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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한다고 말해줘: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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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민하윤의 표정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주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설마 그동안 하도진과 함께 지내면서 그에게 마음을 뺏겼던 걸까?민하윤은 골치 아픈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고, 입맛이 떨어져 눈앞의 맛있는 음식들에서 갑자기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 앞에 놓인 그릇에는 임형섭이 집어준 음식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민하윤은 얌전히 그릇에 놓인 음식들을 먹었지만 아무 맛도 느끼지 못했다.“무슨 생각해? 자꾸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네. 밥을 다 먹은 뒤에는 나랑 같이 옷 사러 가자.”임형섭은 민하윤에게 거절할 기회를 주지 않고 업무를 핑계로 댔다.“너 그렇게 입고 가면 우리 은행의 이미지에 안 좋아. 옷은 내가 사겠다는 말 안 할게. 네가 사. 그러면 되지?”민하윤은 갑자기 눈을 깜빡이면서 감격한 얼굴로 임형섭을 바라보았다.“우리 사이에 그렇게 꼬치꼬치 따질 필요 없어. 나는 내가 좋아서 너한테 잘해주는 거야. 그러니까 보답하지 않아도 돼.”임형섭은 자기도 모르게 무심코 마음속 깊이 숨겨뒀던 진심을 꺼내 보였다.그 순간 두 사람 모두 머쓱한 표정이 되었고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민하윤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서늘한 시선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 느낀 그녀가 깊이 생각하기도 전에 등 뒤에서 비웃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두 분 한가하신가 봐요? 도심에서 많이 떨어진 외진 곳까지 와서 점심을 드시는 걸 보면 말이죠.”민하윤이 시선을 들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차가운 눈길로 테이블 위 음식들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 가게는 차씨 가문 둘째 차형빈의 가게였는데 일부러 다른 곳에서 거액을 들여 주방장을 스카우트한 뒤 인플루언서와 연예인들을 통해 홍보하여 그 지역에서 유명한 가게가 되었다.하도진도 이 가게는 처음 와봤다. 진호영과 구준오 등 여유가 많은 재벌가 자제들은 이곳 단골이었다.한편으로는 친구의 사업을 챙겨주기 위해서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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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직원은 이내 진호영의 추측을 긍정하며 말했다.“맞는 것 같아요. 이분을 아시나요?”그들은 헐레벌떡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내 하도진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진호영은 임형섭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쩌면 잠시 뒤 이곳에서 민하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하도진은 단톡방 메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결국 운전기사에게 차 머리를 돌리라고 하고 촬영장 쪽으로 갔다.굳이 고은율을 부른 이유는 우연인 척 가장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일부러 고은율에게 이 가게로 가자고 했다.하도진은 사실 친구들이 한 말을 듣고 반신반의하며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 와본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민하윤을 마주칠 거라 확신하지는 않았다.혹시라도 임형섭이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온 걸지도 모르니 말이다.하도진의 비아냥에 민하윤은 기분이 복잡했다. 민하윤은 조금 전 두 사람이 나눈 대화를 신경 쓰면서도 억지로 자신을 위로했다.“저희는 오늘 일 때문에 촬영장을 찾은 겁니다. 최근 영화 투자사에서 대출을 신청했거든요. 저희는 현장에 직접 나와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한 거고요.”임형섭은 하도진에게서 은근히 적개심이 느껴지자 해명했다.일 때문이라는 말에 찌푸려졌던 하도진의 미간이 살짝 펴졌다.고은율은 술을 조금 많이 마셔서 비틀거리다가 하도진 쪽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진 채 거칠게 숨을 쉬었다.취한 고진율은 뭔가 중얼거리다가 하도진의 손을 덥석 잡으며 헛소리했다.“도진아, 나 괴로워. 토하고 싶은데 토할 수가 없어.”“내가 호텔로 데려다줄 테니까 거기서 쉬어.”하도진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민하윤과 임형섭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싸늘해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민하윤은 조심스럽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조금 전 두 사람이 웃고 떠들던 소리가 되풀이됐다.하도진은 고은율을 에스티 산하의 세리 엔터로 영입한 뒤 전력을 다해 고은율을 지원해 주고 있었다. 그건 누가 봐도 사랑이었다.“저희는 하 대표님 시간을 방해하지 않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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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세심한 임형섭은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하러 가서 민하윤이 홀로 감정을 추스를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그들은 차를 타고 겨우겨우 운명이라는 이름의 드라마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그것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자료에 따르면 감독과 배우진 모두 유명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런 투자와 협찬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스태프가 그들을 촬영 현장으로 안내했다. 현장에서는 촬영이 진행되는 상태였고 민하윤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카메라 옆에 서 있는 남배우를 바라보았다.제작자가 두 사람을 맞이했다. 제작자는 두 사람이 태유 은행의 직원이라는 말을 듣더니 웃으며 말했다.“정말 죄송해요. 타이밍이 좋지 않았네요. 조금 전 저희가 거액의 투자를 받게 되었거든요. 상당히 통이 크신 투자자가 저희에게 자금을 투자하겠다고 하셨어요. 감독도 수상 경력이 잇는 유명한 감독으로 교체될 예정이에요. 그래서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임형섭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차를 타고 두 시간 동안 달려서 이 먼 촬영장에 왔는데 상대방은 이젠 대출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로 그들을 돌려보내려고 했다.은행 대출 업무는 그들이 상대방에게 대출금을 제발 받아달라고 애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위 임원이 직접 지시한 일이 아니었다면 그냥 일반 사원에게 평가를 맡겼을 것이고 그들이 직접 이곳까지 찾아올 필요도 없었다.“왜 전화해서 대출 신청을 취소하겠다고 하지 않으신 거죠?”임형섭은 보기 드물게 차가운 얼굴로 싸늘하게 따져 물었다.그는 사실 제작자에게 약간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임형섭은 조금 전 가게에서 하도진을 만나서 기분이 좋지 않았고 민하윤도 지금까지 우울해 있었다. 임형섭은 민하윤이 우울해하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제작자는 꽤 똑똑한 사람이었다. 비록 대출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조심스럽게 임형섭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웃으며 설명했다.“사실 투자자가 보통 사람이 아니거든요. 저희도 갑작스럽게 투자하겠다는 연락을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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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아, 그렇군요... 괜찮아요. 그냥 드세요.”상대방은 눈에 띄게 당황하더니 멋쩍게 웃으면서 설명했다.“이건 불문율 같은 거예요. 고은율 씨가 이번에 여자 주인공을 맡게 되었는데 어제서야 이곳에 도착했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고생하시는 스태프분들을 위해 커피차를 불렀어요. 그래야 앞으로 촬영을 순조롭게 잘할 수 있거든요. 어차피 많이 준비했으니 사양하지 마세요. 대신 방송되면 응원해 주세요.”그렇게 얘기하니 더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간식과 커피를 들고 자리를 뜨게 되었다.임형섭은 차에 오른 뒤 그것들을 옆에 놓았는데 민하윤은 오히려 유심히 살펴보았다.“아까 그 남배우 아는 사람이야?”임형섭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고 민하윤은 고개를 저었다.“아까 촬영 현장에서 그 배우를 계속 쳐다보고 있길래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즘 뜨고 있는 신인 배우예요. 아까 그 배우를 쳐다봤던 이유는 자료를 봤을 때 캐스팅된 배우들 모두 무명 배우였기 때문이었어요. 의아하던 찰나에 제작자가 설명해 주셨죠. 투자자 때문에 배우와 감독이 전부 바뀌었다고 말이에요.]민하윤은 수화로 설명했다. 임형섭과 소통할 때는 휴대전화가 필요 없었다.임형섭은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하윤이 너는 세심하네.”민하윤은 쓴웃음을 지으며 커피잔에 붙은 스티커를 손으로 쓸어보았다.동명이인이 아니었다. 하도진이 고은율을 위해 사람을 폭행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네티즌들은 고은율과 하도진이 한때 사귀던 사이라는 것을 알아냈다.고은율은 전 기획사와 계약을 해지한 뒤 에스티 산하의 세리 엔터와 계약했다. 하도진은 한시라도 빨리 고은율을 전폭 지원해 주고 싶은 듯했다.그리고 오늘 하도진이 도심에서 이렇게 먼 곳까지 온 이유는 고은율과 밥 한 끼 먹기 위해서였다.민하윤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마음이 아렸다. 하도진은 가끔 다정하지만 또 가끔 냉정했고 민하윤은 그런 그에게서 사랑이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마음이 차게 식은 민하윤은 홀로 택시를 타고 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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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민하윤은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그녀는 세면용품과 옷을 챙겨서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이때 나지혜는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사모님, 늦은 시간에 외출하시는 건데 운전기사 불러드릴까요?”민하윤은 고개를 저은 뒤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하도진과 마주칠 것 같았다.민하윤이 예약한 택시가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민하윤은 휴대전화를 켜서 목적지 주소를 자신의 자취방으로 수정했다.민하윤은 자신이 왜 이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냥 숨이 자꾸만 막혔고 더는 하도진과 같은 공간에 있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하도진은 피곤한 얼굴로 창문을 내렸다. 별장이 환히 밝혀진 걸 본 그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했다.하도진은 마음을 정리한 뒤 담배꽁초를 창밖으로 던졌고 차에서 내린 뒤 그것을 발로 비벼 껐다.나지혜는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민하윤이 돌아온 줄 알고 서둘러 그녀를 맞이하러 갔다.“사모님, 뭐 두고 가신 거라도 있으세요?”하도진의 얼굴을 본 나지혜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그에게서 겉옷을 건네받으며 말했다.“대표님, 돌아오셨어요? 손 씻고 저녁 드세요.”하도진은 고개를 들어 2층 객실 쪽을 바라보았다.“하윤이는요?”나지혜는 조금 전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사모님께서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았어요.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고 오늘 저녁은 집에서 먹지 않겠다고 한 뒤에 방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나오셨어요.”하도진이 차가운 얼굴로 손목을 들어 시계를 보았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간 거죠?”태유 은행은 회사 규정을 엄격하게 지켰고 직원 복지가 아주 좋은 곳이라서 직원들을 야근시키는 일이 거의 없었다.“그건... 얘기하지 않으셨어요.”나지혜는 하도진이 언짢아하자 조심스럽게 대답했다.하도진은 식탁 위 저녁을 힐끔 보았다. 나지혜는 국 하나에 반찬 네 가지를 준비했는데 모두 민하윤이 좋아하는 것들이었다.하도진은 민하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잠시 뒤 다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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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민하윤은 이번 주말에 양아버지를 보러 가고 싶었고 꽃다발을 사서 양어머니의 묘지도 찾아가 보고 싶었다. 앞으로 그녀는 더 이상 남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갈 것이다.민하윤은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워져서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그녀는 아주 긴 꿈을 꾸었다.꿈속에서 하도진은 고은율을 품에 안고서 차가운 얼굴로 민하윤에게 이혼합의서를 던졌다.“사인해.”민하윤은 펜을 들고 이혼합의서에 이름을 적으려고 했으나 그녀가 아무리 힘을 써도 잉크가 나오지 않았다.“일부러 그러는 거지?”민하윤은 힘껏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입을 열어 설명하고 싶었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하도진과 고은율은 차가운 얼굴로 민하윤을 바라보았고 민하윤은 너무 초조한 나머지 진땀을 뺐다.민하윤이 눈을 번쩍 떴을 때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건 흰 조명이었다. 민하윤은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전부 꿈이었다.사실 꿈이라 아쉬웠다. 민하윤은 자신에게 괴로움만 가져다주는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끝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민하윤은 걸어서 회사로 갔다. 회사 근처에 카페가 있어 그곳에서 커피를 시켰는데 인정 많으신 사장님이 쿠키를 서비스로 주었다.민하윤이 쿠키를 건네받은 뒤 한 입 먹기도 전에 큰 손이 민하윤의 손목을 틀어쥐며 그녀를 옆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또 왜 심통이 난 거야? 가출해서 밤새 돌아오지 않다니... 뭐에 화가 난 거야?”하도진은 두 눈이 빨갰고 다크써클도 심했다. 누가 봐도 피곤한 얼굴이었다.민하윤은 그에게 잡힌 손목이 아파 미간을 찌푸리면서 혹시라도 직장 동료들이 그 모습을 볼까 봐 두려워했다.뜨거운 커피를 오래 쥐고 있으니 손이 뜨거웠다. 민하윤의 흰 손바닥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게다가 손목까지 잡혀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따라 와.”하도진은 다짜고짜 그녀를 끌고 차로 걸어갔다. 하도진은 민하윤의 기분 따위 생각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굴었고, 민하윤에게 거절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민하윤은 초조한 얼굴로 하도진을 노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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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민하윤은 하도진이 자신을 위해 일부러 수화를 배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하도진은 조금 전 민하윤의 수화를 전부 이해했다.민하윤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꺼낸 말을 하도진이 전부 알게 되었다.하도진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두 손으로 민하윤의 어깨를 잡고 최대한 몸을 숙여서 그녀와 시선을 맞추며 참을성 있게 말했다.“고은율의 일은 내가 다 설명할게.”민하윤은 하도진을 싸늘하게 바라보다가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도진 씨와 은율 씨 일은 나와 아무 상관 없으니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요. 우리 아빠 치료 비용은 꼭 돌려줄게요. 대신 계약 종료해 줘요. 그게 우리 모두에게 좋아요.]하도진은 천천히 손을 내려놓고 허리를 곧추 폈다. 그는 한 손을 주머니 안에 넣으면서 시선을 들며 말했다.“계약서에 똑똑히 적혀 있어. 아이를 낳아야 계약이 종료돼. 그래야 너도 돈을 받고 떠날 수 있어.”하도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마치 담판하러 온 사업가처럼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고 양보 따위는 전혀 안 할 것 같았다.민하윤은 흠칫했다. 그녀는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눈앞의 하도진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그렇게 썼다가 지우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더니 결국엔 짧은 글을 써서 보여줬다.[돈은 필요 없어요.]휴대전화 화면을 본 하도진은 미간을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계속 대치했고 하필 출근 시간이라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민하윤은 하도진의 손을 힘껏 뿌리친 뒤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건물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그녀는 감히 멈출 수가 없었다. 빠르게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간 민하윤은 구석에 숨어 자신의 존재감을 최대한 낮췄다.엘리베이터가 7층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앞에 있던 두 사람이 작은 목소리로 의논했다.“올해 승진 후보자 명부가 나왔다던데요. 이사회에서 승진 심사위원회를 만든대요.”“누가 승진할지는 뻔하지 않아요? 그 사람들끼리 경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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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태유 은행에 있어 승진 심사는 매년 진행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태유 은행에서는 완성도 높은 심사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은 연간 평가와 업무 실적을 기준으로 각 부서에서 가장 훌륭한 인재와 관리직을 선별한 뒤 각각 승진 심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사회에서 승진 심사위원회를 구성하여 평가를 진행하고 최종적으로 승진자 명부를 정한다.일반 직원이 승진하면 급여와 성과급이 모두 인상되고 실적에 따라 보상이 주어진다.민하윤은 이미 대리라서 과장이 되려면 일반 직원들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녀는 앞으로 한 달 가까이 이어질 심사 기간 동안 최소 10억 규모의 대출 실적을 채워야 했다.승진 기회를 얻은 것은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혹독한 심사 기준 때문에 민하윤은 스트레스가 엄청났고 그 탓에 하도진의 존재를 완전히 잊었다.민하윤은 일에 몰두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점심시간이 되어 밖이 소란스러워지고 나서야 시계를 확인해 보니 이미 열두 시였다.임형섭이 문을 두드린 뒤 고개를 내밀고 그녀를 불렀다.“오늘 구내식당 메뉴 파스타라고 하는데 같이 가서 먹을래?”민하윤은 거절하고 싶었으나 배에서 꼬르륵 소리를 내서 어쩔 수 없이 노트북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엘리베이터가 2층에 도착했다. 2층에는 구내식당이 있었는데 밥도 있고 국수도 있고 양식도 있었다. 맛도 있는 데다가 가격이 싸서 좋았지만 유일한 단점은 바로 점심시간에 외부 사람들도 구내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계속 근심 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데 무슨 골치 아픈 일이라도 생긴 거야?”임형섭이 세심하게 수저를 챙겨주고 물까지 직접 따라주었다.민하윤은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면서 표정을 구겼다. 임형섭의 말에 그녀는 입맛이 뚝 떨어졌다.[회사 공지 봤어요? 제가 이번 승진 후보자 명부에 있었어요.]민하윤은 떠보듯 물었다.임형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예상했는지 전혀 놀라지 않았다.“응. 당연한 거지. 너 벌써 입사 5년 차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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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민하윤은 억지로 파스타를 몇 입 먹었다. 요즘 따라 입맛이 없는 데다가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가 심했던 민하윤은 심란한 마음으로 아래층을 힐끗 보았다.태유 은행은 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주위에 빌딩들이 가득했고 지리적으로 굉장히 좋은 곳이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그럼에도 민하윤은 화려한 벤틀리를 한눈에 발견하고는 곧바로 표정이 어두워지면서 안절부절못했다.“하윤아, 왜 그래?”임형섭의 목소리에 민하윤은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힘껏 고개를 저은 뒤 형편없는 핑계를 댔다.[저 볼일이 있어서 오늘 일찍 돌아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오후에 반차를 내도 될까요?]민하윤은 요즘 휴가를 자주 냈고 사실 은행 규정상으로는 승인을 받을 수 없었다. 임형섭이 그녀의 상황을 이해해 주면서 말했다.“동아 건축 신용대출 업무에 빠진 서류가 있는 것 같은데 오후에 한 번 갔다 와 봐.”사실상 반차를 허락해 준 셈이었다. 민하윤은 감격한 얼굴로 임형섭을 바라보다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감사합니다!]임형섭은 다급해 보이는 민하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이 아렸다.그들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언젠가부터 민하윤에게는 비밀이 생겼다.임형섭은 눈을 가늘게 뜨고 건물 밖을 바라보았다. 창밖에는 행인들이 많았고 차도 많았다. 딱히 눈에 띄는 것이 없었기에 그는 결국 밖으로 나갔다.민하윤은 마치 온몸의 기운이 빠진 듯 힘없이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하도진이 왜 갑자기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시간이 남아돌 정도로 한가한 것일까?조금 전 무심결에 밖을 바라보지 않았다면 하도진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민하윤은 일부러 서류까지 챙겨서 1층으로 내려간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근처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빠르게 벤틀리로 걸어갔다.민하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차 문을 열었고 하도진은 고개를 들어 민하윤을 바라보았다.“왜? 마음이 바뀌었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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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민하윤은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던 걸까?꽤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내고, 진심을 나눈 순간들이 있었지만 민하윤은 단 한 번도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았다.순간 하도진은 심장이 저렸고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 같아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차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하도진은 차갑게 웃은 뒤 더는 참지 못하고 가시 돋친 말들을 내뱉었다.“민하윤, 네 말이 맞아. 너랑 나 사이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고은율은 그래도 나랑 7년을 만났잖아. 너보다는 정이 많지.”민하윤은 하도진이 그녀와 고은율을 비교하면서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하도진의 말처럼 민하윤은 7년의 세월을 이길 수가 없었다.민하윤은 기분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그녀는 마치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면서 눈앞의 차가운 하도진을 바라보았다.민하윤은 굴욕감을 견디지 못하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는데 하도진이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이내 그녀의 입술에 하도진의 차가운 입술이 닿았고, 하도진은 거칠게 민하윤의 목을 쥐었다.운전기사는 눈치가 빨랐기에 빠르게 격벽을 올려서 두 사람만의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민하윤은 피하려고 했으나 하도진에게 완전히 제압당해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녀는 그저 작게 숨을 몰아쉬며 힘없이 그의 품에 기대어 있었다.하도진은 어느샌가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었고 넥타이도 거칠게 잡아당겨서 옆에 던져두었다. 그는 나른한 자태로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품 안의 가녀린 민하윤을 끌어안았다.“별장으로 돌아가.”운전기사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들은 천천히 육교로 향했고 창밖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민하윤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하도진의 품에 몸을 기댔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 르네 별장 앞에 멈춰 섰다.하도진이 거칠어진 목소리로 장난치듯 물었다.“직접 내릴 거야? 아니면 나한테 안겨서 내릴 거야?”민하윤은 곧바로 허리를 펴면서 바로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옷차림을 확인한 뒤 내키지 않는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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