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예지는 고개를 돌렸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할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어. 이제 그건 중요하지 않아.”“중요해.”고이한은 갑자기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예지야, 내가 원한 건 처음부터 당신이었어. 아이가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이었다고. 우리한테는 이미 하슬이가 있잖아. 그거면 충분해. 고씨 가문의 미래는 내가 책임질 거고 하슬이한테도 이 집안을 지키는 법을 가르칠 거야.”소예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건 당신 할머니의 유언만이 아니야. 당신 아버지의 유언이기도 해. 당신은 내 옆에서 시간 낭비하면 안 돼.”고이한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누가 당신한테 그게 아버지 유언이라고 했어?”소예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방재근 씨 부인이 직접 나한테 말했어. 예전에 당신 아버지를 찾아뵈었을 때 직접 들었대. 그게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고.”고이한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방재근의 아내라니.’방재근의 아내가 무슨 자격으로 고씨 집안일에 끼어든단 말인가.자신의 곁에 여자 비서를 심어 놓은 일도 아직 따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여자와의 사이까지 갈라놓으려 하고 있었다.소예지는 고이한의 눈에 떠오른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그녀는 그의 뺨에 남은 손자국을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조금 누그러뜨렸다.“왜 그래?”고이한은 화를 억누르듯 자신의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살짝 맞댔다.“소예지, 평소에는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왜 방재근 부부가 일부러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는 건 생각 못 했어?”소예지가 순간 멈칫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은 나랑 당신 아버지뿐이었어.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고이한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당신도 이사회에서 방재근과 부딪힌 적 있잖아. 방재근 입장에서는 당신이 고씨 가문의 안주인이 되는 게 달갑지 않았을 거야.”“자기한테 불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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