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세 시 무렵, 고수경은 간단히 단장을 마친 뒤 병원을 나섰다. 연구소 맞은편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얼마 지나지 않아, 심유빈이 늘 그렇듯 우아한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고수경의 속이 서늘하게 식어 내려갔다.겉으로는 완벽한 성공을 이룬 피아니스트이자 오로지 자신의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 모습은 전혀 달랐다. 그녀의 피 한 방울까지도 오빠에게서 막대한 대가를 끌어낸 결과였고 처음부터 목표는 단 하나, 고이한의 아내 자리를 차지하는 데 있었다.그 과정에서 고씨 집안 전체를 하나의 도구처럼 이용해 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분명히 알고 있었다.심유빈은 여유로운 걸음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으며 늘 그래왔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수경아, 오래 기다렸어? 오는 길이 좀 막혔네.”말을 마치자마자 자연스럽게 손을 들어 직원을 불렀고 익숙하다는 듯 당연한 태도로 주문을 하며, 마치 자신이 이 공간의 중심인 것처럼 행동했다.고수경은 아무 말 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연극을 보는 기분이었다.심유빈은 고수경의 시선을 느꼈는지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눈이 마주치자 순간 표정이 굳었다.“수경아, 나... 너한테 꼭 사과해야 해. 그동안 말 안 한 건 사실이야. 일부러 숨긴 건 아니고, 네 오빠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고수경은 가볍게 입술을 삐죽였다.“알아. 우리 오빠 원래 뭐든 혼자 다 짊어지려고 하잖아. 자기가 멋있는 줄 아는 거지 뭐. 진짜 어이없어. 엄마가 아픈 것도 이제야 알게 됐고.”심유빈은 여전히 이해심 많은 언니의 얼굴을 유지했다.“네 오빠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던 거야. 너무 원망하지 마.”예전 같았으면 그 말에 고수경은 아무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고 늘 심유빈을 이해심이 깊고 묵묵히 오빠의 곁을 지키는 순정적인 존재로 받아들이고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라져 있었다.“유빈 언니, 나 솔직하게 물어볼게. 거짓말하면 안 돼.”고수경은 두 손을 테이블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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