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의 모든 챕터: 챕터 1081 - 챕터 1090

1264 챕터

제1081화

이건은 가치관이 통째로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제은은 대체 무슨 낯짝으로 저런 말을 저렇게 태연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이건은 아직 제은에게 당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이건은 이불을 걷어내고 침대에서 내려가려 했다. 그러다 자신이 아무것도 걸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건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그대로 굳어 버렸다.그제야 이건은 제은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지, 그 충격을 온몸으로 느꼈다.이건은 경계선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질서와 통제감을 중요하게 여겼다.그런데 자기 몸조차 자기 뜻대로 지킬 수 없었다. 의지마저 제은에게 빼앗겼다고 느껴졌다. 제은은 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제은이 벌인 일이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인지, 정말 모르는 걸까?이게 정상적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이건의 성격에는 자존심을 넘어선 결벽에 가까운 부분이 있었다. 이건은 이런 식의 모욕과 억울함을 견딜 수 없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은 이미 벌어진 것처럼 보였고, 이건은 그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이건의 속이 거칠게 흔들렸다.이건은 이를 악문 채 제은을 노려봤다.제은은 헐렁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얇은 천이 가슴 앞에 가볍게 붙어 있었고, 안쪽에 따로 걸친 것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 쉽게 드러났다.이건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곧바로 시선을 거칠게 돌렸다. 분노가 온몸을 타고 올라와 피부까지 붉게 달아올랐다.가슴속 분노는 바람이 꽉 들어찬 풍선 같았다. 그런데 그 풍선은 속이 비어 있지 않았다.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덩어리가 심장을 사정없이 눌렀고, 이건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이건은 겨우 한마디를 뱉었다.“내려가.”이건의 반응은 제은의 예상 안에 있었다.귀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이건은 피부가 흰 편이라 붉어지면 확실히 티가 났다. 저건 부끄러움이 아니라 분노였다.이렇게 선명한 감정의 흔들림은 이건이 차갑게 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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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2화

이건은 인정했다. 자신에게 회피 성향이 어느 정도 있는 건 사실이었다.하지만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건도 먼저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이건은 원래 제은과의 애매한 관계를 스스로 끝내고, 먼저 마음을 고백하려 했다.문제는 이건이 우연히 제은의 진심을 들어 버렸다는 것이었다.사람을 다치게 하는 말들, 거짓으로 꾸며 낸 접근.그런 것들은 회피 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일격이나 다름없었다.이건은 제은에게 아무런 확신도, 신뢰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모든 관계를 깔끔하게 끊어 내는 것. 더는 어떤 접점도 남기지 않는 것.이건의 선택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하지만 제은은 이건의 생각대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었다. 제은은 뻔뻔하게 많은 일을 저질러 놓고도, 이건에게 수줍다느니 하는 말을 했다.이건은 ‘수줍다’라는 말에 정신이 아찔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제은을 바라봤다. 이건은 그 단어가 대체 왜 자신에게 붙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건은 원하지 않는 일을 당했다고 믿었다. 그런데 제은은 거기서 끝내기는커녕, 이건에게 그에 대한 대가까지 요구하고 있었다. 이건은 완전히 제은에게 얽혀 버린 꼴이었다.제은의 강압적인 태도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은 이건에게 제은의 오빠 제헌을 떠올리게 했다. 예전에 제헌이 아이 둘까지 만들어 냈을 때, 이람의 마음은 지금 이건보다 훨씬 더 엉망이었을지도 몰랐다.이건은 제은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고, 단호하게, 한 글자씩 끊어 말했다.“너랑 안 만나.”제은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방금까지 웃고 있던 얼굴을 바로 차갑게 굳혔다.“같이 잤는데도 안 돼?”이건이 말했다.“무슨 일이 있었든, 난 내 생각 안 바꿔. 알아들었어?”제은은 웃는 듯 아닌 듯 입꼬리를 올렸다.“조이건, 네가 날 몰아붙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아?”이건도 물러서지 않았다.“네가 날 몰아붙여도 좋은 결과는 없어.”제은의 표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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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3화

제은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역겨워. 진짜 역겨워. 심지어 널 엄청 미워해. 이 화가 풀리지 않으면, 이 분이 너한테 쏟아지지 않으면, 난 도저히 삼킬 수가 없어.”“그래서 역겨운 거 참아 가면서 너랑 여러 가지 할 수 있어. 밸런타인데이 때처럼 내가 먼저 너한테 키스한 것도 그렇고.”제은은 마지막 몇 글자를 말하며 시선을 이건의 입술에 떨어뜨렸다.그러더니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 제은은 정확하게 이건의 입술을 깨물듯 붙잡고, 거칠게 키스했다. 키스라기보다는 처벌에 가까웠다.제은은 늘 ‘예상 밖’인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키스조차 아무 예고 없이 덮쳐 왔다.이건은 부드러운 감촉이 제 입술 위에 닿는 것을 그대로 느꼈다. 뒤이어 밀려온 힘은 거칠고 사나웠다. 예전에 술집에서 스치듯 닿았던 키스와는 완전히 달랐다.이건의 머릿속이 멎었다.이건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굳었다가 곧장 제은을 밀쳐 냈다.제은은 하마터면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질 뻔했다. 간신히 몸을 바로잡은 뒤 이건을 바라보자, 이건의 눈에는 깊은 혐오가 가라앉아 있었다.곧 이건의 말이 떨어졌다.“너 진짜 천박해.”제은은 이건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화가 치밀어 이성까지 날아갔다.제은은 곧바로 이건 위로 달려들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협탁 위 스탠드를 움켜쥐고, 이건의 머리 쪽으로 내리쳤다.이건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아마 제은이 여자라는 이유로 이건은 끝까지 참아 냈다.제은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제은은 이건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 손으로 이건의 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이건이 반격하지 않자, 제은의 기세는 더 사나워졌다.제은은 고개를 숙여 이건을 내려다봤다. 마치 이건을 발 아래 둔 사람 같았다. 제은은 이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그래. 세상에서 너만 고고하지. 나 같은 천박한 사람한테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미치겠어? 자, 계속 욕해 봐. 나한테 화내 봐.”“조이건, 네가 나를 아무리 역겨워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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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4화

이건은 확실히 회피 성향이 있는 사람이었다.지금은 제은의 진짜 모습을 이미 알아 버렸다. 제은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고, 사람을 갉아먹을 수 있으며, 제대로 된 진심은 조금도 내주지 못한다는 걸 이건은 알았다. 제은은 애초에 타인의 감정 따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제은은 이건이 원하는 안정감을 줄 수 없었다.이건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제은에게서 멀어져야 했다. 하지만 제은을 만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몰래 묻어 둔 기쁨이 여전히 고개를 드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그 사실만큼은 너무나 확실해 자신을 속일 수 없었다.제은이 가까이 오는 건 싫었다.그런데 제은이 가까이 오지 않는 것도 두려웠다.이런 마음을 이건은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결국 입가에 맴돌던 말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튀어나왔다.“내가 너한테 당장 어떻게 못 한다고 해서, 네 뜻대로 고개 숙일 거라고 생각하지 마. 여기서 더는 나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제은은 이건을 조금도 겁내지 않았다.“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해? 조이건, 내가 너 좋아하니까 이렇게 만지고 달라붙는 거야. 이건 너한테 주는 상이라니까.”이건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났다. 물론 그건 차가운 웃음이었다. 이건은 더 이상 제은과 말싸움을 이어 갈 생각이 없었다.“내 옷 가져와.”“같이 밤 보내 놓고 책임 안 지겠다고?”제은은 이건 아래에서 빠져나와 양팔을 가슴 앞에 감아 팔짱을 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 이건을 바라봤다.이건은 눈을 가늘게 떴다. 최대한 제은의 목 아래로는 시선을 두지 않으려 했다.“네가 날 함정에 빠뜨린 거야. 난 너한테 책임질 필요 없어.”제은이 말했다.“좋아. 네가 책임 못 지겠다면 내가 책임지면 되겠네. 너도 나한테 그냥 당한 걸로 끝나면 억울하잖아.”“남자라고 해도, 네 동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면 꽤 서운하긴 하겠지. 그러니까 내가 좀 양보해서 너한테 잘해 줄게. 대신 너도 나한테 맞춰. 조이건, 너 내 남자친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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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5화

이건은 눈을 내리깔고 제은을 바라봤다.‘화해는 절대 아니야.’이건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말했다.“그냥 너랑 싸우기 싫은 거야.”제은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이건이 제은을 밀어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제은은 더 뻔뻔하게 굴며 재촉했다.“빨리 말해. 우리 화해한 거야, 아니야? 했어? 안 했어?”이건은 제은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바라봤다. 제은은 정말 기뻐 보였다.하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둘 다 아직 젊었다. 기쁠 때는 완전히 다른 표정이 되기도 했다. 제은은 이건과 무척 가까운 사이처럼 굴었지만, 사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은 이런 관계 속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없었다.“나중에 이야기해.”이건은 제은을 살짝 밀어냈다.제은은 굳이 이건 앞으로 바짝 파고들었다. 제은은 자기도 모르게 애교 섞인 투로 말했다.“네가 나한테 이렇게 처참하게 당한 모습 봤으니까, 내가 한발 양보할게. 나중에 말하는 거 허락해 줄게.”이건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제은이 어딘가로 전화 한 통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건은 제은의 키 190센티가 넘는 경호원이 무표정하게 두 사람이 있는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제은은 여전히 헐렁한 잠옷 차림이었다. 옷감은 얇고 조금 비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제은은 그런 상황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침대 헤드에 기대어 졸린 기색으로 핸드폰을 만지고 있었다.이건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불을 끌어다가 제은의 몸 위에 덮었다.제은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이건을 바라봤다.경호원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제은은 곧바로 이건에게 달려들었다. 제은은 두 손으로 이건의 뺨을 감싸 쥐고, 몹시 즐거운 얼굴로 물었다.“질투했어?”이건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그러자 제은은 힘으로 이건의 얼굴을 다시 돌려놓았다. 제은은 이건의 뺨을 꾹 누르며 재촉했다.“빨리 말해. 너 질투했지?”이건은 생기 있게 빛나는 제은의 눈을 바라봤다.예전에 제은이 이건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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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6화

이건은 갑자기 이렇게 솔직한 칭찬을 듣게 되자 몹시 어색했다.제은은 기분이 좋을 때 감정을 아끼지 않았다. 마음속 상태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자신의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제은은 제은답게 굴 수 있었다. 그래서 진짜 제은은 감정을 조금도 남김없이 밖으로 쏟아 냈다.이건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제은의 칭찬은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그는 물었다.“네 경호원이 밖에 있어?”이건이 무슨 말을 하든, 제은은 이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제은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응. 그러니까 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 내 경호원 이길 수 있으면 몰라도. 지난번엔 경호원이 봐준 거야.”이건은 차가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제은은 맨발로 바닥에 내려섰다. 이건 앞으로 걸어가 두 팔을 벌려 이건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고개를 들어 이건을 올려다봤다.“네가 이렇게 잘생겼으니, 당연히 더 봐야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놔주겠어?”이건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뽀뽀 한 번만.”제은은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러고는 이건의 품 안에서 이리저리 파고들었다.이건은 누군가와 이렇게 가까운 신체 접촉을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바로 제은을 밀어냈다.“나한테 붙지 마.”이건은 그렇게 말한 뒤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제은은 이건을 놀리는 일이 유난히 재미있었다. 그녀는 이건처럼 깨끗한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다시 뜨겁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아예 이건의 몸 위로 뛰어올랐다.이건은 반사적으로 제은을 받쳐 들었다.제은은 바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건의 뺨에 쪽 하고 입을 맞췄다.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이제 내려 줘.”이건은 손이라도 덴 사람처럼 곧바로 제은을 내려놓았다.제은은 자기 옷을 움켜쥐고 욕실로 들어갔다. 문을 닫기 전에도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나올 때까지 기다려. 도망치지 말고.”문이 닫히자, 이건은 미간을 깊게 구겼다. 그는 소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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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7화

제은이 이건 앞에서 좋은 사람인 척하던 때에도 두 사람이 자주 만난 건 아니었다. 그래도 연락은 언제든 이어졌다. 하지만 이렇게 같이 밖에 나와 쇼핑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제은이 쇼핑을 고른 이유는 우선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호텔방에서 이건과 마주 앉아 서로 눈싸움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또 하나는 두 사람만의 기억을 더 만들기 위해서였다. 쇼핑은 꽤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사고, 상대에게 선물하면 된다.제은은 이건이 지금 자신을 밀어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제은의 뻔뻔함 덕분에 이건은 ‘어쩔 수 없이’ 제은과 함께하게 만들 수 있었다. 계속 만날 수 있다면, 관계는 천천히 고쳐 나갈 수 있다.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계속된 만남 속에서 수정되고 바뀔 수 있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사람 마음은 결국 변할 수 있다.그렇지 않다면 왜 정이 쌓인다는 말이 있겠는가?제은은 자신의 매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제은을 미워해도 제은은 언제나 더 많은 시선을 받았다. 심지어 제은을 미워하는 사람들조차 계속 제은에게 신경을 썼다.그래서 제은은 지금 이건이 차갑게 군다고 해도 두렵지 않았다. 다만 이건의 냉담함 때문에 자신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다행히 이건은 생각보다 제은에게 잘 맞춰 주었다. 제은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두 사람은 호텔에서 아침을 먹은 뒤, 쇼핑하러 나갔다.A시는 여행하기에 꽤 괜찮은 도시였다. 제은은 이건에게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고, 커피를 마셨고, 분위기 좋은 가게도 함께 찾아다녔다.노는 일이라면 제은은 쉽게 지루해하지 않았다. 제은은 아주 즐겁게 그 시간을 누렸다.물론 이건은 이런 일이 별 의미 없다고 느끼는 듯했다.제은은 이건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건에게 무엇을 하라고 요구할지만 생각했다.이건의 인내심은 제은에게 자신감을 주었다.걷다 보니, 제은은 어느새 이건의 손을 잡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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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8화

제은은 철저히 자기 취향을 믿고 5억 원대 손목시계 하나를 골랐다. 사실 이 정도면 정말 싼 편이었다. 오빠 제헌이 차는 시계는 보통 100억 원대부터 시작했으니까. 그래도 5억 원대 시계면 어디 가서 빠지는 물건은 아니었다.제은은 결제를 끝낸 뒤, 이건에게 쇼핑백을 들게 하고 다음 매장으로 향했다. 시계를 사고 나니, 이제는 주얼리도 보고 싶었다.그런데 두 걸음쯤 걷던 제은이 무언가를 보더니 갑자기 이건의 손을 잡아끌고 옆쪽으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이건은 영문도 모른 채 제은을 따라 뛰었다. 모퉁이를 돌 때 뒤를 돌아본 이건은 그제야 제은이 왜 그렇게 허둥댔는지 알 수 있었다.제은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들킨 거 아니지?”이람과 하준이 A시에 있었다.이건은 제은의 얼굴에 드물게 떠오른 당황한 기색을 보고 비웃듯 말했다.“자기가 무슨 짓 했는지 들키는 건 무섭나 보네.”제은은 반사적으로 받아쳤다.“내가 왜 무서워해!”그러다 곧 기세를 살려 이건을 향해 말했다.“그럼 너는 네 누나한테 우리 둘 일 말할 수 있어?”제은에게 이람은 동경의 대상이었고, 하준은 어릴 때부터 어려운 오빠였다. 그래서 제은에게도 어느 정도 심리적 부담은 있었다. 제은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 앞에서는 자기 이미지를 지켜야 했다.이건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역시 이람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없었다.제은이 전날 밤 이건을 그런 식으로 얽어매지 않았다면, 이건은 도둑처럼 도망칠 필요가 전혀 없었다.이건은 이람을 마주쳐도 아무 부담이 없었고, 하준도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하준이 이람을 제대로 챙기고 있는지 까다롭게 굴 쪽은 이건이었다.제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건을 바라봤다.“기분 나빠졌어?”이건은 이람을 본 탓에 전날 밤 일을 다시 떠올렸다. 애초에 기분이 좋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건의 목소리도 낮게 가라앉았다.“멀쩡히 있다가 그런 식으로 당하고, 그걸로 협박까지 받았는데 내가 기분 좋을 리가 있어?”제은은 이를 악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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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9화

제은은 30분쯤 기다렸을 때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이건은 아마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제은이 무작정 이건에게 달려가면 이람과 하준에게 이상한 낌새를 들킬 수 있었다. 그래서 제은은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아니면, 제은은 자기 자신과 버티기 싸움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다. 이건이 정말로 다시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적어도 이건이 돌아온다면, 제은은 이건이 자신을 그 정도로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라고 알 수 있었다. 아직 화해할 희망이 남아 있다고 믿을 수 있다.제은은 강했다.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었고, 그 방식은 거칠었다. 마음도 아주 단단해서 누군가에게 거절당하는 것쯤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을 일방적으로 강제로 붙잡기만 하는 것은 제은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제은도 이건의 반응을 원했다.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제은은 이건을 많이 좋아하고, 정말로 이건과 제대로 연애 먼저 해 보고 싶었다. 그녀는 비뚤어진 사랑을 하는 못된 사람이었지만, 그런 제은조차 따뜻함과 사랑을 갈망하고 있었다.제은은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사람이었다. 아주 작은 좌절 하나만으로도 많은 이치를 짐작했다.그리고 늘 사랑 같은 건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서림과 이건이 제은에게 실망해 멀어져 가는 일을 겪으며, 제은은 또 다른 것을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것이 여전히 믿을 만한 것은 아니고, 결국 화학반응에 불과할지라도, 인간은 평생 이성만으로 살아갈 만큼 고급스러운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아름답고 진실된 감정을 만나면, 누구도 끝까지 거부할 수 없다.그래서 서림과 이건이 제은에게서 도망치려 할 때, 제은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공포와 조급함을 느꼈다. 감정은 곧 무너져 내렸다.예전과는 완전히 달랐다.예전의 제은은 누구에게도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제은에게서 멀어지든, 누가 제은을 미워하든 상관없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들이 제은을 미워한다고 해도, 제은은 그와 무관하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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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0화

‘강제은이 여기엔 또 왜 온 거야?’지난 보름 동안 수범은 이건과 제은 사이가 완전히 정리된 줄 알았다. 그런데 이제는 집 대문 앞까지 찾아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수범은 알 수 없었다.수범은 사실 제은과 단둘이 마주치는 게 정말 무서웠다. 제은이 갑자기 성질을 부리기라도 하면, 수범은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내 팔자는 왜 이렇게 사납냐?’수범은 속으로 자기 처지를 한탄하면서도 얼굴에는 억지웃음을 걸고 제은에게 다가갔다.“강제은 씨, 여기엔 웬일...?”제은은 눈을 들어 수범을 바라봤다. 수범이 살갑게 구는 모습을 보자, 제은은 문득 생각했다.‘조이건도 이렇게 살갑게 굴면 얼마나 좋아?’‘아니, 조이건이 처음부터 나한테 이렇게 굴었으면 내가 조이건을 좋아했을까?’‘사람 마음 참 웃기지.’‘정복하고 싶고, 어려운 걸 갖고 싶어 하다가 결국 내가 이렇게 끌려다니네.’제은이 턱끝으로 수범의 집을 가리켰다.“당연히 지 대표랑 놀러 왔지. 오늘 저녁은 여기에서 먹을 거야.”수범은 그 자리에서 바로 갈등에 빠졌다.제은을 거절하자니, 그 뒤의 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제은을 집 안으로 들이자니, 자기 친구 이건에게 너무 미안했다.‘나만큼 불쌍한 사람이 또 있을까?’제은은 수범이 망설이는 모습을 보고도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다.“나 여기서 한 시간 기다렸어.”수범은 마음이 약해졌다. 결국 더는 방법이 없어 제은을 집 안으로 들였다.수범에게 대단한 집안의 막내딸을 집에서 저녁까지 대접한다는 건 꽤 큰일이었다. 보통 재벌가 자식들이라는 부류는, 누군가에게 폐가 될 수 있다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수범은 이미 온갖 난관을 각오하고 있었다.그런데 제은은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다. 뭐든 먹을 수 있다고도 했다.제은은 먹을 것 이외의 사람 귀찮게 하는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저 거실을 가볍게 둘러보겠다고만 했다.말도 많지 않았다. 수범과 굳이 대화하려 하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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