 떠난 후 세상과 인연을 끊었다. 대대로 진국 황제에게 주어진 사명은 단 하나였다. 연강호가 일불락의 보물과 장생불사의 비방을 가지고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그 힘으로 진국을 중심 삼아 천하를 통일하는 것. 즉, 연 씨 황실을 이 세상에서 가장 절대적인 권력의 정점에 올려놓는 일이었다.황제는 오랫동안 연강호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러나 장생불사에 대한 집착이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기준 삼아 생각해 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연강호가 정말 그 엄청난 이득을 손에 넣었다면 과연 다시 돌아올 필요가 있었을까?지금 손에 쥔 이 반쪽 비방은 기대한 효과는 없었지만 그래도 당장 몸이 무너지지 않게 붙잡아 두는 정도는 가능했다. 황제는 만족스럽지 않은 얼굴로 두 알의 단약을 삼키고 마지막 희망을 다시 서인경에게 걸었다.“오늘 밤, 상왕비는 어떠냐?”내시가 대답했다.“수비병들 말로는 오늘 밤 냉궁 안이 유난히 조용하다고 합니다. 아마 상왕비와 열다섯 째 황자가 독 때문에 고생하며 폐하를 만족시킬 만한 걸 쓰느라 애쓰고 있을 듯합니다.”황제는 비웃듯 웃었다.“짐도 잔혹한 부황이 되고 싶지는 않다. 열다섯 째는 어디까지나 짐의 친아들이니까. 헌데 이 친아들이 짐과 한마음이 아니라면 짐도 더 이상 봐주지 않을 것이다. 수비병들에게 명하거라. 한 시진마다 들어가서 확인하고 상왕비가 한 글자라도 더 쓰면 전부 짐에게 베껴 오게 하거라.”내시는 머리를 숙였다.“명을 받들겠습니다.”단약은 곧바로 몸 안에서 작용하기 시작했다. 강렬한 기운이 사지를 휘감으며 요동쳤다.태의들은 이것이 정상 반응이라고 했고 황제는 처음 겪는 일이라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그는 잠시 버티다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용상 위에 쓰러졌다.내시는 익숙하다는 듯 이불을 덮어 주고 조용히 물러났다.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한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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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6화

연기준이 죽었다는 소식이 퍼진 뒤로 황제는 궁중 금위군의 지휘권을 전부 자기 손에 틀어쥐었다. 황제가 혼절해 있는 두 시진 동안, 불을 끄러 간 내시들 외에는 금위군이 각자 자리를 지켰고 황제의 명령 없이는 누구도 감히 움직이지 못했다.아무도 수십 년간 버려진 냉궁에 대단한 인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불에 탔다면 탄거지 뭐가 대수란 말인가?하지만 황제의 명 없이 자리를 비우는 건 곧 사형이었다.황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 냉궁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탄 목재 냄새가 공기 속에 가득했고 그 사이로 사람 살이 타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올라와 주변 사람들을 구역질 나게 만들었다.냉궁 화재 소식을 들은 황제는 사람도, 악어도 구하지 못했다는 말에 분노가 치밀어 올라 얼굴이 새빨개졌다.“말도 안 돼! 짐은 믿지 않는다! 금위군 전원을 동원해 궁을 포위하거라. 파리 한 마리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금위군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무렵, 서인경과 연기준은 이미 궁 한구석의 외진 전각에 숨어 있었다. 도망칠 수 없어서 안 나간 게 아니었다. 애초에 둘은 이렇게 떠날 생각이 없었다. 열다섯 째 황자는 이미 연풍의 손에 이끌려 궁 밖으로 빠져나간 뒤였다.조금 전, 서인경이 열다섯 째 황자에게 물었다. 계속 자신들과 함께할 것인지, 아니면 연풍을 따라 나갈 것인지. 열다섯 째 황자는 망설임 없이 연풍 쪽으로 섰다.사촌 누님과 황숙이 뿜어대는 애정 공세는 이미 충분히 봤고 자기 분수도 알고 있었다. 남아 있으면 오히려 짐만 될 뿐이었다.불빛 하나 없는 조용한 전각 안, 서인경과 연기준은 나란히 계단에 앉아 있었다.“금위군이 여길 찾아오지는 않겠지요?”연기준은 고개를 저었다.“안 와. 이곳은 성조 선제 때부터 후궁의 금기였으니 감히 들어올 사람이 없다.”서인경은 더 호기심이 생겨 주변을 둘러보았다.작지 않은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사람 키만 한 관목들이 미친 듯이 자라 있었다. 오래전부터 아무도 살지 않은 게 분명했다. 희미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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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7화

희태비는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었다.서인경의 마음속에서 그녀에 대한 존경은 더욱 깊어졌다.“그럼 태황태후께서 계속 어머님을 견제한 것도 혹시 어머님과 그 시녀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 아닐까요?”연기준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닐 거야. 태황태후께서 알았다면 이곳을 이렇게 오랫동안 두려워하지도 않았겠지. 그녀가 모비를 싫어한 건 단순해. 그녀는 열셋 째 황숙에게 수많은 귀족 규수를 소개했지만 황숙 눈에는 늘 모비밖에 없었거든. 태황태후 눈에 모비는 나라를 망치는 요물 같은 존재였지. 열셋 째 황숙의 마음을 완전히 끊어내려고 한때는 그를 후궁 지하 밀실에 가둬 두고 정신적으로 학대했다. 모비를 잊게 만들려고 말이지.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다만, 황숙은 그 밀실에서 나온 뒤로 다시는 모비를 찾지 않았고 죽기 전까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서인경은 조용히 듣다가 문득 자신이 단은설의 침전 밀실에서 보았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급히 품속에서 반달 모양의 옥패를 꺼냈다. 옥패에는 포효하며 달려가는 호랑이가 새겨져 있었다.달빛이 비쳐 서인경의 손바닥을 환하게 밝혔다.연기준의 시선이 옥패에 멈췄고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서인경은 옥패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이거 압니까? 단은설 밀실에서 발견한 겁니다. 혹시 그 밀실이 예전에 열셋 째 황숙을 가둬 두었던 곳이 아니었을까요?”그 안에 있던 형구들을 떠올리자 서인경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태황태후가 아무리 미쳐 있었다 해도 설마 친아들에게까지 형벌을 가했을까?연기준은 옥패를 받아 달빛 아래서 한 번 더 살폈다. 확인한 뒤 그는 그것을 단단히 손에 쥐었다.서인경은 그의 반응이 이상해 보여 물었다.“이걸 압니까?”연기준의 검은 눈동자가 미묘하게 흔들렸다.“성조 선제 때, 흑갑군이라는 비밀 군대가 있었다. 오직 연 씨 황실에만 충성하는 군대지. 이건 그 흑갑군을 움직이는 호부다. 대대로 진국 황제에게만 전해졌고 오직 역대 황제만이 병권을 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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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8화

냉궁 밖.황제는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서 있었다. 온몸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얼음처럼 차갑고 섬뜩했다. 반경 십 미터 안에는 측근 내시들 외에는 누구도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그는 눈앞에서 새까맣게 탄, 크고 작은 두 구의 시신이 잿더미 속에서 끌려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뒤로는 함께 타버린 네 마리 악어의 시체 조각까지 들려 나왔다.황제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말도 안 된다! 안에는 강물이 있지 않았느냐? 그렇게 물이 많았는데 어떻게 불이 날 수 있단 말이냐!”내시는 몸을 떨며 아뢰었다.“폐하, 신도 이유를 알지 못하옵니다. 불이 나기 직전, 안에 있던 물이 갑자기 전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악어 네 마리도 전부 타 죽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사라졌다?황제는 선제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안의 물과 악어는 모두 연강호가 설산에서 함께 데려온 것이라고.겉보기엔 고인 죽은 물 같았지만 백 년이 지나도록 마르지도 않았고 썩지도 않았다. 보통 물이었다면 악어는 진작 죽었을 터였다.그렇다면 신비로운 설산의 물도 불에는 약한 것일까? 불을 만나면 그대로 증발해 버리는 것일까?황제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물은 이미 서인경이 전부 약왕곡으로 옮겨 버렸다는 사실을. 지금 이 순간에도 네 마리 악어는 그 안에서 신나게 날뛰고 있었다.내시의 보고를 들을수록 황제의 분노는 더욱 치밀었다.“금위군은 대체 뭘 하고 있었느냐! 왜 첫 순간에 이곳을 봉쇄하지 않았느냐!”금위군 통솔자가 곧바로 무릎을 꿇었다.“냉궁은 본래 신의 관할 구역이 아니 옵니다. 폐하의 명이 없이는 감히 직무를 이탈할 수 없었사옵니다.”쿵!황제는 발길질로 그의 어깨를 세게 걷어찼다.“너희는 머리 달린 시체냐? 이 정도 융통성도 없어서야! 짐이 너희를 둔 게 무슨 소용이냐!”통솔자는 억울했지만 땅에 엎드린 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때 멀리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열다섯 째 황자! 혹시 그 아이인 것이냐?”“신 황귀비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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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9화

신 황귀비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거의 후궁 전체가 다 들을 만큼 요란해졌다. 이미 한밤중이었지만 소란에 잠에서 깬 궁인들과 후궁들이 하나둘씩 나와 구경하기 시작했다.황제는 분노로 관자놀이의 핏줄이 불거졌다.“그만하거라!”그때 또 다른 목소리가 끼어들었다.“이게 무슨 소란이냐?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냐?”황제가 미처 막기도 전에 사람들 사이가 갈라지며 길이 열렸다. 금수 대장공주가 망토를 걸친 채 하품을 하며 느긋하게 걸어 나왔다.“본궁이 막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쪽이 시끄러워서 깼다. 두 후궁이 밤중에 질투 싸움이라도 벌인 줄 알았더니 황제와 신 황귀비였느냐? 두 사람은 또 무슨 연극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냐?”말을 하며 금수 대장공주의 시선이 바닥에 놓인 다섯 구의 시신으로 옮겨갔다.그녀는 일부러 놀란 듯 뒤로 두 걸음 물러서며 입을 가렸다.“어머, 사람이 죽었구나?”목소리는 과장됐고 표정은 지나치게 연극적이었다. 전장을 누비며 수없이 사람을 죽여 본 인물치고는 반응이 너무 요란했다.황제는 알고 있었다. 이 황고모는 또 구경꾼처럼 끼어들어 불난 집에 기름을 붓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이 일은 황제가 조금도 외국 세력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그는 급히 다가가 금수 대장공주의 팔을 붙잡았다.“황고모를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짐의 잘못입니다.””어서 황고모를 모셔 돌아가 쉬시게 하거라. 누구든 다시 황고모를 번거롭게 하면 곤장으로 다스린다!”내시가 막 다가가 부축하려는 순간, 금수 대장공주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방금 신 황귀비가 한 말을 들었다. 저 아이가 열다섯 째 황자라며? 저 옥패, 본궁도 며칠 전에 그 아이가 차고 있는 걸 봤거든. 그럼 옆에 있는 건 누구냐?”황제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열다섯 째가 장난삼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우연히 화재를 만난 것입니다. 옆에 있는 건 아마 그를 말리려다 함께 불에 휩싸인 궁녀일 거예요. 사람을 보내 어느 궁에서 궁녀가 사라졌는지 조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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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0화

시신이 금수 대장공주 앞을 지나갈 때, 그녀는 뒤에 서 있던 시녀에게 눈짓을 보냈다. 시녀는 의미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한바탕 벌어진 대화재는 황제의 입에서 손쉽게 사고로 규정되었다.그날 새벽, 금위군은 후궁 전역을 샅샅이 수색했다.후궁에서는 모두들 알고 있었다. 열다섯 째 황자가 냉궁에 잘못 들어갔다가 불운하게 불에 타 죽었다는 것. 그런데도 황제가 무엇을 찾는 건지는 아무도 몰랐다.한순간에 궁 전체가 불안에 휩싸였다. 사람마다 얼굴이 굳었고 어디서든 긴장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열다섯 째 황자의 죽음을 두고 후궁에는 탄식이 가득했다.“후궁에서 어미 없는 아이는 오래 못 산다더니 과연 그렇구나.”“신 황귀비께서 아이에게 마음을 쓰지 않아서 그 애가 스스로 냉궁에 간 거 아니겠느냐?”이런 소문이 신 황귀비의 침전에까지 전해졌을 때, 마침 황제의 조서도 함께 도착했다. 황귀비 작호를 박탈하고 귀비로 강등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반성하며 석 달간 외출을 금하라는 명도 전해졌다.한때 가장 총애받던 궁전은 순식간에 숨 막히는 침묵에 잠겼다. 사람들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주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궁녀는 분노에 차 컵을 집어 던질 뻔했다.“밖에서 떠드는 건 전부 개소리예요! 우리 마마가 열다섯 째 황자에게 쏟은 정성은 열일곱 째 황자와 열여덟 째 공주보다도 훨씬 컸는데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입만 살아서 떠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다들 입이 썩고 배가 터질 거예요!”신 황귀비는 웃으며 그녀를 내보냈다.“사람들 말이야 마음대로 하게 두거라. 우리만 떳떳하면 그만이지. 어서 가서 차 한 잔 다시 끓여 오너라. 이 잔이랑 주전자는 값비싼 거니까 조심하고.”궁녀는 입을 삐죽이며 주인이 너무 착하다고 속으로 투덜대면서 나갔다.그때 운 유모가 작은 다과를 들고 들어왔다.신 황귀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숙 언니만 세간의 헛소문을 믿지 않으시면 돼요.”운 유모는 그녀 옆에 앉았다.“저는 당연히 믿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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