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1061 - Chapter 1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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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1화

건민과 영미도 놀라 그대로 굳어 버렸다. 둘은 재빨리 서로를 한 번 쳐다봤고, 곧바로 표정이 굳었다.이건과 서림이 같이 올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두 사람의 표정만 봐도, 밖에서 무슨 말을 들었는지 너무도 뻔했다. 그 짧은 틈에 건민이랑 영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너무 어색했고, 너무 갑작스러웠다.‘왜 이렇게 된 거지?’‘왜 오면서 아무 말도 안 했어?’제은의 머릿속이 새하얘진 뒤에야, 뒤늦게 찔리는 감정이 확 밀려오는 걸 느꼈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앞으로 어떻게 이건을 다룰지, 어떻게 끝장을 낼지 입으로 쉽게 내뱉고 있었는데, 이제 이건이 그 계획을 전부 알아버렸다. 원래 제은이 원한 건 이건을 자극하고 상처 입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식으로 들켜 버리고 나니, 제은 안에 먼저 올라온 건 통쾌함이 아니라 공포와 후회였다. 괜히 입을 잘못 놀렸다는 생각뿐이었다.제은은 이런 식의 결말을 원한 게 아니었다. 적어도 타이밍은 자기가 골라야 했다. 이렇게 준비도 없이 들키는 건 원하지 않았다.그러다 곧바로 다른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왜 몰래 온 건데? 왜 미리 말 한마디도 안 했어?’‘한마디만 했어도, 내가 그런 말을 할 리 없었잖아.’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제은은 이건을 봤다. 무겁게 가라앉아 숨이 막힐 것 같은 눈이었다. 반대로 서림의 눈은 끝내 제대로 마주 보지 못했다.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방 안에는 말이 사라진 채 침묵만 길게 늘어졌다. 그러다 제은이 한참 뒤에야 느리게 입을 열었다.“너... 너희 언제 왔어?”이건은 머릿속이 새하얗게 식은 상태였다. 미간이 깊게 좁혀졌다. 제은이 대체 어떤 사람인지, 이제야 제대로 보려고 애쓰는 사람 같았다.분명 제은을 보는 시선은 많이 바뀌었다. 분명 제은이 밀어붙이는 흐름에 이끌려 관계 안으로 들어온 것도 사실이었다. 심지어 이건 인생에서는 처음 겪는 식의 충동까지 따라왔다. 그런데 끝까지 와서 남은 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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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2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그 짧은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제은은 원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애를 써도 생각을 집중할 수 없었다.논리도 없었고, 감정도 없었다. 머릿속에는 새하얀 공백만 남아 있었다. 마치 강한 흰빛이 머리 안에서 한꺼번에 터져 버린 것 같았다. 요란한 폭음조차 없이, 고요만 남긴 채.건민과 영미는 곧장 제은에게 다가가 제은을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 표정에도 걱정이 가득했다.“괜찮아?”“제은아, 정신 좀 차려 봐.”분명 친구들 목소리는 들렸다. 그런데 그 소리가 구체적인 의미로 들어오질 않았다.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니, 머리도 반응하라는 신호를 내리지 못했다. 제은은 사람 모양만 겨우 하고 있는 것처럼 굳어 있었다.제은이 이 정도인데, 옆에서 지켜본 건민과 영미에게도 충격이 컸다. 제은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보여서 두 사람도 걱정과 찔림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그래서 일단 제은을 억지로 소파 쪽으로 데려가 앉혔다.제은은 소파 깊숙이 파묻히듯 기대앉아, 방 안의 자극적인 조명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고는 머릿속으로 초를 세기 시작했다.하나, 둘, 셋... 열... 열다섯... 서른다섯... 쉰...그제야 머리가 아주 조금씩 돌아가는 것 같았다.마침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랐다.제은은 갑자기 배를 움켜쥐고 몸을 확 웅크렸다.‘왜 저렇게 말도 안 듣는 인간이 있는 거야?’‘조이건, 그 새끼는 대체 오면서 왜 미리 말 한마디를 안 한 거지?’‘그렇게 바쁘다며? 사람 많은 자리 싫어한다며?’‘열 번 불러도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잘난 척하는 차가운 인간 아니었냐고.’‘그런데 왜 이번에는 몰래 찾아왔지? 그것도 문 앞에서 다 듣고 서 있었어?’‘그럴 거면 그냥 바로 들어오면 되잖아.’‘조이건은 왜 이렇게 사람을 열받게 하지?’제은은 몸이 떨릴 정도로 화가 났다. 이건은 늘 그랬다. 말을 안 듣고, 제은의 예상을 벗어나고, 꼭 가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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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3화

제은은 그렇게 가만히 앉아 30분을 보냈다.건민과 영미는 처음엔 제은이 당장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 줄 알았다. 아니면 크게 화를 내거나, 감정을 거칠게 터뜨릴 줄 알았다.그런데 제은은 뜻밖에도 그렇게 오래 앉아 있었다. 30분이 지나고 나서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며 지금 바로 프라이빗하게 운영하는 식당에 연락하라고 했다.건민은 제은을 오래 봐 왔지만, 제은이 이렇게 기이한 상태인 건 처음이었다. 그런 변화가 건민과 영미에게도 몹시 낯설었다. 둘은 아무 말 없이 제은의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제은은 음식이 나오자 조용히 먹기만 했다.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그러다 이람에게 전화가 왔다.제은은 미간을 살짝 좁혔다. 평소 같았으면 이람이 먼저 연락해 온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을 텐데, 지금은 이상하게 통화하고 싶지 않았다.제은은 한참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 이람의 말을 듣고 나서야, 며칠 전에 이건이랑 같이 모진이랑 모연이를 보러 가기로 의논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 얘기는 이미 이람한테 해 둔 상태였고, 이람은 그 일정을 다시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였다.제은은 이람에게 갈 시간을 말해 준 뒤 전화를 끊었다....다음 날, 제은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점점 더 귀여워지는 조카들을 보러 갔다. 선물도 잔뜩 챙겨 갔다. 도착한 뒤에도 제은은 누구에게도 자기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는 걸 들키지 않았다.대신 시간만 계속 확인했다.이건은 끝내 오지 않았다.퇴근한 이람이 집에 돌아온 뒤에도 이건에게 전화를 걸어 봤다. 이건은 오늘은 좀 바빠서 못 간다고, 다음에 들르겠다고 했다.이람은 제은에게 저녁까지 먹고 가라고 붙잡았다. 제은은 친구들이랑 약속이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돌아서서 집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제은의 표정은 그때 완전히 달라졌다.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말이 없었다.오늘 제은이 끌고 온 차는 유난히 눈에 띄는 스포츠카였다. 튜닝에만 백억 원대가 훌쩍 넘는 돈이 들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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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4화

제은이 말을 뱉고 나자, 속에서 화가 더 세게 끓어올랐다. 제은은 서림이 하루이틀쯤은 제은을 피하다가, 결국 찾아와서 대체 무슨 일이었는지 묻고 따질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먼저 입을 여는 쪽은 서림이어야 했다. 그런데 서림은 그 일을 품고 혼자 결론을 내린 뒤, 그대로 짐을 싸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오늘 제은이 여기 오지 않았으면, 서림이 언제 빠져나갔는지도 몰랐을 것이다.“선조치 후통보야?”제은은 짧게 웃고 거실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 집은 몇백 평은 될 만큼 넓었고, 인테리어도 나쁘지 않았다. 서림이 꽤 오래 살았는데도 집은 여전히 새집처럼 반듯했다.그런데 짐이 정리되고 나니 더 심했다. 생활의 기척이 싹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서림이 애초에 제은 삶에 들어온 적조차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사람이 이렇게 흔적도 없이 증발할 수 있나?’제은은 서림을 향해 비웃듯 한 번 더 웃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잘되지 않았다.제은은 소파에 앉았다. 자기가 완전히 표정을 얼굴에서 걷어내고 차갑게 굳으면, 그 분위기만으로도 사람을 얼어붙게 만든다는 걸 제은은 잘 알고 있었다. 원래는 서림 앞에서까지 그런 얼굴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제은의 기분을 이따위로 망쳐 놨는데.서림은 눈에 띄게 얼굴이 하얘져 있었다. 또 제은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달라진 제은의 얼굴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표정. 그게 제은 눈에는 거슬려 죽을 지경이었다.제은은 손을 꽉 쥐었다.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말해.”서림 옆에 서 있던 매니저는 예전에 제은한테 따귀를 맞은 적이 있었다. 원래도 겁이 많은 사람이었고, 상황을 파악하는 눈치도 빨랐다. 매니저는 바로 더듬거리며 말했다.“저... 저는 잠깐 나가 있을게요.”제은과 서림 사이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건 이미 눈에 보였다. 그러니 서림이 이사 가는 게 회사 판단일 리도 없고, 전부 제은과 엮인 일이라는 뜻이었다.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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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5화

제은은 그 말을 듣고 더 화가 치밀었다.“말해! 나한테 전화는 했어?”서림은 제은의 몰아붙임이 무서워서 얼굴이 더 하얘졌다.“나... 나 말하려고는...”“짐 다 싸서 나가려고 마음먹은 다음에 말하려고 한 거잖아!”제은은 화가 나서 살이 떨렸다. 서림을 보는 눈빛은 당장이라도 물어뜯을 것처럼 사나웠다.분명 자기 애완동물이었는데, 잘 먹이고 잘 재워 주고 부족한 것 없이 챙겨 줬는데, 이제 와서 도망치겠다고?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가?’제은이 고함쳤다.“말하라고. 내가 말하라는데 안 들려? 어?”서림의 속눈썹이 잘게 떨렸다. 더 건드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결국 사실대로 말했다.“응...”제은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왜 미리 말 안 했어?”“나... 네가 화낼까 봐...”“지금 이렇게 들키면 내가 안 화낼 것 같아? 서림아, 이러니까 더 화가 나. 대체 뭘 하겠다는 건데? 여기 사는 게 뭐가 문제였는데?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 건데?”제은은 계속 소리 질렀다. 지금은 도저히 차분해질 수가 없었다.서림의 기분은 밑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제은은 정말 모르는 걸까? 제은이 자기를 어떻게 대했는지, 그걸 들은 이상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친구인 척 지낼 수 없었다.제은은 자기를 애완동물처럼 여겼다. 그런데도 서림이 계속 친구로 남기로 선택한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서림은 그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서림은 손을 꼭 쥐었다. 제은의 눈을 보면 겁이 났고, 제은이 무섭긴 했지만, 마음속에 쌓인 서러움도 더는 누를 수 없었다. 서림은 용기 내서 말했다.“이제 너랑 예전처럼은 못 지내겠어. 제은아, 이제 그냥 나 좀 놔줘.”제은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놔주라고? 무슨 말은 이렇게 그럴듯하게 해. 그냥 내 말 듣고 충격받은 거잖아. 서림아, 내가 틀린 말 한 게 뭐가 있어? 나 아니었으면 네가 지금 여기까지 왔겠어?”제은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넌 내가 고른 운 좋은 애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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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6화

제은은 서림의 살짝 붉어진 눈가를 봤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림은 유난히 눈물이 많았다. 제은은 툭하면 우는 사람을 늘 얕봤다.울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가해자만 더 짜릿해질 뿐이었다.그런데 제은은 어느새 서림의 그 약점을 받아들이고 있었다.서림이 잘 우는 것쯤은 참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서림의 눈 안에 분노가 너무도 또렷하게 보였다. 그렇게 울기 좋아하던 사람은 지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감정이 북받칠 때 드러나는 고집만 남아 있었다. 제은은 서림이 품고 있는 감정을 그대로 느꼈다.괴롭고 서러운 감정.오랫동안 억눌러 온 감정.제은은 손을 꽉 쥐었다. 손가락을 틀어쥘 만큼 세게 힘을 줬다. 손톱 끝이 손바닥 살을 파고들었다.제은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 조금만 연기하면 되는 일이었다. 계속 친구인 척해 주고, 앞으로도 같이 놀아 주고, 돈 써 가며 띄워 주고, 예전처럼 곁에 두면 되는 일이었다.달라지는 건 없었다.‘왜 서림은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하는 거야? 왜?’‘씨X, 왜 다들 이렇게 하나같이 피곤하게 굴어?’‘세상이 병신들 손에 넘어가기라도 했나?’제은은 이를 악물고 서림을 노려봤다.솔직히 말해, 서림이 제은에게 소리를 질렀을 때 제은은 정말 놀랐다. 그때 처음으로 제은은 느꼈다. 서림은 자기가 알던, 성질 한 번 못 내고 말 잘 듣던 얌전한 애가 아니었다. 낯설었고, 뜻밖이었다.자기가 키우던 애완동물이 도망치려 드는 것도 모자라, 주인을 향해 이빨을 드러낸 셈이었다.‘기가 막히네.’제은은 지금 당장 전화 한 통만 하면 됐다. 그러면 서림은 이곳에 갇혀 꼼짝도 못 하고, 제은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제은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제은은 대신 물었다.“대체 뭘 원하는 거야?”제은은 서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예전의 서림은 듣보잡 연예인이었다. 팬도 몇 없었고, 회사에서는 매니저한테조차 함부로 밟히던 처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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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7화

제은은 서림의 말을 듣자마자, 세상에는 정말 저런 어처구니없는 바보도 있구나 싶었다. 서림 같은 바보 말이다.명예도 있고 돈도 있는데, 거기서 뭘 더 바랄 게 있지? 무슨 진심 같은 걸 바라냐고.물론 제은이 이렇게 오래 서림이라는 애완동물을 버리지 않고 데리고 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서림이 이람의 회사 소속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제은이 서림이 자기 손안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면서도 자기한테 보여주는 진심이 꽤 마음에 들었다는 점이었다.제은의 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인간들이 들끓었다. 그런 와중에 서림은 제은 주변을 환기하는 존재였다. 전에는 본 적 없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제은은 서림의 배려와 헌신을 좋아했다.그렇다고 해서 제은까지 같은 무게의 진심을 돌려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돈도 줬고, 인생도 바꿔 줬고, 그걸로도 부족해서 진심까지 내놓으라고?’제은은 아무리 생각해도 서림의 끝없는 욕심을 못 따라가겠다고 느꼈다.‘정말 미칠 것 같아.’‘쟤는 대체 무슨 낯짝으로 나한테 그런 걸 요구하는 거지?’‘자기가 절대 해 줄 수 없는 약속을 왜 입에 올려?’‘씨X, 사람이면 눈치는 좀 챙겨야 하는 거 아니야?’‘분위기 파악도 못 해? 꼭 끝까지 사람 열받게 해야 직성이 풀려?’제은은 손으로 미간을 꾹 눌렀다. 남아 있던 마지막 인내심으로 서림에게 말했다.“다른 걸 말해.”서림은 막 생기던 기대가 그대로 꺼지는 걸 느꼈다. 제은은 분명 알아들었다. 이렇게 영리한 제은이 서림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그저 못 하는 거였다.그런데도 서림은 물러설 수 없었다.아마 제은과 함께한 지난 시간이 너무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림은 정말로 자기가 천사를 만난 줄 알았다. 서로 진심을 주고받고, 가장 맑고 투명한 관계로 이어져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전부 거짓이었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속은 셈이었다. 서림은 이 관계 안에서 태어나 처음 받아 본 것들을 많이 얻었다. 서림에게는 제은과의 우정이 가장 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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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8화

서림은 처음에는 제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서림이 살아온 세계는 비교적 단순했다. 지금까지 겪은 가장 큰 시련이라고 해 봐야 예전 회사에서 있었던 일 정도였다. 서림은 제은의 차가운 눈을 마주한 채, 아직도 얼떨떨한 얼굴로 말했다.“난 이미 이사 가기로 했어. 여기 남지 않을 거야.”제은은 서림의 순진하고도 답답한 표정을 보다가 차갑게 웃었다.“너는 왜 네 마음대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여긴 내 집이야. 내가 널 여기 들였고, 내가 살게 해줬어. 나가고 싶으면 당연히 주인인 내 뜻도 물어야지. 내가 안 내보내고 싶으면, 넌 여기 계속 있어야 해.”서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날 여기에 가둬두겠다는 거야?”제은이 웃었다.“맞아. 여기서 얌전히 지내. 회사 쪽에도 이미 말해놨어. 반년 쉬게 해준다고. 그 정도 시간이면 네가 내 말 들을지, 끝까지 나한테 맞설지 생각 정리하기엔 충분하겠지.”제은의 말에는 조금의 정도 없었다. 그저 명령이었고, 협박이었고, 일방적인 압박이었다. 말이 통하길 바라는 태도는 없었다. 상대가 자기 뜻대로 따르기만 하면 됐다.서림은 지방 소도시에서 평범하게 자랐다. 집안은 화목했고, 서림은 누군가를 아끼는 마음이 뭔지, 사랑이 뭔지 알고 자랐다.그래서 제은이 지금 하는 행동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건 서림에게 또 한 번 제은의 본모습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사람을 감금하는 따위의 발상은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었다. 제은이 정말 자기한테 그런 짓까지 하겠다고 나설 줄은 상상도 못 했다.서림의 얼굴에는 상처와 실망이 선명했다.“너 진짜 그런 사람이었구나. 난 너를 그렇게 믿었는데.”지금의 제은은 서림의 그런 말을 견딜 수 없었다.서림이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지. 자기가 왜 서림한테 설명해야 하지?제은은 원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했다. 어떤 얼굴을 보여 주고 싶으면 보여 주고, 숨기고 싶으면 숨겼다. 남이 뭐라고 생각하든, 제은이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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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9화

서림은 처음 그 폭로 글을 봤을 때, 자기가 알고 있던 제은과는 너무 달라서 도저히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믿지 않았다. 심지어 반박하는 댓글까지 달았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기억 속에 흩어져 있던 장면들이 다시 선명해졌고, 전부 맞아떨어졌다.제은은 이제 더 길게 변명할 생각도 없었다. 바로 인정했다.“맞아. 그게 나야.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너한테 잘해준 것도, 다 널 가지고 놀고 싶어서 그랬어.”제은은 비웃듯 말했다.“네가 내 손바닥 안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거 보는 게 얼마나 재밌었는지 알아? 서림아, 나랑 그렇게 오래 붙어 있었는데도 아직도 이렇게 멍청하네.”“내가 널 진짜로 아꼈는지 아닌지가 그렇게 중요해? 진심 하나 얻는 게 그렇게 대단해?”제은은 코웃음을 쳤다.“솔직히 말해서, 난 너한테 충분히 잘해줬다고 생각해. 넌 그것만으로도 만족했어야지.”서림은 손을 꽉 쥐었다.“넌 진짜 친구가 뭔지도 모르잖아.”제은은 차갑게 웃었다.“나도 이해가 안 돼. 왜 넌 꼭 나한테 맞서려고 하는 건데? 끝은 뻔하잖아. 너 반년 묶일 거고, 이 바닥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너도 알잖아... 그러니까 미리 생각해. 지금 여기서 끝낼지, 아니면 계속 할지.”말 안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결국 마지막에는 다 제은 앞에 무릎 꿇었다. 예전에 감히 제은 기분을 건드렸던 연예인들도 결국 다 똑같았다.제은은 그 말을 끝내고는 더는 서림 입에서 무슨 말이 나와도 듣고 싶지 않았다. 서림과 눈도 마주치기 싫었다. 그대로 돌아서서 성큼성큼 밖으로 나갔다.서림은 이를 악물고 제은이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바라봤다.사실 서림은 화가 난 건 아니었다. 다만 이제야 제은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게 됐을 뿐이었다.제은은 전형적인 재벌 집 아가씨였다. 성격은 까칠했고, 온몸에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기분을 상하게 하면 안 됐고, 제은의 뜻을 거스르면 더 안 됐다.예전에 좋았던 시간들은 전부 잘못된 믿음 위에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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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0화

안나는 제은의 얼굴이 좋지 않은 걸 보고, 금세 걱정하는 척하는 표정을 지었다.“자기야, 오늘 기분 안 좋으세요? 무슨 속상한 일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제가 꼭 기분 풀어드릴게요.”인플루언서는 가련해 보이는 분위기의 화장을 하고 있었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사람 기분 맞추는 데 꽤 익숙해 보였다.제은은 그런 안나를 보면서, 꼭 AI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정해진 프로그램이 켜지면 똑같은 반응을 내보내는 기계처럼. 몸 전체가 가면 쓴 아부와 비위 맞추기로 이루어진 사람 같았다.그때 제은의 머릿속에, 서림이 자기를 걱정하던 모습이 불쑥 떠올랐다. 서림은 제은의 생리 날짜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 자잘한 부분은 정작 제은 자신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서림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더 기막힌 건, 서림이 제은에게 크게 실망하고 화가 난 상태인데도, 몸에 밴 걱정은 여전히 습관처럼 남아 있었다는 점이었다.제은은 손짓으로 안나를 옆으로 물렸다.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열었다간 괜히 짜증부터 쏟아낼 것 같았다. 모처럼 익숙해진 판으로 돌아왔는데, 이렇게 빨리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비교 대상이 보이자 제은은 뒤늦게 몇 가지를 알아차렸다.제은은 서림이랑 친구 놀이를 하듯 하다가 어느새 그 관계 자체에 익숙해져 버렸다. 건민조차 제은이 요즘 이상하다고 빈정댔는데도, 제은은 계속 서림이랑 더 함께 지내고 싶어 했다.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서림이 너무 단순했고, 너무 진심이었고, 눈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거의 다 읽혔다.그래서 제은도 알 수 있었다. 서림이 자기 걱정을 진짜로 한다는 걸. 서림이 자기한테 느끼는 애정이 진짜라는 걸. 제은이 힘들어하면, 서림도 정말 곁에 있어 주려 한다는 걸.진심이 뭔지 한번 알아버리고 나니, 그 밖의 거짓된 것들이 갑자기 재미없어졌다.그래서 제은은 서림에게 자기 진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서림이 실망한 표정을 지었을 때, 그게 그렇게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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