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후, 나는 그의 형의 신부가 되었다: Chapter 611 - Chapter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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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1화

제헌은 더 묻지 않았다. 그대로 돌아섰고,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제은은 옆에서 이것저것 캐묻던 친구들을 적당히 돌려보내고, 영미만 곁에 두었다.“조이람이 Sun을 설득해서 내 생일 파티 와 주기로 했어. 거기다 나 차에 태워서 한 바퀴 돌 거야. 이 정도면 내가 왜 물러났는지 알겠지? 사랑 앞에서는 타협도 해야 하는 거야.”영미는 제은 못지않게 흥분했다.“미쳤다, 강제은! 이건 완전 대박이잖아. 다친 것도 본전 뽑고 남았네!”“그치.”제은은 기분이 좋아서 어깨가 들썩거릴 지경이었다.“이 정도 상처도 없었으면 오늘은 그냥 손해였어.”제은은 영미를 똑바로 보며 못 박았다.“나 다친 척한 거, 너 평생 비밀로 해. 알겠지?”“걱정 마. 나도 Sun 보고 싶거든.”...이건의 상처는 간단히 처치가 끝났고, 이람은 그를 데려다주려 했다.하지만 이건은 아직 할 일이 있다며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했다.이람은 이건의 재촉에 못 이겨 먼저 차를 몰고 떠났다.이건이 부른 택시는 몇 분 뒤에 도착 예정이었다. 그는 병원 앞 길가에 서서 차를 기다렸다.차를 기다리는 동안 할 일은 별로 없었다. 그냥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이건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핸드폰을 내려다볼 뿐,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이건의 눈매는 이람과 닮았다. 담담하고 차분한 인상에 남성적인 깊은 윤곽이 더해져 있었다.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을 때조차 서늘한 기운이 감돌아, 자연스럽게 눈길을 끌었다. 화가 났을 때의 눈빛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날카롭고 거칠어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분위기였다.제은이 병원 출입문을 나서다 그 장면을 보게 됐다.길가에 서 있는 이건의 옆모습이었다. 키가 크고 마른 실루엣, 선이 또렷한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생각보다 괜찮은데?’국내든 해외든, 잘생긴 남자야 제은도 수도 없이 봐 왔다. 하지만 이건은 묘하게 다른 느낌이었다. 흉내 낼 수 없는 결이 있었다.아마도 자신에게 저렇게까지 날 선 태도를 보인 사람이 없어서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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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차는 빠르게 출발했고, 배기가스가 그대로 제은 얼굴 앞을 스쳤다.‘미친... 진짜 그냥 가버린 거야?’아까 그 표정 그대로였다.‘거기다 나한테 꺼지라고 했어?’이런 태도로 제은을 대하는 인간은, 자기 무덤을 파는 거나 마찬가지다.제은의 얼굴에 올라온 분노는 숨길 생각조차 없었다.옆에서 보고 있던 영미는 이건의 반응이 아주 이해 안 되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서둘러 다가와 제은을 살폈는데, 표정이 워낙 험해서 괜히 말 잘못 꺼냈다간 불똥이 튈 것 같았다. 속으로는 이건이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제은은 멀어져 가는 차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이를 꽉 깨물었다.자기 인생에서 이렇게 눈치 하나 안 보고 행동하는 인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조이람 하나도 모자라서 이제는 조이건까지?’‘웃기네.’처음엔 이람도 안중에 없었다. 제은 앞에서 강하게 말 한마디 못 하던 사람이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지만, 여전히 빈틈을 보이는 순간도 있었다.그런데 이건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위협적이었고, 지금은 아예 제은의 존재 자체를 무시했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나를 안 봐줘?’제은은 속이 뒤집혔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감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오히려 재미있었다.‘그래, 이 정도로 까다로워야 상대할 맛이 나지.’‘지금 당장 고개 숙이고 붙는 놈이었으면, 늘 보던 인간들이랑 뭐가 다르겠나?’‘투자니 인맥이니 떠들면서 비위 맞추는 인간들이랑 다를 게 없지.’이건이 가진 그 태도, 그 드문 도전적인 기세 때문에 제은은 오히려 더 집착하게 되었다.그때, 친구들이 몰고 온 슈퍼카들이 코너를 돌아 나타났다. 멀리서도 제은이 매연을 뒤집어쓴 장면이 보였는지, 엔진 소리를 울리며 한 대 두 대 차들이 제은 앞에 멈춰 섰다.선두에 있던 차의 창문이 내려갔다.제은의 표정을 훑어본 뒤, 친구가 맞장구쳤다.“아까 그 새끼, 좀 선 넘은 거 아니냐? 제은아, 내가 사람 좀 써서 정리해 줄까? 아니면 판 하나 짜서 몇 달 들어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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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퇴근 시간이 이미 지나서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런데 이람은 한참을 달리다 보니, 뒤에서 제헌의 차가 따라붙는 게 보였다.역시나 그랬다.제헌이 비교적 얌전한 척 굴 때는 늘 사람이 많을 때뿐이었다. 체면을 중시하는 성격이라 특히 자기 여동생 앞에서는 더욱 망신을 피하려 했다. 사람들이 빠지고 나면, 이렇게 집요하게 따라붙는다.앞으로 20미터쯤 가면 신호등 교차로였다.이람은 타이밍을 가늠했다. 액셀을 깊게 밟아 속도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제헌의 차가 다른 방향에서 끼어들며 진로를 막아왔다.이람은 핸들을 틀었다. 제헌의 차체를 스칠 듯 말 듯 지나치며 그대로 교차로를 통과했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고, 제헌의 차는 그대로 뒤에 멈춰 섰다.“강 대표님, 조이람 씨는... 어떻게 그런 운전을 한 거죠? 전 진짜 부딪히는 줄 알았습니다.”급정거한 뒤 윤정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운전기사 역시 얼굴이 좋지 않았다. 지시받고 끼어든 것일 뿐, 사고를 낼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운전 실력에 자신이 있었고, 이람의 차를 멈춰 세울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하지만 이람은 전혀 겁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그대로 들이받을 기세였고, 그 순간 운전기사가 먼저 겁을 먹고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뒷좌석의 제헌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차 안은 숨 막힐 듯 조용했다. 운전기사는 감히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윤정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미 이람의 차는 시야에서 사라졌고, 다시 따라잡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윤정은 단어를 골라 조심스럽게 말했다.“이전에 조이람 씨와 Sun의 관계를 조사했을 때는 특별한 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이람 씨가 경기장에 나타난 적은 있더군요. 운전 실력이 저 정도라면... 이상하진 않습니다.”제헌은 제은이 보였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떠올렸다.‘약점을 잡았겠지.’Sun과 관련된 무언가였다.‘이람과 Sun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제헌의 시선이 깊어졌다.‘나는 조이람에 대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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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제헌은 하마터면 핸드폰을 바닥에 내던질 뻔했다.가슴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지로 눌러 참으며, 제헌은 핸드폰을 다시 윤정에게 돌려주었다. 하지만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숨이 거칠어졌고, 숨통을 트이게 하려고 넥타이를 잡아당겼다.그러다 문득 멈췄다.이 넥타이... 이람이 사 준 것이었다.‘왜 내 주변엔 이렇게 다 이람의 흔적뿐인데, 정작 이람은 나랑 거리를 두려고 하는 거지?’제헌은 신경질적으로 넥타이를 풀어 차창을 내린 뒤, 그대로 밖으로 던졌다.“가.”제헌이 분노를 드러내자, 운전기사와 윤정은 숨을 죽였다. 자칫 잘못 움직였다간 더 큰 불씨가 될까 봐, 심리적인 압박이 극에 달했다.운전기사는 긴장한 채 차를 앞으로 움직였다.그러다 제헌의 시선이 백미러에 멈췄다.아스팔트 위로 줄무늬 넥타이가 떨어져 있었다.그때 전동 킥보드 한 대가 지나가며, 바퀴가 하필 그 넥타이를 그대로 밟고 지나갔다. 보기 흉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죽고 싶나?’“차 세워.”제헌이 낮게 말했다.운전기사는 거의 반사적으로 차를 세웠고, 제헌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전동 킥보드를 타던 사람은 앞에 갑자기 나타난, 키 크고 고급스러운 차림의 남자를 보고 깜짝 놀라 멈춰 섰다. 표정은 몹시 험했고, 옷차림부터가 평범한 사람과는 확연히 달랐다. 일상적으로 누가 이렇게 정장 차림을 하고 있겠는가? 그는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제헌은 차갑게 말했다.“그거 주워.”습관처럼 내뱉은 명령조에는 압박감이 실려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킥보드에서 내려 넥타이를 주웠다. 손에 쥔 순간, 값비싼 물건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자신이 밟았다는 사실에 더 겁이 났다.“죄송합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닙니다.”그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넥타이를 제헌 앞으로 내밀었다.하지만 제헌은 받지 않았다.제헌은 그저 넥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자신이 방금 보인 일련의 행동들이 머릿속을 스쳤다.‘겨우 넥타이 하나 때문에?’운전기사를 세우고, 모르는 사람에게 직접 주워 오라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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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예전에는 늘 이람이 옆에 있었다.이람이 퇴사한 뒤로는 그 자리를 지영이 대신하고 있었다.앞에는 남진이 있었지만, 지영은 금세 분위기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다는 걸 느꼈다.어쩔 수 없었다.서하준 대표를 따라 이런 자리에 나오면, 신경이 자연스럽게 곤두서게 된다.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오늘 서 대표님은 왜 이러시지?’‘기분 상할 만한 일이 있었던 건가?’자리 자체는 아주 매끄럽게 흘러가고 있었다. 상대들도 다 이름값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트집을 잡거나 도발하는 일은 없었다. 설령 속으로 껄끄러운 게 있어도 하준은 원래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도 오늘 하준은 어딘가 달랐다.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신경이 걸려 있는 사람처럼.하준이 귀국한 지도 벌써 몇 달이 지났다. 그동안 지영은 서하준 대표라는 사람에 꽤 익숙해졌다. 그는 늘 여유가 있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지나친 압박을 주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만만하게 보일 만큼 부드럽지도 않았다.존경과 거리감이 동시에 유지되는 지점.그걸 자연스럽게 해내는 건 쉽지 않았다.권력의 중심에 서 있으면,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이 진심인지, 다른 의도가 있는지 가려내는 데만도 에너지가 든다. 질서를 유지하는 것 자체가 이미 소모였다.지영은 거기까지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응대가 이어지면서 그녀는 필요한 자료를 바로바로 꺼내 전달해야 했다. 노트북은 옆에 놓여 있었고, 손에는 정리된 서류 뭉치가 들려 있었다.응대 자리가 막바지에 이르자, 대화의 결이 조금 달라졌다.이익 이야기만 할 수는 없었다. 관계를 이어 가기 위해서는 생활 이야기, 취미 같은 가벼운 주제도 필요했다.하준은 그런 자리에서도 늘 막힘이 없었다. 경험이 많았고, 대응도 능숙했다.그런데 지영은 가끔 그런 하준이 무섭게 느껴졌다.뚜렷한 성격도, 튀는 모서리도 없었다.모든 게 적당했다.대부분의 대표들은 어느 쪽이든 분명했다. 일중독이거나,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혹은 유난히 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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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지영은 원래 이런 식으로 말하는 데 익숙했다. 사실 지영은 이람을 비롯한 비서실 동료 몇 명과 따로 개인 단톡방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네다섯 명 정도였고, 매일 메시지가 오갔다. 누가 굳이 맞장구를 쳐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냥 던지듯 올리는 식이었다. 업무 얘기부터 맛있는 거, 재미있는 거, 각자 근황까지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이람이 요즘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도 다들 알고 있었다.[저희 쪽도 곧 끝나요. 이따가 한잔하실래요?]이람은 차를 몰면서 답장을 보냈다.[남편분이 데리러 오시는 거 아니에요? 두 분 데이트하셔야죠.][아 진짜요. 가끔은 이혼하고 싶어요. 제 자유로운 여자들끼리의 시간을 방해해요.]지영은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 관해서는 박사급이었고, 한때는 남편에게 한없이 사랑받았고, 지금도 고액 연봉에 체면 차리기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행복한 여자였다. 말은 저렇게 해도, 남편이랑 사이가 좋은 건 다들 알고 있었다.[곧 갈게요. 뭐 마실래요? 제가 사 갈게요.]지영은 전혀 사양하지 않고 바로 말했다.“핫초코요.”이람은 지영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다. 가는 길에 핫초코 한 잔을 사 들고 갔다.도착했을 때는 지영 쪽 일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람은 차 안에서 기다렸다. 곧 11월이라 날씨가 제법 차가웠다. 그렇지 않았으면 잠깐 내려서 주변을 걸었을지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영에서 메시지가 왔다.[끝났어요! 도착하셨어요?][주차장에 있어요. 왼쪽으로 오시면 보여요.][네! 바로 갈게요!]이람은 차에서 내려 지영을 기다렸다. 잠시 후 멀리서 지영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하루 종일 일했는데도 지영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고, 웃음은 여전히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가까이 오자마자 지영은 크게 안아주었다.“이람 씨!”이람도 웃으면서 지영을 안았다.“왜 이렇게 오랜만에 본 느낌이죠? 매일 단톡방에서는 그렇게 떠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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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결국 하준은 그대로 이람 쪽으로 걸어왔다.조금 전 지영에게 고개를 끄덕였을 때부터, 시선은 이미 이람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목적지가 이람인 것처럼 거침없었다.“여긴 웬일이야? 나한테 말도 없이.”하준은 이람 앞에 서서 말했다. 목소리에는 아주 미세한 놀람이 섞여 있었다.지영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너무 자연스러웠고,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에는 분명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었다. 둘만의 온도 같은 게 있어서 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지영은 결혼도 했고 남편도 있었지만, 아직도 연애 감각이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금방 눈치챘다.‘아, 이거다.’‘이 상황이구나.’지영은 머릿속이 하얘졌다.‘그래서 서 대표님이 오늘 그렇게 멍했던 거야?’‘이람 씨 때문이었어?’이람은 하준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지영 앞으로 가서 말했다.“지영 씨, 일부러 숨긴 건 아니에요. 저랑 서 대표님... 아직은 공개할 생각이 없어서요.”지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더 커졌다.“와, 진짜요? 이람 씨, 이런 걸 이렇게 여태 꼭꼭 숨기고 있었다고요?”“비밀 지켜주실 거죠?”이람은 웃으면서 지영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지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당연하죠. 진짜 아무한테도 말 안 해요.”더 있으면 방해가 될 것 같아, 지영은 재빨리 자리를 떴다.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았다.‘세상에...조이람과 서하준이 연애 중이라니.’‘그 서 대표님이?’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영은 하준 같은 사람이 제일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도대체 어떤 사람이 저런 사람과 함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정답은 이람이었다.‘그래서 그동안 이람 씨를 자주 부르셨구나.’‘그럼 이 관계는... 서 대표님 쪽이 먼저 고백한 거네?’지영은 하준이 누군가를 좋아하는 모습 자체를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 믿기지 않았다.그러다 문득 아까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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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사랑하는 여자가 이런 말을 해 주는데, 마음이 사르르 녹지 않는 남자가 있을까?하준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행복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억이 거의 없었다.어린 시절의 행복이라면, 강수철 회장이 본가에 내려와 잠깐 함께 지내던 시간 정도였다. 그리고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일곱 살 이후 서씨 가문으로 돌아간 뒤의 기억은 굳이 꺼내서 떠올릴 만한 게 없었다. 숨 막히고 어두운 시간뿐이었다.자라면서 몇몇 친구들은 생겼다.하지만 친구와의 관계는, 친밀한 관계와는 전혀 달랐다.그래서 하준에게 이람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지금까지의 어떤 경험보다도 깊고 선명했다.그가 진짜로 필요로 했던 시기에, 부모는 늘 곁에 없었다.그래서 하준은 어느 순간부터 기대하지 않게 됐다.그런데 이람은 달랐다.함께 있고, 그녀가 말을 꺼내는 것만으로도, 마음속 깊은 목마름이 채워졌다. 꼭 필요한 말을 정확한 지점에 얹어 주는 사람 같았다.이 관계 안에서 하준은 분명히 치유되고 있었다.아주 서서히, 오래 굳어 있던 무언가가 녹는 느낌이었다.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비슷해 보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안쪽에서는 분명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주 미세해 보여도 그건 분명한 변화였다.하준은 늘 자신이 더 이람을 필요로 한다고 느꼈다.이람 없이 버티기 힘든 쪽은 언제나 자신이었다.함께한 시간은 아직 길지 않았다.이람과 제헌이 결혼 생활을 이어온 3년에는 한참 못 미치는 시간이다. 그래서 하준은 늘 불안했다. 쉽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었다.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긴 건, 제헌과 이람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었다.‘아이까지 있었으면...’그랬다면 이람과 제헌은 평생 묶여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준의 시선이 깊어졌다.이람의 말은 그에게 아주 강한 안정감을 줬다.‘좋다.’그녀가 그렇게 말해 주는 게, 그냥 좋았다.이람이 고개를 살짝 돌렸다.하준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의 얼굴 위에 머물러 있었다. 조금도 비켜나지 않은 채.그런데 아까보다 더 또렷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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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하준은 핸드폰 화면을 끄고, 미간을 손으로 지그시 눌렀다.“술을 조금 마셔서 그런 것 같아.”이람은 차창을 조금 내렸다.“바람 좀 쐬면 괜찮아질 거예요.”원래라면 하준이 이람을 챙겨야 하는 쪽인데, 오히려 이람이 신경을 쓰고 있었다. 하준은 이람의 배려가 좋으면서도, 이런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필요 이상으로 약해진 기분이 들었다.이람은 금방 알아챘다.“무슨 일 있으세요?”하준은 대답 대신 이람의 손을 잡았다. 한 번, 천천히 쥐었다가 풀었다. 이람에게 닿는 감각만으로도 마음이 많이 가라앉았다. 마치 즉각적인 안정제처럼. 그는 이람이 괜한 걱정을 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자기 감정 따위에 이람의 에너지를 쓰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괜찮아. 나 정말 괜찮아.”“네, 괜찮으시죠. 항상 잘하고 계시고요.”이람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번 더 하준을 돌아봤다.하준은 여전히 단정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쉽게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기품, 조용함 속에 묻어나는 알 수 없는 깊이.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 해결할 사람이라는 인상이었다. 그래서 이람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이람은 하준의 손을 살짝 눌렀다.“작은 선물 하나 가져왔어요.”“무슨 선물?”하준은 이미 감정을 눌러 담은 상태였다.“넥타이요.”이람은 제헌이 자신이 준 넥타이를 매고 있던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하준도 빠질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자꾸 뭔가를 주고 싶어지는 법이었다. 하준이 늘 그녀에게 그랬던 것처럼.하준의 시선이 잠시 어두워졌다.‘나도 있네.’“보고 싶어.”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자, 이람은 미리 준비해 둔 작은 상자를 꺼냈다.“오는 길에 샀어요.”하준은 상자를 받아 열었다. 은은한 격자무늬가 들어간 블랙 골드 톤의 넥타이였다. 과하지 않고, 아주 하준다운 이미지였다.“마음에 들어요?”“응. 많이.”하준은 사실 필요한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람이 건넨 물건은 전혀 달랐다. 의미가 붙는 순간, 그것은 다른 차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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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서태인은 하준보다 세 살 위인 외삼촌이었다.서태인의 어머니는 하준의 할아버지가 말년에 맞이한, 나이 차가 크게 나는 후처였다.서태인이 세 살이 되던 해, 하준의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서주연은 본격적으로 가족들과 권력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고작 세 살 어린아이였던 서태인은 그 싸움의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됐고, 그래서인지 서주연과 서태인의 관계는 비교적 나쁘지 않았다.한편으로 서태인은 서주연이 지켜보며 자란 인물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남매라기보다는 오히려 어딘가 모자 관계에 가까운 구석이 있었다.서태인은 ‘사람’이 아니었다.양아치였고, 사기꾼이었고, 쓰레기였고, 미친놈이었다.하준이 일곱 살에 서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한동안 서태인에게 시달려야 했다.서태인의 목소리, 말투, 웃음 섞인 억양까지도 하준의 몸에 각인돼 있었다. 그 모든 게 경보처럼 작동했다.하준은 두 박자 정도 숨을 고른 뒤 입을 열었다.차갑게 식은 목소리는 얼음으로 덮인 쇠붙이 같았다.“어디 계십니까?”수화기 너머로 서태인의 웃음 섞인 목소리가 흘러왔다.[글쎄, 우리 외조카며느리 차 바로 뒤일지도?]핸드폰을 쥔 하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하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선을 들어 백미러를 봤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검은색 비즈니스 차 한 대가 느릿하게 따라오고 있었다.시선을 거두며, 하준의 눈 밑에 짙은 위험이 일렁였다.“무슨 짓을 하실 생각입니까.”[그냥 얼굴 좀 보자는 거야. 그렇게 예민해하지 마.]서태인의 목소리는 여유로웠다.[조카, 몇 년 만이냐? 외삼촌이 꽤 보고 싶었거든.]하준의 표정은 완전히 굳어 있었다.“제가 찾아가겠습니다.”목소리는 낮았지만, 무게는 분명했다.“거기서, 기다리고 계십시오.”[그래, 좋아.]통화는 그렇게 끝났고, 뒤따르던 차량도 길가에 멈춰 섰다.이람은 하준이 누구와 통화했는지는 몰랐다. 다만 상대가 하준에게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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