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892화

Author: 코코넛 서고
서인경은 잠시 말을 멈춘 채, 열다섯 째 황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직 몇 달은 더 지나야 겨우 열 살이 되는 아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단 하루 사이에 총애받던 황자에서 누구에게나 짓밟히는 존재로, 그리고 친아버지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만인의 사랑을 받던 자리에서 한순간에 아무것도 없는 처지로 되어버린 것이다.

서인경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부서진 무언가를 보았다. 그녀는 열다섯 째 황자를 품에 끌어안아 주었다.

“황실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고 생사여탈을 쥔 자리야. 구오지존이라는 권좌, 그리고 장생불사라는 욕망, 그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인간 본성 가장 밑바닥의 욕심이지.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위치라 그런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뿐이야. 황실 사람들은 발끝만 들면 손에 닿을 수 있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은 도박을 해보려는 거야. 황실의 감정이 쉽게 무너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이란 존재의 본성 때문이기도 해.”

현대에서는 흔히 그 세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시간을 거슬러   제894화

    매일 자시는 황제가 단약을 복용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 태의원에서 모습을 감췄던 두 명의 태의가 누군가의 인도를 받아 편전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은 각각 쟁반 하나씩을 들고 있었고 쟁반 위에는 흰색 자기 그릇이 놓여 있었다.두 태의는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고 내시가 다가가 그릇의 뚜껑을 열었다.그 안에는 검은색 단약 두 알이 드러났다.“폐하께 아뢰옵니다. 이는 폐하께서 내려주신 반쪽 비방을 토대로 연성한 단약입니다. 비방이 완전하지 않아 약효는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은 이 단약으로 몸을 보강하시길 바랍니다.”내시는 두 개의 자기 그릇을 황제 앞에 올려두었다. 황제는 음침한 얼굴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분노가 치밀어 올라 탁자를 쓸어버렸다. 그러자 남아 있던 상주문들이 바닥으로 흩어졌다.“짐이 원하는 건 강신이 아닌 장생불사다! 이 정도 일도 못 해내는데, 너희는 대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냐!”두 태의는 겁에 질려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폐하, 노여움을 거두소서. 신들의 무능을 용서하옵소서.”황제는 몸속이 텅 비어 가는 느낌에 숨이 막혔다. 화를 내고 싶었지만 쏟아낼 곳조차 없었다.그의 초조함을 이해하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자신은 알고 있었다. 이 몸이 더 이상 오래 버텨주지 않는다는 걸.그래서 단은설의 피가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그 여자를 궁으로 들였고 진국이 열국의 표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연기준을 제거했으며 서인경을 어떻게든 후궁에 가두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심지어 양쪽을 동시에 밀어붙이기까지 했다. 서인경에게는 독으로 협박하고 태의들에게는 비방을 쥐여주며 몰아세웠다. 그러나 오늘도 아무것도 얻지 못한 하루였다.황제는 벌게진 얼굴로 남아 있던 마지막 문서마저 바닥에 내던졌다.“꺼져라! 다음에도 못 만들어오면 전부 사약이다!”두 태의는 기어서 물러나다가 문가에 이르러서야 허겁지겁 일어나 달아났다.내시는 황제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급히 소매에서 작은 자기 병을 꺼내

  • 시간을 거슬러   제893화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 돌아오는 게 쉽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위험과 고생을 겪었을지도 대충 짐작이 갔다. 황제의 눈을 피해 후궁까지 숨어 들어오기 위해 그도 큰 준비와 결단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니 늦었다고 탓하면 안 되는데...서인경은 모든 경계를 내려놓는 순간 결국 말이 먼저 튀어나오고 말았다.왜 이렇게 늦었냐고.그녀는 정말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더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연기준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가슴이 제대로 내려앉는 기분이었다.“너희를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또렷하고 분명하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와 몸을 감싸는 온기 속에서 서인경은 천천히 눈을 떴다.꿈이 아니었다. 그는 정말 돌아왔다.연기준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녀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두 사람을 조용히 바라보던 열다섯 째 황자는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황숙이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라 믿었으니까.그날 밤, 서인경은 연기준의 품에 안긴 채 그동안 겪었던 일들을 낮은 목소리로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연기준은 듣는 내내 마음이 서늘해졌다.“내가 상왕부에 남겨둔 사람들은 너랑 꼬막이를 지키라고 둔 거였다. 헌데 넌 오히려 그들을 먼저 지켜주고 모든 암위를 다 빼서 나를 찾게 했지. 네가 무슨 일이라도 당했으면 나는 어쩌라고 그런 것이냐?”서인경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얼굴을 그의 허리에 부볐다.“폐하께서는 저를 쉽게 죽이지 않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계산하고 있었거든요. 헌데 그들 중 누가 하나라도 남아 있었다면 그게 다 제 약점이 됐을 겁니다.”연기준은 한숨을 쉬며 그녀의 어깨를 더 세게 끌어당겼다.“앞으로는 무조건 너 자신부터 생각하거라. 설령 우리 아들과 너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와도 난 네가 먼저였으면 좋겠어.”서인경은 그의 허리를 꼬집으며 투덜거렸다.“말도 안 됩니다. 그 애는 당신 친아들이예요.”“너보다 친할 수

  • 시간을 거슬러   제892화

    서인경은 잠시 말을 멈춘 채, 열다섯 째 황자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아직 몇 달은 더 지나야 겨우 열 살이 되는 아이였다. 그 어린 나이에, 단 하루 사이에 총애받던 황자에서 누구에게나 짓밟히는 존재로, 그리고 친아버지에게 이용당하는 도구로 전락해 버렸다. 만인의 사랑을 받던 자리에서 한순간에 아무것도 없는 처지로 되어버린 것이다.서인경은 그의 눈동자 속에서 부서진 무언가를 보았다. 그녀는 열다섯 째 황자를 품에 끌어안아 주었다.“황실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고 생사여탈을 쥔 자리야. 구오지존이라는 권좌, 그리고 장생불사라는 욕망, 그건 누구나 한 번쯤 품어보는 인간 본성 가장 밑바닥의 욕심이지.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애초에 닿을 수 없는 위치라 그런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뿐이야. 황실 사람들은 발끝만 들면 손에 닿을 수 있으니까, 누구나 한 번쯤은 도박을 해보려는 거야. 황실의 감정이 쉽게 무너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이란 존재의 본성 때문이기도 해.”현대에서는 흔히 그 세계는 원래 복잡하다는 말을 하곤 했다. 하지만 서인경은 늘 생각했다. 문제가 있는 건 세계가 아니라, 사람이라고.지금의 황실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라도 그 자리에 앉게 된다면 결국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열다섯 째 황자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사촌 누님, 저건 독이잖아요. 저는 죽는 건가요?”서인경은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절대 안 죽어. 내가 장담해. 우리는 둘 다 살아.”남매는 서로에게 기댄 채 벽에 남은 마지막 햇빛이 서서히 사라지고 완전히 어둠으로 바뀔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었다.열다섯 째 황자는 말했다. 모후와 외조부가 너무 보고 싶다고, 서 씨 가문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서인경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 세계에 떨어진 순간부터, 서 씨 가문의 운명과 함께 묶인 이후로 그들 모두는 이미 그녀의 피붙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꼬막이도 그리웠다. 채 한 살도 되기 전에 곁을 떠난 아이. 지금쯤 어떻게 지

  • 시간을 거슬러   제891화

    악어들은 모두 얼굴에 슬픔을 드러냈고 서인경은 그들의 눈가에 맺힌 눈물까지 보았다.그녀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조용히 물었다.“연강호는 왜 너희를 잡아 온 거야?”[악어 고기는 원래 대보약입니다. 거기에 일불락의 악어는 인간의 내공을 크게 끌어올려 주지요. 연강호는 일불락의 법력 비급을 손에 넣은 뒤 저희를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야 수련 효과가 배로 뛰니까요.][헌데 이상하게 그가 두 번째로 설산에 들어간 뒤로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어요.]그건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서인경은 연강호에 대한 증오가 더욱 깊어졌다. 그 천인공노할 인간, 지난번 설산에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였어야 했다. 하지만 설령 이 전각을 벗어날 수 없더라도 서인경에게는 그들을 구할 방법이 있었다.그녀는 도팔천의 약왕곡을 자신의 공간으로 만든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그 안에는 내가 일불락 유적에서 가져온 온천수가 있어. 너희만 쓸 수 있게 따로 강 하나를 파 줄게. 다만 내가 다시 설산으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그 안에서만 지내야 해. 밖으로는 못 나가.”장소를 옮길 수 있다는 말에 세 마리 악어의 눈이 동시에 반짝였다.[좋습니다! 이 썩은 곳만 벗어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아요.][예전에 설산에도 약왕곡이 있었는데 당신 공간과 비슷할까요?][자기 편이 만든 거라면 분명 비슷할 겁니다. 벌써부터 기대되네요.]악어들은 모두 동의했고 서인경은 공간을 열어 그들을 한꺼번에 받아들였다. 곡 안에서는 온천수가 졸졸 흐르고 있었고 악어들은 멀리서부터 물소리를 듣고 흥분했다. 물 밖에 있는데도 기세가 꺾이기는커녕 서인경보다 더 빠르게 기어갔다.온천가에 도착하자마자 셋은 동시에 몸을 던졌다. 물보라가 사방으로 튀었고 크지 않은 온천은 순식간에 꽉 차 버렸다. 그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확인한 서인경은 열다섯 째 황자가 걱정돼 더 머물지 않았다.“안에 먹을 것도 있고 마실 것도 있으니 알아서 해결해. 무슨 일 있으면 부르고. 가능하면 내가 다시 들어오마.”악어

  • 시간을 거슬러   제890화

    대문이 다시 닫히며 쇠사슬이 걸리는 소리가 울렸다. 커다란 전각 안은 또다시 고요 속으로 가라앉았다.서인경은 바닥을 기어 열다섯 째 황자를 끌어안았다.“연무성, 버텨. 우리는 반드시 여기서 나갈 수 있어.”열다섯 째 황자는 식은땀에 흠뻑 젖은 채, 두 손을 꽉 쥐고 온몸을 잔뜩 긴장시키고 있었다. 그는 눈물이 쏟아질까 두려워 차마 눈을 뜨지 못했고 말 한마디 하려다 아예 숨이 막힐까 봐 입도 열지 못했다.그러나 그의 이가 부딪히는 소리는 서인경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약왕곡으로 들여보냈다. 독을 완화하는 약환 두 알을 꺼내, 하나는 스스로 삼키고 다른 하나는 열다섯 째 황자의 입가로 가져갔다.“입 열고 어서 이것을 삼켜.”열다섯 째 황자는 힘겹게 입을 벌렸고 서인경은 그의 입 안에 약을 넣어 주었다.“조금만 더 버텨. 곧 괜찮아질 거야. 내가 반드시 해독법을 찾아낼게.”그때, 언제 다시 나타났는지 세 마리 악어가 물 위로 솟구쳐 올라왔다. 그들은 물에서 꽤 멀리까지 몸을 끌며 미끄러져 와 서인경과 열다섯 째 황자 곁에 멈춰 섰다.그중 한 마리가 열다섯 째 황자의 몸을 킁킁거리며 맡았다.[삼일단혼단입니다. 저 황제, 정말 잔인하네요.]악어가 그 약환을 알아보자 서인경은 곧장 물었다.“삼일단혼단이 뭐야? 해독 방법은?”[서역에서 쓰는 특수한 독입니다. 중독되면 온몸의 경맥이 끊어진 것처럼 아파지지요. 사흘 동안 날마다 통증이 심해지고 해독제가 없으면 셋째 날엔 일곱 구멍에서 피를 흘리며 죽게 됩니다. 해독법은…]악어는 말을 흐렸고 세 마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서인경은 속이 타들어 갔다.“그게 뭐야? 어서 말해!”[일불락 순혈의 피가 있으면 독 발작은 완화됩니다. 헌데 완전히 풀려면 일불락 유적 한가운데 쌓인 눈이 녹은 물을 마셔야 해요.]일불락 유적의 설수. 지금 그걸 어디서 구한단 말인가?그제야 서인경은 깨달았다. 자신의 증상이 비교적 가벼운 이유는 몸속에 일불락 순혈이 흐르고 있어 독성이 일부 억제

  • 시간을 거슬러   제889화

    이치대로라면 황제는 어제 이곳을 떠난 뒤 태의들을 불러 자신의 건강 악화 원인인지 단은설의 혈액 때문인지를 확인했어야 했다. 서인경의 계획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해 황제와 단은설 사이를 이간질하는 것이었다. 태의들이 진단을 했다면 분명 약을 처방했을 것이고 약을 먹었다면 황제의 안색은 최소한 조금이라도 나아졌어야 했다.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상태가 더 나빠져 있었다. 그렇다면 경우는 하나뿐. 황제가 서로 상극이 되는 약물을 함께 복용하고 있다는 뜻이다.견기초의 해독제와 상극인 약물은 단 하나, 산호편이라는 식물뿐이었다. 고서에는 산호편이 수명을 늘려준다는 기록이 남아 있었고 옛사람들은 그것을 갈아 장생불사 약을 만들곤 했다.하지만 서인경은 21세기 교실에서 이미 배웠다. 이 약효는 후대에서 전부 부정된 것이라는 사실을. 산호편은 그저 평범한 수초에 불과했다. 장생불사는커녕 감기 하나 고치지 못하는 아무 쓸모없는 풀일 뿐이었다.황제의 현재 반응을 보아 서인경은 확신했다. 그는 지금 산호편을 먹고 있다. 게다가 태의들은 황제가 그 사실을 숨기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서인경은 즉시 알아차렸다. 황제는 태의들 외에도 따로 다른 사람들을 불러 장생불사 약을 연구하게 하고 있었다는걸.황제가 말을 멈춘 뒤, 한참이 지나도록 서인경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가 기대한 것처럼 애원하지도 않았다.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태도는 황제의 오만한 자존심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그리고 그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약을 먹여라!”자신은 천자였다. 그런데 상왕 하나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상왕비마저 자신을 이렇게 무시하다니.내시들은 명을 받자마자 앞으로 나와 서인경과 열다섯 째 황자를 붙잡았다.열다섯 째 황자가 발버둥 치며 외쳤다.“부황, 두 알 다 저에게 주세요. 제가 사촌 누님 대신 죽겠습니다!”황제는 이 철없는 아들을 노려보았다.“죽고 싶다면 짐이 바로 소원을 들어주지.”서 씨 가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