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전처분이 의학계를 휩쓸고 다니십니다: Chapter 1681 - Chapter 1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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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1화

소예지는 잠시 멈칫하더니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전에 너한테 말했던 그 브랜드만 써. 다른 건 안 써.”이서연은 소예지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그런데 왜 나는 써도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지? 너는 왜 이렇게 효과가 좋아?”그녀는 감탄하듯 소예지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봐. 네 피부 상태가 얼마나 좋은데. 하얗기만 한 게 아니라 생기도 돌고 피붓결도 너무 좋아서 모공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것 같아. 예전보다 오히려 더 좋아진 느낌이야. 완전 얼굴에서 빛이 난다니까.”그 말을 듣자 소예지는 저도 모르게 귓가가 뜨거워졌다.지난 이틀 밤 고이한이 얼마나 절제하지 못했는지가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아마...”소예지는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했다.“경주에 회의 갔다가 푹 쉬고 와서 그런가 봐.”말을 마친 소예지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문득 이서연에게 물었다.“서연아, 너 남자친구 있어?”이서연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우리 엄마가 계속 소개팅하라고 하셔. 나도 만나고 싶지. 그런데 아직 마음에 드는 사람을 못 만났어.”“앞으로 좋은 사람 만날 거야.”소예지가 자연스럽게 위로하자 이서연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적어도 이서연의 눈에 소예지는 결혼 문제로 고민할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면 조금 막막했다.점심 식사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 소예지는 흰 가운으로 갈아입은 뒤 장비의 파라미터를 조정하기 시작했다.이번에 들여온 장비는 정밀한 조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작은 오차 하나도 연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소예지는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작업에 집중했다.그렇게 한참 장비를 살펴보고 있을 때였다.문득 연구실 밖 유리창 너머에서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소예지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그곳에 고이한이 서 있었다.뜻밖에도 그의 손에는 꽃다발까지 들려 있었다.소예지는 함께 있던 이서연에게 잠시 자리를 비우겠다고 말한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여기서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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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2화

소예지가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여덟 시 반이었다.연구실에서 이미 저녁을 먹고 왔지만 양희순은 그녀를 위해 따뜻한 호박죽 한 그릇을 준비해 두었다.소예지는 테라스에 앉아 호박죽을 천천히 떠먹으며 잔디밭을 바라보았다.고이한이 새로 사 준 자전거를 탄 고하슬이 넓은 잔디밭을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젤리도 신이 난 듯 그 뒤를 따라 뛰어다녔다.그때였다.갑자기 젤리가 고하슬의 앞으로 뛰어들었다.놀란 고하슬이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미처 멈추지 못했다. 자전거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면서 고하슬도 그대로 잔디 위에 넘어졌다.그 모습을 본 순간 소예지는 그릇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반쯤 일어났지만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딸이 스스로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고 싶었다.고이한 역시 본능적으로 한 발을 내디디려다 멈춰 섰다.고하슬은 잔디 위에 넘어진 채 자전거에 한쪽 다리가 눌려 있었다. 젤리은 놀란 듯 고하슬의 주변을 맴돌며 안절부절못했다.하지만 고이한은 다가가지 않았다.고하슬은 잔디 위에 엎어진 채 커다란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고이한은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지만 자신을 일으켜 주러 다가오지는 않았다.금세 눈가에 눈물이 맺혔지만 고하슬은 몇 번 눈을 깜빡이며 울음을 꾹 참았다. 그러고는 작은 손으로 자전거를 힘껏 밀어 올려 눌려 있던 다리를 빼냈다.고하슬은 다시 자전거를 세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직 힘이 부족한 탓에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결국 자전거와 함께 다시 잔디 위로 넘어지고 말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고이한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옆으로 내려뜨린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딸을 일으켜 주고 싶은 듯했지만 그는 끝내 그 자리를 지켰다.“하슬아.”고이한이 딸을 불렀다.목소리는 흔들림 없이 담담했다.“혼자 일어나 봐. 아빠는 하슬이가 할 수 있다고 믿어.”고하슬은 코를 훌쩍인 뒤 작은 손으로 잔디를 짚었다.그리고 다시 한번 힘껏 자전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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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3화

소예지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자연스럽게 한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그때 고하슬이 소예지를 바라보며 말했다.“엄마, 나 이제 혼자 자기로 했어요.”소예지는 핸드크림을 바르던 손을 멈추고 무의식적으로 고이한을 바라보았다.고이한은 조금 억울하다는 듯 웃었다.“하슬이가 스스로 결정한 거야.”고하슬도 작은 머리를 힘차게 끄덕였다.“나 이제 용감하게 혼자 잘 거예요.”고하슬의 방은 바로 옆에 있는 아이 방이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둔 곳이라 아이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혼자 잠들 수 있었다.“아빠, 나 안아서 방에 데려다주고 재워 줄 수 있어요?”고하슬이 작은 손을 내밀자 고이한은 자연스럽게 딸을 안아 올렸다. 한 손으로 그림책까지 챙긴 그는 그대로 아이 방으로 향했다.소예지는 잠시 멍하니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혼자 자겠다고 마음먹더니 정말 바로 실행하는 거야?’그동안 딸을 품에 안고 자는 건 소예지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딸이 먼저 혼자 자겠다고 결정한 이상 말릴 수는 없었지만 이제부터 비어 있을 옆자리를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괜스레 허전했다.아이 방으로 들어간 고이한은 침대 옆에 앉아 그림책을 펼쳤다.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읽어 주자 고하슬은 금세 책 속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눈꺼풀도 조금씩 무거워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고이한은 곧바로 일어나지 않고 잠시 더 딸의 곁을 지켰다. 고하슬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나 작은 벽등 하나만 남겨 둔 채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그때 소예지는 화장대 앞에 앉아 나이트 크림을 바르고 있었다.거울 속으로 고이한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자연스럽게 방문을 닫고 곧장 소예지의 뒤로 다가왔다. 두 손을 화장대 양쪽에 짚자 어느새 그녀는 그의 품 안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하슬이 잠들었어?”“응. 아마 자전거 타느라 피곤했나 봐.”고이한은 턱을 그녀의 머리 위에 가볍게 올린 채 거울 속 소예지를 바라보았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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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4화

어둠 속에서 남자의 단단한 등이 느린 호흡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창밖은 이미 늦가을이었지만 방 안의 공기는 한여름처럼 뜨거웠다. 뜨겁게 달아오른 공기 속에는 남자에게서 풍기는 은은한 우드 향이 뒤섞여 있었다.다음 날 아침.고이한은 평소처럼 제시간에 일어나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었지만 소예지는 오전 열 시가 되어서야 겨우 눈을 떴다.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양희순은 이미 정성스러운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고 있었다.소예지는 긴 머리를 자연스럽게 늘어뜨린 채 식탁으로 향했다.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목덜미에는 지난밤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아침 식사를 마친 뒤 고이한은 직접 소예지를 연구실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사실 그는 그녀가 오늘 하루쯤 출근하지 않고 푹 쉬기를 바랐다. 하지만 소예지가 꼭 가야 한다고 고집하는 바람에 결국 뜻을 꺾었다.고이한이 운전하는 차는 소예지의 차였다.연구실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이지원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차량 스피커로 통화가 연결되자 소예지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예지야, 손님이 와 있어.”“누구?”소예지는 조금 의아한 듯 물었다. 오늘 자신을 찾아오겠다고 미리 연락한 사람은 없었다.“윤 대표님.”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무슨 일인지 말씀하셨어?”“아마 윤 대표님 어머니 병세 때문에 오신 것 같아.”“알겠어. 나 지금 가는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 줘.”“응.”전화를 끊은 소예지는 시간을 확인했다. 연구실까지는 이제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윤하준의 어머니는 소예지에게도 좋은 분이었다. 늘 친절하게 대해 주었고 여러모로 세심하게 신경 써 주기도 했다.그런 만큼 소예지도 하루빨리 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내고 싶었다.잠시 후 차 안이 묘하게 조용해졌다.그 변화를 느낀 소예지가 고개를 들자 고이한도 마침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당신이랑 윤하준... 개인적으로도 연락하고 지내?”말투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핸들을 쥔 그의 손가락에는 미세하게 힘이 들어가 있었다.소예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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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5화

소예지는 휴대폰을 한 번 바라본 뒤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고이한이 마련해 준 새 장비의 파라미터 조정도 모두 끝난 상태였다.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연구 단계에 들어갈 차례였다.소예지는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장갑을 착용한 뒤 새 장비 앞에 자리를 잡자 이지원도 곧바로 옆에서 준비를 시작했다.그 후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온전히 실험에 몰두했다.새 장비의 정밀도는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고 수집된 데이터 역시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오후 네 시.소예지는 수집된 데이터 한 묶음을 분석하고 있었다.그때 화면을 살피던 그녀의 손가락이 문득 멈췄다.화면에 나타난 곡선 하나가 다른 데이터와는 확연히 다른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소예지는 곧바로 키보드를 두드려 추가 데이터를 불러온 뒤 비교 분석을 시작했다. 그녀의 시선은 한순간도 화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그렇게 10분쯤 지났을 때였다.소예지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의자가 뒤로 밀려났다.그녀는 흥분을 억누르며 이지원을 불렀다.“지원아, 이것 좀 봐.”이지원은 곧바로 그녀의 곁으로 다가와 화면을 확인했다.“예지야, 이거...”“전에 우리가 이야기했던 가설 기억나?”이지원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설마... 신경 퇴행성 질환의 공통 경로에 대한 가설?”“맞아.”소예지는 화면에 나타난 파형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여기 봐. 이 변화가 우리가 계속 찾고 있던 변곡점일 가능성이 있어.”이지원의 눈빛도 순식간에 달라졌다.“그럼 네 가설이 맞았다는 거야?”“아직 단정하면 안 돼.”소예지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들뜬 마음을 억눌렀다.“처음부터 다시 진행하자. 모든 단계를 재검증하고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해야 해.”“알겠어. 이번에는 내가 진행할게. 넌 옆에서 확인해 줘.”이지원은 곧바로 장비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그 후 두 사람은 다시 두 시간 동안 연구실에 틀어박혀 같은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했다.저녁 여섯 시 반.소예지는 화면에 나타난 데이터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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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6화

차가 얼마 가지 않아 신호에 걸렸다.고이한은 손을 뻗어 소예지의 손을 잡았다. 손끝에 닿은 차가운 감촉에 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손이 왜 이렇게 차가워? 저녁 안 먹었어?”“구내식당에서 먹었어.”소예지는 대답하며 다른 손으로 차가워진 손등을 가볍게 비볐다.그제야 늦가을이 성큼 다가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다음부터 야근하면 내가 사무실로 저녁 보내 줄게.”소예지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나 원래 저녁 많이 안 먹잖아.”고이한은 그녀를 한번 바라보았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잡고 있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차가운 손을 따뜻하게 감싸 주었다.차가 다시 출발하자 소예지는 창가에 기대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오늘 얻은 데이터는 너무나 중요했다. 아직 더 많은 검증이 필요했지만 그동안 막혀 있던 연구에 새로운 길이 열린 것만은 분명했다.조금 더 차분하게 정리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그러다 문득 옆자리의 남자를 바라보았다.고이한이 그토록 중요한 장비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면 자신의 연구는 적어도 1년 이상 늦어졌을지도 몰랐다.덕분에 연구 시간을 크게 앞당길 수 있었고 오늘 마침내 중요한 실마리까지 발견했다.“왜?”고이한이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서.”소예지가 솔직하게 대답하자 고이한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뭐가?”“당신이 사 준 장비.”소예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 옅게 웃었다.“그 장비 덕분에 오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어.”고이한의 입가에도 웃음이 번졌다.“그럼 내가 돈 쓴 보람이 있네.”그러고는 제법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알아? 내가 투자한 사람이 나중에 노벨상을 받을지도 몰라.”소예지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그만해.”하지만 고이한의 표정은 의외로 진지했다.“진짜야.”소예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입가에 번진 웃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잠시 후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나... 해낸 것 같아.”고이한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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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7화

소예지는 화장대 앞에 앉아 얼굴에 크림을 바르고 있었다.그러다 문득 거울 너머로 고이한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어떤 전문가들이야?”고이한은 그녀에게 다가가 몇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그 순간 소예지의 손이 멈췄다.그가 말한 사람들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인지 알 수 있을 만큼 의학계에서 손꼽히는 인물들이었다.신경과학 분야의 권위자부터 유전자 치료 분야의 선구자까지 있었다. 심지어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원로 학자도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소예지는 놀란 눈으로 고이한을 바라보았다.“이 사람들을 어떻게 초대한 거야?”고이한은 웃으며 그녀의 뒤로 다가왔다.두 손으로 화장대 양쪽을 짚자 어느새 소예지는 그의 품 안에 갇힌 모양새가 되었다.“내가 아는 사람이 좀 있잖아.”그는 거울 속 소예지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덧붙였다.“내가 상공회의소 회장을 괜히 하는 게 아니야.”소예지는 피하지 않고 거울 속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좋은 장비를 사고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는 데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연구가 깊어질수록 돈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각 분야의 정상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 의견을 나누고 자신의 연구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고이한은 바로 그 기회를 그녀에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고이한.”소예지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응?”고이한은 거울 너머로 그녀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고마워.”진심이 담긴 한마디였다.고이한은 몸을 숙여 그녀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낮게 웃었다.“또 고맙다는 말이야?”그러고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정말 고마우면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게 더 좋은데.”소예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창밖에서 들어온 아침 햇살이 고이한의 회백색 머리카락 위로 내려앉아 은은하게 빛났다.소예지는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그러다 머리카락 사이로 전보다 눈에 띄게 자라난 검은 뿌리를 발견하고 손길을 잠시 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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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8화

“고이한...”소예지는 손을 뻗어 그를 살짝 밀었다.“응?”고이한은 그녀의 쇄골에 입술을 묻은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나 내일 사람 만나야 해.”그제야 고이한이 고개를 들었다.어둠 속이라 표정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웃음기 어린 숨소리가 가까이서 들려왔다.“알겠어.”잠시 후 그가 낮게 덧붙였다.“티 안 나게 조심할게.”소예지가 무어라 반박하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다시 내려앉았다.창밖의 밤은 점점 깊어졌고 방 안도 어느새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고요한 어둠 속에는 두 사람의 흐트러진 숨소리만이 한동안 이어졌다.한참 뒤.소예지는 힘이 빠진 채 고이한의 품에 기대 있었다.고이한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천천히 입을 맞췄다. 입술은 놓아주기 아쉬운 듯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이제 자.”그는 소예지를 품에 조금 더 깊이 끌어안았다.“내일 토요일이니까 늦게 일어나도 돼.”소예지는 눈을 뜨기도 힘들 만큼 피곤했다.“응...”희미한 대답을 끝으로 그녀는 눈을 감았다.고이한도 더 이상 그녀를 방해하지 않고 품에 안은 채 함께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샤워를 마친 소예지는 옷장을 열어 한동안 안을 살폈다.그러다 차분한 그레이 블루 원피스를 꺼냈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단정한 디자인의 원피스 위에는 얇은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걸쳤다.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차림이었다.고이한은 먼저 딸을 어머니 댁에 데려다준 뒤 다시 소예지를 데리러 왔다.현관 앞에서 기다리던 그는 가방을 들고 나오는 소예지를 발견하자 걸음을 멈췄다.그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를 훑었다.소예지는 오늘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옅은 화장을 한 상태였다.계속되는 그의 시선에 결국 소예지가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보았다.“왜? 이상해?”“아니.”고이한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러고는 그녀를 바라보며 낮게 말했다.“그냥... 당신 데리고 나가기 싫어졌어.”소예지가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고이한이 태연하게 덧붙였다.“나만 보고 싶어서.”소예지는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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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9화

소예지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나이에 무슨 데이트야?”고이한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반박했다.“서른 초반이면 한창이지.”그러고는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내 눈에 소 박사님은 여전히 제일 예쁘고 매력적인 사람이야.”소예지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손을 빼려 했다.“말 좀 그만해.”하지만 고이한은 오히려 그녀의 손을 더 단단히 잡았다. 그러고는 손등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낮은 목소리로 부탁했다.“소 박사님, 제발 한 번만 데이트해 주세요.”소예지는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당신은 어디 가고 싶은데?”“당신이 특별히 가고 싶은 곳 없으면 내가 정할게.”소예지는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당신이 골라.”고이한의 차는 도심의 복잡한 도로를 빠져나와 해변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에 올라섰다.소예지는 차창 너머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그 풍경을 보고 있자 오래전 기억들이 하나둘 떠올랐다.이제는 고이한이 어디로 가려는지 알 것 같았다.A시에서 백여 킬로미터 떨어진 해변 리조트 호텔.그곳에는 고이한을 위해 따로 마련된 전용 스위트룸이 있었고 두 사람이 결혼한 뒤 함께 쉬러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했다.해변으로 향하는 도로에 들어서자 고이한이 곁눈질로 소예지의 표정을 살폈다.잠시 망설이던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내가 잘못 고른 거야?”소예지는 대답하지 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이곳에는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두 사람이 깊은 오해에 빠져 있던 시절 고이한은 관계를 회복해 보려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온 적이 있었다.하지만 그날 밤 소예지는 끝까지 그와 함께 올라가지 않았다. 당시에는 고이한을 향한 거부감이 그만큼 깊었다.그리고 며칠 뒤 소예지는 그에게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이혼 당시 고이한은 자신이 가진 회사 가운데 가장 안정적인 여덟 곳을 그녀에게 넘겼다. 모두 그의 사업과 깊이 얽혀 있어 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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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0화

“응.”소예지의 기억도 자연스럽게 오래전 그날로 흘러갔다.당시는 두 사람이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고이한은 늘 집과 연구실만 오가는 소예지가 답답하게 지내는 것을 걱정했다. 그래서 이곳에 언제든 두 사람만 편히 머물 수 있는 전용 스위트룸을 마련했다.무엇보다 답답한 일상에 지친 소예지가 마음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했다.처음 이곳에 왔던 날 소예지는 하얀색 긴 원피스를 입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뛰어다녔다. 고이한은 그런 그녀의 뒤를 구두를 든 채 천천히 따라갔다.밤이 되자 두 사람은 나란히 모래사장에 앉아 하늘 가득 펼쳐진 별을 바라보았다.돌이켜 보면 참 낭만적인 밤이었다.“기억나.”소예지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젊었잖아.”“지금도 충분히 젊어.”고이한이 곧바로 대답하자 소예지는 웃음을 터뜨렸다.“왜 그렇게 나이에 신경 써?”고이한은 그녀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나이를 신경 쓰는 게 아니야.”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당신이 다시 나를 떠날까 봐 무서운 거야.”소예지는 잠시 멈칫했다.무거워진 분위기를 풀고 싶어 일부러 장난스럽게 웃었다.“고 대표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자신감이 없어졌어?”고이한은 대답하지 않고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다 한숨처럼 낮게 말했다.“당신이 나를 떠난 그날부터.”소예지의 얼굴에서 웃음이 천천히 사라졌다.가슴 한쪽이 답답하게 조여 왔다.이혼 후 3년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딸과 일 그리고 연구뿐이었다.고이한에게는 한없이 차갑고 무심했다. 당시의 소예지는 자신이 절대로 그에게 돌아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하지만 지금 같은 시간을 돌아보니 전혀 다른 것들이 보였다.고이한은 너무 많은 것을 짊어지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침착했고 좀처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그래서 미처 알지 못했다.자신이 떠난 일이 그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로 남았는지.“고이한.”소예지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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