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려진 약혼녀의 화려한 재출발: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하니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계속 그림을 그렸다. 색감은 점점 대담해지고, 구조는 더 세밀해졌다.그 시각, 방송 채팅창은 난리가 났지만 하니는 눈치채지 못했다.[건이 배 안 먹어 님이 ₩2,000,000 슈퍼챗을 후원했습니다.]정신을 차린 순간, 화면 가득 펼쳐진 화려한 효과가 하니를 놀라게 했다.하니는 깜짝 놀라 방송을 꺼버렸다.‘방금 그거... 선물 효과였나?’확인해 보니, 상대는 무려 제일 비싼 ‘슈퍼챗’을 보냈다.‘요즘 방송으로 그림 그리면 이렇게 돈이 잘 벌리는 거야?’하지만 하니는 곧 ‘건이 배 안 먹어’라는 닉네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단 한 문장이었다.[연락처 추가하자.]‘추가할까 말까?’큰 선물을 받은 터라, 하니는 입술을 깨물었다.결국 자신의 연락처를 건넸다.친구 추가가 되자마자 하니는 돈을 그대로 송금했다.[죄송해요. 저는 취미로 방송하는 거라 돈 받을 생각 없었어요.][돈 필요 없나 보네?]말투는 여전히 건방졌다. 마치 하니가 알던, 가진 게 많아 세상 태평한 재벌 집 도련님들 같았다.하니 기억 속 그 도련님들은 하나같이 다루기 까다롭고, 성질도 나빴다.늘 누군가가 떠받들어야 하는 타입이었다.승오 역시 그런 면이 있었다. 늘 대접받는 건 좋아하면서 먼저 비위를 맞추는 일은 싫어했다.하니와 있을 때조차 그는 으레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하지만 하니가 그걸 싫어한다는 걸 알면, 그제야 살짝 누그러졌다.대부분의 시간 동안, 승오는 그랬다.그래서 하니는 다시는 그런 부류의 사람과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그런데, 답장이 없자 상대가 물음표 하나를 보냈다.[?][그냥 받으면 돼. 그림 방송하는 거면 돈 필요해서 하는 거 아닌가?][그리고 당신의 그림은 그만한 값어치 있어.]하니는 잠시 말을 잃었다.투박한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마지막 그 한마디가 가슴에 깊이 꽂혔다.그건 돈보다 더 큰 의미였다.하니가 가장 원했던 건, 바로 이런 인정이었다.하니는 화가로서
Read more

제82화

‘오빠, 제발 돌아와... 내 뱃속엔 아직 오빠 아이가 있어!’그리고 곧 이어진 건, 대학 시절 승오가 하니에게 했던 고백이었다.‘하니, 난 평생 너만 사랑할 거야. 절대 배신하지 않아.’평생이라던 그 약속은, 고작 6년 만에 끝났다.그게 승오의 ‘영원’이었다....하니는 잠을 설쳤다.거울 속, 검게 내려앉은 다크서클을 가리기도 전에 출근길에 올랐다.얼굴빛은 창백했고, 기운도 없었다.로나가 눈치를 보며 말을 꺼냈다.“두 사람... 여전히 그렇게 계속하는 건 아니죠?”하니는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로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하니 씨, 참 대단하네요. 젊음이 부럽다니까요.”그때 마침 유화정이 다가와 하니의 어깨를 툭 쳤다.“하니 씨, 혹시 공필화 그릴 줄 알아요?”하니는 순간 멍해졌다.“이력서 보니까, 다양한 화법에 능숙하다고 썼더라고요. 우리가 맡은 고객 중에 공필화를 유난히 좋아하는 분이 있어요.”“국화를 한 폭 그려서 고객한테 보내줘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도 빨리 계약 잡아야 해요. 안 그러면 기획팀 쪽에서 난리 날 거예요!”옆에서 다른 동료가 툴툴거렸다.“왜 하니 씨만 힘든 거 시키는 거예요? 그 고객 까다롭잖아요. 공필화 그릴 줄 아는 화가 여러 명 찾아봤는데 다 안 된다면서...”“하니 씨가 아무리 젊어도 전업으로 공필화만 그리는 작가들보다 잘 그리겠어요? 시간만 낭비하는 거 아닌지...”“힘든 건 다 우리 몫이잖아요. 거기에 선물까지 챙기라고요?”“우리 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대표이사실에 화실 있으니까 무료로 쓰게 하고, 월급 세 배 쳐주라고요.”“...”로나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하니는 벌떡 일어섰다.“네, 하겠습니다.”대답은 시원스러웠다.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애초에 하니가 그림을 팔았던 이유도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강씨 집안이 하니를 무시한 것도 하니가 가난하고 가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하니의 핸드폰 속에는 보육원 후원 계좌가 있었다.하니는 매달 1,000만 원을 보내왔다.예전
Read more

제83화

5일 후.하니는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나며 기지개를 켰다.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더니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다.갑자기 허리를 단단히 감싸는 팔이 느껴졌다.따뜻한 체온과 함께 은은한 담배 향이 스쳤다.하니는 반사적으로 미간을 좁히며 자신을 붙잡은 남자를 바라봤다.“여기... 어떻게...”말을 잇던 하니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다시 말해줄게요. 내 이름은 부건빈이에요. 이름으로 불러주면 돼요.”건빈의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지금 이 회사 대표이사의 수석 비서입니다.”하니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부진그룹 대표이사의 수석 비서...’ ‘그러니까, 이 도시에서 제일 힘 있는 회사 사람이라는 거네.’ ‘그러니 돈이 많을 수밖에.’‘연봉이... 몇억은 하겠지.’“고마워요.”하니의 볼이 붉게 물들었다.건빈의 손바닥이 허리를 스치며 묘한 전율이 번졌다.하니는 속으로 ‘그만 놓으셔도 돼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막 자신을 부축해 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면...그가 살짝 손가락을 움직이더니, 결국 하니를 놓아주었다.“하니 씨, 이제 퇴근 시간이네요. 혹시... 같이 저녁 먹을래요?”하니는 얼이 빠진 듯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특히 건빈이 자연스럽게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얼굴이 더 빨개졌다. 머리를 숙이자 땅속으로 파고들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그런데 내가 그린 그림을 대표님께 드려야 하는데요.”하니는 목소리를 낮췄다.건빈은 고개를 들어 그림 속 국화를 바라봤다.국화는 살아 숨 쉬는 듯 생생했고, 화면 전체가 삼각 구도로 짜여 있어 독창적인 구성이 한눈에 들어왔다.‘이건 분명 왕한성 대표님이 만족하시겠군.’건빈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니는 누구보다 뛰어난 사람이었고, 그 ‘약혼자’라는 남자는 감히 하니와 견줄 자격조차 없었다.“대표님께 이미 보고드렸어요.”그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아니면... 하니 씨, 나랑 식사하기 싫은 건가요? 약혼자분과 약속이라도 있으신 건지...”
Read more

제84화

그 말을 듣자, 로나는 왠지 모르게 후회가 스쳤다.“부장님... 제가 정말 할 수 있을까요?”...건빈의 차는 부드럽게 멈춰 섰고, 도착한 곳은 한 중식당이었다.하니는 문 앞에서 잠시 망설였다.하니는 원래부터 사람 많은 자리를 어려워했다. 심지어 방송으로 그림을 그릴 때도 손만 화면에 비추는 게 전부였다.승오는 모임이나 연회에 하니를 거의 데리고 가지 않았다.그 덕에, 아니면 그 탓에 하니는 여전히 낯선 자리를 두려워하며 움츠러드는 성격을 버리지 못했다.특히 강씨 집안의 연회에 참석할 때면, 하니는 늘 사람들의 비아냥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더 안으로, 더 깊숙이 숨어버렸다. 마치 껍질을 단단히 닫아버린 대합처럼, 살짝만 열면 보일 부드러운 속살도 이젠 꼭꼭 말아 넣은 채 한 점도 내보이지 않았다.누군가 문을 두드릴 때만, 아주 잠깐 살짝 내밀었다가 곧바로 다시 숨기는... 그런 대합.그 안에서 하니가 오랜 시간 길러온 진주 하나.그것을 승오에게 내밀었지만, 그 사람은 원하지 않았다.그래서 하니는 그 진주를 다시 깊숙이 감춰야 했다.아주 깊고, 아무도 닿지 못하는 곳으로.멀지 않은 자리에 한 남녀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남자는 여자에게 새우를 까주고 있었다.여자는 인근 대학의 학생처럼 보였고 그 눈빛은 아주 반짝였다.“명준아, 고마워!”그 웃음은 달콤했고 행복이 묻어났다.한때, 하니와 승오도 이런 순간들을 수없이 보냈다.그 생각이 스치자 하니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대학 시절의 승오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파혼한 걸 후회한 적은 없어.’‘다만... 서로 사랑했던 우리가 왜 이렇게 초라하게 끝나야 했을까?’그때, 그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갔다.잠시 후, 그 남자는 이번엔 더 성숙해 보이는 여자를 데리고 들어왔다.그리고 아까와 똑같이 새우를 까주기 시작했다.단지...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었다.하니는 그 남자를 똑바로 바라봤다.‘저 눈빛... 분명 사랑이 가득한
Read more

제85화

하니가 고개를 돌렸을 때, 아까 보았던 그 남자와 여자 친구는 이미 밖으로 나가 있었다.여자 친구는 화려하고 성숙하게 치장해, 한눈에 시선을 끌었다.그 눈빛은 이내 건빈에게 향했고, 눈은 빠질 듯 커졌다.거의 들러붙을 기세였다. 그 옆의 남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넌 사람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어.”여자가 비웃듯 말했다.“역시 남자는 나이 좀 있어야 여자를 챙길 줄 알지. 너 같은 애송이는 됐어.”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잘록한 허리를 흔들며 건빈 앞으로 다가왔다.“아까 봤어요. 여자 친구가 사장님한테 얼마나 퉁명스러운지... 차라리 절 선택하는 게 어때요? 저는 훨씬 다정하게 배려해 줄 수 있는데...”하니는 자리를 비켜, 두 사람이 대화하기 편하게 해주었다.‘강승오도, 부건빈도... 그리고 눈앞 이 여자도... 다 똑같아.’‘누구도 끝까지 충실할 수 없어. 특히 가진 게 많은 남자일수록.’‘충성은... 불가능한 거야.’하니의 손끝이 저릿하게 힘을 줬다.‘역시 내가 처음부터 너무 많은 걸 바랐어.’‘강승오를 진작 포기했어야 했는데... 결혼 직전까지 매달리다니.’건빈이 천천히 눈썹을 올렸다.“더 다정하게 배려한다니... 그걸 어떻게 확신하죠?” “그리고 제가 다정한 여자를 좋아한다고, 누가 그래요?”그는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게다가, 당신 남자 친구가 지금 보고 있잖아요.”여자는 순간 목을 움찔했다.“흥, 하나도 재미없네요!”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젊은 여자가 씩씩하게 다가와 그 남자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내가 너한테 얼마나 잘했는데, 우리 졸업하면 결혼하기로 했잖아! 5년을 함께했는데, 술 마셨다고 바람을 피워? 도명준, 너 진짜 양심이란 게 있긴 하니?”맞은 도명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여자가 돌아서려는 순간, 남자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나 너랑 결혼할 거야! 하지만 너만 보고 평생 살 수는 없잖아.”“남자는 원래 다 정 많은 생물이야. 한 여자만 바라보는 건
Read more

제86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믿든 안 믿든.”“배신조차 못 막는 연인은 쓰레기죠. 하지만... 난 그런 쓰레기가 되고 싶진 않아요.”찰칵-안전벨트가 잠겼다.건빈이 몸을 거두었다.하니의 볼은 잘 익은 복숭아처럼 붉어졌다.“왜... 저한테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하니는 시선을 떨구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분명 이런 말은 연인 사이에서나 하는 설명 같은데...‘나랑 이 사람은... 무슨 사이지?’“나를 그런 쓰레기 부류에 넣지 않게 하려고요. 그리고... 동료이자 이웃으로서, 우리의 관계가 정상적으로 가길 바라요.”건빈은 그렇게 말하고, 하니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었다.하니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전,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볍게 두드렸다.그의 외투가 여전히 어깨 위에 걸쳐 있었다.‘돌려줘야 하는데...’하지만 문득.‘굳이... 저런 남자에게 더 다가갈 필요는 없어.’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들었다.밤이 되어, 하니는 다시 방송을 켰다.매번 다른 그림, 매번 새로 나온 화법.처음엔 하니의 실력을 깎아내리려는 악플러들이 많았다.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도 슬슬 말이 줄어들었다.특히, 하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그림을 잘 못 그린다고 하셔도 괜찮아요. 마음껏 지적해 주세요. 저는 타인의 말을 듣는 편이니까요.”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려도 괜찮아요. 마음껏 지적해 주세요. 저는 듣는 그 한마디에 악플러들은 오히려 더 민망해졌다.딱히 트집 잡을 구석조차 없었으니까.하니의 그림은 개성 있었고, 아름다웠다.첫눈에 시선을 사로잡고, 두 번째에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런 그림이었다.그때, ‘건이 배 안 먹어’가 또다시 슈퍼챗을 여러 개 쏘며 하니의 방송에 인기를 끌어주었다.방송을 마치고 계좌를 확인한 하니는 잔액이 한 달 월급을 훌쩍 넘는 걸 보고 잠시 멍해졌다.‘이게 회사 다니는 것보다 낫잖아?’잠깐의 망설임 끝에 하니는 그 돈을 그대로 송금했다.하지만 상대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그러다 영상통
Read more

제87화

새하얀 캔버스 위에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 모습을 드러냈다.“이게 최종 완성본이에요.”하니의 목소리는 담담했다.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주위를 훑었다가, 로나에게서 멈췄다.로나의 몸에서는 옅지만 분명한 먹물 냄새가 났다.대부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희미했지만...‘내 코는... 절대 못 놓칠 수 없지.’“혹시... 그림을 두 점 준비한 거예요?”로나가 살짝 놀란 듯 물었다.하니는 어려서 부모를 잃었고, 홍성대 미대에서 교수들의 총애를 받으며 공부했다.하지만 그만큼 시기와 질투를 사기도 했다.그건... 많았다.그림에 더러운 물을 끼얹거나 훼손당하는 건... 하니에겐 이제 낯설지 않은 일이었다.그래서 새 회사에 와서도 그녀는 예전의 습관을 버리지 않았다.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항상 두 점씩 그려두는 습관.‘결국... 여기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는구나.’하니의 손끝에 천천히 힘이 들어갔다.새 그림은 무사히 왕한성 대표의 손에 전달됐다.왕 대표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계약은 순조롭게 체결됐다.유화정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하니 씨, 축하해요. 오늘부로 정직원이네요. 로나 씨랑 하니 씨는 둘 다 미대 나온 실력이 출중한 분들이니까, 앞으로 모든 컬러 일러스트 작업은 함께 맡아야 할 거예요.” 로나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하니 씨, 우리 한 팀이네요.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하면서 축하할까요?”하니는 잠시 로나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살짝 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퇴근 후, 로나는 다른 사람들도 부르려 했지만, 하니가 먼저 말을 잘랐다.“우리 둘만 식사해요. 어서 가요.”로나의 눈이 잠시 커졌다.그러고는 조금 굳은 표정으로 하니의 뒤를 따라갔다.“하니 씨, 저...”“낮에 일, 로나 씨가 한 거죠? 왜 그런 짓을 한 거예요?”하니가 눈썹을 살짝 올렸다.“내가 회사 와서 로나 씨한테 무슨 잘못을 했나요? 로나 씨의 일이나 자리에도 전혀 영향을 준 적 없는데.”로나의 손끝이 서서히 오므라들었다.“하니
Read more

제88화

로나는 하니가 회사에서 처음 사귄 ‘친구’였다.하지만 그 첫 친구는 진짜 친구가 아니었고, 결국 하니에게 상처를 남겼다.하니가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눈물이 눈가를 따라 조용히 흘러내렸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하마터면 일자리 하나 잃을 뻔한 거죠.” 하니는 고개를 숙였다가, 갑자기 툭 내뱉었다.“신경 꺼요!”건빈이 낮게 웃었다.“그래도 지금처럼 솔직한 하니 씨, 꽤 재미있네요.” “달콤한 거 먹으면 기분이 좀 나아질 거예요.”그는 아무 말 없이 하니를 데리고 한 디저트 카페로 향했다. 곧 폭신한 작은 케이크 한 조각이 하니 앞에 놓였다.하니는 눈을 깜빡이며 그걸 뚫어지게 바라봤다.“나한테... 주는 거예요?”“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어요?”건빈이 짧게 대답했다.하니는 더 묻지 않고 기분이 풀릴 때까지 케이크를 몇 조각이나 먹었다.학교 다닐 때, 하니가 기분 안 좋으면 라연이 맛있는 걸 사주곤 했다.승오와 다툰 날에도 그렇게 풀곤 했다.그 뒤로 승오는 사과라는 걸 배웠다. 하니 앞에 밀크티나 작은 디저트를 놓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대신했다.하지만 졸업 이후로 그는 더 이상 그런 평범한 것들을 주지 않았다.대신, 보석이나 다이아몬드 목걸이, 값비싼 유리 구두, 화려한 드레스...하니가 좋아하지 않는 것들뿐이었다.‘난... 처음의 그게 좋았는데.’“고마워요, 부 비서님.”하니가 조용히 말했다.“아마... 처음엔 내가 오해한 것 같아요. 부 비서님은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그 순간, 건빈이 손을 들어 하니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부드럽게 닦아냈다.하니의 몸이 순간 굳었다.“부 비서님...”“지금도 내가 좋은 사람 같아요?”하니의 입술이 단단히 닫혔다....B시, 병원.승오는 과음 끝에 위천공으로 병원에 실려 왔다.수술실 바깥, 권아 혼자서 의자에 앉아 있었다.여자의 시선은 불안하게 수술실 문을 향해 고정돼 있었다.‘제발... 무사해야 해. 강승오가 무너지면...’‘나는... 새로운 재벌 2세를 어
Read more

제89화

말한 사람은 심주영이었다.그녀에겐 외아들 하나뿐.당연히 아들이 더 잘되길 바랐다.하지만 하니와의 거래를 떠올릴 때마다, 심주영의 가슴 속엔 깊은 후회가 밀려왔다.‘그때 알았더라면...’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이하니를 신경 쓸 줄 알았더라면...’‘그냥 붙잡아둘 걸.’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심주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그 표정을 읽은 권아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저... 제 위 반을 승오 씨한테 줄게요. 병원에서만 허락해 주신다면요.”의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심장을 기증하는 것도 아니고, 요즘은 살아 있는 사람의 장기 기증은 법으로 금지돼 있어요. 게다가 ‘반쪽’이란 게 말이 됩니까? 상식은 좀 갖고 얘기하세요.”권아의 얼굴이 굳었다.잠시 후, 승오가 수술실에서 밀려 나왔다. 원래 그는 위가 약한 편이었는데, 이번에 절반이 잘려 나가면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게 뻔했다.마취 기운이 서서히 가시자, 승오의 목소리가 간신히 흘러나왔다.“하니...”심주영이 곧바로 쏘아붙였다.“네가 기어코 내쫓은 거잖아. 이제 와서 후회한들 뭐가 달라져? 그리고, 내가 하니가 해외로 나간 건 아니라고 알려준다고 해도, 어디로 갔는진 모를 일이야. 이 넓은 세상에서 어떻게 그 아이를 찾을 건데?!” “네가 진짜 마음 편히 장가갈 수 있다면야, 나랑 네 아버지도 더는 말 안 하겠지만... 문제는 네가 과연 편해질 수 있느냐는 거야.”그 말에 승오는 눈을 번쩍 떴다.“그럼... 하니가 진짜 출국 안 했단 말이에요? 그럼... 하니는 살아 있는 거네요. 비행기엔... 안 탔던 거고요?”권아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승오의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그는 반드시 하니를 찾아낼 것이다.‘찾아서 뭐 하려고? 이러다 강승오와 이하니가 결혼이라도 하면...’‘나는... 완전히 끝이잖아.’권아의 눈동자에 서늘한 증오가 스쳤다.“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제가 꼭 승오 씨 곁을 지키면서 간호할게요.”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Read more

제90화

“어머니, 자기 아들을 못 믿는 거예요?”심주영은 이미 알고 있었다.“믿지. 그런데 권아... 그 애는 보통 여자가 아니야. 쉽게 속일 수 있는 성격이 아니거든.”“네가 정말 권아를 버렸다가, 우리 집안이랑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어떡하니? 너야 체면 안 차릴 수 있겠지만, 우리 집안은 달라. 우린 체면 지켜야 해.”그 말에 승오의 손가락이 굳게 오므라들었다.“그냥 권아를 내보내면 안 돼요? 집에 두면 거슬린다고요.”승오의 눈빛엔 노골적인 싫증이 번졌다.심주영은 이미 아들이 백권아라는 여자를 더 이상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눈치챘다.남자가 새 여자에게 끌리는 건 흔한 일이다.하지만... 하니만은 이해가 안 됐다.‘6년이나 지났는데도 왜 아직 못 놓는 거지?’“사람을 좀 붙여서 찾아볼게.”심주영이 입을 열었다.“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 없어야 한다. 넌 내 하나뿐인 아들인데, 네가 무슨 일이라도 당하면...”“네 아버지한테 내가 뭐라고 하겠니? 여자를 위해 미쳐도 좋아. 하지만 여자를 위해 죽을 생각은 하지 마.”아들 얼굴에 스치는 미묘한 죄책감을 확인한 심주영은 그제야 자리를 떴다.늦은 저녁, 권아가 뜨거운 국을 들고 나타났다.승오가 좋아하던 분홍빛이 감도는 화이트 원피스를 입고 일부러 그의 앞에 서서 빙그레 웃었다.예상대로 승오의 시선이 그 옷에 머물렀다.하지만 잠시 후, 승오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누가 그 옷 입으랬어? 너한테 안 어울리니까 당장 벗어.”권아의 표정이 굳었다.“오빠... 이 옷 오빠가 제일 좋아한다며...”승오가 비웃듯 말했다.“난 하니가 입었을 때만 좋아했어. 네가 입는 건 꼴도 보기 싫어. 이건 하니 거야. 하니 돌아오면 내가 직접 입혀줄 거거든.”‘이게 대놓고 날 무시하는 거지.’권아의 뺨에 뜨거운 수치심이 번졌다.그녀는 차갑게 승오를 바라봤다.“만약 내가 이하니의 행방을 알아내면? 그럼 날 계속 곁에 둘 거야?”승오가 비웃음을 터뜨렸다.“웃기네. 우리 집안에서 온 인맥 다 동원해도
Read more
PREV
1
...
56789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