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대신 내 약혼자한테 먼저 말해 둬야 해. 유 대표, 몇 분만 기다려 줄 수 있어?” 민서는 흠잡을 데 없는 미소를 지었다.재원의 눈매가 살짝 가라앉았지만, 입가의 웃음은 그대로였다.“당연하지. 괜히 오해 사면 안 되니까.”민서는 대답하지 않고 재원을 바라보기만 했다.조금 떨어져 달라는 뜻이었다. 통화하는데 재원이 가까이 있으면 불편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재원은 웃으며 몇 걸음 물러섰다. 두 팔을 가슴 앞에 느슨하게 포개고, 다정해 보이는 눈으로 민서를 간간이 바라보았다.오랜만에 봤는데도, 기억 속 그대로 매정한 여자였다.방금 재원이 한 말은 반쯤은 진심이고 반쯤은 거짓이었다. 민서에게 예의를 차리는 척하는 건 거짓이었지만, 민서가 놀라 달아날까 봐 조심한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민서와 마주 앉아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만큼은 진짜였다. 이렇게까지 돌려 말했는데, 가볍게 말을 붙였을 뿐인데, 민서는 굳이 약혼자까지 끌어냈다.‘아니, 벌써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데, 민서의 약혼자는 아직도 안 죽었나?’‘딸이 두 살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민서는 아직도 파혼을 안 했다니.’‘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재원의 낙천적인 천성은 타고났다. 민서의 곁을 끈질기게 맴돌다 보면, 언젠가는 자기에게도 기회가 올 거라고 믿었다.민서가 재원 앞에서 그럴듯하게 전화를 한 통 끝내자, 시선이 재원 쪽으로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민서는 눈짓으로 얼른 차에 타라는 뜻을 보냈다.재원은 입꼬리를 올린 채 웃음을 가득 띠고 조수석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재원이 차 문을 두드렸다.창문이 내려가자, 민서가 고개를 살짝 기울여 말했다.“미안. 내 약혼자가 유 대표는 조수석에 앉으면 안 된대.”“오오.” 재원이 웃었다. “되게 속 좁네.”“유 대표한테 약혼녀가 생기면, 다른 여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조수석에 태울 수 있어?”재원은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그건 또 그렇네.”재원은 결국 뒷좌석에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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