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671 - Chapter 16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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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1화

“다음 주에 경주 가면 회의 말고 특별히 가고 싶은 데 있어? 아니면 먹고 싶은 음식이라도?”고이한이 물었다.소예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반나절 정도 시간 내서 구경하면 좋을 것 같아. 먹고 싶은 건 딱히 없고 그때그때 상황 봐서 먹으면 될 것 같아.”“알겠어. 내가 준비할게.”고이한은 그렇게 말한 뒤 다시 덧붙였다.“들어보니까 운월산 단풍이 정말 아름답대. 우리 한번 보러 가자.”소예지의 눈빛이 살짝 밝아졌다.예전부터 운월산의 가을 풍경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직접 볼 수 있다면 이번 방문도 충분히 의미 있을 것 같았다.“좋아.”소예지는 고개를 끄덕인 뒤 그를 올려다봤다.고이한의 눈에 비친 그녀는 섬세한 이목구비와 희고 깨끗한 피부가 어우러져 마치 고요한 유화 속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소예지는 자신을 바라보는 고이한의 뜨거운 시선과 마주쳤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는 순간 공기 사이로 작은 전류가 흐르는 듯 묘한 긴장감이 번졌다.“뭘 봐?”소예지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당신.”고이한은 조금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예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뻐.”말을 마친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나 하슬이 보러 갈게.”저녁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딸과 함께 밖으로 나가 잠시 공을 차며 시간을 보냈다.저녁 여덟 시 반쯤 씻고 머리까지 감은 고하슬은 고이한의 손을 잡아끌고 침대로 가 그림책을 읽어 달라고 졸랐다.예전에는 고이한이 소예지의 안방에 들어오는 것조차 그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따로 허락을 구하지 않아도 될 만큼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져 있었다.소예지는 옆에 앉아 아이패드로 생물학 논문을 읽으며 부녀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 고하슬이 잠들 시간이 되자 고이한은 그림책을 덮었다.“내일 아빠가 다시 읽어 줄까?”“네! 내일도 읽어 주세요.”고하슬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고이한은 딸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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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2화

다음 날 아침.소예지는 고이한과 조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이날 소예지는 회색 정장을 입었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재킷과 바지가 잘 어우러져 단정하면서도 당당한 분위기를 풍겼다.머리는 뒤로 깔끔하게 묶어 올려 아름답고 또렷한 얼굴선이 그대로 드러났다.오늘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 대부분은 청년 과학기술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각 분야의 인재들이었다.소예지가 조식당에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가 그녀를 알아보고 불러 세웠다.“혹시 소예지 박사님 맞으신가요?”신사적인 인상의 남자였다. 소예지를 알아본 것이 반가운지 목소리에는 살짝 들뜬 기색이 묻어 있었다.“네, 맞습니다. 실례지만 누구신가요?”소예지는 예의 바르게 웃으며 물었다.“저는 봉석진이라고 합니다. 국가과학기술원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소 박사님 논문을 평소에 정말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봉석진은 손을 내밀며 진심 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최근 발표하신 신경퇴행성 질환 관련 논문도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접근 방식이 독창적이어서 몇 번이나 정독했어요.”소예지는 그의 이름을 듣고 반갑게 손을 맞잡았다.“봉 박사님이셨군요. 과찬이세요.”“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를 교환해도 될까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물론이죠.”소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막 연락처를 교환했을 때 소예지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좋은 아침입니다, 소 박사님.”소예지는 굳이 뒤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봉석진 역시 다가오는 남자를 한눈에 알아봤다.“고 대표님,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봉 박사님, 반갑습니다.”고이한은 손을 내밀어 그와 악수했다.훤칠한 체격에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남다른 분위기를 지닌 남자였다. 특히 그의 상징처럼 자리 잡은 회백색 머리카락은 멀리서도 단번에 고이한임을 알아볼 수 있게 했다.고이한은 자연스럽게 소예지의 옆에 섰다.봉석진은 경주에 있는 연구실에서 오랫동안 연구에만 몰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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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3화

맞은편에 앉아 있던 고이한은 소예지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그의 입꼬리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번졌다.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이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함께 메인 행사장으로 향했다.포럼 개막식에서는 과학기술부 관계자와 두 명의 원사가 차례로 축사를 했다.무대 아래에는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젊은 인재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현장에는 활기찬 분위기가 가득했다.소예지와 고이한의 좌석은 서로 떨어져 있었다.고이한은 특별 초청을 받은 투자 업계 대표이자 청년 기업가 리더 자격으로 앞쪽 좌석에 앉았고 소예지는 생명의학 분야 대표로 다른 쪽에 자리했다.오전 일정이 잠시 중단되고 휴식 시간이 되자 행사장 곳곳에서 참석자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예지도 한 여성 연구자와 조금 전 발표된 내용을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때 곁에서 익숙한 기척이 느껴졌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자 어느새 고이한이 옆에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따뜻한 차 한 잔이 들려 있었다.그는 주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소예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고 직접 차를 가져온 참이었다.고이한은 말없이 찻잔을 내밀었다.소예지는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고마워.”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고이한은 옅게 웃은 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자리로 돌아간 고이한의 곁에도 곧 몇몇 참석자들이 모여들었다.오전 일정이 모두 끝난 뒤 두 사람은 함께 행사장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오후에는 소예지가 전문 주제 토론에 참석하면서 두 사람은 다시 각자의 일정으로 돌아갔다.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 네 시 반쯤 첫날 포럼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소예지는 다른 참석자들과 함께 행사장을 빠져나온 뒤 한쪽에 서서 휴대폰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었다.그때 어깨 위로 무언가 묵직하게 내려앉았다.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정장 재킷이었다.소예지가 고개를 들자 언제 다가왔는지 고이한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날씨가 좀 쌀쌀해졌어. 걸치고 있어.”경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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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4화

소예지는 찻잔을 들던 손을 잠시 멈추고 맞은편의 남자를 바라봤다.“그런 거 아니야. 그냥 오래돼서 기억이 안 나는 거야. 나 원래 음식도 가리는 편 아니잖아.”고이한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소예지는 편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런 점은 일할 때 보여 주는 모습과도 무척 닮아 있었다.고이한은 소예지의 입맛에 맞춰 요리 네 가지와 국 하나를 주문한 뒤 디저트도 따로 하나 추가했다.잠시 후 디저트가 먼저 나오자 소예지는 숟가락으로 한입 떠서 맛을 봤다. 단맛이 지나치지 않고 딱 적당했다.고이한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말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창밖에서 스며든 노을빛이 테이블 위로 길게 드리워진 가운데 두 사람 사이에는 편안한 침묵이 흘렀다.굳이 말을 나누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그렇게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두 사람은 근처의 오래된 거리를 천천히 산책했다. 나란히 거리를 걷다 다시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어느덧 밤 아홉 시가 넘어 있었다.소예지는 객실 카드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뒤 뒤따라온 고이한을 돌아봤다.“잘 자.”고이한은 문 앞에 선 채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그러다 무의식적으로 객실 안으로 따라 들어오려 했다.소예지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가슴을 가볍게 밀었다.“됐어. 돌아가서 푹 쉬어.”고이한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잘 자 뽀뽀해 줘.”이제는 소예지에게도 제법 익숙해진 일이었다.그런데도 그가 대놓고 요구하자 괜히 얼굴이 조금 뜨거워졌다.고이한이 자연스럽게 몸을 숙이자 소예지는 그의 얼굴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하지만 입술이 떨어지려는 순간 고이한은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이어 몸을 숙여 입술에 다시 한번 입을 맞췄다.짧은 입맞춤이 끝난 뒤에야 고이한은 아쉬운 듯 그녀를 놓아주었다.“잘 자.”그는 천천히 뒤로 물러나 복도로 나갔다.소예지는 문을 닫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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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5화

소예지는 오랜만에 이렇게 느긋하게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한동안 창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잃었다.고이한은 소예지의 캐리어를 안방에 가져다 놓고 자신의 캐리어는 작은방 문 앞에 두었다.그 모습을 본 소예지는 아무 말 없이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갔다.혼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하지만 막상 정리할 것도 별로 없었다.포럼이 끝나고 고이한이 호텔을 예약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러왔다.소예지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어쩌면 그 자체가 고이한에게는 무언의 승낙이나 다름없었을지도 몰랐다.소예지는 캐리어를 열어 세안 용품을 꺼낸 뒤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잠시 후 문밖에서 고이한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 귀를 기울이던 소예지는 그가 고하슬과 통화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마 딸아이는 오늘 밤 부모님이 돌아올 거라 생각하고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로 보아 고이한은 딸을 달래고 있는 듯했다.크림을 바르던 소예지의 손이 잠시 멈췄다.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샤워를 마친 소예지는 원피스로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고이한은 이미 통화를 끝낸 뒤였다. 그는 소예지를 돌아보며 눈가에 옅은 웃음을 띠었다.“방금 하슬이한테 전화 왔었어. 우리 이틀쯤 늦게 들어갈 수도 있다고 말해 놨어.”딸을 잘 달랜 모양이었다.소예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고이한의 눈에 어린 웃음이 한층 짙어졌다.그 대답에 담긴 뜻을 그도 모를 리 없었다.고이한은 손목시계를 한번 확인했다.“저녁 준비해 뒀어.”저녁으로는 정갈한 요리가 한 상 가득 차려져 있었다.종이 등갓을 통과한 은은한 불빛이 두 사람을 부드럽게 감쌌다.고이한이 물었다.“오늘 많이 힘들었어?”“괜찮았어.”“오늘 우리 쪽 직원들이 당신 칭찬을 많이 하던데.”고이한이 웃으며 말했다.소예지는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숙여 국물을 한 모금 마셨다.“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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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6화

“불...”소예지의 입술 사이로 낮은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그녀는 분명 고이한을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순간에는 밝은 곳보다 어둠 속이 더 편했고 그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소예지의 습관이었다.고이한 역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늘 그래 왔으니까.그는 당장이라도 불을 꺼 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망설여졌다. 불이 꺼지는 순간 소예지가 다시 마음을 닫고 자기 방으로 피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결국 고이한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내 방으로 가자.”그는 품 안의 소예지를 가볍게 안아 올렸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살짝 갈라져 있었고 옆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이 닫히면서 바깥의 빛도 함께 차단되었다.멀리서 스며드는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남아 어둠 속 남자의 모습을 어렴풋이 비추고 있었다.고이한은 문 앞에서부터 다시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오랫동안 참아 왔던 마음을 한꺼번에 쏟아내듯 다급하고 간절한 입맞춤이었다.그렇게 한참이 지나 소예지는 부드럽게 침대 위에 눕혀졌다.어둠 속에서 고이한의 셔츠는 어느새 세 번째 단추까지 풀려 있었고 호흡마저 흐트러져 있었다. 평소의 단정하고 이성적인 모습과는 전혀 다른, 위험할 정도로 매력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어둠이 내려앉자 오히려 모든 감각은 더욱 선명해졌고 소예지의 머릿속은 어느새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그저 고이한의 이끌림을 따라 두 사람이 과거에 익숙했던 감정을 조금씩 되찾아 갈 뿐이었다.그의 입맞춤은 뜨거웠고 손길에는 더 이상 망설임이 없었다. 몇 년 동안 감정을 억눌러 온 고이한은 마치 마침내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은 사람처럼 그녀를 놓지 못했다.“잠깐...”소예지는 손을 뻗어 그를 밀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지금 안전한 기간 아니야.”고이한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낮고 쉰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준비했어.”그 말에 소예지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직 그 의미를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전에 남자의 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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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7화

자신이 딸에게 유전병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시간 동안에도 이 남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든 것을 감당하며 자신과 딸을 지켜 주고 있었다.그 과정에서도 고이한은 한 번도 소예지가 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고이한은 소예지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살며시 비빈 뒤 긴 팔로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얼굴을 목덜미에 묻었다.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용서를 기다리는 커다란 개처럼 모든 발톱을 감춘 모습이었다.“앞으로는 뭐든 다 말할게. 절대 숨기지 않을게. 만약 또 그런 일이 생기면 나는...”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예지가 손을 뻗어 그의 입술을 막았다.“함부로 맹세하지 마.”고이한의 짙은 속눈썹이 천천히 올라갔다.그는 고개를 들어 소예지를 바라보다 자신의 입술을 막고 있는 그녀의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고 그 순간 소예지의 손끝에서도 힘이 스르르 풀렸다.“좋아.”소예지가 마침내 대답했다.고이한은 순간 굳어 버렸다. 정말로 그녀가 대답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하지만 다시 소예지의 눈을 바라본 순간 그의 얼굴에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환한 미소가 번졌다.고이한은 몸을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춘 뒤 팔에 힘을 주어 품 안의 여자를 꼭 끌어안았다.소예지가 그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어젯밤에 못 잤어?”“잤어.”고이한은 웃으며 대답하고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잠시 후 그가 다시 물었다.“배고파?”소예지는 그제야 자신의 상태를 느껴 봤다. 정말 배가 고팠다.“조금.”“먼저 먹고 쉬자. 내일 오후 비행기야.”고이한은 고개를 숙이다 소예지의 하얀 목에 남은 흔적을 발견했다.자신이 남긴 흔적이었다.그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살짝 올라갔다.소예지도 더 이상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다. 몸이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이곳의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웠기 때문이다.식사를 마친 뒤 소예지는 샤워를 하고 2층 테라스에 앉아 한동안 풍경을 바라봤다.가을밤은 유난히 빨리 찾아왔다.하루 종일 푹 잔 덕분에 소예지는 정신이 많이 맑아진 상태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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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8화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소예지는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눈을 뜨자 통유리창의 커튼 사이로 금빛 햇살 한 줄기가 스며들고 있었다.분명 한낮이었다.소예지는 몸을 뒤척였다.옆자리는 비어 있었지만 이불에는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허리의 뻐근함이 지난 이틀 밤의 일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했다.이틀 밤에 한 상자.‘정말 고이한은...’소예지는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지난밤의 기억이 떠오르자 귓가까지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때 욕실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소예지는 곧바로 몸을 돌려 누운 뒤 다시 잠든 척했다.잠시 후 옆자리의 매트리스가 살짝 내려앉으며 남자의 기척이 가까워졌다. 샤워를 마친 고이한에게서 상쾌하고 깨끗한 향이 은은하게 풍겨왔다.“깼어?”귓가에 닿은 남자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묻어 있었다.“조금 더 잘래?”소예지는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대답했다.“안 잘 거야. 준비하고 돌아가야 해.”고이한은 그녀의 귓불 가까이 입술을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돌아가서 계속....”소예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반박하려 했지만 고이한의 입맞춤이 한발 먼저 그녀의 입술을 막았다.길고 다정한 아침 인사 같은 키스였다.한참 뒤 입술이 떨어졌을 때 두 사람의 숨은 어느새 조금 흐트러져 있었다. 고이한은 그녀 위로 몸을 기댄 채 웃고 있었고 회백색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내려 있었다.“오후 비행기니까 서두를 필요 없어. 조금 더 누워 있어. 내가 정리할게.”말을 마친 그는 몸을 숙여 다시 그녀의 목가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머리카락이 살짝 피부를 스치자 소예지는 간지러운 듯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그러다 머리카락 뿌리 쪽의 검은색이 전보다 더욱 선명해진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그의 머리카락을 천천히 넘겼다.“내가 그렇게 잘생겼어?”고이한은 그녀의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당신 머리카락 보고 있었어.”“그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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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9화

저녁이 되자 양희순은 푸짐하게 저녁상을 차렸다.식사 도중 소예지가 고하슬의 그릇에 반찬을 하나 집어 주었다. 그런데 입맛에 맞지 않았는지 고하슬은 그 반찬을 슬그머니 아빠에게 건넸고 고이한은 웃으며 자연스럽게 받아먹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희순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이제야 두 사람이 다시 부부가 되는 날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소예지는 위층으로 올라가 일을 했고 고하슬은 고이한의 집으로 가서 놀았다.한참 서류를 살펴보던 소예지의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니 이지원에게서 온 전화였다.“여보세요, 지원아.”“예지야, 장비가 통관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어. 아직도 절차가 끝나지 않았는데 혹시 고 대표님한테 부탁해서 알아봐 줄 수 있어?”고이한이 구매한 장비는 소예지의 연구실에서 사용할 것이었다. 통관 서류에는 소예지 명의의 연구실 주소가 기재되어 있었고 관련 업무는 이지원이 담당하고 있었다.“알겠어. 내가 방법을 알아볼게.”소예지가 대답하자 이지원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이 장비 벌써 며칠째 묶여 있어. 고 대표님이 직접 나서 주시면 아무래도 절차가 좀 더 빨리 진행될 것 같아.”이지원이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소예지도 알고 있었다. 업무를 위한 일이니 고이한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괜찮다는 뜻이었다.“알겠어. 내가 확인해 보고 연락할게.”전화를 끊은 소예지는 잠시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자료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며칠 전의 그녀였다면 먼저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을 것이다. 그러다 정말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을 때에야 고이한에게 도움을 청했을 터였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소예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이한을 찾아갔다.고이한의 거실에서는 고하슬이 새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고이한은 그 옆에 앉아 딸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평소의 냉철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표정이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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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0화

“나 다 봤어요.”고하슬은 허리에 두 손을 올린 채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엄마랑 아빠 뽀뽀하고 있었잖아요.”고이한은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조금 난처해하는 소예지를 힐끗 바라본 뒤 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맞아. 아빠가 엄마한테 뽀뽀한 거야.”그 말을 들은 고하슬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아이는 두 사람에게 달려와 그 사이에 쏙 들어가 앉더니 작은 얼굴을 들고 물었다.“그럼 우리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는 거예요?”고이한은 딸을 번쩍 안아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힌 뒤 한 손으로 소예지의 어깨를 감쌌다.“응. 이제 우리 다시는 떨어지지 않을 거야. 아빠랑 엄마는 다시 함께할 거야.”그러자 고하슬이 갑자기 작은 손을 내밀었다. 한 손으로 엄마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아빠의 손을 잡아 두 사람의 손을 가운데로 모았다.“그럼 약속해요.”아이의 진지한 얼굴을 바라보던 소예지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고이한은 손을 뻗어 소예지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러자 고하슬도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자신의 작은 손으로 꼭 감쌌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백 년 동안 마음 변하면 안 돼요.”고이한은 웃으며 소예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은 소예지는 살짝 얼굴을 붉힌 채 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그제야 만족한 고하슬은 고이한의 다리에서 내려와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고이한은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전화 좀 하고 올게. 당신이 하슬이 좀 봐줘.”그가 밖으로 나간 지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왔다.“내일이면 통관 풀릴 거야.”소예지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이렇게 빨리?”“응. 내가 아는 사람이 좀 있어.”고이한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그는 상공회의소 회장을 비롯해 여러 직책을 겸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 정도 문제는 전화 한 통이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거실에는 따뜻한 조명이 은은하게 내려앉았고 고하슬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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