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191 - Chapter 200

498 Chapters

제191화

지금까지 큰 마찰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건, 전부 하준의 너른 아량 덕분이었다. 이람이 누구든 상관없었다. 다른 비서가 왔어도 똑같았을 것이다.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말로 맞지 않는다면, 굳이 억지로 맞출 필요가 없다. 이람이 평생 하준의 비서로 일할 것도 아니니, 결국은 이 관계를 굳이 유지할 가치가 있는지 따져봐야 했다.서하준이라는 사람의 신분과 위치는,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잘 보이려 애쓰게 만든다. 세상 기준으로만 보더라도, 이람에게는 이 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충분했다. 더군다나 하준은 이람에게 정말 친절했다.‘내가 해결 못 하면,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지.’우세진은 수석비서고, 부연훈은 부대표다. 둘 다 적합하지 않았다. 누구를 떠올려도 마땅치 않다가, 마지막에 떠오른 사람이 유재원이었다.하준에게 종종 찍히는 사람이니, 분명 뭔가 방법이 있을 터였다.이람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마침 J시에 있던 재원은 의외라는 듯 밝게 말했다.[이람 씨, 웬일로 나한테 전활 다 했어요? 제가 보고 싶었어요? 그럼 제가 이따가 비행기 타고 바로 갈까요? 우리 같이 놀아요.]“그렇게까지 번거롭게 오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유 대표님.”재원은 이람이 얼마나 총명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동했다.[이람 씨가 저한테 물어볼 일이 있어요? 제가 머리는 좀 안 따라줘도요, 사람 자체가 소박하고 자신감은 넘쳐서요. 뭐든 말씀해보세요.]조건만 보면 도무지 ‘소박’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제가... 서 대표님 기분을 상하게 했어요. 어떻게 풀어드리면 될까요?”재원은 단순한 궁금증이 순식간에 흥분으로 번졌다.[무슨 일이에요? 내가 뭘 놓쳤길래 이런 재미있는 얘기를 지금 듣는 거죠?]세진으로부터 하준이 이람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말을 들은 뒤로, 재원은 얌전히 있었다.정말 관심이 없다면,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했기 때문이다.안 그러면 그건 하준에게 괜히 상처만 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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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화

민서가 사는 빌라는 시내 중심가인 남강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길가에는 키 큰 플라타너스가 줄지어 서 있었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틈으로 흩어진 햇빛이 제헌의 얼굴에 깜박이며 내려앉았다.제헌은 쿨 톤의 흰 피부에, 키는 188센티, 넓은 어깨와 잘 정리된 허리선. 그는 대표이사로 3년을 지내며 한 기업을 이끌어온 시간이 자연히 만들어낸, 귀하고 냉정한 분위기가 제헌의 전신에 흐르고 있었다.주말이라 그런지, 오늘은 진회색의 얇은 니트에 편한 슬랙스를 입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저 길고 단정한 실루엣에 가까이 보면 한 번에 시선을 빼앗길 만큼 단정하고 잘생긴 얼굴이 빛났다.아마 오후 햇살이 한층 부드러워서일까... 평소 제헌에게서 느껴지던 냉담함이 조금 가라앉아 있었다.공인중개사는 제헌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고, 설명을 듣는 제헌은 시선을 낮춘 채 조용히 듣는 중이었다. 보기 드문, 부드러운 모습이었다.그 순간, 이람의 머릿속에 오래전 날마다 떠올리다 잊어버린 시간이 갑자기 숨도 없이 밀려들었다.‘우리에게 아이가 생기면... 함께 손을 잡고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놀아줄 수도 있겠지.’‘셋이서 같은 옷도 입어보고... 제헌 씨는 멋지고, 나도 나쁘지 않고, 아이는 귀엽고.’‘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등원시키고 나서 제헌 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를 산책하겠지. 손바닥이 닿는 온도도 느끼면서 별 얘기 아닌 걸 주고받으면서.’‘제헌 씨는 말수가 적겠지만, 그래도 분명 내가 하는 말은 다 들어주겠지. 눈길도 나에게만 주고.’‘아이가 더 크면 공부 챙기는 아빠가 될 텐데... 좋아하는 음식도 기억했다가 퇴근길에 사 오고.’‘그리고 우리 둘이 나이가 들어가면... 손잡고 여행 다니면서 세상을 구경할 수도 있겠지.’‘뭐가 변하든, 그는 늘 내 옆에...’‘...’이람이 예전에 정말,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왔던 미래들.이미 오래전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필 지금 아무 예고도 없이 머릿속으로 솟아오른 걸까?아마도 누군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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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화

이람과 제헌은 멀리서 서로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이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주 명확하게 깨달았다.부부로서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는 걸.어제까지만 해도 제헌의 감정에 약간의 흔들림이 있었는데, 지금의 제헌은 완전히 평온했다.그 평온함이 오히려 더 차갑고 멀었다.이람은 피하지 않았다.유리가 자신을 훑어보는 시선도 느껴졌지만, 그저 제헌에게 담담하게 말했다.“내일 오후 2시. 당신 회사로 데리러 갈게.”제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표정조차 없었다.그저 차갑고 건조한 눈으로 이람을 바라볼 뿐이었다.이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차 문을 열고 태연하게 탄 뒤, 제헌과 유리 앞을 지나 그대로 떠났다.제헌은 드물게, 멀어져가는 이람의 차를 끝까지 바라보았다.옆으로 길게 이어진 눈매가 천천히 내려앉았다.어제 제헌은 이미 스스로 정리를 끝냈다.이람이 아이를 잃은 고통과, 유리의 귀국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졌고, 그 와중에 SY그룹에 다니게 된 상황을 하준이 이용했을 거라고 짐작했다.‘그래서 한 달 동안 일부러 나를 자극했겠지.’‘화를 낼 명분도 있었고, 틈도 있었으니까.’어제까지만 해도 ‘그래도 이람은 이혼까지는 못 갈 거야’ 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는데, 지금 이람이 ‘내일’이라고 직접 시간을 못 박아 말했다.누가 봐도 두 사람은 내일 가정법원에 갈 것이다.제헌의 머릿속이 갑자기 새하얘졌다.그는 정신이 돌아왔을 때쯤, 이미 이람의 차는 보이지 않았다.“제헌아...”제헌은 시선을 거두며 유리를 바라보았다.“몇 번을 불렀는데, 못 들었어?”그는 정말로 못 들었다.그리고 머리가 텅 비어 있었다.현실로 돌아온 순간, 제헌의 입가에는 자기도 모르게 어이없는 냉소가 걸렸다.‘그래... 조이람이 정말 결심했구나.’‘이혼한다면 난 백 번, 천 번이라도 찬성이지.’‘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는데...’‘사랑도 없는 사람이 매달릴 이유도 없고... 바보처럼 굴며 매달리는 건 동기도 없어.’유리가 말했다.“그럼 계속 보자. 이 길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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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화

이람은 반나절 동안 차를 타고 멍하니 돌아다녔다.천천히 마음이 차분해지고, 감정이 가라앉았다.슬슬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싶어 내비게이션을 켰다.그제야 알았다.어느새 시외까지 와 있었고, 집까지는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거리였다.시외 도로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가끔씩 튀어나오는 스포츠카의 엔진 소리만 울릴 뿐이었다.그러다 어느 순간, 뒤에서 람보르기니 한 대가 이람의 차를 바짝 따라왔다.이람은 룸미러로 힐끗 보았지만, 누가 타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이람이 속도를 조금 올렸다.그 차가 곧장 따라붙었다.그리고 스치듯 방향을 틀어 지나갈 때, 작은 각도 사이로 보였다.강제은의 미친 듯 들뜬 얼굴.‘강제은 또 미쳤네. 진짜 한번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이람은 앞쪽 도로 상황을 살폈다.근처에 넓은 공업지대가 보였다.이람은 일부러 속도를 늦추며 그쪽으로 차를 끌고 갔다.기회라고 생각한 제은은 앞을 가로막을 생각으로 이람의 차를 일부러 벼랑 끝처럼 몰아붙였다.혹은 모래 자갈 위로 차를 튕겨내려 했다.이람은 표정이 확 식었다.그러다 갑자기 확 속도를 올렸다.제은은 예상치 못하고 뒤늦게 악에 받쳐 엑셀을 밟아 쫓아왔다.잠시 추격전이 벌어졌지만, 제은의 차는 도저히 이람의 차를 따라잡지 못했다.게다가 이람은 차선을 번개처럼 갈아타며 움직였다.제은이 따라붙을 만하면 이미 이람은 다른 쪽 차선으로 이동해 있었다.두세 번 그렇게 뺑뺑이를 돌자 제은의 인내심이 결국 바닥났다.“씨X! 뭐야 진짜!”영미는 조수석에서 온몸을 굳힌 채 대시보드를 꽉 붙잡고 있었다.얼굴은 질렸고, 팔 근육은 막 터질 듯 긴장돼 있었다.또 한 번 이람이 순식간에 차선을 바꿨을 때, 제은이 급하게 방향을 틀자 영미는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오는 느낌에 결국 비명을 질렀다.“아아악! 살려줘! 제은아 그만해! 제발 쫓지 마!!!”“아니, 밖에 나와서 바람 좀 쐬겠다는데 조이람이 튀어나온 게 잘못이지! 이건 운명이야! 한 번 조져놔야 속이 시원해!”“운명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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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5화

지금 제은의 머릿속에 이성 따위는 없었다.‘지랄이고 뭐고 일단 붙으면 끝이야!’완전히 그 상태.2초 뒤, 이람은 제은의 얼굴을 차체에 그대로 꽉 눌러 붙이고 있었다.제은은 미친 듯이 버둥거렸다.하지만 이람이 얼굴을 짓누르는 손은 단단한 콘크리트처럼 꿈쩍하지 않았다.억눌린 채로 숨도 잘 안 쉬어지자, 제은은 순간 서러움이 치밀어 올랐고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조이람 저 미친년... 제발 가다가 트럭에 치여서 죽어버려라... 제발...’“왜 쫓아왔어?”이람이 물었다.제은은 목이 메면서도 목소리는 독기만 잔뜩 서려 있었다.“왜긴 왜야. 널 처박아 죽이려고 그랬지!”“그 정도로 내가 싫어?”“당연하지! 씨X, 내가 널 얼마나 싫어하는데 조이람! 네가 감히 나를 때렸잖아!”세상 태어나 단 한 번도 제대로 억울함을 겪어본 적 없는 제은은, 지금 땅바닥에 처박힌 꼴이어도 눈빛만큼은 끝까지 기어오르는 오만함 그대로였다.“우리 이제 완전 원수야. 앞으로 너 어디서 한 번이라도 마주치면, 무조건 너 인생 망칠 거다, 내가!”“요즘 나 만나면 매번 네가 지던데?”이람이 무심하게 던졌다.“그건 그냥 운이 좋은 거지! 조이람, 언제까지 너에게 운이 따라줄 것 같아?!”제은은 다시 악을 썼다.“우리 3년이나 알았잖아! 내 성격 알지? 내가 안 놓는다고 하면 끝까지 가! 평생 괴롭힐 거야, 진짜로! 너도 서하준도 똑같은 쓰레기야!”“너도 같은 부류라는 말이네?”“그렇지! 내가 뭐 어떤데! 알아서 기면 되지!”이람은 흥미도 없다는 듯 제은을 내던졌다.제은은 땅에 손 짚고 일어나 눈을 번뜩이며 이람을 노려봤다.이번엔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조금 전 죽음이 턱밑까지 왔던 순간의 전율이 몸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그때, 이람이 무표정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제은은 그 사이 슬쩍 쳐들어가려 했지만, 바로 앞에서 토악질을 겨우 멈춘 영미가 기절할 듯 허여멀건 얼굴로 가로막았다.“비켜!”“네가 이길 수 있으면 비켜주지.”제은은 눈을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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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6화

영미는 이람에게 오래전부터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그래서 참다못해 제은에게 입을 뗐다.“이람 언니가 Sun이면... 진짜 대박인데?”“말도 안 돼! 조이람이 Sun을 안다고 했잖아. 내가 Sun을 목표로 두고 있다는 걸 아는데, 그럼 그냥 말했겠지.”제은이 홱 돌아보며 영미를 노려봤다.“그냥... 조금 닮은 것 같아서 그렇지. 조이람이 일부러 흉내 낸 걸 수도 있잖아.”“그럴 수도 있지. 근데 이람 언니 그렇게 운전을 잘하는데, 너 왜 나한테 한 번도 말 안 했어?”영미는 유리의 경기도 본 적이 있었지만, 마음은 늘 이람 쪽이었다.‘이람 언니가 경기장에서 한 바퀴 돌면... 하유리보다 더 잘하는 거 아닐까?’“흥, 조이람이 뭐라고 내가 신경을 써?”늘 무시당하던 제은은 이람에게 당한 기억 때문에, 이제는 이람만 보면 이를 갈았다.“조이람 손에 내가 없는 사진이 두 장이나 있어. 그걸 또 들고 와서 자랑질하더라. 진짜 열 받아!”제은의 가슴속에서 질투와 분노가 뒤섞여 타올랐다.‘조이람 따위는 Sun을 알 자격도 없어.’Sun은 하늘의 태양 같은 존재였고, 이람은 그저 더러운 웅덩이에 비친 달빛 정도로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고 제은은 생각했다.이람과 Sun이 엮이는 것만으로도 역겨웠다.“그만 얘기하고 가자.”영미가 제은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뭐야, 왜 잡아. 비켜.”“이람 언니 말대로 하자. 대리 부르자. 난 지금 네가 운전하는 거 못 믿겠어. 그리고 너 차는... 나 진짜 앞으로 못 타겠다.”제은의 자존심이 하늘을 찔렀다.영미 손을 탁 치고 차로 향했다.뒤로 살짝 차를 빼더니, 창문 너머로 영미를 비웃듯 올려다봤다.“그렇게 겁나면 네가 알아서 택시 타고 가던가.”“와... 나를 진짜 버리고 간다고?”제은은 대답도 없이 액셀을 밟았다.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대리 따위 안 불러’라고 보여주겠다는 듯이.그러나 도로에 닿기도 전에 거대한 화물차가 경적을 울리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2초 후, 제은은 다시 원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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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7화

제헌과 지후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제헌은 지후의 웃는 얼굴에 지겨울 만큼 익숙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손에 든 술을 그대로 지후 얼굴에 끼얹고 싶었다.“형, 왜 안 마셔요?”“이런 게... 축하할 일이냐.”“그래요?”지후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는다.“형 계속 이혼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드디어 하는데 좋은 거 아니에요?”“알아.”제헌의 입술은 얇게 일직선으로 굳어 있었다. 그는 기뻐해야 한다는 건 제헌도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마음이 특별히 나쁘지도 않았다. 평소랑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들뜬 것도 아니었다.“그럼 마셔요, 형.”결국 제헌은 지후가 건넨, 결혼에서 벗어났다는 명목의 ‘축하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켰다.탁-거칠게 내려놓은 술잔 소리가 울리고, 제헌은 더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그대로 먼저 일어나 집으로 향했다.지후는 멀어져가는 제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방금 전보다 더 어둑하게 가라앉은 눈으로.‘내일... 진짜 기대되네.’유리 역시 제헌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유리도 내일이 기다려졌다....제헌은 평소보다 훨씬 일찍 집에 도착했다.뜻밖이라는 듯 놀란 이순심은, 제헌의 좋지 않은 얼굴빛을 보고선 할 말을 삼키는 표정이었다.제헌이 먼저 입을 열었다.“할 말 있어요?”“대표님... 사모님이 떠나신 지 딱 한 달 됐잖아요. 그래서... 언제 돌아오시나 해서요.”순간, 제헌의 가슴속에서 불덩이가 확 치밀어 올랐다.‘왜 다들 조이람 걱정이야?’‘조이람이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이순심은 제헌의 갑작스러운, 일그러진 얼굴에 깜짝 놀라 뒷걸음질 쳤다.“대, 대표님... 왜 그러세요...”그때 제헌은 이순심의 눈 속 두려움을 보고서야 퍼렇게 식어버린 듯 정신이 돌아왔다.‘방금 뭐였지... 왜 이렇게 화가 났지? 화낼 이유가 뭐라고?’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을 가라앉힌 제헌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조이람은 안 돌아와요.”이순심의 얼굴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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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8화

그 의문은 잠시 제헌의 머릿속에 머물다 금세 흩어졌다.제헌은 더 생각하지 않고 서재로 들어가 일을 몇 가지 처리했다.하지만 집중하려 해도 자꾸만 눈물 흘리던 이순심의 모습이 떠올랐다.이순심은 이람 때문에 울고 있었다.제헌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자기와 이람이 이혼하는 것뿐인데, 이순심이 울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조이람이 집 나가고 없던 한 달 동안 잘만 지내더니, 갑자기 적응이 안 돼?’제헌은 이순심이 혹시 이람한테 무슨 부탁이라도 받은 건지 의심했다.‘일부러 내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라 시킨 건 아닐까?’이람이 이 집에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보여주고, 이혼은 잘못된 선택이라고 암시해서 자신이 마음을 돌리게 만들려는 계산일지도 모른다고.그 생각이 떠오르자 제헌은 비웃듯 낮게 코웃음을 쳤다.‘조이람이 나가든 말든, 내가 왜 신경 써?’잠시 뒤 씻고 나온 제헌은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평소엔 금방 잠드는 편이었다.혼자 자는 게 익숙해서 수면의 질도 좋았다.오늘도 곧 잠들 거로 생각했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록 눈이 떠졌다.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제헌의 얼굴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다시 눈을 감아보지만, 귀찮을 정도로 잠이 오지 않았다.십 분쯤 더 뒤척이다 결국 일어나 영화방으로 갔다.대충 아무 영화나 눌러 틀었다.〈쇼생크 탈출〉이었다.제헌은 무표정하게 화면을 바라봤다.하지만 영화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문득 이혼한 친구들이 떠올랐다.술만 마시면 과거 얘기를 꺼내며 울고불고하던 그 친구들.어떻게든 정리해 보려 하지만 말은 횡설수설, 순간순간 전처를 욕하다가 또 한순간엔‘내 인생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은 걔였어’하며 절규하던 모습들.성공한 사람이라도 결혼생활을 망치면 꽤 큰 타격을 받는 건 사실이었다.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제헌은 자신에게 말했다.‘난 조이람을 사랑하지 않아.’‘결혼은 나에게 그저 족쇄였잖아.’‘내일이면 드디어 그 귀찮은 족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어!’그는 기뻐해야 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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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9화

이건 쪽에서 꽤 큰 소리가 났다.아마 수범을 밀어내고 이건이 폰을 빼앗은 듯했다.잠시 뒤, 이건의 낮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수범이 말 듣지 마. 그리고 이건 숨길 일도 아니고, 누나한테 경고하려고 전화한 거야. 갑자기 이혼하기 싫다 그러면, 나 진짜 누나랑 인연 끊는다. 조이람, 나 장난 아니야. 진심이야.]그 말과 동시에 전화가 끊겼다.이람 주변에는 그녀의 이혼을 바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민서와 이건은 말할 것도 없고, 우세진도 문자로 ‘내일 이혼 순조롭게 끝내길 바란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심지어 장성모, 오나솔까지 메시지를 남겼다.나솔이야 워낙 사람 사는 이야기 좋아하니 그럴 수 있다 치지만,성모는 또 왜?이람의 정확한 일정까지 알고 있는 걸 보면, 아마 세진이 흘린 정보인 듯했다.그리고, 빠질 수 없는 유재원.메시지를 열 개 넘게 보내며 ‘이혼 축하 돌싱 환영 파티 열어주겠다’, ‘엄청 화끈하게 해주겠다’라며... 난리를 쳤다.이람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재원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단칼에 거절했다.그리고 고지후.지후도 메시지를 보냈지만 이람이 열어보기도 전에 바로 삭제했다.내용은 안 봐도 이혼 관련일 테고, 입장상 미묘하니 보냈다가 취소했을 가능성이 컸다.이람도 굳이 묻지 않았다.이런저런 연락에 정신이 쏙 빠지고 나니, 더는 일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이혼’이라는 두 글자가 또렷하게 눈앞에 떠올랐다.다들 축하해주고 응원해 줬지만, 막상 그 일을 맞닥뜨리는 당사자는 이람 혼자였다.이 감정은 누구도 대신 느껴줄 수 없었다.씻고 나온 이람은 침대에 누웠다.잠이 오지 않아 안방 TV를 켰고, 그냥 아무 영화나 눌러 재생했다.〈쇼생크 탈출〉였다.예전에 제헌과 함께 본 적 있는 영화였다....다음 날, 월요일.제헌은 평소처럼 출근했다.이순심은 하루 휴가를 냈다.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이람은 예전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제헌의 아침을 만들어줬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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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0화

제헌은 전화를 끊자마자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대표이사실 문이 닫히는 소리가 꽤 거칠게 울렸다.기성은 잠깐 스치는 제헌의 얼굴을 보고 숨이 턱 막혔다.안색이 어둡다 못해 살벌했다.묻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기성은 감히 다가갈 수 없었다.비서실 직원들 또한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봤다.“허 비서님... 대표님은 왜 저러세요?”김선아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모르겠어요.”기성이 짧게 대답했다.“가서 여쭤볼까요?”아까 들었던 제헌의 냉혹한 말투가 떠올랐다.기성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대표님 개인적인 일이에요.”그 표정을 보면, 기성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떠올렸다.‘또... 사모님 때문인가?’이틀 전 제헌이 갑자기 A시에 다녀온 일도 있었다.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헌이 기성에게 말해주진 않았지만, 이람과 관련된 것이라는 건 기성도 알고 있었다.기성은 본래부터 이람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람에 관련된 일은 관심도, 호감도 없었다.상사가 말하지 않는다면 기성 역시 굳이 캐묻지 않는다.대신 한 가지를 조용히 바랐다.‘하유리 씨가 빨리 자리 잡아야 하는데... 집까지 사줬으니 이제 슬슬...’기성의 속마음과는 다르게... 제헌은 주차장에 도착할 즈음엔 이미 표정을 완전히 지워냈다.차갑지도, 화나지도 않은 얼굴.그저 무표정만 남아 있었다.이람이 알려준 위치로 걸어가자 멀리서 이람의 레인지로버가 눈에 띄었다.새 차였다.제헌은 어제야 알게 되었지만,‘이 정도 가격대의 차’엔 전혀 흥미가 없는 사람이었다.이람도 제헌을 발견했다. 창문을 내리고 차갑게 한 번 훑어보더니, 차를 앞으로 몰아 제헌 바로 앞에 세웠다.“타.”전화에서 들었던 그대로 건조하고 차가운 목소리.제헌은 늘 하던 대로 뒤쪽 문을 잡아당겼다.그러나 문은 잠겨 있었다.잠시 멈칫한 제헌은 눈살을 찌푸리며 이람을 보았다.“뭐 하는 건데?”“조수석 타. 나 당신 운전기사 아니야. 내 차 타면서까지 사장님 대접받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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