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려진 약혼녀의 화려한 재출발: Chapter 61 - Chapter 70

100 Chapters

제61화

주금자가 잠시 멈칫하더니, 코웃음을 쳤다.“난 이하니가 싫은 게 아니야. 다만, 그 애가 너무 고집스러워서 그렇지. 우리 승오는 현명하고 살뜰한 내조가 필요한 사람이야. 남자에게 기대지도 않고,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여자 말고.”“우리 집안 며느리들은 다 그랬어. 너도 그랬잖아? 이하니가 아무리 스스로 잘난 척해도, 우리 승오 돈 안 쓰고 버틴다고 해도...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겠니? 승오를 돕는 건 꿈도 못 꿀 거야.”심주영의 손끝이 서서히 말려 들어갔다.강씨 집안에 시집온 뒤로, 심주영은 늘 ‘착한 며느리’ 역할에 충실했다.하지만 이 집안 며느리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숨 막히는 일이었다.기분 나쁜 모멸도, 돈 한 푼 쓰는 일까지도 눈치를 봐야 했다.순간, 심주영은 하니가 조금 부럽게 느껴졌다.‘저 애는... 날아갈 수 있잖아.’...결혼식 날이 밝았다.권아는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고, 옆에는 그녀가 섭외한 ‘배우 아버지’가 서 있었다.친지와 하객들의 축복 속에서, 권아와 승오는 결혼식을 올렸다.그 시각, 하니는 결혼식 영상을 확인하곤, 핸드폰을 그대로 물속에 던졌다.그리고 고개를 돌려, 곧장 배에 몸을 실었다.‘이제... 강승오와는 완전히 끝이다.’...하루 종일 배 위에서 흔들리다 보니, 하니의 속은 뒤집히고 다리가 풀렸다.간신히 갑판으로 나와 바람을 쐬는데, 배가 크게 기울며 바다로 떨어질 뻔했다.그 순간, 누군가가 재빠르게 그녀를 붙잡았다.넓고 따뜻한 품.하니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건, 미간을 살짝 찌푸린 부건빈이었다.“왜 바다 위에 있는 거예요?”하니는 시선을 떨구었다가, 담담히 말했다.“다른 도시에서 살려고요. 다시는 안 돌아올 거예요.”건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입고 있던 외투를 벗고 하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이 사람... 외투를 건네는 걸 좋아하네.’하니는 입술을 깨물었다....결혼식이 끝난 밤, 승오는 권아와 몸을 섞고, 깊게 얽혀 있었다.서로를 놓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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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심주영은 확신했다.‘이하니... 저 애는 우리 집에 화만 부르는구나.’그래도 다행인 건, 하니는 스스로 상황을 파악하고 물러났다는 거였다.미련 없이 파혼을 택하고 떠난 것.그런데 이 어리석은 아들은 아직도 현실을 모른다.“아들, 네 마음에 정말 하니가 있다면... 왜 바람을 피웠니?”심주영이 비웃듯 말했다.“인제 그만 정신 차리고 권아랑 혼인신고 해. 둘이서 조용히 잘 살아.”“싫어요.”승오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눈빛에는 붉은 기운이 번졌다.“하니 말고는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권아는 그냥... 잠깐 즐긴 상대일 뿐. 하니만이 제가 평생 사랑할 여자예요.”“허... 네 아버지가 출장 안 가고 집에만 계셨어도, 네 다리를 부러뜨렸을 거야.” 심주영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우리 집안에서 사생아 소문이 퍼지면, 그건 가문의 치욕이야. 그땐 네가 사당에 들어가 무릎 꿇고 속죄해야 할 거다.”“그리고... 넌 정말 하니를 바보로 보니?”심주영이 피식 웃었다.“넌 권아랑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지? 하니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지?”승오의 동공이 흔들렸다.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맞물렸다.‘하니가 알았던 거야. 내 불륜도, 권아 배 속의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도...’승오의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눈빛마저 공허하게 비어갔다.“일어나라. 넌 강씨 집안의 후계자야. 이렇게 비참하게 무너질 수 없어.”심주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이미 권아를 선택한 거다. 권아 배 속의 아이가 증거야. 그렇다면 권아를 지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게 하고, 하니는... 잊어라.”“어머니, 하니가... 정말 알고 있었어요?”승오의 목소리에 놀람과 절망이 뒤섞였다.“그럼... 어머니가 하니를 보낸 게 아니라, 하니 스스로 떠난 거네요?”“응...”심주영이 짧게 대답했다.그 순간, 승오의 표정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하니가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어요? 자그마치 6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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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권아의 눈이 커다랗게 흔들렸다.‘이게... 정말 강승오 입에서 나온 말이야?’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권아를 끌어안고 평생 지켜주겠다, 아이까지 책임지겠다고 말했던 사람이었다.하지만 지금, 배를 감싸 쥔 권아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그리고 하얀 원피스 위로 붉은 피가 번져나갔지만, 승오는 그저 무심히 내려다볼 뿐이었다.그때, 강연하가 급히 달려왔다.그녀는 곧장 차를 부르고, 권아를 병원으로 데려가려 했다.“우리 당장 병원 가야 해.”그러나 승오가 길을 막아섰다.“누나, 이 여자 데려가면 안 돼.”연하의 인내심이 터졌다.“승오야, 이하니는 이미 떠났어! 뭐가 그렇게 미련이 남아? 이하니는 널 버렸어. 지금 네 옆에는 권아 씨가 있고, 네 아이의 엄마가 바로 권아 씨야!!”승오의 시선이 한층 어두워졌다.결국 연하는 권아를 억지로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권아는 통증에 몸을 웅크린 채 뒹굴었고, 수술실로 실려 들어가기 전까지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연하의 손바닥은 이미 피로 젖어 있었다.‘대체... 승오가 뭔데 이런 걸 결정할 수 있는 거야?’“승오야, 너... 그렇게까지 이하니가 좋니? 권아 씨 뱃속의 네 아이를 다치게 하면서까지? 할머니가 알면 얼마나 상심하실지 생각은 해봤어?”그 말에 승오는 코웃음을 쳤다.“백권아? 그건 그냥 하찮은 존재일 뿐이야. 결혼 같은 건 생각도 안 했어. 내 아내는 오직 하니 하나야.”그는 고개를 떨구며, 버려진 강아지처럼 중얼거렸다.“누나... 하니 좀 찾아줘, 제발.”연하는 날카롭게 승오를 노려봤다.“권아 씨가 뭐가 부족해? 성격도 온순하고, 다정하고, 살뜰하잖아. 그런 사람이 네 아내가 돼야 해.”“이하니? 우울하고, 속이 시꺼멓고, 고아에다가... 우리 집 대문엔 발도 못 들여놓을 여자야.”승오의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물들도록 움켜쥐었다.그는 몸을 돌려 걸어 나가려 했지만, 연하가 앞을 막아섰다.“권아 씨랑 아이가 아직 위험해. 절대 못 나가.”“난... 내 아내를 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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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오빠, 내가 지금 얼마나 힘든지 알아? 오빠 마음속에 난 없는 거야? 나랑은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지 않은 거지?”그 말에, 승오의 눈빛이 한층 더 차가워졌다.“그래, 난 너랑 같이 있고 싶지 않아.”그는 안주머니에서 백지 수표를 꺼내 권아 앞에 내밀었다.“얼마면 되겠어? 최대 10억까지 줄 수 있어.”권아의 눈이 순간 크게 흔들렸다.연하도 믿기지 않는 듯 동생을 바라봤다.‘돈으로 권아 입을 막겠다고? 그럼 뱃속 아이는?’ ‘강씨 집안 피가 흐르는 그 아이를... 인정도 안 하겠다는 거야?’“오빠, 나한테... 돈을 준다고?”권아는 바보가 아니었다.10억은 승오가 평소 권아에게 주는 카드 한 장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수표 한 장 쥐여주고 떠나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제안이었다.권아가 원한 건 돈이 아니었다.그녀가 노리는 건 ‘강승오의 아내’라는 자리, 그리고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강씨 집안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는 ‘미래’였다.그걸 포기할 리 없었다.권아는 고개를 숙인 채 입술을 꼭 깨물었다.“난 오빠 돈 필요 없어. 그냥... 오빠가 내 옆에 있어 줬으면 해. 우리 이미 결혼식도 했고, 주변 사람들도 다 알아. 게다가 난 지금 임신 중이야. 내가 어떻게 떠나?”그리고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이하니는 이미 떠났잖아. 오빠는 왜 그렇게 집착하는데? 그 사람이 자유를 원한다면... 그냥 보내줘.”말은 당당했지만, 권아의 속마음은 차가웠다.‘이하니... 그렇게 떠날 거면 강승오랑 완전히 끊었어야지.’‘지금도 찾게 만들면, 내가 뭐가 되는데?’“오빠, 내 배 좀 봐. 아이는 벌써 많이 컸어. 태동도 있다고. 정말... 이 아이를 버릴 거야?”보통 같으면 이런 말에 승오는 마음이 약해질 터였다.특히 권아가 이렇게 서러운 표정을 지으면 그는 더 애틋하게 감싸줬다.권아는 순종적인 성격에 청순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대담하게 마음을 여는 여자였다.‘남자들이 애인으로 두고 싶어 하는... 딱 그 얼굴.’승오의 눈빛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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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권아가 어깨를 잔뜩 웅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오빠... 혹시 이하니가 어디 있는지 알아? 이하니... 아마 벌써 해외로 나갔을 거야. 말 그대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지.”“하지만 오빠, 결혼하고 아이 낳는 건 해야 하잖아? 차라리 계속 이하니만 찾기보다, 평생 짝부터 정하는 게 어때?”권아는 고개를 숙였다가 곧 승오의 반응을 엿보듯 시선을 들었다.승오가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하니가 떠난 건... 네가 있어서야. 네가 내 아이를 가졌다는 걸 알고, 그래서 떠난 거라고. 너랑 그 애만 사라지면... 하니는 다시 돌아올 거야.”“6년이야. 그 시간이 어떻게 네 말 몇 마디로 지워져? 처음부터 내가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은... 하니 하나뿐이었어.”만약 하니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지독하다’고 했을 것이다.승오의 그 깊은 집착이 진심인 건 맞지만, 그 진심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잔혹함과 함께였다.이런 사랑은, 하니도 절대 평생 감당 못 할 것이다.권아의 얼굴빛이 서서히 하얗게 질렸다. 이불을 움켜쥔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그 눈에는 분명히 억울함과 분노가 서려 있었다.하니가 살아 있는 한, 권아는 평생 악몽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리고 배는 점점 불러오는데, 혼인신고조차 해주지 않는 이 현실이 더 잔혹했다.“오빠, 너무 지친 거 같아. 집에 가서 좀 쉬어. 마음 좀 가라앉히고... 난 계속 옆에 있을게.”권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오빠가 정말 나를 싫어한다면... 당분간은 눈에 띄지 않을게. 오빠가 원하면 그걸로 돼. 그래도 가끔... 나랑 아이 보러 와 줘.”“아니다. 안 와도 괜찮아. 나 혼자라도 이 아이 키울 거야. 이건 우리 사랑의 증거니까... 난 절대 버릴 수 없어.”권아의 눈빛에는 굳은 결심이 서려 있었다.연하가 감탄하듯 말했다.“승오야, 봐봐. 권아 씨는 널 이렇게나 사랑해. 넌 너를 사랑하지 않는 이하니 대신 권아 씨를 얻은 거라고. 이게 얼마나 좋은 일인 줄 알아?” “내가 너라면 무조건 권아 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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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강 대표님, 다시는 나 건드리지 마세요.”“넌 하니의 유일한 절친이잖아. 하니가 어딨는지 모를 리가 없어.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 맞지?”승오의 목소리엔 낮지만, 금방이라도 터질 듯한 분노가 배어 있었다.승오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마치 사냥감 앞에 선 미친 짐승처럼.라연은 순간 얼어붙더니,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난 오히려 궁금하네. 그렇게 하니를 못 놓겠다면서, 왜 바람을 피운 거야?”그 말에 승오의 시선이 흔들렸다.“하니가 네 애인보다 뭐가 못 해서? 하니는 얌전히 기대기만 하는 여자도 아니고, 그동안 죽어라 일하면서 네 돈 한 푼 안 썼어. 네 선물도 전부 자기 힘으로 번 돈으로 샀잖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승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하니는 맨날 집에만 있었어. 수입이 있을 리 없잖아. 그동안 내 카드로만 살았는데?”라연은 냉소를 흘렸다.“하니는 계속 그림 팔아서 돈을 벌었어. 원래부터 재능 있는 화가였고, 갤러리까지 운영했었어. 그렇게 오래 사귀었으면서, 하니가 화가인 것도 몰랐어?”그 말은 마치 차가운 손바닥이 되어 얼굴을 세게 후려치는 듯했다.‘내가 그동안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꼴을 하고 있었던 거지?’승오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하니의 그림 가치를 우습게 여기며, 모욕적인 말로 상처를 주었던 사실을.그럼에도 하니는 아무 말 없이 다 견뎌냈다.“네 애인 이미 임신했다며? 그럼 진작에 그 여자랑 결혼했어야 하는 거 아냐? 하니는 왜 찾는 건데? 설마 하니더러 너희 애까지 키우라는 거야?”라연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차가웠다.승오는 이를 악물었다.“그 여자는 그냥 애인일 뿐이야. 날 계속 붙잡은 건 그 여자였고, 내 마음엔 하니밖에 없었어. 다른 여자를 넣을 자리는 없다고.”라연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그 여자 안 좋아한다면서, 왜 임신까지 시켰는데? 거기다 신혼집까지 넘겨줬잖아. 대놓고 사람들한테 네 마음은 하니가 아니라 딴 여자한테 있다고 증명하는 꼴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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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얼마 지나지 않아, 여러 회사에서 하니에게 관심을 보였다.하니는 삽화를 그릴 줄 알았고, 화풍이 섬세하고 아름다웠다.대부분 웹툰 회사였고, 제시한 급여도 꽤 괜찮았다.그때, 하니의 새 핸드폰이 울렸다.발신자는 ‘익명’.메시지를 열자, 하니는 단번에 라연이 보낸 것임을 알았다.라연은 하니의 주소가 노출될까 봐, 일부러 다른 사람의 핸드폰을 빌려 메시지를 보냈다.[강승오가 나를 찾아왔어. 그 사람, 후회한대. 널 다시 잡고 싶대.]짧은 문장 속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하니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강승오가 후회할 날이 올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빨리?’‘마치 내가 떠나자마자 제정신이 든 것처럼.’하지만 하니의 입꼬리는 비웃음으로 휘어졌다.‘날 정말 사랑했다면... 애초에 바람 같은 건 피우지 않았겠지.’승오가 재벌 2세고, 주변 사람들이 다 그런 식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하니는 이미 한 번 배신한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하니는 서류를 챙겨 옷을 갈아입고 면접장으로 향했다....한편, 강씨 가문의 본가.심주영은 권아를 직접 본가로 데려왔고, 심지어 도우미까지 불러 권아를 돌보게 했다.주금자는 하루 종일 권아의 배를 보며, 감출 수 없는 웃음을 띠고 있었다.“배 모양이 뾰족하네. 이건 틀림없이 아들이야. 우리 집안도 대가 끊기진 않겠구나.”시어머니가 이렇게 기뻐하니, 심주영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승오가 요즘 밖으로만 나도느라 혼인 신고할 생각이 없어요. 이러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쩌나 걱정이에요.”주금자가 눈을 크게 떴다.“그 성가신 이하니가 이미 떠났는데, 승오가 아직도 혼인신고를 안 한다고? 그거야말로 승오가 원하던 거 아니었어?”주금자는 바보가 아니었다. 아이까지 가진 권아. 승오가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는지 뻔히 보였다. 아니면 왜 권아를 임신하게 했겠나?그러니까... 승오가 하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는 건 명백했다.6년 동안, 하니는 아이를 가지지 못했으니까.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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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승오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만큼 주먹을 움켜쥔 채 거칠게 집으로 들어섰다.발걸음마다 분노가 묻어났다.거실에 들어서자, 심주영과 권아가 다정하게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승오는 눈살을 깊게 찌푸리며 말했다.“누가 이 여자를 집에 들이라고 했어요? 제 허락받은 적 있나요?”심주영은 비웃듯 짧게 웃었다.“이 집은 네 할머니가 주인이야. 네가 언제부터 허락 운운할 자격이 있었니? 할머니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누구든 데려올 수 있는 거야.”그리고 목소리엔 은근한 비난이 섞여 있었다.“넌 한 여자 때문에 죽네 사네 하면서, 재벌 집안 상속자답지 않게 굴고 있어. 네 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면 가만있을 것 같아?”승오는 이를 악물고, 낮게 물었다.“저는 그저 묻고 싶어요. 왜... 왜 어머니는 그렇게까지 막으시나요?”“하니를 왜 그렇게 못마땅하게 생각하세요?”심주영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하니를 내쫗은 건 내가 아니라, 너지. 네가 쫒아내 놓고, 이제 와서 나한테 따지는 거니?” “네가 바람피우고, 애까지 만들지 않았다면, 부모 없는 여자라도 받아줄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이미 아이가 생긴 이상, 예전처럼 네 멋대로 할 수는 없어.”“솔직히 말해서, 네가 정말 싫었다면 권아 씨가 네 아이를 가질 일도 없었겠지.”“난 네가 유일한 아들이라서, 손자 보는 날만 기다렸어. 아이가 생겼으면, 권아 씨랑 잘 살면 되는 거 아니니?”승오의 시선이 곧바로 권아를 향했다.“백권아, 네가... 우리 어머니를 구슬린 거야?”권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급히 고개를 저었다.“아, 아니야! 오빠,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야. 정말이야, 난 어머니께 그렇게 말씀드린 적 없어!”“어머니는 그냥 내 배 속 아이가 불쌍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거야. 절대 다른 뜻은 없어!”승오는 심주영을 똑바로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어머니, 하니를 찾게 해주세요. 무릎 꿇으라면 꿇겠습니다. 하니와 함께한 6년 동안, 저는 한 번도 하니를 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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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부건빈의 책상 위로 한 뭉치의 이력서가 툭 하고 내려앉았다.막 사무실로 들어온 건빈은, 비서 조진혁이 서류를 밀어 넣는 걸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대표님, 사람 좀 뽑으셔야죠. 디자인팀이 더는 버티기 힘들다고... 유화정 부장님이 곧 들이닥치실 기세입니다.”진혁의 말에 건빈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디자인팀에서 사람이 필요한데, 왜 나한테 그래? 내가 디자이너야?” “유 부장님께서 그러셨습니다. 전부 마음에 드니까, 부 대표님께서 직접 세 명을 추려주시길 바란다고요.” 그 말인즉슨 세 명은 꼭 뽑겠다는 얘기. 더 있어도, 덜 있어도 상관없으니 그냥 건빈이 알아서 결정하라는 뜻이었다.건빈이 무심하게 이력서를 넘기다가 한 장에서 손이 멈췄다.이름은 ‘이하니’였다.그의 시선이 잠깐 머문 걸 눈치챈 진혁이 말을 이었다.“이하니 씨 이력서는 꽤 인상적입니다. 원래 화가 출신이라고... 디자인팀과 잘 맞을 것 같다고 유 부장님이 꼭 뽑으라고 하셨습니다.”건빈이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그럼 이하니 씨로 하자.”“이하니 씨만요?”뜻밖의 대답에 진혁이 눈을 깜빡였다.“이 사람은 유 부장 보조로 붙여. 일 잘하면 정식 직원으로 전환해주고.”부진그룹은 원래 인사 규율이 깐깐하기로 유명했다.아무리 뛰어난 경력자라도 석 달은 무조건 수습 기간을 거쳐야 정직원이 될 수 있었다.그런데 건빈이 이렇게 곧장 정규직 전환 가능성을 언급하다니, ‘낙하산’이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진혁이 뭔가 더 물어보려던 찰나, 건빈의 낮은 목소리가 가로막았다.“입 밖으로 나오지 말아야 할 말도 있다는 거, 잘 알지?” “네.”진혁은 어깨를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를 챙겨 나갔다....다음 날, 하니는 부진그룹 합격 통보를 받았다.‘다행이다...’가슴속에서 안도감이 퍼졌다.부진그룹은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대기업.하니가 굳이 이곳을 선택한 건, “회사 생활을 하더라도 최고의 환경에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부진그룹 디자인팀에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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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로나가 입꼬리를 삐죽이며 투덜거렸다.“왜 제가 신입을 맡아야 하는데요? 저도 엄청 바쁘거든요. 부 대표님이 하루가 멀다고 화면 수정하라니까...”그러다 말이 뚝 끊기더니, 시선이 하니에게로 향했다.“그럼... 이하니 씨가 한번 수정해 보죠. 실력 좀 보게.”로나가 드로잉 패드를 건넸다.하니는 모니터 속 그림을 한 번 훑어보더니, 별다른 말 없이 펜을 들어 수정 작업에 들어갔다.로나는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지켜봤다.시간이 흐르고, 세 시간이 지나서야 하니가 마지막 선을 정리했다.로나의 눈이 번쩍였다.“어? 이 그림체... 어디서 많이 본 건데요. 혹시 그 유명한... 이름이 뭐더라... HS 맞죠?”“HS 알아요? 완전 실력파였는데, 연애 문제로 상처받고 업계를 떠났잖아요. 진짜 아까운 인재였는데.”하니는 곤란한 듯 미소를 지었다.‘내가 그 HS라면, 로나 씨 기절하겠지?’“그냥... 따라 해본 거예요.”로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군요. 그럼 이거 더 다듬어서 완성해 줘요. 제가 모아서 부 대표님께 보낼게요.”“아, 근데 미리 말하는데... 우리 부 대표님 진짜 까다로워요. 아무나 건드릴 상대가 아니거든요.”“하니 씨 실력이 안 통하거나 마음에 안들면, 바로 짐 싸서 나가야 할 수도 있어요. 아니면 최소 보름 동안 밤새우면서 수정해야 하고요.”“유 부장님만 봐도 알잖아요. 완전 피골이 상접했어요.”하니는 무심코 유화정을 바라봤다.눈가에 번진 푸른 다크서클이 보이자, 마음이 순간 철렁했다.‘이 회사, 과연 오래 다닐 만한 곳일까?’...잠시 뒤, 유화정과 로나는 하니의 연락처를 받아 디자인팀 톡방에 초대했다.“모레쯤이면 좀 한가해질 거예요. 그때 팀 회식 한 번 하죠. 하니 씨 환영회 겸.”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하니는 직접 운전해 출근했기에 퇴근길에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그때, 어디선가 낯익은 실루엣이 시야에 스쳤다.‘내 착각인가?’“하니 씨, 이 차예요?”로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하니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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