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621 - Chapter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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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1화

이람은 백미러를 흘끗 확인했다. 뒤에 붙은 차량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계속 같은 간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늘 함께하던 차가 아니었다. 이전에는 본 적도 없는 차량이었는데, 이번에는 굳이 불러낸 모양이었다.이람은 하준이 이렇게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위험한 일이라도 있는 거예요?”“아니.”“아니면 저 사람들은 왜...”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준이 이람의 뺨에 손을 올렸다. 표정은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이래야 내가 좀 안심돼.”그 말과 함께 하준의 손이 이람의 목덜미로 내려갔다. 아주 미세한 힘이 가해지자 이람은 저항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하준 쪽으로 끌려갔다.하준은 몸을 낮춰 이람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곧바로 거리를 벌린 뒤, 그녀를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차에서 내렸다.차 앞에 선 하준은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이 남자의 얼굴 위로 내려앉아, 마치 얇은 금빛을 덧씌운 것처럼 보였다.하준은 시선으로 이람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이람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 작게 웃어 보였다.“집에서 기다릴게요.”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취한 그 동작은 지나치게 공손해서 마치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이처럼 보일 정도였다.하지만 이람은 그런 하준의 모습이 좋았다. 단정하고 안정적이며 자연스럽게 중심을 잡는 태도. 말 없이도 믿음을 주는 분위기. 그것만으로도 아주 든든했다.이람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조금 더 깊어졌다.하준은 이람의 눈에 담긴 빛을 바라보다가, 눈가에 서려 있던 차가운 기운을 조금 거두었다.이람의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하준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색 비즈니스 차량이 조용히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서태인의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준을 보자마자 반가움을 과장되게 드러냈고, 괜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듯 살폈다. 달라진 게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그러나 입을 여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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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하준은 침묵으로 서태인의 쓸데없는 말을 받아쳤다.서태인은 한숨 섞인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지독하게 흥이 식은 사람처럼 보였다.“그래도 어릴 때가 훨씬 나았지. 내가 뭘 하던 넌 찍소리도 안 했잖아. 한 번은 네 엄마한테 들켜서, 너 혼자 방에 갇혔던 거 기억 나? 거의 굶어 죽을 뻔했지.”“하하하하. 서하준, 그때 너 진짜 겁 많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몰랐지.”“솔직히 말해서, 난 네가 평생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살 줄 알았거든. 쯧쯧쯧. 서 씨 집안에서 말이야, 네 엄마랑 너는 진짜 예외야. 나한테는...”서태인의 말에는 과거에 대한 왜곡된 애착이 묻어 있었고, 화제는 아무 맥락 없이 툭툭 튀었다. 술에 절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내뱉는 말들이었다.“아, 맞다. 예전에 내가 괜히 호기심 생겨서 너한테 남녀 관계 같은 거 가르쳐 주겠다고, 친구가 운영하던 유흥업소 데려간 적 있었잖아.”“거기서 사람들 하는 거 억지로 보게 하고... 하하하. 너 그때 토했지. 그 뒤로 수년 동안 네 옆에 여자 하나 없는 거 보면서, 사실 조금은 미안하긴 했어.”“내가 선을 잘못 넘은 것 같아서. 너한테 이상한 흔적을 남긴 거 아닐까 싶더라고. 그래서 네가 여자 자체를 싫어하게 된 건가 싶기도 하고.”서태인은 손가락 하나를 들어 관자놀이를 가볍게 두드리며 고개를 기울였다.“그때 네가 몇 살이었지? 열두 살이었나, 열셋이었나.”성인 남녀의 뒤엉킨 몸들이 하준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하준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서태인은 하준의 팔을 비틀어 등 뒤로 꺾고, 무릎으로 목덜미를 눌렀다. 얼굴의 절반이 바닥에 눌린 채였다. 하준은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 끊임없이 힘을 줘 벗어나려 했지만, 서태인은 더 강하게 눌러대며 그 모습을 두고 웃어댔다.하준의 기억은 거기서 끊겼다.현재로 돌아온 하준의 시선은 어딘가 어긋나 있었다.“그래서 말인데, 이 외삼촌은 네가 연애한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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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하준은 목소리를 낮췄다.“제 여자친구를 보고 싶다면, 목숨이 하나 더 있는지부터 계산하셔야 할 겁니다.”서태인의 눈앞, 불과 몇 센티미터 거리에는 그대로 시력을 앗아갈 수 있는 유리 파편이 멈춰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다만 그 말이 명확한 살의로 들린 뒤에야 서태인의 동공이 미세하게 조여들었다. 그리고 곧 제정신이라고 보기 힘든 웃음이 터져 나왔다.“하하하하. 네가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사람이 생겼다니.”서태인은 숨을 섞어 웃었다.“하준아, 만약 조이람이 널 버리면 어떡할 건데? 평생 사랑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는 네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하하하. 난 진짜 기대돼. 강제헌이 그 여자를 데려가는 거. 그럼 너는 또 버려지는 거잖아. 한 번도 아니고, 계속...”유리의 끝이 앞으로 조금 더 이동했다.서태인이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속눈썹이 거의 닿을 만큼 가까웠다.하준의 손이 조금만 흔들려도 서태인은 한쪽 눈을 잃을 수 있었다.그제야 서태인의 숨이 어긋났다. 완전히 태연한 척하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한 번 하준에게 보복을 당한 적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기억은 지워지지 않았다.심장에서 불과 몇 센티미터 떨어진 곳, 아직도 남아 있는 흉터. 그때 하준이 쥔 칼이 꽂혔던 자리였다.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목숨을 잃었을 상처였다.그래서 서씨 가문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하준이 한계에 몰리면, 정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쪽에 가까운 인간이라는 걸.그 이후로 하준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서태인은 그 흉터 때문에 하준을 유독 의식했다. 물론 걱정 같은 건 아니었다. 단지, 하준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뿐이다.조카가 불행하면, 외삼촌인 서태인은 즐거웠다.서태인은 하준에게 밀리지 않으려는 듯 숨을 고르며 말했다.“그래서 나 죽일 수는 있겠어?”하준이 서태인의 머리를 비틀었다. 손이 미끄러졌다.서태인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결국 그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타는 듯한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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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하준은 말을 마치자마자 서태인을 거칠게 밀쳐냈다.손을 휘두르는 동작은 무심해 보였지만, 실린 힘은 컸다.서태인은 쓰레기처럼 바닥에 나뒹굴었다.바닥에는 깨진 와인잔의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그는 몸을 지탱하려고 손을 짚었다가 그대로 파편 위를 눌렀다.손바닥이 즉시 찢어졌고, 피가 빠르게 번졌다.서태인은 피로 범벅이 된 손을 내려다보았다. 고통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일부러 과장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술에 취한 상태였고, 조금 전까지 목숨을 위협받은 탓에 급격히 치솟았던 흥분이 빠져나가면서 머리가 심하게 어지러웠다. 제대로 서 있는 것조차 버거웠고, 하준과 몸싸움할 여력은 더더욱 없었다.서태인은 몇 번이나 거칠게 숨을 내쉰 뒤, 테이블을 붙잡고 잠시 균형을 잡았다. 눈가를 문지르자 손가락에서 다시 끈적한 피가 묻어났다.그리고 표정이 잠깐 일그러졌다. 눈에는 서늘한 기운이 깔려 있었고, 가슴 한복판에 남아 있는 칼자국이 다시 쑤시는 듯했다. 오래된 원한과 조금 전의 일이 겹쳐 올라왔다.서태인은 이를 갈며 말했다.“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담력은 오히려 줄었네. 난 네가 이번엔 더 크게 할 줄 알았어. 조카, 연애하더니 사람이 되기는커녕 더 겁쟁이가 된 거야?”하준은 상대방의 짖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표정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원하시면 직접 확인해 보시죠. 목숨은 보장 못 합니다.”“하하하하, 하하하하. 진짜 웃기네.”서태인은 거의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렸다.“나를 죽이겠다고? 하하하. 좋아, 좋아. 죽이고 싶으면 해 봐. 예전에 네가 나 찔렀을 때도 난 살아남았잖아.”“그건 내가 운이 좋다는 뜻이지. 이번엔 정말 죽일 수 있는지 한번 보자고!”서태인이 웃는 모습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정말 운이 좋았을까?아니었다.그때도 하준이 손을 멈췄을 뿐이었다.하준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서태인을 바라봤다. 그 시선은 무대 위에서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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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늘 조용하고 말 잘 듣던 집안의 어린 하준이 그런 일을 저지를 거라고는...어른들은 비명을 질렀고, 누군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말렸고, 누군가는 피를 보고 소리질렀다.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그 와중에 서태인만은 똑똑히 보았다. 조카 하준의 눈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다는 것을.그때 서태인은 처음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겉에서 오는 두려움이 아니라, 몸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감각이었다.죽음이 바로 지척에 와 있다는 느낌.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평생 잊지 못한다.그날 이후 서태인은 정말로 겁을 먹었다.다시는 하준을 건드리지 않았다.하지만 대신 둘 사이에는 되돌릴 수 없는 선이 그어졌다.화해가 아닌 증오로 이어진 관계였다.지금의 하준은 더 이상 그때의 소년이 아니었다.사실 생각해 보면, 그 나이에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평범한 아이는 아니었다.다만 아직 자라지 않았을 뿐, 이빨과 무기를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었다.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약점은 있다.서태인은 우연히 하준의 일기를 본 적이 있었다.내용은 단순했다. 숫자들. 날짜처럼 이어진 카운트다운.처음에는 의미를 알 수 없었다.그러다 강수철 회장이 사람을 보내 하준을 H시로 데려갔을 때, 서태인은 깨달았다.하준은 하루하루 숫자를 세며 살고 있었다.언제 다시 강수철 회장을 만날 수 있을지를 기다리면서.그걸 알아차린 순간, 서태인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하준은 참으로 단순했다.사랑받아 본 적 없는 아이는, 누군가 조금만 잘해 줘도 그걸 놓지 못한다.하준은 세상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다.단 하나... 자신이 좋아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이 떠나가는 것만은 견디지 못했다.그리고 그런 하준에게 이제 이람이 있었다.연애였다.이건 이전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하준의 성격상 가볍게 만날 리 없었다.만약 이람이 그를 떠난다면, 하준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다.아무도 찾지 않는 아이.그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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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서주연은 하준을 낳았지만, 처음부터 어머니가 될 마음으로 임신한 건 아니었다.계획에도 없었고, 준비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지울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이후 강운국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거의 동시에 아버지의 죽음이 겹쳤다. 감당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서주연에게는 하준을 돌볼 여유가 전혀 없었다. 결국 하준은 강수철 회장에게 맡겨졌다.권력을 손에 쥐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걸 지키기 위해 그녀는 더 바빠졌다. 쉴 틈이 없었다.어차피 하준은 강수철 회장 곁에서 지내고 있었고, 본가에 있는 한 안전했다. 1년에 한 번 얼굴을 보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몇 해가 지나 하준은 다시 서 씨 가문으로 돌아왔다. 일곱, 여덟 살에 불과했지만 이미 자기 성향이 분명했다.서주연 역시 아이 없이 지내는 삶에 익숙해져 있었고, 하준에게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는 바빴다.서씨 가문 사람들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권력을 두고 다투는 형제자매들, 이해관계로 엮인 혼맥들.진짜로 가문의 중심에 서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하준이 어린 나이에도 자신을 챙길 줄 안다고 판단한 순간, 서주연은 더 이상 마음을 쓰지 않았다.젊음의 기세는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말이 아니었다.서주연 역시 그러했다.그녀의 인생은 늘 거칠고 치열했고, 모든 에너지는 일에 쏟아부어졌다.그 대가로, 하준의 성장 과정을 거의 놓쳐버렸다.이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함께 보낸 생일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나이가 들면서 서주연은 하준이 확실히 잘 자랐다는 사실을 체감했다.사회적으로도, 능력 면에서도 인정받는, 엄마의 체면을 세워주는 아들이었다.관계를 조금씩이라도 풀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다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랐다.경험은 쌓였지만, 아들과 함께 사는 삶에는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다.하준이 집에 일주일만 머문다고 해도, 먼저 지쳐 나가떨어질 건 자신이었다.그래서 관계를 바꾸는 첫걸음조차 오래 고민해야 했다.다행히도 그녀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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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하준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운전석에 앉아 있는 기사도 차 안에서 가끔 흘러나오는 업무 이야기를 들을 때면 새삼 느끼곤 했다.믿었던 측근의 배신, 상식 이하로 떨어진 선택들, 처리하기 까다로운 사건들...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 분노에 휩싸였을 일들이었다.그런데도 하준은 늘 침착했다.상황을 정리하고 계산하고, 다음 수를 준비했다.감정을 앞세우는 법이 없었다.그런 평정심이야말로 기사가 하준을 마음 깊이 존경하는 이유였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하준의 호흡이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었다.이렇게까지 눈에 띄는 모습은 처음이었다.‘대체 누구랑 통화하는 거지?’기사는 무언가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자신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준은 미간을 좁혔다. 자신의 고통이 서주연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렇게까지 불편한 감정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더구나 서주연의 인식 속에서 하준과 서태인이 ‘괜찮은 외삼촌과 조카’였다는 점도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게 보였다고?’하준은 잠시 시간을 들여 그 감정을 억눌렀다.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전 통보하러 전화한 겁니다.”“어머니께 훈계 들으려고 한 게 아닙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저를 가르칠 자격도 없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하준은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내렸다.서주연이 무언가 말을 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손이 허공에서 잠시 흔들리다 멈췄고, 하준은 전화를 끊었다.곧바로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그제야 기사는 급히 운전석으로 돌아갔다.지금 하준이 원하는 건 분명했다.집으로 돌아가는 것.차는 ‘더 하이엘’ 아파트 단지를 향해 움직였다.차 안은 어두웠다.하준은 뒷좌석 한쪽에 앉아 있었다.가로등 불빛이 스칠 때마다, 남자의 얼굴이 잠깐씩 드러났다.표정은 거의 없었다.눈은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단정한 인상이었다.쓸쓸해 보이지도, 그렇다고 기분이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그저 감정이 가라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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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이람은 방금까지 화상회의를 하고 있었다.현관 앞 CCTV 화면은 옆 모니터에 띄워 둔 상태였다.하준이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안고 돌아오는 모습이 화면에 들어왔다. 이람은 단번에 그를 알아봤다.그리고 딱 한 번 보고 느꼈다.하준이 평소와 조금 다르다는 걸.겉으로 보기엔 문제없었다.그런데도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이람은 바로 회의를 종료했다.말도 길게 하지 않았다.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문을 열고 들어오는 하준을 보는 순간, 예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지금 하준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그건 그가 이람을 안는 방식에서 드러났다.평소보다 더 깊고, 더 세게 끌어안았다.이게 바로 서 대표님이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이라는 걸, 이람은 이제 잘 알고 있었다.함께한 지 반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그 점만큼은 충분히 익숙해졌다.힘이 실린 포옹.힘이 실린 키스.말은 많지 않지만, 행동은 늘 분명했다.하준은 한동안 그녀를 안고 있다가, 이람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그제야 팔을 풀고, 그녀의 눈을 바라봤다.“바빠?”이람은 고개를 저었다.“아까 나가신 뒤에요, 실험실 동료가 잠깐 오라고 했는데 안 갔어요. 집에서 화상회의로 대신했어요.”“왜 안 갔어?”“약속했잖아요. 집에서 기다리겠다고요.”그 말에 하준의 시선이 깊어졌다.이람은 이미 여러 번 본 적 있는 눈빛이었다.그는 이런 말을 듣는 걸 좋아했다.이람이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걸 이렇게 또렷하게 표현해 주는 걸.하준 마음속에 남아 있던 차가움이 조금씩 녹아내렸다.그는 이람의 손을 잡고 주방 아일랜드로 갔다.꽃다발을 내려놓고, 다시 손을 잡아 소파로 이끌었다.하준은 자리에 앉았지만, 평소처럼 바로 이람을 끌어안지는 않았다.대신 자신의 다리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그녀를 봤다.“앉아.”이람은 잠깐 멈칫했다.차분하면서도 압도적인 기운으로 말을 건네는 남자 앞에서는, 거절이라는 선택지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심장이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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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결국 하준이 먼저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왜 그렇게 보고 있어?”이람은 한 손을 들어 그의 눈가를 천천히 쓸었다. 형태가 또렷한 그 눈매를 따라 부드럽게.“제가 착각한 걸 수도 있는데요.”잠시 말을 고른 뒤, 담담하게 이었다.“왠지... 조금 안 좋은 기분 같아서요. 뭐, 틀려도 괜찮아요. 그냥 같이 있고 싶었어요. 일은 내일 해도 늦지 않잖아요.”‘또 알아챘다고?’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하준은 평소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다.그런데도 이람은 느꼈다.하준의 심장이 갑자기 세게 뛰기 시작했다.너무 빠르게, 리듬이 흐트러질 정도로. 마치 몸이 신호를 잘못 받은 것처럼.서주연조차 알아보지 못한 감정이었다.그는 서태인을 찔렀고, 그 이후로도 둘 사이가 어떤지 서주연은 끝내 눈치채지 못했다.무관심이거나 애초에 중요하지 않았거나.그런데 지금 이람 앞에서는 아주 미세한 균열 하나로도 들켜버렸다.전자는 냉소적이었고,후자는 하준을 불안하게 만들었다.‘왜 이렇게까지 느끼는 거지...?’“너는...”하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거의 무의식처럼 내뱉었다.“너는 내 삶의 빛이야.”말하고 나자 스스로도 놀랐다.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표정을 이람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어딘가 드러난 게 있을지도 몰랐다.자신의 연인은 너무 영리했다.하준은 고개를 숙여 이람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그녀에게서 나는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마치 그걸로 숨을 유지하려는 사람처럼.하준은 원래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기분이 나빠도 위로받을 필요를 느낀 적이 없었다.감정이나 눈물 같은 건, 통제력을 잃은 약점이었다.그는 그런 걸 본능적으로 피하며 살아왔다.그게 자기 안에 새겨진 성질이라고 믿었다.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거라고.이람을 만나기 전까지는.그제야 알았다.자신은 감정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 누군가를 너무 원해본 적이 없었던 거라는 걸.이람을 너무 좋아해서 언젠가 떠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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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람은 하준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요즘 어떤 분 핸드폰에요, 연예계 뉴스가 자꾸 뜨던데요. 좀 이상하더라고요.”하준은 담담하게 말했다.“여자친구 일 챙기는 김에 쓸데없는 것들 좀 정리한 것뿐이야. 그런 건 잘해 준 것도 아니지.”“역시 우리 서 대표님이었네!”이람은 하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그대로 키스했다.잠시 후 떨어지며 웃었다.“이게 왜 좋은 게 아니에요? 완전 좋은 작은 깜짝 선물인데요.”이람이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걸 보자, 하준은 더 말하지 않았다.그에게 이 정도는 남자친구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잘해 줬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그래서 늘 부족하다고 느꼈다.이람에게는 더 잘해 줘야 한다고.하준은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도 없었다.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그럼에도 괜찮았다. 하나씩 알아가면 되는 일이니까.이람은 옆에서 자신이 선물했던 넥타이를 집어 들었다.“이거요, 하고 있는 거 보고 싶어요.”하준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받쳤다.손에 살짝 힘을 주자 이람은 가볍게 옆으로 옮겨졌다.하준은 재킷을 벗어 내려놓고,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 아무 데나 던졌다.검은 셔츠만 남았고, 단추 몇 개는 이미 풀려 있었다.하준은 다시 자기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앉으라는 뜻이었다.이람은 앉지 않았다. 대신 그대로 다리를 넘겨 하준의 앞에 자리했다.무릎은 하준의 다리 양옆에 닿았고, 손은 셔츠 깃을 붙잡았다.하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기댔다.소파에 손을 짚으며 목선이 드러났다.이람은 하준의 무릎 위에 앉지 않고 앞에 무릎을 꿇었다.그러자 시선이 자연스럽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갔다.이람은 넥타이를 그의 목에 걸고, 천천히 조여 손 쪽으로 끌어당겼다.그런데 하준은 예상과 달리 순순히 따라주지 않았다.묘하게 버티는 느낌이었다.이람은 결국 더 가까이 다가가 직접 넥타이를 매기 시작했다.‘참...’이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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